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20 대응후기-
사람이 우선하는 세상과 어느 신입 활동가의 반성
참여연대에 들어온 지 5개월이 지날 즈음이었던 4월 중순, 나는 G20와 관련된 외부모임이 있다고 해서 이태호협동처장과 함께 민노총 사무실로 향했다. 노동단체, 민중단체, 시민단체가 하나로 모여 큰 연합체를 만든다고 한다. 나는 이 세 가지 구분이 낯설고, 오가는 이야기를 듣다 보니 서로 분명 생각이 다른 지점들이 있는데 왜 굳이 하나로 모이려고 하는지 당시에는 이해할 수 없었다.
9월, 이 모임은 ‘G20대응민중행동’이라는 이름으로 공식적으로 출범하였는데, 이 즈음에는 80개가 넘는 단체들이 참가한 상태였다. 공식출범을 하기 전에도 G20정상회의 전에 있는 사전회의들에 대한 대응 기자회견도 하고, G20정상회의에 즈음해서 발표할 서울선언도 준비해왔었다. 사실 나로서는 민중이라는 단어가 어색했다. 다른 사람들이 들을 때 부담없는 흔한 말, 시민도 있는데 말이다. 긴 시간 논의한 후에 이름을 'G20대응민중행동'으로 하고, 우리의 기치는 ‘사람이 우선이다!’로 정하고 PUT PEOPLE FIRST로 영역하였다. 이미 런던G20정상회의 때 시민운동단체들이 썼던 문구였지만 한국에서 다시 한 번 같은 주제로 움직여야 한다는데 합의하였다.
나는 민중행동 회의와 기자회견, 전단지 배포 활동 등에 참석하면서, 또 내부적으로는 일반인을 위한 G20관련 아카데미 강좌와 간사들의 G20세미나를 통해 G20에 대해 알아갔다. G20정상회의에 대해 제기되는 정당성과 대표성의 문제, 시민사회의 G20 대응활동이 G20를 정당화시키고 있다는 점, 금융위기가 발생하자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모였던 G20가 올 해 6월에 있었던 토론토회의를 기점으로 금융개혁 논의에는 진척이 없다는 점, 더불어 금융개혁 뿐만 아니라 반부패, 고용, 개발, 재정 등 다양한 분야로 의제가 확산되어 있다는 점 등을 이해할 수 있었다.
시민사회 특히 금융관련 의제를 이해하고 비판적인 대안을 제시하고자 하는 시민단체들은 G20에 대응을 하면서 알게 된 것이 있다. 그것은 금융과 화폐 등 G20에서 다루는 분야에 대해 시민운동 진영이 가진 지적 또는 인적 기반이 약하며, 그래서 G20정상들이 그러하듯 시민사회에서도 중요한 문제는 건드리지 않고 G20가 확장시켜 나가는 의제나 이 행사를 준비하는 가운데 일어나는 사건들에만 문제를 제기하는 상황이라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민중행동은 많은 일들을 했다. 민중행동 차원에서 11월 7일부터 12일까지를 공동행동주간으로 정하고 여러 가지 행사를 준비하였다. 그 가운데 가장 큰 행사는 4일간 계속 되고 16개 이상의 크고 작은 포럼으로 이루어진 국제민중회의였다. 참여연대는 ‘금융규제 강화와 투기자본 과세를 위한 시민네트워크’의 멤버단체로 필리핀의 IBON 재단, 그리고 독일의 에버트 재단과 함께 재정∙금융∙개발에 관련된 포럼을 열었다. 유엔 관계자와 진보적 학자들, 그리고 시민사회의 활동가들이 발제를 하고 토론을 했다. 행사진행을 맡고 있어 진득하니 강의를 듣고 있을 수 없었다는 것이 아쉽다.
또한 기존 정부간 논의에 대해 비판적으로 접근하고 대안을 제시하려 한다는 공통의 기반에서 서울선언이라는 것을 작성하면서, 단체들간의 의견을 구체화하고 조율해 나갔다. 이 선언에는 경제위기의 비용이 민중에게 전가되고 있는 현실을 지적하고, 전면적으로 금융통제를 강화해야 한다는 주장과 함께 환경과 기후변화, 노동과 고용, 평화와 군축, 개발과 빈곤, 농업과 식량주권, 여성단체들이 합의한 대안적인 세계를 위한 제안을 하고 있다. 그러나 이번 서울회의에 대한 대응활동을 마치면서 시민단체들 사이에서는 내년에 있을 프랑스 회의부터는 금융거래세를 포함한 2-3개 의제에 집중해서 운동해야 하지 않겠느냐는 목소리가 있었다.
