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국의 조기총선과 정국전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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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국에서는 금년 5월 첫째 주에 의회가 해산된 후 6-7월경 조기총선이 개최될 예정이다. 현재 선거법 수정안이 의회에 상정돼 독회가 진행 중인데 이 절차가 끝나면 정치일정은 더 확실해 질 것이다.
 
원래 현 민주당 정부 임기는 금년 12월까지이나 탁씬 친나왓(Thaksin Shinawatra) 전 총리를 지지하는 프어타이당(Puea Thai Party)과 레드셔츠는 그동안 조기총선을 실시해 정국불안을 해소할 것을 강력히 주장해 왔었다. 하지만 아피씻 총리는 조기총선이 불리하다고 판단해 거부해 왔다. 이런 태도는 2010년 4월 반정부시위를 촉발시킨 주요 원인 중 하나가 되기도 했다.  
                                                                                                   김홍구 부산외대 교수

얼마 전까지 탁씬 지지세력들은 조기총선을 실시하면 금방 재집권이 가능할 것이라고 믿었지만 상황은 바뀌어 가고 있는 것 같다.

프어타이당은 차기 총리후보조차 정하지 못한 채 당내 파벌투쟁에 시달리고 있다. 민주당(Democrat Party)은 이미 현 총리인 아피씻을 후보로 내세웠지만 프어타이당은 전 상무부 장관 밍콴(Mr. Mingkwan Saengsuwan)을 지지하는 세력과 탁씬의 막내 여동생 잉럭(Ms. Yingluck Shinawatra)을 지지하는 세력으로 나뉘어져 총리후보를 정하지 못하고 있다. 프어타이당 핵심인물 찰름(Chalerm Yoobamrung)은 밍콴이 총리 후보로 거론되는 것을 못 마땅히 여겨 의원직을 사퇴해 버렸다. 프어타이당의 든든한 버팀목이 되고 있는 레드셔츠 세력은 지난 5월 반정부시위가 강제 진압 된 후 지도부 9명이 장기간 구속되었다가 보석으로 석방되는 과정에서 반정부운동의 탄력을 상당부분 상실했을 뿐 아니라 빈번한 시위로 적어도 방콕에서는 여론의 지지를 받지 못하고 있다.

이외에 프어타이당의 고민거리는 민주당과 연립정부를 구성하고 있는 품짜이타이당(Bhumjaithai Party)으로부터 비롯된다. 품짜이타이당은 2008년 12월 탁씬 계열의 팔랑쁘라차촌당(Phak Palang Prachachon)이 선거법 위반 혐의로 해산되었을 때 탁씬의 오른팔이라고 불렸던 네윈(Newin Chidchob)이 탈당해서 만든 정당으로 민주당 연립정부 구성에 핵심적인 역할을 담당했다. 더구나 프어타이당과는 동북부 지역의 표밭까지도 겹치고 있다. 민주당 정권 출범 후 프어타이당을 탈당해서 수 명의 의원들이 품짜이타이당으로 입당한 경우도 있었으며 몇차례간 치러진 보궐선거에서 동북부 지역 내 프어타이당의 가장 막강한 경쟁세력으로 부상돼 말 그대로 눈에 가시 같은 존재가 되었다.

프어타이당의 전신격인 타이락타이당 때부터 위력을 발휘했던 대중영합주의 정책도 효력이 떨어지고 있다. 민주당 정부에서도 금년 초 소위 쁘라차윗정책(서민복지정책)을 발표해 민심 잡기에 나섰기 때문이다. 프어타이당은 이 같은 정책을 대중영합주의 정책의 복사판이라고 비난하고 있지만 민주당과 뚜렷이 차별화된 정책을 선보이지 못하고 있다.

총선에서 프어타이당이 원내 제1당이 돼도 집권하기 위해서 넘어야 할 산은 한 두 가지가 아니다. 무엇보다 현실적으로 프어타이당 주도 연정에 참여할 영향력 있는 군소정당들이 극히 제한적이라는 사실이다. 더 중요한 것은 군부와의 갈등이다. 프어타이당은 2010년 5월 반정부 시위진압 책임을 놓고 군부와의 사이가 틀어 질 대로 틀어져 있다. 그래서 벌써부터 프어타이당이 집권할 경우 또 다시 군사쿠데타가 발생할 것이라는 소문이 나돌고 있다.

