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국제연대위원회입니다. 추석연휴는 잘 보내셨는지요. 이번주에는 몇 개 퀴즈문제로 시작해 보겠습니다. 정답을 알아맞춰보세요.

중동에서 핵무기로 무장한 유일한 나라는?

중동에서 핵확산금지조약에 서명을 거부하고 국제핵사찰단의 입국을 거부하고 있는 나라는?

중동에서 유엔 안보리 결의 69개를 위반하고, 그외 29개의 안보리 결의로 제재를 받을 상황에서 미국의 비토권 행사로 구제된 나라는?

정답은? 이스라엘입니다. 오늘은 팔레스타인 지역 분쟁의 역사를 살펴봅니다.

분쟁의 시작

1차 대전 발발 후 영국은 승리를 위해 아랍민족에게는 독립을 약속하는가 한편, 유럽과 미국사회에서 영향력 있는 유태인들에게는 팔레스타인 지역에 국가건설에 대한 지지를 약속하였습니다. 그러나 전쟁이 끝난 뒤 영국은 약속과 달리 팔레스타인 지역을 이라크 및 요르단과 함께 자신의 위임통치 하에 편입시키면서, 이주해오는 유태인들에게 유리한 정책을 취하였습니다. 한편, 19세기 말 시오니즘의 부흥과 더불어 러시아와 폴란드에서의 반 유태인 운동, 나치의 유태인 박해 등으로 유태인의 이주가 더욱 가속화됨에 따라 팔레스타인 지역에서 유태인과 아랍인간의 갈등이 심화되고 있었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유태인들은 이미 준군사적 조직인 이르건(Irgun)과 하가나(Haganah)를 조직하여 반영국 테러를 전개하면서 민족국가 건설을 추구하였습니다.

2차 세계대전 이후 몰락한 '대영제국'은 골치 아픈 팔레스타인 문제를 유엔으로 떠넘겼고, 유엔은 이에 따라 11개 국가로 구성된 유엔 팔레스타인 특별위원회(UN Special Committee on Palestine; UNSCOP)를 설치하였습니다. 이 위원회는 팔레스타인 지역을 아랍인과 유태인의 지구로 분할한다는 다수안과 아랍인과 유태인을 포괄하여 연방국가를 창설한다는 소수안 두 가지를 건의하였고, 1947년 11월 29일 제2차 유엔총회에서 표결을 통해 다수안을 채택함으로써 1948년 5월 14일 이스라엘 국가가 탄생하였습니다.



전쟁과 폭력의 역사

이스라엘의 국가수립 이후 네 차례의 전쟁이 발발하게 됩니다. 이 네 차례의 전쟁으로 이스라엘은 점령지역을 넓혔고, 점령지역에 대한 처리문제가 지금까지 갈등의 불씨로 남아있습니다. 이른바 '팔레스타인 전쟁'으로 불리는 제1차 전쟁으로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 지역의 80%를 차지하였고, 팔레스타인인들 90만명이 난민으로 전락했습니다. 그 후 1956년 10월 제2차 중동전쟁('수에즈 전쟁'으로 불림)의 발발로 이스라엘은 시나이반도의 요충지를 점령하였고, 1967년 6월 '6일 전쟁'을 통해 시나이반도, 골란고원, 가자지구, 요르단강 서안 등 본토의 5배에 달하는 광대한 지역을 점령하게 되었습니다.

이와 같은 중동전쟁을 통하여 얻어진 점령지인 동예루살렘과 가자지구 및 골란고원에 대하여 이스라엘은 자신의 영토로 합병시키고, 이주정책을 실시하였습니다. 1967년 이후 점령지역 1/3 가량의 땅을 팔레스타인 지주로부터 몰수하여 15만명 이상의 유대인 정착촌을 건설하였습니다. 그러나 팔레스타인 주민에게는 이 새 주택 중 한 동도 배정하지 않았고, 팔레스타인 주민들의 기존 주택에 대해서는 개축과 신축을 금지함으로서 자연적으로 이들이 이곳을 떠나도록 유도하였습니다(이로 인하여 1999년 전체 동 예루살렘의 팔레스타인 인구가 208,300명인데 반해, 유대인 인구는 180,000명으로 증가하였습니다). 특히 유대인이나 아랍인 모두에게 종교적으로 큰 상징성을 가지고 있는 동예루살렘의 점령과 이에 대한 이스라엘의 정책은 주변국들의 반발은 물로, 점령지역의 팔레스타인들의 거센 저항에 부딪혔습니다. 이스라엘 국회는 1980년 예루살렘을 이스라엘 수도로 정하고, 주요 정부기관(대통령, 크네세트(국회), 행정부, 대법원)이 상주하는 곳으로서 규정하는 법안을 통과시켰습니다. 이처럼 동예루살렘의 점령과 함께 예루살렘 전체를 이스라엘의 영토로 못박아 버렸으며, 중동평화협상 때마다 이 문제에 대해서는 언급조차 회피하는 자세로 일관하였습니다.



요원한 평화 : 팔레스타인지역은 희망의 땅이 될 수 있나?

팔레스타인 지역분쟁 해결은 유엔에게는 큰 과제였습니다. 유엔은 1967년 '6일전쟁' 이후 242결의안를 채택하였는데, 242결의는 △ 1967년 분쟁시 이스라엘이 점령한 영토로부터 이스라엘 군대의 철수, △ 모든 적대적 요구 및 성명의 중지, 지역내 모든 국가의 주권, 영토보전, 정치적 독립과 평화롭게 살 권리에 대한 존중과 인정을 핵심내용으로 하고 있습니다(그러나 이 결의는 팔레스타인의 권리에 관해서는 아무런 언급이 없습니다. 난민 문제에 대한 아주 모호한 언급만 있을 뿐입니다). 이후 유엔은 1974년 총회에서 '팔레스타인인의 양도할 수 없는 권리'(민족자결, 독립과 주권)를 재확인하였고, 팔레스타인 해방기구(Palestine Liberation Organization : PLO)를 유엔 옵서버로 참가시켰습니다. 1983년 유엔은 예루살렘과 골란고원의 점령지역에 자신의 법과 행정권을 강요하려는 이스라엘의 결정은 무효라고 결정하였습니다. 또한 안전보장이사회는 이스라엘과 더불어 팔레스타인인에게도 국가주권을 부여해야 한다는 새로운 결의안에 대해서 논의하였고, 이스라엘이 철수할 지역에서 팔레스타인 국가를 세울 수 있다는 조항을 첨가하였습니다. 하지만 미국은 유엔 결의 242에 대하여 1971년, 철수란 "미국과 이스라엘이 결정한 범위 내에서의 철수"를 의미한다고 주장하면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결의에 대해 거부권을 행사하였습니다. 미국 주도의 중동평화협상은 팔레스타인 지역분쟁에 대해 유엔이 결정한 사항들이 배제되는 과정이었습니다.

마드리드 협상 : 1991년 10월 미국과 구소련의 공동주최로 이스라엘과 주변의 여러 아랍국가들이 협상당사자로, 이집트, 걸프협력회의(GCC), 마그레브 3국, 국제연합, EC 등이 옵서버 자격으로 참석하였습니다. 이 협상은 1992년에 이르러 이스라엘의 점령지 요르단강 서안지구와 가자지구의 팔레스타인인에 대해서 제1단계로 5년의 잠정기간을 세워 자치를 하고 최종적인 지위는 잠정기간 동안 교섭하기로 의견이 모아졌고, 이 안은 '오슬로협정'으로 이어졌습니다.

오슬로 협정 : 1993년 9월 공식 서명된 오슬로 협정은 이스라엘이 강점한 가자지구 및 요르단강 서안 예리코시에 이후 5년간 팔레스타인의 자치를 실시하되, 팔레스타인은 보건, 교육, 복지, 관광 및 문화 등 5개 행정분야에서만 자치권을 가지며 지역 내 치안을 담당하고, 외교 및 포괄적인 국방권은 계속 이스라엘이 행사하도록 되어있습니다. 또한 첨예한 의견대립을 보여온 예루살렘문제와 시리아·요르단 등 인접국가들과의 협상문제는 95년 12월 이후로 연기되었습니다. 이에 따라 이스라엘은 1994년 5월 13일 가자지구 내 군사기지를 팔레스타인 경찰에 이양하였고, 1994년 7월 아라파트 의장과 각료들이 예리코 자치지역에서 취임식을 거행하고 자치정부의 수립을 공식 선언하였습니다. 그 후 1995년 9월 28일 양측간에 팔레스타인 자치 확대 협정이 체결되었으며, 1995년 11월 2일에는 이스라엘이 점령지 철수계획에 따라 요르단강 서안내 예닌 경찰서를 팔레스타인 측에 양도하였습니다.

이후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은 1998년 10월 25일 '와이 협정'(Wye River Memorandum)을 체결함으로써 이스라엘은 1967년 점령한 요르단강 서안을 단계적으로 팔레스타인 자치정부에 이양하고 팔레스타인은 이스라엘에 대한 적대행위를 중단하기로 합의하였습니다.



폭력의 악순환은 이제 그만!

그러나 2000년 9월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 순례자간의 투석으로 촉발된 충돌에 이스라엘 경찰이 발포하여 팔레스타인 7명이 사망하고 220명이 부상한 사건이 발생하였습니다. 이사건을 계기로 팔레스타인 거주지역에서 1987년 발생한 민중봉기(인티파다)이래로 최대 규모의 민중봉기가 발생하였고, 이로 인하여 2001년 1월 미국-이집트-이스라엘-팔레스타인의 4자회담이 성과없이 끝났습니다. 이러한 와중에 샤론 이스라엘 총리가 1000여명의 군사를 대동하고 예루살렘 방문하여 이 지역의 주권을 양보할 수 없으며 동예루살렘을 이스라엘 영토에 병합시켜야 한다고 주장하였고, 이에 반발한 요단강 서안과 가자지구 팔레스타인들은 대규모 시위를 벌였으며, 폭탄테러 공격이 재개되었고, 이에 대한 이스라엘의 보복공격과 철수를 약속한 점령지역 내 군대주둔 지속이라는 악순환은 현재까지 지속되고 있습니다(샤론총리의 예루살렘방문으로 촉발된 알-아크 봉기때 팔레스타인들은 미국이 제공한 공격용 헬리콥터에 의해 희생되었습니다!)

팔레스타인 지역에 대한 이스라엘의 야만적 행위는 미국의 철저한 지원 속에서 이루어졌습니다. 미국에게 중동지역의 석유자원은 자국내 경제뿐만 아니라, 이를 통해 유럽과 일본을 견제하는 지렛대 역할을 할 수 있다는 점에서도 고도의 정치적 의미를 갖습니다. 이러한 이유로 중동지역에서 미국은 자신의 기득권 유지를 위하여 이스라엘과 사우디 아라비아를 축으로 중동국가들을 견제해 왔습니다. 이스라엘은 중동지역에서 미국의 이해(아랍 민족주의에 대한 견제와 중동권의 단결 분쇄)를 충실히 이행하였습니다. 이스라엘에 대해 미국은 1999년 해외 원조총액의 약 40%를 지원하고(이는 대 중동 총 원조액의 54%에 달합니다), 오슬로 협정에도 불구하고 지속되는 이스라엘의 이주정책과 폭탄테러에 대한 이스라엘의 무차별적 보복공격에 대한 묵과 속에서 공정한 중재자로서 행동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팔레스타인의 테러만 일방적으로 과장되는 가운데 미국의 이스라엘에 대한 정치적, 경제적, 군사적 원조는 오히려 증가되었습니다(2001년 2월 19일, 미 국방부는 이스라엘과 미국이 막 5억 달러에 달하는 최신형 아파치 공격용 헬리콥터를 제공에 관한 협상을 했다고 발표하였습니다).

현재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간에 핵심쟁점, 즉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에게 양도하는 영토의 범위와 시기, 이를 바탕으로 한 팔레스타인의 독립국가 선포 시기 및 예루살렘 문제에 대해 타결이 이루어지지 못하는 상태입니다. 더욱이 팔레스타인 문제 해결에 있어 미국의 일방주의는 거칠 것이 없어 보입니다. 이러한 점에서 중동문제는 매우 어두운 전망을 가질 수밖에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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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영기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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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국제연대위원회입니다. 오늘은 현재 영국 브래드포드대 평화학 박사과정에 있는 이대훈(국제연대위원회 위원)님이 보내주신 이라크 전쟁에 관한 글을 소개합니다.



미국의 이라크 전쟁


특별한 사건이 일어나지 않는 한 미국의 이라크 전쟁 도발은 많은 관측자들이 예측하고 최근 미 국방부 차관이 서울에서 확인해 주었듯이 "시기만 남았다". 사실 시기만 남았다는 표현은 더 깊은 진실을 은폐한다. 이라크 전쟁은 이미 시작되었으며 영국 한국 등의 전쟁참가 약속과 흔들리는 미국 여론을 전쟁지지로 확정지을 수 있는 정치 공작만 남은 것이다. 한국의 여론은 물론, 거대한 아랍권의 여론이나 다른 어떤 지역의 여론도 고려대상이 되지 못한다. 그런 면에서 이라크 전쟁은 시기만 남은 문제이며, 동맹국 확보와 차기 대통령 선거를 염두에 둔 미국 여론의 향배만 문제로 남은 것이다.

현재 미국은 영국과 함께 주기적으로 이라크의 군사시설을 폭격(9월 7일)하고 있는 중이며, 이미 이라크 영토내에 상당 규모의 특수부대를 투입, 군사작전을 수행 중에 있다. 미군은 현재 북부 이라크 쿠르드족 지역에서 대형 수송기를 처리할 수 있는 군비행장이 세 곳을 정비하고 있으며, 이에 따라 이곳에서 활동중인 미 특수부대와 이라크군 사이의 긴장도도 높아지고 있다. 최근 영국과 미국의 군용기 50여대가 동원된 대규모의 이라크 공습은 전쟁이 아니라고 말하는 사람들에게만 전쟁이 아닌, 사실상의 전쟁행위였다. 부시 대통령이 자랑하는 자신의 "신중함"은 중국과 러시아, 독일과 프랑스 및 일본 심지어 쿠웨이트 등의 반대를 완전히 무시하며 사실상의 군사작전을 진행하는 '호전성'을 잘못 발음한 것인 듯하다.

