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웅산 수치를 석방하라!

버마 군사정권이 우려한대로 결국 아웅산 수치의 정치복귀를 결코 허용하지 않겠다는 야욕을 드러내었다. 가택연금해제를 눈앞에 두었던 버마 민주화의 상징 아웅산 수치여사는 계속 사실상의 구금상태에 놓이게 되었으며, 버마의 민주주의를 염원한 세계인의 희망은 또다시 좌절되었다. 2009년 8월 11일, 버마 법원은 미국인 한명이 아웅산 수치 여사의 집에 침입한 것과 관련하여, 가택연금조건을 위반한 혐의로 아웅산 수치여사에게 3년형을 선고하였다. 그리고 버마 군부는 선고 후, 법정에서 최고지도자 딴쉐의 성명을 통해 선심 쓰듯 3년형을 18개월의 가택연금으로 감형하였다고 발표하였다. 올해 5월로 예정된 아웅산 수치여사의 가택연금 해제를 앞두고 아웅산 수치여사의 정치활동을 버마 군부가 허용할 것이라는 예상은 많지 않았다. 그러나 UN을 비롯한 국제사회의 압력과 버마 국민들의 열망이 이런 형태의 희극적인 결말로 나타나게 된 것은 심히 유감이 아닐 수 없다. 이번 사태를 통해 법치주의의 기본조차 존재하지 않는 버마의 현실이 드러남에 따라 버마 군부는 국제사회에 자신들이 버마를 정상적인 국가로 통치하지 못하고 있음을 또다시 폭로하였다.

작년 태풍 나르기스로 인해 국민들이 극심한 고통에 시달리고 있을 때에도 군부의 영구집권을 목적으로 하는 신헌법국민투표를 강행하여 통과시킨 버마 군부는 내년 총선을 앞두고 아웅산 수치 여사의 정치활동을 봉쇄함으로써 영구집권을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겠다는 의도를 공개적으로 드러내었다. 극심한 경제난 속에서 자신들의 치부와 집권에만 관심이 있는 버마 군부는 최소한의 상식인 국민에 의한 통치와 법치주의마저 포기하고 있다. 의회의석과 주요요직의 상당부분을 군인이 차지하도록 한 신헌법속에서 총선이 치러진들, 버마의 미래는 여전히 어두운 터널 한가운데에 놓여있게 될 것이다.

한국 시민사회는 인류가 소중히 진전시켜온 민주주의와 인권의 가치를 정면으로 부정하고 있는 버마 군부를 강력히 규탄한다. 아울러, 국제사회가 아웅산수치 여사의 재구금을 비판하고 있음에도 한마디 공식논평조차 없는 한국정부는 버마의 민주주의에 대해 어떤 입장을 가지고 있는지 밝혀야 할 것이다. 우리는 버마 군부의 이러한 꼼수가 결국 자신들의 운명을 단축시킬 악수가 될 것임을 확신하며 다음과 같이 요구한다.

하나, 버마 군부는 아웅산 수치 여사를 비롯한 정치범들을 즉각 석방하라

하나, 버마 군부는 영구집권 야욕을 철회하고 민주화 세력 및 소수민족들과의 협상에 즉각 나서라

하나, 한국정부는 아웅산 수치여사의 석방을 위하여 버마 군사정권에 대하여 필요한 조치를 다하라.  

2009년 8월 20일 광주인권운동센터, 인권과 평화를 위한 국제민주연대, 참여연대, 천주교 인권위원회, 외국인노동자 인권모임

영문번역
We denounce the Burmese military junta’s conspiracy to stay in power!
Release Aung San Suu Kyi!

The military junta in Burma finally, but predictably decided that Aung San Suu Kyi will not be allowed to return to politics. Under house arrest, Mrs. Aung San Suu Kyi, Burma’s iconic symbol of democracy, continues to be under de-facto custody, and the world’s hope and desire for democracy in Burma is again frustrated. On August 11th 2009, the Burmese court sentenced Mrs. Aung San Suu Kyi to three years of hard labor on charges that Mrs. Suu Kyi violated her house arrest conditions when an American broke into Mrs. Suu Kyi’s home. After the sentencing, the court made a statement waiving the opposition leader’s sentence of three years hard labor to eighteen months under house arrest. It was unlikely that the Burmese regime would end Aung San Suu Kyi’s house arrest as scheduled this May and allow Aung San Suu Kyi to continue her political career. However, pressure from the international community, including the UN, and the Burmese people’s desire to end this charade cannot be dismissed. As of now, reality reveals that rule of law does not exist in Burma, not even the basics, and the international community again disclosed that Burmese government cannot be recognized as a legitimate nation.

Last year, as the Burmese people continued to suffer from the aftermath of Typhoon Nargis, in a bid to stay in power, the Burmese junta decided to have an election for a new constitutional referendum ahead of next year’s general elections. The junta revealed its intent to stay in power and prevent Aung San Suu Kyi from participating in the political process by any means necessary. During severe economic hardship, the junta was only interested only in ruling and has given up on democracy and rule of law. Military officials will take a significant portion of congressional seats and other key positions from the elections under the new constitutional referendum. The future of Burma looks like it’s in the midst of a very dark tunnel.

Civil society strongly denounces the Burmese junta, a country that has denied cherishing the values of democracy and human rights. In addition, while the international community continues to criticize Mrs. Aung San Suu Kyi’s current situation, the Korean government has yet to make an official statement on Burma’s democracy and it should clarify its position on this subject. Being aware that the Burmese Military Division's "cheap trick" is a bad move which would work against them, we request the following:

One, the Burmese junta should immediately release political prisoners including opposition leader Aung San Suu Kyi.

One, the Burmese junta must give up its ambitions to stay in permanent control and start democratization with opposition parties and ethnic minorities. 

One, the Korean government should take necessary actions to have the Burmese military release Aung San Suu Kyi.

Aug. 20th 2009

* 성명서는 버마 대사관에 전달됩니다.




 

Posted by 영기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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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11일 버마군부는 아웅산수찌 여사에게 절망적인 판결을 내렸습니다. 버마 민주화의 상징인 아웅산수찌에게 18개월 가택연금조처를 내린 것입니다. 그녀는 현재까지 13년 동안 가택연금 상태에 있습니다.

이번 판결에 대해 국제사회의 비난이 거세지고 있습니다. 오바마 미국 대통령과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은 아웅산수찌의 즉각적이고 조건없는 석방을 요구하며 버마 군부를 강도 높게 비난했습니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도 긴급회의를 소집할 예정이며 유럽연합은 버마에 무역 규제 등의 제재 조치를 취할 것이라 밝혔습니다.

국제사회의 거센 비난에도 불구하고 버마군부는 2010년에 열릴 총선을 통해 군정체제를 연장할 계획을 실행하고 있습니다. 지난해 5월 아웅산수찌를 비롯한 버마 안팎의 민주화세력을 배제한 채 의석의 25%를 군부에게 할당하는 신헌법을 통과시킨 버마 군부는 이제 아웅산수찌 여사에 대해 가택연금조치를 취하면서 총선에서 압승할 조건들을 만들고 있는 것입니다.

아웅산수찌에 대한 판결은 버마인들에게 폭압적 정권에 의한 고통과 암울한 독재정치의 연장을 의미합니다. 우리는 아웅산수찌의 즉각적인 석방과 함께 유엔안보리가 버마군부에게 폭력적인 인권유린의 책임을 묻고 조사단을 파견할 것을 요청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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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얀마인들의 평화와 정의를 위한 서명운동에 함께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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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관련서명운동(한국어)
https://secure.avaaz.org/kr/stand_with_burma/

Posted by 영기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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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월 미국인 예토(John William Yetaw)가 인야호수를 건너 아웅산수찌(Aung San Suu Kyi) 자택에 무단으로 침입한 사건이 발생한 후 별다른 이유 없이 3개월 이상 끌어오던 가택연금 위반에 관한 법정 평결이 종료됐다. 무단가택침입 사건이 발생한 후 군부는 내년으로 예정된 총선에서 아웅산수찌를 배제하기 위해 그녀에게 실형을 선고할 것이라는 전망이 절대적이었고, 그 전망은 적중했다. 결과론적인 입장에서 볼 때 아웅산수찌의 가택연금 연장은 군부가 의도한 전략의 종착지이며, 무단가택침입이 발생하지 않았더라도 군부는 어떠한 방법이라도 동원해서 그녀의 정치적 활동을 제한했을 것이다.

