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은 어디로 가고 있는 것일까?


하얀 아오자이를 입은 여고생들이 자전거를 타고 일시에 하교를 하는 모습은 불그스레한 노을을 배경으로 학이 무리지어 날아가는 착각을 일으키는 매혹이었다. 불과 십 오년 전 호치민 시내에서 매일 같이 연출되던 이 장면은 사라졌다. 형형색색의 유니폼과 티셔츠를 입은 사람들이 바닷물을 가르는 새우 떼처럼 오토바이를 타고 이리저리 얽혀 나름의 질서를 만들어내고 있을 뿐이다.

호치민의 외양은 매일매일 변신하고 있다. 개방초기 길거리를 수놓던 씨클로(xich lo)는 시에서 발급한 번호판을 달고 명맥만을 유지하고 있다. 꽃이나 껌을 팔기위하여 끈질기게 진로를 방해하던 소년, 소녀들은 관광객의 편의를 위하여 어디론가 증발되었다. 식민시대, 전쟁, 그리고 사회주의 강성개혁(hard reform)시대를 상징하던 수많은 건물은 근대화를 상징하는 고층건물에 밀려 매일 역사의 저편으로 자취를 감추고 있다. 백화점에 넘쳐나는 명품 진열대를 보고 있으면 이곳이 불과 십여 년 전 안경, 모자, 신발까지 절도의 표적이 되던 빈곤의 땅이었음을 망각한다.

이러한 변화를 보고 성장주의자들은 칭찬을 아끼지 않는다. 도이머이(Doi Moi)라고 통칭되는 개혁개방정책 이후 매년 평균 7-10%의 성장을 가능하게 한 정부의 정책방향 그리고 국민의 높은 교육열과 근면함에 경의를 표한다. 역사학자들도 베트남의 저력을 새삼 강조한다. 베트남이 캄보디아 내전을 포함해서 중국과의 큰 전쟁에서 자주 승리했을 뿐 아니라 전쟁에는 져본 적이 없는 천하강적 미국에게 1패의 전적을 안긴 유일한 나라라는 점을 상기시킨다. 숫자와 외양만 보면 베트남에 관한 이들의 평가는 결코 과장된 것이 아니다. 베트남은 성장하고 있고 앞으로도 성장할 잠재력을 가지고 있음에 분명하다.

하지만 베트남의 외형적 성장 뒤에는 짙은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음을 잊어서는 안 될 것 이다. 베트남의 현재는 미래에 대한 예견을 유보하게 하는 여러 가지 모순을 안고 있다. 이러한 모순이 해결되거나 해소될 수 있을지, 아니면 새로운 변화에 대한 요구를 폭발시킬지 두고 볼 일이다. 베트남은 어디로 가고 있는 것일까? 짧게는 5년, 길게는 10년 안에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을 찾아낼 수 있을 것이다.

베트남의 미래를 가장 어둡게 만들고 있는 것은 나날이 벌어지고 있는 빈부격차이다. 베트남에서 한국인이라고 부를 자랑하거나 현지인을 업신여기다가는 망신을 당할 수 있다. 웬만한 자가용을 가지고 있다고 거들먹거리다가는 벤츠와 BMW에서 내리는 베트남인을 보고 머쓱해진다. 일부 공산당 간부와 관료들 그리고 신흥기업가들은 서울의 강북에 맞먹는 가격의 집을 수십 채 가지고 자녀를 비싼 국제학교에 보내거나 아예 미국유학을 보낸다. 나이트클럽에는 수백 달러하는 위스키를 여러 병 시켜 놓고 매일 파티를 즐기는 젊은이들을 쉽게 찾아 볼 수 있다.

반면 베트남에서 가장 임금이 높은 호치민의 노동자의 평균임금은 150달러 정도이다. 더욱이 미숙련노동자들은 최저임금을 조금 넘는 돈으로 생활을 한다. 이들이 아이 둘을 낳고 가족을 이루고 살려면 한 달에 400-500 달러는 필요한데, 현재의 임금으로는 부부가 모두 공장노동을 해도 생활비를 충당할 수 없다. 이런 현실에서 생존하기 위해서는 결혼을 하지 않거나, 결혼을 해도 아이를 낳지 않거나, 숙련노동자가 되어 임금을 더 받는 수밖에 없다.  이런 상황에서 물가는 나날이 치솟으며 이들의 어깨를 짓누르고 있다.  

