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마(미얀마) 디페인학살 4주년 규탄과 진상규명 촉구 공동성명서



5월 30일은 버마에서 디페인 학살이 일어난 지 4년째 되는 날입니다. 그러나 버마군사정부는 학살에 대한 진상규명을 위한 노력을 전혀 하고 있지 않을 뿐만 아니라, 학살의 피해자를 지금까지 수감하고 있으며 노벨평화상 수상자인 아웅산 수치 여사에 대한 가택연금을 1년 더 연장한다고 최근에 발표하였습니다. 이에 대한 규탄과 진상규명 촉구 기자회견을 한남동 버마 대사관 앞에서 가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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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명]

오늘 2007년 5월 30일은 버마(미얀마)의 디페인에서 군부독재에 의한 학살이 일어난 지 4년째 되는 날이다. 버마민주화를 바라는 버마인들과 한국단체들은 디페인 학살에 대한 진상규명과 학살의 피해자를 포함하여 모든 정치범을 하루속히 석방할 것을 강력히 촉구한다.

버마의 디페인 지역에서 2003년 5월 30일, 전국을 돌며 강연회를 하던 아웅산 수지 여사를 포함한 민족민주동맹(NLD) 정당의 지도부를 겨냥한 것으로 보이는 테러가 일어났다. 버마망명정부에 의하면 이 현장에서 70여명이 살해되고 200여명이 부상을 입었으며 실종자들도 상당수에 이른다. 이 사건을 계기로 버마군사정부(SPDC)는 대대적인 야당에 대한 탄압을 자행하여 단 며칠 동안에 총 256명을 체포하고 이 중 100여명은 아직까지도 감금되어 있다. 또한 이 사건을 빌미로 전국의 NLD 사무소를 폐쇄하고 주요 대학에 휴교령을 내렸다.

사건 직전, 군사정권의 엄혹한 상황에서도 아웅산 수지 여사의 강연을 보기 위해서 수만명의 버마 국민들이 모였다. 버마민주화를 간절히 바라는 버마민중들의 염원은 또다시 잔인한 물리적 폭력에 의하여 짓밟힌 것이다. 사건이 발생한지 4년이 지난 현재까지도 버마군사정부는 정확한 희생자 숫자와 책임자가 누구인지 진상규명을 하고 있지 않으며 이를 요구하는 국제사회의 요구도 받아들이지 않고 있다. 버마의 정치 상황과 사건의 현장 목격자들 그리고 국제인권단체의 증언 등을 종합해보면 디페인 학살의 배후에는 버마군부가 있을 것이라는 강한 의구심을 지울 수 없다. 2003년 11월, 58차 유엔총회 제3위원회에서 유엔특사 폴루사지오 피네로씨는 “디페인 사건이 군부 앞잡이들의 묵인 아래 일어났다는 명백한 증거가 있다.“고 하였다.

1991년 노벨 평화상 수상자이며 버마민중의 민주화 염원의 상징인 아웅산 수지 여사는 지난 2002년 오랜 가택연금에서 해제되었다가 2003년 디페인 학살 사건 직후 다시 가택연금되었다. 수지여사의 가택연금이 총 11년을 넘겨 연금 해제에 대한 기대에도 불구하고 군사정권은 올해도 역시 가택연금 1년 연장하겠다고 지난 5월 25일 발표하였다. 또한 NLD 정당이 작년 2006년 두 차례에 걸쳐 군사정권에게 버마의 전 분야에 걸친 전반적인 퇴보와 낙후된 상황 해결을 위하여 대화할 것을 제안하였으나 군사정권은 평화를 위한 대화노력을 거부하고 민주화요구 세력들에게 위협을 가하고 있다.

버마의 오랜 군부독재는 아시아의 평화와 인권 성장에 발목을 잡고 있다. 이러한 버마의 상황에도 불구하고 한국정부는 아무런 노력도 하지 않고 있다. 반기문 유엔사무총장 선출이후 한국내외에서 한국이 버마민주화를 위한 뚜렷한 노력과 역할을 해줄 것을 기대하고 있다. 그러나 노무현 대통령은 2006년 9월 열린 아시아·유럽정상회의(ASEM)에서 버마 인권문제에 대하여 관여할 의사가 없음을 밝히는 등 세계적인 인권과 민주화 흐름에 거꾸로 가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민주화와 인권이라는 가치는 어느 상황에서도 양보할 수 없는 가치이자 세계평화를 위한 기본적인 전제조건이다. 21세기인 현재까지도 군사정권이 권력을 잡고 있는 버마에 민주화를 앞당기기 위하여 한국정부가 실질적인 노력을 기울이지 않는다면 한국은 인권국가라고 자부할 수 없으며 유엔과 같은 국제사회에서 설 자리를 점차 잃게 될 것임을 알아야 한다.

