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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좌후기

개발과 빈곤: 위기 극복의 윗목과 아랫목 (강사: 이성훈 한국인권재단 상임이사, 참여연대 국제연대위원장)


G20 서울 정상회의(이하 G20 서울회의)가 한 달 여 앞으로 다가온 10월 4일. 참여연대 느티나무홀에서 G20 톺아보기 네 번째 시간인 ‘개발과 빈곤:위기 극복의 윗목과 아랫목’이라는 주제의 강연이 있었다. 두 번째 시간에 이어 이번 시간에도 한국인권재단의 이성훈 상임이사가 강좌를 진행해 주었다.

오늘 강연은 G20 서울회의에서 금융위기에 대한 해결책이 집중적으로 논의 되어야함에도 불구하고 대한민국이 의장국으로서 개발의제를 설정하고 추진하는 이유와 의미에 대한 이야기로 채워졌다.

대한민국은 G20 서울회의에서 중점적으로 논의될 금융위기 해결과 관련한 실질적인 발언권이 없었기 때문에 의장국의 권한으로 개발의제를 설정했다는 의견이 제기 되고 있다. 개발의제를 추진하게 된 배경으로 G20 정상회의 준비위원회는 다음의 세 가지를 들었다.
 
세계경제협력의 주 논의의 장인 G20에서 개발격차 심화문제에 대한 대응이 필요하다는 것이 첫 번째 배경이었다. 강하고 지속가능한 균형성장 달성을 위해 개발 격차 해소가 필요하지만 현재 미국은 더 이상 소비시장의 역할을 하지 못하기 때문에 아프리카 시장개발을 통한 성장이 필요하며, 아프리카를 성장 동력으로 삼아 개발격차를 줄여야한다고 보았다.

그간 정상회의에서는 위기국면에서 금융 및 거시경제 이슈 논의에 집중한 연유로, 개발이슈에 대해 체계적인 논의가 이루어지지 못했고, 이에 따라 G20의 정통성 제고를 위해 G20 비회원국의 정책 우선순위인 개발의제를 심도 있게 논의할 필요성이 대두된 것을 두 번째 배경으로 보았다.

세 번째는 비 G8 회원국으로서는 최초로 G20 정상회의를 개최하는 대한민국이 그동안의 축적된 경험을 바탕으로 개발의제에 대한 비교우위를 갖고 의장국으로서 실질적인 리더십을 발휘하는데 기여가 가능하며, 이 과정에서 아프리카와 같은 비회원국들의 기대에 부응하여 선진국과 개도국의 가교역할을 수행할 수 있을 것으로 보았다.

이상의 세 가지 배경을 바탕으로 G20 정상회의 준비위원회(이하 준비위원회)는 우리 측 제안을 토대로 개발의제의 추진 및 설치에 합의했다. 개도국 경제성장에 중점을 둔 개발의제를 추진하고, 성장과 연계되는 핵심 분야의 역량강화 및 개발경험공유를 통해 기존 논의와 상호 보완 및 유엔새천년개발목표 달성에도 기여한다는 것이 주요 내용이다.

이성훈 상임이사는 G20 서울회의에서의 개발의제 추가에 대해 찬성과 반대를 떠나 현상 자체를 이해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현재 논의 되고 있는 개발의제는 경제성장에만 초점이 맞춰져 있고 민주화와 시민사회 성장은 반영되지 않은 반쪽짜리 정책으로 균형 잡힌 개발전략으로 볼 수 없다는 것이다. 그리고 한국의 경제발전 모델을 공유하겠다고 공언하지만 한국식 개발이 낳은 양극화, 저출산, 자살율 등의 문제들에 대한 자기반성이 배제되어 있다는 한계 또한 남아있다고 주장한다.

수혜국이 받을 혜택에 중점을 두고 있는 것처럼 포장하지만 이면에는 자국의 이익을 계산하고 이해관계에 따라 움직이는 각국의 행태가 전지구적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 각국이 협력하여 해결방안을 모색하자는 모임의 취지와 너무나도 상반되어 씁쓸함이 느껴지는 것은 나 혼자만의 느낌은 아닐 거라 생각한다. 강연이 거듭되면서 조금씩 G20에 대해 알아간다고 생각했었는데 참 잘못된 생각을 하고 있었다는 생각이 거듭 밀려온다.