결과적으로 노동자가 호소할 곳은 파업 밖에 없다. 베트남의 주요 공단에서 매년 여러 차례 파업이 불길처럼 번지는 것은 불가피한 일이다. 외자기업의 경영자들도 노동자의 파업이 “떼를 쓸 수밖에 없는 현실” 때문이라는 점을 인식하고 있다. 다만 파업이 일어나면 주동자와 요구조건이 명확하지 않아 협상이 쉽지 않다는 점을 불만스러워 한다. 이처럼 베트남에서 와일드 캣(wildcat)이 일반화되고 있는 것은 노동자들이 기존 노동조합을 불신하기 때문이다. 동시에 파업을 감행하면서도 일자리를 잃거나 경찰의 주목을 받는 것을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이처럼 빈부의 격차가 커지고 노동자의 생활이 힘들어지는 만큼 베트남의 미래는 불투명해지고 있다. 한편으로 현재와 같은 산업구조로는 조만간 안정적 경제성장이 흔들릴 것이다. 물가가 오르고, 노동자의 생활이 힘들어지고, 임금인상을 요구하는 파업이 늘어나면 자연히 노동집약적 산업이 감내할 수 있는 임금수준을 넘어설 것이기 때문이다. 최악의 경우에는 노동집약적 외국공장들이 앞을 다투어 떠나고 산업 공동화가 일어날 수도 있다. 이 때문에 산업구조를 고도화하려는 체계적인 노력이 없이 베트남의 미래는 없다.

다른 한편으로, 베트남의 미래가 불투명해질수록 노동자들의 정치적 요구가 거세질 것임에 분명하다. 베트남은 노동자의 나라이며 사회주의 국가이다. 현재는 성장을 볼모로 설득하고 강한 공안(公安)의 힘을 동원하여 노동자의 불만을 잠재우고 있지만 앞으로도 노동자들이 국가이념과 현실 사이의 모순을 용인할지는 불투명하다. 빈부의 격차가 큰 사회주의국가 그리고 노동자가 가장 못사는 노동자국가에서 어떤 정치가 일어날지 두고 볼 일이다.

베트남이 어디로 가고 있는지에 대한 해석이 단기적인 수치와 사건에 의해 예단되는 것을 보면 안타깝다. 몇몇 국영회사가 부도가 나거나 주식시장이 요동친다고 비관에 빠지고, 역으로 베트남에 쏟아지는 외자나 높은 성장률을 보면서 낙관하는 것은 단견이다. 베트남은 향후 5-10년 안에 산업구조조정에 성공할 수 있을지 그리고 빈부격차를 줄이고 노동자의 삶을 어떻게 개선할 수 있을지에 성패가 달려있다. 베트남의 저력을 믿으면서도 불안감을 감출 수 없는 것은 베트남의 지도자들과 외국자본이 모두 이런 정치경제적 현실보다 당장 눈앞의 이익에만 집착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회의가 들기 때문이다.  
           

    채수홍(전북대 고고문화인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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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여수 출입국관리사무소의 화재로 숨진 분들의 명복을 빌면서, 참담한 마음을 금할 길 없다. 화재의 원인이야 어찌되었든, 그런 위급한 순간에 수용자들을 제대로 탈출시키지 못한 출입국 관리소의 한심하기 짝이 없는 관리 상태와 구조 체계의 미비를 강력히 비난하며, 하루속히 적절한 대응책을 세울 것을 강력히 촉구하는 바이다.

