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8기념재단은 2000년에 광주인권상 시상을 시작으로 본격적인 국제연대를 추진한지 10년 만에 국내에서 가장 포괄적인 국제연대 프로그램을 갖춘 단체가 되었다. 해마다 아시아 인권운동단체의 대표에게 상금과 함께 수여하는 광주인권상 뿐만 아니라, 아시아 인권단체들에게 운영자금을 지원하고, 국제인턴활동가를 장기간 받아들이고 또한 보내는가 하면, 아시아 활동가들을 초청하여 인권문제에 관한 단기연수의 기회를 제공하고 있고, 5.18 피해자가족들을 모시고 아시아 인권단체들을 방문하고, 아시아와 국내의 인권운동가들과 학자들이 함께 만들어가는 대규모 토론회인 광주아시아포럼을 5월에 개최하는 등 프로그램의 다양성과 규모의 측면에서 단연 국내 최고의 위상을 갖추게 되었다. 물론 그 적실성에 대해서는 의문이 제기될 수 있다. 필자는 그간의 국제연대가 양적인 성장과 실험의 과정이었고 이제 그렇게 10년이 흘렀으니 그 적실성을 따질 때가 되었다고 본다.
 
 
5.18의 국제적 의미는 무엇인가?

재단의 국제연대활동은 최근 한국 시민사회운동단체들이 그러하듯이 아시아연대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덕분에 상당수 아시아인권운동가들에게 5.18이란 시간과 광주라는 공간이 친숙해 질 수 있었다. 그렇다면 이들이 공감하는 5.18과 광주는 무엇인가? 그것은 국가폭력에 맞선 광주시민들의 용감한 저항과 시민정신, 그리고 아주 특별한 것으로 그 역사의식이다. 국가폭력의 잔혹성은 아시아의 도처에 서려있다. 폭력에 맞서는 결사항전도 각지에서 전개된 바 있다. 그리고 적지 않은 곳에서 그러한 용감한 저항은 민주화로 귀결되었다. 그러나 국가폭력을 과거에 묻어두지 않고 진상을 조사하고 가해자들의 책임을 묻고 피해자들을 보상하고 나아가 기념하고 교육하는 ‘기억의 정치’를 지속시켜온 경우는 드물다.

광주를 찾은 아시아의 활동가들은 아르헨티나나 남아공까지 멀리가지 않아도 가까운 한국에서 5.18기념재단 사업과 같은 선례를 발견할 수 있다는 사실에 놀라움과 기쁨을 숨기지 않는다. 그리고 국가폭력과 반폭력 항쟁의 역사를 공유하고 있으면서도 광주처럼 진실을 찾고 정의를 구현하고 그것을 기억하고 교육할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하지 못했다는 사실에 안타까움을 표하곤 했다. 바로 그것이 5.18이라는 시간과 광주라는 공간이 이웃나라에서 인권과 민주주의를 위해 분투하는 활동가들에게 매력적인 이유이다.

몇 년 전 5월에 광주를 찾을 때 톨게이트에 “민주주의와 인권의 도시, 광주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는 글귀를 본 적이 있다. ‘민주주의’와 ‘인권’이란 용어가 5.18정신과 배치되는 것은 아니지만 왠지 맥이 빠진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민주주의와 인권이라는 일반개념으로 넓혀가면서 5.18의 선명하고 구체적인 내포가 흐려져서는 안 될 것이다. ‘5.18 다운 것’은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국가폭력에 대한 항쟁, 폭력피해자들에 대한 연대, 그리고 (인도네시아 인권운동단체들의 구호로 표현하자면) “망각에 대한 저항”이라고 필자는 생각한다. 국제연대도 5.18의 이러한 핵심을 잃지 않고 오히려 그 특수성이 더욱 빛을 발하는 방향의 연대로 추진되어야 할 것이다. 아시아의 인권운동가들이 한국 사회운동에 바라는 바는 각양각색이고 종종 추상적이기도 하다. 그렇지만 5.18과 관련된 희망사항은 하나의 구체적인 요구로 집약된다. 진상규명, 책임자처벌, 피해자보상, 기념사업으로 이어지는 국가폭력에 대한 진실과 정의의 추구 바로 그것이다.

따라서 필자는 5.18기념재단의 국제연대는 아시아 각지의 역사 속에 가해진 국가폭력의 진상을 조사하고, 반폭력 시민저항행동의 역사를 발굴하며, 책임자처벌과 기념사업 추진의 방안을 공동 모색하는 연대활동을 핵심으로 삼자고 제안한다. 그것은 5.18의 근본성격에 기반을 두는 활동이어서 뿌리가 튼실한 동시에 아시아의 가장 치명적인 문제들에 도전하는 옹골찬 기획이기도 하다. 아시아의 역사는 국가폭력에 의한 ‘학살의 역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묻어두고 앞으로 나아갈 것만을 재촉하는 ‘불처벌의 역사’를 노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치부를 끈질기게 들추고 따지는 전위로서 5.18기념재단이 우뚝 서기를 바라며 그것이 아시아의 민주주의와 인권 신장에 광주가 기여할 수 있는 길이라고 믿는다.

국제연대를 통하여 우리는 무엇을 얻을 것인가?

오늘날 우리는 복잡한 이웃효과 속에서 살고 있다. 캄보디아의 국가폭력은 광주에 대한 국가폭력을 자극했을 것이고 필리핀의 민주화는 한국의 민주화가 임박했다는 희망을 안겨주었다. 따라서 우리는 우리의 민주주의를 지키고 발전시키기 위해 이웃한 아시아의 민주옹호세력들과 연대해야 한다. 그런데 민주주의를 위한 국제연대를 기획하고 추진할 때 우리는 자칫 자민족중심주의에 빠질 우려가 있고 결과적으로 비현실적이고 비효과적인 국제연대활동을 낳을 수 있다.

한국의 민주화는 한국의 특수한 맥락 속에서 이루어졌듯이 타국의 민주화는 그 나름의 맥락 속에서 추진되고 있다. 그런데 한국의 활동가들은 일반적으로 이웃에 대한 지식이 부족하다. 지식이 부족하면 독특한 맥락을 이해하지 못하고 그리되면 적절한 연대의 매개를 찾을 수 없게 된다. 자민족중심주의는 역사적 단계에 맞지 않는 제안으로 연결될 수 있다. 민주화에 막 돌입한 나라에서 과제로 떠오르는 것은 어떻게 정당을 결성하고 선거를 치르고 의회를 구성하며 그 의회의 견제를 받는 새로운 민주국가를 여하히 건설할 것인가 인데, 그런 나라의 활동가들에게 의정감시를 어떻게 함께 할 것인가를 논제로 꺼내면 황당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특히 한국 활동가들은 근원적 갈등에 대한 감각이 결여되어 있다. 아시아의 많은 나라들이 종교간, 종족간 갈등으로 수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곤 하는 상황에 처해있지만 우리는 이에 대한 첨예한 인식을 결여하고 있다. 우리가 경험하지 않은 상황이기 때문이다.

이런 자민족중심주의에 빠지지 않는 국제연대를 모색할 방법은 무엇인가? 그 출발은 진지한 경청과 세련된 대화이다. 아시아로부터 인턴들이 파견되고 단기연수생이 방문하고 발표자들이 온다. 그들에게 듣고 배워야 한다. 우리가 방문했을 때도 마찬가지이다. 그리고 우리의 경험을 일반화하는 방식으로 함부로 단순화해서는 안 된다. 그러한 일반화는 과거 서양의 근대화 이론가들이나 작금의 신자유주의자들이 취하는 위험한 태도이다. ‘우리나라의 60-70년대랑 비슷하다’는 식의 생각과 발언도 금해야 한다. 그들은 우리의 길을 그대로 따를 것이고 우리는 그들의 미래에 관한 답을 갖고 있다는 착오적이고 오만한 태도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우리는 세련된 대화를 해야 한다. 세련된 대화란 겸손하고 느긋하게 예의를 지켜가며 이야기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함으로써 우리는 곤경에 처한 지역에 대하여 배우고  열심히 길을 찾는 친구들을 얻고 국경을 초월하여 함께 맞서야 하는 과제를 간파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적지 않은 비용을 들여 국제연대활동을 추진하는데 배움이 없다면 효과도 적고 아깝다는 생각도 들게 될 것이다.

