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경을 초월한 아시아 문제를 이야기 하다
『국경을 넘어선 아시아 문제와 시민사회의 역할』 발간

-인간안보, 마약밀매, 인신매매, 환경, 광역 질병, 테러, 이주, 빈곤 등 아시아의 초국가적 문제와 한국 시민사회의 아시아 연대와 역할 모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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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여연대 국제연대위원회는 경희대 인류사회재건연구원과 공동으로 아시아에서 발생하고 있는 초국가적인 문제들을 소개하는 단행본 『국경을 넘어선 아시아 문제와 시민사회의 역할』을 발간하였다.

『국경을 넘어선 아시아 문제와 시민사회의 역할』은 총 7장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각 장마다 아시아 지역의 초국가적 문제들을 구체적인 자료를 통해 소개하고, 이에 대한 해결 방법을 아시아 시민사회의 역할과 연대를 강조하고 있다. 구체적으로 인간안보, 마약밀매, 인신매매, 자연 개발을 둘러싼 환경문제, SARS와 AI 등 광역 질병의 문제, 테러리즘, 이주 문제, 빈곤 문제 등을 다루고 있으며 이를 극복하는 국제연대의 방법론을 제시하고 있다.

관련하여 참여연대 국제연대위원회는 경희대 인류사회재건연구원과 함께 2008년~2009년 ‘연중기획 아시아포럼’을 개최해왔으며, 2010년 ‘우리 안의 아시아, 우리가 꿈꾸는 아시아’ 강좌를 개설하여 산적해있는 아시아 지역의 문제들을 공론화하고, 이러한 문제들에 대한 아시아와 한국의 시민사회의 올바른 접근방법과 국제연대 방안을 모색해왔다. 이번에 발간한『국경을 넘어선 아시아 문제와 시민사회의 역할』은 이러한 강좌에서 다루었던 내용을 담아 한 권의 책으로 엮었다. 참여연대는 책 발간을 통해 더 많은 시민들이 아시아 지역의 다양한 문제들을 인식하고 시민사회의 국경을 초월한 네트워크 형성과 연대의 중요성을 확인하는 계기가 되기를 기대한다.



※ 첨부자료
1. 『국경을 넘어선 아시아 문제와 시민사회의 역할』목차
2. 『국경을 넘어선 아시아 문제와 시민사회의 역할』각 장별 요지


첨부자료 1. 『국경을 넘어선 아시아 문제와 시민사회의 역할』목차
(경희대 출판문화원, 정가 12,000원)

발간사
초국가적 문제와 아시아연대에 대한 이해 | 참여연대 국제연대위원회  

들어가는 글
인간안보의 관점에서 본 아시아 연대| 라미경

제1장 아시아에서 초국가적 범죄로서의 마약밀매와 시민사회의 역할 |조성관
        -아프간과 미얀마의 사례 연구를 중심으로
제2장 동아시아의 빈곤과 시민사회 | 박번순
제3장 메콩강의 초국가적 환경 문제와 메콩시민사회 | 조영희
        -하류의 수력발전 댐 개발을 중심으로
제4장 21세기 아시아 지역공동체와 광역 질병 | 박번순
        -현황과 시민사회의 과제
제5장 아시아 국가의 강압적 테러대응정책과 시민사회의 역할 | 이동윤
        -동남아 국가들을 중심으로
제6장 이주의 시대를 살아가는 아시아 사람들 | 김이선
제7장 인터넷과 아시아연대 | 윤민재





첨부자료 2. 『국경을 넘어선 아시아 문제와 시민사회의 역할』각 장별 요지

○ ‘들어가는 글’에서 라미경은 본격적인 세부 논의에 앞서 세계화와 탈냉전화가 진전되면서 ‘국가안보’로부터 ‘인간안보human security’로의 전환 양상을 이야기한다. 협력을 위한 주체는 국가에 한정되기보다 정부의 역할과 견줄 수 있는 NGO의 역할이 확대되고 중요시되고 있다고 밝히고 있다.

○ ‘제1장 아시아에서 초국가적 범죄로서의 마약밀매와 시민사회의 역할’에서 조성권은 글로벌 차원으로 벌어지고 있는 마약밀매에 대해 살펴보고 있다. ‘국제마약밀매의 세계화’에 따라 그에 대한 대책 역시 ‘국제시민사회 공조의 세계화’로 나아갈 필요성이 있음을 강조하며, 국가와 시민사회와의 연계 필요성을 역설하고 있다.

○ ‘제2장 동아시아의 빈곤과 시민사회’에서 박번순은 동아시아에서 빈곤 문제가 세계화와 관련이 크다는 점에서 빈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접근 방법도 단일국가 차원이 아닌 지역 혹은 세계 차원의 접근이 필요함을 지적하고 있다. 아시아 시민사회의 경제개방 필요성과, 저개발국을 중심으로 한 거버넌스의 질의 개선, 일본, 한국, 싱가포르 등 선진국의 저개발국에 대한 지원확대를 독려해야 한다는 점 등을 주장하고 있다.

○ ‘제3장 메콩강의 초국가적 환경 문제와 메콩시민사회’에서 조영희는 메콩강 개발로 인한 초국가적 환경 문제에 관한 시민사회조직과 NGO의 역할이 중요해지고 있으며, 그들을 중심으로 하여 사전 환경영향평가나 사후 모니터링이 지속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고 밝히고 있다. 또한 유역국가를 초월한 비국가 행위자들과 효율적인 네트워크를 형성해 나갈 필요가 있다고 역설하고 있다.

○ ‘제4장 21세기 아시아 지역공동체와 광역 질병’에서 허창덕은 국경을 초월한 광역 질병의 확산 문제에 대해 그 질병의 종류와 원인 등을 설명하면서, 이를 예방할 수 있는 해결책들을 소개하고 있다. 광역 질병의 위험성과 그 내용을 쉽고 정확하게 전달 ․ 교육하고, 전문적인 지식을 갖춘 사람들을 양성하고, 개별 단위 국가의 정책수립과 대응 전략에 대한 사전검토·평가·비판·감시 등 세계보건기구와의 교류·협력을 추구할 필요가 있다고 밝히고 있다.

○ ‘제5장 아시아 국가의 강압적 테러대응정책과 시민사회의 역할’에서 이동윤은 오늘날 초국가적 테러리즘에 대한 문제점을 논하고 해결 방법을 모색하고 있다. 테러는 정치 ․ 종교 이념을 중심으로 국경을 초월해 동시다발적으로 발생하고 있으며, 이에 따라 일부 국가들을 중심으로 테러방지법이 제정되고 강력한 테러대응정책이 실시되고 있으나, 이러한 과정에서 오히려 권위주의체제와 독재정권을 유지하기 위해 수많은 인권 유린과 침해 사례들이 증가하고 있다. 이 글에서는 테러리즘의 문제 해결과 인권 문제의 개선을 위해 인권단체들 사이의 유기적인 협력관계를 모색해야 한다고 밝히고 있다.

○ ‘제6장 이주의 시대를 살아가는 아시아 사람들’에서 김이선은 국경을 넘어선 이주가 일상화된 세계에서 전통적으로 이주민 배출지역이었던 아시아는 배출지역인 동시에 송출지역으로 그 위치가 변화하고 있다고 밝힌다. 특히, 노동이나 결혼을 목적으로 지역 내 국가를 오가는 이주민이 급증하고 있어서 이주민의 기본 권리와 제도적, 사회적 위상 등 이주의 시대를 살아가는 아시아 사람들과 관련된 핵심의제에 대한 대응에 있어서는 시민사회의 역할이 무엇보다 긴요하며, 특히 초국가적 차원의 시민사회 연대를 통해 아시아 지역의 이주 관련 이슈를 제기하고 실천하려는 움직임이 중요하다고 이야기하고 있다.

