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적 신자유주의와 포복형 권위주의

신자유주의로 규정되던 'MB노믹스'의 '변화'가 얘기되고 있다. '비지니스 프랜들리'를 강조하던 이명박 정부가 민생과 서민을 위한 경제를 강조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변화'는 어찌보면 매우 '합리적'이다.

경제의 정상화를 위해 성장 중심의 경제가 수반하는 '눈물의 계곡'이 불가피했고, 그 '계곡'을 어느 정도 넘어섰다고 판단되자 눈물을 닦아줄 수 있는 분배의 정치를 시도하는 위기 해결 경로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기란 쉽지 않기 때문이다. 특히 한국의 대표적인 케인즈주의 학자가 현 정부의 총리로 임명된 것은 '분배의 정치'로의 변화를 기대하게 한다.

지난 1998년 경제위기 국면 속에서 한국에서 50년 만에 여야 정권 교체가 실현되자 이를 두고 '위기를 매개로 한 공고화'라는 표현을 하기도 하였다. 그렇지만 지금의 국면에서 일각에서는 위기를 매개로 한 보수적 민주주의의 공고화를 우려한다.

물론 어느 한 정치학자가 민주주의의 공고화를 '진보 정당과 보수 정당 간의 권력 교환의 안정화'라고 정의하면서 이를 시계추 운동에 비유했을 때, 이 '시계추 효과'의 원리는 집권세력의 경제적 수행 능력에 대한 유권자의 심판이었다. 진보든 보수든 경제 관리에 실패했을 경우 '정적'에게 권력을 내놓게 된다는 것이다.

이러한 측면에서 이명박 정부의 궤도 수정은 '정치사업'으로서 손색이 없는 기획이다. 그러나 이러한 궤도 수정이 그동안 낮은 포복으로 진행되던 국가권력의 자유권 침해 문제에 대한 반성없이 진행될 경우 이는 'MB노믹스'의 '탁시노믹스화'라고 아니할 수 없다.

탁신의 타이애국당은 2001년에 기존 집권세력인 민주당의 신자유주의노선에 대한 대중적 반감을 등에 업고 제 1당으로 급부상했다. 국내 경제와 세계 경제와의 관계, 서민 경제와 자본주의, 이 두 개의 트랙을 동시에 발전시키겠다는 탁시노믹스(Thaksinomics)는 과거에 찾아 볼 수 없었던 케인즈주의 처방을 동원한 포퓰리즘 노선이었다. 구체적으로 탁시노믹스의 친서민 정책은 농가 채무지불유예, 저가의 기초의료서비스 공급, 농촌개발기금 후원 등이 실행되었다.

그렇지만 동시에 탁신은 신자유주의적 지구화에 대한 호응의 일환으로 민영화와 FTA를 추진하였다. 이러한 복합노선(dual track)의 탁시노믹스는 '사회적 자본주의', '불교사회주의', '사회적 화합' 등과 같은 담론의 지지를 받으며 급부상하였다. 급기야 두 번째 맞는 총선에서 탁신의 타이애국당은 압도적인 의석을 확보함으로써 다수의 지배를 확고히 하였다.

그러나 탁시노믹스의 정치는 '사회적 화합'이라는 그럴듯한 이념과는 달리 남부지역 무슬림에 대한 차별과 테러, 마약소탕을 명분으로 한 비사법적 처형, 언론과 시민사회단체에 대한 규율 등 비자유주의적 양태를 점차 강화하기 시작했다. 선거에서의 승리라는 절차적 정당성을 등에 업고 이른바 '포복형 권위주의'(creeping authoritarianism)의 전형을 보여준 것이다.

문제는 이렇듯 '포복형 권위주의' 양상과 같이 진행된 탁시노믹스의 정치적 효과로 인해 시민사회, 지식인과 사회운동세력 내부가 분열하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수도인 방콕의 유권자들은 탁신이 권력욕을 채우기 위해 도시로부터 세금을 걷어 농촌에 쏟아붓고 있다고 비난했고, 포퓰리즘의 최대 수혜계층인 농촌 유권자들은 탁신의 비자유화 경향에 아랑곳하지 않고 그에게 절대적 지지를 보냈다.

반면 지식인과 사회운동진영도 탁신의 권위주의적 행태를 과거 군사독재에 빗대면서 맹공을 퍼붓는 세력과, 탁신의 친서민 정책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면서 이를 비판하는 이들을 신자유주의자로 규정하는 세력으로 양분되었다. 특히 직접민주주의와 직접행동을 강조하는 공동체주의자들은 탁신의 '정치적 상술'에 도덕성의 잣대를 들이대면서 고강도의 공세를 폈다.

