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금으로 '선심성 뚜쟁이'가 된 지자체



얼마 전 지자체 농어민 국제결혼 지원 사업이 화제의 뉴스가 되고 이를 놓고 갑론을박이 벌어진 바 있다. 찬반의 논리 이전에 이런 사업이 실시되고 있다는 것을 까맣게 몰랐던 필자는 일단 그 규모와 확산 범위에 먼저 놀랐다.

올 5월 현재 3개 광역시도(경남, 경북, 제주)와 전국 60여개의 기초자치단체에서 이 사업을 시행하고 있다. 전국 지자체의 1/4에 해당하는 수다. 신문 보도에 의하면 경남(95%)과 경북(83%)에서는 대다수의 기초자치단체가 이 사업을 시행하고 있다. 예산의 규모도 2007년 약 25억 5천만 원이 책정되어 지자체 마다 다르지만, 1인당 500여만 원의 지원을 받아 국제결혼 업체를 통해 신붓감을 찾고 있다.

혹자는 이 제도가 우리나라 농촌이 안고 있는 문제를 해결해줄 수 있는 제도라고 하며 이에 반대하는 사람들을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태도를 취한다. 또 다른 사람들은 엉뚱하게도 외국의 신부들이 들어오면 한국사회가 그 만큼 다양해지고 다문화 사회가 되지 않겠는가, 그러니 오히려 장려해야 한다는 주장도 한다. 필자는 분명히 이것이 장려할만한 사업은 아니라 생각한다.

중앙정부는 왜 입다물고 있는가

물론 외국의 신부들(혹은 신랑들)이 한국사회로 들어오는 것은 폐쇄적이고 타문화에 배타적인 한국사회를 바꾸는데 큰 도움이 될지 모른다. 하지만, 이런 유입이 자발적이지 않고, 중계를 통한 것이라면 장려하기에는 좀 쑥스럽다. 그렇다고 해서 딱히 반대할 만한 사안도 아니다. 단, 다음과 같은 문제가 해결되어야 한다. 적어도 현재 지자체의 사업들을 봤을 때 다음과 같은 심각한 문제들을 안고 있다는 우려를 씻기 어렵다. 따라서 필자는 지금 현재의 사업에 반대한다.

우선 현재 지자체들이 벌이는 사업은 불법과 탈법, 의혹으로 얼룩져 있다. 이 사업들은 지자체를 통해서 지원을 받은 농어촌 남성들이 국제결혼중개업체를 통해서 외국 신부들을 만나 결혼하는 형태를 취하고 있다. 일부 국가(베트남과 필리핀)에서는 상업적인 결혼중개 행위 자체가 불법이다. 따라서 지자체의 예산과 이름으로 농어촌 남성들이 외국에 나가서 불법행위를 버젓이 저지르고 있는 셈이다. 또 지자체와 결혼중개업체간의 돈거래도 전혀 투명성이 보장되지 않는다. 일부 지자체에서는 결혼중개업체로 지원금을 직접 입금하는가 하면, 1인당 성사비용도 중개업체의 이윤을 보전해주기 위해서 인상되었다는 의혹이 있다. 다시 말하면 지자체에서 세금으로 조성된 예산을 가지고 결혼중개업체에 금전적 특혜를 주고 있다는 말이다.

두 번째로 제도적 차원에서도 일부 지자체는 “이혼 또는 배우자의 거주지 무단이탈 시 지원금을 환수”하는 조항을 두어 결혼에 문제가 있을 경우 책임을 당사자 개인에게 묻는다. 부부관계와 결혼의 유지라는 것을 돈을 미끼로 하여 강요하는 것은 아닌지? 지원금을 받은 죄로 이혼도 하지 못한다. 또 이미 한국에 들어와 살고 있는 외국인 신부들이 한국사회에 정착하도록 하는 지원도 제대로 하지 못하면서 외국인 신부들을 들여오는데 정착지원의 여섯 배에 해당하는 예산을 쏟아 붓고 있다. 들어와서는 어찌 되었든지 나 몰라라 하는 것은 아닌지? 그리고 지자체에서 이런 사업들을 벌이고 있는 것에 대해서 중앙정부는 실태 파악이나 하고 있었는지? 한 정당과 시민단체들이 이 제도의 문제점을 다룬 토론회를 개최하고 언론에 이 사안이 보도된 이후에도 중앙정부에서 이에 대한 어떤 의견을 내는 것을 보지 못했다.