5.18을 근본정신으로 삼는 국제연대가 자선사업처럼 간주되어서는 안 된다. 아시아 각국의 인권운동은 대체로 우리보다 국제연대의 역사가 길고 국제화도 앞서 있다. 그래서 세계 각지로부터 지원의 손길이 닿고 있다. 우리도 그들처럼 원조를 제공하는 것으로 족한가? 그러기에는 우리의 지원은 규모가 조촐하고 반면에 우리의 열망은 더 깊다. 그러므로 우리는 약간의 금품으로 큰 시혜를 준 것처럼 행동하거나 할 바를 다 한 것처럼 자족해서도 안 된다. 우리는 국가폭력의 피해와 그에 맞선 줄기찬 저항의 경험을 그들과 공유하고 있다는 점을 발견해야 한다. 그것이 우리의 힘이고, 그것이 우리가 그들과 연대하는 이유라는 점을 인지해야 한다. 폭력피해자들, 그 가족들, 그들을 옹호하며 진실과 평화를 추구하는 아시아의 활동가들과 진정한 친구로 살아가는 것, 그것이 우리가 국제연대로부터 얻고자 하는 보상이어야 한다.
 

전제성 (전북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참여연대 국제연대위원회 실행위원)

*이 글은 5.18재단에서 발행하는 잡지인 <주먹밥> 29호(2010년 가을호)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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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2010년 국제연대 주요 활동 소개

매해 봄마다 겪는 황사를 떠올려 봅니다. 요즘엔 지구 반대편에서 생기는 문제가 나비효과처럼 저희의 삶에도 영향을 미칩니다. 민주주의에 대한 도전도 국가적 차원이 아니라 지구적 차원에서 일어나고 있습니다. 이에 대항하는 시민참여 역시 그러합니다.

참여연대는 한국사회의 일원일 뿐만 아니라 지구촌 시민으로서 전 세계의 민주주의와 인권을 생각합니다. 그래서 창립 때부터 ‘국경을 넘는 참여와 연대’를 주요한 활동 목표로 삼고 있습니다. 특히 민주주의에 대해 심각한 도전을 받고 있고 우리와 같은 아시아권 국가들의 인권과 민주화를 지지하고 연대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며 지구촌 시민으로서 의무이기도 합니다.

참여연대는 올해 입법,사법,행정 감시 분야의 국제화, 빈곤과 세계화의 부작용, 아시아의 인권과 민주주의에 관심을 기울이고 활동을 전개하였습니다. 100여명의 아시아 활동가들과 아시아의 민주주의 관한 국제워크숍을 개최해 참여연대 활동을 교류했습니다.(2010) 한국시민사회의 아시아에 대한 왜곡된 인식을 드러내고 인권, 빈곤 등과 연관된 아시아의 초국가적 이슈를 알리는 아시아 포럼 (2008,2009), 아시아강좌(2010)를 진행했습니다.

한국의 ODA(공적개발원조)정책이 빈곤국가 주민들의 인권과 공동체 발전에 기여할 수 있도록 감시하고 정책 제안을 하고 있습니다. ‘ODA 모니터링, 시민교육과 입법활동’에 관한 국제워크숍(2009) 개최, 국제개발기본법에 대한 의견서 제출(2010), ODA연구팀을 운영하여 연간 ODA정책보고서(2009,2010)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또한 세계경제위기 이후 부상하고 있는 G20의 서울정상회의에 대응(2010)하고자 국내외시민사회단체들과 연대하고 시민강좌(2010)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참여연대는 2004년 7월에 취득한 유엔 경제사회이사회(ECOSOC) 협의 지위를 통해 평화와 인권, 표현의 자유 등 보편적 정의와 이해를 실현하는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그림설명: 2010년 5월 27일 한남동 버마대사관 앞에서 정권유지를 위한 치러 질 버마 군부의 총선 중단을 촉구했습니다.

2010/05/19-20 아시아 민주주의에 관한 국제워크숍 개최 약 100명의 국내외 참가자들이 모여 아시아의 민주주의 상황과 각 나라에서 진행하고 있는 민주화 활동 내용을 교류했습니다. 참여연대는 입법, 행정, 사법부에 대한 감시 활동을 아시아 활동가들과 공유하며 국제연대 전략을 마련하고 있습니다. 

2010/05-06 버마군부의 비민주적인 총선을 반대하는 캠페인 진행 버마군부의 총선거를 반대하고 총선의 비민주성을 알리는 국제공동행동을 해왔습니다. 버마 대사관 앞에서 버마 활동가들과 아웅산 수지 여사 석방과 총선 반대 기자회견을 가졌습니다. 명동 거리에서 한국정부에 버마군부의 총선거를 반대할 것 요청하는 캠페인을 진행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저명한 버마 변호사를 초대해 버마의 민주화를 위한 한국 시민사회의 역할을 모색하는 워크숍을 개최하기도 했습니다.

2010/02-03 재난으로 고통받는 아이티인들을 위한 모금 전개 올 초 강진에 의해 20만명 이상이 사망한 아이티의 참사를 기억하시나요? 참여연대는 회원들과 아이티 제건을 위해 모금을 전달하였습니다. 또한 아이티의 빈곤과 정치적 무능력을 역사적으로 짚어보는 간담회 자리도 마련하였습니다.

2010/3/29-30 개발효과성에 관한 워크숍 개최 국제사회는 원조가 더 이상 저개발국가들의 빈곤만을 이야기해서는 안된다고 합니다. 빈곤 국가의 민주주의, 인권, 사회 정의 문제들도 향상시키기 위해 ‘개발효과성’을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CSO 개발효과성에 관한 오픈 포럼’을 진행하여 30여개 한국시민사회단체들이 모여 이러한 논의를 촉발하였습니다.   

2009/10/26 ODA정책보고서 발간 한국 ODA정책의 문제점을 분석하고 정책제안을 하기 위해 참여연대는 2008년부터 정책보고서를 발간해 왔습니다. 2009년에는 ‘한국 유상원조’의 문제점을 분석한 보고서를 발표했습니다. 또한 ODA리서치펠로우쉽을 운영하여 역량 있는 ODA펠러우들과 함께 작업하고 있습니다.

2009/10/12 유엔 의사표현의 자유 특별보고관 방문 유엔 의사표현의 자유 특별보고관 프랭크 라 루(Mr. Frank Rue)씨가 동아시아와 한국의 표현의 자유 현황에 관한 워크숍에 참석하기 위해 한국을 방문했습니다. 아시아의 인권시민사회단체들과 의사표현의 자유에 관한 동아시아 지역의 실태를 살펴보고 공동의 전략을 논의했습니다.

2009/10/07 한국의 56개 인권시민사회단체, 유엔에 사회권 보고서 제출 참여연대를 포함한 56개 인권시민사회단체는 유엔 경제적, 사회적 및 문화적 권리위원회에 한국 정부의 3차 사회권보고서에 대한 반박 및 대안 보고서를 제출했습니다. 정부 정책의 선전과 홍보를 일방적으로 담고 있는 정부보고서의 문제점과 누락된 자료를 제공했습니다.

Posted by 영기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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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인권위원회는 6월 24일 반기문 UN총장에게 UN안전보장이사회에 천안함 서한을 보낸  한국NGO들에 대한 한국정부의 보복을 우려하고 표현의 자유를 보장해 줄 것을 요청하는 공개서한을 보냈습니다. 다음은 서한의 한글 전문 입니다. 원문은 다음의 사이트를 참고해 주십시오. http://www.ahrchk.net/statements/mainfile.php/2010statements/2638/

반기문 UN총장에게 아시아인권위원회에서 보내는 공개서한

총장님,

아시아인권위원회는 한국 정부가 NGO들에게 보복을 취하려고 한다는 혐의를 UN 사무총장님, UN 인권고등판무관 Navi Pillay, 그리고 안전보장이사회의 의장국과 이사회 멤버들에게 알리고자 이 특별 호소문을 쓰게 되었습니다. UN안전보장이사회에 2010년 3월 26일 서해상에서 일어난 천안함 침몰사건에 대해 한국정부가 작성한 보고서에 의문을 제기하는 내용을 UN에 전달했다는 이유로 이 NGO들은 협박을 당하고 물리적, 법적 공격을 받고 있습니다. 또한 반대 목소리를 내는 이들에 대한 집단적인 처벌의 일환으로 정부가 다양한 시민사회단체들에 대한 지원을 끊어버릴 수 있다는 우려도 있습니다.

아시아인권위원회는 천안함 사태가 한반도에 긴장을 가중시켰으며, 한국정부가 UN안전보장이사회에서 이 사건에 대해 반응하도록 노력해왔음을 주목합니다. 전문가들과 한국의 시민사회단체들은 북한이 천안함을 공격했다는 결론을 내린 한국정부 보고서에 관해 다양한 측면에서 의문을 제기하였습니다. 특히, 유엔경제사회이사회(ECOSOC) 특별협의단체인 참여연대와 평화와 통일을 여는 사람들(평통사)은 안전보장이사회에 한국 정부가 주도한 국제수사팀이 작성한 보고서의 신뢰성에 의문을 제기하는 서한을 보냈습니다. 한국 정부는 이러한 정당한 의문에 대해 대답하지 않았습니다.

