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리랑카 인권 활동가 룩샨을 만나다
26년간 지속되고 있는 스리랑카의 내전은 국제적으로도 잘 알려지지 않은 내전이다. 1948년 외세로부터 독립한 이후, 다수 종족인 싱할리족이 소수 종족인 타밀족을 차별하여 스리랑카는 심각한 종족분쟁에 휘말리게 되었다. 정치, 경제, 사회, 문화의 모든 영역에서 지배권을 장악한 싱할리족은 인도 남부에서 이주해온 타밀족의 모든 참여의 기회를 박탈하였다.
1956년 싱할리족이 “오직 싱할리어”를 스리랑카의 공식언어로 할 것을 주장하면서 타밀족의 분노를 사게 된다. 이 분노는 곧 폭동으로 번지게 되었다. 일부 세력은 1983년 LTTE(타밀 타이거)라는 무장테러 조직을 결성하여 싱할리족의 소수족 차별에 맞서 저항하였으며, 이 과정에서 1천여 명의 타밀족이 학살되는 대참사가 일어났다.
이후 타밀타이거와 싱할리 정부군의 충돌로 지금까지 약 10만 명이 사망하였다. 이 내전으로 수십만 명이 고향을 떠나 피난민이 되었고, 수많은 사람들이 체포, 구금, 고문을 당하고 행방불명되거나 심지어 암살을 당하는 등 온갖 형태의 인권유린이 스리랑카에서 일상화되었다.
룩샨 페르난도씨는 현장에서 보고 들은 인권유린 사례를 모두 조사하여 국내외 국제기구에 이를 알리는 활동을 열정적으로 해왔다. 특히 그동안 외부에 잘 알려지지 않았던 난민들의 고통스러운 삶을 국제사회에 알리고 체포, 구금, 살해, 행방불명 등의 인권유린을 반대하는 운동을 해왔다. 그의 이러한 활동은 싱할리족뿐만 아니라 타밀족들도 경계하는 것으로 룩샨 씨는 현재 두 종족으로부터 위협을 받고 있다.
그의 헌신적인 활동을 인정하여, 지학순 정의평화기금은 4월 21일 제12회 ‘지학순 정의평화상’ 시상식을 열어 그에게 상을 수여했다. 지학순 정의평화상은 민주화와 평화, 인권운동에 헌신한 고 지학순 주교(1921~93)의 뜻을 기려 1997년 제정된 상이다.
수상을 위해 잠시 한국을 방문한 룩샨 페르난도씨는 몇몇 시민단체 분들과 함께 참여연대를 방문하였다. 비록 짧은 시간이었지만, 그를 통해 스리랑카에서 현재 일어나고 있는 비극적인 상황을 생생히 전해들을 수 있었다. 룩샨 페르난도씨에 의하면 비록 미미한 수준에 그칠지라도 UN의 인권 모니터링 작업과 타밀지역에 대한 인도적 물자지원은 절실하다고 한다. 정부군과 타밀타이거 사이의 분쟁으로 인해 수많은 난민들이 인권을 유린당하고 심지어 학살당하는 현실 때문이다.
또한 그는 UN의 인권기구들이 별다른 저항 없이 스리랑카 정부군의 요구에 따라 순순히 학살현장을 외면하고 국외로 도피한 점에 대해서 비판의 목소리를 높였다. ‘한국의 NGO들에게 바라는 점이 있느냐’는 질문을 받은 그는 몇 가지 부탁의 말을 전했다. 대국민 캠페인들을 통해 많은 사람들에게 스리랑카의 참상을 알려달라는 것이었다. 그는 특히 종교 지도자들의 지지를 요청했다. 또한 언론의 기사화를 통해 스리랑카의 현지 상황에 관심을 가져줄 것을 당부했다.
룩샨 자신이 스리랑카 내 주요 세력인 싱할리족임에도 불구하고 살해의 위협까지 감수하며 활동하는 이유를 묻는 질문에, 그는 가톨릭 신자로서의 믿음을 실천하기 위해서일 뿐이라고 답했다. 어떠한 이해관계 없이 순수한 인간애를 실천하는 그의 모습에서 나는 희망을 볼 수 있었다.
현재 스리랑카의 내전은 5월 18일 타밀반군 최고 지도자가 사살되면서 종식되었다. 그러나 타밀족 난민 문제 등 스리랑카에는 새로운 과제가 남게 되었다. 륙산의 또 다른 행보가 예상된다. 그에게 응원을 보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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