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담회후기]

태국 민주주의 위기로부터 아시아는 무엇을 배울 것 인가?
-왜 태국에서는 시위와 쿠데타가 반복되는가?


 

5월 13일을 기점으로 태국 정부군이 시위대에 강경진압을 시작하면서 다시 국제 뉴스의 전면을 채우고 있다. 이 날 참여연대 3층에서는 태국간담회가 열렸다. 참여연대 국제연대위원회 실행위원인 성공회대 박은홍교수와 태국에 위치한 포럼아시아(Forum Asia)에서 일한 한국인권재단의 이성훈이사가 발제를 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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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은홍교수의 발제>

박은홍교수의 발제는 민주주의 정치원리에서 본 태국 시위 세력의 특성을 분석하는 것으로 이루어졌다.

현 태국시위는 크게 두 세력이 대립하고 있다. 한 쪽은 반탁신세력이자 왕정을 지지하고 윤리정치를 내세우는 ‘노란셔츠’, 즉 민주주의민중연대(People’s Alliance for Democracy:PAD)이다. 다른 한 쪽은 친탁신, 1997년 헌법수호, 선출된 권력의 정당성을 옹호하는 ‘붉은셔츠’, 즉 반독재민주연합전선(the United Front for Democracy Against Dictatorship:UDD)이다.
 
각 세력은 어떤 사람들로 구성되어 있을까? ‘노란셔츠’는 탁신의 부패와 독선을 혐오하고 국왕의 권위를 숭상한다. 내부 구성원들의 정치적 뿌리를 보면 왕정주의자들과, 군사정권 아래에서 반독재운동을 하던 사람들과 학생운동지도부가 포함된 레디컬(radical) 그룹이 포함되어 있는 좌우동거의 성격을 띄고 있다. 반면 ‘붉은셔츠’는 친탁신세력이자 쿠테타를 용납할 수 없다는 입장이 강하다. ‘붉은셔츠’내 특히 친탁신계에도 반독재.학생운동, 사회운동에 몸 담았던 사람들이 있다.
 
이들이 갖는 정치원리는 어떤 것인가? ‘노란셔츠’는 ‘좋은 쿠데타(good coup d’éㅇ호tat)라는 이름으로 선거나 민주주의로 정치적 문제가 해결이 안되면 쿠데타로 문제를 해결해도 좋다는 입장이다. 반면 ‘붉은셔츠’는 상대적으로 선거민주주의를 절대옹호하며 어떤 쿠데타도 정당화될 수 없다고 본다.
 
이러한 시민사회의 분열양상은 단순히 탁신이라는 정치지도자를 어떻게 볼 것인가를 넘어, 근본적으로 ‘태국의 시민사회가 민주주의를 어떻게 보고 있는가’라는 의문을 갖게 한다. 지금 태국인들은 ‘최소의 민주주의, 최대의 민주주의’에 대한 합의가 필요한 시기이다. 판단하기로는 절차 민주주의에 대한 합의로부터 민주주의를 키워나가야 한다고 본다.
 
덧붙여 시위대를 분리시키고 있는 주제 중의 하나는 ‘지구화(세계화)’이다. 지구화를 찬성하는 탁신정권은 FTA를 추진하고 자유무역을 권장하는 일종의 지구화에 적극적으로 대응한 측면이 있다. 반면 반탁신세력 중에는 물질만능주의를 경계하는 불교문화 옹호론자들이 있는데 이들은 탁신의 지구화 순응전략에 반대하는 입장을 갖고 있다.
 


<이성훈 이사의 발제>

인권위 이성훈 이사는 태국 사회의 4대 지배블록은 군부, 왕족, 자본가, 관료로 파악하였다. 이들 가운데서도 군부와 왕족변수가 현 상황을 가장 복잡하게 만드는 것으로 보았다. 또한 시민사회에서 드러나는 입장도 여러 갈래로 나뉘어져 있다고 보았다. 시위과정에서 나타나는 국가폭력을 비판하고 생명권 존중의 입장을 표명하는 집단, 시위대 양쪽 진영에 대해 뚜렷이 양비론적인 집단, 그리고 어느 한 쪽에 속한 집단으로 보았다. 그리고 모든 정치적 혼란은 쿠데타를 인정하면서부터 시작되었으며, 정치를 정치로 해결하지 못하고 사법부가 들어오는 상황은 좋지 않아 보인다는 지적을 하였다.
 