해남군 공문에 "베트남 여성은 몸매가 환상적"

세 번째의 문제점은 필자가 가장 우려하는 부분이다. 이 사업을 시행하고, 그 혜택을 받는 사람들이 이 사업에 대해서 어떤 시각을 가지고 있는가라는 문제다. 지방정부가 다음 선거에서 표를 얻기 위한 “선심성 뚜쟁이”가 되었다고 하더라도, 백번 양보하여 농촌의 현실이 그만큼 심각하다는 이유로 봐주기로 하자. 우리가 낸 세금이 농어촌 남성들이 배우자를 찾는데 쓰이면 그것도 사회복지 차원의 문제가 아닌가라고 우리 자신을 설득해보자. 그럼에도 불구하고 용서할 수 없는 것은, 이 사업이 단순한, 그리고 선의의 뚜쟁이 사업이 아니라, 국제결혼이란 탈을 쓴 “인신매매”가 아닌가 의심스럽다.

얼마 전 국내 일부 결혼중개업체들이 외국인 신부에 대해서 모욕적인 단어들을 동원하여 광고하면서 국제적, 국내적 비난을 산 것을 누구나 기억할 것이다. 이건 돈에 눈이 먼 사기업들의 한심한 작태라 치자. 하지만 이윤추구를 목적으로 하는 사기업도 아닌 지방자치단체도 그런 비슷한 수준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면 어떨까? 해남군의 한 지방의회 의원이 공개한 이 사업 관련 지자체의 ‘공문’은 우리를 경악케 한다. 해남군의 국제결혼 협조 공문에 “베트남 여성은 남편을 하나님처럼 모시고 사는, 지구상의 마지막 남은 순수함을 지닌 천사”, “남편에게 헌신적이고, 몸매가 환상적이며, 소식하는 식문화를 가지고 있어 살이 찐 여성이 거의 없다”라는 문구가 있다. 일전에 비난을 샀던 결혼중개업체의 광고내용과 다를 바가 없다. 이런 시각을 가진 지방자치단체가 추진하는 국제결혼 중개는 ‘인신매매’의 다른 형태라고 봐도 무방하지 않을까? 그 공무원들의 더 낮아질 수 없을 정도로 한 없이 낮은 인식수준이 개탄스럽다. 이런 인식 하에 진행되는 국제결혼지원사업을 어떻게 환영할 수 있을까?

우리나라 농촌사회의 문제가 심각한 것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농촌에는 노인층만 남아 있고, 그나마 남은 젊은 세대들, 특히 남성들은 결혼하여 농촌에 살려는 배우자감이 없어서 결혼적령기를 훌쩍 넘겨버리고, 농촌에서는 새로운 세대가 태어나지 않으며 농촌학교들은 하나 둘씩 폐교되고 있다. 그러나 이런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서 문제의 근원을 해결하는 장기적이고 종합적인 대책이 있었던가? 어쩌다 농촌의 문제가 언론에 불거지기라도 하면 땜빵식, 대증요법식의 짜깁기 대책만이 난무해왔다. 이 국제결혼 지원사업도 문제의 근원을 파고들어 해결하는 대책이 아닌 짜깁기 대책의 전형이다. 뿐만 아니라, 이런 사업을 발상한 기본적인 인식에 있어 매우 큰 문제를 안고 있는 그런 사업이다. 지금이라도, 좀 시간이 걸리더라도 농촌문제에 관한 종합적인 긴 호흡의 근본적인 대책이 마련되어야 한다.

이재현(한국동남아연구소 선임 연구원, 국제연대위원회 실행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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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전부터 명절이 되면 전국 곳곳에서 아시아 외국인노동자와 결혼이주여성들을 위한 행사가 개최되고 있고 올 추석도 거르지 않았다. 10년 전만해도 우리는 아시아로부터 온 외국인들이 왠지 거북하여 거리를 두거나 서먹서먹해 했지만 지금은 서로 상당히 가까와진 느낌이 든다. 이렇게 우리는 아시아 이주민들과 함께 살아가는 법을 배우고 있는 과정에 있다.

1990년에 2만 명이 못되던 우리나라 외국인노동자가 2004년 말에 42만 명을 넘어섰다. 출신국가별로 보면 중국, 인도네시아, 베트남, 필리핀, 태국, 방글라데시, 몽골, 우즈베키스탄, 파키스탄, 스리랑카 순으로 이어지는 아시아 사람들이다. 한편 국제결혼은 1993년 전체 혼인신고의 1.6%에 불과했지만 2005년에는 13.6%로 늘어났다. 농어촌지역 혼인은 국제결혼인 경우가 35.7%나 된다고 한다.

