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여연대에 ODA감시팀이 처음 활동을 시작할 2005년 당시만 해도 ODA감시팀 최대의 관심사는 ODA의 방향이나 구체적인 감시활동의 전개 내용이 아니라 우선은 어떻게 하면 사람들에게 ODA에 관심을 가지도록 할 것인가였다. 국민들 대부분이 ODA가 어떻게 집행되는지 잘 알지 못하고, 심지어 정부차원에서 개발도상국에 지원을 해 주고 있다는 사실 자체를 생소하게 여기는 국민들도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불과 2년도 채 지나지 않은 지금, 2년 전의 상황이 믿어지지 않을 만큼 우리 주변에서는 ODA에 관한 논의들이 넘쳐나고 있다. ODA를 담당하는 정부 부처 뿐만 아니라 국회의원들도 앞다투어 ODA에 관한 법률안을 제안하고 있다. 2년 만에 대한민국 국민들의 ODA에 대한 인식이 획기적으로 변화된 것인지 아니면 UN 사무총장을 배출한 효과로서 나타나는 일시적인 현상에 불과한 것인지 자못 궁금하다.

ODA(Official Development Assistance, 공적개발원조)는 국가차원에서 무상 또는 유상의 방식으로 개발도상국에 대하여 지원하는 것이다. 지금까지 한국은 ODA 사업을 몇 가지 방법으로 나누어 진행하고 있다. 먼저, KOICA로 더 잘 알려진 ‘한국국제협력단’이「한국국제협력단법」에 근거하여 무상원조 사업을 해왔고, 한국수출입은행이「대외경제경제협력기금법」에 근거하여 유상원조 사업을 해 오고 있다. 여기에 더하여 국민들에게 거의 알려지지 않은 상태이지만 각 중앙 행정부처와 지방자치단체가 독자적으로 대외원조 사업을 실시하고 있다.

개발도상국을 지원하는 것 자체가 문제일 리 없고, 정부가 잘 알아서 지원하면 되는데, 왜 시민단체가 나서서 감시를 한다는 것인지 언뜻 이해가 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국가차원의 지원에는 국민의 세금으로 이루어진 예산이 필요하고, 법률적 차원의 근거 역시 필요하다. 아무리 좋은 목적으로 ODA가 이루어진다고 하더라도 국민의 세금에 의한 예산이 어떻게 쓰이고 있는지, 그 쓰임새는 적절한 것인지, 혹여 지원을 하고도 오히려 나쁜 평가를 받는 상황은 없는지 등의 문제는 개개의 시민 또는 시민단체들이 관심을 가지고 보지 않으면 영영 알 수 없을지도 모른다. 실제로 한국의 ODA가 집행되는 과정에서 보이는 몇 가지 문제들은 시민사회의 적극적인 참여 필요성을 보여주고 있다. 다른 선진국에 비하여 턱없이 낮은 ODA 예산, 지원의 순서와 원칙이 없는 중복 집행의 양상, 사업에 대한 적정한 평가가 이루어지지 못한다는 점 등...

다행스럽게도 최근 ODA에 관한 법률을 정비하고자 하는 노력들은 위와 같은 현재의 ODA 집행에 대한 반성에서 나온 것으로 보이고, 이러한 문제의식을 국회차원에서도 공감하고 있다는 점을 보여주고 있는 것 같다. 외교통상부나 재정경제부에서도 법률안 또는 헌장 형식의 ODA에 관한 기본 체계를 정비하고자 하는 노력을 보인 적이 있고, 국회에서는 얼마 전 국제선 항공권에 부과되는 항공권연대기여금으로 마련한 재원으로 ODA 사업을 진행한다는 내용의「한국국제협력단법」의 개정안이 통과되기도 하였다.

가장 최근의 시도로서는 ODA에 관한 국회의원들의 기본법률안들이다. 이미 김부겸 의원과 우제창 의원이 발의한「대외원조기본법안」과「국제개발협력기본법안」이 국회에서 심의 중이고, 권영길 의원의 「대외원조기본법안」도 전문가 토론 등을 거쳐 국회 상정을 준비 중이다.