이라크가 미국이나 다른 나라에 직접적인 위협을 가하고 있다는 증거가 없는 현재 상태에서 미국의 이라크 전쟁은 불법이다. 이라크는 현재 대량살상무기 개발 의혹과 관련 유엔사찰을 거부하는 것 이외에는 문제를 야기하고 있지 않다. 핵무기 및 생화학 무기 개발의혹이 있으나 이 문제는 의혹수준에서 벗어나지 않고 있다. 이런 무기를 개발한 이후에 운반수단을 확보할 수 있는 가도 의문이다. 운반수단이 있어도 실행에 옮길 의지가 있는지는 검토되지도 않는다. 이라크가 야기하는 문제의 수준은 이미 불법으로 핵무기를 보유하고 운반수단을 확보하고 있으며 이를 바탕으로 전쟁하겠다고 엄포를 놓고 있는 인도와 파키스탄에 비하면 위협이 안되는 수준이다. 유엔 안보리의 대 이라크 결의안은 무기개발 사찰과 관련된 군사행동을 명시하고 있지 않으며, 유엔 헌장은 일국의 일방적인 군사행동을 금지시키고 있다. 이라크에 대한 합법적인 전쟁은 오직 안보리의 새로운 결의를 통해서만 가능하다.

그러나 안보리의 전쟁 결의가 불가능하기 때문에 미국은 단독행동을 추진하고 있다. 안보리의 대 이라크 전쟁 결의가 불가능한 이유는 국제적으로 반대여론이 매우 강하며, 유엔 사무총장 및 중동과 유럽의 미 동맹국조차 강력 반대하고 있으며, 미국이 제시하는 전쟁의 명분 (이라크의 대량살상무기 개발 및 알카에다 지원)을 입증할 길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실 이라크 침공 논란에서 국제법과 국제적 합의 또는 다른 어떤 합리적인 근거로 미국의 전쟁도발을 비판하려는 시도는 부질없다. 부시 행정부가 국제기구와 국제법을 존중할 의사가 없을뿐더러, 모든 부작용과 후유증을 인지하면서도 일체의 협의 없이 독자적으로 "후세인 정권 전복"이라는 초강경 목표를 세웠기 때문이다. 이 목표를 취소하는 것은 부시 행정부의 정치적 생명이 걸려 있는 문제이므로 이라크인들이 미리 정권을 전복시키는 불가능한 일이 있기 전까지는 불가능하다. 미국의 중동정치는 오로지 유전을 통해서만 이해 가능하고 이는 미국사회의 어마어마한 소비수준이라는 비합리적인 현실을 통해서만 이해가 가능하다. 더구나 부시 행정부는 공동의 이념과 가치로 세계를 설득하려는 시도에 조소를 보내고 있는 형편이다 (지구정상회의 불참의 예를 보라).(이런 면에서 이라크전을 다루는 기사마다 끝마무리에 달려나오는 "...반대 여론이 커지고 있는 상황에서 부시 행정부가 어떤 결단을 내릴지 전세계는 주목하고 있다"는 이성적인 결론은 독자들을 우롱하는 코미디에 가깝다).

이라크 정부는 사찰 재개 가능성을 열어두면서, 대이라크 경제제재 해제, 비행금지구역에 대한 미국, 영국의 공격 중단, 미국의 대이라크 공격 위협 중단 등을 조건으로 내걸고 있는데, 사실 이는 부시 행정부의 '우리편 아니면 적'이라는 독트린만 없었다면 대다수의 국가에서 동의할 수 있는 온건한 협상안이다. 강대국의 경우 협상의 결과에 따라 무력응징이라는 카드를 다시 들고나올 여지도 있는 융통성이 있는 제안인 것이다. 협상이 진행되는 1-2년 사이에 이라크가 혹시 개발할 수도 있는 대량살상무기가 미국의 안보를 위협할 것이라는 미국의 주장은 3류 공포소설 수준이다. 사담 후세인이 위협하는 것은 미국의 안보가 아니라 중동에 대한 미국의 일방적인 통치를 위협하고 있는 것이기 때문에 친미정권이 들어서기 전까지 협상은 협상 이외의 목적에만 봉사할 뿐이다.

현재 주목할 것은 있지도 않은 부시 행정부의 신중함도 아니고 첫 출정과 함께 성조기를 휘날리며 열광할 미국 여론의 향배도 아니다. 오히려 더 진지하게 주목해야 할 것은 21세기 세계사를 바꿀 미국의 오만한 군사행동이 어떤 비극적인 결과를 가져올 지이다. 앞으로 여러 관측자들이 여러 관측을 내놓고 미 국무부에서는 '반미정서 대책회의'를 계속하겠지만, 가치와 협력을 포기하고 우월한 군사력으로만 세계를 관리하겠다는 세계경영방식이 가져올 위험은 쉽게 예측하기도 또 폭발할 경우 통제하기도 힘들 것이다. 이점이 가장 우려되는 점이다.

한때 김영삼 전대통령과 김대중 대통령이 자신들의 동급으로 여겼던 넬슨 만델라 전 남아공 대통령은 "이라크를 공격하겠다는 미국의 위협에 놀랐다”며 “국제 문제에서 혼란을 불러일으키려 하고 있는 미국을 강력히 비난한다”면 국제 반전 여론을 선도하고 있으나, 평소에 만델라를 존경한다던 정치인들은 런던에서나 워싱턴에서나 서울에서나 한결같이 조용하다.

조용한 서울에서 때맞춰 한국 국방부 고위당국자들을 만나 "훌륭한 협의"를 마친 미 국방부 돕 자카임 차관은 "한국 정부가 미 이라크전에 각종 지원을 제공할 것을 확신"한다고 말하면서 "이것이 파트너십이고 우정"이라는 훈계를 잊지 않았다. 공교롭게도 거의 같은 시각에 독일 슈뢰더 총리는 독-미 관계를 설명하면서 "우정이란 복종과 다르다"며 독일은 결코 부당한 전쟁에 참여하지 않을 것이라고 색다른 우정관을 유권자들에게 설명하고 있었다. 북아일랜드의 평화협상을 성사시킨 영국의 전 장관 모 모울럼은 "이라크는 위협이 못된다. (이번 전쟁의) 진짜 목적은 사우디의 유전이다"라고 밝히면서 "푸들강아지"와 비슷한 우정관을 갖고 있다는 블레어 수상의 입장을 곤란하게 만들었다. 한국 정치권의 사대주의가 파트너십과 충견 사이를 어떻게 구분하는지 궁금하다.

이대훈(영국 브래드포드대 평화학 박사과정)

* 편집자 주

현재 부시대통령은 9.11 테러 1주기 대국민 연설과 12일 유엔총회 연설을 통하여 '문명'을 위협하는 '폭군'(이라크)이나 테러분자들에 대해서 협상은 없으며 다만 힘의 정치만 있을 뿐이라는 점을 다시 한번 선언하였습니다. 부시 대통령은 12일 유엔 연설을 통해 후세인 대통령의 이라크 정부를 ‘무법정권’으로 비난하면서 1991년 걸프전 이후 합의된 유엔의 결의들을 이라크가 어기고 대량살상무기 사찰을 거부해왔다고 지적하고, 유엔이 결의안 이행을 관철시키지 못하면 대량살상무기 개발을 중단시키기 위한 독자행동도 불사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9월 17일 이라크가 유엔 사찰단의 핵사찰에 대하여 무조건 수용의사를 밝혔음에도 불구하고, 백악관은 즉각 거부의사를 표명함으로서, 미국의 목표가 '사찰'이 아닌 '후세인정권 전복'이라는 점을, 중동 석유 생산 2위국인 이라크의 석유에 관심이 있음을 다시 한번 확인시켜주었습니다.

양영미
Posted by 영기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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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국제연대위원회입니다. 9.11 테러가 발생한지 벌써 만 1년이 흘렀습니다. 테러로 인하여 희생된 넋들을 위로합니다. 부시 행정부는 지난주에 결국 이라크에 대해 공습을 하였고, 내일 유엔 총회에서 부시 미대통령은 이라크 문제에 대한 신속한 해결을 강변할 예정이라고 합니다. '불량국가'들에 대한 '길들이기'가 임박한 것 같습니다. 오늘은 9.11테러의 희생자를 기리면서, 진정 우리가 추구해야 할 것은 무엇인지를 생각해보고자 합니다.

Not In Our Name! : 우리(희생자)의 이름으로 또 다른 희생을 반대한다!

미국 현지에서는 9.11테러 1주기를 맞아 전국 각지에서 다양한 추모행사가 열리고 있습니다. 성조기가 거리마다 휘날리고, 미디어들은 저마다 특집편성을 하였습니다. 대부분의 미국인들은 2천 800여명의 희생자들을 애도하면서 상처받은 미국의 자존심을 달래고 있지만, 희생자들의 가족들과 평화와 인권을 추구하는 사람들은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한 희생자의 어머니는 이렇게 말합니다. "테러행위는 잘못된 것입니다. 그러나 만약 우리가 그들과 같은 방식으로 대응한다면 우리가 그들과 다를 것이 무엇입니까? 누가 죽더라도 그들은 또한 한 어머니의 아들입니다. 어디선가 어머니가 울게될 것입니다. 세상은 그것을 알지 못하는 것 같아요." 이러한 목소리는 미국의 시민사회단체들이 다양한 활동을 통해 반영되고 있습니다.

평화로운 내일(September 11 Families for Peaceful Tomorrows)과 검은 옷을 입은 여성들(Women in Black)과 같은 희생자 가족 모임은 중동지역과 아프카니스탄 지역에서의 평화를 촉구하고, 반전캠페인을 전개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9.11 테러가 진정으로 미국 자신을 직시할 수 있는 계기가 되길 원하고 있으며, 전쟁이 가져오는 이익에 의문을 제기하면서, 비폭력적인 방법으로 테러리즘에 대한 해결을 희망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평화로운 내일과 공동으로 미국친우봉사회(American Friends Service Committee : 9.11테러 직후 서명운동과 아프카니스탄 난민지원사업을 펼침)도 미국의 각 지역에서 평화행진과 캠페인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A.N.S.W.E.R(Act Now to Stop War and Racism : 2001년에 대규모 국제행동의 날을 조직했던 미국 시민사회단체의 연합체)는 국제행동을 계획중입니다. 9월 14일부터 17일까지 워싱턴에서 럼스펠트국방장관이 참석할 예정인 군산복합체들의 무기박람회 기간동안 집중적인 캠페인을 펼칠 예정입니다. 이들은 거리의 대규모 반전운동만이 전쟁을 멈출 수 있다고 호소하면서, 이라크에 대한 새로운 전쟁반대, 시민의 자유와 권리에 대한 보호, 예산편성에 있어 전쟁에 대한 지출보다는 보건과 교육, 직업에 대해 지출할 것, 이스라엘에 대한 지원의 중단 등을 주장할 것입니다. 그리고, 10월 26일에는 대규모 국제대회를 열 예정입니다.

Common Cause(미국 의정활동 감시단체)는 이라크의 공격에 대해 의회의 동의를 얻어야 한다고 강력히 주장하고, 이에 대한 서명운동을 하고 있습니다. Common Cause는 미국인들이 의회와 대통령이 미국 군대를 위험으로 몰아넣기 전에 충분한 토론과 논의를 보장받을 필요가 있음을 지적하면서, 의회와 미국인들로부터 어떠한 논의도 거치지 않은 이라크에 대한 무력사용은 반드시 대통령이 의회로부터의 승인을 받을 것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한편 9.11 이후 미국에서는 인권침해의 사례가 늘어나면서 이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커지고 있습니다. 2001년 10월 의회에서 통과된 미국의 '미 애국법'(USA Patriot Act : Uniting and Strengthening of America by Providing Appropriate Tools Required to Intercept and Obstruct Terrorism Act of 2001)은 '테러 혐의가 있는 외국인'을 영장 없이 최고 7일(기존 2일)간 구금할 수 있고, 추방할 수 있도록 했으며, 도청 대상도 일반 전화 외에 휴대폰 등 모든 통신수단으로 확대하였고, 도청 가능 기간도 현재 90일에서 1년으로 대폭 연장했습니다. 또한 '미 애국법'으로 인하여 개인의 신용카드, 이민신분 기록 등은 물론 교육, 도서관, 건강기록 등도 수사가 가능해졌습니다. 이로 인하여 미국에서는 강제추방과 구금 및 면회금지 등 이민자들에 대한 인권침해가 발생하였습니다.

이러한 테러관련 법안에 의한 인권침해 논란은 비단 미국만의 문제는 아닙니다. 9.11 이후 테러관련 법안을 제정하거나 입법하려는 움직임은 한국을 포함하여 캐나다, 영국, 인도, 싱가폴 등에서 진행되고 있습니다. 이러한 움직임에 대하여 국제사회의 비난은 이미 국제사면위원회(Amnesty International)같은 단체에 의해 제기되었고, 우리나라에서 국가정보원 주도로 제정을 추진한 '테러방지법'은 국가인권위원회의 국회 권고안에서도 그 인권침해소지에 대해 경고한 바 있습니다.

'미 애국법'과 더불어 테러사건을 계기로 이민관련법(Immigration Law) 역시 강화 움직임이 일고 있습니다. 이란과 이라크, 수단, 리비아, 시리아, 쿠바, 북한 등 테러지원국 출신의 미국 유학을 금지하고, 시민권이 없는 사람들에 대한 지문날인을 의무화하고, 유학생이 이민국에 실제 수업등록 여부를 보고하며, 외국인 입국자들에게 전자카드를 발급하여 입출국 및 국내활동을 감시하는 등의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이와 같은 미국내의 현상은 미국사회가 가지고 있는 타자에 대한 불관용의 문화도 한 몫을 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이민의 역사로 만들어진 미국은 타문화에 대한 관용보다는 미국적 가치로의 철저한 통합이 우선시되었고, 앵글로색슨 문화의 지향은 극도의 인종주의를 보여왔습니다). 이렇듯 국내외적으로 많은 문제를 야기하는 '테러와의 전쟁'을 강행하겠다는 부시의 독단은 무엇으로부터 기인한 것일까요?



