웨스트 파푸아의 양심수 유삭 파카쥐(Yusak Pakage)와 필립 카르마(Filep Karma)의 석방을 촉구한다



사진협조: 경계를 넘어
인도네시아의 식민 지배를 받고 있는 웨스트 파푸아의 양심수 유삭 파카쥐와 필립 카르마는 2년 전 오늘, 웨스트 파푸아의 국기인 모닝스타를 게양했다는 이유만으로 반역죄로 징역 10년, 15년형을 선고받아 현재 수감 중에 있습니다.

웨스트 파푸아는 43년 전 인도네시아로부터 불법 점령당하면서 온갖 인권침해와 자원 수탈을 당하고 있으며, 이에 웨스트 파푸아 사람들은 자결권 보장을 촉구하고 있습니다.

12월 1일은 웨스트 파푸아의 독립선포 기념일이자 유삭과 필립이 체포된 날로, 이들의 석방을 촉구하는 국제 공동행동에 한국의 인권사회단체들도 함께 하였습니다. 12시부터 3시까지 인도네시아 대사관 앞에서 일인시위와 항의 엽서 쓰기를 진행하였습니다.

<공동성명>

우리는 분노없이 43여 년간에 걸친 웨스트파푸아의 식민사를 말할 수 없다.

12월 1일 오늘은, 인도네시아에 의해 27번째주로 강제 편입된 웨스트 파푸아가 네델란드로부터 독립을 선언한 날이다. 또한 유삭파카쥐와 필립 카르마가 파푸아의 자결을 요구하며 국기 빈땅끄조라를 게양했다는 이유로 체포된 지 2년째 되는 날이다. 그들은 반역죄로 각각 10년 형과 15년 형을 선고받고 현재 자야뿌라 감옥에 수감중이다.

인도네시아는 지난 1962년, 네델란드로부터 독립을 준비중인 웨스트 파푸아를 무력으로 침공했다. 풍부한 자원을 갖춘 파푸아 영토를 강제 편입하려는 인도네시아의 요구와 미국의 정치적 이해관계가 맞닿으면서, 파푸아인들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6년의 인도네시아 지배와 파푸아 독립여부에 대한 국민투표 실시를 내용으로 한 뉴욕협정이 1962년 인도네시아와 네덜란드 사이에 체결됐다. 1969년 진행된 국민투표 ‘Act of Free Choice’는 유엔의 묵인 하에 당초 협정에서 명시한 성인 남녀 전부가 아니라 인도네시아 정부가 선발한 친인도네시아인 1022명만이 참여했다. 선발된 사람들은 온갖 협박에 시달리며 ‘우리는 인도네시아를 원한다’는 선택을 강요당했다. 그 뒤 파푸아는 공식적인 인도네시아의 식민지로 전락했다.

인도네시아는 1969년 식민 지배를 시작한 이래 대규모 군대를 동원해 파푸아를 통제해왔다. 이 과정에서 살해당한 파푸아인만도 10만 명. 인도네시아군은 광범위한 폭력과 살인, 고문과 납치, 강간 등을 자행했고, 군이 지나간 마을은 초토화됐다. 250여 개의 부족이 가지고 있던 문화와 언어, 공동체가 파괴됐으며 땅은 개발이란 명목으로 파헤쳐졌다. 대대적인 학살과 이주정책의 결과 현재 파푸아 거주자 중 절반이 이주자들이다. 파푸아 아이들은 교육의 기회를 박탈당한 채 영양 부족과 각종 질병에 시달리고 있다. 하여 파푸아 아이들 중 절반이 영양실조에 시달리고, 영아와 산모의 사망률은 최고 수치에 이른다.