 
<토론>


현 사태의 분석을 넘어, 현실적인 연대와 선택의 문제에 대한 질문이 이어졌다. 사회자인 박진영 팀장은 태국에서 온 소식에 의하면 노동운동과 시민운동까지도 모두 이분화되어 연대를 할 수 없는 상황에 이르렀다고 하였다. 양쪽이 연대할 수 있는 중간 영역을 만들어 낼 수는 없을까 하는 의문을 제기하였다. 더불어 차은하 간사는 태국 상황에 대해서는 국가의 폭력이나 생명권과 같은 일차적인 문제만 다룰 수 있을 뿐, 실제 시민운동을 하는 사람들과는 어떻게 연대할 수 있는가 하는 것은 답을 얻기 어려운 것 같다고 하였다.
 
박은홍교수는 다수결의 원리를 따르는 민주주의의 양면성을 지적했다. 절차로서의 민주주의가 수의 게임에 따른 다수의 지배이기에 분명히 폭력성이 있지만 소수가 다수가 될 수 있는 가능성을 갖고 있기에 최적의 제도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바, '노란셔츠'의 선거 결과 불복종운동은 절차적 민주주의의 안착을 어렵게 하고 있다는 점을 지적했다. 시민사회가 민주주의를 어떻게 볼 것인가를 먼저 묻고 답을 얻어야 할 것이라는 말로 마무리하였다. 


Posted by 영기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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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06년 9월 19일 타이에서 일어난 쿠테타는 타이가 이제 민주주의를 차근 차근 뿌리내리고 있다고 믿고 있던 국제사회를 경악시켰다. 당시 쿠테타의 주역들은 탁신의 부패와 그의 분열주의 정치, 헌법상 보장된 독립기관에 대한 침해, 군주제에 대한 위협 등을 들어 자신들의 반(反)헌정적 행위를 정당화하였다. 손티 분야랏글린 육군총사령관을 의장으로 하는 <입헌군주제하의 민주개혁평의회>는 한때 ‘국민헌법’으로까지 격찬을 받던 1997년 헌법을 폐기하였다. 그해 10월 1일에 임시헌법이 공포, 시행되고 전 육군총사령관 수라윳 출라논 추밀원 의원이 과도 수상으로 취임했다.

쿠테타는 1992년 시민항쟁으로 훼손된 군의 자존심과 이들의 정치 개입을 일거에 회복시켰다. 또한 쿠테타를 통해 보수주의자들과 존왕주의자들은 권력 게임의 규칙을 바꿀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군부에 의해 수상직에 임명된 수라윳 장군은 국왕이 제시한 ‘자족경제’ 개념이 정부 경제정책의 기조가 될 것임을 선언하였는데, 이것은 기업가 정신의 제고를 강조하는 탁신의 경제정책과 대조를 이루었다. 특히 수라윳 과도정부는 군부 엘리트와 존왕주의자들로 채워졌다. 그들 중 많은 수가 과거 1991년 쿠테타로 집권한 군사정부에 연루되었던 인물들이었다.
  
결국 탁신정부의 와해를 바랬던 중산층들은 자신들의 운명을 군부와 보수적 존왕주의자들에게 맡겼다. 그들은 탁신을 지지하고 또 그에게 표을 던진 빈민, 농민들이 아직 민주주의를 누릴만한 시민의식을 갖추지 못하고 있다고 보았다. 반탁신운동을 이끌었던 보수주의자들은 탁신퇴진운동을 남들이 낸 세금으로 혜택을 받고 그 대가로 탁신을 지지하고 있는 빈민들과의 계급전쟁으로 보았다. 이러한 반탁신운동을 통해 외견상 왕실은 전례없이 강력해졌고 군부와 관료들은 과거 그들이 누렸던 특권을 되찾게 되었다.
 
