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징올림픽, '안전'올림픽 되나

베이징올림픽은 녹색올림픽, 환경올림픽, 인문올림픽을 구호로 내세워 세계에 중국의 새로운 면모를 과시하고자 하였다. 그런데 최근 '안전올림픽'이 이번 올림픽의 가장 중요한 화두의 하나로 등장하고 있다. 과연 베이징올림픽이 큰 탈 없이 치러질 수 있을 것인가가 국제사회는 물론이고 중국정부에게도 가장 커다란 관심사로 되고 있다.
 
베이징올림픽이 안전 문제와 연관되기 시작한 것은 3월 티베트 지역에서 대규모시위가 발생한 이후의 일이다. 최근에는 신쟝지역에서 활동하는 독립운동조직이 테러 가능성을 위협하고 나서기도 하였다.
 
그러나 현재 중국 내에서 더욱 커다란 문제가 되고 있는 것은 연이어 발생하고 있는 민중들의 시위이다. 21세기에 들어서 집단행동은 폭발적으로 증가하여 2005년에만 7만 건이 넘게 발생한 바 있다. 지방정부의 개발을 위한 토지수용과 과도한 세부담에 대한 농민들의 저항, 노동분쟁 지속적인 증가 등이 중요한 원인이었다.
 
그런데 최근 한 달 사이에 주민들과 정부 사이의 대규모 충돌이 연이어 발생하며 올림픽을 앞둔 중국정부를 긴장에 몰아넣고 있다. 지난 6월 28일 궤이저우성의 웡안현에서 수만 명의 주민들이 지방정부청사를 공격하는 사태가 발생하였다. 7월 1일에는 상하이시에서 경찰과 시시비비를 다투던 한 시민이 경찰서를 공격하여 6명의 경찰이 사망하였다. 7월 17일 광동성 회이저우시 보뤄현에서도 대규모 시위가 경찰과의 충돌로 발전하였다. 그리고 7월 19일 위난성 멍렌현에서 수백명이 참가한 격렬한 시위에 경찰이 발포하여 2명이 사망하였고, 21일에는 위난성의 쿤밍시에서 테러로 추정되는 버스 폭발사고로 3명이 사망하였다.
 
이러한 사태가 발생한 이유는 모두 다르지만 많은 경우 이미 존재하고 있던 사회적 불만들이 경찰과 공권력의 부당한 처사를 계기로 촉발되었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7월 1일 사건의 경우 5명의 경찰이 사망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여론에서는 경찰의 불법적, 혹은 부당한 저치들에 대한 비판적 목소리도 매우 높다. 이러한 현상들은 중국에서 정부와 시민들 사이에 얼마나 큰 긴장관계가 존재하며 사회적 불만이 얼마나 넓게 확산되어 있는가를 잘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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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과연 베이징올림픽이 큰 탈 없이 치러질 수 있을 것인가가 국제사회는 물론이고 중국정부에게도 가장 커다란 관심사로 되고 있다. 전세계 누리꾼들은 티베트 사태 등과 관련해 올림픽을 치르는 중국 정부를 비판하는 글과 이미지를 제작해 공유하고 있다. ⓒ프레시안 

그런데 우리는 중국에서 이처럼 사회적 불만이 확산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중국이 정치적으로 매우 안정되어있는 역설적 현상을 목격할 수 있다. 즉 현재 중국에서는 민주화를 요구하는 지식인들의 운동과 중국공산당 사이의 갈등, 그리고 최고지도부 내의 권력갈등 등 정치적 안정을 직접적으로 위협하는 요인들이 찾아보기는 힘들다. 정치적 안정과 사회적 불안이 기묘하게 동거하고 있는 상황이다. 중국의 정치사회적 상황은 '거시적 안정, 미시적 불안'이라고 요약할 수 있다. 정치적·이념적 측면에서는 갈등이 억제되고 안정적 국면으로 유지하고 있으나 인민들의 생활과 직접적으로 관련이 있는 문제들을 둘러싼 사회적 갈등과 분쟁은 계속 증가하고 있다.
 
이러한 기묘한 공존은 어떻게 가능한 것인가? 사회적 불안, 특히 일반 민중들의 불만을 정치적 도전으로 발전하지 않도록 하는 중국공산당의 통치전략이 지금까지 주효하고 있다는 점을 가장 중요한 원인으로 지적할 수 있다. 중국의 지도부는 과도기적 발전단계에서 사회적 불안요인들을 단기간 내 없애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생각하고 있으며 당면한 상황에서 가장 역점을 두는 것은 미시적 불안 요인들에 대한 관리를 강화하며 이러한 불안요인이 거시적 차원의 불안과 혼란으로 이어지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이를 위한 핵심정책으로는 다음과 같은 것을 들 수 있다.
 