서한 발송 후 한국의 공직자들은, 격양되어 있는 현 정치적 분위기를 고려했을 때, 이 NGO들에 대한 공격을 조장하는 듯한 공개적 발언을 하였습니다. 예를 들면 정운찬 총리는 국회에서 “그들(NGO들)이 애국적이었더라면 정부의 조사보고서가 정확하지 않다고 UN에다 얘기하진 않았을 것이다”라고 하였습니다. 그는 “그들이 어떤 나라의 국민인지 의심스럽다. 이 사태가 국익에 반하지 않을까 심히 우려된다”고 덧붙였습니다. 익명의 한 관료는 “이는 적국을 위하는 행위이다. 정부의 노력에 재를 뿌리는 행위이다”라고 말했습니다. 한국의 외교통상부는 이 NGO들의 행동이 한국정부가 전개하고 있는 외교적 활동을 저해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이러한 발언들과 이 NGO가 북한의 지지자들이며 북한을 대표해 한국에 반하는 행동을 하였다는 비난은 매우 선동적이며 이 NGO들에 대한 보복을 부추깁니다. 정부당국의 발언이 방송된 이후, 보수단체들 소속의 200여명이 6월 16일 참여연대 사무실을 습격하려는 시도를 하였고, 이후 비슷한 공격이 반복되었습니다. 100여명의 경찰이 참여연대의 사무실이 위치한 건물을 지키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참여연대 직원들이 공격을 당했다는 보도가 있습니다. 이들은 현재 자신들의 안전과 개인적 진실성에 대해 심각하게 우려하고 있습니다.

몇몇의 보수신문들은 이 NGO가 “적국”을 이롭게 하는 행위를 했다고 비난하는 기사들을 실었습니다. 적국이라는 단어는 이 NGO의 행위를 국가보안법 위반과 연결하려는 의도로 사용되었습니다.

한국 검찰은 참여연대 직원들이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를 받을 경우 사법처리 될 수 있다는 점을 언론에게 흘린 것으로 보도되었습니다. 그러는 와중에, 그리고 또 다른 방법들로, 검찰은 보수단체들이 이들 NGO들을 고소할 것을 조장하는 편향된 역할을 수행하여, 당국의 이들에 대한 수사착수를 적법하게 만들었습니다..

이에 대한 반응으로, 보수단체들은 참여연대를 검찰에 고소하였습니다. 6월 15일 외교통상부 차관 천영우는 “법적인 검토가 현재 진행 중이다”라고 말했습니다. 6월 17일 이 사건은 서울중앙지검 공안1부(부장검사 이진한)에 배당되었습니다. 안전보장이사회에 정보를 제공한 데 참여한 혐의를 받고 있는 NGO의 리더인 이태호씨와 구갑우씨는 곧 소환될 것으로 보입니다.

검찰은 또한 한국정부가 주도한 보고서 작성에 참여한 전문가들 중 하나에 비슷한 방법으로 접근해 이 NGO들을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하도록 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검찰은 국가보안법 7조와 형사상 명예훼손 그리고 공무집행 방해라는 혐의로 이에 연루된 것으로 여겨지는 모든 이들을 조사할 것임이 보도되었습니다. 국가보안법 7조의 첫 문장은 “국가의 존립•안전이나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위태롭게 한다는 점을 알면서 반국가단체나 그 구성원 또는 그 지령을 받은 자의 활동을 찬양•고무•선전 또는 이에 동조하거나 국가변란을 선전•선동한 자는 7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 …” 라고 명시하고 있습니다.

아시아인권위원회는 UN의 의사표현의 자유 특별보고관 프랭크 라 뤼씨가 2010년 5월 17일에 발표한 한국의 표현의 자유의 신장과 보호에 대한 보고서를 기억합니다. 그는 보고서에서 국가보안법과 형사상 명예훼손죄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하였습니다:

국가보안법: “나는 한국이 직면하는 안보의 불안, 특히 천안함 사태 이후의 안보 불안을 잘 이해하고 있고, 모든 국가에는 국민의 보호를 위해 보안법을 가질 정당한 권리와 의무가 있다고 믿는다. 그러나 표현의 자유를 제한하는 어떠한 보안법도 내가 앞서 언급한 조건을 반드시 충족시켜야 하는데, 이는 보안법이 명확하고 좁게 작성되어야 함을 포함한다. 그러므로 나는 국가보안법 위반혐의와 이에 따라 사법처리된 사건이 감소했음을 환영하는 한편, 법의 모호성과 잘못된 해석의 여지가 여전히 남아있으므로 나의 전임자가 15년 전에 내렸고, UN인권위원회 그리고 국가인권위원회 또한 내린 국가보안법 7조를 수정하라는 권고를 반복하고자 한다.”

명예훼손: “한국에서 명예훼손은 형법과 민법상의 “불법행위” 아래 처벌되는 형사범죄이다. 형사처벌이 줄어들었다고 하더라도, 민사상 고소와 형사상 명예훼손 고발은 표현의 자유에 찬물을 끼얹는 효과를 발휘한다. … 내가 머무르는 동안 많은 명예훼손 사례들이 눈에 띄었다. …”

시민적, 정치적 권리에 대한 국제규약(ICCPR)의 19(3)조에 나오듯, 개인의 명성의 보호는 표현의 자유의 발휘를 제약하는 법적인 근거가 될 수 있다. 그러나, 필요성과 비례성의 조건을 충족하기 위한 특정 조건이 있다. 첫째로, 발언이 반드시 고의적으로 허위여야 하며 다른 사람의 명성을 반드시 훼손해야만 한다. 둘째로, 공공기관과 모든 종류의 관료들 - 평소에는 공공의 임무를 수행하는 정부의 입법, 행정 혹은 사법부를 포함하여 - 은 명예훼손으로 고소하도록 허용되어서는 안 된다. 민주적 시스템의 견제와 균형의 일환으로서, 공직은 공공의 검사를 수반한다. 셋째, 국가들은 모든 형사상 명예훼손죄를 폐기해야 한다. 강력한 형사처벌의 위협은 표현의 자유의 행사를 심대히 저해하는 효과를 발휘하는데, 이는 개인의 명성 회복에 있어 비형 사적 제재가 충분함을 고려할 때 더욱이 정당화될 수 없다. 비형사적 조치는 사과, 정정 혹은 대답, 혹은 특정 발언이 명예를 훼손한다는 판단을 공표하는 것을 포함한다.

그러므로, 나는 정부가 형법에서 명예훼손 조항을 삭제할 것과 비판 수용의 문화를 장려할 것을 권고한다. 무엇보다도 나는 제3자나 국가 기관이 원고로서 명예훼손 고소를 할 수 없다는 원칙을 강조하고자 한다.”

더욱이, 6월 15일 여당인 한나라당의 고흥길 의원은 NGO들에 대한 정부의 지원을 전반적으로 재검토해야 한다고 공개적으로 말했습니다. 아시아인권위원회는 정부가 정부의 재정적 지원을 이용하여 정부를 지지하는 보수단체들에게 불균형하게 많은 지원을 주고 정부에게 비판적인 단체들을 벌하고 있음에 우려를 표합니다. 2008년 미국 쇠고기 수입 재개에 반대해 일어난 대대적인 시위 이후, 한국정부는 많은 NGO들에게 지원을 중단하였습니다. 2009년 통계에 따르면 서울의 진보단체들에게는 정부지원액의 단지 1퍼센트만이 할당되었습니다. 참여연대는 1998년부터 정부의 지원을 받지 못하였고, 이러한 지원금 삭감은 다른 반대 의견을 제시하는 단체들에게 집합적인 처벌로서 더욱 광범위하게 사용될 것으로 보입니다.

아시아인권위원회는 표현과 의견, 집회의 자유를 저해하려는, 그리고 다원적이고 민주적 사회의 필수 요건인 반대여론을 없애려는 한국 정부의 노력에 대해 심한 우려를 표합니다.

그럼으로 아시아인권위원회는 UN사무총장이 모든 필요한 조치를 취해, UN에 연락을 취한 시민사회단체들에 대한 한국정부의 직접적이고 간접적인 보복이 즉시 중지되도록 할 것을 요청합니다. 아시아인권위원회는 보복에 대한 사무총장의 활동을 높이 평가하며 그가 이 사건을 UN이 하는 일에 참여했다는 이유로 받는 공격으로부터 시민사회의 일원들을 보호하는 데 포함시키기를 간청합니다.


