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조지 W. 부시의 연두교서
지난주 한국에 방문한 미국 국무차관 존 볼트는 8월 29일 이라크, 이란과 함께 북한을 '악의 축'으로 거듭 지목하며, "이것은 수사학이 아니라 사실"이라면서 "북한은 주민들을 굶기면서 대량살상무기를 만들어 팔고 있다"고 강조하였습니다. 부시의 연두교서에 나타난 입장이 계속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대목입니다. 부시는 올해 연두교서에서 '악의 축' 국가들을 지목하면서, 그 근거로 대량살상무기의 제조와 수출을 제시하였습니다. 이들 국가가 국민을 억압하고 희생시키면서 대량살상무기에 집착하고 있고, 이러한 무기들이 테러리스트에게 제공될 수 있기 때문에 이러한 나라들이 세계 평화를 위협하는 '악의 축'을 형성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부시 행정부는 이러한 기조 속에서 '테러리스트 척결'과 그 지원국들의 대량살상무기 생산에 대해 선제공격 가능성을 지속적으로 언급하였고, 또한 이러한 '악의 축'의 공격에 대비하기 위해 미사일 방어망 구축 의지를 표명해왔습니다('악의 축' 표현은 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이탈리아-일본의 동맹을 지칭한 것에서 유래합니다).
진정 위협을 하는 자는 누구인가?
냉전체제의 해체는 미국에게 유일 강대국으로서의 입지를 가져오게 되었지만 그 경쟁상대의 상실로 인하여 정치적 방해물의 공백을 가져왔습니다 이러한 딜레마를 제거하기 위해 결국 중국을 '잠재적인 위험국가'로 상정하였고, 이른바 '깡패국가'들을 지목하여 그들의 위협성을 제기하였습니다. 여기에는 미국의 소위 '인권외교'도 가세하는데, 민주주의와 인권의 측면에서 많은 문제를 가지고 있는 이러한 국가들에 대해 자국민을 희생하면서 무기를 개발한다는 논리로 그들 국가에 대한 정치적 압박과 쿠바의 경우처럼 각종 제재조치를 정당화시키고자 합니다. 미국의 세계질서 재편의 움직임은 9.11테러로 뜻하지 않게 힘을 얻게 되었습니다. 이미 클린턴 행정부시절부터 보이기 시작한 미국의 패권강화를 위한 군사력 증강계획은 9.11테러 이후 거침없이 진행되고 있습니다(우리는 부시 행정부의 군사주의 노선 강화에 대해 뉴스레터 4호에서 살펴본바 있습니다).
이러한 미국의 논리를 다른 각도에서 보면 얘기는 전혀 달라집니다.
탈냉전 이후 이와 같은 미국의 위협은 많은 국가들로 하여금 자신의 안보를 심각하게 고려하게 만들었습니다. 반미성향이 강했던 국가들은 스스로를 지키기 위한 자구책이 필요하였으며, 안보문제가 대두되었습니다. 이러한 분위기는 군사력 강화를 추구하는 계기였고, 가장 효과적인 대량살상무기의 개발이 제기되는 배경입니다. 미국이 지목한 이란과 이라크는 어떤 국가입니까? 과거 중동지역에 자신의 헤게모니를 관철시키기 위해 이들 국가를 지원한 것은 바로 미국입니다. 중동지역의 석유자원을 둘러싸고 자신의 패권을 유지하려는 미국과 민족주의를 내세운 아랍권간의 갈등은 생존을 위한(정치, 군사적인 면과 함께 무기수출로 벌어들이는 경제적 효과를 포함하여) 무장에 다름아닌 것입니다.
북한의 경우 역시 다르지 않습니다. 북한의 핵무기 개발시도와 미사일 운반체계 개발은 한국전에서 B-29에 의한 원자탄 투하훈련이 확인되었고, 1992년 비핵화 선언까지 주한미군이 보유했던 전술핵, 그리고 한미합동 훈련의 시나리오에 포함되었던 핵무기 사용에 대한 대응이라고 봐야할 것입니다.