군부 실세인 육군사령관 쁘라윳(Prayuth Chan-ocha)장군은 2006년 쿠데타의 주역이며 반 탁씬 강경파에 속하는 인물이다. 그런 그가 프어타이당의 집권을 두고 볼 리 없다는 것이다. 사실상 지금까지 태국에서 군부의 지지를 받지 못하는 민간정권이 성공한 적은 없다. 2008년 선거를 통해서 탁씬이 지지하는 팔랑쁘라차촌당이 집권한 후 총리직에 올랐다가 통산 1년을 채우지 못하고 물러난 싸막(Samak Sundaravej)총리와 쏨차이 (Somchai Wongsawat)총리는 비근한 예가 되고 있다.



총선정국을 앞두고 민주당은 프어타이당과 비교해 상대적으로 유리한 상황에 있는 듯 하다. 민주당은 얼마 전 헌법개정을 추진해 민주당에 유리한 선거구도를 만들어 가고 있다. 헌법 개정안에 따르면 기존 선출직 의원 400명과 비례대표 의원 80명은 각각 375명과 125명으로 그 수가 조정되었다. 독회 중에 있는 개정 선거법이 의회를 통과할 경우에 전국 적으로 25개 선거구가 축소되는데 그 중 16개 선거구가 프어타이당 우세지역인 북부 및 동북부 지역에 속해 있기 때문에 민주당에게 유리하다. 뿐 만 아니라 이 지역 선거구가 축소되면서 정당득표수가 감소하면 프어타이당의 비례대표 의원수도 줄어들 가능성이 크다.

그 동안 민주당이 우세했던 보궐선거나 지방선거의 결과도 총선 승리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 작년 9월 Abac Poll에서 전국 4,312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총선 관련 여론조사에서 전체 응답자 중 50.7%가 민주당을 지지했으며 프어타이당은 33%의 지지를 얻었다. 지역별로는 탁씬의 텃밭인 동북부 지역에서 프어타이당이 49%의 지지를 얻었으며 민주당은 32%를 얻었다. 북부지역은 민주당 44%, 프어타이당 42%의 지지율을 보였다. 이 외 중부 및 남부 지역은 절반 이상이 민주당을 지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선거결과를 점치기에는 아직 많은 변수들이 도사리고 있다. 특히 선거는 정서적 측면을 무시할 수 없기 때문에 본격적인 선거 국면에 들어서는 지난 5월 시위 강제진압에 대한 효과적인 정치적 쟁점화와 이에 대한 동북부와 북부지방의 민심의 향배가 가장 중요한 변수들이 될 것이 틀림없다.

민주당의 발목을 붙잡고 있는 몇 가지 악재도 상존한다. 가장 큰 문제는 연립정부를 구성하고 있는 품짜이타이당과의 갈등이다. 품짜이타이당은 민주당 연립정부에 참여한 이래 정당의 이해관계에 따라 민주당과 잦은 갈등을 빚어 왔다. 더구나 얼마 전 연립정부 내 제 2당인 품짜이타이당은 제3당인 찻타이팟타나당(Chart Thai Pattana Party)과 정치적 동맹관계를 선언했다. 그 의미는 총선 후 구성될 연립정부에서 정치적 협상력을 제고하려는 것이다. 양 당의 정치적 동맹관계는 현재 연립정권을 구성하고 있는 민주당에 대한 압력이 될 수도 있고 프어타이당에 대해서는 연립정부 구성 가능성을 열어 놓은 것이 될 수 도 있다.