특히 왕실과 군의 관계가 보다 돈독해졌다. 2006년 쿠테타 이후 군과 왕실에 연을 맺고 있던 보수주의자들이 공직에 임명되었다. 군부가 임명한 과도의회는 2007년도 군 예산을 50% 증액시켰다. 2007년 신헌법에 따라 민정이양이 이루어졌지만 군부의 정치적 영향력은 계속되었다.  2006년 9월 쿠데타를 국왕이 승인하자 인터넷 사이버 공간에 국왕을 비판하는 글이 오르기 시작했고, 정부당국은 이들에게 최고 15년형에 처해질 수 있는 왕실모독죄를 적용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왕실을 비난하는 인터넷 사이트가 증가하자 정부당국은 이들 사이트 폐쇄에 나섰다. 2008년에는 저명한 원로 사회운동가인 술락 시와락이 왕실모독죄로 입건되었다. 왕립 출라롱껀대 짜이 응빠껀 교수는 왕실을 비난한 저서를 발간했다는 이유로 입건되자 영국으로 피신하였다.

일찍이 타이에서 사회운동과 정당정치가 만개했던 초유의 시기는 1973년 10월 14일 민주혁명과 그 결과로서의 1974년 헌정체제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74년 헌정체제’는 군부를 비롯한 우익의 반발로 파국을 맞았다. 1992년 5월 시민항쟁을 계기로 ‘74년체제’의 개혁성을 발전시킨 새로운 개혁적 헌법을 구상하게 되었다. 이러한 배경에서 제정된 헌법이 1997년 헌법이고, 시민사회의 의사를 수렴한 가운데 제정되었다는 점에서 ‘국민헌법’으로까지 불렸다. 그리고 ‘97년체제’ 하에서 타이 최초의 정책정당이라고 할 수 있는 탁신의 타이애국당이 집권할 수 있었다.

급기야 다양한 친서민 정책을 편 탁신의 포퓰리즘은 타이애국당이 민주헌정 사상 최초로 연립없이 단독 집권을 가능하게 했고, 동시에 ‘다수의 횡포’가 절정에 이르렀다. 결국 ‘다수의 횡포’에 따른 배제의 정치가 국가폭력과 인권침해 사례의 증가로 이어지자 일부 시민사회진영은 존왕주의자들과 손을 잡고 탁신 퇴진운동에 나섰다. 친서민정책을 통해 농촌에 절대적 지지기반을 갖고 있던 탁신은 이에 대해 의회해산과 선거로 맞섰다. 결국 수의 게임에 자신이 없는 반탁신진영은 쿠테타까지 ‘초대’하였다.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현 집권세력인 민주당은 쿠테타를 암묵적으로 지지하였다.  
 
탁신 지지세력으로 분류되는 ‘붉은 셔츠’는 오늘날 정국혼란의 근본 원인을 2006년 9월 쿠테타로 본다. 이들은 현 아피싯 정부가 군부로부터 독립적이라고 보고 있지 않으며, 이러한 맥락에서 민주주의라는 이름으로 1997년 헌법의 복원을 주장하면서 수의 게임에 자신이 없는 현 아피싯 정부를 향해 의회해산과 총선실시를 압박하고 있다. 그러나 탁신을 부패한 독재자, 교활한 포퓰리스트로, 탁신을 지지하는 서민들을 포퓰리즘에 현혹된 집단으로 보는 지식인과 중산층 중심의 ‘노란 셔츠’의 저항 역시 만만치 않다.  

흔히 민주주의를 갈등의 제도화라고 표현한다. 타이 사례는 이러한 갈등의 제도화에 이르는 아시아 민주주의의 힘겨운 여정을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박은홍(성공회대 아시아NGO정보센터 소장)


 

Posted by 영기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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