오늘 우리는 다음을 강력히 요구한다.

1. 디페인 학살에 대한 진상규명과 책임자를 처벌하라

1. 아웅산 수지여사를 포함한 정치범을 석방하고 자유로운 정치활동을 보장하라

1. 한국정부는 버마의 민주화와 인권을 위하여 실질적인 노력과 역할을 다하라


2007년 5월 30일


버마 민족민주동맹(NLD-LA) 한국지부/버마행동/(사)기업책임시민센터/경계를넘어/나눔문화/나와우리/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국제연대위원회/버마민주화를지원하는모임/새사회연대/서울경기이주노동자노동조합/아시아의친구들/열린북한방송/외국인이주·노동운동협의회/외국인이주노동자인권을위한모임/인권과평화를위한 국제민주연대/인권실천시민연대/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참여연대/팔레스타인평화연대/피난처/함께하는 시민행동/환경운동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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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페인 학살 개요>

버마의 디페인(Depayin) 지역에서 2003년 5월 30일 전국을 돌며 강연회를 하던 아웅산 수지 여사를 포함한 야당 NLD(민족민주동맹)의 지도부를 겨냥한 것으로 보이는 테러가 일어났다. 버마망명정부에 의하면 이 현장에서 70여명이 살해되고 200여명이 부상을 입었으며 실종자들도 상당수에 이른다. 이 사건을 계기로 SPDC(버마군사정부)는 민주화요구 세력에 대한 대대적인 탄압을 자행하여 단 며칠 동안에 총 256명을 체포하고 이 중 100여명은 아직까지도 감금하고 있으며 전국의 NLD 사무소를 폐쇄하고 주요 대학에 휴교령을 내렸다.

사건 직전, 군사정권의 엄혹한 상황에서도 아웅산 수지 여사의 강연을 보기 위해서 수만명의 버마 국민들이 모였다. 버마민주화를 간절히 바라는 버마민중들의 염원은 또다시 잔인한 물리적 폭력에 의하여 짓밟히게 된 것이다. 사건 발생 4년이 지난 현재까지도 버마군사정부는 정확한 희생자 숫자와 책임자가 누구인지 진상규명을 하고 있지 않으며 이를 요구하는 국제사회의 요구도 받아들이지 않고 있다.


Posted by 영기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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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웅산 수치와 모든 정치 수감자들을 즉각 석방하라



오늘은 버마 디페인 학살 3주년이 되는 날이다. 디페인 학살은 군부의 묵인 하에 일단의 반 NLD무리들이 2003년 5월 30일 아웅산 수치를 비롯한 야당 NLD(민족민주동맹, National League for Democracy) 지도자들을 겨냥해서 자행한 테러다. 군부는 학살 이후 살아남은 아웅산 수치 등 야당 지도자들을 체포, 가택 연금시키고, NLD 사무소를 폐쇄하면서 대대적인 야당 탄압의 빌미로 삼았다. 또한, 국제사회의 진상 조사 요구와 학살자 처벌 요구도 지금까지 묵살하고 있다.

아웅산 수치는 버마 민주화의 상징으로 1991년 노벨 평화상을 수상했으나, 10년 이상을 가택 연금 상태로 있다. 최근 아웅산 수치의 가택 연금 기한이 종료되는 즈음에, 유엔 정치부 사무처장이 버마 군부 SPDC(국가평화발전협의회)의 의장 탄 쉐를 만나고 아웅산 수치를 만나면서 연금이 해제될지 모른다는 기대를 갖게 했다. 군부는 지난 2년간 외부인이 아웅산 수치를 만나는 것을 금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러한 기대를 저버리고 다시 가택 연금 1년을 연장시키면서, 군부는 국제사회의 비난에 대해 이는 국제적인 문제가 아니라 국내 문제이니 간섭하지 말라고 으름장을 놓고 있다.