민주당의 총선 승리와 집권 가능성에 새로운 변수는 PAD(The People's Alliance for Democracy 국민민주주의연대)와의 갈등에서도 나타난다. PAD는 2008년 12월 민주당 정권 탄생의 일등공신이었지만 태국과 캄보디아 국경분쟁 해결방안을 놓고 강경입장을 고수하면서 민주당을 곤경에 빠뜨리고 있다. 뿐만 아니라 PAD를 모태로 하고 있는 새 정치당(New Politics Party)에게 총선 불참을 촉구하는 동시에 총선이 실시된다면 투표거부운동을 전개할 것이라고 엄포를 놓고 있다. 정치권을 불신하고 있는 PAD는 국가의 부정부패 등이 척결될 때까지 국왕에 의해 선출된 총리 및 내각 구성을 요구한다. 하지만 현재 PAD는 총선참여를 주장하고 있는 새 정치당과 갈등을 빚으면서 내분상태에 있으며 과거와 같은 정치적 영향력도 축소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이변이 없는 한 이번 총선에서 민주당과 프어타이당은 제1당이나 제2당이 될 것은 분명해 보이나 어떤 정당이 군소정당과의 연립정부 구성에 성공할 것인지는 아직까지 예측불허이다. 문제는 선거후에도 정국불안은 지속될 것이라는 점이다. 태국은 고질적인 빈익빈 부익부문제, 이념적 갈등, 지역적 갈등으로 분열돼 있다. 그동안 잠복해 있던 이런 문제가 표면화되는 데 원인을 제공한 탁씬에 대한 국왕, 관료, 군부를 비롯한 기득권층의 부정적 시각도 변화의 기미가 없다. 정치적 갈등 시 중재자 역할을 한 고령의 푸미폰 국왕의 역할도 기대하기가 어렵게 되어 있다.

그러나 이번 총선은 2007년 12월 총선 후 처음 치러지는 선거라는데 의미가 있다. 총선을 통해 국왕이나 군부 쿠데타 같은 외부적 영향력에 의해 정치적 위기를 해결하곤 했던 비민주주의 방식에서 탈피해 정당과 의회를 중심으로 한 게임의 규칙이 적용되는 예측 가능한 정치로 진일보 한다면 그 의의는 과소평가 될 수 없을 것이다.

                       
                                   김홍구 (부산외국어대학교 태국어과 교수)


Posted by 영기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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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민주화 인사 석방 위한 서명운동에 버마 민중 53만명 참여



최근 버마에서 아웅산 수치를 비롯한 민주 인사 석방 서명운동에 버마 민중 몇 십만 명이 참여하였다는 소식이 들리고 있다. 일상적인 군부의 통제와 감시 속에서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는지 놀랍기만 한데, 마침 11월 9일부터 11일까지 서울에서 열리는 아시아 시민사회교육포럼에 태국에서 참석한 버마 새사회민주당 (DPNS, Democratic Party for New Society) 아웅 모 저(Aung Moe Zaw) 대표를 15일 초청하여, 국내에서 버마 민주화를 위해 활동하고 있는 여러 시민사회단체들과 함께 현재 버마 상황에 대해 자세히 듣는 자리를 가졌다. 아래는 마웅 모 저 대표의 발언과 질의, 응답을 요약한 것이다.



며칠 전 이브라힘 감바리 유엔 정무담당 사무차장이 버마를 방문해서 군부 대표와 아웅산 수치를 만났다. 나는 이 기회를 통해 군부와 대화가 이루어지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 그러나 그러한 변화가 있으리란 증거를 나는 아직 보지 못하고 있다. 군부는 여전히 민중을 억압하고 있고, 민주화 운동가들을 체포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희망이 보인다.

얼마 전 학생 운동가가 14-5년 간 수감됐다 석방된 후 다시 구금돼서 이에 대해 항의하는 운동이 버마 내에서 일어났다. 이런 반복되는 구금, 석방으로 미래는 예측하기 어렵다. 더 악화될지 좋아질지 그 사이엔 긴장감이 존재한다. 그래서 지금 상황이 매우 중요하다고 본다. 이 시점에 좀 더 확고한 전 세계의 지지가 필요하다. 국제사회의 압력 뿐 아니라 버마 내부에서도 운동이 필요하다. 지금 버마는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의제로 상정돼 있는데, 안보리의 결의안 통과를 위해선 국제사회의 압력과 지지가 필요하다.

나는 여러분들의 의견을 묻고 싶다. 아시아를 비롯한 국제 사회로부터 어떻게 버마의 민주화를 위한 지지를 더 많이 이끌어낼 수 있을지 알려 달라. 한국에서 어떻게 지지 얻어야 할지 알려 달라.