반면 일부 탁신 지지세력은 직접민주주의를 시대착오적 것으로 간주하면서 절차적 정당성을 갖고 있는 탁신을 매개로 한 공화주의적 정치변혁을 꾀하였다. 마침내 이러한 인식의 격차는 반탁신진영이 탁신을 권좌에서 내쫓은 반헌정 쿠데타를 지지하는 상황으로까지 발전한 반면, 탁신 지지세력은 군부가 휴지조각으로 만든 1997년 헌법의 복원과 탁신의 복귀를 요구하는 직접행동에 나섰다.

탁시노믹스는 신자유주의적 지구화의 수용과 사회적 약자의 역량 강화라는 다분히 상충되어 보이는 두 개의 프로그램을 동시에 진행하겠다는 의도를 가진 '사회적 신자유주의'(social neo-liberalism)에 가깝다. 그러나 타이 사회운동은 의회에서의 다수의 지배를 배경으로 '포복형 권위주의'와 함께 진행되는 사회적 신자유주의를 극복할 수 있는 대안의 조직화에, 민주주의의 기본 원리가 무엇인지에 대한 지적, 실천적 합의에 실패했다.

이제 한국 사회로 눈을 돌리자면 'MB노믹스'의 '합리적' 변화로부터 탁시노믹스와 같은 '포복형 권위주의'와 짝을 이룬 '사회적 신자유주의'가 연상케 됨을 숨길 수 없다. 그러기에 타이에서와는 달리 한국의 사회운동이 사회적 신자유주의와 다수의 지배라는 두 얼굴의 도전을 이겨낼 수 있는 패러다임을 조직해낼 수 있느냐에 아시아 사회운동은 주목하고 있을 것이다.

박은홍(성공회대 사회과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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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진보, 국가주의·민족주의를 넘어라


민주화의 '제3의 물결'이 스쳐간 아시아의 많은 나라에서 민주주의로의 이행과 '공고화'를 둘러싼 갈등이 전개되고 있다. 태국에서는 군부쿠데타로 민주화의 과정이 '역전(逆轉)'되었던 반면에 2007년 12월 총선에서는 다시 쿠데타로 쫓겨난 탁신당이 '국민의 힘당'이라는 새로운 이름을 단 다수당으로 재부상하였다. 한국에서는 '신보수정권' 시대의 개막이라는 형태로 민주화에서 또다른 '역전'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그런데 사실 아시아 민주화의 최대의 문제는, 많은 아시아 나라들에서 민주주의 이행을 통하여 정치적 경쟁구조로서의 선거민주주의가 등장했지만 그것이 실질적인 권력분점이나 경제적・사회적 독점의 해체나 완화로 이어지지 못함으로써 민주주의가 새로운 독점적 질서의 변형태로 존재하는 경우가 많다는 점이다. 많은 경우 독재 하에서 사회경제적 하위주체들은 새로운 '민주주의적인 정치적 형식' 하에서 새롭게 정치적·경제적·사회적으로 배제되고 주변화되는 경우가 많다.

그 하나의 현상으로, 많은 아시아 나라들에서는 인종적・사회적 균열선이 그대로 유지되면서 때로 더 큰 정치적 폭력에 의해서 다양한 사회경제적 하위주체들과 소수자들이 배제되는 경우도 있다. 한국에서 경험하고 있듯이 민주화가 신자유주의적 지구화와 결합되면서 소득분배의 악화, 양극화의 심화, 계급적 불평등의 심화 등을 동반하는 민주주의의 왜곡현상이 나타나는 경우도 있다.

이는 민주주의의 새로운 위기와 위협을 의미하고 이런 점에서 '민주주의의 민주화' 혹은 필자의 표현으로는 '민주주의의 사회화(socialization of democracy)'를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고 생각된다. 이는 민주주의를 사회와 일체화시키는 방향으로 변화시키는 것, 즉 민주주의라는 정치적 형식 속에서 살아가는 사회적 구성원들의 요구(demands)와 권리(rights)를 더욱 폭넓게 충족시키는 방향으로 민주주의 자체를 변화시키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민주주의라는 정치적 형식 속에서 존재하는 정치적·경제적·사회적 권력의 독점을 사회적경제적 하위주체들에게 평등한 방향으로 탈독점화하고 평등화하는 것을 의미한다.


