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에서의 인종주의와 헤게모니

6월 24일 아시아대안교류회(ARENA), 민주화운동 기념사업회등이 주최한 국제워크샵 <아시아에서 인종과 헤게모니의 연계>가 국가인권위원회에서 열렸습니다. 식민지시대를 거치면서 인종이라는 개념이 헤게모니로서 아시아와 서구사회에 어떻게 작용하고 있는지, 한 국가 내에서도 어떤 비극을 만들었는지 접해봅니다. 국제연대위원회 인턴의 후기를 소개합니다. <편집자 주)

해게모니로서 작용하는 인종주의

첫 번째 세션은 지난 1차 워크숍 내용에 대한 간략한 설명으로 시작되었다. 인종의 문제를 헤게모니(위계적, 패권적 권력)와 연관짓는 이야기였다. 권력관계에서의 인종문제, 비서구 사회인 아시아에서 인종문제를 적용할 수 있는지 그리고 이 문제를 어떻게 풀어나갈 것인지에 대한 문제 제기가 이어졌다.

‘인종’이란 식민지 시대 서구에서 고안해낸 개념이다. 식민지시대는 끝났어도 비(非)노동 계급으로 대변되는 백인이 존재한다. 이들의 우월적 사고와 육체노동 계급으로 인식되는 유색인종에 대한 멸시의 시선은 식민지시대의 유산이다. 이러한 대비는 우리의 머릿속에 각인되어 있다. 인종이 헤게모니, 즉 권력관계 하에 놓여 있다는 말은 이러한 역사적 배경을 가지고 있다. 서구 열강은 비서구인들을 차별하기 위해 인종이라는 개념을 도입했다. 인종이 헤게모니의 지배하에 있다는 현대적 근거는 인종이 외부인들을 이해하는 기제로서 작동하는데 있다. 예를 들면 저개발 국가를 이해할 때 우리는 그 나라의 낮은 경제발전 수준을 두고 ‘흑인들은 원래 게으르기 때문’이라고 섣불리 판단한다는 것이다. 이는 서구적인 관점이다.
 
다음으로 말레이시아 인권운동가 Francis Loh의 기조연설이 있었다. Loh는 글로벌 사회에서 다민족(Multi-Ethnic)국가는 점점 보편적인 현상이 되어가는 추세라고 했다. 그러한 만큼 인종문제를 직시하고 고정관념을 타파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식민지 시대에는 인종주의적 이데올로기를 이용해서 다수종족을 ‘분할지배’했다. 분할지배는 소수 열강이 다수 종족을 지배하기 위해 만든 일종의 정당화 전략이다. 소수 열강은 인종에 따라 다수 종족을 나누기만 한 것이 아니라 그에 따른 고정관념을 무의식적으로 주입시켰다. Loh는 자국에서 활동할 당시 ‘말레이시아인은 게으르다’는 편견을 깨뜨리고 ‘그렇지 않다. 말레이시아인은 근면하며 국가에 충성할 수 있다’는 새로운 인식을 외국인에게 심어주는 것이 너무나 힘들었다고 고백했다.

이민사회에서 답습되는 인종차별

두 번째 세션에서는 ‘서유럽의 이민과 인종주의의 경험: 아시아에서의 실천적 함의’라는 주제로 독일의 교육전문가 Silke Baer의 발표가 있었다. 그녀는 먼저 유럽에서의 이민 사회의 동향을 간략히 소개하고 이민자들에 대한 부정적인 고정관념에는 어떤 것이 있는지 소개했다. 언론에서조차 백인이 아닌 사람은 찾아보기 어렵다고 한다. 즉, 유럽에서는 이민자를 배제하는 분위기가 강해 정부에서도 이 문제를 쉽게 접근하지 못하고 있다고 한다. 더욱 심각한 것은 청소년들조차 부모의 선입견을 그대로 답습해 왜곡된 사고방식을 갖게 된다는 것이다. 독일 청소년들은 우파 극단주의, 백인 우월주의 등의 왜곡된 Culture-Code에 노출되어있다.

교육전문가들은 ‘청소년 문화는 인종적 구분 없이 모든 국적의 청소년들이 향유할 수 있다’는 문화적 특성을 이용해 그들에게 다가갔다. 청소년들의 주 관심사인 힙합, 그래피티, 스케이트 보드 등을 이용해 인식 제고 교육을 하는 것이다. 독일 청소년들은 문화적 의식교육을 통해 반(反)인종 차별주의를 자연스럽게 배우게 된다. 차별이 아닌 연대의식을 배우며 서로를 존중하는 법을 배우는 것이다.