첫째, 안정적인 경제성장이다. 개혁개방 이후 중국공산당은 사회주의 이념의 통합력이 약화됨에 따라 통치정당성을 경제적 실적에 의존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 그런데 중국은 현 지도부가 출범한 2003년 이후 다시 고도성장 국면에 진입하면서 정치·사회적 문제를 다루는 데 비교적 유리한 경제적 환경을 확보할 수 있었다.
 
둘째, 시장경제로의 전환과정에서 빈부격차의 증가와 사회적 갈등이라는 새로운 문제가 발생하고 있는데 현 지도부는 '인민본위(以人爲本)'과 '조화사회(和諧社會)를 새로운 정치이념으로 내세우며 중국공산당이 다수 인민의 이익을 대표한다는 것에 대한 신뢰를 확보하기 노력하였다. 물론 이러한 전환이 모든 경제, 사회정책에 전면적으로 반영될 수는 없었지만 상징성이 높은 몇 가지 사회정책을 통해 그 효과를 극대화시켰다. 2004년에 결정된 농업세의 점진적 축소 및 폐지 정책이 대표적 사례이다.
 
셋째, 통치방식의 변화이다. 중국공산당과 중앙정부의 신뢰를 제고하기 위해 지도부들의 국민들의 삶의 현장에 밀착하는 이미지를 강화하고, 국민적 관심이 모아진 주요 돌발사건에 대해 신속하고 직접적인 개입을 시도하였다. 후진타오, 원자바오는 최고지도부로 선출된 직후부터 빈곤지역에 대한 현지시찰을 활발하게 진행하였다. 이를 통해 중국의 최고지도부들은 여러 사회적 문제에 대응하는 과정에서 이러한 문제에 직접적인 책임이 있는 지방정부의 독직과 잘못된 정책결정으로부터 자신들의 권위와 위신을 보호하는 효과를 낳고 있다. 웡안현에서 대규모 시위가 발생한 이후에도 원앙현의 당서기 등이 파면시키는 것을 통해 지방주민들의 불만을 가라앉히고자 하였다.
 
그러면 이러한 정책들은 언제까지 효과를 발휘하고 정치적 안정을 유지할 수 있을 것인가? 베이징올림픽이 이러한 의문에 대해서 직접적인 답을 해주지는 못할 것이다. 광범위하게 존재하는 사회적 불만과 갈등은 구조적 문제와 연관된 것이고 그 해결에는 오랜 시간이 필요하다. 그러나 베이징올림픽이 중국정부가 기대하는 것처럼 중화민족의 단결과 국제사회에서 중국의 지위 향상을 과시하는 것만이 아니라 그 이면에 존재하는 그림자까지 잘 보여주는 계기가 되고 있는 것은 확실하다.
 
중국의 변화가 가지고 있는 이러한 양면적 측면은 당분간은 피하기 힘든 현실로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문제는 이러한 현실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미래로 나아가는가에 있다. 외부에서는 중국에 존재하는 그림자들을 쉽게 없앨 수 있다는 성급한 기대보다는 인내심을 가지고 중국의 변화를 지켜볼 필요가 있다. 그러나 중국정부도 자신이 직면하고 있는 사회적 현실에 대해 근본적인 대책이 필요하다는 것을 분명하게 인식하고 대응하고 있다는 점에 대해서 중국 내의 민중들과 국제사회의 신뢰를 얻기 위해 더욱 많은 노력을 기울일 필요가 있다.
 

이남주(성공회대 중국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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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시위 사수, 인도네시아에서는? 

이명박 정부와 촛불집회의 팽팽한 대결이 장기간 지속되는 가운데 폭력에 관한 논란이 제기되고 있다. 그렇지만 내가 학습대상으로 삼는 인도네시아의 실상에 비추어보면 한국의 시위대는 놀라울 정도로 평화를 지켜내는 강력한 힘을 지니고 있다. 인도네시아에서는 사람들이 대규모로 결집한 곳에서 폭력행동이 발생하는 경우가 빈번하다. 시위현장 뿐만 아니라 경기장에서도 마찬가지이다. 그래서 인도네시아 친구들은 한국에서 대규모 집회나 축구 응원이 평화적으로 전개되는데 대하여 놀라움을 표하곤 한다.
 