○ ‘제7장 인터넷과 아시아연대’에서 윤민재는 한국의 아시아연대 활동은 동남아의 사회운동이 우리보다 앞서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상호신뢰와 존중, 도덕적 연대, 그리고 결과에 대한 상호책임에 근거한 연대를 형성해야 하며 장기적으로는 인권운동단체와 관련 재단이 아시아연대 전문가를 육성하기 위한 협력이 필요하다고 역설하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일들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정보통신기술과 인터넷을 확산할 필요가 있으며 이것을 민주적으로 활용하고 상호신뢰에 바탕을 둔 수평적이며 성찰적인 연대의 구축을 하는데 사용할 필요가 있다고 밝히고 있다.

※ 자세한 내용은 참여연대 국제연대위원회 블로그(http://blog.peoplepower21.org/International)를 참고해 주시기 바랍니다.


*보도자료원문


Posted by 영기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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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2010년 국제연대 주요 활동 소개

매해 봄마다 겪는 황사를 떠올려 봅니다. 요즘엔 지구 반대편에서 생기는 문제가 나비효과처럼 저희의 삶에도 영향을 미칩니다. 민주주의에 대한 도전도 국가적 차원이 아니라 지구적 차원에서 일어나고 있습니다. 이에 대항하는 시민참여 역시 그러합니다.

참여연대는 한국사회의 일원일 뿐만 아니라 지구촌 시민으로서 전 세계의 민주주의와 인권을 생각합니다. 그래서 창립 때부터 ‘국경을 넘는 참여와 연대’를 주요한 활동 목표로 삼고 있습니다. 특히 민주주의에 대해 심각한 도전을 받고 있고 우리와 같은 아시아권 국가들의 인권과 민주화를 지지하고 연대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며 지구촌 시민으로서 의무이기도 합니다.

참여연대는 올해 입법,사법,행정 감시 분야의 국제화, 빈곤과 세계화의 부작용, 아시아의 인권과 민주주의에 관심을 기울이고 활동을 전개하였습니다. 100여명의 아시아 활동가들과 아시아의 민주주의 관한 국제워크숍을 개최해 참여연대 활동을 교류했습니다.(2010) 한국시민사회의 아시아에 대한 왜곡된 인식을 드러내고 인권, 빈곤 등과 연관된 아시아의 초국가적 이슈를 알리는 아시아 포럼 (2008,2009), 아시아강좌(2010)를 진행했습니다.

한국의 ODA(공적개발원조)정책이 빈곤국가 주민들의 인권과 공동체 발전에 기여할 수 있도록 감시하고 정책 제안을 하고 있습니다. ‘ODA 모니터링, 시민교육과 입법활동’에 관한 국제워크숍(2009) 개최, 국제개발기본법에 대한 의견서 제출(2010), ODA연구팀을 운영하여 연간 ODA정책보고서(2009,2010)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또한 세계경제위기 이후 부상하고 있는 G20의 서울정상회의에 대응(2010)하고자 국내외시민사회단체들과 연대하고 시민강좌(2010)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참여연대는 2004년 7월에 취득한 유엔 경제사회이사회(ECOSOC) 협의 지위를 통해 평화와 인권, 표현의 자유 등 보편적 정의와 이해를 실현하는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그림설명: 2010년 5월 27일 한남동 버마대사관 앞에서 정권유지를 위한 치러 질 버마 군부의 총선 중단을 촉구했습니다.

2010/05/19-20 아시아 민주주의에 관한 국제워크숍 개최 약 100명의 국내외 참가자들이 모여 아시아의 민주주의 상황과 각 나라에서 진행하고 있는 민주화 활동 내용을 교류했습니다. 참여연대는 입법, 행정, 사법부에 대한 감시 활동을 아시아 활동가들과 공유하며 국제연대 전략을 마련하고 있습니다. 

2010/05-06 버마군부의 비민주적인 총선을 반대하는 캠페인 진행 버마군부의 총선거를 반대하고 총선의 비민주성을 알리는 국제공동행동을 해왔습니다. 버마 대사관 앞에서 버마 활동가들과 아웅산 수지 여사 석방과 총선 반대 기자회견을 가졌습니다. 명동 거리에서 한국정부에 버마군부의 총선거를 반대할 것 요청하는 캠페인을 진행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저명한 버마 변호사를 초대해 버마의 민주화를 위한 한국 시민사회의 역할을 모색하는 워크숍을 개최하기도 했습니다.

2010/02-03 재난으로 고통받는 아이티인들을 위한 모금 전개 올 초 강진에 의해 20만명 이상이 사망한 아이티의 참사를 기억하시나요? 참여연대는 회원들과 아이티 제건을 위해 모금을 전달하였습니다. 또한 아이티의 빈곤과 정치적 무능력을 역사적으로 짚어보는 간담회 자리도 마련하였습니다.

2010/3/29-30 개발효과성에 관한 워크숍 개최 국제사회는 원조가 더 이상 저개발국가들의 빈곤만을 이야기해서는 안된다고 합니다. 빈곤 국가의 민주주의, 인권, 사회 정의 문제들도 향상시키기 위해 ‘개발효과성’을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CSO 개발효과성에 관한 오픈 포럼’을 진행하여 30여개 한국시민사회단체들이 모여 이러한 논의를 촉발하였습니다.   

2009/10/26 ODA정책보고서 발간 한국 ODA정책의 문제점을 분석하고 정책제안을 하기 위해 참여연대는 2008년부터 정책보고서를 발간해 왔습니다. 2009년에는 ‘한국 유상원조’의 문제점을 분석한 보고서를 발표했습니다. 또한 ODA리서치펠로우쉽을 운영하여 역량 있는 ODA펠러우들과 함께 작업하고 있습니다.

2009/10/12 유엔 의사표현의 자유 특별보고관 방문 유엔 의사표현의 자유 특별보고관 프랭크 라 루(Mr. Frank Rue)씨가 동아시아와 한국의 표현의 자유 현황에 관한 워크숍에 참석하기 위해 한국을 방문했습니다. 아시아의 인권시민사회단체들과 의사표현의 자유에 관한 동아시아 지역의 실태를 살펴보고 공동의 전략을 논의했습니다.

2009/10/07 한국의 56개 인권시민사회단체, 유엔에 사회권 보고서 제출 참여연대를 포함한 56개 인권시민사회단체는 유엔 경제적, 사회적 및 문화적 권리위원회에 한국 정부의 3차 사회권보고서에 대한 반박 및 대안 보고서를 제출했습니다. 정부 정책의 선전과 홍보를 일방적으로 담고 있는 정부보고서의 문제점과 누락된 자료를 제공했습니다.

Posted by 영기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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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참여연대 국제연대위원회는 한국의 대외원조(ODA) 정책 감시 활동, 아시아 민주주의 및 인권 증진을 위한 연대활동 및 아시아 이해증진을 위한 활동, 유엔을 비롯해 국제 시민단체간의 연대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참여연대 국제연대 활동에 적극 참여할 국제연대위원회 인턴을 찾습니다.

모집대상
- 시민사회 국제연대활동에 관심이 있는 자
- 아시아 지역 인권 문제 혹은 국제개발협력(ODA)에 관심이 있는 자
- 한영-영한 번역이 능통한 자
- 2인 모집 

활동내용
- 사무보조
- 아시아 혹은 ODA에 대한 영문 자료 모니터링
- 아시아 인권과 빈곤 퇴치을 위한 캠페인 기획 및 참여

접수 및 발표
○ 서류접수: 2010년 7월 20일(화) 오후 6시
○ 서류발표: 2010년 7월 21일(수), 개별 통보
○ 면접: 개별 전화 면담
○ 최종발표: 2010년 7월 21일(수)
○ 담당자 미팅: 2010년 7월 22일(목) 저녁
○ '엔지오와 국제기구'교육 참여: 2010년 7월 23일(금), (자율적 참여)

자기소개서 (첨부한 파일을 참고해 주세요)
○ 접수방법 : e-mail만 가능 (silverway@pspd.org)
※ 서류는 제시된 양식에 맞춰 작성해주시기 바랍니다.
※ 제출하신 서류는 반환하지 않습니다. 
※ ‘국제연대위 인턴활동 지원"이라는 제목으로 silverway@pspd.org로 보내주시기를 바랍니다.