아시아인권위원회는 또한 인권고등판무관이 한국에 관여하여 이 보복적 조치들이 중단되고 특별보고관의 표현의 자유에 대한 권고들이 즉시 완전하게 시행되되록 보장하기를 요청합니다. 아시아인권위원회는 특히, 국제인권법과 기준에 부합하지 않는 한국 국가보안법의 철폐와 명예훼손죄의 형사처벌 철회를 요구합니다.

아시아인권위원회는 UN안전보장이사회의 의장국과 회원들이 한국정부가 천안함 사태에 대하여 NGO들이 제기한 의문들을 명확하게 해명할 답변을 주도록 요구할 것을 요청합니다. 이 사태가 한반도와 한반도를 넘어선 지역의 안보에 중요한 영향을 끼칠 가능성이 있기 때문입니다.

마지막으로, 아시아인권위원회는 한국정부가 관료들이 표현의 자유를 정당하게 행사하는 NGO들에 대해 증오, 폭력과 독단적인 법적 행동을 조장하는 발언을 당장 중지하도록 보장할 것을 요구합니다. 참여연대에 대항해 발언한 관료들은 반드시 공개적으로 사과하고 사회의 모든 구성원들이 서로의 표현의 자유를 존중하기를 격려하여야 합니다. 당국은 이들 NGO에 대해 국가보안법과 형사상 명예훼손죄에 근거한 독단적이고 정당화될 수 없는 법적 공격을 중단하여야 합니다. 정부는 지체 없이 표현의 자유, 특히 국가보안법과 형사상 명예훼손죄에 대한 특별보고관의 권고를 시행하여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유엔인권이사회(Human Rights Council)에 속해있는 한국정부는 정부의 지원이 정부와 정치적으로 연계된 단체들만을 지원하고 비판을 비롯 다른 목소리를 내는 단체들을 제약하기 위한 도구로서 사용되지 않도록 보장하여야 합니다. 한국정부는 아시아 지역에서 인권에 관하여 선두에 있는 국가이지만, 현재 그 기록을 저해하고 있습니다. 궁극적으로, 민주주의적 가치와 인권을 보호함으로써만 한국은 안정과 안보를 보장할 수 있을 것입니다.

Yours sincerely,

Basil Fernando
Director
Asian Human Rights Commission, Hong Kong

# 아시아인권위원회: 아시아인권위원회는 아시아의 인권 이슈들을 감시하고 로비하는 지역적 비정부 기구이다. 홍콩에 기반해 있으며 1984년에 창립되었다.

Posted by 영기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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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urma의 정치 수감자 석방 서명운동에 함께해 주세요.

 버마는 3월 13일 '버마 인권의 날' 20주년을 맞았습니다. 버마 인권 단체들은 버마 민주화 운동의 상징인 아웅산 수치 여사를 비롯한 모든 버마정치 수감자들의 석방을 위해 전 세계 시민으로부터 888,888명의 서명을 받아 유엔에 탄원서를 제출하기로 했습니다.

수치 여사는 버마의 민주주의를 위해 앞장서 온 지도자이자 민주주의 민족동맹 (National Democratic League)의 대표로서 지난 1988년부터 19년 동안 가택 연금되어있습니다. 이 서명운동은 수치 여사가 가택 연금으로부터 석방되기로 한 법적 날짜인 2009년 5월 24일 전까지 3개월간 계속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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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성된 탄원서는 반기문 UN사무총장에게 전달되어 버마의 정치 수감자 석방 문제를 최우선 해결과제로 삼아줄 것을 요청할 예정입니다. 탄원서 서명 숫자를 888,888명으로 정한 것은 1988년 8월8일 버마에서 3천명이 희생된 '8-8-88 민주화 시위(88버마 항쟁)’를 상징하기 위함입니다.



갈수록 버마 군부에 대한 국제 여론의 압박은 더해지고 있습니다. 지난 12월,  50 여개국 총 112명의 전직 대통령들과 국무총리들이 반기문 UN사무총장에게 버마의 정치 수감자들의 석방을 촉구하는 공문을 보냈었습니다. 유엔 사절단이 버마를 방문했고 실제로 20명의 정치 수감자들이 2월에 석방되는 결과를 낳았습니다.

이번 888,888서명운동을 통해서도 버마정치 수감자들의 석방이 이루어 질 수 있도록 많은 참여를 부탁드립니다.

국제행동에 참여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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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8년 8월 8일, 버마에서는 군사 정권 타도를 위한 전국적인 규모의 민주화 항쟁이 있었습니다. 버마 군부는 이 항쟁에 참여한 국민들을 폭력적으로 진압했고 그 과정에서 3천여명이 사살되었습니다. 그러나 버마 국민들은 감옥과 망명 속에서도 용감히 민주화 노력을 이어왔고 이들의 의지는 작년 9월 항쟁에서도 확인된 바 있습니다.

국제 사회는 그동안 버마 군부에 대해 소극적 대처를 했던 것이 버마의 민주화를 지연시켰음을 깨닫고 이제라도 구체적인 압박을 가해야 할 것입니다. 그 일환으로 정치 수감자들을 조건 없이 즉각 석방해야 함은 말할 것도 없습니다.

버마의 현 군부는 1990년의 총선 결과를 무시했으며 The National League for Democracy (NLD)를 포함한 야당의 활동을 불법적으로 금지해왔습니다. 또한 2천명 이상의 정치 인사들을 투옥하거나 가택 연금시켰습니다. 진정한 대화 진전을 위해 제시된 모든 제안은 전부 묵살해 버렸고 최근에는 자신들의 정권 유지를 위해 일방적으로 신헌법을 강제적으로 승인시킨 후, 2010년 국민들의 의지에 반하는 총선을 실시하려고 합니다.
 
 현재 수감된 정치범들은 ‘범죄자’들이 아닙니다. 그들은 침묵하고 있는 버마인들을 대표해서 용기 있게 민주주의를 주창한 것뿐입니다. 모든 정치 수감자들을 석방하는 것은 버마의 자유 민주주의를 위한 필수적인 첫 걸음일 것입니다. 이제는 폭력적 억압을 일삼는 군부 독재 체제를 끝내고 ‘버마 민주화’의 결실을 맺기 위해 우리가 나서서 행동해야 할 때입니다.(
www.fbppn.net/ 참고)

정리: 박서현/ 참여연대 국제연대위원회 인턴


 
2008년 버마 활동 링크
[관련도서] 양지를 찾는 사람들
[관련기사] 버마8888 전국민주항쟁 20주년 공동성명
버마 민주화를 위한 항쟁! 민 코 나잉 인권옹호자를 찾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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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의 초국가적 문제와 아시아연대의 지금을 말하다

12월 17일 연중기획 아시아 포럼의 마무리 자리인 종합토론[초국가적 문제와 아시아연대]이 열렸다. 지난 3월부터 진행되어 왔던 아시아포럼은 아시아의 초국가적 이슈인 빈곤, 인신매매, 환경, 광역질병, 마약등을 다루어 왔다. 포럼의 각 주제들은 아시아의 초국가적 이슈의 발생 배경, 현상, 지역사회 및 시민사회의 대응등을 주로 논하여 왔다. 아쉽게도 대부분의 포럼에서 아시아 시민사회가 어떠한 대응활동을 하고 있는지 살펴보는 기회는 적었다.  이번 종합토론은 한국의 시민사회운동을 중심으로 아시아 연대 활동의 수준을 살펴보는 시간으로 기대가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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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부터 발제자 이재현, 이성훈, 김춘이

토론회는 세 분의 발제와 일곱 분의 종합토론자가 모여 진행되었다. 이재현(국제연대위원회 실행위원)은 포럼을 총 망라하는 발제를 했다. 이 위원은 1980년대 말부터 냉전체제가 붕괴되고 개별 국가들의 안보에 대한 관점이 다양해지면서 [인간안보]라는 개념이 회자되었다고 말했다. 인간의 생존과 인간으로서 최소한의 삶의 조건의 보장하는 인간안보가 강조되면서 아시아의 초국가적 문제에 대한 사회적 관심도 높아졌다고 설명했다.

이 위원은 빈곤문제, 해적문제, 인신매매, 낮은 생활수준으로 인한 광역질병확산, 무기밀매 등의 문제는 한국과 직접적으로 연관되지 않아 보는 것으로 인식되지만 SARS, 황사와 같은 환경문제나 매년 되풀이 되는 조류독감등을 보면 한반도가 아시아의 초국가 문제에 노출되지 않을 수 없다고 강조했다.