그러나 일개 출입국관리소의 수용시설에 대한 개선과 몇몇 책임자에 대한 징계 등은 미봉책에 불과할 것이다. 출입국 관리소와 기타 불법외국인 노동자의 수용시설 전반에서 일상적으로 일어나고 있는 인권유린의 문제를 이번 기회에 근본적으로 짚고 넘어가야 한다. 외국인 노동자는 이미 우리 사회의 일부로 자리 잡았다. 그들이 자신들의 경제적 이익을 위해 한국에 들어왔지만, 이제 우리 경제는 그들의 노동력 없이 움직이지 못할 정도로 그들을 필요로 하고 있다. 그들이 우리 경제구조에서 차지하고 있는 부분을 내국인 노동력으로 대체할 가능성은 희박해 보인다. 국내에서 누구도 그 역할을 하려 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들이 국내에서 경제활동을 하고 있는 한, 노동자로서 누려야 하는 최소한의 권리를 국가는 보장해야 한다.

최근 외국인 노동자를 들여오는 방법이 산업연수생 제도에서 고용허가제로 바뀌었고 이는 이전보다 진일보한 정책이라는 것은 인정한다. 그러나 여전히 개선되고 있지 않은 부분은 바로 불법 이주노동자에 대한 우리 정부의 정책과 우리 사회의 싸늘한 시선이다. 그리고 이런 정책의 부재와 사회의 무관심이 이들에 대한 인권 유린이 계속 자행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한다.

많은 나라들이 불법 이주노동자의 입국과 체류를 용납하지 않는다. 불법체류자의 문제는 주권국가의 국경과 주권 보호와 연관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중요한 차이는 그런 불법 이주노동자들에 대한 단속과 수용이 얼마나 합법적으로 인권을 존중하면서 행해지는가라는 문제이다.

형법상 범죄자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폭력적이고 강압적인 단속과 검거가 행해지고, 수용기간 중에도 일상적으로 폭언, 폭력과 강압이 행사되며, 외부와 연락을 하거나 자신의 법적 권리에 대해서 적절한 조언을 구하지도 못하는 것이 불법 이주노동자 인권의 현주소이다. 그리고 이런 일상적인 인권유린이 자행되는 데는 불법 이주노동자들을 단속하고 수용하고 본국으로 송환하는 모든 과정과 절차에 대한 법적 규정들이 너무 모호하고 포괄적이라는 점도 크게 작용한다. 이런 법적 미비점으로 인해 불법 노동자들은 법률의 자의적 해석, 관리자 개인판단에 의한 임의적 처분 등의 인권 유린에 노출된다.

인권이란 가치에는 국경도 국적도 없다. 한국인이 외국의 감옥이나 수용시설에서 이런 비극적인 일을 당했다고 가정하면 온 나라가 떠들썩한 이슈가 될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그들이 우리나라 국민이 아니고, 이주노동자라는 이유로 지금 이 순간에도 어디선가 자행되고 있는 그들에 대한 인권유린에 대해서 입을 다물고 있지는 않았는지 되돌아볼 일이다. 정부의 재발방지 대책과 법적 보완은 물론이고 우리 시민 한사람 한사람의 각성이 요구된다.

국제연대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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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전부터 명절이 되면 전국 곳곳에서 아시아 외국인노동자와 결혼이주여성들을 위한 행사가 개최되고 있고 올 추석도 거르지 않았다. 10년 전만해도 우리는 아시아로부터 온 외국인들이 왠지 거북하여 거리를 두거나 서먹서먹해 했지만 지금은 서로 상당히 가까와진 느낌이 든다. 이렇게 우리는 아시아 이주민들과 함께 살아가는 법을 배우고 있는 과정에 있다.

1990년에 2만 명이 못되던 우리나라 외국인노동자가 2004년 말에 42만 명을 넘어섰다. 출신국가별로 보면 중국, 인도네시아, 베트남, 필리핀, 태국, 방글라데시, 몽골, 우즈베키스탄, 파키스탄, 스리랑카 순으로 이어지는 아시아 사람들이다. 한편 국제결혼은 1993년 전체 혼인신고의 1.6%에 불과했지만 2005년에는 13.6%로 늘어났다. 농어촌지역 혼인은 국제결혼인 경우가 35.7%나 된다고 한다.