근무조건
- 4개월 활동 지원(8월-11월), 2일 사무실 근무(오후 2시-6시),   
- 수료시 국제연대위원회 인턴활동인증서 발급
- 참여연대 관련 강좌 수강 지원

문의처: 차은하/silverway@pspd.org/ 02-723-5051

Posted by 영기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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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팔의 '민주주의 재건하기'
- 다시 생각하는 민주주의


이미 여러 갈등을 마주하고 있는 네팔에서는 정당들 사이에 또 하나의 힘겨운 싸움이 기다리고 있다. 그것은 새 헌법을 제정하는 데에 있어 따라이(Terai) 자치 문제와 바람직한 연방제 구조에 대한 것이다.

한편, 이는 다른 여러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기회로도 여겨져 왔다. 과거 중앙권력은 오랜 세월 많은 인종집단과 네팔의 카스트 계급을 지배했고, 때문에 연방제를 통해 중앙으로부터 이런 권력을 제거하고, 지역차원에서 삶의 질 향상과 공정한 분배를 이루어낼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연방제가 어떻게, 그리고 왜 이러한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는지에 대한 연구, 조사는 거의 발견할 수 없다. 나는 새 헌법이 시민 참여를 보장하고 권익을 보호하고 증진할 수 있는지 최소한의 확신도 할 수 없다. 왜냐하면 이를 위한 어떤 준비도 눈에 띄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주요 정당들이 계속해서 새로운 헌법을 통한 발전된 형태의 민주주의와 지속적인 평화구축을 이야기 하고 있다는 것이다. (나는 네팔공산당이 단일정당 독재로 가지 않고, 민주주의를 향해 나아가겠다고 한 그들의 약속을 지키리라 생각한다). 이 목표를 위해 첫째로 어떤 이유로 네팔에서 민주주의가 제대로 작동하지 못했고, 무엇이 잘못되었는지에 대한 세심한 조사와 분석, 평가가 필요할 것이다. 이미 존재했던 민주주의에 대한 객관적이고 철저한 평가 없이 앞으로 다가올 민주주의가 성공적일 것이라고 기대할 수는 없다.

1990년 서구 형태의 자유 민주주의를 채택한 이래 네팔은 현재 더 나은 민주주의로 나아가기 위한 역사적 순간에 서있다. 그러나 더 나은 민주주의를 위해 무엇을, 어떻게, 왜 해야 할 지에 대한 질문에 정당들은 답하지 못하고 있다.

사무엘 헌팅턴은 냉전의 종식은 '역사의 종말'을 위한 조건과 서구 형태 민주주의의 승리를 낳았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자유 민주주의 모델이 적절한 환경과 실행 속에서 번창할 것이라 믿었다. 그러나 많은 사회과학자들은 냉전 후 자유주의 관점에서 제기되었던 좁은 의미의 자유 민주주의를 강하게 비판했다. 그들은 자유 민주주의는 이상을 성취하지 못했고, 따라서 도전에 부딪쳤다고 주장한다. 그들은 또한 서양에서 이식된 민주주의가 세계 곳곳의 다른 문화와 사회에 적합한 것은 아니라고 주장한다. 그리고 이는 네팔에도 똑같이 적용된다고 나는 생각한다.

우리는 자유 민주주의를 네팔에 도입했을 때, 자본의 세계화 앞에서 신자유주의 시장 외에는 다른 대안이 없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 결과로 초래된 것(몇몇 긍정적인 면들을 제외하고)은 낮은 수준의 민주주의였고, 정치는 단순한 게임의 수준에 머물렀다. 자유민주주의에 대한 초기의 낙관론은 나라가 민주화에 접어들면서 시작된 정부와 네팔공산당의 갈등의 심화 속에서 사라져 갔다. 하지만 단순히 이 현상만이 과거의 민주주의 실패 또는 결점을 설명하는 것은 아니다.

정부는 가난한 사람들, 소외된 사람들, 원주민 그룹의 문제를 제기하는데 실패했고, 권력정치는 이를 방치하며 커져가고 있다. 그리고 공공정책을 형성하고 실행하는데 일반시민의 참여를 포함하는 전통적인 민주주의의 능력에 대한 의구심이 여전히 존재한다.

네팔의 선출된 대표들은 시민의 삶과 사회에 관련된 일들에 대해 폭넓은 대중의 참여 없이 모든 것을 자신들이 결정했다. 결과적으로 네팔은 평등, 정치적 자치권, 책임, 경제적 평등 등의 문제는 해결하지 못한 채 처음 그대로 남아 있게 되었다.

물론 행정·입법·사법의 분리, 자유공정 선거, 그리고 자유로운 정치 정당, 자유로운 기관들의 연합 등 시민사회의 성장과 함께하는 긍정적인 면들이 있다. 그러나 네팔과 같은 나라에서 민주주의에 대한 이해는 엘리트에 의한 권력정치가 아니라, 소외된 사람들의 이익, 소수그룹, 젠더 이슈 등을 위한 정치적 평등을 기본으로 하는 대중정치로 이해되어야 한다.

한편으로 우리는 과거에 수행되었던 기관 개혁과 정책 실행의 관점에서 민주주의를 평가해야하는 시점에 와있고, 다른 한편으로는 이미 존재하는 민주주의 자체가 나라를 위해 적합한지를 평가하고, 그렇지 않다면 어떠한 형태의 민주주의가 적합할지에 대해 고민해야 할 때이다. 이렇게 민주주의의 형태와 생각을 재언급하는 나라가 네팔뿐만이 아니라는 사실은 주목할 만하다. 이런 흐름은 세계 곳곳에서 '다시 생각하는 민주주의', 또는 '급진적 민주주의'라는 이름으로 발견된다.

네팔은 정책결정과정에서 더 넒은 시민참여가 이루어져야 하고, 공공이슈에 대한 시민의 역할 또한 확신되어야 한다. 그래야만 신중하고 지속가능한 민주주의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우리의 이전 관심은 엘리트 권력정치에, 그리고 민주주의를 위한 전제조건들의 확인과 실행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었다. 하지만 우리는 시민의 삶과 관련된 이슈에 최대한의 시민참여를 보장하는 데에는 거의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다. 그러므로 네팔의 민주주의, 개발, 평등 그리고 평화에 대한 근본적인 문제들 중 하나는 민주주의를 실천하는 문화에 달려 있다고 할 수 있다.

우리의 네팔 민주주의에 대한 이해는 대부분 개념적이고 규범적으로 한정되어 왔다. 이는 우리의 초점이 민주주의를 실천하는 문제와, 정확한 조건과 민주주의에 대한 다른 대안을 무시하는, 특수하고 제한된 형태의 민주주의를 위한 선행조건을 찾아내는데 맞추어졌기 때문이다. 참된 민주주의를 건설하기 위해서 우리의 정치적, 학문적 전문가들은 민주주의를 넓히고 굳건히 하는 대안적 장치들의 힘과 요소들을 발견해야 할 것이다.

그것의 복잡성에도 불구하고, 시민운동 세력(People's Movement II)에 의해 조직되고 창조된 행동중심은 네팔에서 민주주의를 사회화하는 데 유용할 수 있다. 정치세력들, 시민사회, 학계, 언론 그리고 다른 관계자들의 참여를 바탕으로 이 의제에 대한 담론은 네팔에 진정한 민주주의를 위한 기초를 건설하는데 필수적일 것이다.


 

지반 바니야 / 서강대 민주주의와 사회운동 연구소 연구원


 

Posted by 영기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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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합·니·다 
아시아 포럼 종합토론
초국가적 문제와 아시아 연대


참여연대 국제연대위원회는 2008년 연중기획 아시아 포럼<아시아의 초국가적 문제와 시민사회의 아시아 연대>를 3월부터 진행했습니다. 총 아홉 차례에 걸친 빈곤, 환경, 인신매매, 테러등 아시아의 초국가적 문제에 대해 전문가 분을 모시고 각 주제에 대해 진단해왔으며 한국 시민사회가 무엇을 해야 할지에 대한 방향성을 논해왔습니다.