1990년 선거에서 패배했으면서도 정권을 이양하지 않고 무소불위의 독재 권력을 휘두르는 버마 군부의 탄압과 횡포는 날로 심해져가고 있다. 최근에는 밀림에 숨어살고 있는 2천 명의 카렌 소수민족에 대해 버마군대가 쫓아와 추격에 나서고 있고, 경제 상황은 악화일로에 있으며, 더 이상 참을 수 없는 버마 민중은 국경을 넘어 난민이 되고 있다. 이제 버마의 문제는 버마만이 아니라 아시아 지역의 안보와 평화를 위협하는 존재다. 버마 민중의 인권과 경제 상황을 개선시키기 위하여 NLD는 지난 2월 12일 군부에 타협안을 제시했다. 1990년 선거에 당선된 국회의원들로 구성된 국회를 소집한다면, 군부를 과도 정부로서 합법적으로 인정하겠다는, 버마 민족의 화해를 위해 군부와 협력할 뜻을 밝힌 것이다. 이에 대해 국제사회는 버마 문제의 평화로운 해결을 위한 제안이라며 환영한 바 있으며, 참여연대를 포함한 국내 시민사회단체들도 지지의 뜻을 밝힌 바 있다. 그러나, 군부는 이 제안이 있는 바로 다음날, 가택연금 상태에 있던 NLD 부의장의 연금 기간을 1년 더 추가하고, NLD가 여러 차례 회신 기한을 연장했음에도 대화를 거부했다. 뿐만 아니라, 외국 대사와 외신 앞에서 NLD를 불법 단체라며 상대할 가치가 없다고 하면서 한편으로는 NLD 의원들에게 로비를 가하며 사퇴 압력을 강요하고 있다.

이런 엄혹한 상황에 처해있는 버마에 목숨을 내놓고 조국으로 돌아가겠다는 사람이 있다. 정치범으로 수감 생활을 마친 후 군부에 의해 지난 해 11월 미국으로 추방당한 78세 사라이 툰 딴 박사다. 박사는 편안히 머무를 수 있는 미국 생활을 접고 6월 19일 아웅산 수치 생일을 기해 버마에 돌아가 “국가의 권력을 국민에게 돌려주라”는 구호를 외치겠다고 공공연히 밝히고 있다. 말 그대로 목숨을 내놓은 박사의 민주화에 대한 그 숭고한 뜻에 머리 숙여 깊은 지지와 안타까움을 보낸다. 버마의 민주화는 우리의 문제다. 우리가 나서지 않는다면, 민주화를 이룬 나라라고 어디서고 자랑스럽게 말할 수 없다. 한국 정부는 그리고 시민사회는 군부의 폭압정치로 고통당하고 있는 버마 민중을 외면해서는 안된다. 민주화를 위한 투쟁에 함께 나서고, 외교적 노력을 적극 기울여야 한다.

- 버마 군부는 아웅산 수치 여사를 비롯한 정치 수감자들을 즉각 석방하고 정치 활동의 자유를 보장하라!

- 버마 군부는 디페인 학살의 진상을 밝히고 학살자를 처벌하라!

- 버마 군부는 민족의 화합을 위한 대화에 적극 나서라!

- 한국 정부는 버마의 민주화에 관심을 기울이고 버마 정부로 하여금 NLD의 제안을 수용하도록 적극 노력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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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페인 학살이란?

2003년 5월 30일 디페인(Depayin) 학살

13년간의 가택연금 끝에 2002년 5월 6일 아웅산 수치가 석방되었다. 석방이 되자마자 아웅산 수치는 전국을 돌며 강연회를 계획했고 SPDC(국가평화발전위원회, State Peace and Development Council) 정부도 이 계획을 승인했다. 하지만 투어가 시작되면서 SPDC의 정치기구인 USDA를 중심으로 반NLD 집회들 역시 조직되어 NLD 지지자들과 충돌하기 시작했다.

Depayin 학살은 5월 30일에 일어났는데, 아웅산 수치는 당시 한 도시에서 Depayin으로 이동 중이었다. 마을 입구에서 아웅산 수치 일행은 반NLD 군중들에 의해서 습격을 당했다. NLD를 지지하는 버마망명정부에 의하면 이 현장에서 70여명이 살해되고 200여명이 부상을 입었다. 미국과 UN에서 파견된 조사관들도 당시 현장에서 상당한 폭력사태가 있었음을 인정했다. 아웅산 수치는 다행히 피신을 할 수 있었지만, 바로 다음날 SPDC정부는 이 사건이 NLD 지지자들의 도발에 의해서 일어난 것으로 보고 아웅산 수치 여사를 포함한 NLD 지도부를 체포하기 시작했다. NLD측은 SPDC 군사정부의 재빠른 발표와 대응을 통해 볼 때 이는 군사정권에 의해서 아웅산 수치 여사를 암살하기 위해 미리 계획된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이 사건을 계기로 대대적으로 야당에 대한 탄압이 시작되었는데, 며칠사이에 총 256명이 체포되고 아웅산 수치와 NLD 의장 우틴우 등은 아직까지 감금되어 있다.