동시에 한국정부의 G20관련 과도한 홍보와 깨끗한 서울을 만들려는 80년대식 노력에 웃지 못할 해프닝들이 벌어지기도 했다. 그런 가운데 특히 정부가 군대까지 동원가능한 경호안전특별법을 제정하고 G20를 앞두고 이주노동자들에 대한 단속을 강화하던 중 베트남 이주노동자가 사망하는 사건이 일어나는 등 인권 침해와 과도적 공권력 남용 문제가 크게 드러났다. 그러나 특별법의 경우 비록 상임위 의결에서 야당의원들이 퇴장하는 액션을 보여줬지만 정치인들이 국민적 지지가 높은 행사에 대해 큰 비판의 목소리를 내지 않는 상황이었고 동시에 그리 적극적인 관심을 보이지도 않았다.
정부는 텔레비전 토론회에 나와서 “시민단체와 협의를 하였습니다”라고 하였다. 그것은 10월에 있었던 Civil Dialogue와 G20대응민중행동과 정부와의 대토론회를 두고 하는 말이다. 그러나 이것은 정부측에서 시민단체와 협의를 했다는 말을 하기 위한 것일 뿐이었다는 생각을 하게 만든 일이 생겼다. 정부는 민중행동에서 초청한 과격한 시위의 전력이 전혀 없는 개도국 활동가들의 입국을 불허하거나 비자발급을 거부했다. 또한 G20정상회의가 있었던 다른 나라에서와는 달리 시민단체들은 미디어 센터 접근권을 부여받지 못했고, 초청받은 국제 엔지오는 미디어센터에 들어갈 수는 있었지만 자신들의 의견을 서면상으로 배포할 수도 없었다. 엔지오, 시민단체 이런 말들에 경기를 일으키는 촌스러운 행태들이 실망스러울 뿐이었다.
G20관련 활동들이 막바지에 이르렀을 때 나는 뒤늦게 유엔 스티글리츠위원회에서 2009년 가을에 발표한 보고서를 읽으며 몇 가지를 눈 여겨 보게 되었다. 이 보고서는 시장을 완전히 믿고 있었던 우리의 과거의 신념을 반성해야 하며, 현 상황에 대한 문제의식은 새로운 경제질서를 위한 이론이 부재하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G20의 존재에 대해 말하기를, 금융위기로 인해 G20가 생겨났다면 이는 G20가 필요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이것은 한 국가가 해결할 수 없는 문제라는 것을 보여주는 것으로 모든 국가들이 참여하는 G192를 통해 해결책을 모색해야 한다고 했다.
참여연대는 내부적으로는 G20에 대한 비판의 강도가 높지 않았다. 오히려 G20에 대해서 알아야 한다는 생각이 컸던 것 같다. 그래서 일반인을 위한 5회의 아카데미 강좌를 준비하되 강사진도 사실관계를 분석적으로 설명해 줄 수 있는 분들로 섭외를 해 나갔다. 또한 내부 간사들도 공부를 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5회의 세미나를 했다. 주로 지금까지 있었던 정상회의의 선언문과 합의문을 요약발제하고 관련 글을 찾아 읽었다. 서로 간에 이런 이야기를 하였다. G20는 문제점이 있지만 시민사회가 전혀 관여하지 않은 채 무시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니며, G20를 대단히 비난하기에는 아직 딱히 무언가를 해 놓은 것이 없는 경제포럼이며, 여러 입장 가운데 참여연대가 취할 수 있는 입장은 의제에 대한 비판적 대안제시를 통한 개입이 아닐까 하는 것이었다.
나는 이번 G20대응활동을 하면서, 어떤 주장을 가진 개인으로 사는 것과 주장하는 바를 사회적 운동으로 조직해 나가는 것은 다른 차원의 일임을 알았다. 시민단체에서 민주적 가치를 위해 주장하는 바와 효율성을 강조하는 운동방식 사이에서 오는 고민, 그 일원으로서 나의 생활에 대한 반성에 까지 생각이 많아졌다. 그러나 누군가는 위기를 넘어 다 함께 성장하자는 서울G20정상회의에 대해 ‘누구를 위한 성장인가’를 비판적으로 물을 수 있어야 했다는 생각을 한다. 이번에 내가 할 수 있었던 것은 회의와 집회 참석에서 포럼 기획과 진행에 까지 다분히 물리적인 것에 한정되어 있었다. 더 많은 요구가 있었지만 이를 감당해 낼 수 없었던 셈이다. 그러나 운동의 역량은 천천히 다소 긴 시간을 통해 축적되고 넓어지는 것 같다. 프랑스로 이어지는 G20에 대한 대응은 조금 더 안정적이고 체계적일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이제 겨우 한 해를 이 곳에서 보내었다. 희망적이어도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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