이러한 아시아 이주노동자와 결혼이민자여성의 한국러시와 그에 대한 한국사회의 책임의식은 백여 개에 달하는 외국인노동자 및 이주민인권운동단체들을 출현시켰다. 처음에 우리는 이들을 도와주어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런데 요즈음에는 다양한 아시아인들과 공존할 수 있게끔 우리 사회가 다문화적으로 재편되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고, 문화다양성이 곧 글로벌 시대의 경쟁력이라는 논리까지 제기되고 있다. 아시아 이주자들이 우리를 부담스럽게 만드는 사람들이 아니라 우리를 풍요롭게 해주는 사람들이라는 생각에 다다른 것이다. 참 멋있는 발상이다.

그런데 어떻게 그러한 생각을 실천할 수 있을까? 생각만 전환적으로 한다고 될 일은 아닌 듯하다. 우리를 다문화적으로 만드는 기획은 명절 때마다 아시아인들에게 한복을 입히고 한과를 먹고 한국예절을 배우는 자리를 만드는 것으로는 달성되기 어렵다. 물론 한국을 알게 하는 일은 이들에게 즐거운 일이자 꼭 필요한 일이므로 계속되어야 한다. 그렇지만 이들의 위상을 교육과 실천의 대상이 아니라 주체로 재조정하는 기획 또한 즐겁고 꼭 필요한 일이다.

그들이 사회적으로 무엇을 할 수 있겠느냐며 의문을 품는 이들도 있겠지만 일부 단체들이 이미 선례들을 보여주고 있다. 어떤 외국인노동자센터는 외국인노동자와 한국인이 함께 아시아문화를 학습하는 소모임을 결성하였는데, 외국인노동자들이 자기 나라의 문화, 언어, 예절, 종교를 다른 나라 출신의 외국인들과 한국인들에게 가르치는 방식으로 운영하고 있다. 또 다른 외국인노동자단체에서는 아시아 소식을 아시아 각국의 언어로 게시하는 웹사이트를 만들었는데 그 사이트의 내용을 채우는 이들이 바로 외국인노동자들이다. 외국인노동자로 구성된 밴드가 외국인노동자의 고통과 희망, 연대의 필요성을 노래하여 우리 민중문화운동에 신선한 바람을 불러일으키고 있는 것도 같은 맥락의 기획과 실천이다.

우리를 아시아의 다양한 문화로 이끌고 그 속에 담긴 풍요로운 지혜로 인도하는 교사가 바로 이주노동자들과 결혼이주여성들인 것이다. 이러한 발상을 실현하려면 우리의 아시아 친구들을 수동적 수혜대상에서 능동적 기획주체로 인식하고 역할을 부여하는 기획, '그들을 위한 자리'인 동시에 '우리를 위한 자리'여서 '함께 하는 자리'로 만드는 기획과 실천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 이 글은 [열린전북]에 실린 글입니다.
전제성(전북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국제연대위원회 실행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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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結婚, marriage)이란 것은 지구 위의 짝짓기하는 어떤 다른 동물들도 가지고 있지 않은 인간 특유의 문화제도이다. 결혼이 단순히 각기 다른 개인이 누군가와 함께 생활하는 형태를 말하는 것만이 아닌 이상 그러할 것이다. 사람들이 결혼을 왜 하는지는 시대마다 또 문화마다 크고 작게 다른 배경과 까닭을 가지고 있다. 이십일세기 남한 사회에서 결혼은 따라서 이십일세기 남한의 정치, 경제, 사회적 배경에서 이해되어야 하는 문제일 것이다.

현재 한국사회에서 결혼하려는 이들은 누군가? 왜 결혼하려는 것일까? 그들 중 결혼을 ‘못하고’ 남겨지는 이들은 누굴까? 왜 이들의 결혼못함이 사회적 반향을 얻고 사회적 호소가 되어 급기야 범사회적인 ‘신부 수입’ 열풍이 일어나기까지 하는 것일까?

