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국 사태에서 나타난 시민사회의 갈등
얼마 전 친 탁신 세력 "붉은 셔츠"의 시위로 방콕 일대에 비상사태가 선포되고 군 진압작전 중 유혈사태가 발생했다. 공식 발표에 따르면 2명이 사망하고 100명이 훨씬 넘는 인명이 부상 당했다.
이 과정에서 한 가지 궁금한 것은 태국 시민사회의 입장이다. 지금까지 태국에서 군과 민간인이 충돌하는 수 차례의 유혈 사태가 발생할 때마다 시민사회는 한목소리로 군과 정부에 책임을 추궁했다. 하지만, 이번 경우는 달랐다. 그 주된 이유는 시민사회의 중요 세력들이 이미 "붉은 셔츠"로 불리는 독재저항 민주주의 연합전선(UDD)과 "노란 셔츠" 부대 국민민주주의연대(PAD)로 나뉘어져 각각 제편들기 정치활동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PAD는 2005년 초 언론재벌 쏜티 림텅꾼이 중심이 되어 만든 반 탁신 연합세력이다. PAD의 1, 2기 지도부에는 다양한 시민사회 운동가들이 참여하고 있다. 대표적인 인물이 전국공기업노동조합 사무총장 쏨싹 꼬싸이쑥, 민주주의진흥위원회 위원장 피폽 통차이, 빈민회의 고문 쏨끼얏 퐁파이분, 태국전력공사 노조위원장 씨리차이 마이응암, 태국철도공사 노조 임원인 싸윗 깨우완, 여성과 헌법 대표 말리랏 깨우까 등이다. 또 1992년 5월 민주화운동에 참여했던 싸란유 웡끄라짱 같은 인물도 있다. 이외에도 전국노동조합연맹, 불교단체 싼띠아쏙, 변호사, 연예인, 청소년그룹 등이 PAD에 참여하고 있다.
UDD는 2006년 9월 쿠데타 발생 후 이에 반대해서 생겨난 친 탁신 지지 세력이다. UDD에도 시민사회 운동가들이 다수 참여하고 있다. 대표적인 인물은 1992년 5월 민주화운동을 이끌었던 학생 대표 짜뚜펀 프롬판, 1976년 쿠데타 후 끝까지 투쟁한 '카오빠 (산에 들어가서 끝까지 투쟁했던 시위대 그룹)' 중 일인인 웽 또찌라깐, '독재가 싫은 토요일의 사람들(끌룸콘완싸오 마이아오파뎃깐)' 창설자이자 대변인 위푸탈랭 팟타나푸미타이등이 있다. 북부와 동북부의 농민단체, 방콕의 노동자·택시기사단체 등도 주요세력으로 참여하고 있다.
PAD를 지지하는 시민사회운동세력들은 탁신 정권을 농촌 유권자들의 무지를 악용한 부패한 포퓰리즘 정권으로 규정한다. 그래서 포퓰리즘 정책에 매수당한 농민과 빈자들은 민주주의를 올바로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에 투표권을 제한해야 하며, 의회의 70%는 임명직으로 하고 30%만 선출직으로 구성할 것을 주장한다.
이들은 탁신의 부정부패와 마약과의 전쟁이나 남부 무슬림 분리주의 운동을 무력진압 함으로써 발생한 인권유린 사태를 강력하게 비난했지만, 2006년 9월 쿠데타를 지지했고 2007년 개악된 헌법을 만드는 데도 앞장섰다. 그 주요 내용은 임명상원제도의 일부 부활, 정당정치와 의회의 권한을 약화시키고 관료체제와 사법부의 권한을 강화시키는 등 민주주의를 후퇴시킨 것들이다. 개악된 헌법으로 치러진 2008년 선거 후 탁신이 지지한 팔랑쁘라차촌 당(PPP)이 압승을 거둔 후에는 막무가내식으로 정부청사와 수완나품 국제공항을 점거한 채, 군부와 사법부 지지를 받아 두 명의 총리를 쫓아내기도 했다.
대의민주주의 원리를 부정하고 법치를 무시하는 "탱크 리버럴"이라고 비난받기도 하는 이들은 주로 군부, 관료, 방콕을 중심으로 한 중산층, 왕정지지 기득권세력들과 이해를 같이한다.
UDD를 지지하는 시민사회운동세력들은 포퓰리즘 정책을 통해서 농민과 빈자를 보호하고 엘리트 민주주의, 낡은 관료주의 세력을 청산하고 일부 특권층이 아닌 모든 국민이 주인이 되는 진정한 민주주의를 실현할 것을 주장한다. 이들은 국왕을 정치적으로 선점해 버린 PAD에 의해 공화정 추진세력으로 몰리고 있다.
표방하는 가치만으로 보면 UDD를 지지하는 시민사회운동세력들이 더 민주적으로 보일 수도 있지만 이들은 탁신이 포퓰리즘 정책을 추진하면서 저지른 인권유린과 사회운동탄압 사례에 대해서는 입을 다물고 있다. 부정부패에 대해서도 그것은 태국정치에 항상 있었던 것이고, 모든 정치인에게 해당하는 것으로 탁신만 비난받아서는 안 된다는 옹색한 입장을 보인다. 이들은 북부와 동북부 농민과 도시 빈민들의 입장을 대변하고 있다.
정치적으로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는 PAD와 UDD에 속해 있는 각각의 시민사회운동세력들은 이번 유혈사태뿐 아니라 이후 부각되고 있는 중요한 정치적 이슈들에 대해서도 상이한 입장을 보인다. 이들은 정치개혁, 헌법개정, 새로운 총선 실시 문제 등에 대해 정파적 이해관계에 묶여 설득력 있는 독자적 대안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결국, 시민사회운동세력의 분열과 정치화는 태국 민주주의의 발전의 한계성을 노출시키고 있다고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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