한 국가가 초국가적 문제에 개입하는 것이 어려운 상황에서 시민사회의 개입은 개별 국가의 행위를 감시하고 초국가적 문제의 해결을 위한 대안을 제시하고, 초국가적 문제에 대한 사회적 의식을 높이기 위한 역할을 해야 하며 이러한 역할을 하기 위해선 시민사회간 긴밀한 협조와 연대가 필요하다고 전했다.

이성훈 국가인권위원회 인권정책본부장은 국제시민사회 수준에서 아시아 이슈를 해결하기 위해 어떤 접근을 하고 있는지 전달했다. 이 본부장은 제네바에 위치한 팍스로마나와 방콕에 있는 포럼아시아에서 약 10년 넘게 활동을 해온 배타랑 국제 연대 활동가의 경력을 가지고 있다. 그는 [아시아연대]라는 오늘의 주제가 15년간 고민해온 주제이나 새로운 담론이 구체적으로 나오지 못한 현실에 안타까움을 표했다. 이 본부장은 한국 시민운동은 김대중 정권이후  정부가 시민운동에 영향을 미치면서 시민운동이 반관반민의 성격을 가지게 되었고 국제연대의 동력이 줄어든 원인이라고 지적했고 지금은 새로운 연대의 주체들을 나타나고 있는 현상을 언급했다.

이 본부장은 한국시민사회의 아시아연대활동의 과제와 전략으로 1. 아시아에 대한 종합적 비전과 중장기적 실행계획을 세우고, 2.동아시아 시민사회운동의 리더를 양성하기 위해 노력해야 하며, 3, 동아시아 시민사회운동을 위한 인적, 물적 인프라를 구축하고, 4 국제 ngo를 활용하고 마지막으로 정부와 비판적 협력 관계를 정립해야 한다고 했다.

김춘이 환경운동연합 국제연대 국장은 한국기업의 러시아 캄차타 석유개발과 필리핀 라푸루푸섬 노천광산 폐기물에 따른 환경 문제에 개입한 국제 경험을 중심으로 소개했다. 두 사례를 통틀어 김 국장은 환경운동연합이 국제연대 활동을 하면서 가진 한계성을 성찰적으로 분석하였다. 우선 두 사례에서 환경운동연합은 국내 사안이 커지면 국제이슈는 지속적으로 연대 및 감시 활동을 펼치지 못한 것, 국제연대 활동을 지속적으로 이끌고 갈만한 조직적 뒷받침이 안되는 것, 장기간의 조사와 전략이 필요한 국제연대활동을 하지 못하는 것, 분야별 시민운동간 연계가 부족한 점을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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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론회는 1부와 2부로 나누어 진행되었다


이후 종합토론은 아시아 포럼에서 개별 주제에 대한 발제를 해주셨던  라미경 교수(순천향대 사회과학연구소), 조성권 교수(한성대 국제마약학과), 조영희 연구원(한국동남아연구소)와 나현필 활동가(국제민주연대), 박진영 국제사업팀장(일하는여성아카데미)과  김홍우 명예원장(인류사회재건원구원), 송경재 교수(경희대 인류사회재건연구원)가 참여 했다.

라미경 교수는 아시아가 연대하지 못하는 것은 연대의 경험이 없는 것에서 기인한다고 했다. 글로벌 시트즌십(GLOBAL CITIZENSHIP)과 같은 인식을 가지고 아시아 연대를 접근하기 위해서는 인적, 물적 역량을 구축하는데 필요한 제도와 자원의 확충이 급선무라고 전했다. 손경재 교수는 한국 시민운동은 지역적 특성이 강하기 때문에 아시아에 대한 포괄적인 이해가 필요하며 아시아 지역에 따라 연대의 내용과 형식, 절차를 고민해야 한다고 전했다.

나현필 활동가는 국제연대 활동에 필요한 정보나 식견을 제공할 전문가를 시민운동판에서 찾기 힘들고 본인과 연관된 국제 회의에 재정 부족으로 참여하지 못하는 점이나 국제연대 활동을 하면서 느끼는 활동가의 고충을 가감없이 전달했다. 박진영 국제사업팀장은 여성 노동자들의 네트워크는 오랜 시간 타 분야에 비해 안정적으로 구축되었으며 현재는 한국의 노동운동이 아시아의 여성문제를 위해 무엇을 해야 할지 고민하는 단계이며 현재 교육과 같은 실천적인 노력을 시도하고 있다고 연대활동에 희망적인 메시지를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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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부터 송경재, 라미경, 박진영 토론자


2008년 아시아포럼은 종합토론을 끝으로 마무리되었다. 멀게만 느껴졌던 아시아가 포럼을 통해 조금은 더 가깝게 이해 할 수 있었던 기회가 소중했다. 그러나 앎을 통해 표피적으로 만 아시아를 알아왔던 시간들을 확인할 수 있었기에 아시아가 한편으론 꽤 멀게만 느껴지기도 한다. 그러나 여전히 아시아라는 끈을 놓을 수 없는 한국 시민사회의 과제와 책임은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다시 그 질문을 따라 가야겠다. 한국 시민운동이 아시아 연대를 위한 노력과 전략을 모색하는 과제와 도전은 09년에도 계속되어야겠다. 

* 종함 토론의 자세한 내용은 '아시아 포럼' 단행본(09년 상반기 출간예정) 에서 접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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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간집회 금지 집시법 위헌성 인정에 대한 법원 결정에 대한
포럼 아시아의 성명

포럼 아시아(FORUM-ASIA)는 아시아의 인권과 개발을 위해 활동하는 인권단체로서 아시아 15개국 40개 멤버 단체로 구성되었으며 본부는 태국에 소재한다. 참여연대는 2007년부터 멤버 단체로 활동을 해왔다. 


참여연대가 멤버 단체로 있는 포럼아시아는 한국 헌법재판소에 집회시위에 관한 법률 제10조에 대한 위헌심판이 제청된 것을 환영한다. 법률 10조에 대한 위헌심판 제청은 2008년 10월 9일 서울중앙지법에 의해 헌법재판소에 제기되었다. 관련 조항은 야간옥외집에를 미리 금지하는 것에 대한 내용을 담고 있다.

포럼아시아와 멤버 단체들들은 한국 헌법재판소의 결정이 인권옹호자들의 권리를 보호하고 증진시키며 사회에 민주주의를 확장시키는데 중요한 계기가 될 것으로 믿고있다. 

법률 10조는 모든 공공집회시위를 관할 경찰 기관으로부터 사전 허가를 받을 것을  요구하고 있다. 또한 법률 10조항은 일몰 후 나 일출 전 야간집회 금지규정을 가지고 있다.

NGO단체들은 집회에 대한 사전허가제를 받는 것은 헌법 21조의 시민의 언론집회에 대한 자유와 정면 배치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 조항은 주간에 학업이나 생업에 종사하고 있는 대다수 시민들의 야간옥외집회의 자유를 심각하게 훼손할 수 있다. 최근 야간촛불집회에 참여한 1500명의 시민들을 법률 10조항을 위반한 명목으로 체포한 것이 그 사례일 것이다.

한국은 인권을 보호하고 증진시켜온 아시아 대표적인 국가로 여겨지고 있으며 또한 UN인권위원회의 회원국이다. 게다가 한국이 1990년에 승인한 UN의 시민적 및 정치적 권리에 관한 국제규약 제 21조항에는 평화적 집회의 자유가 명백히 언급되어 있다.

따라서 포럼아시아와 그 회원단체들은 야간촛불집회동안 평화적인 시위로 시민의 권리를 표현한 인권옹호자들과 그들의 행위에 대해 범죄시되는데 집시법이 계획적으로 이용되었다는 사실에 깊은 실망을 표명한다.

집회시위법에 대한 법률 제 10조항에 대한 위헌심판 제청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1994년에 헌법재판소는 일몰 후 그리고 일출 전의 공공집회는 사회질서를 매우 위협할것이며 사람들은 그 시간대에 더욱 폭력적이 된다고 여기고 그 법에 대해 합헌결정을 내렸었다.

집회시위에 대한 권리는 기본적인 정치적 자유 중에 하나이며 정치적 권리를 보호하는 척도에 따라 민주사회를 가름할 척도가 된다. 명확한 기준에 따라 평화적인 집회에 대한 시민의 권리를 보장하는 것은 국가의 의무이다.

포럼아시아와 회원단체들은 집회시위에 관한 법률 제 10조항에 대한 위헌심판 제청을 시민의 정치적 권리를 재고해보는 좋은 계기로 여기고 있다. 또한 한국 헌법재판소가 집회시위의 자유에 대한 보호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잘못된 것을 바로 잡을 수 있는 기회로 활용하기를 기대하고 있다.