정리: 임재홍 자원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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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6월 9일 성공회대 MAINS프로그램 학생 15명이 참여연대를 방문했다. 성공회대 NGO 대학원은 지난 2007년부터 아시아 지역 NGO 활동가를 대상으로 한 석사과정 프로그램인 ‘아시아 시민 사회 지도자 과정(MAINS: Master of Arts in Inter-Asia NGO Studies)’을 운영하고 있다. 이들은 참여연대의 역사와 활동을 소개받고 이후에, 이성훈 한국인권재단 상임이사와의 토론 시간을 통해 각 국에 참여연대와 같은 종합적 권력감시 시민운동의 접목 가능성에 대해 이야기하였다.
Posted by 영기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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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 프레임 전략적으로 활용해야”

“먹으면서 들으셔도 돼요. 저는 밥 굶는 것을 아주 싫어합니다” 인권에 대한 이야기를 하러 온 사람답게 강의 시작 전부터 청중들의 밥 먹을 권리부터 챙긴다. “인권은 다양한 차원으로 이야기 할 수 있다”는 인권에 대한 정의에서부터 강의 보따리를 풀며 2시간 반 동안 다각도로 아시아인권에 대해 접근해 보는 시간을 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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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회 참여연대 아시아강좌 강연자 이성훈 한국인권재단 상임이사……

<주요 강의 내용> 

아시아의 어원부터 서구 중심적 시각 투영돼…
‘아시아’란 단어는 서양의 눈으로부터 비롯된다. 아시아는 아시리아와 어원이 같다. 그리스 사람들이 동쪽을 볼 때 그 쪽에서 해가 떠 ‘아시리아’란 이름을 붙였다. 서양의 눈을 통해 아시아의 정체성이 규정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인도차이나의 경우 인도와 중국이 합쳐진 말이다. 서구 사람들이 보기에 중국과도 비슷하고 인도와도 비슷해 ‘인도차이나’라 불렀던 것이다. 아시아의 경우 유럽이나 다른나라와 다르게 각기 다른 문화와 역사를 지닌다. 딱 하나 공통점이 있다면 식민지 경험을 했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피해의식이 많고 정체성이 서구에 의해 왜곡되었다.

엘리트들이 말하는 ‘아시아 가치’
‘아시아가치’는 서구민주주의와 아시아민주주의가 다르다고 인식한다. 아시아는 보통 식민지 경험이 많으므로 다양한 시민의 참여보다 소수 엘리트들이 주도하는 민주주의유형으로 나아가자는 것이 ‘아시아가치’이다. 이것은 주로 엘리트들이 많이 이야기하는 것이다. 요즘 아시아인들은 이런 이야기를 하지 않는데 주로 미국에서 공부한 사람들이 많이 이야기하고 있다. 아시아가치에 대한 대표적인 논쟁이  Lee Kuan Yew와 김대중 전 대통령 사이에 있었던 논쟁이다. Lee Kuan Yew는 엘리트들을 중심으로 민주주의를 배우는게 훨씬 낫다고 주장했던 반면 김대중은 민주주의와 인권이 같이 갈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 당시에 나온 것이 바로 ‘아시아가치’다.

박정희 모델을 보는 다른 시각 가져
대학에 다닐 때 말레이시아에서 온 사람들이 많았다. 그런데 갑자기 없어졌다. 그 이유를 나중에 알고 보니 이러했다. 80년대 초반까지 말레이시아는 나라를 근대화 시키려고 했는데 이 때 박정희 모델을 많이 생각했다. 그래서 유학생들을 한국에 많이 보냈다. 그런데 87년 이후 유학생들을 다시 돌아오게 했다. 당시 한국에서는 민주화 항쟁으로 뜨거웠고 그것에 물들까봐 우려했던 것이다. 유학생들은 싱가포르로 보내졌다.

88년에 홍콩에 첫 직장 얻어서 갔고, 그 이후도 계속 해외에 많이 갔다. 86년 피플파워 당시 핀리핀에 있었는데 그 때 특이한 경험을 했다. 당시 학생들이 반미 이야기를 실컷 하고, 코카콜라를 마시는 것이었다. 그리고 박정희대통령을 굉장히 존경한다고 말했다. 그들의 얘기인즉슨 마르코스는 나라를 말아먹었는데 박정희는 그렇지 않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이런 이야기를 하는 나라가 필리핀만이 아니었다. 이 때 박정희정권에 대해 다르게 보기 시작했다.

