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6월 캐나다 토론토에서 열린 제4차 G20정상회의는 차기 개최국인 한국 정부에 막중한 임무를 부여했다. 그 동안 G20는 금융과 경제 위기 해결을 주요의제로 다뤄왔다. 그런데 토론토회의에서 처음으로 ‘개발(Development)’을 공식의제로 받아들이겠다는 합의를 끌어냈다. 이와 함께 한국이 주축이 돼 차기회의에서 다룰 개발에 관한 의제와 실행계획을 마련토록 했다(토론토 선언문 제47조). 이에 세계 시민사회는 국가 간 개발격차를 줄이고 지구촌 위기와 빈곤을 줄이는 개발에 관한 의제를 기대했다. 그러나 한국 정부가 발표한 개발의제 문건(Development Issue Paper, 2010. 6. 17)을 접한 국제 시민사회는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국제 시민사회는 이 문건이 시장과 무역확산을 통한 성장에 초점에 둔 신자유주의적인 모델이라는 평가까지 내렸다.

한국 정부는 개발을 위해 필요한 인프라를 구축하고 역량을 강화해 개도국의 경제성장을 돕고 빈곤을 줄인다는 선언적 목적 아래 ▶사회간접자본 확충 ▶인력개발 ▶금융접근성 제고 ▶자유무역 증진 ▶개발경험 공유-경제개발계획, 새마을운동, R&D, 산업정책 등을 핵심실행전략으로 내놓았다. 이는 아직 방향을 제시하는 수준에 머무른 것이다. 하지만 이대로라면 상대적으로 경쟁력이 약한 개도국에게 ‘경제개발계획을 세우고, 사회간접자본에 대한 투자를 통해 경제성장을 주도할 경제 엘리트를 양성하고, 무역을 통해 국제경쟁시장에서 스스로 경쟁력을 키우라’고 요구하는 것으로 해석된다.

사실 단기적으로 실효를 거두는 경우가 없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접근법은 수차례의 경제위기와 금융위기를 가져왔으며 국가 간, 개인 간의 양극화를 심화함으로써 이미 실패한 것으로 판명됐다고 본다. 또한 이는 ‘개발’ 이라는 용어를 사용하고 있을 뿐 유엔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 세계은행을 비롯한 국제기구, 개발원조 분야의 선진국들 그리고 세계 시민사회의 ‘인권으로서의 개발’이라는 개념과는 사뭇 다르다.  뿐만 아니라 오히려 국제사회의 흐름에 역행하는 것이다. 현재 국제사회에서 합의된 개발 개념은 경제성장뿐만 아니라 사회적 ․ 문화적 ․ 정치적 변화를 포함해 전 인류의 웰빙(인권과 기본적 자유의 실현)을 점진적으로 증진하기 위한 포괄적 과정이다. 또한 그 실현을 위해서는 인권에 바탕을 둔 접근법을 요구하고 있다. 
 
한국정부, 인권에 기초한 개도국 개발전략 제시해야
   
하지만 한국 정부는 시대를 거스르는 개발 개념을 드러냈다고 본다. 그러고도 11월 G20정상회의의 서울 개최에 대해 “글로벌 지적 리더십을 발휘하고 국격을 높여 국가브랜드를 업그레이드할 기회”라며 대국민 홍보에 나서고 있다. 또한 정상회의를 통해 ‘지구촌 유지모임’에 참여하게 된 데 대해 기쁨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진정으로 리더십을 발휘하고 국격을 높이기  위해서는 오랜 역사적 경험을 통해 쌓인 국제사회의 합의를 성실히 이행하고, 거기서 진일보 할 수 있는 대안적 의제와 실행계획을 마련해 국제사회에 내놓아야 한다.

시민사회는 지구촌의 빈곤 감축을 위한 국제개발협력에 있어서 원조의 수원국에서 공여국으로 발전한 한국의 ‘개도국과 선진국 간의 가교 역할’에 대한 기대가 여전히 크다. 이번 G20회의는 한국 정부의 홍보 무대가 아니라 국제사회의 일원으로 한국의 성숙도를 평가하고 첨예한 이해관계 속에서 난항을 거듭하고 있는 남반구와 북반구 간의 개발협력에 대한 한국 정부의 조정 역할을 시험하는 무대가 될 것임이 분명하다.

G20정상회의 공식홈페이지 g20.org
2010 서울G20 정상회의 홈페이지 seoulsummit.kr

김신 푸르메재단 기획실장/국제연대위원회 실행위원

* 이 글은 '나눔과 시민사회 8월'에 소개된 글입니다.



