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이상 한국의 민주화와 인권만 얘기할 순 없다
지난 2월 23일 아시아에서 개최되는 많은 국제 회의중 유일하게 아시아 애드버커시(advocacy) 활동가들이 조직해서 만든 모임인 Solidarity For Asian People's Adcocacy(이하 SAPA)에 참석했다. 2008년 참여연대 국제연대위원회는 아시아에서 벌어지는 초국가적인 이슈를 국내에 소개하고 티베트의 평화 및 버마 민주화를 위한 연대 활동을 했다. 그러나 동남아시아와 한국의 지리적 거리만큼, 뜨거웠던 한국의 촛불 거리에서 아시아는 아직 먼 나라 이야기였다. 아시아 활동가들을 만난다면 그 거리감을 좁힐 방법들을 찾을 수 있을까? 한국 사회에서 아시아 시민사회의 연대활동을 직접적으로 접하기는 쉽지 않은지라 기대감을 가지고 방콕행 비행기에 올랐다.
SAPA 는 2006년 인도네시아, 필리핀, 태국 등 30개의 동남아시아 시민사회·인권 애드버커시 활동가들을 중심으로 결성되었다. 당시 동남아시아는 아세안(ASEAN)을 중심으로 국가간 협력과 교류가 확대되어 가는 시기였다. 이러한 정부간 교류가 활발해지자 아세안 가입 국가들의 시민사회들은 더욱 활발한 연대와 협력을 모색하게 되었다. 따라서 아세안지역 인권, 노동, 평화, 이주노동 분야에서 애드버커시 활동을 하는 활동가들은 자발적으로 모여 정보를 교류하면서 스스로의 역량을 키우는 자리로 네트워크를 활용했다.
현재 SAPA는 동북아시아를 포함해 아시아지역 60여개 비정부기구(NGO)의 100여 명의 시민사회 활동가들로 구성된 가장 큰 아시아 시민활동가 네트워크로 성장했다. 올해 3회를 맞는 SAPA는 아시아 각국의 지역 이슈를 논의하고 공동의 의제와 애드버커시 전략을 모색하는 단계에 있다. 내가 참석한 이번 모임은 SAPA의 회원단체 뿐만 아니라 아시아 시민사회활동가들에게 열린 자리로서 2009년 SAPA가 다룰 의제와 전략을 논하는 자리였다.
최근 아세안 시민사회의 핫이슈는 아세안에 인권 기구(Human Right Body)를 신설하는 것이다. 인권기구 설립은 2007년 아세안 헌장에 언급되어 있고 아세안 국가간에도 설립 의지를 보이고 있다. 이 과정에 시민사회는 인권기구 설립을 위해 아세안의 논의 과정에 활발하게 참여하고 있다. SAPA의 아세안(ASEAN)과 남아시아(South Asia) 워킹그룹은 아세안 시민사회의 목소리를 담아내는 큰 축으로 활동하고 있었다. 이들은 아세안에 시민사회의 공동의 개입전략을 찾고자 열띤 논쟁이 펼쳤다.
반면, 몽골, 중국, 한국, 일본, 대만으로 구성된 동북아시아 워킹그룹(Working Group on North East Asia)은 각 시민사회의 공동의 의제를 찾는 것부터 논의가 시작됐다. 동북아시아 시민단체의 경우는 아세안과는 달리 SAPA 모임에 참여하는 NGO 단체도 적었을 뿐만 아니라 네트워크도 거의 전무한 상태였다. 올해는 약 10개의 시민단체가 모여 각 나라별 주요 이슈를 소개했다. 한국은 최근 표현의 자유 침해, 자유무역협정(FTA) 등 통상 무역문제를 제기하고 몽골은 황사와 같은 환경 문제와 여성의 인권 침해 문제를 논했다. 중국은 이주노동자들의 문제를 주요하게 제기했으며 표현의 자유 침해 문제에 대한 인식은 적어 보이기까지 했다.
몽골과 중국은 이주민을 송출하는 국가이고 일본과 한국은 이주민을 주로 수입하는 국가이기 때문에 이주민 문제를 접근하는 방향이 달라 공통점을 찾기 어려웠다. 그러나 논의가 진전될수록 서로의 문제를 발견하고 문제간의 연결 고리를 파악해 가는 시간이었다. 동북아시아 시민사회의 연대 활동은 서로의 다른 역사적, 사회적, 경제적, 문화적 배경을 이해하고 정보를 교류하는 것부터 시작되어야 하는 때라고 여겨졌다.