인도네시아에서는 외환위기로 물가가 폭등하자 이에 항의하는 집단행동이 곳곳에서 발생했는데 그 규모가 커지자 약탈, 방화, 강간이나 살인이 수반하는 극단적 폭력사태로 번져나갔다. 민주정부가 들어선 뒤에는 각지에서 종족간의 균열이 인명과 재산을 앗아가는 수평적인 집단폭력이 발화했다. 마을 사람들이 도둑을 잡아 집단적으로 뭇매를 때리거나 불태워 죽이는 일도 허다하게 발생하였다. 임금인상을 요구하는 노동자들이 건물과 승용차를 파괴하는 경우도 많았다. 그래서 인도네시아에서는 군중과 폭력이 근친의 관계로 간주되고, 상류층은 물론이고 중산층까지도 대체로 군중동원에 대한 공포를 지니고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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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도네시아의 실상에 비추어보면 한국의 시위대는 놀라울 정도로 평화를 지켜내는 강력한 힘을 지니고 있다. ⓒ프레시안 




인도네시아에서 발생하는 대중폭력은 여러 가지로 설명된다. 우선 가장 오래된 설명은 말레이계의 종족적 특성이 원래 그렇다는 것이다. 현지어 "아묵"(amuk)이라는 말은 정신을 잃을 정도의 발작상태를 가리키는 말인데 유럽식민주의자들이 이 단어를 영어사전에 올리면서 국제어가 되었다. 현지인들이 아묵 상태에서 행하는 폭력행동을 유럽인들이 열대의 이국적인 현상으로 받아들였음을 짐작하게 해준다. 현지인들의 아묵은 평소의 인내심과 아주 대조적이었기 때문에 더욱 인상적으로 보였던 것 같다. 6백여 년 전에 인도네시아 자바의 스마랑(Semarang)에 원정을 왔던 명나라 쩡허(鄭和)의 사관도 현지인들의 높은 인내심과 강한 폭력성을 모순적 현상으로 특이하게 보아 각별히 기록해두었다고 한다. 높은 인내심과 강한 폭력성은 모순처럼 보이지만 평소에 너무 참기 때문에 폭발적으로 의사표현을 한다는 식으로 인내와 폭력을 연결시켜 해석하는 이들도 있다. 다른 한편에 군중폭력을 체제 탓으로 돌리는 해석들도 있다. 돌발적인 폭력을 통해 요구를 표출하는 행동은 장기간 지속된 폭압적인 체제에서 온건한 의사표출의 자유도 주어지지 않았고, 폭력적인 해법을 일삼는 체제로부터 폭력적인 해법만 전수받았기 때문에 발생한다는 것이다.
 
근자에 유력한 가설은 아묵 현상을 유발하려는 음모와 책동이 있다는 설이다. 시위현장에서 시위대의 일원처럼 행세하면서 폭력을 남보다 앞서 행사하는 외부인이 존재한다는 것인데 그들은 주로 "선동가"를 뜻하는 외래어를 차용한 "쁘로보까또르"(provokator)라는 용어로 지칭된다. 이를테면 1998년 5월에 벌어진 일련의 폭력사태들은 머리카락이 짧고 건장한 체격의 낯선 사람들이 시위대 속에서 먼저 폭력을 행사하면서 집단폭력이 시작되었다는 증언들이 나오고 이들이 특전대 소속이었을 것이라는 구체적인 음모설이 제기된 바 있다. 지방에서 벌어진 종족분쟁들도 작은 시비와 다툼에서 시작되었는데 그 역시 외부인의 소행이고 신생민주정부의 개혁을 방해하려는 구체제 지지자들이 배후에 있다는 음모론이 나돌았다. 노동자들의 가두시위에서도 마찬가지 음모설이 작동하는데, 지방정부나 지방의회에 찾아가서 최저임금을 올려달라고 대규모로 시위를 벌이면 작업복을 입은 낯선 이들이 나타나 폭력행동을 선동하면서 기물을 앞서서 파괴하곤 한다고 노동조합 간부들이 주장하였고, 지방관구사령부가 관할 지역의 주요 회사들의 작업복을 골고루 보관하고 있다는 구체적인 주장도 들어본 바 있다.
 
어떠한 이유에서건 시위가 심각한 폭력을 동반하면 경찰이 폭력적으로 진압하고 언론은 '폭동'이라고 보도하고 시위지도부를 구속하는 '3박자' 대응이 이어지게 된다. 더 심각한 것은 규모가 큰 군중결집을 두려워하고 보통 사람들의 집단적 의사표현을 신뢰하지 않는 수평적인 공포와 불신을 일반인들이 갖게 되고 국민들이 직접행동을 통해 스스로 문제를 제기하는 것보다 강력한 국가와 군부가 질서를 잡아줄 것을 기대하는 공권력 의존성이 사람들의 뇌리에 자리 잡는다는 것이다.
 