12월 17일(수), 오후 4시 경희대에서 아시아 포럼을 최종 정리하는 자리가 준비됩니다.

아시아 포럼에서 다루었던 이슈뿐만 아니라 포럼에서 나누지 못한 주제들까지 재조망해 봅니다. 또한 현재 국제시민사회가 아시아의 초국가적 이슈를 풀기위해 어떠한 노력을 하고 있고 한국 시민사회가 아시아 연대를 위해 어떤 역할을 해내가야 할지 논의하는 자리입니다.

한국 시민사회의 아시아 연대 활동에 대한 경험을 나누고 한국 시민사회의 아시아 연대 활동에 대해 논하는 자리에.국제연대 활동을 하는 시민활동가 분들과 시민사회의 아시아 연대 활동에 관심이 있는 일반분들의 많은 참여와 관심을 부탁드립니다.

일시: 2008년 12월 17일(수), 오후 4시
장소: 경희대학교 2층 본관 대회의실

종합토론회 개요
사회: 박영선 (참여연대 기획위원장)

 발제
① 전체적인 초국가적 아시아 이슈에 대한 조망과 이해 이재현(국제연대위원회 실행위원)
② 초국가적 아시아 이슈 해결을 위한 국제연대활동과 과제 이성훈(국가인권위원회 인권정책본부장)
③ 한국시민운동단체의 초국가적 이슈 해결을 위한 연대 활동 김춘이(환경운동연합 국제연대 국장)

 종합 토론: 아시아 초국가적 이슈에 대한 개별 내용 정리 및 식견 교류 (※비고: 포럼 발제자 및 시민사회 활동가로 구성됨)

문의: 국제연대위원회 차은하 간사 (02-723-5051, silverway@pspd.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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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21일 경희대에서 윤민재 서울대 사회발전연구소 객원 연구원을 모시고, 아시아 포럼 아홉 번째 시간인 ‘인터넷과 아시아연대’이 진행되었다. 윤 연구원은 초국가적 사회운동에 대한 연구를 해왔으며 이번 포럼에서도 ‘연대’에 초점을 맞춰서 이야기를 풀어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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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 연구원은 사회운동에서 ‘연대’에 대한 다양한 시각과 관점을 정리하는 것부터 매우 쉽지 않다는 말로 서두를 시작했다. 한국의 시민사회는 90년대 이후 한국사회에 대한 다양한 이슈가 논의되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국제이슈에 대한 시민사회단체들의 관심과 활동도 시작되었다. 뿐만 아니라 한국은 ‘IT 강국’이며 ‘인터넷을 통한 사회운동’이 활발하다는 국제사회의 인식으로 인해 한국 시민사회의 역할에 대한 기대와 관심도 높은 편이다.

그러나 정작 한국 시민사회에서 실천적인 국제연대 활동은 빈약하기 그지 없다. 
 
우선 아시아 연대가 현실적으로 매우 어렵다는 것이다. 아시아 지역을 보면 인터넷 인프라가 절대적으로 부족한 국가가 대부분이며 언어의 차이, 문화적 가치의 차이, 민족주의적인 성향까지 보이는 아시아의 특성상 쉬이 연대의 실천적 방안을 모색하기는 매우 어려운 상황이다.

현재 서구 사회는 30개국이 모여 라디오, TV, 인터넷을 통한 독립미디어 공간을 만들어 연대 활동을 활발히 하고 있다. 그러나 연대가 실질적으로 필요한 아시아 지역에는 인터넷 강국이라고 하는 한국조차도 물적, 인적 자원의 부족으로 독립미디어 센터를 설립하지 못하고 있다. 그는 이러한 미디어 매체와 인터넷 매체가 결합된 아시아 시민사회의 독립미디어센터를 두는 것이야 말로 가장 강력한 연대의 수단을 갖추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발제에서 국제이슈를 다루는 9개의 시민단체들의 인터넷 관리 및 서비스 제공 상태를 분석했다. 그 결과는 매우 부정적이었다. 시민단체가 운영하는 대부분의 사이트는 아시아 언어로 서비스를 제공하지 못했고 영어로 서비스를 제공하는 사이트도 적었다. 또한 뉴스레터나 웹진등 정기적으로 영문 컨탠츠를 제공하는 사이트도 없을 뿐더러 이들이 제공하는 컨탠츠 역시 단체 활동을 공지하고 소개하는 정도로 매우 미진하다고 평했다. 한발 더 나아가 연대활동 방식도 기계적이고 천변일률적이라고 지적했다.

윤 연구원은 촛불시위에서 시민들의 참여를 증폭시켰던 한국의 주요 사이트들의 활동성·자발성을 보면서 아시아 연대에서 한국 시민사회의 역할과 기대는 매우 클 수 밖에 없다고 했다. 그러나 현재 한국시민사회의 수준은 허브 역할은 커녕 이를 추동할 만한 수준도 타 아시아단체에 비해서도 떨어진다고 분석했다.

윤 연구원은 사회운동의 ‘연대’에 대한 함의에 강조점을 두었다. 특히 아시아연대란 폐쇄적인 정체성을 지닌 아시아 국가들의 소통을 끌어내는 것이어야 하며 그것이야 말고 보편적 민주주의의 실현이라고 보았다. 다시 말해 경험과 종교, 인족이 천차만별로 다른 아시아에서 ‘연대’를 도구적 수단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소통을 위한 목적으로 봐야 한다는 것이다. 즉, 정서적 차원에서 아시아가 가지고 있는 아픔에 대해 이야기하고 이해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이 그가 생각하는 궁극적인 ‘아시아 연대’였다. 따라서 서구의 자유와 평등의 가치를 이야기하는 수준의 연대를 넘어 박애적인 연대, 도덕적 연대가 아시아연대로서 갖추어야 할 기본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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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대조차도 나의 이익과 타인의 이익을 생각하며 결합하는 것으로 생각하기 쉬웠던 필자에게 나의 희생을 통해 (특히 한국 시민사회는 아시아 어느지역보다 인터넷을 통한 사회운동의 허브 역할을 할 수 있는 다양한 컨탠츠와 경험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공동체적 연대를 끌어내는 자세를 지녀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성찰적 연대’를 이끌어 내기 위한 한국 시민사회의 아시아 연대에 대한 이해와 실천은 아직도 멀다.

(발제문은 포럼이 종료되면 단행본으로 출간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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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호와 서명운동으로 바뀌는 건 없다
 버마 민주화 운동의 새로운 지평을 위해


세계에서 현재까지 비민주적 정권과 사투를 벌이고 있는 국가들 중 가장 높은 국제적 관심을 끌고 있는 나라 중 하나가 버마(미얀마)일 것이다. 1988년 민주화 요구 시위 실패 이후 서슬 퍼런 군사정권에 외로이 투쟁하는 민주주의 지도자 아웅산 수치(Aung San Suu Kyi)의 용기에 국제사회는 주목했고, 그녀가 독립 운동가이자 국부(國父) 아웅산 장군의 혈육이라는 사실에 국내외 시선은 그녀에게 정통성을 부여했다.
 
아웅산 수치와 그녀의 동지들이 정권에 의해 영어(囹圄)상태에 들어간 뒤 국내적으로 지루하리만큼 정권에 대한 공개적 저항의 움직임이 포착되지 않다가 드디어 2007년 8월 유가 인상에 항의하는 승려들의 비폭력 가두시위가 발생했다. 서구 언론에 의해 "샤프란 혁명"(Shaffron Revolution)으로 명명된 이 시위는 국제사회의 압력과 경고에도 불구하고 유혈진압으로 막을 내렸다. 국외에서 활동하는 버마출신 민주화 운동가들은 이 사건을 계기로 조국의 민주화를 낙관했으나 그 결과는 허무하리만큼 군사정권의 일상으로 회귀했다.
 