하지만 파푸아인들은 지난 43년간 단 한순간도 자유를 향한 투쟁을 멈추지 않았다. 파푸아인들의 거센 저항에 인도네시아 정부는 2001년 특별자치법을 제정, 파푸아의 특별자치와 독립의회 구성, 국기게양 등을 인정했지만 현실은 변하지 않았다. 인도네시아 군대는 파푸아 최고 의회 의장이었던 데이스 엘루이(Theys Eluay)를 살해했으며, 반땅끄조라를 게양한 사건과 관련해 많은 사람들을 사살했고, 구속했다. 자결을 촉구하는 집회에 참여했던 여성들은 성폭행당한 후 수장됐다. 차마 입에 담을 수조차 없는 광기의 폭력이 아직도 웨스트 파푸아 한복판에서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

누가 이 땅을 침략할 권한을 주었는가? 누가 이들을 학살할 권한을 주었는가? 누가 자결과 인권을 감옥에 넣을 권한을 주었는가? 파푸아인들의 삶을 결정할 권한은 오직 파푸아인들에게만 존재하며, 그들의 자유를 보장하기 위해 우리가 할일은 ‘점령과 간섭’이 아닌 연대와 그들의 자결을 쟁취키 위한 국제적 실천뿐이다.

파푸아인들은 모멸스런 삶과 죽음의 공포를 견디며 오늘도 자결을 위한 투쟁을 계속하고 있다. 감옥에 갇힌 필립과 유삭은 감옥 안에서도 빈땅끄조라를 옥상에 내걸며 투쟁하고 있다.

우리의 결단이 늦어진다면 파푸아의 암운을 걷어내는 것은 무망할 것이다. 지금 파푸아인들은 묻고 있다. 인도네시아 당신들의 행위는 정당하냐고. 정의로운 국제사회는 어디에 있냐고.

웨스트 파푸아에 자결을!

양심수 유삭 파카쥐와 필립 카르마에게 자유를!


2006. 12. 1


경계를 넘어/ 구속노동자 후원회/ 국제민주연대/ 국제엠네스티 한국지부/ 나와우리/ 민가협/ 민변 국제연대위원회/ 인권연구소'창'/ 인권운동사랑방/참여연대/팍스아시아나/평화박물관건립추진위원회/팔레스타인평화연대



<배경설명>

사진협조: 경계를 넘어


웨스트 파푸아라는 나라를 들어보셨나요?

12월 1일은 웨스트 파푸아 사람들이 그들의 독립일로 선포한 날입니다.

또한 2004년 두 명의 파푸인이 국기 게양을 이유로 체포되어 10, 15년을 선고 받은 날이기도 합니다.

한국에는 잘 알려지지 않은 파푸아 사람들은 이리안 자야(Irianjaya)로 바꿔 불려왔고 동쪽 파푸아 뉴기니와 마주하고 있는 서쪽 지역, 웨스트 파푸아에서 살고 있습니다. 네델란드의 식민지였던 웨스트 파푸아는 1952년 자결권을 인정 받은 이후, 1961년에는 의회를 구성, '웨스트 파푸아'라는 국가명과 모닝스타라는 국기를 정했습니다.

그러나 웨스트 파푸아 영토를 강제 편입하려는 인도네시아의 무력적 탈환 시도와 미국 의 정치적 이해관계에 의한 개입, 그리고 유엔의 무책임한 각본에 의해웨스트파푸아의 독립의지와 약속은 좌절되었습니다.

독립이 좌절된 이후에도 계속된 웨스트파푸아인들에 대한 인도네시아 정권의 인권침해와자원 수탈, 웨스트파푸아 저항 세력에 대한 인도네시아 정부의 무력진압은 수 많은 파푸아사람들을 그들의 희생과 고통을 감수하며 살게 만들었습니다.

물론 독재자 수하르토가 물러나고 와히드가 대통령이 되면서 웨스트 파푸아 사람들에게도그들의 독립을 상징하는 '모닝스타'국기 게양을 인정받았고 파푸아 사람들은 독립 승인을 위해 최고 의회를 구성할 수 있었습니다. 이렇듯 파푸아 사람들의 목소리가

반영되는 정치 공간이 열리는 듯 했습니다.

그러나 인도네시아 군대는 국기 게양 사건과 관련해 수백 명을 사살했고, 파푸아 최고 의회 의장이었던 데이스 엘루이(Theys Eluay)를 살해하는 만행을 저질렀습니다. 이후에도 동티모르 학살에 연루된 인물들을 경찰 간부로 임명하고 친 인도네시아 민병대를 구성하는 등 웨스트 파푸아에 대한 억압적 통치 구조를 유지하려는 시도는 계속 되었습니다.