'자본의 아시아'에 대응하는 '민중적 아시아'에 대한 고민의 필요성

이러한 민주주의의 사회화는 한국사회가 직면하고 있는 현재 민주주의 발전의 병목지점을 돌파하고 진보하기 위해서도 필요한 과제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필자는 이러한 과제가 한국민주주의 자체를 분석하고 변화시키기 위해서도 필요하지만, 이러한 관점을 아시아 전체를 대상으로 하는 지평에 확대적용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민주주의의 사회화를 위한 실천이 일국적 차원 뿐만 아니라 아시아적 차원에서도 시도되어야 한다. 이런 점에서 필자는 '사회적 아시아(Social Asia)'의 논의를 제기하고 있다.

사회적 아시아는 개별 아시아 사회 내에 존재하는 시민사회 및 아래로부터의 민중적 힘에 기초하여 아시아 민중들의 사회적 요구를 실현하기 위하여 아래로부터의 연대에 기초하여 구성되는 새로운 초국경적 아시아의 성격과 지향을 의미한다고 할 수 있겠다. 이는 시장 자율보다는 시장에 대한 공적・정치적 규율, 국가안보가 아니라 인간안보, 경제정책에 의한 사회정책의 희생이 아니라 사회적 관심에 의한 경제정책의 조정, 생태적 지속가능성 등 시민사회적 가치와 지향을 실현하기 위한 초국경적 차원의 사회적 규율질서를 형성해가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개별 사회에서 다양한 사회적 소수자들이나 민중들의 요구를 시장논리에 의해서 배척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아시아적 질서를 그러한 요구를 실현하는 방향으로 재실현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를 위해 기존에 개발독재에 싸우면서 나타난 민주주의를 향한 투쟁의 정신이 일국적 차원이 아니라 새로운 아시아를 형성하기 위한 '정신적 에토스'로 표현되어야 한다. 현재 우리의 의사와는 관계 없이, 자본이 주도하는 아시아의 초국경적 통합이 진전되고 있다. 어떤 의미에서 '자본의 아시아'가 구체화되어가고 있다. ASEAN+3와 같은 형태의 신자유주의적 아시아통합도 진전되고 있다.

초국경화는 피할 수 없는 추세인 것이 분명하다. 단지 어떤 성격이 초국경화냐 하는 것이 문제일 뿐이다. 어떤 의미에서 '어떤 성격의 아시아'를 구성할 것인가하는 자본과 노동자계급, 자본과 시민사회, 자본과 민중의 투쟁이 전개되고 있을 뿐이다. 지구화 시대에 일국적 차원에서 전개된 민주주의투쟁은 이제 자본이 주도하는 '신자유주의적 아시아'가 아니라 민중이 주도하는 아시아를 형성하기 위한 초국경적 진보에너지로 확장되어야 한다.

현재 신자유주의적 지구화는 아시아의 많은 나라들에서 사회적 아시아가 아니라 신자유주의적 아시아를 촉진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워싱턴 컨센서스에 부응하는 일련의 신자유주의적 정책들(민영화, 작은 정부, 금리의 시장연동성 증대, 복지 축소, 생활기본재의 상품화 등)이 민중복지의 확대가 아니라 축소, 그리고 민중들의 삶의 더 많은 부분이 공적 서비스에 의해서가 아니라 시장기제에 의해서 충족되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이런 점에서 아시아적 차원에서 최소한의 인간다운 삶의 조건들이 공공재로서 확보되고 최소한의 노동권리가 사회적 권리로 확보되도록 하는 노력이 절실해진다.

이러한 사회적 아시아를 위한 노력을 예를 통해서 드러내보자. 한국의 노동운동은 세계적으로 역동적인 노동운동의 나라이다. 그러나 한국의 노동운동은 주로 일국적 이슈에 집중되어 있고 글로벌 이슈를 대면하는 경우에도 일국적 노동기준의 약화의 문제와 관련될 때이다. 그러나 이제 한국의 노동운동, 나아가 많은 아시아의 노동운동은 일국적 노동문제만이 아니라 범아시아적 차원의 노동규범과 사회규약을 위한 초국경적인 실천 속에서 만나야 한다.