정체성을 버리는 이민자 가족들

Francis Loh와 Silke Baer 두 분의 전문가에게 궁금한 것을 묻는 시간이 이어졌다. 먼저 Loh에게는 ‘말레이시아에서는 인종차별과 관련하여 이민자 문제의 실태가 어떠한지’를 묻는 질문이 있었다. Loh는 관리감독이 어려운 사각지대의 불법 이민자문제가 심각하다고 했다. 현지인을 밀어낼 정도로 상당수의 이민자들이 넘어오는데도 정부가 이 문제에 대해 전혀 해결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고 답했다. 또 다른 참가자는 Silke Baer에게 이민자들이 자아 존중감, 정체성 형성에 어려움을 겪지는 않는지에 대해 질문했다. Silke Baer는 이민자들의 정체성 문제는 꽤 복잡한 양상을 보이는데 다수 이민자들은 자국의 정체성을 버리고 독일의 헤게모니를 스스로 택하려 한다고 답했다. 예를 들어 독일에 온 쿠르드족의 경우, 부모들이 자녀를 아랍학교보다는 독일학교에 보내고 싶어하며 자녀가 유럽사회에 동화되기를 선호한다는 것이다.

다음으로 유럽 청소년들 사이에서 인종차별이 지배적인 현상으로 나타나게 된 근본적인 이유가 무엇인지에 관한 질문이 있었다. 유럽 청소년들은 힙합, DJ 등을 통해 기존 어른세대로부터 오는 억압을 해소하기도 한다. 반면 억압의 잘못된 해소방법으로 내면에 무의식적인 외국인 혐오증을 싹틔우기도 한다고 Silke Baer는 지적했다. 유럽, 특히 독일에서는 세대 간 갈등이 심해서 젊은이들이 사회적으로 통합되기 어렵다고 한다. 독일 젊은이들은 본인이 소외되고 환영받지 못하는 존재라고 생각한다. 그러한 열등감의 탈출구로서 ‘극단적 백인 우월주의’에 빠지게 되는 것이다. 그들로 하여금 백인 극단주의가 잘못된 사상이라고 인식하게 하는 것 자체가 어렵다. 그러므로 젊은이들에게는 ‘학교’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 반인종주의 교육, 문화교류 경험, 다른 인종의 아이들과 한 팀을 이루게 하는 학습과정이 필요하다. 이를 통해 인종적 사회통합이 이루어질 수 있다. 마지막으로 Silke Baer는 ‘사람들은 각자 자신이 높은 위치를 차지하려고만 하고 서로 연대(Solidarity)를 이루려하지는 않는 것 같아 애석하다고 답변을 마쳤다.

종족갈등에 따른 스리랑카의 비극

세 번째 세션에서는 싱가폴 인류학자 Darini Rajasingham을 모시고 ‘스리랑카에서의 인종과 갈등’이라는 주제로 토론이 열렸다. 타밀인과 스밀인 간 종족 갈등의 근본원인은 그들의 종족적 정체성과 식민주의의 차별적 사고에 있다는 것이다. 두 집단은 생물학적 차이는 없으나 언어적 차이로 인해 문화-종교적으로 심하게 차이가 벌어졌다. 이 격차는 식민지 시대가 끝난 이후에도 좁혀지지 않았다. 배타적 정체성은 스리랑카가 근대국가로서 자리잡아가는 과정에서도 나타났다. 서로간의 다른 역사적 배경을 이해하지 못하고 크고 작은 무력 충돌이 끊임없이 발발해온 것이다. 사실 타밀 반군에 대한 타격은 문제해결의 극히 일부일 뿐이다. 소수민족 문제를 해결하려면 그들을 이해하고 포용하려는 노력은 물론이고 권력의 분권화와 자치, 식민주의적 유산에서 탈피하려는 노력 등이 필요하다고 Darini Rajasingham은 힘주어 말했다.  

 ‘인종과 헤게모니’라는 다소 무거운 주제였지만 각 분야 전문가들의 의견, 토론을 들으며 인종에 대한 시각을 새롭게 하게 된 시간이었다. 너무나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인종이라는 개념, 그리고 그 기저에 깔린 패권주의적 의도를 정확히 파악할 수 있었다. 이제 우리에게 남은 과제는 오늘날에도 남아있는 식민지 시대의 유산, 그 인종주의적 고정관념을 깨뜨리고 다문화시대에 발맞추어 인종을 새롭게 정의하고 서로 연대하고 포용하는 일이다.