‘남들처럼’ ‘결혼 적령기’에 ‘여자’와 결혼해 집을 사고 차를 굴리고 안정된 정규직 직장을 다니며 6개월이 된 아들을 둔 한 삼십대 중반의 이성애 ‘남자’인 친구가 내게 들려준 이야기가 문득 떠오른다. 지금 나이가 될 때까지 혼자 사는 남자들은 결혼을 못한 ‘잔여물들’일 가능성이 많고 여자들은 오히려 능력있는 ‘독립인’들일 가능성이 많기 때문에 이 여자들과 남자들은 서로 맞을 수가 없는 사람들이라고 그는 말한다. 나는 그의 의견에 뜻을 함께 하고 안하고를 떠나서 한 번쯤은 생각해 볼 일이라 여겼다. 그는 이런 현상이 여자에게 가해지는 결혼에 대한 사회적 (주로 가까운 ‘가족’들에 의한) 압력보다 남자에게 가해지는 압력이 더 심하기 때문이라고 의견을 댔다. 결혼한 게 후회스럽다고 가끔 투정하는 그는 그러나 아내에게 잘 하고 아이양육에 열심히 참여하는 ‘좋은’ ‘남편’이자 ‘아빠’로 보인다. 그리고, 남한의 많은 남자들이 그러하듯 그도 결혼을 해서 잃은 것보다는 얻은 게 많은 것 같다. 그래서일까? 결혼도 ‘못한’ ‘못난 놈’이라 흉을 잡히거나 혹은 노후에 돌봐줄 이 하나 없이 냄새나는 뒷방 늙은이로 살다죽을까 걱정 듣는 남자가 되지 않기 위해서라도 남자들은, 심지어 남자 동성애자들까지도 우선 결혼은 하고 본다. 남성에게 실질적 보상 (사회적 성인으로서의 인정, 무급 가사노동력 충당, 성욕해소, 재생산, 사회관계용 에스코트서비스, 맞벌이인 경우에는 경제적 보상까지)이 실로 엄청난 결혼을 마다하는 것은 어쩌면 바보나 할 짓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남겨지는’ 남자들은 주로 소외층에 있다. 한편, 여자들은 당연히 이같이 엄청난 내용의 서비스를 제공하면서 하게 되는 사회적 ‘거래’이므로 안정적인 ‘평생 직장’을 갖기 위해서 현명한 계산을 하게 된다. 국내의 결혼알선업과 고급 중매업의 성행이 이토록 장수하는 것은 결혼이 ‘제도’를 빙자한 ‘거래’이기 때문이지 않을까?

‘베트남 신부’를 ‘사오는’ 남자들은 국내에서 일어나는 결혼 거래에서 소외된 이들이다. 지역적으로나 계급적으로 혹은 두 가지 모두의 이유로 국내에서 신부를 거래해오지 못한 이들은 가난한 나라들의 값싼 노동력에 눈을 돌리는 다국적기업들마냥 베트남, 중국, 필리핀, 소련 등 할 수 있는 모든 선을 동원해 신부를 수입한다. 대체로 상대인 남한의 남자들보다 나이가 훨씬 어려 젊음이라는 권력을 누려봄직도 했을 이 신부의 거래조건은 여느 이주노동자들과 마찬가지다. 본국에 남은 가족들에게 얼마만이라도 생활비를 보내 줄 수 있는 것. 해외취업을 나가는 이주노동자들처럼 이들은 ‘평생직장’을 잡으러 한 두 번의 선을 뵈인 후 경쟁자들 중에서 ‘뽑혀’ 한국으로 ‘사들여져’온다. 한국에서 기다리고 있는 것은 재수가 좋으면 본국에서의 자신의 집보다 좀 덜 가난한 ‘남편’의 집에서 하게 될 가사노동, 재생산노동, 남편에 대한 성적 서비스, 어느 경우에는 임금노동을 해서 집안을 되려 먹여 살리는 경우까지 다양한 ‘아내 노동’이다. 소통과 이해가 절대적으로 부재한 상태에서의 고립된 노동.

최근에 ‘베트남 신부 수입’에 대한 반인권적 내용의 광고들에 대한 한국의 인권단체들과 베트남 내부의 비판적인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해도 너무했기 때문이다. 신부를 거래하듯 사오는 것까지는 눈감을 수 있겠으나 너무 적나라하게 광고를 했기 때문이었을까? ‘절대 도망안감’같은? (사실 거래내용을 분명하게 알지 못하고 거래를 맺은 이들이 결과가 기대했던 것과 다르게 나오면 당연히 따져서 재거래를 할 수 있거나 혹은 거래 자체를 파기하고 돌아설 수 있도록 해주어야 한다.)