나아가 아시아 차원에서 사회적 최저선(minimum)을 형성・실체화하려는 노력을 행할 수 있다. 아시아 차원에서의 최소한 사회적 규약(social charter)를 실현하려는 노력도 행할 수 있다. 또한 투기적 금융자본의 60% 이상이 동아시아 몰려있는 상황에서, 아시아 시민사회가 이러한 투기자본에 대한 국제적 규제장치를 만들려는 노력을 공동으로 행할 수 있다. 물론 이러한 노력들은 '실체없는' 초국경적 권력을 향해서가 아니라 결국 국민국가에 대항하여 초국경적 규범과 규칙을 강제하는 노력으로 나타나겠지만, 국민국가적 이슈 그 자체에 집중하는 운동과는 구별될 수 있다.


아시아 민주주의의 최소규범을 실현하기 위한 노력과 한국의 과제

이러한 아시아적 차원에서의 '민주주의의 사회화'는 민주주의를 사회경제적 차원에서 실현하고자하는 것이라고 한다면, 이것은 아시아 민주주의의 최소규범을 실현하기 위한 노력 위에서, 그리고 그것과 병행하면서 추구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아시아 민주주의의 최소규범의 형성노력은 아시아적 차원의 인권레짐, 더 낮은 수준에서는 인권헌장 등과 같은 형태로 나타날 수 있을 것이다. 아시아적 차원의 민주주의와 인권 규범을 구속력있는 것으로 만들기 위한 노력이 바로 그것이다. 이런 점에서 한국의 내부적 인권발전을 넘어서서, 아시아적인 인권규범을 만들려는 노력을 국가적・시민사회적 차원에서 진행하고 이를 구속력있는 것으로 만들려는 노력도 진행할 수 있다.

예컨대 2002년 7월 1일자로 발효된 로마규정을 기초로 설립된 ICC(국제형사재판소)의 경우, 그것이 관할권을 갖는 '반인도주의적 범죄(anti-humanitarian crimes)'는 국민국가의 사법적 관할권을 일정하게 제약하고 그것을 초국경적인 사법적 정의기구에 종속시키는 의미를 담고 있다. 물론 대단히 불완전하고 미국 등 강대국들은 이를 무시하고 있지만, 이는 초국경적인 민주주의라는 점에서 대단히 의미있는 진전이라고 할 수 있다.

마찬가지로 아시아에서도 반인도주의적 범죄에 해당하는 '정치학살'같은 경우 아시아 공동의 민주주의적 의제로 만들 수도 있다. 현재로 민주화 이행 이후에도 필리핀에서는 수백명의 정치학살이 이루어지고 있다. 이러한 학살은 심지어 사회운동가들에게까지 행해지고 있다. 이런 점에서 아시아의 정치학살에 대응하는 아시아 의원단 네트워크 같은 경우를 만들 수도 있을 것이며, 아시아의 여러 나라에 산재하는 인권 및 민주주의 관련단체들이 최소한 이러한 정치학살, 그것이 어렵다고 한다면 운동가들에 대한 정치학살(인도네시아의 무니르 사건 처럼)에 공동으로 대응하는 초국경적인 공동기구를 만들 수도 있을 것이다.

그동안 아시아의 인권규약을 만들려는 노력이 여러 군데서 이루어져 왔다. 1998년 광주에서는 아시아 인권워크숍이 열려서 아시아의 인권단체들이 아시아 인권헌장을 합의하기도 했다. 아시아 인권단체들을 중심으로 이러한 노력이 진전되어져 왔다. 문제는 이러한 노력을 어떻게 아시아의 국가적 차원의 구속력있는 합의사항으로 만들어갈 것인가하는 점이다. 이것은 사실 시민사회 캠페인이 강력하게 전개됨으로써 비로서 가능할 것이다. 그러나 시민사회적 인권헌장이 개별 국민국가의 국회를 통과하려는 범아시아적 차원에서의 노력이 필요하다. 아시아 민주주의의 최소규범을 형성하기 위해서는, 시민사회의 행위자들이 국가 행위자들에 대해서 효과적인 압력을 조직하는 중장기적인 노력을 공동의 의제로 할 때 가능할 것이다. 이를 위해서 국가에 대한 시민사회의 압력과 영향력의 정도가 강한 나라에서부터 선도적인 모범을 보일 수 있을 것이다.

아시아의 많은 민주화 이행국가들은 불안정한 이행과정을 겪고 있다. 민주정부들은 구세력들의 저항에 포위되기도 한다. 남유럽의 경우 신생민주주의국가들이 보다 적극적으로 초국가적인 지역(region)의 수준에서의 인권레짐에 대해서 적극적이었으며 그것은 역으로 신생(新生)민주주의를 안정화시키는 효과를 낳았던 전례도 있다. 어떤 의미에서 초국경적인 혹은 범아시아적 차원에서의 인권레짐 혹은 민주주의 레짐의 형성노력은 개별국가에서의 민주주의의 안정화에 기여할 수 있을 것이다.