중국, 일본, 한국, 인도, 이 네 나라는 아시아에서 영향력 있는 큰 나라인데, 중국은 군부와 밀접하게 연결돼 있고, 인도도 그러려고 한다. 한국은 버마 민주화에 대한 명확한 지지는 없으나 일본은 확실히 지지하고 있다. 나는 그래서 한국 정부의 지지를 받으려 한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버마 민주화에 대한 지지를 약속했다. 하지만 그동안 한국 정부로부터 확실한 지지 정책을 보지 못했다. 한국 정부가 버마 민주주의에 대한 정책을 내놓길 바란다. 여러분의 노력과 지원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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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버마 내에서 활발히 이루어진 서명운동에 대해 말해 달라

지난 1988년 민주화 운동을 이끈 학생 운동가 지도자들이 14-5년간 장기 수감됐다 2004년에 석방되었다. 이들은 석방 후 버마의 민족 화합, 아웅산 수치와 군부의 대화, 버마 민주주의, 화해, 단합 등을 요구하며 평화적으로 운동을 계속했다. 그러나 문제는 군부 정권이다. 아웅산 수치와 대화하는 것도, 민족 화합도 원하지 않는다. 군부는 석방된 학생 운동 지도자들이 반란을 일으키려 한다고 생각했다. 그럼에도 이들 지도자들은 버마 민중으로부터 지지를 받으며 영향력 있는 민주화 운동 지도자들이 되었다. 그래서 군부는 이들을 위험 인물로 간주하고 지난 9월 27일 다시 체포하였다. 이때부터 이들 지도자들, 민 코 나잉, 코 코 기이, 흐타이 키웨, 코 민 제야와 가택연금 중에 있는 아웅산 수치 등 민주인사 석방을 위한 서명운동이 시작되었다. 이 서명운동은 불과 2주 만에 53만명이 참여하기에 이르렀다.

두 번째 단계의 캠페인은 이들 지도자들의 체포에 대한 항의의 표시로 흰 셔츠 입기를 벌였다. 이건 1주일 동안 진행하였다. 다음 단계의 캠페인은 기도회로, 지금도 진행 중이다.

군부는 이런 캠페인을 반란을 일으키기 위한 것으로 간주하고 있어, 이들 캠페인 주도하는 지도자들을 체포하려고 한다. 또, 기도회에 버마 민중이 참석하지 못하도록 파고다에 가지 못하게 하고 있다. 캠페인 운동가들과 군부 사이에 긴장감이 존재한다.

앞으로 어떤 일이 일어날지 예측하지 못하겠다. 이 캠페인이 민중항쟁으로 발전할지 아니면 군부의 억압으로 실패할 수도 있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 이 순간이 매우 중요하다. 이 캠페인이 더 확대되길 원한다.

53만명이 그렇게 단시간에 참여한 것은 대단한데, 이렇게 전국적인 서명운동이 어떻게 가능했나? 이 캠페인을 조직한 사람들은 누구인가?

서명운동은 전국적으로 일어난 게 아니라, 랭군, 만달레이 등 버마 중심 지역에서만 진행했다. 기간도 (민 코 나잉 생일인 18일까지) 애초 2주간으로만 정한 것이다. 짧은 기간이기 때문에 교통 등 여러 문제로 지방까지 확산시키진 못했다.

버마에는 많은 운동가들이 활동 중이지만, 조직화된 운동 단체가 공식적으로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한국도 군부 독재 시기에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언론에 나온 ‘88세대 학생 단체’는 단체명이 아니라, 1988년 민주항쟁 세대 학생 운동가들을 지칭한 것이다. 그래서 조직이 존재하지 않음에도 운동이 벌어지고 있는 것에 대해 군부가 사실상 두려워한다. 버마는 학생, 노동자 등으로 이루어진 단체나 모임을 조직하지 못하게 돼있어서, 제도권에서 허용하는 범위에서 또는 지하운동으로 학생, 노동자, 스님, 재야 정치인 등 네트워크를 통해 사람들을 민주화운동에 동참하게 하고 있다. 신문이나 팜플렛을 사람 손으로 거쳐서 직접 배포하고 있는데, 이러한 배포는 매우 위험하다. 한 장 배포로 20년형을 살 수도 있다. 그러나 두려워하지 않고 민주화 운동을 하고 있다. 이러한 인적 네트워크가 있어서 53만명의 서명이 가능했다. 이미 몇몇 서명 운동 지도자들이 체포돼서 14년형을 선고 받았다. 버마에는 양심수가 최소한 1500명 있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시골에는 인권 침해가 더 많이 발생하고 있다.

