지구촌ODA정책감시 뉴스레터 9호
정부는 지난 9월 27일 열린 국무회의에서 2006년~2010년 국가재정운용계획안을 확정하면서 공적개발원조에 중점을 두겠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2007년도 대외 무상원조 예산도 전년 대비 약 16.8% 증가한 2,230억 원으로 책정하였다. 작년에 비해 320억 가량이 증액되었지만 국제기준으로 볼 때는 갈 길이 너무 멀다. ‘국력에 맞는 선진외교’, ‘새천년개발목표(MDGs)를 달성하기 위한 국제사회의 노력에 동참’운운하며 소리를 높여도 국민소득대비 ODA규모는 2005년도 OECD 국제원조위원회 0.33%의 1/3 수준인 수준인 0.09%에 불과한 것이다. 한국인 최초 UN사무총장의 등장을 앞두고 세계 12위 경제규모에 걸맞게 국제사회에 대한 기여를 확대하겠다며 UN분담금(세계 11위) 체납분에 대해서는 외교 예산 중 우선순위를 두는 정부가 왜 한국의 경제력에 미치지 못하는 국가들보다 더 초라한 ODA규모에 대해서는 진정으로 부끄러워하지 않는 건지 의아하기만 하다. 당장 지난 4월, 노무현 대통령은 아프리카를 순방하며 현재 3,200만 달러 수준의 ODA규모를 1억 달러로 늘이겠다고 공언하고 돌아왔는데, 지금 확보된 예산으로 과연 약속을 지킬 수 있는지 걱정이다. 이번 정기국회에 열린우리당 정의용 의원이 국제선 항공권에 국제빈곤퇴치기금을 설치하는 것을 주요 내용으로 발의한 <한국국제협력단법> 개정안 외에는 재원동원방안이 전무하다.
이처럼 개도국 빈곤문제 해결에 기여하겠다는 정부의 의지나 ODA규모를 확대하겠다는 목표가 구체적인 예산으로 뒷받침되지 못하는 문제보다 더욱 근본적인 것은 대외원조규모 증액 목표가 터무니없이 낮다는 것이다. 선진국들은 2000년 유엔에서 새천년개발목표(MDGs)가 채택된 이후 2005년 밀레니엄+5 유엔 특별정상회의에서 GNI대비 ODA비율을 0.7%수준으로 확대하기로 다시 한 번 확인하였다. 이런 목표를 이미 달성한 덴마크, 노르웨이 외에 많은 나라들이 2010년까지 최소한 0.5%수준으로 확대하거나 추가 공여를 약정하고 있는데, 한국정부의 야심찬 계획은 고작 2009년까지 0.1%수준으로 확대하는 것이다. 정부의 입장에서 보면 2011년에 잡았던 목표를 조기에 달성하겠다고 각오를 밝힌 셈이지만, 우리 국민들이 느끼는 부끄러움을 면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 MDGs 달성 마지막 해인 2015년에는 우리 정부가 가입하겠다고 밝힌 OECD DAC(개발원조위원회) 회원국 2010년 평균치로 예측되는 0.36%수준으로 확대하는 것을 검토하여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최소한 지속개발가능위원회의 권고안인 2010년 0.2%확대 목표를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그런 모습이 보일 때에야 비록 정부가 누누이 강조하는 ‘경제력에 상응하는 원조규모’수준에는 못 미치더라도 우리 국민들이 비로소 이해해 줄 것이며, 수백억에 달하는 개도국 무역 흑자규모에도 불구하고 대외원조에는 인색하기 짝이 없다는 세계 시민들의 비난에서 자유로울 수 있을 것이다.
대외원조의 양적 규모에 관해 살펴본 것처럼, 정부는 지난해 말 <대외원조 개선 종합대책>이라는 장밋빛 청사진을 내놓고 의욕을 보인 것과는 달리 전향적인 변화들이 별로 눈에 띄지 않는다. 만약 열심히 계획대로 추진하고 있는데도, 실적이 대단한데도 불구하고 우리 국민들이 그 변화를 제대로 감지하지 못한다면 그 역시 심각한 문제일 것이다. 지난 3월 국제개발협력위원회가 구성되어 한차례 회의를 하고 6월에 실무위원회가 역시 한차례 열린 것 정도가 가시적인 움직임이다. 하지만 국무총리를 위원장으로 하는 국제개발협력위원회가 구성되었음에도 불구하고 NGO를 비롯하여 학계 등 다양한 분야에서 공통적으로, 꾸준히 지적해온 ‘국제개발협력의 통합적 이념이나 목표, 전략 부재’의 상황이나 유,무상 사업간 사전 협의 및 조율 미흡 등 ‘조정 및 통합기능’의 취약성은 여전해 보인다. 참여연대가 지난 9월 ODA 평가 사업 모니터를 위해 국제개발협력위원회에서 2006년 상반기 중 구성하기로 계획되어 있는 평가소위원회의 활동에 대해 문의를 하였을 때, 평가소위는 구성조차 되어 있지 않았으며, 그 이유는 부처 간의 의견 조정이 제대로 되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답을 들었다. 