  정치권력을 유지하려는 버마 군부의 의지가 강력하고 또 그 의지에 따른 사회 통제력이 견고하기 때문에 정권에 도전할 국내세력이 등장하지 않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그러나 필자가 지난 10여 년간 버마 군부의 정치행태를 관찰한 결과에 따르면 정권의 공고한 억압체계는 군사정권 유지에 부분적으로만 인정된다. 규모와 파괴력 면에서 미약하지만 정권을 향한 공개적인 저항이 발생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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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드디어 2007년 8월 유가 인상에 항의하는 승려들의 비폭력 가두시위가 발생했다. 서구 언론에 의해 "샤프란 혁명"(Shaffron Revolution)으로 명명된 이 시위는 국제사회의 압력과 경고에도 불구하고 유혈진압으로 막을 내렸다. ⓒhttp://ko-htike.blogspot.com 

필자의 견해에 따르면 버마 민주화 운동이 지리멸렬한 부침(浮沈)을 거듭하는 근본적 이유는 거시적 차원에서 국내세력과 국외세력의 소통 부재에 있다. 바꾸어 말하면 버마 민주화를 지원하는 국제 NGO들과 국외 체류 민주화 운동가들의 운동 노선과 정책이 버마 군사정권의 즉각적인 반응을 유도할 만큼 파괴적이지 못하다는 점이다. 이 주장에 대한 세부적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첫째, 국내세력의 권력 공백을 지적할 수 있다. 1988년 시위와 1990년 총선 이후 군부는 민주화 운동가들에 대한 대대적인 검거에 들어감에 따라 민주화 운동가들은 신변상의 문제로 외국으로 도피했고, 군사정권의 만행을 세계에 고발하며 국외 체류 민주화 운동의 조직화에는 성공했다. 2007년 말에 필자가 만난 방콕 주재 한 민주화 운동가에 따르면 태국에만 약 4만 명가량의 민주화 운동가가 활동하고 있다고 한다. 그러나 바꾸어 말하면 이들의 이탈은 국내적으로 군부에 대항할 수 있는 제도의 약화를 의미하며, 군부 입장에서는 상대적으로 손쉽게 반체제 인사들에 대한 통제가 가능하다. 희생을 치르지 않고 민주주의를 달성하겠다는 무임승차자가 존재하지 않기를 바란다.
 
둘째, 국내에서 이탈한 민주화 운동가들의 분열과 국내세력과의 허약한 연대를 지적할 수 있다. 국외에서 활동하는 민주화 운동가들은 국민민주연합(NLD) 당원 이외에 독자적 정당이나 노동자·학생연합과 같은 소규모 단체, 개인 활동가 등으로 나눠지는데, 각 단체들 간의 배타적 갈등 구도가 이어지고 있다. 특히 NLD는 1990년 총선에서 승리했고, 미국이 합헌정부로 인정하는 정당이라는 이유에서인지 민주화 운동을 하는 기타 단체나 활동가들의 운동을 부정하는 경향이 높다. 또한 소규모 단체들은 생성과 소멸의 단계를 반복하는데, 신변과 생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임시방편적 전략이기도 하지만 한 집단의 우두머리가 되면 세속적인 성공을 했으며 이는 곧 불교에서 말하는 좋은 업(業)을 쌓았다는 것과 동일시하는 버마인들의 습성이 강력히 내재한다. 그렇기 때문에 이들은 고국의 민주화 이전에 운동의 주도권을 두고 각축을 벌이는데 더 열중하며 그 과정에서 각 기구 간 배타성이 나타난다.
 
국외 체류 운동가들의 대립과 분열은 버마 국내세력과의 연대에 부정적 요인으로 작용한다. 2007년 반정부 시위에도 보았듯이 버마 국내세력들이 국외 운동가들과 공동으로 운동을 전개한 증거를 찾을 수 없다. 오히려 쎄잉윙(Sein Win) 박사와 같이 국외적으로 명망 있는 민주화 운동가들은 언론과의 인터뷰에 집중하며 자신의 입지를 강화시킬 뿐이었다. 실제로 필자가 버마에서 만난 청년 운동가들은 국외에서 활동하는 운동가들이 국내세력과 어떠한 연대도 꾀하지 않는 것에 대해 큰 불만을 품고 있었으며, 이러한 운동 구조로는 정권을 퇴진시키기 힘들다는 평가를 내렸다. 중국, 인도, 태국, 최근 들어서는 러시아까지 군사정권과 경제적 교류를 유지하며 정권의 든든한 버팀목이 되고 있는 상황에서도 국외 체류 운동가들은 버마 투자 금지, 관광 금지와 같은 요구사항에 20년째 천착하고 있는 사실도 재고될 필요가 있다. 현실을 직시하는 탄력적인 운동 노선과 국내세력과의 연대 모색이 필요하다.
 
셋째, 버마의 민주화를 지원하는 한국 NGO로 눈을 돌리면 이들의 가치편향적인 시각을 지적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버마의 민주화 운동을 지원하는 NGO가 한국에만 30여개 이상 주재하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이들은 공통적으로 군사정권 퇴진, 인권탄압 중단과 같은 원론적인 수준에서 군사정권을 압박하고 있다. 즉 정작 버마의 군부통치가 다른 국가들에 비해 장기간 지속되는 이유에 대한 지적 고민을 한다거나 버마를 방문하여 현지 사정에 대한 이해를 도모해야할 필요성을 절감하고 있는지 의문이다. 버마 군사정권을 타도의 대상으로만 정의내릴 뿐이지 어떠한 전략을 동원할 것인가 고민하지 않는 것은 한국 NGO뿐만 아니라 국제 NGO도 다르지 않을 것이다. 호랑이를 잡으려면 호랑이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가 필요하며 호랑이 굴에 들어가야 한다. 각 NGO들은 버마 출신 운동가들의 보조적인 역할 이외에도 현지 상황을 직시할 수 있는 가치중립적인 태도를 배양해야하며, 이를 바탕으로 버마의 민주화를 지원할 수 있는 현실적인 대안을 마련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버마의 민주화를 위해서는 일부 국제사회의 노선 변경이 필요하다. 알다시피 버마는 26년간 폐쇄적이고 고립적인 국제관계의 틀 속에서 정권의 공고함을 유지했던 국가이다. 따라서 경제봉쇄와 같은 고전적인 수단을 동원한 고립정책이 버마의 체제변동에 영향력을 끼칠 가능성은 높지 않다. 버마를 국제사회로 유인할 수 있는 대책을 강구하는 것이 체제변동에 특효약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군사정권의 고립을 주장하는 NLD의 내부 목소리도 변화되어야 마땅하다. 창당 이후 지난 20여 년간 NLD의 정강과 노선에 대해 비판의 목소리를 높여온 자들은 당외 세력보다 당내 세력이었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국외 체류 운동가들과 NLD의 요구사항이 다소 중첩된다는 사실은 여전히 버마 민주화 운동의 주류는 NLD의 몫으로 보인다.
 
필자는 최근 몇 년간 개인적 관심에 의거 버마 내 조직화되지 않은 민주화 운동가들과 교류하며 버마 미래의 새로운 희망을 보았다. 민주화 운동가들이라고 자처하는 자들이 국외로 떠난 상황에서도 혁명정신의 계보를 잇는 청년 운동가들이 군부에 대한 연구를 게을리 하지 않으며, 미래의 정치질서에 대한 고민을 나누며 세력 확대를 꾀하고 있었다. 무엇보다 이들은 국제사회가 버마의 민주화를 지원할 수 있어도 정작 민주주의를 쟁취하고 발전시키는 장본인은 버마 국민이라는 사실을 한시라도 잊지 않고 있었다.
 
이제 버마 민주화를 촉구하는 국제사회, 국제 NGO, 국외 주재 민주화 운동가들은 단선적인 경로에만 치중하던 민주화 운동의 노선을 변경하여 버마 국내세력에 대한 화답이 필요할 때가 되었다. 즉 버마 문제에 대한 국제적 지원과 관심을 요구하는 규탄, 정치범 석방을 요구하는 서명운동보다 현실적이고 실행 가능한 대안으로서 버마 현지와 교류할 수 있는 연대를 모색하는 것이 가장 급선무일 것이다. 이를테면 투자 철수가 아니라 민간 분야의 투자 확대 요구, 공정여행을 통한 버마인들의 인식 제고와 같은 활동은 NGO가 충분히 수행할 수 있다고 본다. 국외 체류 민주화 운동가들도 헤게모니의 각축장에 휘말리지 말고 국내세력과 교류하며 시행착오를 거치며 현지 상황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노선을 재정비할 필요가 있겠다. 버마 국내세력도 더 이상의 국외 퇴장을 지양하며 지하세계에서 조직화와 연대를 꾀하여야 하며, 민주적 의사결정에 취약하지 않아야 할 것이다.
 