어려운 조건에도 53만명의 서명이 이루어진 것에 대해 경의를 표한다. 이 흐름이 지방으로 확산되는 양상이 보이나?

아니다. 서명운동은 2주간이라는 시기를 정하고 한 캠페인이라 더 이상 계속하지 않는다.

군부가 53만명이나 참여했다는 사실을 알고 있나? 서명자 명단 공개가 어려울 텐데..

군부도 53만명이 참여했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그럼에도 가만히 있는 이유는 너무나 많은 숫자가 참여해서 잘못 건드렸다가 폭동으로 발전할까봐서다. 그래서 너무 이 운동이 확산되지 않도록 어느 정도 견제하는 차원에서만 막고 있다. 사실 이 서명운동 결과는 유엔 사무차장이 버마에 올 때 전달하려 했는데 군부가 막아서 못한 것 같다.

새사회민주당과 민족민주당과 관계는?

우리는 80년대 후반 학생 운동 조직으로 8888 민주항쟁 당시 함께 참여했는데 쿠데타 후 학생 조직이 금지되어 많은 운동가들이 정당을 만들어서 정치 운동을 했다. 이것을 채널로 해서 당시 학생운동 지도자들은 세 중심 기조로 나누어서 활동했다. 정당 활동(새사회민주당)과 지하운동 조직, 무장 투쟁 조직. 당시 우리 전략은 합법 정치와 동시에 무장 투쟁을 벌이는 것이었다. 1988년 당 만들 때 만해도 학생 조직이라 정치 형태의 정당을 만들지 못했다. 이 세 활동 조직은 긴밀한 협력을 가졌다.

NLD(민족민주당)는 1990년 선거에서 80% 이상 지지를 받았을 때부터 주도적인 정당으로 간주됐으며, 우리는 아웅산 수치를 우리의 지도자로 여기고 있다. 1990년 선거 당시 우리는 선거에 나가지 않고 NLD를 지지하였다. 우리는 정권을 잡기 위한 경쟁 관계에 있지 않다. 민주화가 이루어진 후엔, 우리도 선거에 참여할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민주주의를 얻기 위해 노력하고 있고, 아웅산 수치를 우리의 지도자로 여기고 있다.

1997년 버마가 아세안에 들어가는 과정에 많은 논란이 있었다. 지금 보면, 아세안에 들어간 게 좋은지, 배제한 게 좋은지, 어떻게 평가하나? 그리고 서방에서 버마 군부를 압박하기 위해 경제 봉쇄를 하는데 이것이 버마 민주화에 실제로 도움이 되는가?

우선 군부 독재 정권 스스로 정권을 포기할 리 없다. 그래서 경제 봉쇄라도 하는 것이 적절하다고 본다. 경제 봉쇄를 말할 때, 전면적 경제 봉쇄를 말하는 게 아니다. 군부 정권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비즈니스만 말하는 것이다. 일반 사람과 관계있는 비즈니스는 아니다. 우리가 말하는 것은 전쟁 무기와 관련된 것, 그리고 유노칼, 토탈 같은 큰 석유회사를 의미하는 것이다. 일반인과 관련된 작은 비즈니스는 아니다.

그리고 군부는 확고하고 구체적인 경제 정책을 갖고 있지 않다. 그렇기 때문에 비즈니스란 게 버마에서 잘 작동하지 않는다. 정치적으로 억압할 뿐 아니라 경제적으로도 억압하기 때문에 사업을 하지 못한다.

1997년 아세안에 들어갈 때 말레이시아 수상 마하티르가 버마를 끌어들임으로써 민주화 촉진을 하도록 하자했고, 당시 운동가들은 이에 반대했다. 그러나 2003년 마하티르는 이제 버마를 아세안에서 축출하자고 한다.