한편, 인도네시아 정부는 2001년 웨스트파푸아에 특별자치를 인정하는 법을 통과시켰고, 이와는 모순적인 웨스트파푸아 3개 도 분리 법안을 독단적으로 시행하기에 이릅니다. 최근까지도 웨스트파푸아 사람들에 대한 인도네시아 정부의 억압정책과 탄압은 계속 되고 있으며, 2004년 12월 1일 독립일선포를 기념하는 자리에서 국기인 모닝스타를 게양했다는 이유만으로 유삭과 필립이 체포당해 10년과 15년 형을 선고 받아 그들은 지금 감옥에 갇혀 있습니다. 국기 게양이라는 이유만으로 10년과 15년을 선고 받았다는 것은 지금 웨스트 파푸아 사람들이 처한 현실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입니다.

인도네시아 정부는 파푸아 양심수 유삭과 필립을 석방하라

그래서 웨스트 파푸아의 자유와 독립을 원하는 세계 각국의 국제연대단체들은 12월 1일 독립선포일을 맞이해 유사크와 필리페의 석방을 요구하는 국제 공동 행동을 하기로 결정하였습니다. 단순히 두 사람의 석방을 요구하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웨스트 파푸아에서 매일매일 일어나고 있는 인권침해와 자원 수탈, 그리고 군사화를 통한 저항 세력에 대한 인도네시아 정부의 폭력적 지배에 항의하는 의미가 담겨 있기에 이번 국제 공동 행동에 대한 여러분들의 관심과 지지가 절실히 필요합니다.

웨스트 파푸아 사람들의 자유에 여러분의 자유를 보태주십시오.

웨스트 파푸아 양심수 석방을 촉구하는 한국단체들
Posted by 영기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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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국제연대위원회입니다. 호우로 인하여 많은 피해가 발생하였습니다. 주위사람들에게 안부전화 어떨까요? 자연앞에서 인간은 작게만 보입니다. 우리가, 아니 전세계가 해마다 겪는 이러한 자연재난이 혹시 우리 탓은 아닐까하는 생각도 해봅니다. 인간들이 황폐화시켜버린 지구. 지구는 어쩌면 자정능력을 점점 상실해가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오늘은 이러한 문제를 고민해보고자 합니다. '환경'과 인간의 '개발', 이 둘의 조화를 위한 지구적인 노력들에 대해서 말입니다.

유엔 환경개발회의가 남긴 것

1972년 스톡홀름에서 유엔 인간환경회의를 통하여 환경문제가 지구적 의제로 인식된 이후, 1984년 환경과 개발에 관한 세계 위원회가 발표한 '우리 공동의 미래(Our Common Future)'에서 제시된 '지속가능한 개발(Sustainable Development : 미래세대의 충족분에 손상을 주지 않으면서 현세대의 필요를 충족시키는 개발)' 개념이 범세계적으로 확산되면서 환경문제는 본격적으로 경제개발 및 선진국-개발도상국 문제와 연계되어 논의되었습니다. 이러한 논의의 연장선상에서 유엔은 1992년 역사상 최대 규모의 유엔 환경개발회의(United Nations Conference on Environment & Development : UNCED, 일명 Earth Summit, 리우회의)가 개최되었고, 향후 지구환경보전을 위한 지구적 차원의 협력을 위하여 '환경과 발전에 관한 리우선언''의제21'을 채택하였습니다. "인간은 지속가능한 개발의 고려에 있어 그 중심이며, 자연과의 조화 속에서 건강하고 생산적인 삶을 향유하여야 한다"고 명시한 리우선언에 대한 실천강령으로서 의제21은 사회경제부문과 환경부문에서의 이슈들과 지속가능한 개발을 위한 주요 그룹(여성, 아동, 원주민, 민간단체, 지방정부, 노동자와 노동조합, 기업과 산업계, 과학기술, 농민)의 역할강화의 문제, 그리고 이행수단에 대하여 제시하였습니다.