'검은 진주'에 대한 욕망, 그리고 '검은 욕망' : 중동개입과 군산복합체

2차 대전이후 중동지역은 과거 식민지 모국이었던 유럽의 국가들이 철수하고, 미국의 강력한 영향력하에 놓이게 되었습니다. 미국은 반드시 중동지역에서 일어나는 일을 통제해야한다는 입장을 가졌는데, 가장 직접적인 원인중 하나는 중동지역의 석유자원 때문이었습니다. 우리는 현재 부시행정부의 중동지역 석유에 대한 지속적인 관심을 체니의 에너지 정책보고서 등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이 보고서에 따르면 2020년까지 미국의 석유 공급은 일정한 반면에, 소비는 32%증가할 것으로 예측되는데, 이것은 수입에 대한 광범위한 의존을 의미하므로, 중동지역에서의 미국의 안전한 석유공급확보는 무엇보다 우선하는 과제로 제시되었습니다. 즉, 미국의 중동문제개입은 바로 '세계의 평화'가 아닌 미국의 이익에 근거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미국의 이해관계는 유엔에서 미국의 독단적인 모습을 통해 잘 드러나고 있습니다.

유엔과의 관계 속에서 미국의 중동개입을 보면, 지난 30년동안 미국의 중동정책은 교섭거부주의(rejectionism)의 극단적인 형태였습니다. 팔레스타인 문제를 예로 들어보겠습니다. 1967년 유엔은 이스라엘의 군대철수, 팔레스타인지역에서의 인권보장 등을 내용으로 하는 242결의를 채택하였는데, 이에 대하여 미국은 1971년 철수란 "미국과 이스라엘이 결정한 범위 내에서의 철수"를 의미한다고 주장하였습니다. 이것이 바로 미국의 세계 통치하에 놓여 있는 유엔 결의 242조가 1971년이래 갖는 실질적 의미였습니다. 유엔은 이스라엘과 더불어 팔레스타인인에게도 국가주권을 부여해야 한다는 결의안을 지속적으로 제출하였고, 이스라엘이 철수할 지역에서 팔레스타인 국가를 세울 수 있다는 조항까지 첨부되었습니다. 그러나 미국은 이에 대해 안전보장이사회에서 거부권을 행사했습니다. 유엔 242결의에 대한 자의적 해석을 고집하면서 자신의 중동지역에 대한 기득권을 결코 포기하지 않았습니다(우리는 이러한 모습을 공교롭게도 9.11 테러가 일어나기 몇 주전에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바로 남아공 더반에서 열린 인종차별철폐를 위한 유엔 세계회의에서 미국과 이스라엘의 오만입니다

이처럼 중동지역의 석유에 대한 확고한 영향력을 유지하기 위한 미국의 욕망과 더불어 군산복합체의 피의 댓가로 얻어지는 그들의 이익을 위한 '검은 욕망'은 끊임 없는 위기조성과 이에 대한 무력사용이 반복되는 이유입니다. 군산복합체 연구자 윌리엄 하퉁은 "9.11 테러의 최대 수혜자는 군산복합체"라고 단언하고 있습니다. 9.11 이후 군수업체들은 재고 무기 소비와 주가 폭등으로 많은 이익을 챙겼습니다(9.11 테러 발생 이후 미국의 다우존스가 일주일동안 14.3%가 폭락한 반면, 주요 군수산업체들은 아머 홀딩스 40%, 노스롭 그루만 2.12%, 레이시온 37%, 록히드 마틴 28%의 주가상승이 있었습니다).

군수산업체의 이러한 욕망은 막강한 로비와 인맥에 의해서 뒷받침되고 있습니다. 이는 부시 행정부의 면모를 통해서도 알 수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부통령 딕 체니는 군수산업체의 싱크탱크라고 할 수 있는 안보정책센터의 이사를 지냈고, 럼스펠드 국방장관은 군수산업체로부터 기금을 받는 'Empower America'의 이사와 안보정책센터의 핵심 간부로 활동했었습니다. 폴 월포위츠 국방부 부장관은 노스만그룹사의 자문위원을 지냈고, 스테판 해들리 안보 부보좌관은 록히드마틴사의 법률자문관 출신입니다. 부시 행정부 전체적으로는 외교안보팀의 약 3분의 2가 주요 군수산업체의 간부, 대주주, 컨설턴트 출신으로 짜여져 있습니다.

또한 군수산업체들은 중동과 남아시아 등에 무기 판매를 통해 막대한 이익을 창출하려고 합니다. 부시 대통령은 '테러와의 전쟁'을 위한 '반테러 연합'을 확고히 하기 위해 첨예한 긴장이 고조되고 있는 중동 및 남아시아 국가들에게 무기를 공급하고 있습니다. 이는 또 다른 분쟁의 씨앗을 심고 있는 것입니다.

대량살상무기의 위협을 강조하는 미국은 아이러니 하게도 생물무기금지협약(BWC) 검증의정서 채택 거부, 탄도미사일방어(ABM) 조약 파기, 포괄핵실험금지조약(CTBT) 인준 거부 등 대량살상무기에 대한 지구적 공동대응을 무의미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더욱이 지구촌이 직면한 빈곤문제, 환경문제와 같은 '인간안보'의 절대적 위협요소에 대해서 매우 소극적인 태도로 일관하고 있습니다. 이에 반하여 지구촌 시민사회의 지향점은 분명합니다. 폭력에 대한 폭력의 악순환을 그만두는 것, 그리고 지구적 관점에서 지구촌 공존의 길을 모색하는 것입니다. 즉 인류의 지속적인 생존을 보장하는 종합적인 안보개념을 바탕으로 '인간안보'의 보편적 가치를 추구해야 합니다. 여기에는 적과 나의 이분법에 기초한 냉전시대의 안보가 아닌 인권에 대한 옹호와 보장, 환경과 인간의 조화, 빈곤으로부터의 탈피, 대량살상무기 통제 및 재래식무기의 감축 등이 포함되어야 합니다. 테러를 해결하는 근본적인 치유책은 바로 이러한 가치의 실현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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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영기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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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국제연대위원회입니다. 김해지역의 수해가 채 끝나기도 전에 또 한번 거센 태풍으로 많은 사람들이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합니다. 배려하는 마음이 필요할 때입니다. 오늘은 911테러 이후 미국의 군사주의노선이 심화되고 있는 가운데 한반도가 처한 현실을 짚어 보고자 합니다.

2002년 조지 W. 부시의 연두교서

지난주 한국에 방문한 미국 국무차관 존 볼트는 8월 29일 이라크, 이란과 함께 북한을 '악의 축'으로 거듭 지목하며, "이것은 수사학이 아니라 사실"이라면서 "북한은 주민들을 굶기면서 대량살상무기를 만들어 팔고 있다"고 강조하였습니다. 부시의 연두교서에 나타난 입장이 계속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대목입니다. 부시는 올해 연두교서에서 '악의 축' 국가들을 지목하면서, 그 근거로 대량살상무기의 제조와 수출을 제시하였습니다. 이들 국가가 국민을 억압하고 희생시키면서 대량살상무기에 집착하고 있고, 이러한 무기들이 테러리스트에게 제공될 수 있기 때문에 이러한 나라들이 세계 평화를 위협하는 '악의 축'을 형성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부시 행정부는 이러한 기조 속에서 '테러리스트 척결'과 그 지원국들의 대량살상무기 생산에 대해 선제공격 가능성을 지속적으로 언급하였고, 또한 이러한 '악의 축'의 공격에 대비하기 위해 미사일 방어망 구축 의지를 표명해왔습니다('악의 축' 표현은 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이탈리아-일본의 동맹을 지칭한 것에서 유래합니다).



진정 위협을 하는 자는 누구인가?

냉전체제의 해체는 미국에게 유일 강대국으로서의 입지를 가져오게 되었지만 그 경쟁상대의 상실로 인하여 정치적 방해물의 공백을 가져왔습니다 이러한 딜레마를 제거하기 위해 결국 중국을 '잠재적인 위험국가'로 상정하였고, 이른바 '깡패국가'들을 지목하여 그들의 위협성을 제기하였습니다. 여기에는 미국의 소위 '인권외교'도 가세하는데, 민주주의와 인권의 측면에서 많은 문제를 가지고 있는 이러한 국가들에 대해 자국민을 희생하면서 무기를 개발한다는 논리로 그들 국가에 대한 정치적 압박과 쿠바의 경우처럼 각종 제재조치를 정당화시키고자 합니다. 미국의 세계질서 재편의 움직임은 9.11테러로 뜻하지 않게 힘을 얻게 되었습니다. 이미 클린턴 행정부시절부터 보이기 시작한 미국의 패권강화를 위한 군사력 증강계획은 9.11테러 이후 거침없이 진행되고 있습니다(우리는 부시 행정부의 군사주의 노선 강화에 대해 뉴스레터 4호에서 살펴본바 있습니다).

이러한 미국의 논리를 다른 각도에서 보면 얘기는 전혀 달라집니다.

탈냉전 이후 이와 같은 미국의 위협은 많은 국가들로 하여금 자신의 안보를 심각하게 고려하게 만들었습니다. 반미성향이 강했던 국가들은 스스로를 지키기 위한 자구책이 필요하였으며, 안보문제가 대두되었습니다. 이러한 분위기는 군사력 강화를 추구하는 계기였고, 가장 효과적인 대량살상무기의 개발이 제기되는 배경입니다. 미국이 지목한 이란과 이라크는 어떤 국가입니까? 과거 중동지역에 자신의 헤게모니를 관철시키기 위해 이들 국가를 지원한 것은 바로 미국입니다. 중동지역의 석유자원을 둘러싸고 자신의 패권을 유지하려는 미국과 민족주의를 내세운 아랍권간의 갈등은 생존을 위한(정치, 군사적인 면과 함께 무기수출로 벌어들이는 경제적 효과를 포함하여) 무장에 다름아닌 것입니다.

북한의 경우 역시 다르지 않습니다. 북한의 핵무기 개발시도와 미사일 운반체계 개발은 한국전에서 B-29에 의한 원자탄 투하훈련이 확인되었고, 1992년 비핵화 선언까지 주한미군이 보유했던 전술핵, 그리고 한미합동 훈련의 시나리오에 포함되었던 핵무기 사용에 대한 대응이라고 봐야할 것입니다.



미국의 북한에 대한 불신과 일방주의 : 2003년 한반도가 위험하다?

부시 행정부는 지속적으로 북한과 "조건없는 대화"에 응한다고 하였지만, 그것은 외교적 수사에 불과한 것 같습니다. 작년 김대중 대통령의 방미 당시 부시가 북한에 대해 "북한과는 말할 것이 없다"고 한 발언이나, "믿지 못할 사람"이라는 표현을 보면, 북한을 대화상대로 고려하고 있지 않고 있습니다. 부시 행정부의 외교안보팀이 북한에 대하여 강한 불신과 무시의 입장에서 비롯되는 더욱 심각한 문제는 현재 이라크 침공 이후, 다음 타켓이 북한이 될 가능성이 크다는 '2003년 한반도 위기설'이 제기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2003년 한반도 위기설'은 부시 행정부의 외교안보팀이 북한에 대해 강한 불신을 가지고 있으며, 미국의 일방주의적, 군사주의적 노선이 강화되고 있는 시점에서 현재 북-미간 갈등을 빗고 있는 문제들에 대하여 미국이 북한과 협상을 통해 해결하기보다는 직접적인 행동에 나설 수 있다는 점을 경고한 것입니다. 구체적으로 2003년은 예정대로라면, 지난 1994년 전쟁직전까지 갔었던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북한 핵사찰이 경수로 완성 이후 재실시되는 시점이고(제네바 협상이 충실히 이행된다면), 지난 1998년 북한의 미사일 발사 실험에 따른 협상으로 북한이 2003년까지 미사일 발사실험을 유예하기로 합의했던 시점입니다. 더욱이 '악의 축' 발언 이후 부시 행정부의 외교안보팀이 제기한 북한의 생화학무기에 대한 의혹과 대량살상무기에 대한 추가적인 사찰 요구가 있어 이러한 문제들을 북-미간, 혹은 한반도를 둘러싼 주변국들이 어떤 해법을 가지는가에 따라 매우 상이한 결과를 초래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핵사찰과 제네바 협상문제

지난 1994년 제네바 협상을 통하여 북한은 핵과 관련한 모든 활동을 중단하고, 핵무기 의혹지역에 대한 사찰을 수용하였습니다. 미국은 북한에 대한 경제 제재조치를 해제하고, 북한의 석유난 해소와 경수로 건립을 합의하였습니다. 이에 따라 2003년까지 경수로를 완성하고, 경수로 관련 핵심 부품을 인도받기 전에 북한의 과거 핵활동에 대한 사찰을 실시하기로 하였습니다. 그러나 현재 부시 행정부는 경제 제재조치를 아직도 완화하지 않고 있으며, 케도(KEDO)를 통한 1차 경수로 완성도 이행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시 행정부는 북한이 제네바 합의 이전에 1-2개의 핵무기를 만들 수 있는 플루토늄을 보유한 것으로 의심하면서, 경수로 완성 이전에 조기 사찰을 주장하고 있습니다. 북한은 이에 대하여 경수로 완공의 지연에 따른 전력난 보상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이와 관련하여 지난주 한국을 방문했던 존 볼트 미 국무부차관은 "북한이 제네바 합의의 즉각적인 이행에 돌입하지 않을 경우 제네바 합의의 미래는 심각한 우려에 빠질 것"이라며, 특히 "북한이 핵사찰을 수용하는 대신에, 미국은 북한이 요구하는 전력 손실 보상을 할 의사가 있느냐"는 질문에, "경수로 사업이 지연된 것은 전적으로 북한의 책임이기 때문에 전력보상을 할 이유가 없다"고 답변했습니다. 또한 "북한의 과거와 현재 핵활동을 효과적으로 밝힐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사찰이 이뤄질 때까지, 경수로 핵심부품은 인도되지 않을 것"이라며, 북한이 핵사찰을 수용하지 않으면 경수로 사업을 중단할 수 있음을 분명히 했습니다. 이처럼 미국은 제네바 합의 사항에 대해 스스로 이행을 다하지 않고, 심지어 제네바 합의수준을 넘어서는 요구를 관철하고자 하고 있습니다.