군부의 폭압적인 만행에 민초를 대신해서 승려가 길거리로 나선지 1년이 지났다. 이제 버마의 민주화를 위한 새로운 지평이 필요할 때이다. 버마 국내세력-국외 체류 민주화 운동가-국제 NGO간의 공조체제가 이뤄질 경우 버마의 민주화는 생각보다 빠르게 다가올 것이다.


장준영/한국외대 교양부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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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간집회 금지 집시법 위헌성 인정에 대한 법원 결정에 대한
포럼 아시아의 성명

포럼 아시아(FORUM-ASIA)는 아시아의 인권과 개발을 위해 활동하는 인권단체로서 아시아 15개국 40개 멤버 단체로 구성되었으며 본부는 태국에 소재한다. 참여연대는 2007년부터 멤버 단체로 활동을 해왔다. 


참여연대가 멤버 단체로 있는 포럼아시아는 한국 헌법재판소에 집회시위에 관한 법률 제10조에 대한 위헌심판이 제청된 것을 환영한다. 법률 10조에 대한 위헌심판 제청은 2008년 10월 9일 서울중앙지법에 의해 헌법재판소에 제기되었다. 관련 조항은 야간옥외집에를 미리 금지하는 것에 대한 내용을 담고 있다.

포럼아시아와 멤버 단체들들은 한국 헌법재판소의 결정이 인권옹호자들의 권리를 보호하고 증진시키며 사회에 민주주의를 확장시키는데 중요한 계기가 될 것으로 믿고있다. 

법률 10조는 모든 공공집회시위를 관할 경찰 기관으로부터 사전 허가를 받을 것을  요구하고 있다. 또한 법률 10조항은 일몰 후 나 일출 전 야간집회 금지규정을 가지고 있다.

NGO단체들은 집회에 대한 사전허가제를 받는 것은 헌법 21조의 시민의 언론집회에 대한 자유와 정면 배치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 조항은 주간에 학업이나 생업에 종사하고 있는 대다수 시민들의 야간옥외집회의 자유를 심각하게 훼손할 수 있다. 최근 야간촛불집회에 참여한 1500명의 시민들을 법률 10조항을 위반한 명목으로 체포한 것이 그 사례일 것이다.

한국은 인권을 보호하고 증진시켜온 아시아 대표적인 국가로 여겨지고 있으며 또한 UN인권위원회의 회원국이다. 게다가 한국이 1990년에 승인한 UN의 시민적 및 정치적 권리에 관한 국제규약 제 21조항에는 평화적 집회의 자유가 명백히 언급되어 있다.

따라서 포럼아시아와 그 회원단체들은 야간촛불집회동안 평화적인 시위로 시민의 권리를 표현한 인권옹호자들과 그들의 행위에 대해 범죄시되는데 집시법이 계획적으로 이용되었다는 사실에 깊은 실망을 표명한다.

집회시위법에 대한 법률 제 10조항에 대한 위헌심판 제청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1994년에 헌법재판소는 일몰 후 그리고 일출 전의 공공집회는 사회질서를 매우 위협할것이며 사람들은 그 시간대에 더욱 폭력적이 된다고 여기고 그 법에 대해 합헌결정을 내렸었다.

집회시위에 대한 권리는 기본적인 정치적 자유 중에 하나이며 정치적 권리를 보호하는 척도에 따라 민주사회를 가름할 척도가 된다. 명확한 기준에 따라 평화적인 집회에 대한 시민의 권리를 보장하는 것은 국가의 의무이다.

포럼아시아와 회원단체들은 집회시위에 관한 법률 제 10조항에 대한 위헌심판 제청을 시민의 정치적 권리를 재고해보는 좋은 계기로 여기고 있다. 또한 한국 헌법재판소가 집회시위의 자유에 대한 보호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잘못된 것을 바로 잡을 수 있는 기회로 활용하기를 기대하고 있다.

2008.10.24 포럼 아시아 회원 단체

번역: 이아성 국제연대위원회 자원활동가

[원문 확인]

SOUTH KOREA: Decision on the constitutionality of the Act on assembly and demonstration

http://www.forum-asia.org/index.php?option=com_content&task=view&id=2017&Itemid=130

Posted by 영기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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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 국가의 인권과  민주화의 자취를 찾아서
아시아 인권옹호자 전기 중심으로

올해는 유엔이 인권옹호자선언 (UN Declaration on Human Rights Defenders)을 채택한지 10주년이 되는 해입니다. 이를 기념해 국제연대위원회는 버마, 인도네시아, 베트남 등 아시아 국가를 중심으로 인권과 민주화를 위해 활동한 아시아 인권옹호자의 삶을 조명해 보는 기획 연재 코너를 마련했습니다. 아시아 인권옹호자의 일대기를 통해 살펴보는 각 국의 인권 상황과 민주화의 자취는 아시아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히고 새롭게 아시아를 만나는 기회가 될 것입니다.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편집자 주>

멀고 먼 버마 민주화의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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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 민 코 나잉 (Min Ko Naing)
연혁 : 1962 ~ 현재
국가 : 버마 (Burma)
분야 : 민주화 운동





폭력적인 통치, 버마 군부독재의 시작


1948년, 버마는 무려 100년이 넘는 영국의 식민통치에서 벗어나 독립을 이루게 된다. 그렇지만 정치 지도자들의 권력투쟁과 영국의 분리 통치 정책의 고수로 버마는 내전에 휩싸이게 된다. 이를 폭력적인 방법으로 진압하던 과정에서 군대와 지휘관들이 정치적으로 큰 세력이 되었고 1962년 3월 군총사령관 네윈이 국민에 의해 선출된 우누 수상이 이끄는 정권을 쿠데타로 장악하면서 버마에서는 인권 유린과 군부 독재의 시대가 시작되었다. 네윈 군부는 버마식 사회주의를 내걸고 버마사회주의정책당의 일당지배체제만을 인정하고 경제적으로도 대부분의 사기업과 그 재산을 몰수하여 국유화하였다. 그 결과 버마에서 민주주의는 사라져 버렸고 군부의 부정부패가 팽배하였으며 과거 아시아의 쌀창고라고 불리던 버마는 국민들이 인권탄압과 가난, 경제 붕괴로 고통 받는 나라가 되어버렸다.  

버마의 민주주의를 위하여, 네윈 군부가 쿠데타를 일으켰던 1962년부터 학생과 노동자들의 지하 조직을 주축으로 한 민주화 투쟁은 80년대까지 꾸준하게 이어져왔다. 80년대에 들어 심각한 경제난이 버마를 덮치자 1987년 군부는 아무런 예고도 없이 버마의 화폐 가치를 취소해 버렸고 이에 분노한 버마 국민들은 1988년 8월 8일 군부에 저항하는 대규모 시위를 벌이게 되었다. 이것이 바로 8888시위이다. 그러나 군부는 버마 국민들이 총 봉기한 8888시위를 무자비한 총격과 살상으로 진압하였다. 전국적인 시위로 버마의 불안정한 상황이 계속되고 전국 각지의 시위를 연계여 이끌 지도력이 없었던 틈을 타 1988년 9월 18일 서마웅 장군은 또다시 쿠데타를 일으킨다. 새로운 군부는 민주적 총선거로 권력을 이양하겠다고 약속했지만 버마의 국민들은 새로운 쿠데타와 군부를 믿지 않았고 거센 시위와 저항, 폭력적인 진압, 수 천 명에 달하는 버마 국민들의 희생은 계속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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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888 항쟁 당시 버마 승려들의 시위 모습 ⓒ버마 정치범 지원모임(appb.org)

군부에 맞서기 위한 여러 단체들이 조직되었고 ‘전 버마 학생연합(The All Burma Federation of Student Unions; ABFSU)의 대표였던 민꼬 나잉(Min Ko Naing)’과 학생들은 평화적인 학생운동을 통해 군부의 통치에 대항하였다. 1988년 9월에는 주요 민주화 활동가들이 모여 ‘민족민주연맹(National League for Democracy)’을 창설하였다. 아웅산 수지(Aung San Suu Kyi) 여사 등 NLD의 주요 지도자들을 모두 체포하고 민꼬 나잉과 같은 활동가들마저 체포하는 등 심한 제재 속에서 1990년 군부가 약속했던 총선거가 실시됐고 그 결과 NLD는 국민들의 압도적인 지지를 받았지만 군부는 정권 이양을 실천하지 않았다.