 

Posted by 영기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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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혜국 주민 욕구와 자국 시민사회 의견 중시

캐나다는 1995년에 ‘세계 속의 캐나다’라는 정책서를 발표했다. 이를 토대로 공적개발원조(ODA,Official Development Assistance)사업을 수행해오다가 2008년에 ODA책무법(ODA Accountability Act)을 입법했다. 책무법의 제정은 캐나다 원조의 질적 수준을 높이는 데 크게 기여해 오고 있다. 단 6개의 조항으로 이루어진 간단한 법인데도, 그 내용은 국제협력개발기구(OECD)개발원조위원회 회원국 중 가장 앞선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법 제정의 목적을 빈곤 감축으로 명시하고 있으며, 빈곤국 주민의 욕구에 충실한 사업의 수행을 요구하고 있다. 또한 지속가능한 발전과 민주주의 증진, 국제인권기준의 촉진과 같은 국제사회 공통의 가치와 합의를 충족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지난해 제정된 한국의 국제개발협력기본법은 관련 부처 간의 이해관계 조정을 강조하고 있다. 반면 캐나다의 책무법은 그 명칭에서 엿볼 수 있듯, 자국의 ODA가 원조를 받는 나라의 정부와 주민들에게 미치는 실질적 효과와 그 평가에 중점을 두고 있다. 캐나다는 책무를 강조함으로써 원조 정책기관에서 시행기관에 이르기까지 모든 관련 부처를 조율하고 있다. 사업의 선정 단계에서 혜택의 분배에 이르기까지 모든 의사결정과 프로그램의 진행을 민주적이고 투명하게 그리고 국제인권기준과 원칙에 합당하게 하도록 유도한다. 또한 모든 관련부처가 시민사회단체나 국제기구와 같은 외부 전문기관에 적어도 2년에 한 번씩 컨설팅을 받도록 의무화, 사업의 민주성과 투명성을 한층 더 강화하고 있다. 나아가 의회에 ODA 예산과 모든 활동을 정기적으로 보고하도록 함으로써 의회의 감사기능을 보장하고 있다. 

급하게 만들어진 한국의 ODA법, 시민사회 의견 받아 손질해야

20년 이상의 연구 끝에 산출된 책무법은 시민사회의 활동에도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시민사회단체 간의 연합체인 캐나다국제협력위원회(Canadian Council for International Cooperation)는 책무법이 발효되자 정책제안서를 발표한 바 있다. 2009년 9월엔 엠네스티, 오타와대학 등과 공동으로 책무법의 이행을 위한 일련의 연구와 논의를 거쳐 정부와 국제금융기구 등을 겨냥한 시민사회 의제를 제시했다.

총 6절로 이뤄진 시민사회 의제는 1) 양성평등과 여권 신장 2) 건강권 특히 아동과 산모의 건강 3) 식량에의 권리 4) 보편적 초등교육 5) 긴급구호 시의 인권 보장과 책무성 6) 국제금융기구의 국제인권기준 준수와 캐나다 정부의 책무 등을 강조하고 있다. 한편 ‘핼리팍스 이니셔티브(Halifax Initiative)’와 같은 단체는 재무부 · 개발원조청 등 ODA 관련 기관의 책무법 이행 여부를 세세히 평가하고 개선을 요구하고 있다.
 
이같이 캐나다의 시민사회는 다양한 방식으로 정부의 ODA를 평가하고, 질적 개선에 필요한 의견을 적극적으로 내놓는다. 또 정부는 시민사회의 의견을 공식적으로 수용하고 의사결정에 반영한다. 캐나다는 이를 통해 지구적 빈곤 감축과 인권 증진의 노력에 크게 이바지하고, 국제사회에서 스스로의 위상을 높이고 있다.


이는 책무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그 목적과 이행 방법을 구체적으로 규정하고 있는 책무법을 정부와 시민사회가 공통 기준으로 받아들일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한국의 국제개발협력기본법은 시민사회와 합의하지 않고 다급하게 만들어 졌다. 그리고 기본법의 시행령 입법예고는 지난달에 발표됐다. ODA는 국내의 의사결정이 다른 나라의 정부와 주민에게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주는 중차대한 국제문제이기 때문에 그에 따르는 국가적 책무 또한 크다. 시행령만큼은 국제사회의 논의와 기준을 충분히 반영함으로써 정부와 시민사회가 모두 수용할 수 있는 보편적 기준으로 입법해야 한다. 그래야 한국이 국제사회의 일원으로서 국가적 책무를 다할 수 있을 것이다.        

캐나다국제협력위원회 홈페이지 www.ccic.ca

 김신 (참여연대 ODA정책위원회 실행위원)
 
 
* 이 원고는 나눔과 시민사회 7월호에 실린 글입니다.
Posted by 영기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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