▲ 미사일 관련 문제

다음으로, 1998년 대포통 1호를 발사했던 북한은 미국과의 협상을 통해 미사일발사 실험을 2003년까지 중지하고, 만약 미국이 상응하는 조치를 취한다면 북한이 미사일 프로그램을 포기할 의사가 있음을 분명히 하였습니다. 클린턴 행정부 마지막에 거의 합의에 이르렀던 이 문제들은 부시 행정부의 출범으로 전면 백지화되었습니다. 현재 북한은 미사일 발사실험을 계속 실시하지 않고 있고, 중단거리 미사일 프로그램 포기 의사를 거듭 천명했음에도 불구하고, 부시 행정부는 이에 대해 미온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습니다. 이것은 바로 부시 행정부가 추구하는 미사일 방어체제(MD)에 불리하기 때문입니다.

미사일 방어체제는 상대의 미사일 위협을 전제로 하고 있는데, 북한이 이를 포기할 경우 한반도를 포함한 태평양 지역에서 미사일 방어체제가 구축되어야할 설득력이 약해지기 때문입니다. 부시 행정부가 미사일 방어체제 구축의 명분을 잃지 않기 위해 북한 미사일 문제 해결에 미온적이라는 비판도 이러한 이유 때문입니다(물론 미국의 입장에서는 '잠재적 위험국가'로서 중국이 있는 한 미사일 방어체제 구축은 추진될 것입니다). 이러한 미국의 입장에 대하여 북한은 미국이 계속 미사일 방어체제 구축을 위해 미사일 협상에 나서지 않을 경우, 미사일 개발을 비롯한 자위적인 조치에 나설 것임을 경고하고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미사일 수출과 관련해서 부시 행정부는 북한이 계속 중동, 북아프리카, 남아시아 등에 미사일 수출을 해오고 있다고 주장하면서, 이것이 북한을 '악의 축'으로 규정한 가장 큰 이유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기본적으로 북한의 미사일 수출은 극심한 경제난을 완화하기 위한 '외화벌이용'이라 할 수 있습니다. 더욱이 북한은 미사일기술통제체제(MTCR)를 가입하지 않았기 때문에, 주권의 문제이며 북한의 미사일 수출을 법적으로 막을 수 있는 근거는 없습니다. 이것은 미사일 발사실험 유예와 마찬가지로 북한은 '적절한 보상'(식량, 전력 등)만 이뤄질 경우 미사일 수출을 기꺼이 포기할 의사가 있다고 거듭 밝혀오고 있습니다.

미국이 제기하는 '악의 축' 북한이 갖는 위협은 미 언론의 표현을 빌자면 '으르렁대는 생쥐'일 뿐입니다. 그들이 요구하는 것은 테러나 공산주의가 아니라 자국의 '생존'일 뿐입니다. 하지만 북한 문제에 대해 미국은 매우 고압적인 자세를 취하고 있습니다. 즉 '아쉬운 사람이 기어라'라는 것입니다.

'2003년 한반도 위기설'이 '기우'로 끝날 수도 있겠지만, 그 위험의 징후들은 점점 더해가는 것 같습니다. 이러한 점에서 한국정부의 중재역할이 매우 중요할 것입니다. 올해 한국정부가 보여준 미국 외교정책에 대한 오판과 허둥지둥했던 모습들은 결코 한반도 평화에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정확한 인식을 바탕으로 체계적이고 신속한 대응이 필요할 때입니다. 더욱이 현시점에서 미국 일변도의 외교는 한반도에 돌이킬 수 없는 재앙을 초래할 수 있다는 것을 간과해서는 안될 것입니다. 다각적인 노력 속에서 미국의 일방주의 외교를 견제할 수 있는 지혜도 필요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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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국제연대위원회입니다. 아홉 번째로 유엔시리즈를 마무리합니다. 1990년대 이후 유엔을 중심으로 한 지구촌의 흐름을 연재하였습니다. 9월에는 9.11테러 1주기를 맞이하여 중동문제에 대한 이해와 9.20일부터 개최예정인 4차 아셈(ASEM) 정상회담과 민간포럼을 다룰 예정입니다.

1990년대 이후 유엔

우리는 현재 개최중인 리우+10회의까지 유엔이 개최한 회의들, 그중 인권, 사회개발, 인종차별철폐회의를 살펴보았습니다. 유엔은 탈냉전, 세계화라는 새로운 지구촌 환경 속에서, 그로 인하여 발생되는 문제들(물론 유엔은 우리가 짚어본 문제들 이외에도 노동(ILO와 관련하여), 여성, 아동, 인구증가 및 식량안보, 고령화(ageing) 등 지구촌이 안고 있는 문제들을 폭넓게 다루어 왔습니다. 이 주제들은 다음에 소개할 자리를 마련하겠습니다)을 대처하기 위한 노력들이었습니다. 점증하는 지구촌의 상호의존 속에서 유엔은 국가중심적 사고에서 벗어나 지구적 문제에 대한 지구적 차원의 해결을 모색하기 위하여 지구촌 시민사회의 적극적인 동참을 유도하였고, 일련의 유엔의 활동은 2000년 밀레니엄 총회를 통하여 1990년대 유엔이 개최하였던 회의들에 대한 성과를 종합하고, 밀레니엄 선언문같은 새천년 유엔의 과제를 제시하기에 이르렀습니다. 특히 밀레니엄 포럼, 정상회의, 총회에서는 21세기 유엔의 역할을 강화하기 위한 유엔개혁의 문제가 21세기 유엔의 과제들과 함께 논의되었습니다.

NGO들은 밀레니엄 정상회의에 앞서 유엔의 지원하에 포럼을 개최하여 90년대 유엔회의의 결과에 대한 비판과 종합적인 평가, 유엔과 NGO의 관계에 대한 평가와 발전적 모색을 논의하였고 '밀레니엄 선언문'을 채택하였습니다. 선언문에는 21세기의 과제에 대하여 외채탕감과 사회발전을 포함한 빈곤문제, 인권, 세계화문제, 평화, 안보, 무기감축을 제시하고 이러한 밀레니엄 과제를 실천하기 위하여 유엔의 강화를 제안하고 있습니다. 즉, 지구촌의 주요한 임무는 지구적 맥락(context)속에서 유엔을 강화하는 것이며, 이를 위하여 총회의 조정역할(coordinating role) 강화, 비토권의 폐지를 포함한 안전보장이사회의 확대 개편, NGO와 유엔간의 정보교류의 활성화, NGO의 유엔 참여 보장 등을 통한 안정적인 관계 정착 등을 밀레니엄 총회에 제안되었습니다. 그리고 이후 열린 밀레니엄 정상회의에서'밀레니엄 선언'이 채택되었는데, 자유, 평등, 연대, 관용, 책임분담 등의 가치와 원칙을 확인하면서, 평화, 안보 및 군축을 위한 유엔 효율성제고, 대량살상무기제거의 노력, 타당한 공치(good governance)를 통한 빈곤타파, 책임분담원칙에 따른 환경보호, 인권과 민주주의 보장, 아프리카 문제 해결 등을 과제(MDGs)로 제시하였고, 유엔강화를 위해 ▲ 총회의 중심적 지위 및 효율성 제고, ▲ 안전보장이사회의 포괄적 개편달성을 위한 노력 강화, ▲ 유엔의 재원확보가 제시되었습니다.



유엔 개혁의 쟁점 : 재정난 해결, 안전보장이사회 확대개편

1997년 코피 아난이 유엔 사무총장으로 취임하면서 촉진된 유엔 개혁에 대한 논의는 이미 1995년 유엔 50주년 총회에서 제기된바 있습니다. 당시 지구적 공치위원회(Commission on Global Governance)는 코피 아난의 개혁을 지지하는 16개국의 그룹을 조직하고, 지구적 공치와 유엔 개혁을 강조한 '우리 지구의 이웃들'(Our Global Neighbourhood)이라는 보고서를 제출하였습니다.

이 보고서에 따르면 안전보장이사회의 개편은 유엔개혁에 핵심이며, 비토권에 대해서도 단계적인 폐지를 권고하였습니다. 여기에서는 밀레니엄 선언 등 유엔 내부에서 제기되어온 개혁문제들을 중심으로 알아보겠습니다.

 ◎ 안전보장이사회 개편

안전보장이사회는 미국, 영국, 프랑스, 러시아, 중국의 5개 상임이사국과 2년 임기로 선출되는 10개 비상임이사국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2차대전이후의 상황을 반영한 안전보장이사회는 유엔 회원국수가 1965년 헌장개정 당시(비상임이사국을 6개국에서 10개국으로 늘리는 것)의 114개국에서 188개국으로 대폭 증가하였고, 탈냉전이후 국가간의 전쟁보다는 국지적 분쟁의 증가에 따라 안전보장이사회의 권한범위와 대표성에 많은 논란을 가져왔습니다. 이로 인하여 ▲ 안전보장이사회의 확대개편, ▲ 비토권의 폐지문제, ▲ 투명성확보와 NGO 참여의 문제가 제기되었습니다.

안전보장이사회의 대표성 제고를 위해 이사국수를 늘려야 한다는 개편논의는 먼저, 전체 회원국수 대비 안보리 이사국수가 현재 15 : 188로, 대표성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최소한 24개국(1965년 헌정개정당시 비율에 근거하여)으로 증대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현재 상임이사국 진출을 강력히 희망하고 있는 일본과 독일(이들은 유엔내 재정분담에서 미국 다음으로 비중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역시 안전보장이사회 개편의 주요 동인입니다. 안전보장이사회의 개편에는 일본 및 독일을 상임이사국에 포함시키는 안과 개발도상국(아시아, 아프리카, 라틴 아메리카 대륙별 각 1국)도 포함되어야 한다는 안, 상임이사국학대와 더불어 비상임이사국을 같이 늘리자는 안이 있었습니다.

다음으로, 비토권 문제에 대해서 밀레니엄 포럼 선언문은 보다 다양한 참여와 투명성 제고를 위하여 영구적인 폐지를 주장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일본, 독일 등 신규 상임이사국 진출을 추진하는 국가들은 거부권을 희망하고 있고, 무엇보다도 현재 상임이사국들은 비토권을 포기할 의향이 없는 것 같습니다. 이처럼 안전보장이사회의 확대개편에 대하여 유엔 회원국들은 개편에는 동의하고 있지만, 확대 규모와 상임이사국 증설 여부, 증설 방식, 비토권 등을 둘러싸고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습니다.

현재 안전보장이사회는 NGO의 정보, 의견, 제안이 전혀 받아들이지 않고 있습니다( 이와 관련하여 지구적 공치위원회는 NGO전문가 패널을 구성하여 안전보장이사회 회원국과 실무자간의 협의를 권고하고 있습니다). 총회에서 선출되지 않는 상임이사국, NGO참여의 배제 등 이러한 폐쇄적 구조하에서 강대국 특권이 여전히 힘을 발휘하는 것은 유엔을 민주적으로 강화하고 유엔이 지구적 공치를 위한 장으로서 기능하는데 커다란 걸림돌이 아닐 수 없습니다.

◎ 재정난

현재 유엔의 재정난은 여러 회원국들의 장기간 분담금 체납, 특히 분담율 1위인 미국의 체납으로 인해 그 정도가 매우 심각합니다. 이로 인하여 유엔은 그간 PKO 예산의 일부를 차입하여 정규예산 적자분을 메우는 기형적인 방법으로 재정을 운용하였습니다(현재 유엔 정규예산 분담율은 미국이 전체 예산의 22.0%를, 일본은 19.7%를, 독일은 9.8%를 각각 부담하고 있습니다).

특히 미국은 유엔에 대한 이견이나 불만이 있을 때마다 분담금 납부를 미루는 것을 무기로 자신의 이해를 관철시키고 있습니다. 2001년에는 유엔인권위원회 탈락에 대한 보복으로 체납금 중 일부를 지불 유예조치를 취하기도 하였습니다. 즉 당시 미국이 제공하기로 했던 2억 4천400만달러에 대하여 미국의 유엔인권위 복귀라는 조건을 달아놓기까지 했습니다. 이와 같은 미국의 실력행사로 인하여 매년 유엔 분담금 체납액의 50% 이상을 미국이 차지해 왔습니다.

유엔 재정난의 원인에 대해서는 선진국과 개발도상국간의 입장이 엇갈리고 있습니다. 선진국은 유엔의 재정난이 유엔의 '비효율적 예산집행과 행정운영'에 기인한다는 시각인 반면, 개발도상국은 유엔 재정난의 근본원인이 분담금 납부지연에 있으므로 재정난 해소를 위해서는 분담금의 기한내 완납이 필수조건이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정작 실상을 파헤쳐 보면 선진국이 제기하는 '비효율적 운영'이라는 것은 그들의 저의가 드러나는 것입니다. 1993년 유엔 총 경상비와 평화유지군 비용은 41억 달러로 뉴욕시 경찰 및 소방대 예산의 합과 비슷하며, 유네스코와 같은 13개 유엔 전문기관의 연간 예산은 약 10~11억 달러로 한국인의 석달 음주비용과 비슷한 수준이며, 서구 청소년들이 1년동안 구입하는 액세서리 비용의 절반밖에 되지 않습니다. 유엔에 대한 방만한, 비효율적 운영이라는 비판은 선진국의 분담금에 대한 부담을 줄이고, 자신의 기득권은 유지하려는 정치적 논리에 다름아닌 것입니다.

◎ 민주성과 대표성 강화

유엔 개혁의 문제는 이외에도 밀레니엄 포럼 선언문에는 총회의 민주성과 대표성 강화를 위하여 유럽의회와 유사한 형태의 의회를 구성해서 인구에 비례한 균등대표제를 채택하자는 방안을 제시하였고, 유엔발전프로그램(UNDP : UN Development Programme)은 유엔 총회를 양원제로 하여 NGO들의 공식적인 참여의 장으로 하는 제도화를 주장하기도 하였습니다.

특히 세계화, 개발 등 경제문제에 대하여 지구적 공치위원회는 "경제보장이사회"의 창설을 통해 G-7보다 더 광범위하고 균형있는 구성을 통해 금융, 무역 및 환경 등 현안에 대한 지구적 공치의 강화를 권고했고, 밀레니엄 포럼에서도 비토권이 없고, 안전보장이사회와 동등한 지위이면서 지리적 대표성, 인구 및 경제규모 등을 고려한 총회가 윤번제로 회원국을 정기적으로 교체하는 "경제보장이사회"를 제안하기도 하였습니다.