아웅산수찌의 판결을 보면서 두 가지 생각이 들었다. 하나는 가택연금기간이며, 또 다른 하나는 국민들의 태도이다. 당초 아웅산수찌의 실형기간을 5년 정도로 예상했으나 군 최고지도자 땅쉐(Than Shwe)의 특별 명령에 따라 징역 3년과 강제노동형을 유예하고 18개월 가택연금이 결정됐다. 다시 말해 18개월이 지나면 아웅산수찌는 자유의 몸이 될 수 있지만, 그 기간 동안 군부는 그들이 의도하는 대로 군부정권을 항구화할 수 있는 정권을 출범시키고 이에 따른 법과 제도를 정비할 수 있다는 것이다. 세부적으로 보면 내년 3-4월에 총선을 실시한다는 정보가 유력할 경우 정권이양과 출범은 내년 내에 완료될 것으로 보인다.

물론 군부가 판단하여 18개월 이내 만족스런 성과를 거두지 못했을 경우 아웅산수찌에 대한 가택연금을 연장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총선이 완료된 상황에서 아웅산수찌의 가택연금을 연장하는 결정은 더 이상의 당위성을 찾을 수 없고, 정권이양기간 내에 권력배분의 상대적 피해자에 의한 내분이 조장될 수도 있다. 무엇보다도 반쪽짜리 총선에 대한 국제사회의 비난이 쇄도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에 군부의 부담은 더욱 클 것이다. 결국 군부는 아웅산수찌가 가택연금에 처해져 있는 기간 동안 새 정부를 구성하고 정권을 완전히 이양해야할 것이다. 반세기 가까이 군 지도자 중심의 사유화된 정치권력을 향유해온 버마 군부가 18개월이라는 상대적인 단시일 내에 총선의 후유증을 해결할 사후대책을 마련하고, 군 인사의 원내 진출에 관한 지침 등 갖가지 시행착오를 돌파하며 제도화된 정권을 창출할 수 있을까?

아웅산수찌가 인세인(Insein) 감옥에 수형되었다는 소식이 알려지자 시민들은 삼삼오오 인세인 감옥 주변에 앉아 있는 모습을 접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 중 어느 누구도 그녀에 관한 화제를 입에 올리거나 구호를 외치는 행위는 하지 않았다. 구금 기간이 소위 ‘8888’항쟁 21주년 기념일과 겹쳐져 새로운 민중봉기가 일어날 가능성이 조심스럽게 점쳐졌지만 현실화되지는 않았다. 대신 해외에 거주하는 버마국민들은 아웅산수찌의 수감부터 평결이 완료된 현재까지 버마군부를 강력히 비난하며, 아웅산수찌와 정치범들의 조건 없는 석방을 요구하고 있다. 고국의 민주화를 바라는 이들의 소망과 그것을 위한 열의를 평가절하하는 의도는 추호도 없지만 지난 20년간 있었던 시위가 군부 노선의 변화에 어떠한 영향을 끼쳤는가?

필자가 만난 운동가들 중 일부는 정권의 도덕성을 국제사회에 고발하는 일은 지속적으로 계승해야하기 때문에 시위를 멈출 수 없으며, 단기적으로 군부는 변하지 않기 때문에 인내를 갖고 먼 미래를 내다봐야한다고 역설했다. 또 어떤 운동가는 작년 초 군부가 석방한 일부 정치인들은 그들의 요구에 부흥한 것이라며 시위의 성과가 있다고 주장했다. 이들이 고국으로 돌아가지 않는 이유와 국민들이 선뜻 반정부 시위를 일으키지 않는 이유는 극악무도한 형법체계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라고 한다. 예토의 경우에도 총 7년의 실형 중 1년의 강제노역이 부과되었는데, 일반적으로 강제노동은 탄광, 산림벌채, 보석채굴 등 강도 높은 육체노동이 수반되며 노동과정에서 어떠한 인권도 보장되지 않는다.

국외에서 군부정권의 만행을 고발하는 용기와 군 당국이 자행하는 가혹한 형법체계의 두려움에서 갈등하는 버마국민은 현 상황을 대변한다. 아웅산수찌는 그녀가 쓴 책에서 암흑의 시기를 살고 있는 “두려움”(Fear)을 이겨내는 것이 진정한 인간발전의 시작이라고 주장했다. 필자가 보기에 미얀마에는 아웅산수찌가 말한 군부에 대한 국민의 두려움과 국민에 대한 군부의 두려움이 상존하는데, 후자의 경우는 시간이 지날수록 그 수위가 더 높아지는 것 같다. 일례로 7월 30일자 미얀마의 빛(New Light of Myanmar)에는 국민들의 시위를 두려워하는 군부의 입장이 역설적 기법으로 게재되었다.

아웅산수찌가 국내외적으로 추앙받는 인물이 된 이유는 그녀의 민주화 운동 치적과 굴복하지 않는 저항정신일 것이다. 그러나 그녀가 다른 민주화 운동가와 차별화되는 이유 중 하나는 군부통치의 두려움을 이겨낸 버마국민 중의 한 사람이기 때문은 아니었을까? 그래서 군부도 그녀를 두려워하고 있지 않은가!

장준영(부산외대 미얀마어과)

Posted by 영기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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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on't say goodbye, say see you later.”

이 말은 저와 16명의 친구들이 태국에 있는 버마 난민캠프 중 하나인 멜라우 캠프에 며칠간 머물다 떠나던 날, 한 버마 친구가 저희에게 해 준 말입니다. 군부독재 때문에 고향에서 쫓겨나 난민촌에서 살고 있으면서도 이 친구는 오히려 희망을 잃지 않았고, 아무 생각 없이 영영 헤어질 것처럼 goodbye를 말하던 저희를 부끄럽게 했습니다. 그제야 see you later를 말하면서 다짐했습니다. 꼭 다시 만나자고.  그리고 그 때까지 절대 잊지 않고 힘닿는 대로 버마의 민주화를 위해 노력하겠다고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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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우학교에는 고 1 학생들이  일본, 베트남, 필리핀, 태국 등 아시아의 문제를 주제로 여행을 가는 해외통합기행이라는 프로그램이 있습니다. 저는 버마의 민주화를 주제로 올해 1월 버마와 태국의 국경도시인 메솟에 다녀왔습니다

8월 8일이 무슨 날인지 알고 계신가요? 버마 사람들에게 8월 8일은 5월18일이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갖는 의미와 비슷합니다. 1988년 8월 8일 버마에서는 대대적인 민중항쟁이 일어났습니다. 몇 십만, 몇 백만의 사람들이 거리로 쏟아져 나왔지만 무자비한 군부의 총칼 앞에 쓰러져 갔습니다. 우리나라는 불완전하나마 민주주의를 이루었지만 버마에서는 아직도 군부독재가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 멜라우 캠프의 아이들
 
 
메솟에 다녀온 뒤로 버마의 민주화를 위해 뭔가 해야겠다는 막연한 마음만 갖고 있었을 뿐, 정작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고민 중이던 친구들이 모여 얘기를 해보던 차에, 마웅저 선생님께서 8월 8일을 위한 기념행사를 여는 게 어떻겠냐는 제안을 하셨습니다. 그때부터 버마를 다녀왔던 저희는 바쁘게 준비를 시작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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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위대를 제압하는 군인  

저희가 기획했던 행사는 크게 버마 아이들이 그린 그림, 특히 버마 아이들의 꿈을 그린 그림들을 전시하는 것, 방문했던 학교 중 사정이 어려웠던 사무터(Hsa Mu Htaw) 학교를 위한 모금, 버마의 상황과 8888민중항쟁에 대해 알리는 피켓과 사진 전시, 그리고 아직도 줄어들지 않고 있는 버마 내 정치범 석방을 위한 서명운동이었습니다. 서명운동은 특히 학교 내에 있는 엠네스티 동아리 친구들이 준비해주었습니다.