** 사라이 탄 뚠 박사 소개문과 박사의 편지 별첨 화일 참조

** 버마 활동가들의 성명서 별첨 화일 참조
국제연대위원회


Posted by 영기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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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민인정 심사 과정, 무엇이 문제인가!”

1. 모두 함께 조사를 받다

난민인정 신청서를 접수한 지 얼마후 출입국관리소는 친구들을 모두 함께 불러보았습니다. 그리고는 회의실같은 넓은 공간에서 단체로 조사를 진행하였습니다. 모두가 나란히 앉아있는 상태에서 한 사람에게 질문하고, 또 다음 사람에게 질문하는 식이었지요. 타국으로 떠나와 민주화운동이라는 깃발아래 모인 친구들이었지만, 당시로서는 버마에서의 서로의 행적에 대해서 자세히 알고 신뢰할 수 있는 사이가 아니었습니다. 버마 군부에서 나왔거나 이후에 결탁한 비밀 경찰이 섞여있을지도 모른다는 불안감도 강했구요. 꼭 그 이유가 아니라도 타국에 와 난민신청을 한 사람으로서는 개인적인 신상을 많은 사람들 앞에서 공개적으로 이야기한다는 건 매우 위험한 일입니다. 그런 이유로 할 이야기를 제대로 못하거나 돌려서 말할수밖에 없었던 친구들이 더러 있었습니다.

2. 제대로 된 통역을 제공받지 못하다

조사 당시 출입국관리소가 통역으로 내세운 사람은 버마출신 이주노동자로 정치적인 문제나 민주화운동에 대해 전혀 관심이 없을 뿐더러, 그런 내용까지 통역할 수 있는 한국어 실력을 갖추지 못한 사람이었습니다. 친구들의 난민신청 사유는 민주화운동과 그에 따른 정치적 박해위협이 핵심적인 것이었기 때문에 이같은 상황은 대단히 불리한 것이었습니다. 또한 통역자는 비자 문제로 미얀마대사관을 자주 드나들며 군사정부에 우호적인 인물이었기 때문에 신청인들의 진술내용을 적절하고 충분하게 전달해주려 하지 않았습니다. 그때문에 몇몇 친구들이 통역을 거부하였지만 조사는 그대로 진행되었습니다. 그 이후로는 조사가 있을때면 신청인 중 한국어를 약간이나마 이해할 수 있는 이가 나서서 통역을 진행하였습니다.

3. 고압적인 조사관의 태도와 형식적인 조사내용

조사시 조사관들은 반말과 부정적 언사를 사용하며 신청인들에게 단순히 불법체류를 연장하려는 불순한 목적이 아니냐는 등 모욕적 발언을 하였을 뿐 아니라 매번 조사시 앞서의 진술내용, 현 거주지, 직장 등을 되묻는 형식적인 질문으로 조사를 진행하였습니다.

4. 최근 2년 간은 조사가 전혀 이루어지지 않음

첫 조사 후에는 간간이 개별적으로, 그러나 매우 형식적으로 조사를 받았습니다. 2000년과 2001년에는 서너달에 한번씩 출입국관리소에 불려가 거주지, 직장, 버마에서의 행적 등에 대해 질문을 받았습니다. 그마저도 2002년에는 6개월에 한번으로 줄어들더니 2003년부터 2005년 최종결정이 있기까지 무려 2년여간 전혀 조사가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그밖에 신청인들의 정치적 활동 내용을 증빙할 수 있는 문서나 사진 등의 자료도 전혀 요구된 바 없습니다.

5. 버마의 현실이 고려되지 않음

1988 민주화항쟁 이후 버마 국내에는 수천명의 학생 및 시민이 정치범으로 수감되어 있습니다. ILO(국제노동기구) 자료에 의하면 버마 군부는 2003년, ILO의 인터뷰에 응했다는 이유만으로 무고한 시민을 재판에 회부, 사형을 언도하였습니다. 또한 2003년 5월에는 평화적 집회를 습격, 수백명의 사상자를 내고 아웅산수치 여사를 비롯 NLD 주요 인사를 불법감금한 디페인 학살사건을 저질렀습니다. 현재 버마는 모든 정치적 집회와 발언이 차단될 뿐 아니라 강제노동과 소년병 징집, 소수민족 억압 등 인권탄압이 지속되고 있습니다.

