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8기념재단은 2000년에 광주인권상 시상을 시작으로 본격적인 국제연대를 추진한지 10년 만에 국내에서 가장 포괄적인 국제연대 프로그램을 갖춘 단체가 되었다. 해마다 아시아 인권운동단체의 대표에게 상금과 함께 수여하는 광주인권상 뿐만 아니라, 아시아 인권단체들에게 운영자금을 지원하고, 국제인턴활동가를 장기간 받아들이고 또한 보내는가 하면, 아시아 활동가들을 초청하여 인권문제에 관한 단기연수의 기회를 제공하고 있고, 5.18 피해자가족들을 모시고 아시아 인권단체들을 방문하고, 아시아와 국내의 인권운동가들과 학자들이 함께 만들어가는 대규모 토론회인 광주아시아포럼을 5월에 개최하는 등 프로그램의 다양성과 규모의 측면에서 단연 국내 최고의 위상을 갖추게 되었다. 물론 그 적실성에 대해서는 의문이 제기될 수 있다. 필자는 그간의 국제연대가 양적인 성장과 실험의 과정이었고 이제 그렇게 10년이 흘렀으니 그 적실성을 따질 때가 되었다고 본다.
 
 
5.18의 국제적 의미는 무엇인가?

재단의 국제연대활동은 최근 한국 시민사회운동단체들이 그러하듯이 아시아연대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덕분에 상당수 아시아인권운동가들에게 5.18이란 시간과 광주라는 공간이 친숙해 질 수 있었다. 그렇다면 이들이 공감하는 5.18과 광주는 무엇인가? 그것은 국가폭력에 맞선 광주시민들의 용감한 저항과 시민정신, 그리고 아주 특별한 것으로 그 역사의식이다. 국가폭력의 잔혹성은 아시아의 도처에 서려있다. 폭력에 맞서는 결사항전도 각지에서 전개된 바 있다. 그리고 적지 않은 곳에서 그러한 용감한 저항은 민주화로 귀결되었다. 그러나 국가폭력을 과거에 묻어두지 않고 진상을 조사하고 가해자들의 책임을 묻고 피해자들을 보상하고 나아가 기념하고 교육하는 ‘기억의 정치’를 지속시켜온 경우는 드물다.

광주를 찾은 아시아의 활동가들은 아르헨티나나 남아공까지 멀리가지 않아도 가까운 한국에서 5.18기념재단 사업과 같은 선례를 발견할 수 있다는 사실에 놀라움과 기쁨을 숨기지 않는다. 그리고 국가폭력과 반폭력 항쟁의 역사를 공유하고 있으면서도 광주처럼 진실을 찾고 정의를 구현하고 그것을 기억하고 교육할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하지 못했다는 사실에 안타까움을 표하곤 했다. 바로 그것이 5.18이라는 시간과 광주라는 공간이 이웃나라에서 인권과 민주주의를 위해 분투하는 활동가들에게 매력적인 이유이다.

몇 년 전 5월에 광주를 찾을 때 톨게이트에 “민주주의와 인권의 도시, 광주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는 글귀를 본 적이 있다. ‘민주주의’와 ‘인권’이란 용어가 5.18정신과 배치되는 것은 아니지만 왠지 맥이 빠진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민주주의와 인권이라는 일반개념으로 넓혀가면서 5.18의 선명하고 구체적인 내포가 흐려져서는 안 될 것이다. ‘5.18 다운 것’은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국가폭력에 대한 항쟁, 폭력피해자들에 대한 연대, 그리고 (인도네시아 인권운동단체들의 구호로 표현하자면) “망각에 대한 저항”이라고 필자는 생각한다. 국제연대도 5.18의 이러한 핵심을 잃지 않고 오히려 그 특수성이 더욱 빛을 발하는 방향의 연대로 추진되어야 할 것이다. 아시아의 인권운동가들이 한국 사회운동에 바라는 바는 각양각색이고 종종 추상적이기도 하다. 그렇지만 5.18과 관련된 희망사항은 하나의 구체적인 요구로 집약된다. 진상규명, 책임자처벌, 피해자보상, 기념사업으로 이어지는 국가폭력에 대한 진실과 정의의 추구 바로 그것이다.