8월 8일 아침, 행사 전에 버마 대사관 앞에서 열렸던 기자회견에 참가했습니다. 조금 떨어진 곳에서부터 피켓을 들고 올라가면서 행진을 시작했습니다. 기자회견 중에 여러 사람들이 발언을 이어갔습니다. 한 가지 당황스러웠던 것은 기자회견이 시작되기도 전에 버마 대사관이 있는 골목에 경찰버스가 저지선을 쳐놓고 있었습니다. 저희는 대사관 앞으로 갈 수 없었습니다. 다행히 큰 충돌없이 기자회견은 끝났지만 분명 긴장감이 감도는 순간들이었습니다. 우리나라와 직접적으로 관련이 없는 버마문제인데 경찰이 이정도로 막을 필요가 있을지 답답한 심정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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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회견이 끝나고 나서

기자회견이 끝나고 저희는 준비한 행사를 하기 위해 명동 예술극장 앞으로 이동했습니다. 마침 그 날 극장 앞에서 다른 행사가 있을 예정이었습니다. 그래서 공간 사용문제를 놓고 잠시 실랑이가 벌어졌습니다. 하지만 곧 천막을 치고 준비해온 그림, 사진, 피켓 등을 전시했습니다.
 
마웅저 선생님은 이 행사와 관련해서 저희를 가장 많이 도와주신 분입니다. 이분 초청으로 온 버마 이주민들, 한국 시민단체에서 오신 활동가들, 몇몇 기자들까지 합세해 도움을 주었습니다. 저희와 버마분들이 준비해 온 피켓과 사진들로 볼거리가 많은 전시회였습니다. 전시를 해 놓고 막상 사람들에게 홍보를 하기 위해 마이크를 쥐었을 때는 제대로 말도 못하고 우물거려 창피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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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성된 부스 풍경 / 서명하는 시민들

이를 만회하기 위해서 다른 친구들과 함께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열심히 서명용지를 들이대며 “안녕하세요, 버마에 대해 들어 보셨어요?”를 반복했습니다. 눈조차 마주치려 하지 않고 지나가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좋은 일 하시네요.’ 하면서 기꺼이 서명해주고 가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사실 열번 거절에 하나의 서명을 받는 정도였지만 회의감이 들지는 않았습니다. 이렇게라도 사람들이 버마라는 이름을 한 번이라도 듣게 되고, 개중 몇 명은 버마의 상황까지도 알게 된다면 그 자체로 의미가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다 보니 어느덧 시간이 훌쩍 지나 정리할 때가 되었습니다. 부산하게 천막을 걷고 그림들을 떼어내며 도와주신 분들께 감사 인사를 했습니다. 날은 찌는 듯이 더웠지만 그 와중에도 서로 눈을 마주칠 때마다 웃었던 사람들, 서명을 받던 도중에도 눈에 들어오던 버마 아이들의 그림, 행사를 진행하던 도중에 천막 앞에서 굳이 찬송가를 불러야겠다던 ‘예수천국불신지옥‘ 분들과의 실랑이까지도 잊지 못할 일들 입니다.

적자를 예상하고 시작한 행사였지만 의외로 꽤 많은 돈이 모금되었습니다. 180여명의 분들이 버마 정치범들의 석방을 위해 서명해주었습니다. 2시간 동안의 짧다면 짧은 행사였지만 이제 see you later를 말하던 버마친구를 생각할 때마다 느꼈던 마음의 짐을 조금은 덜 수 있을거 같습니다. 

성지윤 (이우고등학교 2학년)


 

[기자회견문] 버마 8888 민주 항쟁21주년 공동 성명
오늘은1988년 8월 8일 발생한 버마의8888민주 항쟁 21주년이 되는 날입니다.
이 민주항쟁으로26년 간 지속되던 버마의 억압적 전체주의 체제는 완전히 무너졌습니다. 동시에 이를 계기로 버마 민주주의 지도자인 아웅 산 수지 여사와 제1 정당인 NLD, 그리고 여러 정당과 국민회의 대표 위원회, 88세대 학생지도자와 특히 역사에서 결코 지울 수 없는 1990년의 총선 결과가 탄생되었습니다. 그러나 연방국가 설립에 대한 국민들의 여망은 아직도 실현되지 않고 있습니다.

현 군부체제는 지금도 버마 역사상 전례 없는 인권 남용 뿐 아니라 소수민족에 대한 대량 살육을 자행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아웅 산 수지 여사를 비롯하여 학생 지도자들, 우 쿤 툰 우 소수민족 지도자 등 2100명이 넘는 정치 수감자들을 불법적으로 구금하고 장기형판결을 내렸습니다. 또 정치문제를 평화적으로 해결하고 1990년 5월에 거행된 총선 결과를 자유롭고 공정하게 처리하기 위한 진정한 대화 권고를 아예 묵살해 버렸습니다. 게다가 자신들의 영구 집권을 위해 국민들의 의지에 반하는 일방적인 초안 헌법을 강제적으로 승인시켰습니다. 더욱이 군부는 이제 2010년 또 다른 총선을 실시하려고 준비하고 있습니다.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이 7월3일과 4일 버마를 방문하여 군부지도자를 만나 아웅 산 수지 여사를 비롯 모든 정치 수감자들의 즉각적 석방과 국민화합을 위한 정치적 대화 실시를 요구했으나 탄 쉐 군부대표는 어떤 명시적 약속도 하지 않았으며 아웅 산 수지여사와의 접촉도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반기문 총장은 실망하여 “나는 버마 정부가 버마 정치에서 새로운 장을 열겠다는 약속을 증명할 유일한 기회를 잃어버렸다고 생각한다 ” 고 발표 했습니다. 사실 군부의 이 같은 대응은 국제사회에 대해서도 오만하고 무례한 모욕을 가한것 입니다.

아웅 산 수지 여사는 2003년 5월 30일 디페인 대학살 사건으로 감금 된 지 6년이 되는 올해 5월 말에는 무조건적으로 석방되어야 합니다. 그러나 군부는 아웅 산 수지 여사를 석방하기는커녕 그녀의 집을 침입한 외국인 때문에 가택연금법을 어겼다는 죄목으로 그녀를 체포했습니다. 노벨 평화상 수상자인 아웅 산 수지 여사는 버마의 국가 화해를 위한 정치 대화를 요구해왔습니다. 버마 국민들에게 여사는 단지 국민지도자만이 아니라 민주주의의 희망이자 빛입니다. 그래서 여사에 대한 불법 구금과 투옥은 민주주의 운동에 대한 사형 선고나 같고, 국제사회에 대한 뻔뻔스러운 도전이나 다름없습니다. 아웅 산 수지 여사는 “이번 체포 사건이 버마의 법 존재 여부의 판정 사례가 될 것이다”고 언급했습니다. 판결은 8월 11일 내려질 예정인데, 만일 군부가 사법적 권한을 오용하여 아웅 산 수지 여사에 대해 불법적 투옥을 선고한다면 단연코 이득 대신 더 가혹한 결과를 얻을 것입니다. 또 국민들의 힘이 총구의 위협 아래 그들 뜻대로 따르고 있는 것보다 훨씬 더 강하다는 것을 곧 이해할 것입니다.

만일 우리가 버마 국민들의 이익과 존엄성에 기반을 두어 진정한 평화적 대화를 한다면 어떤 것이든 해결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한국에서 버마 민주주의를 위해 투쟁하는 우리는 지속적으로 버마 민주주의를 지지하는 한국의 시민사회와 함께 버마 군부에 대해 다음과 같이 강력하게 요구합니다.
하나, 불법 재판을 앞두고 있는 아웅 산 수지여사와 모든 양심수들을 즉각 석방하라.
하나, 국민 화합을 위해 NLD, 소수민족 지도자들과 진정한 대화를 실시하고 가능한 한 정해진 시한 안에 민주주의 전환 과정을 이행하라.  