근본적인 문제는 무엇인가? 늙은 여자인 노모의 가사노동과 감정노동에 의지해 살아가는 혼자 생활할 능력을 키우지 못한 ‘남겨진’ 남자들인가? 혹은 결혼제도 안에서의 성만 사회적으로 용인할 수 있는 성이라고 인정해주는 분위기인가? 아니면 결혼안한 혹은 못한 이들은 죽어서도 제삿밥을 얻어먹을 수 있는 ‘가족신’이 되지 못할 거라는 믿음, 세상에 태어나 제 핏줄하나는 만들어놓고 죽어야 한다는 핏줄계승주의 뭐 이런 것들인가? 결혼하지 않은 이들에게도 똑같은 사회경제적 혜택이 주어진다면, 결혼하지 않은 이들에게 아무런 비하나 호기심 혹은 동정의 시선이 쏟아지지 않는다면, 남자들이 어려서부터 스스로 생활을 챙길 수 있도록 교육받았더라면 굳이 가까이에서 나란히 생애를 함께 보내고 싶은 이들을 이렇게 ‘사와야’ 할 일이 생겼을까? 본국에 남은 ‘가족’들의 생계를 돕자고 ‘평생직장’을 찾아 이주해온 이 여자들도, 이국땅까지 건너가 신부를 ‘사 오게’ 된 이 남자들도 내게는 같은 맥락에서 보인다. 무엇이 나빴던가? ‘가족’관계가 될 여자들을 마치 강제노동을 하게 될 노예 대하듯 써 내린 적나라한 광고였던가? 허풍과 거짓약속으로 신부를 사온 (몇몇?) 남자들인가? 거래를 하고서도 약속한 기일을 채우지 않고 도망간 여자들인가? 아니면 강제적 이성애 ‘결혼제도’ 그 자체인가? 가난하고 소외받으며 사는 우리에게 따로 혹은 함께 살아갈 또 다른 방법들은 없는가? 그것이 가능하다면 그 가능성들에 대한 상상과 실천을 방해하는 것들은 무엇인가? 다시 질문의 소용돌이 속에서 머릿속이 얼얼해 온다.

박이은실(성공회대 노동대학 담임, 국제연대위원회 실행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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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인권위원회에 차별 시정 진정서 제출



몇 년 사이에 아시아 여성과 한국 남성이 결혼하는 비율이 급격히 증가하면서, 국제결혼중개업체가 성업하고 있다. 이에 따라, 중개업체가 상업 목적으로 내거는 곳곳의 현수막을 비롯한 여타 광고물은 경쟁하듯 선정적이고 인권침해적인 요소를 부각시키고 있으나, 이런 광고들은 아무런 규제도 받고 있지 않다. 이처럼 반인권적인 상황에 대한 방치는 또 다른 이름의 폭력이며 차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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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월 21일자 조선일보에 <베트남 처녀들, "희망의 땅, 코리아로">라는 기사가 보도된 후 ‘나와우리’를 비롯한 한국여성의전화연합, 아름다운재단 공익변호사그룹 ‘공감’, 언니네트워크, 한국이주여성인권센터, 민주노동당 여성위원회는 [차별적 국제결혼 광고 대응을 위한 공동행동]을 결성하고, 5월 20일 대학로에서 '여성을 상품화하는 국제결혼광고 반대' 캠페인을 진행하였다. 이후 6월 16일부터 7월 10일까지 온라인 공간 ‘우리는 선의의 파파라치’에서 각종 인권침해 광고물(신문광고, 현수막, 포스터 등) 사진을 수집하고, 이런 광고물에 대한 반대서명 작업’을 진행하였으며, 오늘 7월 11일 오전 11시, 국가인권위원회 앞에서 여러 사회인권단체들과 공동 기자회견을 갖고 국가인권위에 차별 시정을 위한 진정서를 제출하였다.

[기자회견문] 성차별ㆍ인종차별적 국제결혼 광고에 반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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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우리는 이 사회를 함께 살아가고 있는 또 하나의 주체에 대한 관심을 환기시키고, 그 권리에 대해 함께 목소리를 높이기 위해 이 자리에 섰습니다. 이제까지 우리 주변에서 무수히 보아왔던 국제결혼 광고가, 성차별과 인종차별을 조장하고 인간의 존엄을 모독하는 행위라는 것을 알리기 위해서입니다.