따라서 군중폭력은 인도네시아에서 사회운동을 전개하는 이들에게는 각별한 고민꺼리일 수밖에 없다. 사정이 이러하니 인도네시아의 사회단체들은 꼭 필요한 경우가 아니라면 대규모 시위를 기획하지 않는다. 참 안타까운 현실이다. 그러나 대규모 시위가 불가피하다면 자율검색을 시행하거나 안전요원을 배치하는 해법을 취한다. 자율검색의 대표적인 예가 1998년 5월에 수하르토를 끌어내린 국회의사당 시위로서 대학생들이 의회정문에서 수상한 이들의 진입을 막은 경우였다. 그런데 노동자와 빈민들의 진입을 막은 경우를 들어 자율검색이 대학생들의 우월감과 군중공포를 드러낸 비연대적 행동으로 비판받기도 했다. 반면에 시위대 중에 일부가 안전을 관리하는 임무를 띠는 자율적 안전관리는 바람직한 것으로 여겨져 일반적으로 수행되고 있다. 또 하나의 지혜는 즐겁게 시위하는 것이다. 특이한 분장, 보디페인팅, 퍼포먼스가 시위의 중요한 구성요소가 되고 사진기자들의 집중조명을 받곤 한다. 국제노동절시위도 지방 단위에서 공연, 경연, 집단놀이 등을 통해 카니발 형식으로 전개되곤 한다. 자율적인 안전관리나 집단놀이형 시위는 우리보다 인도네시아가 '선배'일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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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또 하나의 지혜는 즐겁게 시위하는 것이다. 특이한 분장, 보디페인팅, 퍼포먼스가 시위의 중요한 구성요소가 되고 사진기자들의 집중조명을 받곤 한다." ⓒ프레시안 



인도네시아에서 집단의사의 평화적 표현을 위한 노력은 운동권만의 일은 아니었다. 1999년 6월에 44년만의 자유총선거를 앞두고 인도네시아의 한 일간지는 동부 자바의 수라바야(Surabaya)시가 폭동이 가장 강력하게 발생할 만한 화약고로 지목하였다. 그런데 의외로 사소한 시비만 있었을 뿐 폭동이 발생하지 않았다. 그 이유는 새로운 사회에 대한 희망과 자긍심이 가득한 시민들 덕분이었던 것으로 해석된다. 당시 인도네시아의 민주화를 기억하는 이들이라면 민주사회에 대한 기대로 집단폭력이 자제되었을 것이라는 해석을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고, 자긍심에 대해서는 약간의 부연이 필요할 것이다. 수라바야는 2차대전 종전이후 승전국으로 복귀하는 서양식민주의 세력을 목숨을 걸고 격퇴한 역사적인 도시라서 '영웅의 도시'로 불리어왔으며 시민들도 직선적이지만 자존심이 강한 특성을 지니고 있다고 알려져 있다. 그래서 이 자긍심 강한 시민들이 집단폭력으로 도시가 상처받는 일을 막아냈을 것이라는 해석이 가능하다.
 
1998년 5월로 다시 돌아간다면, 평화적인 대중시위의 선명한 사례를 찾아볼 수 있다. 전국이 폭동으로 얼룩질 때, 족자카르타(Yogyakarta)시에서도 역사상 최대의 시민이 참여하는 시위가 벌어졌지만 군중폭력은 발생하지 않았다. 수하르토의 하야를 요구하는 시민들 앞에 족자카르타의 술탄이 나타나서 시민의 뜻을 대통령에게 전달하겠다고 약속하고 시위대와 함께 행진을 하였다. 전통적 종교적 권위를 지닌 술탄이 책임을 지고 사태를 해결하겠다고 약속하였기 때문에 시민들은 평화적으로 시위를 전개했던 것이다. 그리고 다음날 수하르토가 물러났다.
 
지금까지의 이야기는 촛불시위를 보면서 연상된 인도네시아의 집단시위 풍경이었다. 이런 이야기가 팽팽한 대결 국면 속에서 지친 우리 시민들에게 잠시 호흡을 가다듬는 기회가 되었기를 바란다. 한국에 대한 함의 따위는 함부로 이야기하지 않고 독자들의 몫으로 남긴다. 다만 인도네시아의 대중시위 현장에서는 전투성을 증대시키는 능력보다 평화를 지켜내는 능력이 더 결정적인 관건이고 평화시위를 사수하기 위한 다양한 노력이 더 많은 시민들이 참여하는 대규모 시위를 성사시키는데 기여할 것이라는 소견으로 글을 마치고자 한다.  
   
 

   전제성(전북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Posted by 영기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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