리우회의는 '환경'과 '개발'의 통합적인 인식을 바탕으로 환경의 보전과 개발에 대한 전지구적 차원의 관리와 협력을 위한 국가, 시민사회의 노력을 천명하였다는 점에서 매우 뜻깊은 회의였습니다. 끊어진 철로위를 질주하던 '개발'(발전)이라는 기관차는 이제 '지속가능성'이라는 철로위에서 새롭게 달려야한다는 점을 지구촌 모두가 인정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의제21은 9개의 주요그룹의 참여를 권고하였다는 점에서 지구적 문제에 대한 지구적 공치(global governance)의 중요성을 환기시켰다는 성과도 있습니다.

이러한 문제의식에 따른 결과로서 '산림원칙 선언'을 채택하였고, 구체적인 국제환경규약인 '기후변화협약'(The Framework Convention on Climate Change: FCCC), '생물다양성협약'(Convention on Biological Diversity), '사막화방지협약'(Convention to Combat Desertification)이 발효되었습니다. 또한, 리우회의는 의제21에 대한 각국의 추진사항을 평가하고 관리하기 위한 목적으로 지속가능발전위원회(Commission on Sustainable Development : UNCSD)를 설치키로 권고하여, 1992년 제47차 유엔총회를 거쳐 유엔경제사회이사회 산하에 지속가능발전위원회를 설치하였습니다(우리나라에는 대통령자문기구로 지속가능발전위원회가 있습니다).



리우회의로부터 10년 : 빈곤과 개발의 딜렘마

리우회의 이후 유엔은 우리가 이미 살펴본 몇몇 회의를 포함하여 일련의 회의들을 개최하였습니다. 인권(1993), 인구와 발전(1994), 사회발전(1995), 여성(1995), 정주권(1996), 식량(1997)문제들에 대한 회의와 유엔 밀레니엄 정상회의(2000), 인종차별철폐회의(2001), 개발재원회의(2002), 고령화회의(2002) 등이 그것입니다. 이 흐름은 각각의 회의들이 5년후 이행평가를 하는 +5회의에 이어 밀레니엄 총회에서 종합되었고, 이제 다시 +10의 회의(우리가 이번 WSSD를 리우+10으로 약칭하는 이유는 여기에 있습니다)로 나아가는 양상입니다. 이러한 유엔의 회의를 관통하여 흐르고 있는 주된 문제는 바로 리우회의에서 강조된 지속가능한 개발입니다. 각각의 회의들은 독자성을 유지하지만 '환경과 개발', '인구와 발전', '사회발전' 등 주요 회의에서 보여지듯 개발의 문제는 세계화와 함께 1990년대를 관통하는 키워드였습니다. 하지만 리우회의가 이후 지난 10년의 모습은 우리에게 과연 '지속가능한 개발'이었나?라는 질문을 던지게 만들었습니다.

1997년 리우회의의 이행에 대한 평가를 위한 제 19차 유엔 환경특별총회(Earth Summit II, 리우+5)는 리우회의 이후 5년간의 진행에 대하여 매우 부정적인 평가를 내렸습니다. 삼림파괴의 방지에 대한 노력 역시 그다지 개선된 점이 없습니다. 가장 급속하게 삼림이 사라지는 지역은 아시아, 환태평양의 열대우림지역인데, 이곳은 상업용 벌채산업이 왕성하기 때문입니다. 개발도상국은 벌채산업으로 인한 경제이익을 외면할 수 없는 상황에서, 환경파괴의 주된 요인인 빈곤상황은 더욱 악화되었고 선진국은 이를 외면하였습니다(1994년 연구결과에 의하면, 가장 외채가 많은 15개 개발도상국들의 삼림파괴의 정도는 외채위기가 시작된 1970년대말에 비해 3배나 악화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리우회의 당시 154개국이 서명한 기후변화협약은 1993년 50개국이 비준하면서 발효되었습니다. 기후변화협약은 온실가스 배출을 2000년까지 1990년 수준으로 감축하기 위해 노력하고, 개도국에는 협약 이행을 위한 재정 및 기술적 지원을 제공할 것을 약속하였습니다. 1997년 일본 쿄토에서 열린 제3차 당사국 회의에서 규제대상 온실가스를 6가지로 확정짓고, 3차에 걸쳐 단계적으로 온실가스 감소목표를 설정할 것을 내용으로 하는 쿄토의정서(Kyoto Protocol)를 채택하였습니다. 교토의정서는 최초로 온실가스 배출규제를 법적으로 구속하였다는데 의의가 있으나, 부시행정부는 2001년 3월 교토의정서 이행에 대한 파기를 공식 선언하여 실효성에 근본적 타격을 가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한편, 비준국들의 생물다양성에 대한 보존 및 지속 가능한 사용을 위한 국가별 전략을 수립, 이에 근거한 정책입안 등의 내용을 포함하고 있는 생물다양성 협약 역시 이행의 강제성과 구체적인 내용을 발전시키지 못하고 있습니다.