이를 위한 한국의 역할을 고민해보게 되면, 위와 같이 아시아 차원의 인권레짐과 아시아 민주주의의 최소규범을 만들기 위한 노력에 앞장서야 할 것이며, 동시에 개별 나라의 민주주의와 인권발전을 위한 연대적 지원노력을 적극화해야 한다. 상대적으로 정치적 민주주의가 선진화되어 있는 한국의 시민사회운동은 국내적 이슈에 지나치게 집중되어 있어, 이러한 아시아적 차원의 새로운 노력을 고민하지 못하고 있다. 일부 아시아 단체들을 중심으로 이러한 노력들이 선구적으로 일어나고 있다. 미얀마의 민주화를 위한 최근 한국단체들, 태국의 쿠데타를 비판하기 위한 시위 등도 하나의 예가 될 수 있다. 그러나 전반적으로 이러한 노력은 미약하다.

만일 한국의 시민사회가 아시아의 민주주의와 인권발전에 대해서 적극적인 연대의지를 갖게 되면, 아시아의 많은 후발 민주화의 국가들의 반민주주의적・반인권적 주제들을 우리의 문제들로 수용하면서 협력하고 지원하는 초국경적 연대노력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은 다층적인 차원에서 아시아의 많은 신생민주국가들에 대하여 민주주의와 인권발전을 위한 기술적・경제적・정치적 지원의 형태로 나타날 수 있다.

민주주의 지원에는 민주주의를 회복하도록 하기 위한 지원, 민주주의의 운영을 위한 기술적 지원에서부터 최근에는 '민주적 가버넌스(democratic governance)' 지원이나 인권 지원(Human Rights Aid), 투명성을 제고하기 위한 지원, 시민사회 활성화를 위한 지원 등을 포함하여 다양한 차원을 포함할 수 있다. 각 영역에서 핵심적으로 아시아의 민주주의와 인권을 진전시키기 위해서 아시아 시민사회 활동가들과 인권활동가들의 성장을 촉진하기 위한 인적 지원도 포함될 것이다. 다양한 수준에서 아시아의 민주주의와 인권 발전이 가능한 아래로부터의 민중적 힘이 강화되기 위한 다양한 협력과 연대노력들이 가능할 것이다.


탈민족주의・탈국가주의적인 인식을 위하여

이러한 초국경적인 아시아적 실천과 연대적 지원이 대중적 기반을 가지려면, 또한 실효성을 가지려면, 탈국가주의적・탈민족주의적 인식이 활동가 수준에서 나아가 일반 대중 수준에서 확산되어야 한다. 신자유주의 지구화와 아시아 민주화라고 하는 새로운 상황은 우리가 일국적 차원에서 가지고 있던 저항성을 어떻게 탈국가주의적 저항성으로 변화시킬 것인가하는 과제를 제기하고 있다. 이러한 탈국가주의의 과제는 아시아의 모든 나라 및 개별 사회의 민주진보세력에게도 적용된다.

아시아의 시민사회 세력 내부에도 사실 여전히 민족주의와 국가주의적 사고가 내재해있다. 동북아시아의 경우만 보더라도, 일본, 한국, 중국의 시민사회가 국가주의와 편협한 민족주의 를 어떻게 성찰할 것이며 동아시아의 민중연대와 시민사회 연대가 넘어설 것인가하는 것이 심각하게 고민되어야 한다. 특히 중국과 일본은 과거와 현재도 아시아의 지역에서 패권국가 혹은 준(準)패권국가로부상해가고 있는 점, 한국도 이제 경제적 패권국가로 전환되어가고 있다는 점 때문에도, 특별히 이러한 탈국가주의적・탈민족주의적 인식의 지평은 대단히 중요하다.

아시아에는 다양한 성격의 아시아주의가 존재한다. 중국의 중화(中華)주의와 일본의 대동아공영권의 상기할 수 있다. 이러한 것들은 '패권적' 아시아주의라고 할 수 있다. 이제 아래로부터의 '민주적 아시아''사회적 아시아'를 지향하는 새로운 아시아주의가 필요할 수 있다. 한국 및 아시아의 민주진보세력이 지향해야 하는 아시아주의가 있다면, 그것은 아시아를 민주적 공동체와 사회적 공동체로 사고하는 것이어야 한다.