군부는 민주화의 길을 열겠다고 약속했지만 여전히 버마 국민과 민주 지도부, 인권 활동가들에 대한 탄압과 독재는 이어지고 있다. 그러나 민주주의를 향한 버마 국민들의 열망도 2007년의 대규모 민주항쟁에서 볼 수 있었던 것처럼 식지 않고 계속 이어지고 있다.

'왕들의 정복자'  민 꼬 나잉

민꼬 나잉은 1962년 버마의 수도 양곤에서 U Thet Nyunt와 Daw Hla Kyi의 3남 1녀 중 셋째 아들로 태어났다. 그가 정치에 대해 관심을 가지게 되었던 것은 1980년대 양곤 미술과학 대학에 다니기 시작하면서부터였다. 당시 그의 전공은 동물학이었지만, 학교생활 동안 그는 시를 읽고 쓰며 풍자만화를 그릴 수 있었던 미술동아리에서 활발하게 활동하였다. 그는 또한 대학시절, Thingyan(물 축제) 기간 동안 전통 Than Gyat(공연) 대회에 참가한 공연단의 멤버로 활동하기도 했는데 공연단은 버마의 군부정권에 의한 자유와 민주주의의 억압을 풍자하는 단막극을 공연하였다. 1985년 버마의 경제적 상황에 대한 불안이 짙어지자, 나잉과 그의 동료들은 차후에 일어날 정치적 폭동을 예상하고 비밀리에 지하 학생연합을 조직하였다.

그의 원래 이름은 Paw U Tun 으로, ‘왕들의 정복자’라는 의미의 민꼬 나잉이란 이름은 1988년 군사정권을 비판하는 포스터와 전단에 서명하기 위한 필명으로 그와 동료 학생들에 의해 채택되었다. 1988년 8월 28일 나잉은 전국적인 규모의 '전 버마 학생연합'을 조직하여 평화적 수단으로 불법적인 군사정권에 맞서기로 결의, ‘8888 시위’에 크게 기여하였다. 시위 기간 동안 많은 사람들이 거리로 뛰쳐나가 정부를 규탄하고 민주주의를 부르짖었다. 나잉의 연설, 공약, 시는 동료 학생들과 버마 시민들을 감동시키며, 그는 군사정권에 대항하여 평화적 시위를 독려하는 지도자로 부상하였다. 그러나 불행히도 현재 ‘국가평화발전평의회’로 알려져 있는 군사정권에 의해 시위대는 무자비하게 진압되었다. 그후 수천 명의 학생들과 사람들이 국경으로 탈출하여 무장투쟁을 시작하였지만, 그는 탈출을 거부하고 버마에 남을 것임을 천명하였다. 학생운동은 전적으로 비폭력 평화운동이어야 한다고 생각한 나잉은 군사정권의 감시를 피해 이리저리로 숨어 다니면서도, 군사정권의 5명 이상 집회 금지에 대한 시민 불복종 운동을 조직하는 등의 일을 게을리하지 않았지만, 결국 1989년 3월 24일에 다른 학생들과 함께 체포되어 긴급사태적용법 5조에 따라 20년 형을 선고받았다. 긴급사태적용법 5조는 반란을 선동하여 법, 평화, 안정을 해친다는 명목으로 정치범들을 구속하는데 자주 사용되던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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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민주화운동 단체 '88 세대'의 활동 모습. 오른쪽 두번째가 민꼬나잉 씨 ⓒbinamojo.org

1993년 1월, 나잉은 일반 사면에 의해 10년으로 감형 받게 되고, 국제사면위원회에 의해 양심수로 선정된다. 국제사면위원회에서는 그의 석방을 위해 활발한 석방 캠페인을 펼쳤는데, 국제사면위원회에 따르면 그는 수감 초기에 심각하게 고문을 당하고 제대로 치료받지 못해서 건강이 급격히 악화되었다고 한다. 보도에 따르면 그는 심문 과정에서 물속에서 쓰러질 때까지 서있기를 강요받았고 그 결과 왼쪽 다리의 감각을 완전히 잃게 되었다고 한다. 2004년 11월 19일, 나잉은 15년간의 투옥생활 끝에 풀려나게 된다.
그러나 그가 석방된 지 불과 2년 후인 2006년 9월 말에 그는 다른 학생 지도자 4명과 함께 다시 수감된다. 단순 조사 차원에서 구류한 것이라고 군사정권은 주장했지만, 나잉과 4명의 학생 지도자들은 흔히 군사정권이 ‘국내 소요, 불안정, 테러리즘’이라고 말하는 명목에 대한 우려로 인해 구속된 것이 확인되었고 이로 인해 나잉의 체포에 대한 거센 반발이 일어났다. 2006년 10월 10일부터 18일까지 버마에서는 두 번째 수감생활 중이던 나잉과 그 외의 모든 정치범들의 석방을 촉구하기 위한 캠페인이 열렸다. 8888시위 당시에 체포되지 않았던 남아있는 88세대 학생들에 의해서 조직된 이 캠페인은 ‘White Expression’이라고 불렸는데, 참가자들이 모두 하얀색 옷을 입고 모든 정치범들의 석방을 촉구하는 시위를 벌였기 때문이다. 또한 88세대 학생들은 군사정권을 압박하기 위해 서명운동을 벌였고 이 서명운동에는 Ludu Daw Amar와 Zarganar와 같은 유명한 예술가들도 동참하였다. 여론의 극렬한 비난과 나잉의 즉각적인 석방 요구에 의해 정부 당국은 2007년 1월 11일 그를 다시 풀어주었다.  
 
버마의 독립기념일인 2007년 1월 4일에는 그의 88세대 학생 그룹이 모여 표현의 자유를 체험하도록 사람들을 독려하기 위한 ‘Open Heart’ 캠페인을 펼쳤다. 또한 이들은 2007년 3월 11일부터 5월 20일까지 ‘White Sunday’ 캠페인을 벌였다. 정치범의 가족들에게 도움을 주고자 매주 일요일 양군의 정치범 가족들을 방문하는 캠페인이었다. 그러나 그는 평화 시위 조직을 주도한 혐의로 2007년 8월 21일 자정에 다른 학생 그룹 리더들과 함께 체포되어 현재 구속 수감된 채 재판를 받고 있는 중이다. 군사정권의 치료 제공 거부로 극심한 고통 속에 실명의 위기에 처한 그는, 지난 2008년 9월 9일 법정에서 다음과 같이 부르짖었다. “You can sentence us to a thousand years in prison for our political activities, but we will continue to defend ourselves in accordance with the law. Nobody can hide from justice.” (버마군부는 우리의 정치적 활동을 탄압할 수 있지만 우리는 법에 따라 우리 자신을 보호할 것이다. 어느 누구도 정의를 무시할 순 없다)

버마 민주화를 위한 국제 사회의 움직임   

국제사면위원회와 같은 국제적인 인권단체의 발표에 의하면 현재 버마에는 나잉과 비슷한 이유로 감금되어 있는 정치범들이 2000여명에 이른다고 한다. 2007년 5월엔 태풍이 버마를 덮쳐 150만 명의 국민이 위험에 처한 상황에서도 군부는 국제 사회의 경고를 무시하고 국민투표를 강행하여 신헌법을 통과시켰다. 그후 8, 9월 승려들이 주축이 된 대규모 반정부 시위가 전국적으로 일어났다. 당초 시위는 군사정권이 하룻밤 사이에 디젤 값을 2배, 천연가스 값을 4배로 인상하는 등 경제 파탄에 대한 불만이 원인이었다. 그러나 승려들이 구심점이 되며 무능력한 군정에 대한 반대, 민주화를 요구하는 항쟁으로 확산됐다. 88년 이후 최대 규모인 10만여 명의 승려와 시민들이 참여한 2007년 9월 샤프란(승려복을 상징하는 선황색) 민주항쟁을 통해 민주화 열망이 다시 피어올랐지만, 군부의 탄압으로 대규모 유혈사태를 빚으며 최소 2백여 명이 희생당하고, 1만여 명이 강제로 연행, 구금되었다.