이러한 아시아 이주노동자와 결혼이민자여성의 한국러시와 그에 대한 한국사회의 책임의식은 백여 개에 달하는 외국인노동자 및 이주민인권운동단체들을 출현시켰다. 처음에 우리는 이들을 도와주어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런데 요즈음에는 다양한 아시아인들과 공존할 수 있게끔 우리 사회가 다문화적으로 재편되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고, 문화다양성이 곧 글로벌 시대의 경쟁력이라는 논리까지 제기되고 있다. 아시아 이주자들이 우리를 부담스럽게 만드는 사람들이 아니라 우리를 풍요롭게 해주는 사람들이라는 생각에 다다른 것이다. 참 멋있는 발상이다.

그런데 어떻게 그러한 생각을 실천할 수 있을까? 생각만 전환적으로 한다고 될 일은 아닌 듯하다. 우리를 다문화적으로 만드는 기획은 명절 때마다 아시아인들에게 한복을 입히고 한과를 먹고 한국예절을 배우는 자리를 만드는 것으로는 달성되기 어렵다. 물론 한국을 알게 하는 일은 이들에게 즐거운 일이자 꼭 필요한 일이므로 계속되어야 한다. 그렇지만 이들의 위상을 교육과 실천의 대상이 아니라 주체로 재조정하는 기획 또한 즐겁고 꼭 필요한 일이다.

그들이 사회적으로 무엇을 할 수 있겠느냐며 의문을 품는 이들도 있겠지만 일부 단체들이 이미 선례들을 보여주고 있다. 어떤 외국인노동자센터는 외국인노동자와 한국인이 함께 아시아문화를 학습하는 소모임을 결성하였는데, 외국인노동자들이 자기 나라의 문화, 언어, 예절, 종교를 다른 나라 출신의 외국인들과 한국인들에게 가르치는 방식으로 운영하고 있다. 또 다른 외국인노동자단체에서는 아시아 소식을 아시아 각국의 언어로 게시하는 웹사이트를 만들었는데 그 사이트의 내용을 채우는 이들이 바로 외국인노동자들이다. 외국인노동자로 구성된 밴드가 외국인노동자의 고통과 희망, 연대의 필요성을 노래하여 우리 민중문화운동에 신선한 바람을 불러일으키고 있는 것도 같은 맥락의 기획과 실천이다.

우리를 아시아의 다양한 문화로 이끌고 그 속에 담긴 풍요로운 지혜로 인도하는 교사가 바로 이주노동자들과 결혼이주여성들인 것이다. 이러한 발상을 실현하려면 우리의 아시아 친구들을 수동적 수혜대상에서 능동적 기획주체로 인식하고 역할을 부여하는 기획, '그들을 위한 자리'인 동시에 '우리를 위한 자리'여서 '함께 하는 자리'로 만드는 기획과 실천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 이 글은 [열린전북]에 실린 글입니다.
전제성(전북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국제연대위원회 실행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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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지구촌 시민사회 두 번째 이야기입니다.

드디어 월드컵이 개막을 하였습니다. 온 국민이 축구를 매개로 하나가 되어 응원하는 모습! 보기만 해도 흥겨운 일입니다. 하지만, 고개를 약간 옆으로만 돌린다면 우리가 즐기는 월드컵이 그리 곱게 만은 보이지 않을 것입니다.

FIFA와 초국적 기업

FIFA는 월드컵 기간에 사용되는 스포츠 용품은 FIFA와 계약을 맺은 초국적 기업이 생산하고 있습니다. 주로 파키스탄, 인도, 스리랑카 등에서 생산되는 이들 용품은 열악한 노동환경 속에서 노동권을 보호받지 못한 상태에서 생산되고 있습니다. 특히 더욱 심각한 것은 수만은 아동들이 축구공 한 개당 100원에서 150원의 돈을 받으며 하루종일 손으로 축구공을 꿰매고 있다는 것입니다 (ILO에서는 이미 1973년부터 14세 이하 아동노동을 전면 금지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아동노동과 스포츠 산업의 노동조건에 대해서는 시민사회의 지속적인 지적이 있었습니다. 이에 따라 지난 1998년 이후 FIFA는 FIFA와 기업 간 계약시 윤리강령을 포함시켰습니다. FIFA 라이센싱 용품을 생산하는 기업은 아동노동을 이용하지 않는 것을 증명해야 하고, 생산과정을 독립적인 감독관이 감사하도록 하는 프로그램을 이행해야 합니다.