법률은 체계나 형식이 딱딱해서 일반 국민들이 쉽게 접근하지 못하는 것이 사실이지만, 법률에는 해당 법률이 문서화되기까지의 사회적 가치관, 이념, 갈등상황과 이를 해결하는 사회적 힘이 반영되어 있다. 법률이 사회의 시류를 잘 따라가지 못한다는 비난을 듣는 것도 이러한 갈등관계를 정리하기까지 상당한 시간이 걸리기 때문이다. ODA에 관한 최근의 법률안들을 들여다보면 법률의 이러한 특성이 잘 드러난다. 각각의 법률안들은 ODA를 둘러싼 우리 사회의 가치관과 이념, 그 속의 갈등 상황들을 확인할 수 있다. 아울러 이들 법률안을 들여다 보면 향후 ODA에 관한 우리 사회의 논의가 어떠한 방향으로 흘러갈지도 짐작해 볼 수 있다.

우선 몇 가지 쟁점들에 대해서 현재 준비 중인 3가지 ODA 기본법의 차이점을 비교해 보면 아래의 표와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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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적, 이념과 관련하여서 가장 첨예한 대립을 보이는 부분은 바로 ‘호혜협력’이라는 표현으로 대변되는 바와 같이 지원국의 입장에서 한국의 국익을 ODA의 목적으로 할 것인가의 문제이다. 이러한 목적상의 차이는 유상원조와 무상원조의 비율을 어느 정도로 할 것인지, 구속성 원조 즉 원조사업의 수주대상을 한국기업으로 한정하는 사업의 비율을 어느 정도로 하는 것이 타당한가라는 문제와 연결된다. 선진 지원국들의 사례와 OECD의 권고사항을 근거로 하여 유상원조의 비율을 낮추고, 구속성 원조 역시 비율을 낮추어야 한다는 주장이 있는가 하면 한국적 상황에 맞는 지원 또는 수원국으로서의 한국적 경제개발 모델의 수출이라는 관점에서 특수한 점을 고려해야 한다는 주장이 대립되고 있다.

집행기관에 대한 부분은 현실적으로 가장 대립이 심한 부분이기도 하다. 지난 몇 년간 진행된 ODA관련 법안의 제정 노력이 가시적 성과를 보이지 못하고 있는 것도 외교통상부와 재정경제부가 ODA관련 업무에 있어 서로 주도권을 주장하면서 합의를 이끌어내지 못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세 법안 모두 국무총리 산하의 위원회를 통해서 기본정책을 수립한다는 점은 동일하다. 그러나 집행을 담당할 기관 부분에 있어서는 차이가 드러난다. 즉 권영길 의원안이 대외원조청 형식의 독자적 정부조직을 구성을 제안한 반면, 다른 의원안들은 현재와 같은 이원적 또는 다원적인 ODA 사업구도를 유지하자는 입장이다. 이 부분에 관해서는 유무상 통합 관리의 필요성, 유상원조와 무상원조의 사업적 특수성, 전문성, 별도의 정부조직 창출의 현실적 어려움 등 다양한 고려 요소로 인하여 향후 실제 제정될 법률의 모습을 예상하는 것이 쉽지 않은 상황이다.

평가 부분은 ODA사업 수행의 적정성 확보와 예산감시라는 차원에서 가장 강조되는 부분이다. 세 의원안 모두 일정 정도 외부 인사의 참여, 평가 결과의 외부화를 통한 평가의 문제를 고민하고 있다. 그러나, 진정한 평가가 가능하기 위해서는 사업시행 주체가 스스로를 평가하는 구조는 탈피되어야 한다는 기본적인 관점에서 볼 때 세 의원안 모두 만족할 만한 수준의 평가방법은 확보하지 못하고 있다는 비판을 피하기는 어렵다.