세계 곳곳에서 버마의 민주화를 열망하는 버마 민중들의 노력은 샤프란 민주항쟁 1주년을 맞은 지금도 여전히 타오르고 있지만 이에 반해 지난 20여 년 간의 버마 군부독재에 대한 국제사회의 대처나 한국 정부의 대응은 미미한 실정이다. 1997년 인권유린을 이유로 미국이 경제봉쇄를 단행하였지만, 중국과 인도 같은 일부 열강들이 자국의 이익을 위해  버마 군부를 도와 그들은 전혀 타격을 받지 않았다. 한편, 지난해 유엔 이브라힘 감바리 특사가 미얀마 군정의 평화시위에 대한 유혈진압 사태 직후에 버마를 방문, 탄 슈웨 군정 최고 지도자와 민주 진영 지도자인 수치 여사 등을 면담하고 국가화해를 촉구했다. 그러나 그후 가시적인 성과를 거두지 못해, 가택연금 상태에 있는 아웅산 수지 여사는 군부에 대한 저항과 무기력한 국제 사회의 평화 중재 방안에 대한 실망의 표시로 올해 8월 중순부터 한 달 간 단식에 들어가 지난 8월 말 감바리 특사와의 만남을 거부하였다. (미국은 루비와 비취 등 미얀마산 보석의 국내 수입을 금지하고, 미얀마 지도자의 재산을 동결하는 것을 골자로 한 법안을 통과시켰다. 유럽연합도 비자 발급 중지와 자산 동결, 무기 금수 등 기존의 제재조치 외에 목재와 보석류, 금속, 광물 등의 수입 금지 조치를 추가로 내렸다. 그러나 미얀마가 가입한 동남아국가연합(ASEAN) 회원국들은 “내정에 간섭하지 않는다”는 방침을 고수하며 제재에 소극적인 자세를 나타냈다.) 군부는 최근 아웅산 수지 여사에 대한 가택연금 조건을 일부 완화했고,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은 올 연말에 미얀마를 방문, 교착상태에 빠진 정치상황에 대해 논의할 예정이다.

한국에서도 버마의 군부독재 상황과 민주화운동에 대한 관심이 커진 상태고, 지난 9월 25일 8명의 버마민주화운동가들이 2000년 난민지위 신청 이후 8년에 걸친 법정공방 끝에 난민지위를 인정받기도 했지만, 여전히 버마에 대한 투자와 한국 기업의 방위산업물품 제조 플랜트 건설 등을 통해 버마 군부를 간접적으로 돕고 있는 등 버마의 민주화에 대한 총체적인 인식이 부족한 상태이다.

한국의 시민사회단체들은 한국에 머물고 있는 버마 활동가들과 함께 버마 민주화를 위한 ‘프리버마’캠페인을 매주 화요일 종각(서울)에서 벌이고 있으며 다양한 국내외 연대활동을 통해 버마군부의 인권탄압을 중지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정리 : 최유미, 김연재 (국제연대위원회 자원활동가)

참고 사이트
참여연대 버마 성명 http://blog.peoplepower21.org/International/40118
프리버마캠페인(인권실천시민연대) http://www.hrights.or.kr/
NLD 한국지부 http://www.nldla.or.kr/
버마행동(Burma Action Korea) http://cafe.daum.net/mmwc
 
 
Posted by 영기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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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 국가의 강압적 테러 대응책과 시민사회의 역할

연중기획 아시아 포럼<아시아의 초국가적 문제와 시민사회의 아시아 연대>은  산적한 초국가적 문제들의 현주소를 검토하고 아시아와 한국의 시민사회가 이에 올바르게 접근하는 방법을 모색하기 위해 마련된 자리입니다. 3월부터 12월까지 10회간 진행됩니다. <편집자주> 


9월 26일 경희대에서 이동주(신라대학교 국제관계학과) 교수를 모시고 '아시아 국가의 강압적 테러 대응책'을 중심으로 아시아 포럼 일곱 번째 시간을 가졌다. 이번시간은 2001년 9․11 테러 이후 강화되고 있는 국제사회의 테러대응정책과 이에 대응하는 지역적 차원의 반응, 그리고 동남아 개별 국가들의 테러대응정책을 고찰함으로써 인권과 관련된 제반 문제점을 폭넓게 논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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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주 교수는 ‘테러’는 정치․사회적으로 특정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개인 혹은 집단, 공공의 재산 등에 대해 불법적으로 폭력을 사용하거나 혹은 위협을 가하는 행위로 정의하였다. 그러나 상대주의적 관점에서 ‘테러’를 바라본다면 다양한 정의를 내릴 수 있다고 하였다. 동남아시아의 경우 다양한 민족들이 어우러져 살아가면서 다수 종족과 소수 종족간의 갈등이 존재하고 소수종족의 입장에서 분리 독립하는 운동을 테러로 연관지을 수 도 있다는 것이다.

동남아시아는 최근 테러리즘과 매우 관련된 지역으로 인식되고 있다. 동남아시아는 다양한 종교와 식민지 지배를 받은 국가가 대부분이어서 테러리즘 정책을 다양하게 펼치고 있다.
필리핀, 인도네시아, 태국 등 개별 국가들을 중심으로 테러방지법이 제정되고 보다 강력한 테러대응정책이 실시되고 있다. 그러나 이들 국가들에서 추진되고 있는 테러방지법이나 테러대응정책은 과거 이들 국가들이 민주화되기 이전까지 권위주의체제와 독재정권을 유지하기 위해 악용되었다. 국가 내부에서 분리주의 운동이나 반정부 운동을 전개하는 정치조직이나 시민단체들에게조차 이러한 억압적 테러방지법이 적용됨으로써 수많은 인권 유린과 침해 사례들을 발생하고 있다.
 
이교수는 반테러 정책 자체가 폭력의 악순환을 나타내고 있다고 강조했다. 즉, 동남아 국가들에서 테러대응정책이 초국가적 테러리즘의 방지라는 그 본원적 목적에서 벗어나 다수 시민들의 인권침해 문제를 유발하는 정치적 탄압의 기제로 활용하고 있다. 이것은 일차적으로 동남아에서 발생하는 테러리즘을 알 카에다의 초국가적 테러리즘과 연계된 것으로 낙인찍고 과장하고 있는 국제사회의 인식 오류에서 기인한다고 전했다.  


동남아 국가들에서 강압적 테러대응정책을 통해 발생하고 있는 수많은 인권침해 문제들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우선적으로 동남아 국가들에서 발생하고 있는 테러리즘의 근원과 양상을 보다 정확하게 이해하기 위한 인식의 확장이 필요하다. 또한 인권 문제의 개선을 위해 다각적인 활동을 전개하고 있는 인권단체들 사이의 유기적인 협력관계가 모색되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아시아내의 인권단체와 시민사회와의 상호 결집과 연대 활동은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끝을 맺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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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가자들이 아시아의 테러리즘의 양상에 대해 문의하고 있다.




(발제문은 포럼이 종료되면 단행본으로 출간될 예정입니다.)

여덟 번째 포럼
" 이주의 시대를 살아가는 아시아 사람들"은 10월 24일(금) 오후 7시 참여연대에서 개최합니다.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Posted by 영기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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