밀레니엄 포럼의 선언문에서도 지적했듯이 "모든 국가들과 국민들의 이해에 관심을 갖는 유일한 기관"으로서 유엔은 지구촌 시민사회가 주목할만한 파트너임에는 틀림없습니다. 하지만 유엔은 반세기 동안의 성과에도 불구하고 많은 한계를 보이고 있는 것 또한 현실입니다. 그것은 자국의 이익을 추구하는 국가간의 정치세계에서 어찌보면 당연한 결과일 수도 있습니다. 이러한 점에서 유엔 개혁은 그동안 유지되어온 강대국의 기득권을 견제하고, 유엔의 목표인 평화, 인권, 개발을 위한 지구적 공치의 구현에 있어 매우 절실한 과제일 것입니다. 지구촌 시민사회의 주요한 파트너로서 유엔을 보다 의미롭게 만들기 위한 노력과 행동들, 그리고 강대국의 횡포에 맞서는 연대를 지구촌 시민사회와 회원국 스스로가 실천할 때, 유엔은 "말잔치"뿐이라는 유엔회의에 대한 비난을 넘어서 실질적이고, 강력한 집행력을 갖는 지구적 기구로서 자리잡을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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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영기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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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국제연대위원회입니다. 지구촌이 기상이변으로 인한 호우로 앓고 있습니다. 지속가능한 개발을 위한 세계정상회의(이하 리우+10)를 앞두고 나타난 기상이변은 마치 이번 회의가 갖는 의미를 지구 그 자신이 알려주기 위한 것처럼 느껴집니다.

지속가능한 개발을 위한 세계개발정상회의

(World Summit on Sustainable Development : WSSD)

189개국 정부수반과 5만여명의 NGO들이 참가할 예정인 리우+10회의는 정부간 회의(type1)에서 정치적 선언문과 이행계획을 확정짓게되고, 국제기구, 시민단체가 참여하는 회의(type2)에서는 이해당사자 그룹들이 서로 합의하여 추진하기로 결정한 사업이 유엔에서 공식적으로 인정받게 됩니다.

이번 리우+10회의는 세계/ 지역/ 국가 차원에서 준비회의가 진행되어 이행수단, 세계화, 공치(Governance) 강화 등이 공통의 쟁점으로 논의되었습니다. 그간의 준비회의의 결과로'정치적 선언문'초안 과 '이행계획'(Plans of Implementation) 초안이 마련되었습니다.

정치적 선언문 초안에는 유엔헌장 및 유엔 밀레니엄 선언에 제시된 가치의 원칙(자유, 평등, 연대(solidarity), 관용, 책임분담) 및 목적을 재확인하고, 지속가능한 발전에 심각한 위협을 야기하는 세계적 조건들을 빈곤, 비지속적인 생산 및 소비 패턴, 환경 악화, 만성적 기아, 해외 점령, 무장 분쟁, 불법 마약 문제, 조직적 범죄, 테러, 풍토, 전염 및 만성적 질병(특히 HIV/AIDS, 말라리아, 폐결핵)을 제시하면서 밀레니엄 선언 및 1992년 이후 주요 유엔회의와 국제 협약의 결과에 대한 목표달성과 리우원칙의 이행을 다시 한번 천명하였습니다. 그리고 지속가능한 발전의 추구에 새로운 국면인 세계화가 그 편익 및 비용은 불균등하게 배분되었음을 인정하며, 이에 대하여 건전한 공치(Governance)를 증진하며, 기업 책임성을 장려하고, 국제 협력을 강화하도록 구체적인 조치를 취하도록 합의하였습니다. 특히 도하에서 합의된 신규 무역 라운드, 즉 도하개발의제(Doha Development Agenda : DDA, 2001년 11월 출범하여 농업, 서비스분야의 자유화와 무역장벽 철폐, 지적재산권협정(TRIPS), 지역 무역협정 추진 등을 포함)의 조치들이 지속가능한 발전에 기여할 필요성을 강조하였습니다. 한편, 이행계획의 초안에 포함된 의제들은 다음과 같습니다.

(1) 빈곤퇴치(Poverty Eradication), (2) 지속가능하지 못한 생산 및 소비패턴의 변화(에너지, 화학), (3) 천연자원의 지속가능한 관리(담수, 해양, 재난관리, 기후변화, 농업, 사막화, 생물다양성) (4) 세계화 속에서 지속가능한 개발, (5) 건강과 지속가능한 개발, (6) 군소도서국의 지속가능한 개발, (7) 아프리카의 지속가능한 개발, (8) 이행수단(무역, 재원, 기술이전 등), (9) 제도적 틀로서 지속가능개발을 위한 공치(Governance)

'이행계획'에 대하여 지금까지의 준비회의 기간까지 빈곤퇴치와 지속가능하지 못한 생산 및 소비패턴의 변화, 건강과 지속가능한 개발의 의제에 대해서 대체적으로 많은 합의를 이루었습니다. 빈곤퇴치에 있어 2015년까지 빈곤층과 안전한 물을 먹지 못하는 인구를 절반으로 감축, 빈곤층 위한 국가프로그램 개발과 여성지위의 향상에 대해서는 합의를 보았고, 건강과 지속가능한 개발의 의제에서는 2015년까지 5세 이하 어린이 사망률을 2000년 대비 2/3 수준으로 낮추고, 어린이 사망률과 관련하여 선진국과 개도국간 격차 해소, 청소년 에이즈 환자를 2010년까지(도심지역은 2005년까지) 25% 낮추는데 합의하였습니다. 한편, 지속가능한 소비와 생산의제에서는 오염자 부담원칙적용과 기업의 환경, 사회적 측면에 대한 책임강화(Corporate Accountability), 2004년 이내 화학물질협약 비준, 2008년까지 화학물질 분류, 표시제도(GHS)를 이행하는데 합의하였습니다.

그러나 이행계획에 대하여 남/북, 선진국/개발도상국, OECD가입국 내에서도 EU와 EU를 제외한 그룹(JUSCANZ), G77(개발도상국협의체)+중국 등이 각 사안별로 다양한 입장차리를 보이고 있습니다. 이로 인하여 전체의 25%가 준비회의에 합의되지 못하고 리우+10으로 넘겨진 상태이며, 특히 이 부분은 리우선언을 이행하는데 관건인 내용들인 이행수단에 따르는 재정문제, 무역과 세계화관련 이슈들이 차지하고 있다는 점에서 매우 심각한 문제입니다.



'지속가능성에 있어 악의 축' : 국가중심적 사고에서 비롯된 의지의 빈곤

먼저 지난 리우 선언에서 명시된 원칙중 2가지가 이행계획에서 선진국의 반대로 삽입되지 못하고 있습니다. 하나는 선진국이 지구환경에 끼진 영향과 그들의 기술 및 재정적 자원을 지속가능한 개발을 추구에 분담하여야 할 책임을 명시한 공통의 차별화된 책임(common but differentiated responsibilities)이며, 다른 하나는 환경의 보호/보전을 위해 각 국가의 능력에 따른 예방적 조치를 명시한 사전예방원칙입니다. 그리고 이행계획 서문에 '인권과 문화적 다양성'(human rights and cultural diversity)은 지속가능한 발전의 필수조건이다라는 내용을 포함시키는 문제 역시 합의되지 못하였습니다.

한편, 빈곤퇴치와 관련해서는 문제의 심각성과 중요성에 대해서는 쉽게 합의하였지만, 그 행동계획에 대해서는 다양한 의견을 보이고 있습니다. 특히 빈곤퇴치를 위한 세계연대기금(World Solidarity Fund) 설립을 개발도상국은 주장하였지만, 선진국은 기존 유엔기구들(UNDP, UNEP, World Bank)의 빈곤퇴치 프로그램과의 중복가능성을 들어 난색을 표명했습니다. 준비회의 기간중 강한 갈등을 보여온 재생에너지(renewable energy) 사용비율 확대 역시 유럽연합(EU)이 2010년까지 전세계 15% 확대를 주장한 반면, 미국과 사우디 아라비아는 반대했으며, 개발도상국은 목표연도 삭제 또는 목표이행을 선진국에만 국한 할 것 주장하였습니다. 그리고 2002년까지 교토의정서 발효를 위한 노력 등 기후변화에 대한 유엔 협약의 목표달성 문구 삽입 역시 난항을 겪고 있습니다.

이행계획에 대하여 합의하지 못한 사항은 특히 경제관련 이슈에서 가장 첨예하게 나타났는데, 경제관련 이슈 중 세계화 5%, 재정 11%, 무역은 15%만이 합의된 실정입니다.

세계화, 특히 지속가능 발전에 대한 WTO의 역할과 관련하여, 도하선언문에서는 이미 다자간 무역체제가 환경보전 및 지속가능개발과 서로 보완적이어야 한다고 명시된 것에 대하여 선진국은 이러한 수준을 유지하고자 하였지만 개발도상국들은 도하개발의제에서 포함되지 못했던 부분들을 요구하였습니다. 이행수단의 6개의 소주제(무역과 재원/기술이전/과학의 역할/교육/능력향상/의사결정을 위한 정보)중에서 가장 큰 의견대립을 보인 무역(trade)과 재정 분야는 외채문제의 해결, 무역자유화와 관세 및 보조금 철폐 등 WTO 도하선언의 이행문제, 선진국 GNP 0.7%(최빈 개발도상국에게 0.15~0.20% 제공)의 공적개발원조 제공문제를 포함한 지속가능발전을 위한 재원마련(FfD) 등의 문제에서 의견을 좁히지 못한 상태입니다.

일반적으로 이번 회의에 대하여 선진국들은 특히 교토의정서에 대해 탈퇴한 미국의 훼방처럼, 기한이 설정된(Time-bound) 목표에 대해 거부감을 가지고 있고 공적원조의 문제에서처럼 최대의 목표보다는 현실적으로 합의가 가능한 목표를 선호하고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선진국들이 도하의제와 몬테레이 합의수준을 옹호하려는 입장에서, 그간 세계화가 가져온 결과를 지속가능한 개발이 이루어지지 못하는 원인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세계화를 지속가능한 개발의 해결책으로 제시하고 있다는 점에서 우려의 수준을 넘어서고 있습니다.

리우+10과 한국의 시민사회

리우+10에 대하여 한국 시민사회는 2000년 7월부터 준비모임을 갖고 녹색연합, 환경연합, 여성환경연대, 한국여성단체연합, YMCA, 민주노총 등 40여 단체가 참여하여 2002년 3월 리우+10 한국 민간위원회(이하 민간위원회) 발족식을 가졌습니다. 민간위원회는 의제21의 이행상황을 평가하고, 지속가능발전의 관점에서 국가발전정책에 대한 평가와 정부정책의 변화를 촉구하고자 리우+10 회의의 주요 이슈에 대한 한국시민사회의 공동입장을 발표하고, 세계 NGO와 연대활동 강화하기 위하여 조직되었습니다. 그동안 동아시아 및 아시아와 태평양 지역회의에 참가하는 것은 물론, 세계차원의 준비회의에도 참가하여 리우+10회의의 준비과정에 대한 모니터링과 한국 입장을 반영하고자 하였습니다. 그 결과 아시아 태평양 지역회의에서 여성이슈의 정식문서화를 이루어 내기도 하였습니다.

이번 리우+10회의에 대하여 민간위원회는 이행계획에 대한 민간위원회의 입장을 마련하였습니다. 민간위원회는 특히 공통의 차별화된 원칙(리우선언 제7조)과 '사전예방의 원칙'(리우선언 제 15조)이 기본원칙으로 재확인되어야 함을 강조하였고, 신자유주의적 세계화가 바로 지속가능한 개발이 실패하고 있는 원인이며, 이에 따라 다국적 기업에 대한 규제의 논의가 이번 리우+10에서 이루어져야함을 강조하였습니다. 아직 합의되지 못한 세계화에 대한 부정적 측면의 문구 삽입과 사전예방의 원칙 준수, 해외직접투자에 있어 공익성에 기초한 투자대상국의 규제권리 인정 등, 세계화 속에서 지속가능한 개발을 위한 의제를 적극적으로 옹호하였고, 선진국의 책임있는 자세를 촉구하였습니다. 또한 다양한 분야의 여성참여가 지속가능한 개발에 중심과제인 것을 환기시키고, 지속가능한 개발의 핵심인 빈곤퇴치를 위한 세계빈곤기금의 설립을 지지하는 등 리우+10에 대한 한국시민사회의 입장을 마련하였습니다.

리우+10은 환경, 개발, 인권을 바탕으로 지구촌의 지속가능성을 재성찰하는 계기로 자리매김되어야 합니다. 일부 NGO들은 리우+10 준비과정에서 보이콧을 주장하기도 하였습니다. 보편적 가치와 철학에 기초하지 못한 논의들 속에서 우리의 미래는 마치 최근의 기상이변처럼 불안정하기만 합니다. 21세기를 시작하는 즈음에 우리는 과연 다음세대에게 무엇을 남겨줄 수 있을까요?

관련사이트

  • WSSD the official United Nations website
  • 유엔지속개발위원회
  • UN Global Environment Facility
  • 유엔 환경 프로그램
  • stakeholder Froum`s Earth Summit 2002
  • Civil Society preparation for the Johannesburg Summit
  • 4차 준비회의 민간포럼
  • 리우+10 한국 민간위원회
  • 환경운동연합
  • 투자협정 WTO반대 국민행동
  • 환경부
  • 외교통상부
    양영미
  • Posted by 영기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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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녕하세요? 국제연대위원회입니다. 호우로 인하여 많은 피해가 발생하였습니다. 주위사람들에게 안부전화 어떨까요? 자연앞에서 인간은 작게만 보입니다. 우리가, 아니 전세계가 해마다 겪는 이러한 자연재난이 혹시 우리 탓은 아닐까하는 생각도 해봅니다. 인간들이 황폐화시켜버린 지구. 지구는 어쩌면 자정능력을 점점 상실해가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오늘은 이러한 문제를 고민해보고자 합니다. '환경'과 인간의 '개발', 이 둘의 조화를 위한 지구적인 노력들에 대해서 말입니다.