이것은 87년 말레이시아 학생들이 한국에 왔다가 안돌아온 것과 관련이 있다. 우리나라는 50년 대 이후 경제 발전을 시작했다. 다른 아시아국가도 마찬가지였고 그 중 우리나라보다 더 발전된 나라도 있었다. 하지만 현재 이들 중 대부분의 나라가 아직까지 가난하고, 민주주의와 시민사회 이 둘 다를 이루지 못했다. 그런데 한국은 이뤘다. 그래서 밖에서 먹혀들었던 것이다. 5·60년대 핀리핀, 미얀마, 스리랑카는 굉장히 잘 나갔다. 하지만 독재를 겪고 떨어졌다. 하지만 한국은 똑같이 독재를 겪고도 발전했다. 이런 상황들을 생각해보니 그들이 우리나라를 훨씬 긍정적으로 이해할 수도 있겠구나 생각했다.

싱가포르 민주주의 모델, 한국적 민주주의모델
민주주의 발전 모델은 여러 가지가 있다. 싱가포르의 경우 경제적으로는 우리나라보다 더 잘산다. 하지만 법적으로는 표현의 자유가 보장되어 있는데 표현하고 나면 자유가 없어진다. 규제를 받는 것이다. 이 나라는 벌금이 아주 많다는 것이 이를 반영한다. 싱가포르에는 PSP, WP, SDP 이렇게 세 가지 정당이 있다. 그들의 별명은 각기 pay and pay(PAP), why pay(WP), so don't pay(SDP)다. 예전처럼 물리적으로 제재하는 것이 아니라 물질적 제약을 가한다. 자본주의 방식이다. 이것을 지금의 한국이 배우고 있는 것이다.

필리핀의 경우는 시민사회 노하우가 아주 좋다. 그런데 너무 과잉됐다는 생각이 든다. 국가가 할 일을 시민사회가 하고 있는 느낌이다. 그래서 엄청 커지고, 관료화된 것이다. 좋든 싫든 국가와 시장은 전제된다. 이들을 대체할 순 없는 노릇이다.

일본의 경우 시민단체들 간에 서로 잘 모른다. 이들은 전국단위의 시민단체가 없다. 하지만 밑바닥 현장으로 가면 어디가나 조직화되어있다. 시민단체의 개념자체가 다르다. 시민단체보다는 주민단체의 개념에 더 가깝다.  일본의 민주주의는 한국과 다르다. 이들은 전쟁에 져서 서구에서 이식된 것이고, 한국은 투쟁을 통해 쟁취한 것이다.

주요 관심모델은 한국과 싱가포르이다. 많은 아시아국들은 싱가포르모델을 선호한다. 통치자 입장에서 보면 싱가포르가 좋다. 하지만 이들은 표현의 자유가 한정되어 있다. 싱가포르는 학교 토론수업에서 제대로 이야기를 못한다. 한국모델의 경우 굉장히 복잡하고 시끌벅적하다. 그렇기 때문에 많은 나라들이 한국모델을 따라가는 것을 매우 우려한다. 이들 중 어떤 패러다임으로 갈 것인가 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문제다.

태국을 보면서 시민사회가 아주 취약하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우리나라의 경우 촛불집회 당시 이명박 퇴진 이야기는 거의 없었다. 한국은 시민입장에서 선거의 룰은 지켜준다. 또한 국가의 입장에선 총을 들면 망한다는 인식이 있다. 한국 민주주의에는 기본적인 룰이 있다. 하지만 태국은 없다. 그래서 이번과 같은 사태가 나타난 것이다. 이렇게 한국과 같이 룰이 지켜지는 것은 아시아 국가 사이에서는 거의 없다. 이같이 우리의 경험을 아시아의 경험과 잘 엮어서 생각하는 것이 아주 중요하다.