따라서 필자는 5.18기념재단의 국제연대는 아시아 각지의 역사 속에 가해진 국가폭력의 진상을 조사하고, 반폭력 시민저항행동의 역사를 발굴하며, 책임자처벌과 기념사업 추진의 방안을 공동 모색하는 연대활동을 핵심으로 삼자고 제안한다. 그것은 5.18의 근본성격에 기반을 두는 활동이어서 뿌리가 튼실한 동시에 아시아의 가장 치명적인 문제들에 도전하는 옹골찬 기획이기도 하다. 아시아의 역사는 국가폭력에 의한 ‘학살의 역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묻어두고 앞으로 나아갈 것만을 재촉하는 ‘불처벌의 역사’를 노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치부를 끈질기게 들추고 따지는 전위로서 5.18기념재단이 우뚝 서기를 바라며 그것이 아시아의 민주주의와 인권 신장에 광주가 기여할 수 있는 길이라고 믿는다.

국제연대를 통하여 우리는 무엇을 얻을 것인가?

오늘날 우리는 복잡한 이웃효과 속에서 살고 있다. 캄보디아의 국가폭력은 광주에 대한 국가폭력을 자극했을 것이고 필리핀의 민주화는 한국의 민주화가 임박했다는 희망을 안겨주었다. 따라서 우리는 우리의 민주주의를 지키고 발전시키기 위해 이웃한 아시아의 민주옹호세력들과 연대해야 한다. 그런데 민주주의를 위한 국제연대를 기획하고 추진할 때 우리는 자칫 자민족중심주의에 빠질 우려가 있고 결과적으로 비현실적이고 비효과적인 국제연대활동을 낳을 수 있다.

한국의 민주화는 한국의 특수한 맥락 속에서 이루어졌듯이 타국의 민주화는 그 나름의 맥락 속에서 추진되고 있다. 그런데 한국의 활동가들은 일반적으로 이웃에 대한 지식이 부족하다. 지식이 부족하면 독특한 맥락을 이해하지 못하고 그리되면 적절한 연대의 매개를 찾을 수 없게 된다. 자민족중심주의는 역사적 단계에 맞지 않는 제안으로 연결될 수 있다. 민주화에 막 돌입한 나라에서 과제로 떠오르는 것은 어떻게 정당을 결성하고 선거를 치르고 의회를 구성하며 그 의회의 견제를 받는 새로운 민주국가를 여하히 건설할 것인가 인데, 그런 나라의 활동가들에게 의정감시를 어떻게 함께 할 것인가를 논제로 꺼내면 황당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특히 한국 활동가들은 근원적 갈등에 대한 감각이 결여되어 있다. 아시아의 많은 나라들이 종교간, 종족간 갈등으로 수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곤 하는 상황에 처해있지만 우리는 이에 대한 첨예한 인식을 결여하고 있다. 우리가 경험하지 않은 상황이기 때문이다.

이런 자민족중심주의에 빠지지 않는 국제연대를 모색할 방법은 무엇인가? 그 출발은 진지한 경청과 세련된 대화이다. 아시아로부터 인턴들이 파견되고 단기연수생이 방문하고 발표자들이 온다. 그들에게 듣고 배워야 한다. 우리가 방문했을 때도 마찬가지이다. 그리고 우리의 경험을 일반화하는 방식으로 함부로 단순화해서는 안 된다. 그러한 일반화는 과거 서양의 근대화 이론가들이나 작금의 신자유주의자들이 취하는 위험한 태도이다. ‘우리나라의 60-70년대랑 비슷하다’는 식의 생각과 발언도 금해야 한다. 그들은 우리의 길을 그대로 따를 것이고 우리는 그들의 미래에 관한 답을 갖고 있다는 착오적이고 오만한 태도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우리는 세련된 대화를 해야 한다. 세련된 대화란 겸손하고 느긋하게 예의를 지켜가며 이야기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함으로써 우리는 곤경에 처한 지역에 대하여 배우고  열심히 길을 찾는 친구들을 얻고 국경을 초월하여 함께 맞서야 하는 과제를 간파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적지 않은 비용을 들여 국제연대활동을 추진하는데 배움이 없다면 효과도 적고 아깝다는 생각도 들게 될 것이다.