2009년 8월 8일 토요일
송영길 (최고 위원,민주당), 윤병국(부천시의원),신철영(전 국민고충처리위원회위원장), 김규환, 서헌성, 정용인Weekly 경향기자,국 제 민주연대, 군산참여자치 군산시민연대, 나와 우리, 경계를 넘어, 대학생 나눔 문화, Kuki Students Democratic Front (Korea Branch),민족 민주동맹(자유지역) 한국지부, 민주화 실천 가족 운동협의회, 버마 민주화를 지원하는 모임, 버마민주화와난민교육지원을위한부천시민모임, 버마를 사랑하는 작가들 모임, 부천시민연합, 새 사회연대, 서울외국인노동자센터, 부천외국인노동자의집, 아시아의친구들, 5.18 기념 재단, 외국인 이주 노동자 인권을 위한 모임, 인권실천시민연대, 제주평화인권센터, 참여예산부천시민네트워크, Chin National Community (Korea), Karen Youth Organization (Korea Branch), 평화행동 한걸음더(광주), 풀뿌리 부천자치연대, 피난처, 함께하는 시민행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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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음 글은 태국언론에 보도된 버마 전문 저널리스트
PAVIN CHACHAVALPONGPUN의 칼럼입니다. 이 글을 통해 ASEAN과 버마와의 관계를 엿볼 수 있습니다.


1997년 아세안(ASEAN, Association of Southeast Asian Nations)의 멤버가 된 이후, 버마군부는 아세안으로부터 아무런 제재도 받지 않고 버마를 통치해 왔다. 최근 군부는 국제사회의 압력에도 불구하고 버마 민주세력(National League for Democracy)의 지도자 아웅 산 수지(Daw Aung San Suu Kyi)의 재판을 준비하고 있다.

2008년 5월 초, 버마 이라와디 지역은 나르기스 태풍 (Cyclone Nargis)으로 인해 140,000명의 사망자와 2,000,000명의 이재민이 발생했다. 재난 초기 버마군부는 해외 원조를 받기위해 국경을 열어야 하는 상황임에도 문을 열지 않았다. 이유는 서방국가가 이 기회를 이용해 내정 간섭하고 버마에 군인을 보내는 것을 두려워 했기 때문이었다. 이것은 군부의 지나친 피해망상과 국제사회에 대한 두려움을 보여준다. 아세안의 지도자인 수린 사무총장은 버마군부가 해외원조를 수용하도록 설득하는 일을 적극적으로 추진했다.

수린 사무총장은 나에게 태풍 나르기스 이후 버마 복구를 위해 노력한 아세안의 역할을 기록하라고 지시했다. 나는 나르기스로 인해 피해 입은 곳을 방문하기위해 방콕, 싱가폴, 그리고 랑군 등으로 동분서주했다. 물에 떠다니는 시체들의 모습은 아직도 내 기억 속에 생생하다. 아세안은 버마군부에게 인도주의적인 원조의 중요성과 권력의 역할을 설명했다. 당시 아세안은 버마를 위해 의미있는 일을 했다고 믿었고, 버마가 세계를 향해 문을 여는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여겼다. 

그러나 버마 내에서 고조되는 불만과 아웅 산 수지의 재판은 버마가 문을 열고 국제사회의 요구에 순응할 것이라는 우리의 믿음을 깼다. 군부는 유엔 사무총장 반기문의 부탁에도 불구하고 수지 여사를 감금하고 있다. 현재 군부는 NLD의 참여 없이 내년 선거를 진행할 듯하다. 결론은 아세안이 태풍 나르기스 사태를 통해 버마의 문호를 여는데 성공한 것처럼 보였으나 그 과정은 물리적이고 일시적이었을 뿐이다. 지금까지 아세안은 버마군부를 진정으로 개방하지 못했다.

버마의 국경은 열려있지만, 버마 지도자들은 아직도 왜 굳게 닫혀있는가?

첫째, 버마군부는 불안 속에 살고 있다. 군부의 유일한 생존도구는 억압과 협박이다. 권력을 키우기 위해, 그들은 군부와 의견을 달리하는 사람들과 외부 세상을 악의 축으로 여긴다. 버마의 지도자들은 민주주의를 따르는 것처럼 가장했지만, 그들은 민주주의를 거부했다. 그들에게 민주주의는 사악한 단어일 뿐이다. 그들은 민주주의는 버마의 정치문화와 생활양식에 맞지 않는다고 한다. 물론, 이 모든 해석은 국내 최고 권력인 버마군부가 만든것이다. 아세안과 국제사회는 버마 의회의 성향을 바꾸는데 실패했다. 가장 큰 이유는 성향을 바꾸기 위해서 권력을 포기해야만 하는 상황에서 정치권력은 변화하기 어렵다. 방콕의 엘리트들은 그들이 탁신의 위기를 대면했듯이, 권력을 포기하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깨달아야 한다. 그들 또한 막힌 생각을 가지고 있다.

둘째, 버마군부가 태풍 나르기스 생존자들의 행복을 위해 해외 기부자들에게 문호를 열고 해외원조를 수용했다고 이해하는 것은 큰 오판이다. 아세안은 태풍 나르기스이후 버마군부가 타협했던 경험을 갖고 버마 군부의 중심부에 접근할 수 있기를 바랬다. 그러나 버마군부에게 고통 받고 있는 태풍 나르기스 생존자를 돕는 것과 아웅 산 수지여사를 해방시키는 것은 별개의 문제이다.

수지여사는 버마정권에겐 위협의 대상이다. 그녀는 민주주의의 아이콘이자 합법성의 기호이기 때문이다. 1997년 버마는 자유로운 정치적 사상을 허용할 수 없다는 메시지를 아세안에 전했다. 이 메시지는 태풍 나르기스의 재난 이후에도 바뀌지 않았다.

셋째, 버마 엘리트들의 닫힌 마음은 아세안 헌장을 시험하고 있다. 버마군부는 아세안 헌장에 멤버 국가의 잘못에 아세안이 개입하고 규제하는 조항이 없다는 것을 알고 있다. 현재 아세안 헌장에는 국가와 국민의 관계를 규정하는 규범이 만들어지고 인권기구가 준비되고 있는 상황이다.

가장 중요한 질문은 아세안이 어떻게 버마의 정치위기를, 특히 버마군부의 마음을 열 것인가이다. 푸켓에서 태풍 나르기스 회복을 위해 노력한 아세안에 대한 책을 펴내는 것도 뜻 깊은 일이다. 출판은 아시아지역포럼(ARF)에서 현재 버마에 관한 협의를 하기 위해 적합한 것이었다. 아세안 낙관론자들은 이같은 방법이 버마 정치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고 믿고 있다. 아세안이 버마와 세계를 연결시키는 브로커 역할로서 말이다.

낙관적인 것이 잘못된 것은 아니다. 그러나 나는 버마의 정치를 지난 20년 동안 지켜봐왔고, 내가 그 나라의 복잡한 상황을 고찰하듯 현실적인 것이 보다 합리적인 접근이라고 생각한다. 현실적으로, 버마의 오랫된 위기는 군부가 고의적으로 그들의 마음을 여는 열쇠를 숨기고 있기 때문이다. 이웃해 있는 태국의 정치 혼란은 버마군부가 민주주의를 더욱 경계하게 할 뿐이다.

아세안이 버마의 변화를 후원하는 것은 아주 바람직하다. 수린 사무총장은, 아주 좁다 하더라도, 버마와 세계를 연결하는 커뮤니케이션의 길을 여는 주목할만한 일을 해냈다. 그러나  태풍 나르기스는 대참사의 에피소드일 뿐이다. 버마와 버마 국민들에게 태풍 나르기스보다도 파괴적인 진정한 재난은, 버마에서 계속되고 있는 군사통치이다.

번역 및 정리: 송수현 국제연대위원회 자원활동가

[원문참고]
http://www.bangkokpost.com/opinion/opinion/20640/아세안-seeks-to-unchain-the-mind-of-burmese-junt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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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마의 '5·18'은 끝나지 않았다


최근 버마 군사정부가 가택연금 상태에 있던 아웅산 수지를 투옥함에 따라 유엔(UN)을 비롯한 국제사회의 비난이 거세지고 있다. 그녀는 현재까지 13년 동안 가택연금 상태에 있었다.

2007년 9월 이른바 '샤프론 혁명' 이후 버마 사회는 겉으로 너무나 고요하게 보였다. 그렇지만 샤프론(saffron) 즉, 황색의 가사(袈裟)를 입은 승려들과 그들을 지지하는 시민들의 대대적인 저항과 그에 따른 수 많은 희생자를 낸 '샤프론 혁명' 이후에도 버마 사회 안에서는 테러 통치의 합법화를 꾀하는 군사정부에 저항하는 시민사회의 '조용한 투쟁'이 진행되었다.