    유엔 환경개발회의가 남긴 것

    1972년 스톡홀름에서 유엔 인간환경회의를 통하여 환경문제가 지구적 의제로 인식된 이후, 1984년 환경과 개발에 관한 세계 위원회가 발표한 '우리 공동의 미래(Our Common Future)'에서 제시된 '지속가능한 개발(Sustainable Development : 미래세대의 충족분에 손상을 주지 않으면서 현세대의 필요를 충족시키는 개발)' 개념이 범세계적으로 확산되면서 환경문제는 본격적으로 경제개발 및 선진국-개발도상국 문제와 연계되어 논의되었습니다. 이러한 논의의 연장선상에서 유엔은 1992년 역사상 최대 규모의 유엔 환경개발회의(United Nations Conference on Environment & Development : UNCED, 일명 Earth Summit, 리우회의)가 개최되었고, 향후 지구환경보전을 위한 지구적 차원의 협력을 위하여 '환경과 발전에 관한 리우선언''의제21'을 채택하였습니다. "인간은 지속가능한 개발의 고려에 있어 그 중심이며, 자연과의 조화 속에서 건강하고 생산적인 삶을 향유하여야 한다"고 명시한 리우선언에 대한 실천강령으로서 의제21은 사회경제부문과 환경부문에서의 이슈들과 지속가능한 개발을 위한 주요 그룹(여성, 아동, 원주민, 민간단체, 지방정부, 노동자와 노동조합, 기업과 산업계, 과학기술, 농민)의 역할강화의 문제, 그리고 이행수단에 대하여 제시하였습니다.

    리우회의는 '환경'과 '개발'의 통합적인 인식을 바탕으로 환경의 보전과 개발에 대한 전지구적 차원의 관리와 협력을 위한 국가, 시민사회의 노력을 천명하였다는 점에서 매우 뜻깊은 회의였습니다. 끊어진 철로위를 질주하던 '개발'(발전)이라는 기관차는 이제 '지속가능성'이라는 철로위에서 새롭게 달려야한다는 점을 지구촌 모두가 인정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의제21은 9개의 주요그룹의 참여를 권고하였다는 점에서 지구적 문제에 대한 지구적 공치(global governance)의 중요성을 환기시켰다는 성과도 있습니다.

    이러한 문제의식에 따른 결과로서 '산림원칙 선언'을 채택하였고, 구체적인 국제환경규약인 '기후변화협약'(The Framework Convention on Climate Change: FCCC), '생물다양성협약'(Convention on Biological Diversity), '사막화방지협약'(Convention to Combat Desertification)이 발효되었습니다. 또한, 리우회의는 의제21에 대한 각국의 추진사항을 평가하고 관리하기 위한 목적으로 지속가능발전위원회(Commission on Sustainable Development : UNCSD)를 설치키로 권고하여, 1992년 제47차 유엔총회를 거쳐 유엔경제사회이사회 산하에 지속가능발전위원회를 설치하였습니다(우리나라에는 대통령자문기구로 지속가능발전위원회가 있습니다).



    리우회의로부터 10년 : 빈곤과 개발의 딜렘마

    리우회의 이후 유엔은 우리가 이미 살펴본 몇몇 회의를 포함하여 일련의 회의들을 개최하였습니다. 인권(1993), 인구와 발전(1994), 사회발전(1995), 여성(1995), 정주권(1996), 식량(1997)문제들에 대한 회의와 유엔 밀레니엄 정상회의(2000), 인종차별철폐회의(2001), 개발재원회의(2002), 고령화회의(2002) 등이 그것입니다. 이 흐름은 각각의 회의들이 5년후 이행평가를 하는 +5회의에 이어 밀레니엄 총회에서 종합되었고, 이제 다시 +10의 회의(우리가 이번 WSSD를 리우+10으로 약칭하는 이유는 여기에 있습니다)로 나아가는 양상입니다. 이러한 유엔의 회의를 관통하여 흐르고 있는 주된 문제는 바로 리우회의에서 강조된 지속가능한 개발입니다. 각각의 회의들은 독자성을 유지하지만 '환경과 개발', '인구와 발전', '사회발전' 등 주요 회의에서 보여지듯 개발의 문제는 세계화와 함께 1990년대를 관통하는 키워드였습니다. 하지만 리우회의가 이후 지난 10년의 모습은 우리에게 과연 '지속가능한 개발'이었나?라는 질문을 던지게 만들었습니다.

    1997년 리우회의의 이행에 대한 평가를 위한 제 19차 유엔 환경특별총회(Earth Summit II, 리우+5)는 리우회의 이후 5년간의 진행에 대하여 매우 부정적인 평가를 내렸습니다. 삼림파괴의 방지에 대한 노력 역시 그다지 개선된 점이 없습니다. 가장 급속하게 삼림이 사라지는 지역은 아시아, 환태평양의 열대우림지역인데, 이곳은 상업용 벌채산업이 왕성하기 때문입니다. 개발도상국은 벌채산업으로 인한 경제이익을 외면할 수 없는 상황에서, 환경파괴의 주된 요인인 빈곤상황은 더욱 악화되었고 선진국은 이를 외면하였습니다(1994년 연구결과에 의하면, 가장 외채가 많은 15개 개발도상국들의 삼림파괴의 정도는 외채위기가 시작된 1970년대말에 비해 3배나 악화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리우회의 당시 154개국이 서명한 기후변화협약은 1993년 50개국이 비준하면서 발효되었습니다. 기후변화협약은 온실가스 배출을 2000년까지 1990년 수준으로 감축하기 위해 노력하고, 개도국에는 협약 이행을 위한 재정 및 기술적 지원을 제공할 것을 약속하였습니다. 1997년 일본 쿄토에서 열린 제3차 당사국 회의에서 규제대상 온실가스를 6가지로 확정짓고, 3차에 걸쳐 단계적으로 온실가스 감소목표를 설정할 것을 내용으로 하는 쿄토의정서(Kyoto Protocol)를 채택하였습니다. 교토의정서는 최초로 온실가스 배출규제를 법적으로 구속하였다는데 의의가 있으나, 부시행정부는 2001년 3월 교토의정서 이행에 대한 파기를 공식 선언하여 실효성에 근본적 타격을 가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한편, 비준국들의 생물다양성에 대한 보존 및 지속 가능한 사용을 위한 국가별 전략을 수립, 이에 근거한 정책입안 등의 내용을 포함하고 있는 생물다양성 협약 역시 이행의 강제성과 구체적인 내용을 발전시키지 못하고 있습니다.

    환경부분에 관한 이행과 더불어 개발에 대한 부분 역시 기대치를 충족시키지 못하였습니다. 사회개발정상회의의 후속조치를 논의하기 위해 열린 유엔 사회개발 특별총회(+5회의)에서 채택된 빈곤퇴치 감소계획은 2000년 9월 유엔 밀레니엄 총회에서도 논의되어 현재 세계 12억명으로 추산되는 하루 1달러 미만으로 생존하는 세계 빈곤 인구를 2015년까지 절반으로 줄이고, 선진국은 국내총생산(GNP) 0.7%를 공적개발원조(Official Development Assistance: ODA)에 제공하기로 합의하였습니다. 이러한 빈곤퇴치와 개발문제는 올해 3월 멕시코 몬테레이에서 열린 '유엔 개발재원 회의'를 통해 보다 구체적으로 논의되었습니다. 그러나 지속적인 개발문제에 있어 선진국은 개발 당사국의 개발 책임과 투자환경 조성을 우선시하고, 개발도상국에 대한 선진국들의 공적개발원조는 갈수록 줄어들고 환경기술이전은 아무런 진전을 보지 못하였습니다. 선진 22개국의 대외원조 규모를 현재(537억 달러)의 2배로 늘려야 한다는 코피 아난 유엔 사무총장의 지적에도 불구하고, 유럽연합은 국민총생산(GNP)의 0.39%를 공적개발원조로 제공할 예정이고 미국은 0.1%에 머물고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우리는 지난 10년간 급물살을 타고 있는 세계화 물결을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무역과 투자 자유화조치를 중심으로 전개되는 경제적 세계화는 지속가능한 개발을 원천봉쇄하고 있습니다. 신자유주의적 세계화는 임업, 어업, 목축업 등에서 규제완화를 추구하므로 환경악화 요인에 대한 제한이 더욱 힘들어지게되며, 지적재산권 보호에 따라 환경보호기술의 이전은 더욱 어렵게 될 것은 분명합니다. 또한 농업은 어떠합니까? 무역자유화와 농업의 세계화가 식량생산의 효율성을 높인다는 선진국의 주장은 거짓으로 드러났습니다. 멕시코의 경우 구조조정과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 가입이후 주생산곡물인 옥수수는 미국으로부터 수입하게 되었고, 국민 1인당 평균 음식섭취량은 29%나 줄었습니다. 그리고 개발도상국들은 외채를 갚기 위해 천연자원의 수출, 자원개발, 공해산업을 유치하게 됨으로 인하여 외채문제는 개발도상국들로 하여금 환경보존과 발전의 양립가능성을 애초부터 가로막고 있습니다.

    리우회의 이후 유엔의 움직임은 1980년대 전세계적인 경기침체이후 탈냉전과 제3세계의 민주화와 각종 분쟁의 분출이라는 정세 속에서 인류사회가 직면한 기후변화와 사막화, 오존층 파괴 및 생태계의 파괴, 자원고갈과 각종 유해폐기물, 빈곤과 질병, 식량 및 기아 등의 문제들을 해결하고 지속가능한 개발을 위해 지구촌이 공동으로 대처하자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살펴본 바로는 의제21에 대한 진지한 성찰은 '세계화'라는 돌풍이 삼켜버렸습니다.

    이제 곧(8.26∼9.4) 남아공의 요하네스버그에서는 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한 세계정상회의(World Summit on Sustainable Development : WSSD, 리우+10)가 개최될 예정입니다. 다음주에는 유엔의 첫 번째 +10회의인 지속가능발전 세계정상회의의 준비과정에서 드러난 경향들을 짚어보고 과연 '지속가능한 개발'을 위한 재성찰의 계기가 될 수 있을지 전망해보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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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녕하세요? 참여연대 국제연대위원회입니다. 어느덧 지구촌 소식이 10호를 넘어섰군요. 8월에는 8월말(8.26∼9.4) 개최 예정인 "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한 세계정상회의"(World Summit for Sustainable Development : WSSD)와 유엔 개혁을 마지막으로 유엔시리즈를 마무리하려고 합니다. 유엔시리즈 이후에는 우려의 수준을 넘어서는 미국의 일방주의적 행동에 대한 지속적인 모니터링과 그동안 소개되지 못한 다양한 이슈들 및 국제연대활동들을 가지고 여러분을 찾아뵙고자 합니다. 오늘은 9.11테러의 불길한 징조를 알렸던 2001년 더반 인종회의를 소개합니다.

    유엔에서의 인종문제

    유엔은 인종차별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 1966년 '모든 형태의 인종차별 철폐에 관한 국제협약'(International Convention on the Elimination of All Forms of Racial Discrimination: CERD, 대한민국 적용일 1979년)을 채택한바 있습니다. '인종차별'을 "인종, 피부색, 계통 또는 민족이나 종족의 기원에 근거를 둔 어떠한 구별, 배척, 제한, 우선권을 주는 것으로, 이는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또는 기타 어떠한 공공생활의 분야에 있어서든 평등하게 인권과 기본적 자유의 인정, 향유 또는 그 행사를 무효화시키거나 침해할 목적 또는 효과를 가지는 경우"로 규정하고, 국가뿐만이 아닌, 개인이나 집단에 의한 차별대우 역시 금지하며 시민·정치적 권리(civil and political rights)와 경제ㆍ사회ㆍ문화적 권리(economic, social and cultural rights)의 보장을 핵심 내용으로 하고 있습니다.

    또한 유엔은 '인종주의와 인종차별에 대항하는 10년 계획'을 3차례 설정하고, 1978년과 1983년 두차례에 걸쳐 인종차별 철폐대회를 개최한바 있습니다. 당시 유엔에 있어 인종문제는 단연 국가차원에서 인종차별정책을 실시했던 남아공의 아파르트헤이트(apartheid)였습니다. 아파르트헤이트는 1994년 남아공에서 만델라 정권이 출범하면서 '공식적'으로 사라지게 되었습니다. 이후, 탈냉전의 시대에 분출된 인종간 분쟁과 이주민, 난민 등의 문제에 대처하기 위하여 1997년 52차 유엔총회에서 인종차별 철폐대회의 개최를 결의하여 2001년에 더반 인종차별철폐회의가 열리게 되었습니다.



    더반 인종차별철폐회의(WCAR, duban, 2001)

    공식 회의 명은 '인종주의, 인종차별, 외국인혐오 및 이와 관련된 불관용 철폐를 위한 세계회의'(World Conference Against Racism, Racial Discrimination, Xenophobia and Related Intolerance, Duban)인 더반 인종차별철폐회의는 NGO활동가 5천여명을 비롯한 1만 5천명이 참가하여 5개의 주제로 진행되었습니다.

    1. 인종주의와 인종차별 그리고 이와 관련된 불관용의 재료(Sources), 원인(cause), 형태들과 현대적인 표현들(contemporary manifestations)

    2. 인종주의와 인종차별 그리고 이와 관련된 불관용의 희생자들

    3. 국가, 지역, 국제적 차원에서 인종주의와 인종차별 그리고 이와 관련된 불관용의 제거를 목적으로 하는 보호, 교육, 예방의 방법들

    4. 국가, 지역, 국제적 차원에서 효과적인 개선책, 자원, 교정, 보상을 위한 제공

    5. 인종주의와 인종차별 그리고 외국인 혐오주의와 싸우기 위한 유엔과 국제기구들의 전략

    개최결정이후 4년만에 열린 인종차별철폐회의는 그만큼 인종문제가 첨예하고 국가 안팎으로 얼마나 민감한 문제인지를 보여준 것이었습니다. 회의개최를 위한 3차례의 준비회의 속에서 많은 부분이 합의되지 못하고 본회의로 넘겨졌는데, 가장 쟁점이 된 사안은 △ 아프리카 노예제·노예무역 등 과거식민지 정책에 대한 사과와 배상, △ 이스라엘의 시오니즘을 인종주의로 규정할 것인가의 문제를 포함한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 △ 인도 카스트제도와 달릿(Dalits, 인도와 스리랑카 등 인도지역에 약 2억 6천만명으로 추정되는 카스트 제도에 의해 차별받는 집단. 흔히 불가촉 천민(Untouchable people)으로 불리기도 함) 문제였습니다.