법률은 입장을 내세우는 것만으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입장에 대한 근거와 그로 인한 효과가 측정되는 가운데 법률이 추구하는 목적을 위해 필요한 수단을 정하는 과정에서 만들어지는 것이다. ODA의 기본법을 만들기 위해서는 ODA가 어떠한 이유로 필요한 것이라는 점에서 출발하여 현재 한국 ODA 실태에 대해 정확히 조사하는 것이 선행되어야 한다. 이를 통해 ODA의 효과와 문제점에 대해 충실히 파악하고 충분히 깊은 논의를 거친 후 당면한 문제점들을 해결하기 위하여 가장 필요하고 적절한 수단과 절차가 무엇인가를 확정하는 것이 필요해 보인다.

일각에서는 현재의 입법 추진 움직임에 대하여 ODA에 관한 국민적 합의가 충분치 않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만약 각자의 입장에서 유리한 논거만을 근거로 하여 계속적으로 자기 주장만 되풀이하고 있는 현재의 모습이 계속 된다면, ODA에 관심을 가지고 제대로 한국의 ODA가 추진되길 바라는 많은 이들의 염원과는 달리 ODA법의 사회적 효과는 매우 미약해질 것이다.

ODA 관련 법안은 그저 ODA를 추진하기 위한 체계를 규율하는 법안이 아니다. 전쟁과 빈곤에서 고통받는 지구촌 이웃들의 시름을 함께 나누고자 하는, 인권과 민주주의, 평화의 세계를 만드는 데 동참하고자 하는 시민들의 선한 의지가 반영되어야 하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작금의 ODA 입법안을 둘러싼 움직임이 의사당 바깥으로 나와 우리 사회의 건전하고 합리적인 토론장으로 나오길 간절히 고대한다. 또한 입법 주체들도 법률이 사회적 갈등양상을 반영하여 최후에 제도화되는 것이라는 점을 다시 한번 새기면서 이미 충분히 확인된 입장의 차이를 강조만 하기 보다는 입장 차이가 나타나는 원인들을 분석하여, 상대방을 설득하는 과정을 통해 충실한 입법 과정을 밟기를 기대한다.
정철(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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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월 9일 미국 뉴욕에서 열린 유엔 총회에서 한국이 유엔 인권이사회의 초대 이사국으로 선출되었다. 정부는 ‘세계가 한국의 인권을 인정했다’, ‘국내외 인권 개선노력을 높이 평가했다’며 자화자찬했다.

모든 선거의 문제는 늘 ‘자격’이다. 정부의 홍보대로라면, 이번 이사국의 선출 기준이 ‘인권의 보호와 증진에 대한 기여도’ 그리고 ‘자발적 공약’에 따른 것이니, 선출된 47 나라 모두는 이사국으로서 자격을 충분히 갖췄다는 말이 된다. 더구나 아시아에 할당된 13 이사국 중 7위로 뽑힌 한국을 비롯하여 그 윗 순위에 있는 인도, 방글라데시, 말레이시아, 파키스탄 등의 인권도 세계가 인정한 셈이다.

하지만, 국제인권단체들이 하루에도 몇 건씩 보내는 이들 나라의 고문, 살해, 강간 소식은 무엇인가? 한국 상황만 보더라도, 사형제도는 아직도 폐지되지 않았고, 국가보안법의 자의적 적용과 남용으로 인한 인권침해는 수차례 국제기구로부터 지적받고 있는 문제다. 또 얼마 전 미등록 이주노동자들의 과도한 단속으로 이주노동자들이 사망한 사건은 우리가 국제사회의 일원으로 살아가는 것을 부끄럽게했다. 무엇보다 민주주의 국가임을 포기한 평택 대추리 주민들에 대한 처참한 폭력 진압은, 인권이사회 설립 결의안에 나와있듯, 이사국의 자격을 중지할 만한 중대한 인권 침해라고 말한다면 지나친가?