시민사회는 복합적으로 연결돼
우리는 너무 쉽게 시민사회에 대해 말하지만 다른 나라에서 사용하는 의미와 너무 다르다. 시민이 된다는 것은 국가를 넘어선다는 것, 국가주의를 넘어선다는 것을 의미한다. 만약 외국여행을 했을 때 말은 안 통해도 같은 가치를 공유하는 사람과 개념은 없는데 한국사람인 사람 중 누가 더 가깝게 느껴지는가. (후자 쪽이 시민사회의 의미가 더 짙다는 의미) 아시아 시민사회의 중층 구조다. ‘지역연대’를 말 할 때 이것들이 복합적으로 연결되어 있다.

글로벌 리더십, 국내에서 일하고 나면 해외로 나가라
한국 시민사회의 과제는 우선 내재적 국제화를 이루어야 한다는 것이다. 아시아를 밖에서 찾아다니지 말고 우리 안에서부터 찾아야 한다. 결혼이주여성, 난민, 이주노동자들을 만나며 아시아를 만나라. 그리고 세계로 나가야 한다. 기업은 세계화가 굉장히 빠르다. 그 다음은 정부다. 그런데 시민사회는 아주 느리다. 그 이유 중 하나가 분단이다. 그래도 빨리 탈피해야 한다.

국내에서 일하고 나면 해외로 나가라. 내가 지역(regional)시민단체에서 일할 때 인터뷰를 통해 사람을 선발한다. 그런데 인터뷰 보러 오는 사람 중에 한국사람은 거의 없다. 한국의 경우 시민사회의 사법감시체제가 아주 좋다. 그런데 그같은 좋은 점을 우쭐해 하는 데에서 그치고 그것을 국제적으로 내 보내려 하지 않는다. 국제사회로 나가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그 과정에서 한류를 전략적으로 활용할 수 있을 것이다. 예를 들어 ‘임을 위한 행진곡’은 아시아 국가에 거의 번역되어 있다. 이것 역시 한류라고 할 수 있다. 또한 ODA를 전략적으로 활용할 수 있을 것이다. 현 정부에서 ODA를 2배로 늘렸다. 이것을 현장에 가서 모니터해야 한다. 그것이 제대로 되지 않으면 난개발을 통해 오히려 인권을 침해하는 쪽으로 갈 수 있다.

인권은 모든 것을 수렴한다
인권은 다른 것과 달리 다양한 사회문제와의 상호 연관성 때문에 모든 것을 수렴하는 경우가 많다. 이제 인권을 모르고서는 얘기가 안 된다. 인권은 모든 것에 기본이 되는 것이다. 하지만 아직도 한국에서 인권에 대한 이해가 미약하다. 모든 것을 수렴하는 인권의 프레임을 전략적으로 잘 활용하지 못한다.

올해 아세안 정부 간 인권기구가 만들어진다. 이것은 획기적인 사건이다. 국내에서 인권하면 정치적으로만 이해한다. 하지만 유럽에서는 공식 헌장언어다. 이같은 상황에서 아시아에서 처음으로 인권기구가 만들어 졌다는 것은 굉장히 큰 의미이다. 담론의 수준에서 더 이상 인권을 부정할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공식적인 모임의 언어가 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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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의 및 응답

Q ODA 의 전략적 활용에 대한 부분을 듣고 감동했다. 그러나 여전히 현실적인 괴리가 있는듯하다. 어떻게 하면 ODA에 대해 시민단체가 전략적으로 접근하고 활용할 수 있을까.

A 이 정부의 ODA가 있으면 이것을 분배할 때 NGO를 통해 분배가 된다. 물론 ODA원조를 직접적으로 실행하는 단체들을 정부에 대해 비판적인 얘기를 못한다. 하지만 받지 않는 시민단체에서는 많이 말한다. 한국정부가 ODA를 하는 목적은 자원외교와 기업외교를 하기 위한 것이다. 이것은 다른 나라도 마찬가지다. 외교의 한 방편으로 이용하는 것이다. 외교의 목적에 인권이 들어간다.


Q 인권이라는 개념은 포괄하는 개념이라고 하셨다. 나의 시각에서는 인권하면 정치적 자유 보장으로 이해되고 있는 것 같다. 아세안에서 인권은 어떤 의미인가?

