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2월 26일 미국의 미네소타에 있는 미네아폴리스 곡물선물거래소에서 3월 인도분 북미산 봄밀 가격이 하루만에 25%나 폭등해 세상을 놀라게 했다. 2007년부터 2008년 초까지 1년간 우리나라에 수입한 밀 가격은 도착가격(해상운임포함가격) 기준으로 150%, 콩 가격은 100%나 급등하고 옥수수 가격은 50%나 상승했다. 2년 전까지 상승한 것을 포함하면 밀 가격은 200% 가까이 상승하고 옥수수, 콩 모두 150%나 급등하여 가히 “살인적”이다.

2008년 후반부터 곡물가격이 다소 진정되고는 있지만 여전히 곡물 재고율이 20%를 밑돌고 있고, 기상이변 등의 영향으로 전 세계적으로 식량위기는 언제 또 닥쳐올지 불안한 상태에 있다. 이로 인해 세계 각국은 새삼스럽게 식량안보시스템을 논하고 있다. 

수요의 이상급증이 부른 애그플레이션

현재 이슈가 되고 있는 애그플레이션은 공급이 부족해서 발생하는 ‘희소성’의 문제가 아니라 공급이 늘어나지만 수요가 그 이상 증가해 발생하는 ‘풍요’의 문제에서 발생한 식품가격 급등현상이라 할 수 있다. 특히 아시아, 아프리카 저개발국들은 생존의 문제로 심각히 받아들이고 있다.
 
이와 같이 국제곡물값이 오르게 된 원인은 수요측, 공급측, 거시적 측면 등 여러 가지가 있다. 가장 큰 이유는 곡물 수요가 구조적으로 변한데 있다. 과거에는 곡물이 사람이 먹는 식용과 가축이 먹는 사료용 두 가지로 크게 나뉘어졌는데, ‘90년대 중반 이후 지구온난화, 지구환경 문제가 대두되면서 자동차 연료로 사용되는 친환경 바이오연료용 곡물수요가 2000년대에 급격히 증가하여 과거에 없던 새로운 수요가 추가되었다. 곡물 공급량을 놓고 과거에는 식용과 사료용 수요의 양대 경쟁구조였는데, 이제는 연료용이 추가되어 3각 경쟁구조가 되었다는 점이다.

식용소비도 크게 늘고 있다. 인구 거대국가이면서 신흥공업국으로 경제가 빠르게 성장하는 국가들의 식용 밀과 콩 소비가 크게 늘고 있다. 이들 개도국들의 육류소비가 증가해서 사료용 소비도 크게 늘어나고 있다. 중국에서 돼지고기를 비롯해 육류소비가 크게 늘고 인도에서 닭고기 소비가 급증하고 있다. 쇠고기 1kg을 생산하는데 8kg의 사료곡물이, 돼지고기 1kg 생산을 위해 3∼4kg의 사료곡물이 필요하다. 육류소비가 늘어나면 그 이상으로 사료용 곡물소비가 늘어난다. 식용과 사료용도 늘어나는 데다 연료용까지 가세하다 보니 수요가 공급을 크게 앞지르고 재고율이 계속 떨어져 7년 전 30%대에서 심지어 15%까지 떨어지게 되었다. 이는 전 세계 인구가 연간 소비하고 남는 재고 수준이 2달도 채 안 되는 수준이 되었다는 것으로, 이 수준은 세계적인 국지전쟁이나 기상이변으로 어느 한 지역에 식량문제가 발생하면 대응할 여력이 아주 취약하다는 것이다.

생산 증가가 소비 증가를 따라오기만 하면 문제가 없지만, ‘85년 이후 생산증가율(약 0.68%)이 소비증가율(1.04%)을 따라오지 못하고, 지구온난화의 영향으로 과거보다 기상이변이 많아지는 추세여서 호주, 남미, 중국, 구러시아연방 지역과 같은 주생산지역에서 한군데만이라도 한발, 병충해, 폭우와 같은 기상이변이 발생하여 생산이 급격히 줄어들면 전 세계 공급에 영향을 미쳐 가격이 급등하게 된다. 2년 전(2005/2006 곡물연도)에 호주에서 기상이변으로 2,500만 톤 생산량이 980만 톤으로 급감해 곡물 값이 급등하게 된 한 요인이 되었다.