박서현 국제연대위원회 인턴

[참고] 국제워크샵<아시아에서 인종과 헤게모니의 연계>프로그램 내용
일시: 2009년 6월 24일 오전 9.30 - 오후 6.30
장소: 국가인권위원회 배움터
공동주최 : 아시아대안교류회(아레나), 에버트 재단(FES), 민주화운동 기념사업회

Session I 
지구적, 지역적 맥락에서 “인종”을 정의하기 / 이대훈
(기조 발표) 인종이 아시아에서의 사회정의를 위한 투쟁에 적당한 개념인가?  / Francis Loh
 
Session II 
서유럽의 이민과 인종주의의 경험: 아시아에서의 실천적 함의/ Silke Baer
토론: Francis Loh, 엄정민
 
Session III.
스리랑카에서의 인종과 갈등/ Darini Rajasingham
토론: Neng Magno, 허오영숙
 
Session IV.
서구 식민주의 및 경제 발전과 아시아의 인종주의 / Banajit Hussain
토론: Mohiuddin Ahmad, 마웅저
 
Special Session
인종주의 폭력: 대응방식과 실천적 훈련 프로그램 / Harald Weilnboeck



 

Posted by 영기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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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민, 구호가 아닌 '공동체'가 핵심이다

버마에서 난민 발생의 원인이 된 종족갈등에 대해 우선 살펴보자. 종족 갈등의 역사는 영국 식민지배 시기인 19세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영국이 주류 종족인 버마족과 카렌족, 샨족 등의 소수종족을 분리하여 통치하는 정책을 시행함에 따라 버마의 종족들간에 배타적인 종족의식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이러한 배타성은 1940년대말 버마가 영국으로부터 독립할 당시 첨예하게 드러났다.

당시 정치권력의 핵심 세력이었던 버마족이 자치권을 주장하는 소수 종족들의 주장을 수용하지 않자, 카렌족을 위시한 소수종족들은 반란운동에 들어갔다. 1980년대 말까지 소수종족들은 국경지역에 '해방구'를 설립하며 사실상의 국가체제를 운영해왔다. 그러나 민주화 항쟁인 '88항쟁'을 진압하며 등장한 신군부는 이제 공격의 화살을 국경지역의 소수종족들에게 돌렸다. 군부는 무참하게 공격을 퍼부으며 소수종족 근거지를 장악해 들어갔다. 이 결과 막대한 인명피해가 발생했으며, 살아남은 자들은 피난처를 찾아 태국으로 나섰다.

난민발생은 민주주의 문제와도 결부되어 있다. 버마의 군부는 1962년에 쿠데타로 정권을 잡고 외부세계와 단절하며 '버마식 사회주의'를 추진했다. 그러나 이는 민주주의 억압과 빈곤으로 귀결되었고, 버마의 시민들은 드디어 1988년에 군부정권에 맞서 대규모 항쟁을 벌였다. '랑군의 봄'이라고 일컫는 민주화 운동에서 '88 세대'라고 일컫는 학생들의 주도와 참여가 눈부셨다.

또한 이 시기를 거치며 아웅산 수지는 버마 민주화 운동의 아이콘으로 등장했다. 그러나 버마의 신군부의 무력 앞에 버마의 민주화운동 세력은 좌절을 겪어야만 했다. 군부의 탄압으로 버마 내부에서 민주화운동을 전개할 수 없었던 학생운동가 등의 민주화 세력은 태국 국경지역으로 근거지를 옮겨 소수종족들과 연합하여 반정부 활동을 전개했다. 그러나 군부가 국경지역을 장악해 들어오자 이들도 소수종족과 함께 난민이 되어 태국으로 넘어오게 된 것이다.

현재 15만 명의 버마 난민들이 태국 내의 8개의 난민촌에 수용되어 있다. 이들중 카렌족 난민이 11만 명 정도를 차지하고 있다. 난민들은 199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상당한 정도의 자율성을 유지했었다. 이때까지 난민촌은 30개 정도에 이르렀으며, 난민촌은 작은 촌락처럼 유지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1990년대 중반이후에 버마군부가 난민촌이 반정부세력의 근거지라면서 이곳을 공격해오자, 태국 정부는 안전과 효율적인 통제의 목적으로 난민촌을 통폐합 해나갔다. 그 결과 현재와 같이 8개로 줄어들었으며 그중에 한 난민촌은 5만 명을 수용할 정도로 거대해졌다. 또한 각 난민촌에서 태국 정부의 통제와 규율이 강화되었다.

난민촌이 대규모로 통폐합되자 난민들의 경제활동 양상도 변했다. 기존에 난민들은 비교적 자유롭게 인근의 태국 마을들이나 도시에서 경제활동을 할 수 있었다. 그러나 안보의 이유로 난민촌의 출입이 강화되자 이들이 밖에서 일을 하는 데 많은 제약이 따랐다. 더군다나 난민촌 내에서는 경작할 토지가 턱없이 부족하고 여타의 생산활동이 여의치 않게 되자 이들의 생존은 절대적으로 국제구호기구가 제공하는 구호식량에 의존하게 되었다. 구호식량은 축복이자 해가 될 수 있는 양면성을 갖고 있다. 난민들은 오늘의 일용할 양식을 걱정할 필요가 없지만, 난민들의 외부에 대한 의존성을 강화시켜 결국에는 자율적인 생존력을 약화시키는 결과를 낳기 때문이다.