아시아 시민사회의 역량을 강화하기 위해 SAPA는 효율적인 애드버커시 활동전략을 공유한다. 올해는 유엔 애드버커시 활동을 주요한 전략으로 소개했다. 대부분 독재정권의 성격이 강한 아세안 국가들은 국가인권위원회가 있어도 재기능을 하지 못하는 것이 다반사이다. 아세안도 각 회원 국가간의 정치적 이해관계에 따라 운영이 되다보니 아세안 시민사회가 인권과 민주화를 위한 활동을 국내에서 하기에는 운신의 폭이 매우 좁다. 이러한 현실에서 대부분의 아세안 인권 활동가들은 유엔과 같은 국제기구를 활용하여 애드버커시 활동을 하거나 서방세계의 국제 인권단체들의 지지를 받아 자국의 변화를 꾀하는 우회적 방법을 쓰고 있다. 반면 한국은 1987년 민주화를 국내에서 이룬 경험을 가지고 있어서 시민·사회운동의 역량이 강한 편으로 재정과 역량이 많이 투여되는 국제 애드버커시 활동은 상대적으로 소홀히해왔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러한 면에서 서방세계의 물적, 인적지원을 쉽게 받을 수 있는 아세안 지역이 한국보다는 국제연대를 하는 토대가 훨씬 풍부하고 다양했다.
한국의 인권 현실이 한해가 다르게 후퇴되어 감을 개탄하고 있지만 SAPA의 논의를 살펴보면 한국이 더 이상 한국의 민주화와 인권만을 이야기할 위치가 아니라는 것을 실감하게 된다. 아세안 시민사회는 한국의 이주민 정책방향이 각 송출국인 아시아 국가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한국 시민사회의 활동을 주시하고 있었다. 또한 내재적으로 민주화를 이룬 한국의 시민사회진영이 성공적으로 수행해 왔던 성과들을 그들과 논하고 아시아 시민사회의 담론과 역량을 넓히는데 적극적으로 참여할 것을 기대했다.
한국 정부도 속내는 다를지라도 '국제사회 기여외교'를 이야기 하는데 시민사회 진영은 현실적으로 어느 지점에 서있는지 짚어보게 된다. 한국 시민사회 내부에서 아시아의 인권과 민주화, 아시아 담론과 전략을 얼마나 구체적으로 논하고 있는지. 아시아 지역차원에서 한국 시민사회의 역할을 얼마나 심도 있게 고민했는지, 오히려 아시아에 대한 관심과 이해가 답보상태에 있었던 것은 아닌지. 현실적인 한계라는 핑계로 아시아연대 활동을 소홀하지는 않았는지 여러 질문이 떠오른다. 최소한 활동가인 내가 어느 정도 애정을 가지고 아시아에 관심을 가지고 있었는지 스스로에게 묻는 시간이었다.
참여연대와 경희대 인류사회재건연구원은 오는 26일부터 11월까지 매달 1회, 총 8회에 걸쳐 아시아인의 생존과 삶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초국가적 문제를 논하는 '아시아 포럼'을 개최한다.
인간 안보, 해양 테러리즘, 난민, 탈북 여성, 에너지, 식량 위기 등 다양한 문제가 논의될 예정이며, 이번 행사를 후원하는 <프레시안>과 참여연대 홈페이지를 통해 발제문이 소개된다.
포럼의 구체적인 일정은 다음과 같다.
2009년 연속기획 아시아 포럼 <국경, 아시아, 시민사회>
1회: 초국가적 인간 안보 문제와 아시아
발제: 이재현 참여연대 국제연대위원회 실행위원
일시: 2009년 3월 26일(목) 오후 4시 30분, 경희대학교 본관 2층 대회의실
2회: 아시아 해양 영유권 문제와 시민사회의 대응
1부: 아시아 해양 도서영유권 분쟁과 시민사회의 과제
발제: 강성호 경희대학교 인류사회재건연구원 객원연구원
2부: 해적과 해양 테러리즘
발제: 라미경 순천향대 사회과학연구소 연구교수
일시: 2009년 4월 16일(목) 오후 4시, 경희대학교 본관 2층 대회의실
3회: 태국 국경거주 버마 난민들의 적응양상과 과제
발제: 이상국 서강대학교 동아연구소 연구교수
일시: 2009년 5월 7일(금) 오후 4시, 서울 COEX
4회 : 탈북여성의 제3국 체류현황 및 과제
발제: 이금순 통일연구원 북한인권연구센터 선임연구위원
일시: 2009년 6월 11일(목) 오후 4시, 경희대학교 본관 2층 대회의실
5회: 이주아동의 인권현황과 시민사회의 과제
발제: 김성천 중앙대학교 아동복지학과 교수
일시: 2009년 7월 9일(목) 오후 4시, 경희대학교 본관 2층 대회의실
6회: 에너지 위기와 시민사회의 과제
발제: 전가림 호서대학교 교양학부 교수
일시: 2009년 9월 17일(목) 오후 4시, 경희대학교 본관 2층 대회의실
7회: 아시아의 식량위기와 대응
발제: 김병률 한국농촌경제연구원 미래정책연구실장
일시: 2009년 10월22일(목) 오후 4시, 경희대학교 본관 2층 대회의실
종합토론: 아시아 국경지대에서 발생하는 문제와 한국시민사회의 연대
일시: 2008년 11월 19일(목) 오후 4시, 경희대학교 본관 2층 대회의실
문의: 참여연대 국제연대위원회(02-723-5051)
silverway@pspd.org
blog.peoplepower21.org/internation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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