    더반회의의 빛과 그림자

    선언초안작성을 위한 실무분과와 행동계획 초안작업을 위한 실무분과는 회의가 시작된지 나흘이 지나도록 '의사진행 발언'에 밀려 별다른 진전을 보이지 않는 가운데, 미국과 이스라엘의 대표단이 "증오에 가득찬 문구, 아랍권에 공중납치된 더반회의"라고 말하며 회의장에서 퇴장해 버리는 어처구니없는 사건이 발생하였습니다. 결국 매우 어수선한 분위기에서 아프리카를 대변한 주최국 남아공과 미국의 철수로 강경한 입장을 보였던 유럽연합이 극적으로 타협을 함으로서, 일정보다 하루가 늦게 가까스로 선언문과 행동계획이 채택되었습니다.

    △ 과거식민지 정책에 대한 사과와 배상

    노예제도와 관련, 과거 노예거래에 따른 배상 및 사과요구는 받아들여지지 못하고, 다만 노예제도 및 노예거래가 반인도 범죄(crime against humanity)라고 규정하는 선에서 타협되었습니다. 이는 아프리카국가들이 노예제도 등에 대해 명확한 사과 및 배상 등을 요구하고, 이에 맞서 프랑스 등 유럽국가들이 미국의 철수에 이어 추가철수를 경고하는 등의 진통 속에서 합의된 것이었습니다. 노예제도 피해 당사자들에 대해 "인류역사에서의 끔직한 비극이었음을 인정"하고, 모든 당사국들이 노예거래 철폐 등을 위해 효과적인 조치를 취할 도덕적 의무가 있음을 분명히 하는 한편, 국제사회가 제3세계의 사회. 경제발전을 위한 프로그램을 개발할 필요성이 있다고 강조하여, 노예제도로 피해를 입은 일부 후진국에 대한 지원근거를 명문화했습니다.

    △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

    이스라엘의 시오니즘을 인종주의로 규정할 것인가와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에 대한 대량학살의 문제는 양쪽의 평화적 대화재개를 희망하는 수준으로 타결되었습니다. 주최국인 남아프리카공화국이 제안한 타협안을 기초로 하여 팔레스타인인들의 "양도할 수 없는 자결권과 독립국 건설권한"을 인정하고, 이스라엘을 비롯한 중동지역의 모든 국가들의 `안보권'이 인정돼야 한다는 점을 분명히 하면서도 이스라엘에 대해서는 명시적인 비난을 자제, 논란을 최소화했습니다.

    △ 달릿 문제

    달릿과 카스트제도의 문제는 초안에 "직업과 출신에 기반한 차별을 철폐해야"한다는 희미한 문구로 달릿문제가 언급되었지만, 인도의 강력한 반대와 이를 방관한 국가들의 타협으로 이 문구조차도 삭제되었습니다.

    선언문은 이들 현안 외에도 외국인 차별, 식민주의, 세계화, 여성 및 어린이문제, 이민, 소수민족 단체, 에이즈 등에 대해서도 포괄적으로 언급하며 앞으로 이들 문제에 대해 지속적인 관심을 기울이기로 하였습니다.



    21세기 첫 유엔회의의 풍경 : 유엔회의의 한계와 가능성의 곡예

    더번회의는 노예 및 식민주의 문제가 국제사회의 공식 문건으로 채택되었다는 점에서 일단 노예거래의 재발방지 및 예방을 위한 의지가 천명된 의의가 있습니다. 하지만 메리 로빈슨 유엔 인종차별철폐회의 사무총장의 말처럼 "더반 회의의 진정한 성과는 앞으로 각국 정부가 인종차별과 맞서 싸우기로 한 공약을 어떻게 실천에 옮기는 가에 따라 확인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러한 점에서 더번회의는 몇몇 성과에도 불구하고 인종문제 해결에 대한 전망이 그리 밝지 않습니다. 일부 중동국가가 이스라엘에 대한 직접적인 비난이 배제됐다며 합의안수용을 유보했으며 호주와 캐나다 역시 중동문제 타협안에 대해 일부불만을 표시하기도 하였고, 무엇보다도 회의도중 미국과 이스라엘 대표단이 퇴장하는 등 참가들의 첨예한 이해 대립으로 의미가 퇴색되었습니다.

    아랍국가들은 이스라엘에 의한 팔레스타인 지역 군사점령과 통치를 인종주의이자 '새로운 형태의 아파르트헤이트'로 비난하면서 더 나아가 이스라엘의 시오니즘을 인종주의로 규정하고, 이스라엘 군대에 의한 팔레스타인 민간인 학살을 '종족청소' 또는 '대량학살'(genocide)로 규정하며 강한 비난을 하였습니다. 회의 전부터 이러한 분위기에 대하여 불편했던 미국은 정부 분담금도 내지 않고(!), 참여결정도 유보하였지만 유엔 인권위원회와 남아공의 중재를 받아들여 남아공주재 대사를 참가시켰습니다. 하지만, 회의가 진행될수록 점차적으로 반미, 반이스라엘 분위기가 고조되자 결국 회의 개막 3일만에 철수를 결정했던 것입니다. 1947년 유엔 팔레스타인 특별위원회가 설치되어 팔레스타인 문제를 해결하고자 했던 노력들 속에서 팔레스타인의 자결권에 대한 인정은 지속적으로 확인되었지만, 유엔 안정보장이사회에서 이러한 내용의 결의안에 대해 미국은 거부권행사로 일관해왔습니다. 중동지역에 있어 자신의 독점권을 결코 포기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NGO포럼의 문제와 NGO간의 갈등 심화

    NGO포럼도 많은 문제를 드러냈습니다. 1990년대 유엔의 국제회의가 그랬듯이 더반에서도 NGO포럼이 열렸는데, 정치적으로 민감한 문제를 포함하여 포럼진행을 맡은 준비위원회와 NGO사이에서 갈등과 분열이 나타났습니다. 전체 포럼을 주도한 NGO국제운영위원회와 남아공의 준비위원회(SANGOCO) 및 주요 국제 NGO사이에도 이슈와 포럼의 내용, 역할과 방향을 둘러싼 긴장이 계속되었습니다.

    한편 한국의 참가단(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이주, 여성인권연대, 인권운동사랑방, 평등노조 이주노동자지부가 참가)은 한국의 인종차별 문제에 대하여 이주노동자, 난민, 인신매매와 혼혈아동의 문제 및 일본의 역사왜곡과 군국주의 부활에 대한 활동 등을 벌였습니다.

    1990년대 이후 시민사회 영역을 NGO의 틀로 적극적으로 영입했던 유엔의 회의들은 복합적이고 다차원적인 지구적 문제들을 제기하고 일정한 국제적 규범을 형성했다는 점에서는 매우 소중한 성과였습니다. 하지만 회의 이후 선언과 행동계획에 대한 국가의 불성실한 이행과 해를 거듭할수록 심화되는 NGO에 대한 배제, 주권과 국익에 의해 움직이는 정부대표들의 행태와 강대국의 힘의 논리가 관철되는 유엔의 구조 속에서 그간의 노력이 '사문화'될 우려를 금할 수 없습니다. 이러한 우려는 더번회의 직후 터진 9.11테러와 미국의 '일방주의적인 군사노선', 올해 봄부터 시작된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에 대한 야만적 행위들 속에서 잘 드러나고 있습니다. 그동안의 노력이 마치 바닷가의 모래성처럼 씻겨버리는 것을 방지하자면 지구촌 시민사회는 국가와 국제기구, 시민사회내부 등 다양한 수준에서의 실천을 요구받고 있습니다.

    이제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질 때입니다. "무엇을 할 것인가?( What is to be do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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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더위에 건강하세요? 쉽게 짜증내고 화낼 만한 날씨입니다. 마음의 평화를 찾는 것이 제일 중요하겠지요. 몸도 마음도 건강하시기 바랍니다. 오늘은 최근에 가장 첨예한 갈등을 빚고 있는 개발에 관한 문제를 살펴보고자 합니다.

    개발(발전)권이란?

    개발권은 1986년 '발전을 위한 권리 선언'을 통하여 그동안 세계인권선언에서 추상적 지향이었던 것이 비로소 구체적인 권리로 인정되었습니다. "포괄적인 경제·사회·문화·정치적 과정으로서, 개발과 그로부터 산출되는 이익의 공정한 분배에 있어서 자유롭고 적극적이며 의미 있는 참여의 기초 위에서 전 인구와 모든 개인들의 복지의 부단한 향상을 목표로 하는 것"으로 규정되는 개발권은 인권을 좀더 거시적이고 경제, 사회 구조적인 측면으로 접근하려는 시도라고 하겠습니다. 즉 개발은 단순한 경제성장이 아닌 인간이 중심이 되는 개발이어야 함을 강조한 것입니다.

    이러한 개발권의 개념은 자유주의 철학을 바탕으로 한 브레튼우즈체제와는 달리 국제경제 질서 재편을 통한 개발도상국의 이익을 대변하기 위해 결성된 유엔 무역개발회의(UNCTAD)의 창설에서도 같은 맥락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개발(발전)에 대한 논의는 제2차 세계대전 전후 식민지 국가들의 독립과정에서 제기되었고, 이후 1990년대 초반 탈냉전시대를 맞아 개발로 인하여 야기된 빈곤과 실업, 환경파괴, 각종 사회적 문제들에 대한 종합적인 진단이 요청되었습니다. 이를 위하여 개최된 회의가 사회발전을 위한 세계정상회의(World Summit for Social Development, Copenhagen, 1995)였습니다.



    사회발전을 위한 세계정상회의

    1991년에 처음 제기된 이래로 1992년 유엔안전보장이사회 및 자카르타 비동맹 정상회의 지지를 거쳐 유엔총회에서 개최가 결정되었습니다. 유엔 총회의 결정에 따라 1995년 3월 덴마크 코펜하겐에서 118개국 정상을 포함하여 180여개국 정부수반들과 2000여개 민간단체들이 참석한 가운데 개최된 사회발전정상회의는 사회개발에 유리한 환경조성, 빈곤퇴치, 생산적 고용의 증대, 사회적 통합의 강화에 대한 광범위하고 높은 수준의 합의를 이끌어 내는 것이 목적이었습니다. 이러한 발상은 최우선적으로 인간의 기본적 욕구 충족과 인간중심의 발전이라는 전제를 깔고 있습니다. 즉, 개발에 의한 인간안보(human security) 보장을 사회발전의 중심축으로 설정하자는 것입니다(인간안보의 개념은 음식, 주택, 물, 의료에서부터 민주주의, 법의 지배, 고용과 소득, 오염 방지, 종교자유, 범죄까지 매우 폭 넓은 개념입니다).

    이에 대하여 민간단체들은 보다 구체적이고 강제력있는 내용을 제시하였습니다. ILO와 기존 인권규약의 비준, 유엔 경제사회이사회 강화, 투기성 거래의 통제, 빈국에 대한 국제적 금융지원과 20:20원칙(해외 원조 기금과 국가 재정의 20%를 교육, 보건, 빈곤퇴치, 여성지위 향상 등에 투자하는 것을 제도화) 적용 등이었습니다. 이를 위하여 기존의 국제규약에 대한 비준을 촉구하고, 경제사회이사회에 의한 국제 금융기구 감독과 경제안전보장이사회의 구성안, 국제 금용시장과 실물시장에서의 투기성 거래에 대한 세금부과, 투자기금 강제예탁제, 금융거래 보고체제 수립안을 제시하였습니다.



    80:20으로 갈라진 세계 : 선진국과 개발도상국의 갈등

    하지만 사회발전정상회의는 선진국과 개발도상국의 갈등으로 인하여 폭넓은 사회발전에 대한 논의가 진행되지는 못하였습니다. 개발도상국은 주로 외채탕감과 빈곤, 원조증액에 대하여 관심을 앞세워 사회발전의 문제를 단지 경제적인 문제로만 접근하였습니다. 또한 사회발전의 문제는 경제발전이 우선적으로 해결되어야 한다는 귀에 익은 이야기를 되풀이했습니다. 한편 선진국들은 개발도상국에 대한 지원강화의 원칙엔 찬성하면서도 그 구체적인 실천에 대해서는 분명한 태도를 보이지 않았습니다. GNP의 0.7%를 해외원조에 제공하라는 유엔의 권고를 지키는 국가는 3∼4개국에 불과합니다. 이러한 해외 원조 증액에 대해서 선진국들은 자국내 동의를 얻기 힘들다는 정치적 판단으로, 개발도상국에 대하여 개발도상국의 인권상황과 당사국의 책임을 강조하며 WTO체제에 대한 옹호와 시장경제적 해결을 앞세웠습니다.

    이와 같은 갈등은 개발도상국 인구의 3분의 1이 절대빈곤상태에 있으며, 전세계적으로 1억 2천만의 실업과 7억의 성인이 최저생계비 이하의 급여를 받는다는 현실을 보았을때, 저개발국의 빈곤문제와 개발도상국을 압박하는 세계경제체제가 커다란 문제였다는 점을 반증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이유로 '신자유주의적 세계화'의 문제와 IMF에 의한 구조조정계획은 사회발전회의를 둘러싼 논쟁의 중심일 수밖에 없습니다. 이러한 문제에 대하여 선진국, 개발도상국, 민간단체간의 설전이 벌어졌는데, 결론은 전후 반세기를 지배해온 브레튼우즈기관들에 대한 유엔의 감독으로 귀결되었습니다. 결국 사회발전정상회의에서는 기존의 구조조정이 갖는 해로운 사회적 결과 및 사회적 책임성과 연관성을 갖는 구조조정 계획의 필요성을 문안에 삽입하고 유엔과 브레턴우즈기관 사이의 조정 증대 및 구조조정 계획의 수립과정에 ILO 등 유엔 기관들과 민간단체들의 '참여보장'이 중요하다라는 합의를 도출하였습니다.



    성장인가, 혹은 인간중심의 개발인가 : 긴장의 지속

    사회발전정상회의에서 채택된 코펜하겐 사회발전선언과 행동계획(Copenhagen Declaration on Social Development and Programme of Action)은 발전의 목표가 인간중심이어야 하고, 빈곤퇴치, 완전고용, 사회적 책임성을 수반하는 구조조정, 발전의 과정에서 여성의 중심적 역할과 시민사회의 적극적인 참여 등을 강조한 점에서 의의를 갖습니다. 무엇보다도 유엔이 외채, 구조조정, 무역불평등 같은 국제경제의 문제를 비교적 비판적으로 수용했다는 점에서 글로벌 거버넌스를 향한 성과라 하겠습니다(이와 관련 초국적 기업을 글로벌 거버넌스의 틀에 끌어들이기 위하여 2002년 7월 가나에서 Global Compact가 공식 출범하였습니다).