2008.10.24 포럼 아시아 회원 단체

번역: 이아성 국제연대위원회 자원활동가

[원문 확인]

SOUTH KOREA: Decision on the constitutionality of the Act on assembly and demonstration

http://www.forum-asia.org/index.php?option=com_content&task=view&id=2017&Itemid=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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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9차 정기회기 유엔인권이사회에 참가하다

유엔인권이사회 정기회기가 지난 9월 8일부터 26일까지 제네바에 위치한 유엔 유럽대표부에서 개최되었다. 한국NGO들은 이번 인권이사회에서 지난 촛불시위 과정에서 나타난 한국정부의 반인권적 행태들을 고발하고 한국정부의 각성을 요구하기 위하여 참가를 결정하였다. 그러나 9월 13일부터 시작된 추석연휴 등의 일정으로 NGO대표단 구성이 쉽지는 않았다. NGO가 인권이사회에서 발언하기 위해서는 사전에 ECOSOC, 즉 UN경제사회이사회에 등록된 협의지위를 가지고 있어야 하는데 현재 한국에선 참여연대와 민변, 환경운동연합 등의 일부단체만 협의지위를 보유하고 있었다.
NGO대표단은 논의를 통해 광우병 국민대책회의와 국제민주연대 활동가가 민변과 참여연대의 도움을 받아 인권이사회에서 활동하기로 결정을 하였고, 참여연대와 국제민주연대가 회원단체로 가입해있는 포럼아시아의 도움을 받기로 하였다. 결국 제네바 현지에 유학중인 국제민주연대 자원 활동가 문연진씨를 포함하여 한국에서 광우병 국민대책회의에서 인권 법률의료지원 팀장으로 일하고 있는 임태훈씨와 국제민주연대 활동가인 내가 참여하기로 하였고 9월 13일 제네바로 출발하였다.

현지 활동
10시간이 넘는 긴 비행시간을 거쳐 9월 13일 밤 8시 제네바에 도착하였다. 으슬으슬 비오는 날씨에 급하게 참가가 결정이 난 터라 준비를 충분히 하지 못했고 이 때문에 제네바의 아름다운 풍경조차 눈에 잘 들어오지 않았다. 공항에서 나온 후 마중을 나온 김기연씨와 (포럼아시아 UN Advocacy Program Manager)저녁을 먹고, 제네바 유스호스텔에서의 첫날밤을 보냈다. 9월 14일에는 포럼아시아 제네바 사무실에서 이번 인권이사회에서 활동할 내용들을 점검하였다. 일단, 인권이사회 NGO 구두 성명 발표 때에 한국정부가 집회시위 및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고 있다는 내용과, 인권활동가들을 탄압하고 있다는 내용으로 2건의 성명을 발표하기로 하였다. 또한, 관련 자료들을 인권이사회에 참여한 각국 대표단 및 NGO들에게 배포하고 부대행사로 촛불집회에서 나타난 경찰폭력을 중심으로 한국의 인권상황을 알리는 영상물 상영회를 하기로 하였다. 또한, 표현의 자유 특별보고관실, 인권옹호자 특별보고관실 관계자를 만나 한국 인권상황에 대한 개입 및 활동을 촉구하기로 하였다. 그러나 우리들은 UN 인권기구에 대한 경험이 전무한터라 처음부터 어려움이 많았다. 9월 14일 처음으로 UN인권이사회에 참여하였다. 등록출입증을 만드는 일에서부터 어리둥절한 나에게 있어 한국 상황을 알려야 한다는 책임감은 더욱 크게 다가왔다. 각국 정부대표단이 참여하는 인권이사회 치고는 상당히 자유로운 분위기였지만 회의분위기는 진지했다. ‘인권’이라는 주제를 두고 각국 대표단들과 NGO들은 치열하게 로비를 포함한 활동들을 하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당초 9월 15일 경으로 예상된 NGO발언 세션이 연기되는 바람에 조금의 여유를 찾을 수는 있었지만 3분의 시간 안에 한국 상황을 압축적이고 흥미 있고 정확하게 구두발언을 통해 발표해야 한다는 압박감은 매우 컸다. 내용을 몇 번씩이나 수정하고 연습하였다. 결국 9월 18일에 문연진씨와 김기연씨가 한국 상황에 대해 발표를 하였고 한국NGO 외에도 홍콩에 본부를 둔 ALRC(.......)와 양심적 병역거부 관련하여 활동을 해온 퀘이커 단체 등이 한국정부의 반인권적 조치들에 대하여 지적하였다. 즉 이번 인권이사회에서 한국정부는 이전과 달리 NGO들에 의해 인권상황을 지적당한 나라가 된 것이다. 이외에도 많은 사람들이 참여하지는 못했지만 부대행사를 잘 마쳤으며 유엔인권고등판무관실 관계자와 각 특별 보고관 담당 직원들을 만나 앞으로 한국의 인권상황에 대하여 상호 협력키로 하였다.

활동평가
처음 참여한 유엔인권이사회 활동치고는 무난하게 끝냈다고 할 수 있지만 사실, 김기연씨의 헌신적인 도움과 한국에 있는 활동가들의 지원 없이는 불가능 했을 것이다. 추운날씨와 비싼 물가보다 나를 가장 힘들게 했던 것은 많은 돈과 시간을 들여 참가한 이번 인권이사회에서 어떤 성과를 내야한다는 부담감이었다. 사실, 유엔에서 다뤄지는 인권문제들이 당장 한국 사회의 인권현실을 개선시키는 것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한국정부가 인권이사회 단골 문제국가인 수단이나 버마, 스리랑카와 같은 수준으로 떨어지길 원하지 않는다면 조금이라도 앞으로의 유엔인권기구들을 의식하리라 믿기에 너무나 부족했던 준비에도 불구하고 조금이나마 의미를 찾을 수 있는 활동이었다. 만약 앞으로 다시 제네바에 갈 기회가 생긴다면 사전에 충분한 조사와 준비를 가지고 가야겠다는 교훈을 얻었다. 그때에는 레만 호수의 아름다운 풍경을 여유있게 바라보리라 생각하였다. 

나현필 (국제민주연대 활동가)

☆ 이글은 '유엔인권센터'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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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 국가의 인권과  민주화의 자취를 찾아서
아시아 인권옹호자 전기 중심으로

올해는 유엔이 인권옹호자선언 (UN Declaration on Human Rights Defenders)을 채택한지 10주년이 되는 해입니다. 이를 기념해 국제연대위원회는 버마, 인도네시아, 베트남 등 아시아 국가를 중심으로 인권과 민주화를 위해 활동한 아시아 인권옹호자의 삶을 조명해 보는 기획 연재 코너를 마련했습니다. 아시아 인권옹호자의 일대기를 통해 살펴보는 각 국의 인권 상황과 민주화의 자취는 아시아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히고 새롭게 아시아를 만나는 기회가 될 것입니다.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편집자 주>

멀고 먼 버마 민주화의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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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 민 코 나잉 (Min Ko Naing)
연혁 : 1962 ~ 현재
국가 : 버마 (Burma)
분야 : 민주화 운동





폭력적인 통치, 버마 군부독재의 시작


1948년, 버마는 무려 100년이 넘는 영국의 식민통치에서 벗어나 독립을 이루게 된다. 그렇지만 정치 지도자들의 권력투쟁과 영국의 분리 통치 정책의 고수로 버마는 내전에 휩싸이게 된다. 이를 폭력적인 방법으로 진압하던 과정에서 군대와 지휘관들이 정치적으로 큰 세력이 되었고 1962년 3월 군총사령관 네윈이 국민에 의해 선출된 우누 수상이 이끄는 정권을 쿠데타로 장악하면서 버마에서는 인권 유린과 군부 독재의 시대가 시작되었다. 네윈 군부는 버마식 사회주의를 내걸고 버마사회주의정책당의 일당지배체제만을 인정하고 경제적으로도 대부분의 사기업과 그 재산을 몰수하여 국유화하였다. 그 결과 버마에서 민주주의는 사라져 버렸고 군부의 부정부패가 팽배하였으며 과거 아시아의 쌀창고라고 불리던 버마는 국민들이 인권탄압과 가난, 경제 붕괴로 고통 받는 나라가 되어버렸다.  