특히 한국의 경우에 새로운 아시아의 경제적 착취자가 되어가는 상황에 놓여 있다. 경우에 따라서는 과거의 피억압자가 새로운 경제적 억압자로 전화되어 갈 수 있고 실제 그렇게 되어가고 있다. 지구화의 흐름은 한국의 시민사회와 민중진영에 대해서 과거의 피억압자가 어떻게 억압자로의 경로를 피할 수 있는 것하는 새로운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과거의 피억압민족이 준(準)제국주의적 민족으로 되어가고 있는 상황에서, 한국이 '세계무역 12대 대국'이 되고 한국의 '다국적' 대자본이 글로벌 경영이 전면화하고 있는 상황에서 과연 우리가 과거 피억압민족의 경험을 성찰적으로 파악하고한국이 과거의 제국주의적 민족의 경로와 다른 경로를 밟을 수 있도록 한국의 진보주의가 전환점을 만들 수 있는가 하는 문제를 한국시민사회와 민중진영은 심각하게 고민해야 한다.

이런 점에서 한국에서 편협한 국가주의와 민족주의를 넘어서려는 운동은 한편에서는 '자폐적 민족주의'를 담지하는 우파에 대한 투쟁임과 동시에, 다른 한편에서는 진보운동 그 자체의 혁신운동의 성격을 지니고 있다. 한국의 민주진보운동이 국가주의적・ 민족주의적 운동이 아니라 국가주의와 민족주의를 넘어서는 성찰적 운동으로 전개하는 것은 우파의 국가주의와 편협한 민족주의를 넘어서는 것이기도 하면서, 동시에 자신을 국가주의와 편협한 민족주의를 넘는 운동으로 재구성할 수 있느냐 하는 문제라고 생각된다. 이런 점에서 한국의 진보가 민족주의적・국가주의적 진보에서 세계주의적 진보로 전환하기 위한 노력을 새롭게 강화해야 한다.


조희연(성공회대 민주주의와 사회운동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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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국제연대위원회입니다. 10월부터는 '신자유주의적 세계화'를 조명해보고자 합니다. 경제, 문화, 사회, 정치적으로 다양한 현상과 파급력을 가지고 있는 세계화현상을 짚어보면서 그 속에서 제기되는 지구촌 이슈들을 소개하겠습니다. 오늘은 세계화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서부터 출발하고자 합니다.



세계화 또는 지구화 : globalization

우리나라에서는 세계화 또는 지구화라는 단어는 김영삼 정부가 국가프로젝트로 주창한 세계화(sekeyewha)를 통하여 익숙해졌다고 하겠습니다. 당시 개혁드라이브가 퇴조하는 상황에서 국가정책으로 세계화를 제시하였고, 이는 '경쟁력 강화'와 '고통분담론'으로 외화되면서 세계화담론은 친재벌위주의 경제발전을 최고의 가치로 삼는 것으로 형성되었습니다. 하지만 세계화의 현상은 매우 다양한 모습을 보이고 있어 하나의 개념으로 정립하기는 어렵습니다. 세계화는 지구적 차원뿐만 아니라 지역, 개별 국가, 지방차원에서의 변화를 동반하기도 하며, 경제뿐만 아니라 정치, 사회, 문화, 환경 등 다양한 측면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개념의 혼란 속에서도 공통된 몇가지 특징을 발견할 수 있는데, 유엔 개발계획(UNDP)의 '1999 인간개발보고서'에 의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새로운 시장 : 하루 24시간 작동하는 외환시장과 자본시장이 글로벌 차원으로 연계되며, 은행, 보험, 교통 분양의 서비스 시장의 증대, 탈규제화, 그리고 지구적 브랜드를 가진 지구적 소비시장의 확대

▲ 새로운 도구 : 인터넷, 휴대전화, 위성망, 미디어 네트워크 등의 보급과 확산

▲ 새로운 행위자들 : 세계무역기구(WTO), 초국적 기업들과 같은 개별 국가보다 더욱 강력한 구속력을 갖는 행위자들, 그리고 개별 국가보다 더 광범위한 지구적 네트워크를 갖는 NGO들의 출현

▲ 새로운 규칙(rule) : 무역, 서비스 및 지적 소유권 등에 관한 협정이 세계무역기구를 통해 뒷받침되면서 개별 국가들의 정책 자율성을 위축

이렇듯 세계화의 개념은 냉전의 해체에 따른 단일한 세계자본주의체제의 확립과 국가와 국가간의 상호작용과 상호의존도의 비약적인 증대, 자유무역의 지향, 과학기술의 발전에 따른 세계적 동질화 현상을 뜻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세계화 현상의 배경을 보면, 먼저 전자정보통신기술의 발전이 세계화의 촉매역활을 하였습니다. 그것은 전자정보통신기술이 상품, 서비스, 자본의 이동비용을 대폭적으로 절감시키고 이동을 촉진시키기 때문입니다. 전자정보통신기술은 각국간에 존재하던 경제적 의미의 국경을 허물고 또한 '거리의 소멸(Death of Distance)'를 초래시켜 세계를 하나의 촌락으로 만들고 있습니다.