미국의 북한에 대한 불신과 일방주의 : 2003년 한반도가 위험하다?
부시 행정부는 지속적으로 북한과 "조건없는 대화"에 응한다고 하였지만, 그것은 외교적 수사에 불과한 것 같습니다. 작년 김대중 대통령의 방미 당시 부시가 북한에 대해 "북한과는 말할 것이 없다"고 한 발언이나, "믿지 못할 사람"이라는 표현을 보면, 북한을 대화상대로 고려하고 있지 않고 있습니다. 부시 행정부의 외교안보팀이 북한에 대하여 강한 불신과 무시의 입장에서 비롯되는 더욱 심각한 문제는 현재 이라크 침공 이후, 다음 타켓이 북한이 될 가능성이 크다는 '2003년 한반도 위기설'이 제기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2003년 한반도 위기설'은 부시 행정부의 외교안보팀이 북한에 대해 강한 불신을 가지고 있으며, 미국의 일방주의적, 군사주의적 노선이 강화되고 있는 시점에서 현재 북-미간 갈등을 빗고 있는 문제들에 대하여 미국이 북한과 협상을 통해 해결하기보다는 직접적인 행동에 나설 수 있다는 점을 경고한 것입니다. 구체적으로 2003년은 예정대로라면, 지난 1994년 전쟁직전까지 갔었던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북한 핵사찰이 경수로 완성 이후 재실시되는 시점이고(제네바 협상이 충실히 이행된다면), 지난 1998년 북한의 미사일 발사 실험에 따른 협상으로 북한이 2003년까지 미사일 발사실험을 유예하기로 합의했던 시점입니다. 더욱이 '악의 축' 발언 이후 부시 행정부의 외교안보팀이 제기한 북한의 생화학무기에 대한 의혹과 대량살상무기에 대한 추가적인 사찰 요구가 있어 이러한 문제들을 북-미간, 혹은 한반도를 둘러싼 주변국들이 어떤 해법을 가지는가에 따라 매우 상이한 결과를 초래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핵사찰과 제네바 협상문제
지난 1994년 제네바 협상을 통하여 북한은 핵과 관련한 모든 활동을 중단하고, 핵무기 의혹지역에 대한 사찰을 수용하였습니다. 미국은 북한에 대한 경제 제재조치를 해제하고, 북한의 석유난 해소와 경수로 건립을 합의하였습니다. 이에 따라 2003년까지 경수로를 완성하고, 경수로 관련 핵심 부품을 인도받기 전에 북한의 과거 핵활동에 대한 사찰을 실시하기로 하였습니다. 그러나 현재 부시 행정부는 경제 제재조치를 아직도 완화하지 않고 있으며, 케도(KEDO)를 통한 1차 경수로 완성도 이행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시 행정부는 북한이 제네바 합의 이전에 1-2개의 핵무기를 만들 수 있는 플루토늄을 보유한 것으로 의심하면서, 경수로 완성 이전에 조기 사찰을 주장하고 있습니다. 북한은 이에 대하여 경수로 완공의 지연에 따른 전력난 보상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이와 관련하여 지난주 한국을 방문했던 존 볼트 미 국무부차관은 "북한이 제네바 합의의 즉각적인 이행에 돌입하지 않을 경우 제네바 합의의 미래는 심각한 우려에 빠질 것"이라며, 특히 "북한이 핵사찰을 수용하는 대신에, 미국은 북한이 요구하는 전력 손실 보상을 할 의사가 있느냐"는 질문에, "경수로 사업이 지연된 것은 전적으로 북한의 책임이기 때문에 전력보상을 할 이유가 없다"고 답변했습니다. 또한 "북한의 과거와 현재 핵활동을 효과적으로 밝힐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사찰이 이뤄질 때까지, 경수로 핵심부품은 인도되지 않을 것"이라며, 북한이 핵사찰을 수용하지 않으면 경수로 사업을 중단할 수 있음을 분명히 했습니다. 이처럼 미국은 제네바 합의 사항에 대해 스스로 이행을 다하지 않고, 심지어 제네바 합의수준을 넘어서는 요구를 관철하고자 하고 있습니다.