A 아세안에서는 인권에 대해 별로 관심이 없었다. 1967년 아세안이 만들어졌다. 2007년을 전후해서 아세안을 둘러싸고 세계화의 흐름이 일었다. 아세안이 하나로 뭉쳐서 FTA를 성사시키려 했으나 못 했다. 그 이유가 국제법적 지위가 없었기 때문이다. 이 때 인권 문제가 걸렸다. 그 당시 유럽에서는 국제법적 지위를 얻기 위해 자꾸 인권 관련 조항을 넣으라고 했고, 이에 FTA를 하기 위한 목적으로 인권 조항을 넣은 것이다. 넣고 싶어서 넣은 것이 아니라 어쩔 수 없이 넣은 것이다. 유럽연합에 들어가기 위해 사형제를 폐지해야하는 것과 같은 것이다. 이 당시에 시민사회가 둘로 갈라졌다. 신자유주의 세계화 안의 인권개념에 대해 한 편 에서는 반세계화 단체는 이 자체를 부정했고, 다른 한 편에서는 어쨌든 인권이 들어갔으니 그걸로 뭐든 할 수 있지 않느냐는 입장이었다. 아세안에서 생각하는 인권이라는 것은 유럽에서 말하는 인권을 갖다 놓은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얻은 것이 있다면 ‘인권’이란 단어가 공식적으로 들어왔다는 것이다. ‘인권’이란 단어 안에 진보성이 있는 것이다.


작성: 김지나(아시아강좌 수강자)


네번째 아시아 강좌는
국제개발협력, 아시아의 눈으로 바라보기 입니다.
현지에서 국제개발협력 분야에 다년간의 경험을 가지고 있으신 송진호 YMCA 기획실장을 모시고 아시아의 눈으로 바라본 개발협력에 대해 들어보는 자리를 마련합니다.

개별 강좌 참여가 가능하오니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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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세안 헌장과 시민사회


아세안(동남아국가연합·ASEAN) 국가들이 아세안 헌장 비준 문제로 고민 중이다. 1967년에 출범한 아세안은 작년 11월 20일 싱가포르에서 개최된 제13차 정상회의에서 ASEAN헌장(Charter)을 채택하였다. 헌장은 헌법과 같은 것으로, 일단 발효되면 아세안은 유럽연합(EU) 처럼 국제법적 지위를 가지게 된다. 헌장 채택은 아세안이 40년간의 '동거'생활을 마치고 '결혼'하기로 했다는 것을 대외적으로 알리는 '약혼식'으로 비유할 수 있다. 그러나 이에 필요한 10개국의 비준이 결코 쉬워보이지 않는다.
 
ASEAN 헌장 제정은, 2005년 12월 제 11차 쿠알라룸푸르 정상회의에서 헌장 제정에 합의한 지 2년만에 '초고속'으로 진행되었다. 먼저 전직 대통령, 수상 또는 장관으로 구성된 저명인사그룹 (Eminent Persons Group·EPG)은 약 1년간을 광범위한 의견 수렴과 자체 토론을 통해 헌장의 목적과 원칙 그리고 다루어야 할 주요 내용 등 밑그림 작업을 한 후 2007년 1월 세부에서 열린 제 12차 아세안 정상회의에 권고안을 제출하였다.
 
아세안 정상은 이를 토대로 고위급초안작성위원회 (High-level Task Force·HLTF) 를 구성하여 헌장 초안 작성에 *착수하기로 결정하였다. 아세안 각국 정부를 대표하는 직업 외교관으로 구성된 초안작성위원회는 불과 10개월 만에 초안을 만들어 싱가포르에서 열린 정상회의에 제출하였다. '상호 내정불간섭과 합의제' 원칙으로 인해 의사결정과정이 비효율적이라는 비판을 받아온 아세안으로서는 매우 이례적인 사건이었다. 이렇게 급조된 헌장은 현재 절차 뿐 만 아니라 내용에서도 정당성과 실효성에 많은 결함과 문제를 드러내고 있다.
 
이전에 시민사회는 아세안을 '이빨 빠진 호랑이(toothless tiger)', 또는 현실과 유리된 '엘리트 클럽' 으로 간주하여 별로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이러한 변화에 대응하여 시민사회단체는 신속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2007년 초 출범한 아시아시민사회연대회의(Solidarity for Asian People's Advocacy·SAPA) 산하 아세안 실무그룹(Working Group on ASEAN) 은 저명인사그룹의 간담회에 참석하여 인권, 경제, 발전, 환경, 노동 등에 관한 시민사회단체의 의견을 제출하였고 초안작성위원회가 주관한 간담회에도 참석하였다. 그러나 시민사회 뿐만 아니라 언론의 거듭되는 요청에도 불구하고 헌장 초안 작성은 비공개로 진행되었으며 정상들이 서명을 한 후에야 헌장의 내용이 비로소 공개되었다. 따라서 시민사회는 물론 각국의 의회 또한 헌장의 내용을 알 수 없었고 실질적인 기여를 할 기회가 없었다.
 