사업평가지침을 만드는 일에 어떤 부처 간에, 무슨 이견이 있다는 것인지도 이해가 가지 않지만, 무엇보다도 그동안 대외원조 사업을 추진함에 있어 드러났던 유, 무상 정책 및 시행 부처 간 협의, 조정체계의 강화를 위해 추진시스템 정비를 담당하는 국제개발협력위원회는 구성된 지 6개월이 넘도록 평가소위 하나 구성을 못하는지 반문하고 싶었다. 이는 국제개발협력위원회가 제 기능을 다하지 못하다는 것을 반증하는 것이며, 국무총리의 역할을 해태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이렇게 기본적인 ODA 추진 시스템조차 갈피를 못 잡고 있는 판이니, 무상원조(2003년 기준 46.0% / DAC 평균 86.1%)및 구속성 원조 비율(2003년 80.6% / DAC 평균 6.8%, 다시 말해 DAC 회원국은 ODA 90%이상을 비구속성 원조로 제공)과 최빈국 원조 비율(GNI대비 0.01%수준 / DAC 0.08%)을 대폭 늘려 대외 원조의 질을 개선해야 한다는 과제들은 더욱 오리무중이다. 자체적으로 개발 원조를 시행하고 있는 중국이나, 우리보다 ODA규모가 큰 터키 (GNI대비 0.11%)등에 ODA를 지원하는 반면, 빈곤의 대명사격인 아프리카에 고작 5.5%만의 ODA가 지원되는 현실이나 비민주적인 미얀마에 ODA가 지원되어 해당 국민들의 인권을 더욱 유린하거나, 베트남 모 대학 건설사업이나 필리핀 사우스레인 사례처럼 개발의 후유증을 남기는 문제, 적절한 사업타당성 검토 없이 주먹구구식으로 선정되거나, 빈곤 퇴치라는 원래의 목적과 달리 정치 외교적 고려에 따라 불투명하게 사업을 선정하는 방식, 원조 효과를 떨어뜨리는 유무상 사업간, 부처 간 연계 부족과 전문성 부족 등 산적한 과제는 그저 <대외원조 개선 종합대책>의 평가 내용으로만 전락한 듯하다. 9월 중에 2006년도 계획에 대한 추진상황 중간점검을 한다고 했는데, 정부는 중간성적을 어떻게 매길지 성적표가 궁금하다. 민간 전문가들은 벌써 중간평가를 마치고 토론회 등을 통해 공론화 작업에 들어갔는데, 언제나 그렇듯 정부의 행보만 느리다.
정부는 2006년도를 우리의 개발경험과 비교우위분야에 중점을 둔 한국형 국제개발협력의 원년으로 삼겠다고 포부를 밝히고, 91년 이래 처음으로 유, 무상 원조사업을 포괄하는 종합적인 성격의 계획을 야심차게 수립하였다. 정부의 발표대로 그야말로 종합적인 진단과 대책이라 국민들은 약간의 미진함은 뒤로 밀어놓고 그 찬란한 계획이 빛을 발하기를 고대하고 있었다. 하지만 2006년 10월 지금의 현실에서 우리가 확인하는 것은 가장 기본적인 사항이라 할 수 있는 ODA의 통합적 이념과 목표, 전략을 담을 그릇조차 마련되어 있지 않다는 것이다. 정부의 진단대로 기관(국제협력단법), 기금(대외경제협력기금법) 설치를 목적으로 한 현행 법률체계는 전반적인 국제개발협력 목표, 관리시스템, 조정 기구 등을 규정하기가 어렵다. ODA의 이념과 가치, 원칙을 제대로 담기에 한계가 많은 것이다. 세간에는 ODA헌장 제정을 주장하고 있는 재경부와 가칭 국제개발협력법을 주장하는 외통부 사이의 이견 때문에 ODA의 통합적인 이념과 목표와 유무상 원조를 통합하는 내용을 주요하게 담을 법안 제정이 계속 무산되고 있다는 얘기가 떠돌고 있다. 국민들은 법이든, 헌장이든, 아니면 정책문서이든 형식보다도 그 형식에 담길 지구촌 좋은 이웃이 되고자 하는 아름다운 희망과 전 세계 빈곤타파와 인권 증진이라는 연대의 가치, 그리고 서로 생각을 나누며 제대로 된 ODA정책을 추구하고자 하는 사회적 합의를 소중히 생각한다. 마치 우리 국민들이 ODA의 양적 규모의 수치만 중요하다고 생각하지 않는 것처럼 말이다. 본말이 전도되지 않아야 한다.
독자들은 우리가 뉴스레터 창간호에서 ODA도 민주적 통제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하였던 것을 기억할 것이다. 그동안 누구도 관심 갖지 않았던 ODA는 국제환경의 변화와 시민의식의 성숙에 힘입어 서서히 그 전모가 드러나고 있다. ODA에 대한 국민여론조사 결과에서도 볼 수 있듯이 바야흐로 사회적 합의와 참여로 ODA를 추진할 조건이 마련된 것이다. ODA의 기본 방향과 운영기조, 전략을 마련하는 출발부터 사업을 평가하는 마무리단계까지 모든 과정마다 시민적 참여가 확대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2006년 상반기 ODA관련 정부 정책은 아무리 완벽한 계획을 수립되었다 할지라도 시민 참여와 사회적 합의 없이는 결국 구호로 끝나 버릴 수 있다는 교훈을 던져주었다고 할 수 있다.
박영선(참여연대 국제연대위원회 실행위원)
* 뉴스레터 원본 첨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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