특히 국제사회의 거센 비난에도 불구하고 버마 군사정부는 이른바 민주주의로 향한 '7단계 로드맵'에 따라 2008년에 신헌법을 국민투표에 부쳐 이를 통과시키고 내년 2010년 총선을 예정해놓고 있다. 이미 널리 알려져 있듯이 신헌법은 의석의 25%를 군부에 할당하도록 명시하고 있기에 사실상 군부의 특권을 제도화한 군정체제의 연장이라는 비난을 받아왔다. 물론 현 군사정부는 이를 개발과 통합을 요하는 버마 상황을 고려한 '규율 민주주의'의 한 형태로 정당화하고 있다.

지난해 통과된 신헌법은 아웅산 수지를 비롯한 버마 안팎의 민주화세력을 배제한 채 만들어졌다. 이 때문에 작년 5월 신헌법에 대한 찬반을 묻는 국민투표 때 민주화세력은 '반대' 기표 운동을 벌였다. 마침 국민투표를 앞두고 태풍으로 인한 재난이 전국을 뒤덮었는데도 군사정부는 어수선한 상황을 틈타 국민 투표를 강행하였다. 국제 인권단체들은 국민투표가 공포와 불공정한 절차 속에 치루어졌다고 비난하였다. 심지어 주민들 사이에서는 이미 찬성에 기표된 용지를 받았다는 얘기까지 나왔다. 그러나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군사정부는 유권자의 99%가 참여하여 92%가 신헌법을 찬성했다고 발표했다.

이로써 아웅산 수지가 이끄는 민족민주동맹(NLD)을 비롯한 민주진영은 신헌법에 대한 승인 여부, 다음 단계로 군부가 계획하고 있는 2010년 총선 참여 여부를 두고 고심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제헌의회의 성격을 갖는 국민의회가 공정하게 구성되어 있지 않다는 이유를 들어 신헌법 기초 작업에 참여하는 것을 거부했던 민족민주동맹을 비롯한 민주진영으로서는 내년 총선에 참여할 경우 그동안의 정치적 입장을 한번에 부정해버리는 꼴이 되는 것이고, 참여하지 않을 경우 선거 보이코트가 가져올 수 있는 정치적 손실을 감수해야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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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15일 말레이시아 콸라룸푸르의 미얀마 대사관 앞에서 벌어진 미얀마 민주화 촉구 시위에 참여한 한 미얀마 난민이 그녀가 속한 단체의 깃발 앞에 서 있다. ⓒAP=뉴시스



이 같은 맥락에서 민족민주동맹은 10여년만에 열린 총회에서 내년 총선 전 모든 정치범에 대한 무조건적 석방, 2008년 신헌법에 대한 재검토, 국제사회 감시 하에서의 자유롭고 공정한 총선 등이 보장된다면 선거에 참여할 수 있음을 공표하였다. 이러한 결정은 민족민주동맹을 비롯한 버마 민주진영이 그동안 주장해온 '진정한 대화' 주장과 큰 차이가 없다. 그런만큼 현재로서 군사정부가 민족민주동맹의 요구에 귀기울일 가능성은 그다지 높지 않았다. 가택연금 해제 시한을 남겨놓고 아웅산 수지를 투옥한 것도 총선과 관련된 민족민주동맹의 메시지에 대한 무시 전략의 일환이라고 밖에 볼 수 없다.

지난 4월 6일 1988년 8월 8일 민주항쟁을 이끌었던 주역들 중심으로 구성된 '88세대 학생조직'은 군사정부에 대해 인권존중과 민주적 개혁을 요구하였다. 이들은 모든 정치범들의 석방, 진정한 정치적 대화 재개, 2008년 신헌법 재검토 등을 요구하는 민족민주동맹에 대한 지지도 공표하였다. 이는 버마 국내외에 있는 대다수 민주인사들의 공통된 의견이기도 하다.

올해 3월 27일 유엔인권이사회 역시 버마 국민들의 인권과 기본적 자유를 지속적으로 유린하는 버마 군사정부를 비난하는 결의안을 통과시켰다. 유엔 인권특별보고관에 따르자면 현재 버마 안에는 16명의 언론인과 블로거들을 포함해 2100명의 정치범이 있다. 지난 해 10월과 12월 사이에는 약 400명의 정치범이 선고를 받았다. 600여 명의 정치범들은 그들 주거지에서 거리가 먼 형무소로 이감되었다. 정치범들은 고문 등 부당처우를 받는 것이 다반사다.

이러한 배경 하에서 지난 3월 13일 망명한 버마 민주인사들 중심으로 구성된 정치범지원연합회(AAPP), 버마민주주의포럼(FDB) 등이 즉각적인 정치범 석방을 요구하는 서명운동을 시작하였다. 이 운동은 166개 버마 망명 조직과 국제연대조직들의 지지를 받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아웅산 수지의 가택연금 시한 연장 여부가 결정되는 5월 말까지 88만8888명의 서명을 받아내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다. 이 서명 명단은 반기문 유엔사무총장에게 전달될 예정이다.

이렇듯 버마 정치범석방을 촉구하는 국제연대운동이 진행되는 가운데 '88세대 학생조직' 지도자로서 현재 옥중에 있는 민꼬나잉 의장이 2009년 광주인권상을 수상하였다. 그는 1989년에 군부에 의해 체포되어 15년형을 살고 2004년에 출옥한 바 있다. 출옥 당시 민꼬나잉은 "나는 감옥에 있는 동안 나의 여행이 어둡고 험하지만 결코 나 혼자가 아닌 나의 동지들과 함께 하고 있음을 확신할 수 있었고, 또 그러기에 이 여행을 마칠 수 있었다"고 토로하였다. 그러나 그는 '샤프론 혁명'의 배후자로 몰려 2008년에 다시 65년 형을 받고 투옥되었다.

현재 버마는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 대열에 끼여 있다. 전체 인구의 75%가량이 빈곤선 이하의 생활을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유아사망율도 1000명당 76명이나 되고 상당 수의 어린이들이 영양실조 상태에 있는 것으로 보고되고 있다. 2007년 '샤프론 혁명' 역시 이러한 생존의 위기 속에서 표출된 아래로부터의 저항이었다. 이 대대적인 저항은 그간 진행된 '조용한 투쟁'의 집중적 분출이었다.

그러기에 해결 기미가 보이지 않는 빈곤의 경제 속에서 아웅산 수지, 민꼬나잉을 위시한 민주인사들에 대한 정치적 박해를 중단하지 않고 2010년 총선을 치룰 경우 현 군사정부는 국민대중의 전면적인 도전을 또다시 받을 수 있다. 1988년 민주항쟁과 1990년 선거혁명, 그리고 2년 전 '샤프론 혁명'을 이끌어낸 버마 시민사회의 저력을 보더라도 이러한 전망은 충분하다.

여기에다가 한국 시민사회가 국제사회와 더불어 적극적인 관심과 연대를 보탤 때 버마에서 반세기 가까이 존재한 군정은 종식될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버마에서 반복되고 있는 '5·18'을 끝내는 길이다.

