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호와 서명운동으로 바뀌는 건 없다
버마 민주화 운동의 새로운 지평을 위해
세계에서 현재까지 비민주적 정권과 사투를 벌이고 있는 국가들 중 가장 높은 국제적 관심을 끌고 있는 나라 중 하나가 버마(미얀마)일 것이다. 1988년 민주화 요구 시위 실패 이후 서슬 퍼런 군사정권에 외로이 투쟁하는 민주주의 지도자 아웅산 수치(Aung San Suu Kyi)의 용기에 국제사회는 주목했고, 그녀가 독립 운동가이자 국부(國父) 아웅산 장군의 혈육이라는 사실에 국내외 시선은 그녀에게 정통성을 부여했다.
아웅산 수치와 그녀의 동지들이 정권에 의해 영어(囹圄)상태에 들어간 뒤 국내적으로 지루하리만큼 정권에 대한 공개적 저항의 움직임이 포착되지 않다가 드디어 2007년 8월 유가 인상에 항의하는 승려들의 비폭력 가두시위가 발생했다. 서구 언론에 의해 "샤프란 혁명"(Shaffron Revolution)으로 명명된 이 시위는 국제사회의 압력과 경고에도 불구하고 유혈진압으로 막을 내렸다. 국외에서 활동하는 버마출신 민주화 운동가들은 이 사건을 계기로 조국의 민주화를 낙관했으나 그 결과는 허무하리만큼 군사정권의 일상으로 회귀했다.
정치권력을 유지하려는 버마 군부의 의지가 강력하고 또 그 의지에 따른 사회 통제력이 견고하기 때문에 정권에 도전할 국내세력이 등장하지 않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그러나 필자가 지난 10여 년간 버마 군부의 정치행태를 관찰한 결과에 따르면 정권의 공고한 억압체계는 군사정권 유지에 부분적으로만 인정된다. 규모와 파괴력 면에서 미약하지만 정권을 향한 공개적인 저항이 발생했기 때문이다.
▲ 드디어 2007년 8월 유가 인상에 항의하는 승려들의 비폭력 가두시위가 발생했다. 서구 언론에 의해 "샤프란 혁명"(Shaffron Revolution)으로 명명된 이 시위는 국제사회의 압력과 경고에도 불구하고 유혈진압으로 막을 내렸다. ⓒhttp://ko-htike.blogspot.com
필자의 견해에 따르면 버마 민주화 운동이 지리멸렬한 부침(浮沈)을 거듭하는 근본적 이유는 거시적 차원에서 국내세력과 국외세력의 소통 부재에 있다. 바꾸어 말하면 버마 민주화를 지원하는 국제 NGO들과 국외 체류 민주화 운동가들의 운동 노선과 정책이 버마 군사정권의 즉각적인 반응을 유도할 만큼 파괴적이지 못하다는 점이다. 이 주장에 대한 세부적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첫째, 국내세력의 권력 공백을 지적할 수 있다. 1988년 시위와 1990년 총선 이후 군부는 민주화 운동가들에 대한 대대적인 검거에 들어감에 따라 민주화 운동가들은 신변상의 문제로 외국으로 도피했고, 군사정권의 만행을 세계에 고발하며 국외 체류 민주화 운동의 조직화에는 성공했다. 2007년 말에 필자가 만난 방콕 주재 한 민주화 운동가에 따르면 태국에만 약 4만 명가량의 민주화 운동가가 활동하고 있다고 한다. 그러나 바꾸어 말하면 이들의 이탈은 국내적으로 군부에 대항할 수 있는 제도의 약화를 의미하며, 군부 입장에서는 상대적으로 손쉽게 반체제 인사들에 대한 통제가 가능하다. 희생을 치르지 않고 민주주의를 달성하겠다는 무임승차자가 존재하지 않기를 바란다.
둘째, 국내에서 이탈한 민주화 운동가들의 분열과 국내세력과의 허약한 연대를 지적할 수 있다. 국외에서 활동하는 민주화 운동가들은 국민민주연합(NLD) 당원 이외에 독자적 정당이나 노동자·학생연합과 같은 소규모 단체, 개인 활동가 등으로 나눠지는데, 각 단체들 간의 배타적 갈등 구도가 이어지고 있다. 특히 NLD는 1990년 총선에서 승리했고, 미국이 합헌정부로 인정하는 정당이라는 이유에서인지 민주화 운동을 하는 기타 단체나 활동가들의 운동을 부정하는 경향이 높다. 또한 소규모 단체들은 생성과 소멸의 단계를 반복하는데, 신변과 생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임시방편적 전략이기도 하지만 한 집단의 우두머리가 되면 세속적인 성공을 했으며 이는 곧 불교에서 말하는 좋은 업(業)을 쌓았다는 것과 동일시하는 버마인들의 습성이 강력히 내재한다. 그렇기 때문에 이들은 고국의 민주화 이전에 운동의 주도권을 두고 각축을 벌이는데 더 열중하며 그 과정에서 각 기구 간 배타성이 나타난다.