노동하는 아이들

그러나 이러한 계약조건에도 불구하고 아동노동은 여전히 계속되고 있으며, 성인 노동자 역시 노동권에 대한 보장이 지켜지고 있지 않고 있습니다. '아동노동 반대를 위한 세계행진'(Global March Against Child Labour)의 보고서는 이를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파키스탄의 시알코트 지역(현재 1년에 약 3500만개의 축구공 생산지역)에 대한 보고서에서 글로벌 마치는 2002 월드컵 주요 후원자인 코카콜라와 아디다스가 아동노동을 시킨 사실을 지적하였습니다.

대부분 가내수공 형태의 비등록 사업장에서 축구공 생산에 이용된 아이들은(적게는 5∼6세부터 10대 중반까지) "어떨 때는 하루에 14시간 동안 똑같은 자세로 앉아 무릎사이에 가죽 조각을 고정시킨 채 조각을 꿰매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노동환경 역시 열악하여 "어두운 방에서 오랫동안 집중하여 일을 하고 있기 때문에 시력에 문제가 생기고 있으며, 바늘에 찔리거나 손과 손가락이 상처를 입거나 구멍이 나고 실을 잡아 다녀야 하기 때문에 새끼손가락이 비틀어지고 등의 통증을 느끼고 있으며", 또한 "축구공을 완성해서 갖다주어야만 돈을 받을 수 있어, 성인과 아동 모두 안정적인 수입을 얻지 못하고, 따라서 최저생계비를 벌기 위하여 가족 전체가 축구공 만드는 일에 매달리는 경우가 많다"는 점이 드러났습니다.



희망 잃은 노동자

노동환경과 노동권이 보장되지 못하고, 인권이 침해되는 경우는 성인 노동자도 마찬가지입니다. 지난 27일부터 '노동자, 아동노동착취 월드컵 후원 초국적 기업반대 공동행동'이 개최한 캠페인 및 공개토론회에 따르면, 스포츠용품 초국적 기업의 하청기업으로 동남아에 진출해 있는 한국기업들이 현지 노동자들의 인권을 심각하게 침해하는 기업운영을 하고 있는 것이 드러났습니다. 한국 기업들은 노동자 부당해고, 강제노동, 임금체불을 하는가 하면, 심지어는 화장실 가는 시간도 제한하는 등 인권침해와 횡포가 심각한 상황입니다(이날 토론회에 참가한 해외단체들은 초국적 기업의 부당행위를 감시하기 위해서는 자국내 해외진출기업들의 감시활동을 꾸준히 하고, 전 아시아 연대를 통해 이러한 기업들에 대한 압력을 행사할 것을 주장하였습니다).



지구촌... 우리는 하나?

이처럼 만들어진 축구공으로 하는 경기를 보면서 우리는 즐기고 있습니다. 물론 스포츠를 즐기는 것 자체가 잘못이라는 것이 아닙니다. 다만, 우리의 즐거움은 지구 저편 '고사리 손'에서부터 시작하고 있음을 기억한다면, 그리고 그들과 우리가 인간이기에 다르지 않음을 인정한다면, 우리는 그들과 같이 즐거울 수 있는 길을 찾아야 하지 않을까요? FIFA는 스스로가 자신의 라이센싱 상품에 아동노동을 금지한 약속을 보다 성실하게 지켜야 할 것입니다. 그것은 진정 월드컵이 세계인의 축제가 되는 길일 것입니다.

관련싸이트

국제민주연대 홈페이지

CCC (Clean Clothes Campaign) 홈페이지

아동노동 반대를 위한 세계행진 홈페이지

양영미
Posted by 영기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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