버마의 민주주의를 위하여, 네윈 군부가 쿠데타를 일으켰던 1962년부터 학생과 노동자들의 지하 조직을 주축으로 한 민주화 투쟁은 80년대까지 꾸준하게 이어져왔다. 80년대에 들어 심각한 경제난이 버마를 덮치자 1987년 군부는 아무런 예고도 없이 버마의 화폐 가치를 취소해 버렸고 이에 분노한 버마 국민들은 1988년 8월 8일 군부에 저항하는 대규모 시위를 벌이게 되었다. 이것이 바로 8888시위이다. 그러나 군부는 버마 국민들이 총 봉기한 8888시위를 무자비한 총격과 살상으로 진압하였다. 전국적인 시위로 버마의 불안정한 상황이 계속되고 전국 각지의 시위를 연계여 이끌 지도력이 없었던 틈을 타 1988년 9월 18일 서마웅 장군은 또다시 쿠데타를 일으킨다. 새로운 군부는 민주적 총선거로 권력을 이양하겠다고 약속했지만 버마의 국민들은 새로운 쿠데타와 군부를 믿지 않았고 거센 시위와 저항, 폭력적인 진압, 수 천 명에 달하는 버마 국민들의 희생은 계속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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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888 항쟁 당시 버마 승려들의 시위 모습 ⓒ버마 정치범 지원모임(appb.org)

군부에 맞서기 위한 여러 단체들이 조직되었고 ‘전 버마 학생연합(The All Burma Federation of Student Unions; ABFSU)의 대표였던 민꼬 나잉(Min Ko Naing)’과 학생들은 평화적인 학생운동을 통해 군부의 통치에 대항하였다. 1988년 9월에는 주요 민주화 활동가들이 모여 ‘민족민주연맹(National League for Democracy)’을 창설하였다. 아웅산 수지(Aung San Suu Kyi) 여사 등 NLD의 주요 지도자들을 모두 체포하고 민꼬 나잉과 같은 활동가들마저 체포하는 등 심한 제재 속에서 1990년 군부가 약속했던 총선거가 실시됐고 그 결과 NLD는 국민들의 압도적인 지지를 받았지만 군부는 정권 이양을 실천하지 않았다.

군부는 민주화의 길을 열겠다고 약속했지만 여전히 버마 국민과 민주 지도부, 인권 활동가들에 대한 탄압과 독재는 이어지고 있다. 그러나 민주주의를 향한 버마 국민들의 열망도 2007년의 대규모 민주항쟁에서 볼 수 있었던 것처럼 식지 않고 계속 이어지고 있다.

'왕들의 정복자'  민 꼬 나잉

민꼬 나잉은 1962년 버마의 수도 양곤에서 U Thet Nyunt와 Daw Hla Kyi의 3남 1녀 중 셋째 아들로 태어났다. 그가 정치에 대해 관심을 가지게 되었던 것은 1980년대 양곤 미술과학 대학에 다니기 시작하면서부터였다. 당시 그의 전공은 동물학이었지만, 학교생활 동안 그는 시를 읽고 쓰며 풍자만화를 그릴 수 있었던 미술동아리에서 활발하게 활동하였다. 그는 또한 대학시절, Thingyan(물 축제) 기간 동안 전통 Than Gyat(공연) 대회에 참가한 공연단의 멤버로 활동하기도 했는데 공연단은 버마의 군부정권에 의한 자유와 민주주의의 억압을 풍자하는 단막극을 공연하였다. 1985년 버마의 경제적 상황에 대한 불안이 짙어지자, 나잉과 그의 동료들은 차후에 일어날 정치적 폭동을 예상하고 비밀리에 지하 학생연합을 조직하였다.

그의 원래 이름은 Paw U Tun 으로, ‘왕들의 정복자’라는 의미의 민꼬 나잉이란 이름은 1988년 군사정권을 비판하는 포스터와 전단에 서명하기 위한 필명으로 그와 동료 학생들에 의해 채택되었다. 1988년 8월 28일 나잉은 전국적인 규모의 '전 버마 학생연합'을 조직하여 평화적 수단으로 불법적인 군사정권에 맞서기로 결의, ‘8888 시위’에 크게 기여하였다. 시위 기간 동안 많은 사람들이 거리로 뛰쳐나가 정부를 규탄하고 민주주의를 부르짖었다. 나잉의 연설, 공약, 시는 동료 학생들과 버마 시민들을 감동시키며, 그는 군사정권에 대항하여 평화적 시위를 독려하는 지도자로 부상하였다. 그러나 불행히도 현재 ‘국가평화발전평의회’로 알려져 있는 군사정권에 의해 시위대는 무자비하게 진압되었다. 그후 수천 명의 학생들과 사람들이 국경으로 탈출하여 무장투쟁을 시작하였지만, 그는 탈출을 거부하고 버마에 남을 것임을 천명하였다. 학생운동은 전적으로 비폭력 평화운동이어야 한다고 생각한 나잉은 군사정권의 감시를 피해 이리저리로 숨어 다니면서도, 군사정권의 5명 이상 집회 금지에 대한 시민 불복종 운동을 조직하는 등의 일을 게을리하지 않았지만, 결국 1989년 3월 24일에 다른 학생들과 함께 체포되어 긴급사태적용법 5조에 따라 20년 형을 선고받았다. 긴급사태적용법 5조는 반란을 선동하여 법, 평화, 안정을 해친다는 명목으로 정치범들을 구속하는데 자주 사용되던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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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민주화운동 단체 '88 세대'의 활동 모습. 오른쪽 두번째가 민꼬나잉 씨 ⓒbinamojo.org

1993년 1월, 나잉은 일반 사면에 의해 10년으로 감형 받게 되고, 국제사면위원회에 의해 양심수로 선정된다. 국제사면위원회에서는 그의 석방을 위해 활발한 석방 캠페인을 펼쳤는데, 국제사면위원회에 따르면 그는 수감 초기에 심각하게 고문을 당하고 제대로 치료받지 못해서 건강이 급격히 악화되었다고 한다. 보도에 따르면 그는 심문 과정에서 물속에서 쓰러질 때까지 서있기를 강요받았고 그 결과 왼쪽 다리의 감각을 완전히 잃게 되었다고 한다. 2004년 11월 19일, 나잉은 15년간의 투옥생활 끝에 풀려나게 된다.
그러나 그가 석방된 지 불과 2년 후인 2006년 9월 말에 그는 다른 학생 지도자 4명과 함께 다시 수감된다. 단순 조사 차원에서 구류한 것이라고 군사정권은 주장했지만, 나잉과 4명의 학생 지도자들은 흔히 군사정권이 ‘국내 소요, 불안정, 테러리즘’이라고 말하는 명목에 대한 우려로 인해 구속된 것이 확인되었고 이로 인해 나잉의 체포에 대한 거센 반발이 일어났다. 2006년 10월 10일부터 18일까지 버마에서는 두 번째 수감생활 중이던 나잉과 그 외의 모든 정치범들의 석방을 촉구하기 위한 캠페인이 열렸다. 8888시위 당시에 체포되지 않았던 남아있는 88세대 학생들에 의해서 조직된 이 캠페인은 ‘White Expression’이라고 불렸는데, 참가자들이 모두 하얀색 옷을 입고 모든 정치범들의 석방을 촉구하는 시위를 벌였기 때문이다. 또한 88세대 학생들은 군사정권을 압박하기 위해 서명운동을 벌였고 이 서명운동에는 Ludu Daw Amar와 Zarganar와 같은 유명한 예술가들도 동참하였다. 여론의 극렬한 비난과 나잉의 즉각적인 석방 요구에 의해 정부 당국은 2007년 1월 11일 그를 다시 풀어주었다.  
 
버마의 독립기념일인 2007년 1월 4일에는 그의 88세대 학생 그룹이 모여 표현의 자유를 체험하도록 사람들을 독려하기 위한 ‘Open Heart’ 캠페인을 펼쳤다. 또한 이들은 2007년 3월 11일부터 5월 20일까지 ‘White Sunday’ 캠페인을 벌였다. 정치범의 가족들에게 도움을 주고자 매주 일요일 양군의 정치범 가족들을 방문하는 캠페인이었다. 그러나 그는 평화 시위 조직을 주도한 혐의로 2007년 8월 21일 자정에 다른 학생 그룹 리더들과 함께 체포되어 현재 구속 수감된 채 재판를 받고 있는 중이다. 군사정권의 치료 제공 거부로 극심한 고통 속에 실명의 위기에 처한 그는, 지난 2008년 9월 9일 법정에서 다음과 같이 부르짖었다. “You can sentence us to a thousand years in prison for our political activities, but we will continue to defend ourselves in accordance with the law. Nobody can hide from justice.” (버마군부는 우리의 정치적 활동을 탄압할 수 있지만 우리는 법에 따라 우리 자신을 보호할 것이다. 어느 누구도 정의를 무시할 순 없다)

버마 민주화를 위한 국제 사회의 움직임   

국제사면위원회와 같은 국제적인 인권단체의 발표에 의하면 현재 버마에는 나잉과 비슷한 이유로 감금되어 있는 정치범들이 2000여명에 이른다고 한다. 2007년 5월엔 태풍이 버마를 덮쳐 150만 명의 국민이 위험에 처한 상황에서도 군부는 국제 사회의 경고를 무시하고 국민투표를 강행하여 신헌법을 통과시켰다. 그후 8, 9월 승려들이 주축이 된 대규모 반정부 시위가 전국적으로 일어났다. 당초 시위는 군사정권이 하룻밤 사이에 디젤 값을 2배, 천연가스 값을 4배로 인상하는 등 경제 파탄에 대한 불만이 원인이었다. 그러나 승려들이 구심점이 되며 무능력한 군정에 대한 반대, 민주화를 요구하는 항쟁으로 확산됐다. 88년 이후 최대 규모인 10만여 명의 승려와 시민들이 참여한 2007년 9월 샤프란(승려복을 상징하는 선황색) 민주항쟁을 통해 민주화 열망이 다시 피어올랐지만, 군부의 탄압으로 대규모 유혈사태를 빚으며 최소 2백여 명이 희생당하고, 1만여 명이 강제로 연행, 구금되었다.