민주인사 석방엔 여러 나라의 국회의원들도 서명운동을 벌였고 한국도 한 것으로 안다. 이러한 것이 실질적인 도움이 되나?

태국, 캄보디아, 인도네시아, 뉴질랜드, 일본의 국회의원들이 버마 민주화를 지지하는 모임을 결성했다. 그리고 이러한 모임들은 아시아 차원에서 AIPMC(ASEAN INTER-PARLIAMENTARY MYANMAR CAUCUS)라는 아세안 나라들의 국회의원 모임에 합류하고 있다. 한국은 아직 여기에 합류하지 않고 있다. 나는 한국도 국회의원 모임이 만들어지길 바라고, 아시아 내에서 이런 활동들이 군부 정권에 압력을 가하고, 유엔 안보리에도 압력을 가할 수 있길 바란다.

새사회민주당 소개

Democratic Party for New Society (DPNS)는 1988년 미처 완성되지 못한 민주주의 투쟁을 계속하기 위해 결성된 정당으로 당시 아웅 산 수치가 이끄는 민족민주동맹 (NLD)에 이어 두 번째 규모였다. 전국적으로 25만 명의 당원과 120여 개의 지부를 거느린 큰 규모의 정당으로 당시 버마 국민들의 전폭적 지지를 얻었는데 특히 버마 학생 단체들과 젊은이들의 적극적인 지지를 받았다. 그리고 1990년 5월 27일의 총선거에서 DPNS 는 대중을 지지기반으로 한 민주정당이었지만 NLD 승리를 위해 NLD에 대한 지지와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1990년 5월 총선에서 NLD가 승리한 후, 군사정부에게 정권이양을 요구한 DPNS에 대해 군사정부는 극심한 탄압을 자행하고 핵심 당원들을 수감했다. 이후 버마 내에서 민주화 활동이 불가능해지자 DPNS 중앙위원회는 군부에 대한 투쟁을 계속하기 위해 1991년 당 본부를 태국- 버마 국경지대의 자유지역으로 옮기고 당을 재결성했다.

현재 DPNS는 버마 내에서 인권과 민주주의를 주창하며 시민 사회를 강화하기 위해 활동하고 있으며 또한 미래 버마에서 자격을 갖춘 정당이 되기 위해 당원들의 교육적, 전문적 자질 향상에 힘쓰고 있다.

아웅 모 저 대표 약력

Aung Moe Zaw 대표는 1988년 8월 민중항쟁 전, 그 해 3월부터 버마 양곤 대학교에서 시작됐던 학생시위를 주도한 학생지도자 중 한 명이다. 그는 학생들을 중심으로 1988년 10월 14일 결성된 DPNS의 지도자 중 한 명으로 현재까지 계속 활동하고 있다. 아웅 모 저 대표는 1997년부터 DPNS 대표로 활동하고 있으며 버마 연맹 국가 위원회(NCUB) 총무단의 구성원이자 버마 민주주의 포럼(FDB)의 정책 입안자 중 한 명이다. 그는 1986년 양곤대학교에서 영문학을 공부하다 영국으로 건너가 2004년 영국 석세스 대학교에서 행정과 개발 전공으로 석사학위를 받았다.

그는 2006년 11월 9일부터 11일까지 서울에서 열리는 2006년 아시아 시민 사회 교육 포럼에 초청받아 버마 시민 사회에 대해 강연하기 위해 한국에 왔다. 포럼 후 한국에 체류 하며 버마 민주화를 지지하는 한국 시민 단체, 기자, 국회의원 등 많은 한국인들과의 만남을 통해 버마의 상황을 알릴 예정이다. 특히 아웅 모 저 대표는 1988년 민중항쟁으로 수감됐다 석방된 5명의 학생지도자가 다시 체포된 상황을 한국사회에 알림으로써 버마 민주화에 대한 관심을 촉구하고 한국사회가 더 많은 관심과 도움을 통해 국제적 연대의식을 보여주게 되기를 기대하고 있다. (정보 제공: NLD 한국지부)

국제연대위원회
Posted by 영기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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