미국 등에서 금리인하로 인해 글로벌 유동성(헤지펀드, 국부펀드)이 곡물, 원자재 등 상품투자로 몰리고, 곡물가 급등에 자극받은 수출국들이 수출세를 올리거나 수출량 자체를 줄이는 등 곡물수출을 억제하고 있어 국제가격을 더 부추기는 요인이 되고 있다.

비상시 곡물수입 협력체제 구축해야

앞으로 곡물가격 상승과 애그플레이션이 어떻게 전개될 지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가격상승이 일시적인 현상이 아니라 소비가 원인이 되어 발생한 구조적인 현상이기 때문에 앞으로 수년간은 높은 수준의 가격을 유지할  것이라는 점이다.

향후 만일의 식량위기사태에 대비하여 일정량의 곡물을 식량안보용으로 추가 확보하여 비축할 필요가 있다. 중장기적으로 곡물의 안정적 확보를 위해 정부와 민간의 협력으로 국제곡물에 대한 조기경보시스템을 구축하여 세계적인 식량 수급과 가격상황을 실시간으로 점검하는 시스템을 만들 필요가 있다.

또한 중장기 대책으로 해외에서 농경지를 확보해 만일을 대비해 안전하게 수입할 수 있는 해외농업개발이 필요하다. 정부는 기본적으로 국제식량개발 차원에서 개발대상국들에 대해 농업개발협력을 강화함으로써 ‘호혜적인 계획’(win-win 전략)을 추진하되, 해당국들과 개발협력협약을 체결하여 비상시에도 수입 공급할 수 체계를 구축해야 한다.

국제곡물가격 상승에 단기적인 대응을 위해 한계지, 이모작 농지를 활용한 조사료포 조성으로 사료곡물을 일부 대체할 사료의 개발이 필요하다. 중장기적으로는 무엇보다도 축산농가와 도축가공업체와 계열화 체제를 구축하여 사료공급에서 중간비용을 절감할 필요가 있다.

흔히 식품가격 상승에 대응하기 위한 정부의 대책은 소비자들에게 직접적인 소득보조로 식품의 시장가격이 높아져도 구매할 수 있도록 하거나, 아니면 정부에서 식품가격을 직접 통제하여 가격상승을 막는 방법이 있다. 러시아에서 식품의 시장가격을 통제하고 있으나 그럴 경우 제조업체들이 원가부담이 커 생산을 줄여 시판을 줄이기 때문에 결국 소비자들의 선택이 줄어들고 시장가격을 왜곡하게 된다.

이러한 문제가 있기 때문에 현실적으로 우리 경제에서 가능한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 식료품가격 상승에 대응해 단기적인 대책으로 가격상승에 직접적인 피해와 고통을 받을 수 있는 저소득층에 대해 푸드스탬프 등 소득보조대책을 실시하여 기존과 같이 식료품을 구입할 수 있도록 배려하는 것도 한 방안이다. 또 다른 대책으로 곡물을 원재료로 가공식품을 제조하는 가공업체에 보조를 함으로써 곡물가격 상승이 식료품 가격상승으로 직접 전달되는 것으로 억제할 수 있다.

국제곡물가격 상승에 따른 식량위기 문제는 세계적인 현상으로 개별 국가 차원에서 해결책을 찾는다는 것 역시 한계가 있다. 따라서 UN 등 국제기구 차원에서 세계적인 곡물 생산 증대, 바이오연료용 곡물 사용에 대한 조정, 수입의존도가 높은 후진국과 개도국에 대한 식량원조, 곡물 수출규제나 비축 정책에 대한 국제적인 조정 노력이 필요하다.

김병률 /한국농촌경제연구원 미래정책연구실장
아시아포럼 7강
아시아의 식량위기와 대응
발제 _ 김병률/ 한국농촌경제연구원 미래정책연구실장
일시 _ 2009년 10월29일(목) 오후 4시, 경희대 네오르네상스관 105호
문의 _ 차은하 참여연대 국제연대위원회 간사 silverway@pspd.org,02-723-5051



 


 

Posted by 영기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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