5.18을 근본정신으로 삼는 국제연대가 자선사업처럼 간주되어서는 안 된다. 아시아 각국의 인권운동은 대체로 우리보다 국제연대의 역사가 길고 국제화도 앞서 있다. 그래서 세계 각지로부터 지원의 손길이 닿고 있다. 우리도 그들처럼 원조를 제공하는 것으로 족한가? 그러기에는 우리의 지원은 규모가 조촐하고 반면에 우리의 열망은 더 깊다. 그러므로 우리는 약간의 금품으로 큰 시혜를 준 것처럼 행동하거나 할 바를 다 한 것처럼 자족해서도 안 된다. 우리는 국가폭력의 피해와 그에 맞선 줄기찬 저항의 경험을 그들과 공유하고 있다는 점을 발견해야 한다. 그것이 우리의 힘이고, 그것이 우리가 그들과 연대하는 이유라는 점을 인지해야 한다. 폭력피해자들, 그 가족들, 그들을 옹호하며 진실과 평화를 추구하는 아시아의 활동가들과 진정한 친구로 살아가는 것, 그것이 우리가 국제연대로부터 얻고자 하는 보상이어야 한다.
 

전제성 (전북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참여연대 국제연대위원회 실행위원)

*이 글은 5.18재단에서 발행하는 잡지인 <주먹밥> 29호(2010년 가을호)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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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광주인권상 받은 네팔의 수실 파큐렐을 만나다
“광주정신은 민주주의를 열망하는 모든 사람을 이어주는 끈”


5.18민주화운동 30주년을 맞이한 광주는 행사를 알리는 현수막을 빼고는 여느 때와 다를 바 없었다. 그날에 대한 기억은 상업용 광고와 나란히 걸린 현수막, 기념행사에만 남아있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잠시 스쳐갔다. 행사장에서 사진 한 장을 꺼내들고, 올해 광주인권상을 받은 네팔의 수실 파큐렐을 찾았다. 폭압과 분쟁으로 얼룩진 네팔의 치열한 근현대사를 몸 안에 고스란히 담고 있을 것으로 생각했던 그의 모습은 뜻밖이었다.

그는 밝은 미소와 다정한 눈빛으로 아들 부부와 손자와 함께 찍은 가족사진을 꺼내 보여주며 “살아오면서 가장 잘 한 일은 부인과 결혼한 것”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진짜 수상자는 바로 부인이라고 강조했다. 고등학교 교사였던 부인은 초등학교 교사였던 그를 만나 평생 동지가 됐다. 두 사람은 교사조직과  네팔의 첫 번째 인권단체인 ‘인권보호를 위한 포럼(Forum for Protection of Human Rights)’을 1984년 만들었다.
     
시골의 가난한 농가에서 태어난 그는 빈곤층을 돕겠다는 마음으로 교사가 됐다. 하지만  빈곤 문제에 관심을 쏟으면서 불평등 ․ 부정의한 세상을 보게 됐고, 부의 분배가 없는 민주주의는 허상에 지나지 않는다는 신념을 가졌다. 그는 지하 정치운동에 참여하게 됐고, 가난한 사람들의 인권과 민주주의를 요구하며 사회운동가로 변신했다. 우연히도 그때가 1980년이었다. 누가 왜 자신을 추천했는지는 모르지만, 이번에 광주인권상을 받게 됐다는 소식을 듣고 광주와 자신이 기묘한 인연으로 이어져 있다는 생각에 새삼 놀랐다고 한다. 1980년 5월 광주에서 민주화운동이 일어났을 때, 그는 정부의 탄압을 피해 숨어든 한 시골 농가에서 BBC 보도로 광주 소식을 접했다. 독재에 맞서 투쟁하고 민주주의를 외치는 사람들이 또 있다는 사실에 큰 용기를 얻었고 강한 연대감을 느꼈다. 이후 광주민주화운동은 그에게 영감의 원천이자 독재에 저항하는 힘이 됐다. 심지어 그는 광주정신으로 마오주의자들의 폭력적 저항을 비폭력저항으로 바꾸려고 시도하기도 했다. 그는 “광주정신은 민주주의를 바라는 우리 모두를 연결하는 끈이며 우리 모두의 창”이라고 거듭 강조했다.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가치를 만들어 실현하는 게 가장 중요”

민주주의의 의미를 묻자 그는 이렇게 답했다.