후보국들이 내놓은 공약도 대개 일반적이고 모호하다. 그렇기 때문에, 인권이사국에 뽑혔다고 해서, 그 나라가 인권이사국으로서 충분한 자격이 있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인권단체들은 이런 부실한 공약들이나마 제대로 실행되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그래서 공약을 검토하고 그 결과를 해당 정부에 전달하면서 부족한 점은 개선토록 제안하고, 이후 이사국으로 선출되든 안되든 공약을 충실히 이행할 것을 독려하였다. 국제인권단체들은 하나같이 이번 선거를 해당 국가의 인권 개선에 이바지하는 기회로 적극 활용하고자 한 것이다.

유엔 인권이사회의 초대 이사국 선출에 대한 국제인권단체들은 관심은 높았다. 그도 그럴것이 인권이사회는 지난 60년간 활동한 기존 유엔 인권위원회를 대체하게 된 신설기구로, 격상된 법적 지위와 강화된 기능을 갖고 있다. 그러나, 인권이사회의 설립만으로 세계 인권의 보호, 증진을 위한 실효성 있는 논의의 장이 되리라는 평가를 하기엔 섣부르다. 3월 15일 유엔 총회가 통과시킨 인권이사회 설립 결의안엔 구체적인 이사회의 임무와 운영 방식에 대해서는 언급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즉, 이사국들의 입장에 따라 기대만큼 기능이 제대로 작동되지 않을 수 있다는 말이다. 그 운영의 성패는 초대 이사국들에 전적으로 맡겨진 것이다. 이는 이번 초대 이사국 선거를 유엔 인권이사회의 첫 시험대라 부르며 인권 단체들이 주목한 이유이기도 하다.

이에 국제인권단체들은 초대 이사국 선거 대응 활동을 활발히 벌였다. 그 중 ‘유엔 워치’ 같은 단체는 특정 나라들을 인권침해국이라며 이사국으로 선출되는 것을 반대하기도 했고, ‘국제앰네스티’는 ‘자격을 갖춘 이사국 선출을 위한 국제캠페인’을 통해, 후보국들의 인권 상황을 웹사이트에 공개하고, 각국 정부에 투표시 정치적 고려를 삼가고 공개된 인권상황를 검토해서 투표할 것을 촉구하였다.

한국의 인권사회단체들은 정부가 이번 이사국 출마를 계기로 국내외 인권상황에 대한 자성의 계기로 삼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옳은 말이다. 한국의 경제 성장이나 민주화 진전 정도를 볼 때, 아시아 13 이사국 중 하나로 뽑힌 것은 이변이 없는 한 예상된 일이었다. 그러니 한국이 인권이사국으로 뽑혔다는 것이 마치 인권 문제에 대한 면죄부를 받은 것인양 착각하거나 호도해서는 안된다. 중요한 것은, 인권을 보호하고 증진하려는 막중한 역할과 책임이 맡겨진 인권이사국으로서, ‘자격 있다’는 평가를 우리 국민으로부터 받을 수 있도록, 진정한 의지를 보이는 것이다.

더구나 한국은 이제 국내에 머물지 않고 세계 인권, 평화를 위해 적극 노력하겠다는 의지를 표명한 상태다. 차기 유엔 사무총장 후보 출마가 이를 단적으로 말하는 것 아니겠는가. 국내 인권 상황조차 개선시킬 노력을 적극 기울이지 않으면서 세계 인권을 논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인권이사회의 설립 결의안엔, 이사국들이 ‘인권의 보호와 증진에 있어 최고의 기준을 지향해야 한다’고 나와있다. 이사국이 된 한국 정부는 이제부터가 중요하다. 인권이사회가 인권 논의를 위한 실질적인 기구로 발전할 수 있도록 노력하는 것은 물론이고, 말 그대로 인권의 보호와 증진에 있어 최고의 기준을 지향하도록 국내외에서 실체적인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이제 한국 시민사회와 세계 시민사회가 지켜보고 있을테니 말이다.

김은영 (참여연대 정책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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