국제결혼을 통해 우리나라에 체류 중인 결혼 이민자는 7만5천여명에 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습니다. 매년 증가하고 있는 국제결혼은 지난 2005년 13.6%에 이르러, 100명중 13명이 외국인과 결혼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이에 따라 국제결혼 중개업체도 크게 증가하여 등록업체만 600여개에 이르며, 미 등록업체를 포함하면 천여개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됩니다. 이런 상황 속에서 대부분의 중개업체들은 더 많은 수익을 올리기 위해 반인권적이고 여성을 상품화하는 광고를 무차별적으로 내걸고 있습니다.

“베트남 ‘처녀’와 결혼하세요. 후불제, 환불 가능, 절대 도망가지 않습니다.”

이제는 이런 문구들이 더 이상 낯설지 않습니다. 국제결혼 중개업체들의 광고는 현수막, 신문 광고 등에서 가장 자주 접할 수 있지만, 사실 이 뿐만이 아닙니다. 생활정보지 및 공공장소의 광고판, 중개업체의 홈페이지 등 정보를 확산시킬 수 있는 곳이라면 어디라도 가리지 않고 잠식해가고 있습니다.

오직 업체의 수익 증대를 위해 노골적으로 여성을 상품화하며 무분별한 광고를 게재하는 것은 반인권인 행위로서 마땅히 즉각 중지되어야 합니다. 이는 그 나라 여성들의 인권을 침해하는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여성에 대한 편견과 차별을 조장하는 문제로 여성전체의 문제이며, 나아가 인간의 존엄을 모독하는 행위입니다. 또한 많은 업체들은 해당 국가의 문화를 폄하하거나 의도적으로 왜곡함으로써 국제결혼을 하는 것이 한국의 우월성을 드러내는 일인 양 광고하고 있습니다. 이는 국제결혼으로 이 사회에 정착하게 될 가족들에 대해 또 다른 편견을 조장할 수 있다는 점에서도 대단히 심각한 문제입니다.

이 광고들은 한국사회가 가지고 있는 인권에 대한 인식의 현주소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를 당연한 일상의 풍경처럼 받아들여지도록 방치해두고 있었다는 사실은, 우리 사회의 구성원이라면 누구라도 부끄러워해야 할 일입니다. 이제라도 성차별ㆍ인종차별적 국제결혼 광고가 적절한 규제를 받을 수 있도록 적절한 조치가 취해져야 합니다.

우리는 오늘 이러한 반인권적인 행위가 중단될 수 있도록 아래와 같이 주장합니다.

○ 정부는 무분별하게 난립하고 있는 국제결혼중개 업체의 실태와 문제점을 정확히 파악하여 적절히 규제하라!

○ 정부는 국제결혼중개업체들의 반여성적이고, 반인권적인 현수막, 신문광고 기타 홍보활동을 즉각 중단하도록 강력한 행정 지도에 나서라!

○ 국제결혼중개업체들은 여성을 상품화하고 인권을 침해하는 행위를 중단하고 업체 스스로 자정노력을 기울여라!


그리고 차별시정 진정서와 함께 그동안 모니터링해온 차별적 광고물의 실태, 이 광고에 반대하는 시민들의 서명 목록 등을 국가인권위원회에 제출할 것입니다.

이 진정서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여성ㆍ인권ㆍ시민단체들의 높은 관심과 많은 시민들의 격려를 접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광고뿐만 아니라 국제결혼 자체를 둘러싸고 저질러지고 있는 억압이나 폭력 등의 문제들에 대해서도 관심을 높여가야 한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우월성이 아닌 다양성으로서 다른 문화를 받아들이고, 이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이주여성들과 함께 살아가는 길에 시민사회가 함께 동참하기를 바랍니다.

2006년 7월 11일

진정인 및 연명단체 일동

결혼이민자가족지원연대, 경계를넘어, 나와우리, 다산인권센터, 목적별신분등록법제정을위한공동행동, 민주노동당 여성위원회, 민주화를 위한 변호사모임 여성복지위원회, 베트남을 이해하려는 젊은 작가들의 모임, 베트남평화의료연대, 성매매근절을위한 한소리회, 성적소수문화환경을위한모임 연분홍치마, 아름다운재단 공익변호사그룹 공감, 언니네트워크, 외국인이주노동자대책협의회, 이주ㆍ여성인권연대, 이주노동자인권연대, 인권운동사랑방, 전국여성농민회총연합, 참여연대, 충북참여자치시민연대, 팔레스타인평화연대, 평화박물관건립추진위원회, 한국성폭력상담소, 한국여성단체연합, 한국여성민우회, 한국여성장애인연합, 한국여성의전화연합, 한국이주여성인권센터,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 함께하는 시민행동



국제연대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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