“전 학자도, 정치가도 아닌 운동가일 뿐이죠. 민주주의가 뭔지 잘 모르겠어요. 하지만 민주주의라면 모두를 평등하게 대우하고 각자의 가치를 충분히 존중해야겠죠. 특히 빈곤층이나 사회적 약자들에게 더 많은 기회를 제공하는 사회를 만들어야 합니다. 제가 하는 일이 인권이든 민주주의든,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가치를 만들어 그들과 나누고, 그 가치가 실현되도록 하는 것이죠.”

그래서 그는 정치적 권리가 크게 강조되던 80년대에 사회적 권리를 위한 범아시아 네트워크 포럼아시아(Forum-Asia)를 구상했다. 포럼아시아가 사회권적 가치를 토대로 출범했다는 사실에 놀라움을 나타내자, 그는 “1985~2000년 약 15년 간 몸담았던 ‘시민인권지원센터(INSEC)’도 그런 가치를 실현코자 만든 단체”라고 밝혔다. 그는 가난한 사람들이 스스로 세력화하도록 돕는 게 매우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가 국가인권위원장으로 일하던 2003년의 일이다. 국제아동기금과 함께 마오주의자들의 영향력 하에 있는 시골지역의 아이들을 대상으로 백신프로그램을 추진했다. 하지만 마오주의자들은 정부의 프로그램이라는 이유로 백신주사를 거부했다. 그는 토론회를 주민들과 수십 차례 갖고, 결국 아동의 권리에 대한 인식을 공유했다. 그 후 캐나다의 한 개발원조단체가 그 지역을 방문했는데, 지역주민들의 높은 인권의식에 당황해 했다. “원조 제공을 빌미로 뭔가 가르치려드는 단체에게 가난한 지역주민들이 오히려 한 수 가르쳐 준 셈”이라며 웃었다.  

그는 “무엇보다 표현의 자유가 중요하다”며 “정부와 마오주의자들 간의 무력분쟁이 한창일 때 많은 오해가 있었지만 내 신념을 굳건히 지킬 수 있었던 것은 민주주의와 인권을 향한 뜻을 굽히지 않는 운동가들이 아시아 곳곳에 존재하고 있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와 인터뷰한 뒤 5.18묘역을 찾았다. 전국 곳곳에서 온 어린 학생들을 만날 수 있었다.박제돼 행사장 안에 갇혀버렸다고 생각한 광주정신은 광주인권상 수상자 외에도, 아시아 민주주의 인권 운동가들 그리고 어린 학생들 가슴 속에 살아 움직이고 있었다.  

김신 푸르메재단 기획실장  


* 나눔과 시민사회(중앙일보 시민사회환경연구소) 6월 제4호에 실린 글입니다.

포럼 아시아 홈페이지 : forum-asia.org
시민인권지원센터(INSEC) 홈페이지 insec.org.np
김신 푸르메재단 기획실장 skim1971@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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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의 민주주의와 인권을 위한 연대사업은 우리 사회의 민주주의를 완성시켜가는 또 다른 길



한국 민주주의 발전의 결정적 전환점이자 정점이었던 5.18 민중항쟁의 정신을 계승, 발전시켜 민족의 통일과 인류의 평화를 실현하는데 헌신하고자 설립된 5.18기념재단은 뜻을 같이하는 일반국민과 광주시민의 기금을 포함해 5.18 피해자들이 정부로부터 받은 보상금 일부 출연으로 1994년 8월 30일 설립한 비영리 재단법인이다. 초기 출범 당시에는 재정여건 상 5.18기념행사를 중심으로 기념사업을 전개하였으나, 1998년 광주광역시에서 보관하던 국민성금이 출연되고, 20주년이 되던 해인 2000년도부터 사업비의 일부를 국가로부터 지원받으면서 관련 기념사업이 성장해 왔다.

5.18기념재단의 여러 사업 중 국제연대사업은 2000년부터 본격적으로 진행됐는데, 아시아 지역의 인권관련 희생자와 가족, 관련 활동가를 초청하여 연대와 경험을 나누는 시간을 갖던 ‘아시아민주희생자 광주네트워크’ 행사로 시작된 된 국제사업은 스리랑카 실종자 행사를 지원하면서 그 규모가 더해져, 2004년에는 광주국제평화포럼(구 광주국제평화캠프)행사가 처음 조직되었으며, 2007년 올해에는 약 100명의 아시아지역 시민사회단체 활동가와 50여명의 국내단체 국제연대 활동가가 모여 성황리에 개최되었다.