    그러나 인간중심의 발전은 아직도 미완의 과제로 남아있습니다. 사회개발정상회의 이후 유엔은 빈곤 퇴치를 위해 유엔 밀레니엄 정상회의에서 '세계의 빈곤자 수를 2015년까지 현재의 절반 수준으로 낮추겠다'고 선언하였고, 2002년 3월 멕시코에서 개발도상국 개발 재원 문제를 논의하는 최초의 유엔 회의인 '유엔 개발재원 회의'를 개최, 빈부격차를 확대한 세계화에 대한 비판과 개발도상국 개발을 위한 방안을 논의하였습니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과제였던 빈국 지원의 재원 확대는 기대에 미치지 못했는데, 특히 유엔 밀레니엄 정상회의에서 합의한 바 있는 선진국 GNP의 0.7% 지원은 미국 등의 반대로 삭제되었습니다! 더욱이 남미와 아프리카의 외채문제, 사회개발정상회의 이후 불어닥친 동남아의 금융위기, 이로 인한 인간파괴와 사회파편화의 문제 등에 대한 유엔의 무기력한 대응은 글로벌 거버넌스의 한 틀로써 유엔의 입지를 왜소하게 만들었습니다. 따라서 유엔의 민주화와 개혁, 이를 통한 국제 경제기구들에 대한 개입은 외면할 수 없는 과제입니다.(우리는 이와 관련 제 3세계문제를 주로 부각시켰던 유엔무역개발협력기구에 대한 '구조조정'이라는 역사를 되풀이해서는 안되겠습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이러한 세계화에 대한 반대와 인간의 얼굴을 한 글로벌 거버넌스를 향한 뜨거운 움직임이 있음에 희망이 있습니다. 즉 외채탕감 운동인 '주빌리2000''주빌리 사우스(jubilee south)'의 캠페인', 투기자본 통제를 위한 토빈세 과세운동(국제자본거래에 대한 과세와 이를 통해 확보된 세원으로 국제적 공공재화 확보, 극빈국 외채 탕감을 주장)과 다보스 세계경제포럼에 대항하여 '또다른 세계는 가능하다(Another Wold is Possible!)'는 모토아래 모인 '세계사회포럼(World Social Forum)' 등 밑으로부터의 움직임은 국가, 국제기구, 초국적 기업, 지구촌 시민사회간의 상호작용을 통하여 '인간의 얼굴을 한 글로벌 거버넌스'로 나아가는 또하나의 축이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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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녕하세요? 중복도 지난 여름의 한가운데입니다. 많이 덥습니다. 국제연대위원회입니다. 오늘은 지난주에 이어서 유엔과 인권문제에 대해 1993년 비엔나 세계인권대회와 올해 열린 58차 유엔 인권위원회를 중심으로 살펴보고자 합니다. 다음에는 개발(발전)권에 대하여 알아볼 예정입니다.

    1993년 비엔나 세계 인권대회(World Conference on Human Rights, Vienna, 1993)

    세계인권선언 20주년을 맞아 열린 테헤란 세계인권회의 이후 25년 만에 열린 비엔나 세계 인권대회는 1990년대 초 탈냉전과 인종, 민족, 종교간 갈등과 분쟁, 이로 인한 대량 학살과 난민발생, 빈곤 등 새로운 국제질서 속에서 인권규범의 재확립을 위한 노력의 결실이었습니다. 비엔나 세계인권대회는 1990년 12월 유엔 총회결의를 통하여

    ◎ 세계인권선언 채택 이후 인권분야에서 진보를 검토·평가하고,

    ◎ 경제,사회,문화적 권리와 시민,정치적 권리와 발전(개발) 사이의 관계를 검토하며,

    ◎ 현재의 인권기준 및 인권제도의 개선방법을 검토하고,

    ◎ 인권관련 유엔활동의 효율성을 위한 권고를 하며,

    ◎ 유엔의 인권관련활동에 필요한 재정확보를 위한 권고를 위해 개최되었습니다.

    4차례의 준비회의와 아프리카와 중남미, 아시아 지역에서 지역별로 준비회의를 통하여, 특히 국제사면위원회(Amnesty International)나 오월광장 어머니회(아르헨티나 실종자가족 단체)같은 인권단체들의 헌신적인 노력으로 1993년 6월 14일부터 25일까지 171개 정부대표, 11개 유엔인권기구, 10개 유엔전문기구, 24개 국가인권기구, 800개 NGO 등 70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본회의(정부간 회의)와 NGO포럼, 부대행사들이 열렸습니다.



    주요쟁점 : 인권개념에 대한 논쟁과 인권보호 관련 상설기구 설치

    § 인권의 보편성(universality)과 불가분성(indivisibility)

    비엔나 세계인권대회에서의 주요 쟁점은 인권의 개념에 대한 것이었습니다. 이것은 지역별 준비회의에서도 드러났는데, 특히 아시아지역회의의 반응은 격렬하였습니다. 중국, 인도네시아, 말레이지아, 싱가폴, 시리아, 예멘 등 아시아 지역국가들은 국가주권의 불가침과 내정간섭 금지의 원칙, 그리고 역사, 문화, 종교 등의 전통을 존중해야 한다는 점에서 인권의 보편성과 불가분성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을 확고히 하였습니다. 이러한 국가들은 국제질서를 주도하는 선진국이 인권문제를 매개로 제3세계에 대하여 통제를 강화하려는 의도라고 주장하였지만, 이들 대부분의 국가에서 자행되었던 인권침해를 은폐하고 국제사회의 비난을 피하려는 의도에서 주권침해와 인권개념의 적용에 있어 특수성을 강조한 점에서 이러한 나라들의 주장은 설득력이 없다고 하겠습니다.

    인권의 불가분성은 정치적 권리나 경제적 인권의 사이에 선택적으로 보장되는 것이 아닌 통합적인 권리라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에 대해서 개발도상국들은 경제발전이 선행되어야만 시민.정치적 권리도 보장할 수 있다는 주장을 하였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주장은 우리나라의 경험에서 충분히 알 수 있듯이 경제발전을 명분으로 한 인권침해가 공공연히 이루어졌다는 점에서 정당화 될 수 없습니다(인권의 불가분성은 선진국 중심의 세계체제에서 후발 국가들이 민주화와 경제성장의 두 마리 토끼를 쫓는 일이 거의 불가능하다는 점에서 신중하게 판단되어야할 문제이며, 더욱이 금융자본의 횡포가 잦은 '세계화'시대에는 인권의 문제가 더욱 전지구적인 문제로 고려되어야만 하겠습니다).

    한편, 이번 회의에서 새로운 인권보호기구를 설치하는 문제 역시 중요 쟁점이었습니다. 이들 문제 중 현재 내년창설을 앞두고 있는 국제형사재판소 창설안은 유엔 국제법 위원회가 계속 검토하도록 제안하는 것으로 합의되었지만, 인권문제 고등판무관안은 많은 정부들의 반대에 부딪쳐 합의를 이루지 못하다가 유엔총회에 권고하는 수준에서 타협을 이루었습니다(이후 유엔 총회 결의로 인권고등판무관실이 신설되었습니다). 비엔나 세계인권대회에는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 민주화운동 유가족협의회, 천주교 인권위원회 등 한국 NGO들이 '유엔 세계인권대회를 위한 민간단체 공동대책위원회'를 구성하여 회의에 참가하였고, 심포지움 등 자체 행사를 통하여 국가보안법과 종군위안부문제를 국제사회에 알리는 등 조직적인 국제연대사업을 전개하였습니다(이를 계기로 이후 한국 시민.사회단체들은 유엔 인권위원회 회의에 지속적으로 참여하고, 몇몇 단체가 유엔 협의자격을 획득하는 등 유엔을 통한 국제연대 사업에 보다 적극적으로 결합하게 되었습니다).

    § 비엔나 세계 인권대회의 성과와 한계

    비엔나선언과 행동계획(Vienna Declaration and Programme of Action: VDPA)은 인권의 보편성과 불가분성을 거듭 천명하고 유엔 인권제도의 개선과 강화방향을 제시하였습니다. 특히 지금까지 소홀히 취급되어 온 빈곤을 인권침해로 규정해냈으며, 개발도상국이 사회.경제적 발전을 이룰 수 있도록 개발(발전)의 권리를 확인하였고, 여성과 아동 등 약자들의 보호에 정부가 일차적 책임이 있음을 강조하였습니다.

    하지만 비엔나 인권대회는 정부대표간 입장의 충돌이라는 딜레마로 인하여 대회의 의미가 축소되었습니다. 앞서 인권개념에 대한 논쟁에서 알 수 있듯이 제3세계국가들이나 중국과 같은 국가는 자국의 인권문제로 인하여 정부대표자체가 비판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고, 더욱이 NGO 참여는 이러한 점에서 매우 거북한 상대일 수밖에 없습니다. 따라서 NGO들을 배제하거나 입장이 비슷한 국가들간의 단합과 거래가 발생하게 됩니다.

    실제로 비엔나 세계인권대회의 경우, 사전 준비회의 과정에서 정부대표들은 NGO들의 배제와 회의자체에 대한 보이콧 등의 모습을 보여주어 회의개최 자체를 불투명하게 만들었습니다. 이러한 한계는 회의 내용에 있어서도 직접적인 행동을 결의하거나 구속력이 있는 결정을 하는 대신, 현실의 개선을 위한 추상적이고 원칙적인 수준의 권고를 하는 것으로 그칠 수밖에 없는 배경이었습니다. 특히 가장 첨예한 갈등과 협상이 일어난 최종 선언문을 작성하는 문안기초위원회에서는 중국을 비롯한 개발도상국들의 반대에 부딪쳐 결국 NGO들은 문안기초위원회의 회의를 방청하는 것이 금지되었습니다. 이와 같은 정치적 협상과 NGO배제의 움직임은 해마다 열리는 유엔 인권위원회 회의에서도 나타나고 있습니다.



    '테러'와 '안보'에 짓눌린 인권 : 58차 인권위원회

    9.11테러이후 이스라엘의 대대적인 팔레스타인 침공이 진행 중이던 올해 3월 16일 6주간의 일정으로 개막된 제 58차 유엔 인권위원회는 아랍지역의 인권침해 문제, 고문.감금과 양심적 병역거부 등을 포함한 시민.정치적 권리 등 총 21개의 의제로 진행되었습니다. 58차 인권위원회는 '테러', '안보', 그리고 인권이 그 핵심쟁점이었습니다.

    메리 로빈슨 인권고등판무관은 보고서를 통하여 테러는 정당화될 수 없지만 그에 대한 대처 또한 세계인권선언과 보편적 가치, 국제인권협약의 테두리 내에서 이루어져야함을 강조하였습니다. 이에 대해 미국과 인도, 러시아와 중국은 각각 자국의 이해관계에 따라 반대입장을 보였습니다. 많은 이슬람 국가들은 '테러'의 근본적 원인은 빈곤과 이슬람에 대한 편견임을 지적하고, 개발권의 보장과 팔레스타인지역 등에서 그들의 정당성을 주장하였습니다. 이러한 테러와 인권에 관한 논쟁은 민족의 자결권과 팔레스타인 등 아랍지역의 인권침해 문제까지 이어졌습니다. 결국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공격문제에 대하여 인권고등판무관의 긴급파견이 결정되었지만, 이스라엘의 비자발급 거부로 그 활동이 무산되기도 하였습니다.

    한편 한국시민사회단체는 이번 58차 인권위에서 민변과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 실현과 대체복무제도 개선을 위한 연대회의', 여성연합 등이 참가하여 '인권으로서의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권' 간담회를 개최하였고, 민변은 테러방지법안에 대해, 여성연합은 종군위안부문제를 제기하였습니다.

    § 인권위원회의 파행적 운영과 민주주의의 후퇴

    이번 58차 인권위는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권 인정과 대체복무를 위한 정부조치에 대한 결의안과 고문방지 국제협약 선택의정서(고문 의혹이 있는 구금장소에 대한 국제조사단 불시방문 허용- 한국은 반대) 채택이라는 성과를 가졌습니다.

    그러나 58차 인권위는 재정문제를 이유로 회의일정이 축소되어 많은 NGO들이 예정된 발언기회가 대거 취소되는 파행을 겪었습니다. 특히 미국이 역사상 처음으로 이사국이 아닌 옵서버로 참여하면서 야기된 역학관계를 이용, 인권후진국들의 막후 로비와 표거래가 난무하는 정치적 거래가 판을 쳤습니다. 심지어는 대테러 조치에 의한 인권침해 방지에 대해 멕시코 대표가 결의안을 제출하였다가 스스로 철회하는 해프닝이 벌어지기도 하였습니다. 이번 사태는 미국의 압력과 결의안 내용의 희석을 위한 알제리, 이집트, 사우디아라비아, 인도, 파키스탄 등의 방해로 인한 것이라고 국제사면위원회, 휴먼라이츠 워치, 국제법률가 위원회 등이 비난하였습니다.



    유엔 인권회의의 딜레마 : 회의 주체인 정부 자체가 비판의 대상

    인권문제는 그 사안 자체가 정치적인 데다가 정부의 책임이 거론될 수밖에 없는 주제여서, 정부대표들은 사실상 소극적일 수밖에 없습니다. 냉전이후 세계질서에 있어 '국익 이외의 문제'에 대한 국가(정부)들의 무관심과 이해타산적 외교방식은 많은 한계를 내포하고 있음을 보여주었습니다. 유엔에 있어 인권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더디게 진보하였습니다. 이러한 진보가 가능했던 것은 정부들의 무책임과 첨예한 대립 속에서도 인권의 지평확대를 위한 NGO들의 헌신이 있었기에 가능하였습니다. 이러한 성과들이 무위로 돌아가지 않기 위해서 늘 부릅뜬 눈으로 인권지킴이를 자처하는 지구촌 시민사회의 긴밀한 연대는 절실하다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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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osted by 영기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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