싱가포르 정상회의 2주 전에 열린 제3차 아세안시민사회회의 (ASEAN Civil Society Conference III)에 참가한 약 150명의 시민사회 대표자들은 아세안헌장의 채택을 연기할 것을 요구하기로 결의하였다. 주된 이유는 시민사회의 의견 수렴 미비와 작년 발생한 버마의 대규모 인권 침해와 민주화 운동 탄압에 대한 의미있는 대책 부재였다. 한편 참가자들은 시민사회의 비전과 열망을 담은 민중헌장 (ASEAN People's Charter)을 제정하기로 결의하였다.
 
정상회의 약 10일 전 태국 인터넷 언론사는 태국의 국회의원을 통해 자체적으로 입수한 아세안 헌장 초안을 공개하였다. 초안 원문을 접한 시민사회단체의 반응은 대체로 매우 비판적이었다. 인권, 민주주의에 대한 언급이 있었으나 형식적이었고 '국가주의와 신자유주의 시장경제'의 언어과 관점이 지배적이다는 것이 중론이었는데 구체적으로 아세안 헌장은 '유럽연합과 미국 등과의 자유무역협정(FTA)을 통해 세계 자본주의경제에의 편입을 가속하기 위한 국제법적 기반을 만들기 위한 법적 수단에 불과하다'는 지적이 많은 공감을 받았다. 한마디로 헌장의 내용이 아세안의 비전인 "나눔과 돌봄의 공동체(Sharing and caring community)"와 부합하지 못한다는 것이었다.
 
일단 싱가포르는 약혼식 주최국 답게 올해 1월 초 가장 먼저 비준동의서를 자카르타에 있는 아세안 사무국에 제출하였다. 아세안의 인구 대국인 인도네시아 의회는2월 초 처음으로 비준 문제에 대한 논의를 하였지만 찬반 양론으로 나누어져 결론을 맺지 못하였다. 필리핀은 아웅산 수치 여사가 가택연금에서 풀리기 전에는 비준할 수 없다는 입장을 이미 천명한 바 있다. 말레이시아 내각은 헌장을 비준하기로 결의하였다. 태국은 2006년 9월 군사 쿠데타에 의해 해산된 상원이 2월 말 현재 아직 상원이 구성되지 않아 비준 논의를 못하고 있다. 아세안을 창립했던, 비교적 정치적으로 민주화되었다는 5개국의 상황이 이렇다보니 마지못해 헌장에 서명했던 나머지 나라들도 다른 나라들의 눈치를 보면서 시간끌기 작전을 구사하고 있다. 이렇듯 김이 빠진 듯한 분위기하에서 싱가포르 정상회의에서 약속했듯이 올해 말 태국에서 열리는 제 14차 아세안 정상회의에서 아세안 헌장 비준안이 통과될 지 불확실하게 되었다.
 
이런 딜레마에 처한 이유는 여러가지가 있지만 무엇보다도 아세안이 작년 설립 40주년을 맞이하여 불혹의 나이를 넘기지 말아야 한다는 심리적 강박관념으로 너무 서둘렀기 때문이다. 아세안은 형식으로는 정부간 기구(inter-governmental)이지만 내용으로는 시민사회의 제도적 참여를 의미하는 공치(共治·governance)여야 함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엘리트적 성격과 관료적 관행을 지속해왔다. 참여 민주주의의 기본 원칙은 과정이 다소 더디고, 시끄럽지만 결과의 정당성과 실효성을 보장하는 필요조건이다. 국제적 차원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아세안은 이제 불혹의 나이에 접어들었다. 앞으로 아세안이 구시대적 '관료독재'의 유혹으로부터 벗어나지 못하면 아세안 헌장도 유럽연합의 헌법처럼 한동안 우여곡절을 겪을 것으로 보인다.

이성훈(아시아인권발전포럼 사무총장)

Posted by 영기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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