5.18항쟁 직후 외롭고 힘겨운 진실규명 투쟁 뒤에는 언제나 세계도처에서 오월광주를 지지하는 성원과 후원이 더욱 큰 용기를 얻게 되었으며, 명예를 온전히 회복한 지금의 시점에서 이를 다시 되돌려 줄 수 있는 길을 5.18기념재단은 아시아에서 찾았다. 특히 금년 광주국제평화포럼 행사를 통해 5.18기념재단은 가칭‘아시아민주화운동 네트워크 출범을 위한 추진위원회’사무국이 되어 그동안 광주가 아시아 민주주의와 인권운동의 네트워크를 위한 공간을 제공하던 역할을 넘어 광주를 중심으로 아시아의 상시적이고 구체적인 형태의 협력과 연대활동을 연결하는 역할로 성장하기 위해 준비 중이며, 이를 계기로 재단의 국제협력사업도 새로운 변화와 발전을 모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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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이와 같은 준비모임을 추진해오기까지 5.18기념재단은 그 단계와 과정을 한 걸음 한 걸음 거쳐 왔다. 특히 아시아지역의 인권과 민주주의를 위한 관련 사업들은 2004년부터 전국적인 단위의 추진위원회를 구성하여 토론과 심의에 의해 진행되었고, 재단 역시 추진위원회의 결과를 전폭적으로 수용하였다. 그러나 5.18에 대한 자료제공과 국제적인 활동가를 위한 네트워크 공간 제공이라는 것에서부터 시작한 국제사업의 형식은 참여하는 활동가들에 의해 보다 구체적이고 더 높은 수준의 연대 활동과 지원을 요구받게 되었으며, 2007년 행사를 기점으로 변화를 꾀하게 되었다.

2007 광주국제평화포럼의 의미

1999년 재단은 5.18기념행사 주간에 ‘아시아민주희생자 광주네트워크’라는 명칭으로 아시아의 인권관련 희생자 가족과 활동가를 꾸준하게 초청하여 그들의 경험을 듣고 5.18민주화운동을 소개하는 프로그램을 진행했다.아시아인권위원회(상임대표 : 바실페르난도, 2001년 광주인권상 수상자)의 추천을 받아 소규모 초청행사에서 시작된 이 네트워크 모임은 2004년에 ‘광주국제평화캠프’라는 명칭으로 바뀌게 되었고, 행사의 규모도 국제적인 관련 활동가들의 네트워크 공간으로 발전하였다. 2004년부터 개최된‘광주국제평화캠프’행사는 행사추진을 위한 추진위원회를 전국 관련 단체에서 구성하여 준비하였으며, 그동안 ‘아시아인권과정, 한국전쟁전후 민간인 학살문제, 전쟁, 국가폭력, 개발과 인권, 아시아의 분쟁과 NGO의 평화만들기’라는 주제들을 다루었다.

2007년에는 국제협력팀의 올해 사업목표를 반영하기 위해 행사명칭을 ‘캠프’에서 ‘포럼’으로 변경하여 지난 5월 15일부터 18일까지 개최하였다. 아시아지역 인권시민사회단체 활동가 90여명과 국내참가자 40여명등 130여명의 참가자가 참여한 이번 행사는 특히 태국에 위치한 포럼아시아(사무총장 이성훈)의 ‘동아시아인권포럼’ 행사와 함께 공동으로 개최되어 명실공히 5월기념행사 기간에 개최되는 대표적인 국제행사로 치러졌다.

한편, 국내시민사회단체 국제사업 활동가를 위한 프로그램이 그동안 행사 기간 중에 편성되어 있었으나, 형식적인 편성에 그쳐 구체적인 이슈나 사안을 가지고 논의와 협의가 없었다는 지적이 있었다. 그래서 올해 평화포럼 행사에는 별도의 국내단체 활동가 워크숍을 진행하게 되었다. 비록 참가자와 단체의 숫자는 많지 않았으나, 한국인권재단의 양영미 상임이사의 진행으로 워크숍에 참여한 각 단체의 국제 사업내용들이 비교적 상세하게 소개되었고, 각 단체에서 사전에 보내온 활동내용을 담은 자료집이 배포되었으며, 이 모임을 통해서 앞으로 국내 단체 간의 네트워크를 활성화 시킬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하였다.