* 원고 9명의 약력은 첨부화일 참고
국제연대위원회


Posted by 영기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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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마 정부는 2003년 5월 30일 디페인 학살에 대한 국제기구들의 독립적인 진상 조사를 보장하고 정치적 자유를 보장하라



오늘은 2003년 5월 30일 버마의 디페인 지역에서 아웅산 수찌 여사를 비롯한 야당 NLD(민족민주동맹, National League for Democracy)의 지도부를 겨냥한 것으로 추정되는 테러가 발생한 지 2주년 되는 날이다. 그러나 2년이 지난 지금까지 이 끔찍한 사건에 대한 진상 조사는 전혀 이뤄지지 않고 있어 정확한 희생자 수와 그 책임자가 누구인지 아직까지 밝혀지지 않고 있다. 버마 민주화를 지지하는 우리 시민사회단체들은 이 사건에 대해 군부(SPDC, State Peace and Development Council)가 공정하고 독립적인 조사를 요구하는 국제사회의 요청을 받아들일 것을 강력히 촉구한다.

디페인 학살은 13년간의 가택연금 끝에 석방된 아웅산 수찌 여사가 전국을 돌며 강연회를 하던 중 반NLD 세력으로 추정되는 괴한들에 의해 습격당한 사건이다. 버마망명정부에 의하면 이 현장에서 70여명이 살해되고 200여명이 부상을 입었으며 실종자들도 상당수에 이른다. 그러나, 바로 다음날 SPDC 정부는 어이없게도 이 사건이 NLD 지지자들의 도발에 의한 것이라 주장하며 4명이 사망하고 50여명이 부상당했다고 발표하고, 아웅산 수찌 여사를 포함한 NLD 지도부를 체포하기 시작했다. 이 사건을 계기로 대대적인 야당에 대한 탄압을 자행하여 단 며칠 동안에 총 256명을 체포하고 이 중 아웅산 수찌 여사와 NLD 지도부를 포함한 100여명은 아직까지도 감금되어 있는 실정이다. 또한 이 사건을 빌미로 전국의 NLD 사무소를 폐쇄하고 주요 대학에 휴교령을 내렸다.

NLD측은 SPDC 군사정부의 재빠른 발표와 대응을 통해 볼 때 이 사건은 군사정권이 아웅산 수찌 여사를 암살하기 위해 미리 계획된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 당시 버마의 정치 상황이나 현장 목격자들과 국제인권단체들의 주장을 종합해 볼 때, 우리 역시 SPDC가 이 사건의 배후 세력이 아닌가 하는 강한 의구심을 지울 수 없다. 이런 주장의 진위를 밝히기 위해서라도 버마 군부는 이 사건에 대한 국제사회의 독립적인 진상 조사 요청을 허용하고, 아웅산 수찌 여사를 비롯한 NLD 지도자들을 석방해야 할 것이다.

우리는 버마 정부에 다음과 같이 요구한다.

첫째, 국제사회로 하여금 디페인 학살의 공정하고 독립적인 진상 조사가 이루어지도록 허용하고 그 책임자를 처벌하라!

둘째, 아웅산 수찌 여사를 비롯한 NLD의 지도자들을 석방하라!

셋째, 정치적 활동의 자유를 보장하라!

전 세계 민중들도 버마의 민주화를 기대하고 있다. 우리는 디페인 학살 사건에 대한 진상 규명과 책임자 처벌이 버마의 민주주의와 인권을 위한 기본적인 출발이라 여기며 이 사건의 진상규명에 대한 버마 정부의 태도를 주시할 것이다. 버마 정부는 이 사건을 은폐하려하지 말고 적극적으로 조사 요청에 협력해서 아시아의 민주주의와 인권에 이바지해야 할 것이다. 끝으로, 한국 정부도 디페인 학살 사건의 진상 규명을 버마 정부에 요구하기를 바란다.

2005년 5월 30일

국제민주연대/ 국제앰네스티 한국지부/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국제연대위원회/ 버마민주화-부찌계/ 부천외국인노동자의집/ 아시아평화인권연대/ 피난처 / 참여연대/함께하는 시민행동
국제연대위원회


Posted by 영기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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