박은홍 (성공회대 사회과학부 교수)


*참여연대 국제연대위원회 블로그에서는 이번 달 24일까지 버마 정치범 석방 촉구 서명 운동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참여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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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마 난민들을 위한 시민사회의 연대란
 

지난 8일 서울 코엑스에서는 2009년 세계시민포럼의 일환으로 참여연대와 경희대 인류사회재건연구원이 주관하는 아시아포럼 3강이 열렸다. 참여연대 국제연대위원회 위원장 겸 경희대학교 NGO대학원 교수인 손혁상 교수가 사회를 맡아 진행한 이 포럼에서는 서강대 동아연구소 이상국 교수가 ‘태국 국경거주 버마 난민들의 적응 양상과 과제’라는 주제로 발표하고 이어서 마웅저 인권운동가(버마민주화운동), 박은홍 교수(성공회대 사회과학부), 송경재 교수 (경희대 인류사회재건연구원), 황필규 변호사(공익변호사 그룹공감)가 각각 해당 주제에 관한 토론을 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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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 발표자인 이상국 교수는 1999년부터 2007년에 이르기까지 여러 차례 태국-버마 국경지역을 장·단기간 방문하였다. 이때 진행했던 현지조사를 토대로 태국-버마 국경지역에 거주하는 버마 난민과 이주민의 타국 거주 적응 및 생활 양상을 연구해 왔다. 지난해 2월 한국동남아학회지 『동남아시아연구』(18권 1호)에 발표한「이주민, 비합법성, 그리고 국경사회체제: 태국-버마 국경지역 사회체제의 특성에 관한 연구」논문에서 이 교수는 공식적인 국가 지배 권력의 틈새에서 일어나는 해당지역 이주민들의 비공식적·비합법적 일상이 국경사회체제를 구성하고 작동시키는 자체적 역동성이라고 밝힌 적이 있다.

한편, 지난 8일에 열렸던 아시아포럼에서 이 교수가 초점을 둔 대상은 국경지역 난민이었다. 이 교수는 태국-버마 국경지역 난민들의 발생 배경과 그들의 생활양상을 설명하고, 이어서 난민을 제3국으로 이주시키는 정책으로 인해 발생하는 난민촌 공동체의 와해와 위기 그리고 이에 대한 지원방안 등을 제시했다.

이 교수의 주제 발표가 끝나고 첫 토론자로 마웅저 활동가가 말문을 열었다. 1994년 한국에 입국한 마웅저 활동가는 난민지위 신청을 한지 8년 만인 지난해 난민지위를 획득했다. 난민지위 획득으로 해외로의 출국이 가능해지자, 마웅저 활동가는 태국-버마 국경지역을 지난해 11월과 올해 1월, 총 두 차례 다녀왔다. 특히 난민촌 아이들의 교육 문제에 관심을 두고 있는 마웅저 활동가는 국경지대 특성상 아이들이 다양한 언어 교육(영어, 버마어, 태국어)을 받고 있지만, 사실상 어느 한 언어도 제대로 구사하지 못하고 있다고 토로했다. 또한 교사 인원미달, 재정 부족으로 인해 난민촌 아이들의 교육이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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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토론자로 나선 박은홍 교수는 앞서 이상국 교수가 제의한 ‘제3국으로의 난민 이주 정책의 양면성’에 대한 자신의 입장을 밝혔다. 이상국 교수는 이 정책이 난민들 개개인에게는 새로운 삶의 기회를 얻게 되는 축복인 반면에 난민 공동체는 와해 위기를 불러오는 재앙이 될 수 있다는 견해를 밝힌 바 있다. 이에 대해 박은홍 교수는 공동체라는 집단 중시가 개인주의 혹은 자유주의와 충돌할 수 있는 위험성을 지적하고 공동체와 개인주의의 결합 형태를 다시금 고민해보자는 의견을 제시했다.

세 번째 토론자로 나선 송경재 연구교수는 제3국 난민이주정책에서 파생되는 개인주의와 공동체 해체 문제는 난민들의 선택권의 문제라고 보고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 민주화 과정을 한 단계씩 밟아야할 필요가 있음을 재차 강조했다. 또한 한국이 버마 난민을 지원할 때 물자적인 측면에만 신경을 쓸 것이 아니라 난민인권에 대한 인식을 토대로 인도주의적 지원을 갖춘 장기적인 프로그램을 고민해 볼 것을 제안했다.

마지막 토론자인 황필규 변호사는 ‘연대’를 이야기하는 것은 곧 실천을 요구하는 것이라고 했다. 난민지원활동이 그저 관성적인 활동으로 변질될 수 있는 위험성을 지적했다. 일례로 지난 1월 태국 해군에 의해 500여명의 선상 난민(boat people)이었던 로힌자 난민들이 바다로 추방되어 실종되거나 사망한 사건이 있었다. 이 사건에 대해 한국 정부는 묵묵부답으로 일관했고 언론 측에서도 극히 일부에서만 보도되었다. 시민단체들의 반응 역시 소극적이었다. 이러한 태도를 돌아보면서 황 변호사는 난민을 지원한다는 것이 과연 무엇을 의미하는지 되물었다. 그리고 이 같은 극단적 사례뿐만 아니라 일상에서 일어나는 난민에 대한 인권 침해 문제를 재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마지막으로 버마 난민을 지원할 때 제3국의 지원방식을 맹목적으로 따라하는 것이 아닌 한국 사회만의 원칙과 그에 따른 지원이 필요하며, 한국정부가 다양한 지역기구와 협력하여 난민 수용 및 지원 문제를 지혜롭게 풀어나갈 것을 촉구했다.

토론이 끝나고 질의/응답 시간이 있은 후에 발표·토론자들의 마무리 발언이 이어졌다. 마무리 발언에서 마웅저 활동가는 난민촌 아이들의 교육 문제를 돕고 버마 민주화를 지원하고 연대하는 데 있어서 한국 시민사회의 민주화 경험을 버마 사람들과 나누는 과정이 필요하다고 힘주어 말했다.

경험을 나눈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시민사회 연대의 출발점을 다시 생각해보게 하는 말이다. 연대를 말할 때 우리는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하는가? 먼저 상대방과 내가 서 있는 지점이 동일하지 않음을 인식하고 그 차이를 이해하는 작업이 필요하다. 그리고 내가 걸어온 보폭을 상대방의 보폭에 그대로 대입하여 요구할 것이 아니라, 상대방이 보폭을 땔 수 있는 자발성의 힘과 그 과정을 존중해야 한다.

다시 말해 우리가 ‘민주화’라는 화두로 버마의 현 군부독재 상황을 바라볼 때, 우리의 관점으로 바라보고 우리의 입장에서 지원할 것이 아니라 버마의 개별적인 역사와 경험에 귀 기울이고 이에 우리의 경험을 나누면서 버마 사람들의 잠재적인 운동성을 존중하는 것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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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가 지난 1월 태국 방콕과 메솟 등지를 방문했을 때 인터뷰했던 포럼아시아의 동아시아 프로그램 활동가 Yuyun Wahyuningrum은 지역인권기구로서 버마 내부와 어떻게 소통하는지 물었을 때 '버마 안에서 정보를 얻고, 버마에 정보를 전달하기 위한' 다양한 소통의 방법을 설명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버마의 변화는 외부로부터가 아니라 버마 내부로부터 이루어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버마 시민들이 버마의 상황을 국외인권단체들에게도 알리고 있는지 질문하자, Yuyun은 “버마 시민들 중에도 다양한 계층이 있다. 그들이 정보를 공유하기를 원하는지, 또 공유될 정보가 어떤 종류의 것인지도 고려해보아야 한다”고 답했다.

버마 시민, 버마 국내외 운동단체, 버마 국외 운동단체들을 모두 각각 하나의 균일한 개체로 볼 수 없듯이 아시아 시민사회의 연대에 대해 언급할 때도 마찬가지이다.

연대를 말할 때 각각의 시민사회 내부의 다양한 스펙트럼 중 어떠한 그룹과 만나고자 하는지, 공통으로 인식하고 있는 점과 다르게 인식하고 있는 점은 무엇인지, 서로 다른 배경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고 이에 대해 서로의 경험을 나누는 것이 필요하다. 그 지점에서부터 함께 출발해야 한다. 


 

장유미 (경희대학교 평화복지대학원 국제평화학과 석사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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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닫기 전까지는 결코 저항하지 못할 것이고,
저항한 후에 깨달을 수 있게 된다.”
_조지 오웰, "1984"

도서명 양지를 찾는 사람들|지은이 삠 끗사왕|옮긴이 참여연대 국제연대위원회
발행일 2008년 11월 28일|분야 문학․비소설|판형 국판변형(153*224)
면수 288쪽|책값 12,000원|ISBN 978-89-957963-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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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지를 찾는 사람들"은 주로 정치적 상황을 다룬 기존 버마에 관한 책들과는 다르다. 이 책은 오랜 시간 버마인들의 친구로 지내며 인터뷰를 진행한 삠 끗사왕이 직접 버마인들에게서 들은 생생한 증언들을 바탕으로 만들어졌다. 인터뷰에 참가한 사람들-타이에 있는 버마 출신의 (주로 불법) 이주 노동자들은 담담한 어조로 자신들의 현실에 대해 들려주지만, 왜 그들이 버마를 떠나 타이에서, 그것도 불법으로 숨어 지내면서 그런 고통을 당하며 살 수밖에 없는지를 이야기하면서 버마의 상황을 간접적으로 전한다.