아시아 민주화운동 네트워크

그동안 평화캠프 등 우리재단에서 개최했던 크고 작은 국제 행사에 참여한 아시아지역 시민사회활동가와 전문가들은 광주가 아시아의 민주주의와 인권을 위해 더 많은 역할과 지원을 해줄 것을 요구해 왔다. 최근에 들어 한국에서 개최하는 여러 국제행사들의 후속조치가 미비한 것과 마찬가지로 우리 재단의 행사 역시 이러한 문제점을 가지고 있었으나, 이것은 사실 아시아의 대표적인 인권도시라는 거창한 명제에 사로잡혀 자칫 또 다른 오해를 불러 올 수 있다는 데 대한 조심스러운 접근의 결과이기도 하였다. 그러나 해가 지날수록 아시아 시민사회단체 활동가들을 위한 네트워크 공간을 제공하는 역할을 넘어서는 수준의 요구를 받기에 이르렀고, 사업을 담당하고 있는 관련 부서 역시 재단 내부에서 국제협력사업의 내용이 한층 발전할 수 있도록 하는 위해서는 이와 같은 요구에 대응하기 위한 별도의 내부적인 근거 수립이 매우 절실했다. 이에 지난해 10월과 금년 2월에 우리재단의 사업과 연관된 아시아 지역 시민사회단체 활동가들과 준비모임을 가졌고, 2007 광주국제평화포럼 행사를 통해 민주화운동 네트워크와 관련된 논의를 공식적으로 진행하기에 이르렀다.

2007 광주국제평화포럼이 남긴 것

2007 광주국제평화포럼 중 아시아 민주화운동 네트워크에 참여한 40여명의 국내외 인권시민단체 관계자와 활동가들은 토론을 통해 발전적이고 상호간의 시너지 효과를 모색하며, 행동으로 실천하고 이슈나 사안에 대해 즉각적인 조치를 할 수 있는 협의체 기구를 구성하는데 의견을 모으고, 10여개 지역단체와 네트워크 단체가 참가하는 추진위원회를 구성하고, 1차 회의를 개최하여 명칭과 기구의 성격, 활동내용 등에 대해 결정하기로 하였다. 이 추진위원회 회의는 5.18기념재단의 지원하에 2007년 하반기에 아시아국가(태국의 방콕, 필리핀의 마닐라 또는 인도네시아의 자카르타)에서 지역적 협의회를 개최하기로 하였으며, 5.18기념재단은 추진위원회의 간사역할과 함께 필요한 재정적 지원을 하기로 하였다.

한편, 평화포럼 행사를 통해 네트워크 추진위원회에서 다루어질 의제로는 첫째, 총체적인 인권침해와 필리핀에서의 법외살인에 대한 면책과 같은‘민주주의에 대한 위협’에 대한 직접적인 행동, 둘째, 민주주의 투쟁 또는 인권침해 관련 희생자들에 대한 지원, 셋째, 능력개발과 경험이 적은 법률가 또는 인권 활동가들에 대한 훈련과 교육, 민주화투쟁에 대한 기억들을 세대 간의 소통을 위하여 그리고 젊은 세대들에게 또는 다가올 세대들에게 기억을 전달하기 위하여 문서화와 보존 사업 실시 등이 그것이며, 여기에 덧붙여 필리핀과 스리랑카의 강제실종, 인권변호사와 관련 활동가들에 대한 정치적 암살, 버마의 군부 독재하에서 자행되고 있는 모든 형태의 탄압과 인권침해의 사례들을 우선적인 대상으로 하여 국제적인 연대활동과 캠페인을 전개하는 것에 대해 의견을 나눌 예정이다.