국외 체류 운동가들의 대립과 분열은 버마 국내세력과의 연대에 부정적 요인으로 작용한다. 2007년 반정부 시위에도 보았듯이 버마 국내세력들이 국외 운동가들과 공동으로 운동을 전개한 증거를 찾을 수 없다. 오히려 쎄잉윙(Sein Win) 박사와 같이 국외적으로 명망 있는 민주화 운동가들은 언론과의 인터뷰에 집중하며 자신의 입지를 강화시킬 뿐이었다. 실제로 필자가 버마에서 만난 청년 운동가들은 국외에서 활동하는 운동가들이 국내세력과 어떠한 연대도 꾀하지 않는 것에 대해 큰 불만을 품고 있었으며, 이러한 운동 구조로는 정권을 퇴진시키기 힘들다는 평가를 내렸다. 중국, 인도, 태국, 최근 들어서는 러시아까지 군사정권과 경제적 교류를 유지하며 정권의 든든한 버팀목이 되고 있는 상황에서도 국외 체류 운동가들은 버마 투자 금지, 관광 금지와 같은 요구사항에 20년째 천착하고 있는 사실도 재고될 필요가 있다. 현실을 직시하는 탄력적인 운동 노선과 국내세력과의 연대 모색이 필요하다.
셋째, 버마의 민주화를 지원하는 한국 NGO로 눈을 돌리면 이들의 가치편향적인 시각을 지적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버마의 민주화 운동을 지원하는 NGO가 한국에만 30여개 이상 주재하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이들은 공통적으로 군사정권 퇴진, 인권탄압 중단과 같은 원론적인 수준에서 군사정권을 압박하고 있다. 즉 정작 버마의 군부통치가 다른 국가들에 비해 장기간 지속되는 이유에 대한 지적 고민을 한다거나 버마를 방문하여 현지 사정에 대한 이해를 도모해야할 필요성을 절감하고 있는지 의문이다. 버마 군사정권을 타도의 대상으로만 정의내릴 뿐이지 어떠한 전략을 동원할 것인가 고민하지 않는 것은 한국 NGO뿐만 아니라 국제 NGO도 다르지 않을 것이다. 호랑이를 잡으려면 호랑이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가 필요하며 호랑이 굴에 들어가야 한다. 각 NGO들은 버마 출신 운동가들의 보조적인 역할 이외에도 현지 상황을 직시할 수 있는 가치중립적인 태도를 배양해야하며, 이를 바탕으로 버마의 민주화를 지원할 수 있는 현실적인 대안을 마련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버마의 민주화를 위해서는 일부 국제사회의 노선 변경이 필요하다. 알다시피 버마는 26년간 폐쇄적이고 고립적인 국제관계의 틀 속에서 정권의 공고함을 유지했던 국가이다. 따라서 경제봉쇄와 같은 고전적인 수단을 동원한 고립정책이 버마의 체제변동에 영향력을 끼칠 가능성은 높지 않다. 버마를 국제사회로 유인할 수 있는 대책을 강구하는 것이 체제변동에 특효약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군사정권의 고립을 주장하는 NLD의 내부 목소리도 변화되어야 마땅하다. 창당 이후 지난 20여 년간 NLD의 정강과 노선에 대해 비판의 목소리를 높여온 자들은 당외 세력보다 당내 세력이었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국외 체류 운동가들과 NLD의 요구사항이 다소 중첩된다는 사실은 여전히 버마 민주화 운동의 주류는 NLD의 몫으로 보인다.
필자는 최근 몇 년간 개인적 관심에 의거 버마 내 조직화되지 않은 민주화 운동가들과 교류하며 버마 미래의 새로운 희망을 보았다. 민주화 운동가들이라고 자처하는 자들이 국외로 떠난 상황에서도 혁명정신의 계보를 잇는 청년 운동가들이 군부에 대한 연구를 게을리 하지 않으며, 미래의 정치질서에 대한 고민을 나누며 세력 확대를 꾀하고 있었다. 무엇보다 이들은 국제사회가 버마의 민주화를 지원할 수 있어도 정작 민주주의를 쟁취하고 발전시키는 장본인은 버마 국민이라는 사실을 한시라도 잊지 않고 있었다.
이제 버마 민주화를 촉구하는 국제사회, 국제 NGO, 국외 주재 민주화 운동가들은 단선적인 경로에만 치중하던 민주화 운동의 노선을 변경하여 버마 국내세력에 대한 화답이 필요할 때가 되었다. 즉 버마 문제에 대한 국제적 지원과 관심을 요구하는 규탄, 정치범 석방을 요구하는 서명운동보다 현실적이고 실행 가능한 대안으로서 버마 현지와 교류할 수 있는 연대를 모색하는 것이 가장 급선무일 것이다. 이를테면 투자 철수가 아니라 민간 분야의 투자 확대 요구, 공정여행을 통한 버마인들의 인식 제고와 같은 활동은 NGO가 충분히 수행할 수 있다고 본다. 국외 체류 민주화 운동가들도 헤게모니의 각축장에 휘말리지 말고 국내세력과 교류하며 시행착오를 거치며 현지 상황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노선을 재정비할 필요가 있겠다. 버마 국내세력도 더 이상의 국외 퇴장을 지양하며 지하세계에서 조직화와 연대를 꾀하여야 하며, 민주적 의사결정에 취약하지 않아야 할 것이다.
군부의 폭압적인 만행에 민초를 대신해서 승려가 길거리로 나선지 1년이 지났다. 이제 버마의 민주화를 위한 새로운 지평이 필요할 때이다. 버마 국내세력-국외 체류 민주화 운동가-국제 NGO간의 공조체제가 이뤄질 경우 버마의 민주화는 생각보다 빠르게 다가올 것이다.
장준영/한국외대 교양부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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