환경부분에 관한 이행과 더불어 개발에 대한 부분 역시 기대치를 충족시키지 못하였습니다. 사회개발정상회의의 후속조치를 논의하기 위해 열린 유엔 사회개발 특별총회(+5회의)에서 채택된 빈곤퇴치 감소계획은 2000년 9월 유엔 밀레니엄 총회에서도 논의되어 현재 세계 12억명으로 추산되는 하루 1달러 미만으로 생존하는 세계 빈곤 인구를 2015년까지 절반으로 줄이고, 선진국은 국내총생산(GNP) 0.7%를 공적개발원조(Official Development Assistance: ODA)에 제공하기로 합의하였습니다. 이러한 빈곤퇴치와 개발문제는 올해 3월 멕시코 몬테레이에서 열린 '유엔 개발재원 회의'를 통해 보다 구체적으로 논의되었습니다. 그러나 지속적인 개발문제에 있어 선진국은 개발 당사국의 개발 책임과 투자환경 조성을 우선시하고, 개발도상국에 대한 선진국들의 공적개발원조는 갈수록 줄어들고 환경기술이전은 아무런 진전을 보지 못하였습니다. 선진 22개국의 대외원조 규모를 현재(537억 달러)의 2배로 늘려야 한다는 코피 아난 유엔 사무총장의 지적에도 불구하고, 유럽연합은 국민총생산(GNP)의 0.39%를 공적개발원조로 제공할 예정이고 미국은 0.1%에 머물고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우리는 지난 10년간 급물살을 타고 있는 세계화 물결을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무역과 투자 자유화조치를 중심으로 전개되는 경제적 세계화는 지속가능한 개발을 원천봉쇄하고 있습니다. 신자유주의적 세계화는 임업, 어업, 목축업 등에서 규제완화를 추구하므로 환경악화 요인에 대한 제한이 더욱 힘들어지게되며, 지적재산권 보호에 따라 환경보호기술의 이전은 더욱 어렵게 될 것은 분명합니다. 또한 농업은 어떠합니까? 무역자유화와 농업의 세계화가 식량생산의 효율성을 높인다는 선진국의 주장은 거짓으로 드러났습니다. 멕시코의 경우 구조조정과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 가입이후 주생산곡물인 옥수수는 미국으로부터 수입하게 되었고, 국민 1인당 평균 음식섭취량은 29%나 줄었습니다. 그리고 개발도상국들은 외채를 갚기 위해 천연자원의 수출, 자원개발, 공해산업을 유치하게 됨으로 인하여 외채문제는 개발도상국들로 하여금 환경보존과 발전의 양립가능성을 애초부터 가로막고 있습니다.

리우회의 이후 유엔의 움직임은 1980년대 전세계적인 경기침체이후 탈냉전과 제3세계의 민주화와 각종 분쟁의 분출이라는 정세 속에서 인류사회가 직면한 기후변화와 사막화, 오존층 파괴 및 생태계의 파괴, 자원고갈과 각종 유해폐기물, 빈곤과 질병, 식량 및 기아 등의 문제들을 해결하고 지속가능한 개발을 위해 지구촌이 공동으로 대처하자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살펴본 바로는 의제21에 대한 진지한 성찰은 '세계화'라는 돌풍이 삼켜버렸습니다.

이제 곧(8.26∼9.4) 남아공의 요하네스버그에서는 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한 세계정상회의(World Summit on Sustainable Development : WSSD, 리우+10)가 개최될 예정입니다. 다음주에는 유엔의 첫 번째 +10회의인 지속가능발전 세계정상회의의 준비과정에서 드러난 경향들을 짚어보고 과연 '지속가능한 개발'을 위한 재성찰의 계기가 될 수 있을지 전망해보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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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영기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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