이와 같은 과학기술의 발전과 더불어 오일쇼크 이후 불어닥친 미국의 경제후퇴와 유럽의 경기침체, 이른바 복지국가 모델의 위기, 그리고 탈냉전에 따라 자본주의로 단일체제가 형성되는 등 세계 경제지형의 변화에 따라 국제통화기금(IMF)과 함께 1950-60년대의 자본주의를 지탱해 온 세계경제질서의 축인 '관세 및 무역에 관한 일반협정'(GATT)체제는 위기에 직면하게 되었고, 이를 해결하고자 우루과이라운드의 다자간 협상을 통한 자유무역의 확대를 추구하게 되었으며, 종국적으로는 세계무역기구(WTO)의 출범을 가져왔습니다.

GATT의 여덟 번째 다자간 협상인 우르과이라운드는 기존의 상품무역의 자유화를 위하여 관세문제를 주로 다루었던 기존의 GATT체제를 넘어서서 이전 보호정책이 용인되거나 포함되어 있지 않던 농산물, 투자, 지적 재산권 및 서비스에까지 자유화 조치를 취한 것입니다. 이로 인하여 세계는 무역자유화에 이어 투자와 금융자본의 자유화를 위한 토대를 마련하게 된 것입니다. 다국적(malti) 기업들은 국적을 넘어서 진정한 자유로운 자본으로 특정한 국가적 정체성을 고집하지 않고 최고의 수익성과 안정성을 위해 기꺼이 자리를 옮기는 초국적(trans) 기업으로 전화하였고, 자본축적을 규제하는 조절자로서의 민족국가를 대체할 만한 새로운 조절자로서의 초국적 금융자본이 등장하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세계경제의 변화에는 미국과 영국에서 추진되었던 신자유주의 정책이 그 기저에 깔려있습니다.



신자유주의와 세계화 : 초국적 기업과 국제금융자본, 네 멋대로 해라??

'신자유주의'란 모든 경제활동에 대한 국가간섭 철폐를 주장한 자유주의 이후의 새로운 의미의 자유주의를 의미합니다. 자유주의는 18세기 아담 스미스(A. Smith)의 국부론 이후 형성되었는데, 그는 산업활동과 외국무역에 대해 국가의 간섭을 배제하고 국가는 다만 외부의 위험으로부터 국민을 보호하고 국민 개인간의 갈등으로부터 국민 개개인을 보호하는 것에 그쳐야 한다고 주장하였습니다. 사적 경제활동에 대한 자유방임은(이른바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노동과 자본이 가장 최적의 부문으로 이동되기 때문에 소득이 증대되고 산업이 발달된다고 주장했습니다. 1980년대에 들어 이러한 자유주의적 입장이 다시금 부활한 것이 신자유주의라 하겠습니다.

신자유주의는 1979년 영국의 대처리즘과 1981년 미국의 레이건 정부의 경제정책(레이거노믹스)의 정책기조입니다. 1970년대의 두 차례의 오일쇼크 하에서 세계 자본주의는 장기불황(스태그플레이션)에 빠졌고, 복지국가의 위기 속에서 기존의 자본축적 구조인 포디즘적 축적구조로부터의 탈피와, 복지국가 모델에 대한 지양을 통하여 이를 극복하고자 하였습니다. 대량생산 대량소비로 특징지워지는 포디즘에 대한 반발로 노동시장 및 기업구조, 생산의 유연화(flexibilization)를 강조하면서 노동절약 및 임금삭감, 경제개방 및 자유화 등이 추진되었고, 작은 정부론(downsizing of the government)을 주창하면서 강력한 합리화 정책으로 인한 공기업의 민영화, 탈규제화(deregulation), 복지지출의 감축이 진행되었습니다. 그 결과 '시장만능주의'가 다시 부활하고, '국가실패'(state failure)에 대한 만병통치약으로서 시장이 다시 부각되며 강력한 이데올로기를 구축하였습니다(대처 수상의 이른바 TINA : there is no alternative). 이처럼 신자유주의 정책은 개별국민경제를 넘어서 지구촌 전체를 하나의 자유시장으로 통합하고자 하였고, 이러한 통합에 장애가 되는 각종 정치적, 제도적 장벽들을 무너뜨리기 시작하였습니다.