사회문화적인 측면에서, 난민들은 난민촌이라는 압축된 공간에서 자기 종족의 문화와 정체성을 강화시켜 나가고 있다. 전통문화 계승 활동과 종족 정체성을 강화하는 교육이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다. 이국땅에 세워진 난민촌이라는 공간은 역설적으로 난민들에게 종족 정체성을 강화하는 장을 제공하고 있는 것이다.

난민들의 적응 양상에서 새롭게 부각된 것은 외부세계와의 연대이다. 난민들은 국제구호기구, 종교단체, 인권단체 등과 활발하게 관계를 맺어나가고 있다. 이러한 연대를 통해 난민들의 세계관은 확장되었다. 그러나 한편으로 거의 일방적으로 시혜를 받고 있는 난민이 외부의 세력과 평등하게 관계를 형성해 나간다는 것은 어려운 일로 다가오고 있다.

최근 제3국으로의 이주 정책이 난민촌을 강타하고 있다. 미국을 비롯해 캐나다, 스웨덴, 노르웨이 등지의 서구의 국가들이 대규모로 난민들을 받아들이고 있다. 2008년 한해에만 2만명 가량의 난민들이 이를 통해 해외로 나갔다. 향후에 그 규모는 더욱더 커질 것으로 전망된다. 제 3국 재이주 정책은 축복과 재앙의 양면성을 갖고 있다. 개인적인 차원에서 난민들은 답답한 난민촌을 떠나 '자유로운' 곳에서 새롭게 삶을 펼쳐나갈 수 있는 기회를 얻을 수 있기 때문에 축복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공동체적인 차원에서 지식인, 활동가 등이 우선적으로 빠져나가면서, 난민촌 학교와 공동체 조직들은 와해의 위기에 처해 있다. 개인주의냐, 공동체주의냐의 선택에서 많은 난민들이 전자를 선택하고 있으며, 공동체를 위한 희생을 강요할 수 없게 되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우리는 기존과는 다른 방식으로 난민촌에 다가갈 필요가 있다. 일단 난민촌 공동체가 재정착의 거친 파도 속에서도 공동체성을 유지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방안을 고민해야 한다. 난민촌 학교에 수시로 교사들을 공급할 수 있는 획기적인 방안을 마련하여 난민촌 교육이 연속성을 갖도록 지원해야할 것이다.

또한 남아 있는 난민들이 생계추구를 난민촌 안팎에서 자율적으로 해나갈 수 있도록 방안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이를 위해서 대정부 활동과 같은 적극적인 옹호활동이 이전과 다르게 절실히 요구된다. 난민들이 외부의 구호물품에만 의존하여서는 미래에 자기 생활을 주도적으로 개척해 나갈 수 없다.

해외 버마인 디아스포라와의 연대도 발전시킬 필요가 있다. 재정착 프로그램은 한편으로 이러한 기회를 제공해주고 있다. 디아스포라들과 난민간의 연대는 향후 난민들 삶의 양상을 변화시킬 중요한 요인이 될 것으로 예상되는바, 우리들은 이들간의 연대가 원활히 이루어질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할 것이다.

이상국 서강대 동아연구소 교수


 

3강 아시아 포럼<국경, 아시아,시민사회>를 소개합니다.

아시아 국경을 넘는 사람들과 아시아 시민사회의 연대
- 태국 국경거주 버마 난민들의 적응양상과 과제

◎ 일 시: 2009년 5월 8일(금) 오전 10시30분 ~ 12시 (일정을 꼭 확인하세요!)
◎ 장 소: 서울 COEX 컨퍼런스 센터 3층
◎ 공동주관: 경희대학교 인류사회재건연구원/ 참여연대 국제연대위원회
◎ 주 최: 세계시민포럼2009 (World Civic Forum 2009)


· 사회자: 손혁상(참여연대 국제연대위원회 위원장, 경희대 NGO대학원 교수)

· 주제발표 : 태국 국경거주 버마 난민들의 적응양상과 과제(이상국/ 서강대학교 동아연구소 교수)

· 토론 : 황필규(공익변호사그룹공감 변호사)
           마웅저(버마민주화운동 활동가)
           송경재(경희대 인류사회재건연구원 연구교수)
           박은홍(성공회대 사회과학부 교수)


 

Posted by 영기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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