▲ 미사일 관련 문제
다음으로, 1998년 대포통 1호를 발사했던 북한은 미국과의 협상을 통해 미사일발사 실험을 2003년까지 중지하고, 만약 미국이 상응하는 조치를 취한다면 북한이 미사일 프로그램을 포기할 의사가 있음을 분명히 하였습니다. 클린턴 행정부 마지막에 거의 합의에 이르렀던 이 문제들은 부시 행정부의 출범으로 전면 백지화되었습니다. 현재 북한은 미사일 발사실험을 계속 실시하지 않고 있고, 중단거리 미사일 프로그램 포기 의사를 거듭 천명했음에도 불구하고, 부시 행정부는 이에 대해 미온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습니다. 이것은 바로 부시 행정부가 추구하는 미사일 방어체제(MD)에 불리하기 때문입니다.
미사일 방어체제는 상대의 미사일 위협을 전제로 하고 있는데, 북한이 이를 포기할 경우 한반도를 포함한 태평양 지역에서 미사일 방어체제가 구축되어야할 설득력이 약해지기 때문입니다. 부시 행정부가 미사일 방어체제 구축의 명분을 잃지 않기 위해 북한 미사일 문제 해결에 미온적이라는 비판도 이러한 이유 때문입니다(물론 미국의 입장에서는 '잠재적 위험국가'로서 중국이 있는 한 미사일 방어체제 구축은 추진될 것입니다). 이러한 미국의 입장에 대하여 북한은 미국이 계속 미사일 방어체제 구축을 위해 미사일 협상에 나서지 않을 경우, 미사일 개발을 비롯한 자위적인 조치에 나설 것임을 경고하고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미사일 수출과 관련해서 부시 행정부는 북한이 계속 중동, 북아프리카, 남아시아 등에 미사일 수출을 해오고 있다고 주장하면서, 이것이 북한을 '악의 축'으로 규정한 가장 큰 이유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기본적으로 북한의 미사일 수출은 극심한 경제난을 완화하기 위한 '외화벌이용'이라 할 수 있습니다. 더욱이 북한은 미사일기술통제체제(MTCR)를 가입하지 않았기 때문에, 주권의 문제이며 북한의 미사일 수출을 법적으로 막을 수 있는 근거는 없습니다. 이것은 미사일 발사실험 유예와 마찬가지로 북한은 '적절한 보상'(식량, 전력 등)만 이뤄질 경우 미사일 수출을 기꺼이 포기할 의사가 있다고 거듭 밝혀오고 있습니다.
미국이 제기하는 '악의 축' 북한이 갖는 위협은 미 언론의 표현을 빌자면 '으르렁대는 생쥐'일 뿐입니다. 그들이 요구하는 것은 테러나 공산주의가 아니라 자국의 '생존'일 뿐입니다. 하지만 북한 문제에 대해 미국은 매우 고압적인 자세를 취하고 있습니다. 즉 '아쉬운 사람이 기어라'라는 것입니다.
'2003년 한반도 위기설'이 '기우'로 끝날 수도 있겠지만, 그 위험의 징후들은 점점 더해가는 것 같습니다. 이러한 점에서 한국정부의 중재역할이 매우 중요할 것입니다. 올해 한국정부가 보여준 미국 외교정책에 대한 오판과 허둥지둥했던 모습들은 결코 한반도 평화에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정확한 인식을 바탕으로 체계적이고 신속한 대응이 필요할 때입니다. 더욱이 현시점에서 미국 일변도의 외교는 한반도에 돌이킬 수 없는 재앙을 초래할 수 있다는 것을 간과해서는 안될 것입니다. 다각적인 노력 속에서 미국의 일방주의 외교를 견제할 수 있는 지혜도 필요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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