국제적 수준에서 이러한 과정은 다양한 다자간 경제기구와 협정, World Bank, IMF, WTO, OECD, 그리고 다자간 투자협정(MAI)과 자유무역협정(NAFTA) 등에 의해서 뒷받침되었습니다. 신자유주의의 정신으로 무장한 초국적 기업과 국제금융자본들은 국제기구를 통하여 자신들의 이해를 관철시켰습니다. 무역, 투자, 금융자유화를 위한 조치들은 아시아와 남미의 외환위기사태에 대한 IMF의 조치에서 잘 드러나고 있습니다. IMF가 최근 금융위기를 겪었던 국가들에 대해 구제금융 지원의 조건으로 무역, 서비스, 자본 등 모든 대외경제거래에 대해 정부의 규제나 통제를 철폐하도록 권유했고 시장원리, 자유경쟁, 효율성 등의 개념을 도입하여 기업의 철저한 구조조정과 국가 주요기간산업에 대한 민영화를 강력히 촉구했습니다. 그 예로 멕시코를 보면, 1980년대 중반부터 IMF와 맺은 협약에 따라 민영화, 무역자유화, 규제철패 정책을 도입하였습니다. 외국자본은 대규모로 유입되면서 멕시코 경제는 단기자본에 대한 의존도가 높아지게 되었습니다. 무역수지 적자가 위험수위에 도달하자 50억 달러의 자본이 한꺼번에 빠져나갔으며, 1995년초 멕시코는 파산을 맞게 되었습니다. 1994년에서 1996년 IMF 구제금융 기간이 지난 후 멕시코에서는 1천 5백여개 기간산업의 소유가 대부분 미국인으로 바뀌었고, 투자자유지역의 공장들은 대부분 미국 상품을 제조하였으며, 농업은 붕괴되어 식량안보가 심각하게 위협받게 되었습니다. 이처럼 IMF와 세계은행은 회원국가들로부터 받아들인 방대한 자금력과 미국의 지원을 받아가면서 금융위기를 겪고 있는 국가들의 대외개방을 급속도로 촉진시켜 이들 나라의 보호주의가 한 순간에 무너지게 되었습니다. 보호주의의 철폐는 곧 자유주의 실현을 촉진시킬 뿐 아니라 세계화 확대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이와 같은 점에서 현재 진행되고 있는 세계화의 내용은 바로 신자유주의적 세계화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신자유주의적 세계화와 지구촌

지구촌 시민사회가 세계화에 주목해야하는 이유는 바로 세계화와 신자유주의가 일체화된 형태로 전개되고 있다는 점입니다. 지구촌 시민사회는 이러한 자본운동에 대응하기 위하여 여러 측면에서 단결된 힘을 요구합니다. 하나는 금융자본에 대한 것입니다. 특히 미국의 경우, 과잉자본이 대거 금융부문으로 진출하여 생산을 통한 이윤추구보다는 '돈놓고 돈먹는' 투기형태의 자본이 저지르는 횡포는 극에 달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투기성 자본에 대한 규제가 필요합니다(정상적인 무역거래 규모보다는 금융적 거래의 규모가 17배 내지 25배에 이르고 있습니다). 다른 하나는 신자유주의적 세계화에 따라 20:80으로 두쪽난 지구촌의 남북문제입니다. 즉, '빈곤의 세계화'에 대한 대책마련이 시급한 것입니다. 그리고 그조조정프로그램 등 신자유주의적 세계화가 가지고 있는 반인권성에 대해서도 주목해야 할 것입니다. 그동안 지구촌 시민사회는 유엔의 틀 속에서는 빈곤타파와 개발의 문제를 지구적 공치(global governance)를 통하여 해결할 것을 제기해 왔고, 밑으로부터는 외채탕감운동, 다자간 협정저지운동(MAI), 토빈세운동(외환거래에 대한 세금부과), '세계사회포럼'(WSF) 등이 시도되었습니다. 이러한 과정을 지구촌 시민사회 이슈에서는 살펴볼 예정입니다. 우선 다음주에는 신자유주의적 세계화의 역사적 맥락으로서 WTO체제의 형성과정에 대하여 알아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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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영기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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