버마와 관련하여 참여연대 국제연대위원회가 이 책의 번역을 기획한 데는 두 가지 목적이 있다. 첫째는 버마의 상황, 버마의 이야기를 널리 알리는 것이다. 읽기조차 버거운 전문서적들로는 일반인들에게 버마의 상황에 대한 이해를 바라기 어렵고, 버마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공감대를 형성하기 또한 쉽지 않기 때문이다. 독서를 통한 자연스러운 관심을 이끌어내, 우선은 현재의 상황을 알리는 것이 버마 문제의 심각성을 알리는 기초적인 단계일 것이다.

둘째는 이주 노동의 환경과 이주 노동자들을 바라보는 시각에 대한 고민이다. 이 책의 배경인 타이뿐만 아니라 우리나라를 비롯한 전 아시아권에서 이주 노동자들이 처한 상황은 그리 좋은 편이 아니다. 우리나라에도 이미 100만 명에 가까운 불법, 합법 이주 노동자들이 있다. 이들 또한 타이의 버마 노동자들이 겪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 책을 통해 우리 사회가 가진 이주 노동자들에 대한 편협한 시각이 동등한 인권을 가진 이들을 바라보는 이해와 화합의 시선으로 바뀌길 기대한다.

양지를 찾는 사람들, 르포 문학의 발견

잔혹한 현실과 끝없는 절망 속에서도 마르지 않는 희망
"양지를 찾는 사람들"은 저자 삠 끗사왕의 인터뷰와 저자의 담담하면서도 버마인들에 대한 애정이 어린 사실 전달, 버마 이주 노동자들이 직접 쓴 글, 그리고 NGO 활동가들의 글로 구성되어 있다. 타이에 거주하는 버마 이주 노동자들의 현실을 전달하는 데 르포의 형식을 빌린 것은 당연할 수도 있지만, 인간애 어린 시선을 유지하면서도 사실을 있는 그대로 보여 주려한 노력이 곳곳에서 읽을 수 있다.

초가 타이에서 받은 온전한 첫 임금을 가지고 처음으로 한 일은 현장 주임에게 부탁하여 아들에게 줄 말 목각인형을 산 것이다. 초는 몹시 슬펐지만 이곳 공사가 거의 끝나가고 고용주도 더는 인부들이 필요하지 않았기 때문에 친구들을 이 공사장으로 데려올 수는 없었다. 생활 문제와는 별도로 초는 여전히 친구들과 다시 만나고 싶었다. (본문_24쪽)

빈곤층이라면 굶주림 끝에 얻은 임금으로 당연히 먹을거리를 장만할 것이라 예상했지만, 아들을 위해 목각인형을 사는 ‘초’의 모습에서 잔혹한 절망 속에서도 끊임없이 희망을 꿈꾸는 버마인들의 낙관성을 엿볼 수 있다.

그러나, 희망은 어디에 있는가?
비록 인터뷰 하는 대상들은 타이에 거주하는 버마인들이지만 곳곳에서 버마의 현재 상황을 알린다. 특히 인터뷰어들의 이상하리만큼 담담한 어조에서 인간의 기본권을 침해하는 상황이 만연해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런데 그 운반비라는 것이 대체 뭔가요?” 내가 다시 물었다.
“글쎄요. 버마군이 군수 물자나 탄약을 운반시킬 때면 우리가 그 비용을 대야 해요. 아니면 우리가 운반해야 하는 거죠.”
“타이에는 그런 종류의 세금은 없는데…….”
“당연하죠. 저도 여기에서 그런 이야기는 들어본 적 없어요…….” 초가 웃으며 답하자, 소가 엄숙히 한마디 덧붙였다.
“타이에는 자유가 있잖아요. 버마에는 없지만.” (본문_39쪽)

국제사회와 버마
끝으로 원문에는 수록되지 않았던 내용으로 버마의 현재 상황을 요약적으로 설명해 주고, 이 책의 내용을 돕기 위해 참여연대 국제연대위원회가 ‘한눈에 보는 버마’라는 제목으로 버마의 역사와 정치, 국제사회와의 관계 등을 정리했다. 

지은이 삠 끗사왕 Pim Koetsawang
삠 끗사왕은 1990년에 타이 출라롱컨 대학 커뮤니케이션학과를 졸업하였다. 프리랜서 저널리스트로 활동하다가 1993년에 타이와 버마의 국경 지대 정글에서 생활하고 있는 한 버마 학생을 사귀게 된다. 저자는 이후 2년 동안 국경 근처 타이-카렌산 계곡에서 지내면서 타이의 소수민족과 그 근처의 버마 난민촌의 삶을 경험하게 된다.
1995년 도시로 돌아온 뒤 마히돈 대학의 인구사회연구소에서 다양한 연구 프로젝트에 참여하였다. 타이의 이주 성매매 여성, 타이의 국가 없는 사람들, 아동 매매와 매춘, 아동 노동과 같은 주제로 많은 보고서를 공동 집필하였다. 최근 연구 프로젝트는 버마 이주 노동자에 관한 것과 버마 이주 여성 노동자의 출산과 성 보건에 관한 것이다. 이 두 개의 프로젝트를 위해서 방콕 남부의 해안 마하차이에서 이주 노동자들과 1년 넘게 함께 생활하였다. 현재 타이인과 버마인의 우애와 연대를 강화하기 위한 프로젝트 ‘국경 없는 친구들’에서 활동하고 있다. 이 프로젝트는 우애가 갈등보다는 화합을 만들어내고 어려운 시기에 서로에게 도울 수 있게 한다는 믿음에 기반하고 있다. 인권운동가로서 캐나다와 미국에서 인권 교육 프로그램에 참여하였으며, 타이로 이주한 버마 사람들의 인권 증진에 힘쓰고 있다. 이 책을 통해 이주 노동자로 불리는 사람들의 고통과 희망, 용기, 존엄성에 대한 이야기가 많은 사람들에게 전달되길 희망한다.

 옮긴이 참여연대 국제연대위원회
버마의 민주화를 위한 연대 활동을 중심으로 아시아 민주주의 및 인권 증진을 위한 노력, 칼럼ㆍ포럼을 통한 아시아 시민사회의 이해, 한국의 대외 원조(ODA) 정책 감시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차례

-책을 펴내며
-추천사
-들어가는 말
서장  몬족 초와 소의 이야기
제1장 국경을 넘어선 투쟁
제2장 우리는 버마 사람들입니다
제3장 삶의 행로
제4장 불법 이민자
제5장 여기는 타이
제6장 그림자 속에서
제7장 악어를 피하려다 호랑이를 만나다
제8장 빛을 찾아서
부록1 타이 NGO 활동가의 글들
부록2 버마에서 온 난민들의 이야기
지은이 소개/한눈에 보는 버마 역사, 정치, 인권 그리고 민주화

* 아시아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평입니다.

- 관련 기사 소개 - 
프레시안 서평
TVREPORT 도서 소개

Posted by 영기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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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마를 찾아서 그들의 꿈을 듣는다
[양지를 찾는 사람들] 출판기념행사 후기


약 1주 전부터 기다려오던 행사였다. 버마에 관한 국내서적은 버마 역사 및 정치경제에 대한 개론서만 접했던 터라 버마 이주민의 삶이 담겨 있다는 이번 번역서가 자못 궁금했다. 더구나 버마 활동가뿐만 아니라 그 동안 버마 및 태국 국경지대 등을 방문하며 버마인들과 교류해 온 국내 활동가를 만날 수 있는 자리라니! 마침 내년 1월초에 태국 국경지대 및 방콕에 소재한 버마 민주화 운동 단체들을 방문하려는 내게 이번 행사는 여러 모로 반가운 소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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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은홍 교수의 진행에 따라 행사가 진행되었음. 박은홍 교수는 버마의 현 정치 상황에 대한 설명도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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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주인공 번역서 [양지를 찾는 사람들(아시아출판사)]


참여연대 지하 느티나무 홀에 도착하니 몇몇 낯익은 버마 활동가 분들이 눈에 띈다. 그리고 왠지 모르게 낯설지 않은 가락의 음악이 울려 퍼지는 가운데 홀 한 켠에는 서너 가지 버마 음식들이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샌드위치 비슷하게 만들어 빵을 둥그렇게 말아놓은 것과 고기류 몇 점을 가져다 먹는데, 이국 음식이지만 신기하게도 입맛에 잘 맞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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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NLD버마 활동가들이 준비한 버마 전통 음식. 달달하고 한국의 젤리와 같은 형태였다.