아직도 많은 사람들은 국내 민주화를 완성하지 못한 처지에서 해외 인권과 민주주의에 대해 연대 사업을 진행하는 것에 대해 마뜩찮게 생각하기도 한다. 그러나 5.18기념재단이 추진해온 아시아 지역의 민주주의와 인권과 관련한 연대사업과 지원은 우리 사회의 민주주의를 완성시켜가는 또 다른 길이기도 하다. 우리 이웃의 인권과 민주주의 발전 없이 우리의 인권과 민주주의가 성장할 것이라고 믿는 사람은 아무도 없기 때문이다. 광주라는 지리적 불리함과 여러 가지 어려운 한계를 극복하고 추진해온 5.18기념재단의 작지만 소중한 국제연대활동은 아시아의 민주주의와 인권을 증진시키는 또 하나의 경계에 서있다고 볼 수 있다.

김찬호 (5.18기념재단 국제협력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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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첫발을 버마 민주화를 위한 노력으로 내딛기를



오늘 우리는 한국 민주화운동의 역사적 전환점이 된 518 광주 민주항쟁 25돌을 맞이하였다. 당시 서슬이 시퍼런 군사독재정권에 대항한 광주 민중들의 항쟁은 현재도 민주주의와 인권, 평화를 향한 우리의 발걸음을 재촉하는 힘이 되고 있으며, 한국 뿐 아니라 아시아를 비롯한 세계 시민사회에서도 그 상징하는 바가 크다. 특히 현재도 군사정권의 폭압으로 고통당하고 있는 버마와 같은 나라의 민주화운동가들에게 한국은 자신들의 아픔을 공감할 수 있는 나라로서 적극적인 연대의 손길을 기대하고 있는 나라이기도 하다. 이제 한국은 518 광주민중항쟁의 정신을 계승하여 한국의 민주주의뿐 아니라 우리 가까이에 있는 이웃 나라들의 민주주의를 위해서도 적극적인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이다.

그러나, 현재 한국 정부는 아시아의 인권과 민주주의를 외면하고 있다. 최근 한국에서 활동하고 있는 버마민주화운동가들의 난민 인정 신청 거부가 대표적이다. 자신들의 생명과 활동을 보호받기 위해 버마 민주화운동가들은 한국 정부에 난민 인정 신청을 하였으나, 알 수 없는 이유로 그들은 난민으로 인정을 받지 못하고 5일 이내 한국을 떠날 것을 종용받았다. 현재 이들은 3개월의 출국 유예기간을 갖고, 힘겹게 한국 정부를 상대로 난민 인정 신청 거부 취하를 위한 행정 소송을 준비 중에 있다. 이들이 한국에서 쫓겨가면 돌아가야 할 그들의 나라 버마는 그들을 환영하지 않을 것이 너무나 분명하기 때문이다.

한국 정부와 국회는 이런 버마와 돈독한 경제 외교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반면,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와 같은 동남아시아 국회의원들은 버마 민주화를 지원하는 의원모임을 자발적으로 결성해 순번제로 돌아오는 아세안(ASEAN) 의장국을 버마가 맡게 되는 것을 반대하고 있다. 1990년 이후 국제 사회가 버마 군사정권의 종식과 경제착취를 중단하기 위해 원조와 투자를 중단하거나 줄여가는 압박을 진행하며 한국의 경제외교를 중단할 것을 요구해왔음에도, 한국 정부는 외국자본 우대를 강조하는 버마에 발맞춰 경제협력 조치를 강화하고, 국제노동기구(ILO)에서 버마의 강제노동에 대한 제재안을 결정할 때도 기권한 바 있다.

이제 한국 정부와 국회는 지금까지 아시아의 이웃들을 혹시 한국 경제의 발전을 위한 대상으로만 여겨온 것은 아닌지 돌아보아야 한다. 한국이 518 광주 민중과 수많은 민주인사들의 희생 위에서 오늘날 민주주의를 발전시켜 온 만큼 이제 같은 고통을 지니고 있고 민주주의의 여정을 힘겹게 걷고 있는 아시아 국가들에 대해서도 지속적이고 적극적인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지금 버마를 비롯한 아시아는 역동적인 시민사회의 발전을 통해 제도적인 민주주의를 이루어낸 한국에 바로 이것을 기대하고 있다. 우리는 그 기대를 저버려서는 안된다. 참여연대도 아시아의 민주주의와 인권을 위해 노력할 것이다.
국제연대위원회


Posted by 영기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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