행사 시작 시각이 가까워져 오면서 자리가 빼곡히 채워짐에 따라 곧 행사가 시작되었다. 성공회대 NGO 대학원 박은홍 교수님이 먼저 마이크를 들어 행사 사회를 진행하는 가운데, 참여연대 국제연대위원회 위원장이신 경희대 NGO 대학원 손혁상 교수님이 마이크를 넘겨 받아 번역서 <양지를 찾는 사람들>이 ‘양지’에 드러나게 되기까지의 과정들과 함께 책에 대한 소개를 간략히 진행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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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손혁상 실행위원장이 [양지를 찾는 사람들] 출간 축하 인사를 하고 있다. 이 책이 나오기 까지 정말 많은 사람들의 정성이 들어갔다.


다음으로 버마의 현 정치 상황에 대해 박은홍 교수님의 대략적인 설명이 이어졌다. 지난 5월 군부가 국민투표를 강행하여 통과시킨 신헌법에 의해 2010년 총선거가 예정되어 있는데, 버마 민주화 세력들은 이를 반대하는 입장이다. 지난 90년 총선에서 버마민족민주동맹(NLD)의 압승이 무효화되고 군부독재가 지속되어 온 상황에서, 올해 통과된 신헌법과 이에 따른 2010년 총선거 실시는 지난 90년 총선을 실질적으로 부정하는 의미를 담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정치 상황에 대한 이해의 바탕 위에, 활동가 도임방주 님이 준비한 각종 사진과 동영상 자료는 버마 사람들의 삶을 엿볼 수 있는 간접적인 통로였다. 태국 국경지대 난민촌 및 버마 현지를 방문하며 현지 사람들과 교류해 온 도임방주 님은 소수민족, 종교, 세대에 따라 버마 민주화 및 소수민족 분리독립 문제에 대해 차이를 보이는 다양한 시각들을 지적하였다. 즉, 버마의 소수민족 독립 및 민주화 이슈를 살펴 볼 때 여러 그룹들의 서로 다른 시각들을 폭넓게 아울러야 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주로 불교를 믿는 버마 내 소수민족인 샨족 중에서도 젊은 층은 버마로부터의 완전한 독립을 추구하는 한편, 이전 세대는 버마 연방을 원한다.

다음으로 버마 활동가와의 이야기 시간이 이어졌다. 본 출판기념 행사에 NLD 활동가들이 대다수 참석한 만큼, 버마 내 NLD의 힘이 실질적으로 어느 정도 되는지, NLD가 생각하는 소수민족 분리독립 또는 버마연방에 대한 비전은 어떠한지 등에 대한 참석자의 질문이 이어졌고, 군사정권과 소수민족 사이에서 NLD가 버마 민주화와 소수민족 문제 해결을 위해 어떠한 지점에 위치할 수 있는지에 대한 고민도 제기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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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난민 지위를 얻어 태국에 다녀온 마웅저씨가 행사에 참여해 주었다. 한국 시민사회가 버마를 위해 어떤 활동을 함께 할 수 있을지 여러 제안이 있었다.


이외에 난민 신청 거부에 대한 소송을 한지 8년 만에 마침내 지난 9월 국내 난민 지위를 인정받은 마웅저 씨가 군부 독재 하의 버마 사람들에게 무엇보다도 필요한 것은 물질적인 도움보다도 한국의 민주화 경험이라고 역설하였다. 즉, 이러한 경험을 나누고 지속적인 관심으로 운동에 동참하는 것이 버마의 민주화를 이루어내는 저력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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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LD 활동가들의 버마 경험과 한국 생활에 대한 이야기와 여러번 버마에 다녀온 참가자의 질문이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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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번역서 [양지를 찾는 사람들]이 나오기 까지 일등 공신인 두 번역 자원활동가가 행사에 참여해 자리를 빛냈다.


시간상 제약으로 모두의 아쉬운 마음을 뒤로 한 채 행사가 끝났다. 자리를 떠나기 전에 이번 행사의 주인공인 번역서 <양지를 찾아서>를 한 권 사들고 훑어보았다. 고국을 떠나 태국으로 이주해 살아가는 이들의 생활상과 그들 내의 서로 다른 소수민족, 종교적 배경들이 빚어내는 생각의 각축전이 머리 속으로 스쳐 지나가는 듯했다. 마지막으로 버마 민주화를 위해 활동하는 여러 국내 전문가, 활동가 및 버마 활동가들과 인사를 나누면서, 한국 내 버마와 관련해 활동하는 다양한 단체들이 어떠한 구심점을 바탕으로 버마의 민주화를 지원할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이 다시 시작되었다. 내년 1월로 계획한 탐방에서도 나의 이러한 고민은 계속될 것이다. 중요한 것은 마웅저 씨가 강조한 것처럼 민주화 경험을 나누는 것이다. 따라서 한국의 민주화 이후 세대인 내가 이전 세대의 민주화 운동의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는 가운데서 현 버마 민주화 운동과의 접합을 시도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현 버마의 청년들은 버마의 미래에 대해 어떠한 생각을 하고 있는지에 대한 동시대 청년으로서의 궁금증 등을 이번 출판기념회 행사를 통해 얻을 수 있었다.


장유미(출판 행사 참가자/ 경희대 대학원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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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영기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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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마를 찾아서, 그들의 꿈을 듣는다

국제연대위원회 번역서<양지를 찾아서>출판 기념 행사

참여연대 국제연대위원회는 태국으로 이주한 버마 이주민의 삶을 담은 번역서 '양지를 찾아서(Pim Koetsawang,2001)'를 출간할 예정입니다. 책 출간을 기념하며 도임방주 활동가와 현지 버마인들의 삶과 희망을 들어보는 시간을 갖고자 합니다.

도임방주 활동가는 2003년부터 버마 현지를 3 차례 방문해왔고 여러 버마인들과 교류해 왔습니다. 여러 버마 친구들과 함께하면서 버마에 대한 애정이 큰 활동가입니다.
이 날 자리에는 국내에서 버마 민주화를 위해 활동하는 버마 활동가 및 국내 전문가, 활동가를 모시고 버마에 대한 다양한 음악, 음식,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도 마련되어 있습니다.

버마인들의 삶과 꿈, 민주화에 대한 열망까지 들어보는 시간~

놓치지 마세요.

행사안내
일시 11월 28일(금) 오후 6시 50분 (약 1시간 30분 진행)
장소 참여연대 느티나무 홀

차례
음악영상 및 버마 음식 나누기
버마 번역서 소개 및 축하인사
버마에 대한 이해
한국 활동가의 버마 이야기
버마활동가와 이야기 나누기

소개
도임방주(한국기독학생회총연맹 KSCF 활동가)
2003년 태국에 소재한 '버마이슈'라는 단체에서 6개월간 버마인들의 교육 프로그램을 코디네이트하고 버마에 관한 기사를 수집하는 활동을 했다. 그동안 태국 국경지대 난민촌에서 버마인들과 생활하다가 경찰에 잡혀나오기도 했다. 이후 2007년까지 양곤, 만달래이, 파등 버마의 현지를 세 차례 방문하면서 버마 청년과 여성들과 교류해 왔다. 그는 한국에서도  버마에 대한 애정을 실천해 가고 있다.


문의 참여연대 국제연대위원회 차은하 간사 (02-723-5051, silverway@pspd.org)
주최 참여연대 국제연대위원회
후원 성공회대 아시아NGO정보센터

Posted by 영기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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