세계 곳곳에서 버마의 민주화를 열망하는 버마 민중들의 노력은 샤프란 민주항쟁 1주년을 맞은 지금도 여전히 타오르고 있지만 이에 반해 지난 20여 년 간의 버마 군부독재에 대한 국제사회의 대처나 한국 정부의 대응은 미미한 실정이다. 1997년 인권유린을 이유로 미국이 경제봉쇄를 단행하였지만, 중국과 인도 같은 일부 열강들이 자국의 이익을 위해  버마 군부를 도와 그들은 전혀 타격을 받지 않았다. 한편, 지난해 유엔 이브라힘 감바리 특사가 미얀마 군정의 평화시위에 대한 유혈진압 사태 직후에 버마를 방문, 탄 슈웨 군정 최고 지도자와 민주 진영 지도자인 수치 여사 등을 면담하고 국가화해를 촉구했다. 그러나 그후 가시적인 성과를 거두지 못해, 가택연금 상태에 있는 아웅산 수지 여사는 군부에 대한 저항과 무기력한 국제 사회의 평화 중재 방안에 대한 실망의 표시로 올해 8월 중순부터 한 달 간 단식에 들어가 지난 8월 말 감바리 특사와의 만남을 거부하였다. (미국은 루비와 비취 등 미얀마산 보석의 국내 수입을 금지하고, 미얀마 지도자의 재산을 동결하는 것을 골자로 한 법안을 통과시켰다. 유럽연합도 비자 발급 중지와 자산 동결, 무기 금수 등 기존의 제재조치 외에 목재와 보석류, 금속, 광물 등의 수입 금지 조치를 추가로 내렸다. 그러나 미얀마가 가입한 동남아국가연합(ASEAN) 회원국들은 “내정에 간섭하지 않는다”는 방침을 고수하며 제재에 소극적인 자세를 나타냈다.) 군부는 최근 아웅산 수지 여사에 대한 가택연금 조건을 일부 완화했고,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은 올 연말에 미얀마를 방문, 교착상태에 빠진 정치상황에 대해 논의할 예정이다.

한국에서도 버마의 군부독재 상황과 민주화운동에 대한 관심이 커진 상태고, 지난 9월 25일 8명의 버마민주화운동가들이 2000년 난민지위 신청 이후 8년에 걸친 법정공방 끝에 난민지위를 인정받기도 했지만, 여전히 버마에 대한 투자와 한국 기업의 방위산업물품 제조 플랜트 건설 등을 통해 버마 군부를 간접적으로 돕고 있는 등 버마의 민주화에 대한 총체적인 인식이 부족한 상태이다.

한국의 시민사회단체들은 한국에 머물고 있는 버마 활동가들과 함께 버마 민주화를 위한 ‘프리버마’캠페인을 매주 화요일 종각(서울)에서 벌이고 있으며 다양한 국내외 연대활동을 통해 버마군부의 인권탄압을 중지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정리 : 최유미, 김연재 (국제연대위원회 자원활동가)

참고 사이트
참여연대 버마 성명 http://blog.peoplepower21.org/International/40118
프리버마캠페인(인권실천시민연대) http://www.hrights.or.kr/
NLD 한국지부 http://www.nldla.or.kr/
버마행동(Burma Action Korea) http://cafe.daum.net/mmwc
 
 
Posted by 영기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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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 내 이야기 들어볼래?
아시아 다큐 영상회 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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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23~9/25 사흘간 경희대 네오르네상스관에서 아시아 다큐영상회를 참여연대, 경희대NGO대학원학생회, 프론티어가 함께 진행하였습니다. 이주민, 빈곤, 노동 인권을 주제로 다큐멘터리 영상을 보고 관련 분야 활동가 분들과 이야기 하는 시간을 약 2시간동안 가졌습니다. 영상회에 참석했던 분들의 후기를 모아 영상회 내용을 공유합니다. <편집자 주>


첫째날: 이주자의 목소리 
국가 보호가 필요하다(로버트 프레이/한국, 캐나다/20분/Mocku/2008년)
어둠 속의 등불(어속 타파/한국, 네팔/18분/다큐 Docu/2008년)

안녕..인사를 건넨다.
내 이야기를 들어볼래..? 호기심이 생겼다...
무슨 이야기를 해줄건데? 그냥.. 내가 사는 이야기.....

그렇게 그들이 해줄 이야기들을 듣게 되었다.
그들은 나에게 이주자들이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 보여주었다. 이 땅에서 많은 것을 누리며 살아가고 있는 나에게, 그들도 함께 살자고 말을 걸며 그들의 아픔을 나에게 보여주기 시작했다.

한 지구촌에 살면서 더 나은 삶을 꿈꾸며 멀리 바다를 건너 한국 땅에 들어와 사는 이주자들. 솔직히 이주자들에 대해선 별다른 생각이 없던 나였다. 안산에 외국인 노동자들이 많다더라, 그 도시는 70% 정도의 외국인 노동자가 있어서 그 도시에 가면 다른 나라 같다더라.. 이런 이야기를 들을 때에도 별다른 감흥이 없던 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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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영(이주노동자방송 사무처장)과 어속 타파(어둠 속의 등불’ 감독)과
이주노동자의 삶과 한국 사회의 이주민 정책에 대해 이야기 함


우리나라이고 돈 없는 그들이 이 나라에 돈을 벌러 왔으며 그저 조용히 돈을 벌고 가면 된다고 생각했다. 어찌보면 나는 그들에게 주인이 되고자 하는 마음이 있었던 것 같다. 그렇다. 나는 한국 땅에 사는 한국 사람으로서 특권 의식이 있었던 것이다.

그런 나에게 그들의 이야기는 나에게 생각할 여지를 남겨주었다. 그들도 사람이었다. 그들도 나와 같이 아픔을 느끼는 사람들이었고, 그들에게도 지켜주어야 할 가족이 있었으며, 그들에게도 인권이 있었다. 그들이 나에게 요구했던 것은 돈이 아니요, 동정도 아니요, 그저 따뜻한 가슴이었다. 그들은 내 민족처럼 여길 수 있는 마음 말이다. 지구촌이라 떠들며 글로벌 시대라고 말을 하면서 이 시대에 가난과 절대 빈곤은 사라져야 한다며 그들을 위해 일하겠다고 했던 나에게 정말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알게 해 주었다.

나는 이주자들을 위해서 일을 하진 않을 것이지만, 이 시대를 살아가며 내가 진정 누구와 함께 살아가고 있는 것인지는 잊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이제는 그들이 하는 얘기를 그들의 시선에서 듣고자 노력할 것이다. 한국에서 살고 있는 한국 사람의 입장을 버리려고 한다. 그게 어디 쉽겠는가? 난 여전히 한국사람 인 것을.. 그러나 노력하려 한다.

생각이 없던 나에게, 이런저런 질문을 스스로 하게끔 기회를 준 아시아 다큐 영상회가 다양한 곳에서 다양한 시민들에게 열려지길 원한다. 특히 이 땅의 많은 청소년과 청년들에게 보여지길 원한다. 그들이 더불어 사는 사회를 더 많이 경험해 보길 원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영상들이 나만 잘먹고 잘 살면 된다는 의식이 팽배한 한국사회에 작지만 조용한 경종이 되길 원한다.(김효정/NGO대학원)



둘째날: 가난에 대한 연대
사우스 레일: 가난에 대한 연대 (경순/ 한국/ 25분/다큐 Docu/2008년)

짧은영화 한편 보고 와야지, 하고 생각했던 아시아 다큐영상회.
ODA에 관한 의식이 짧은 나에게 이 영화는 너무도 간결하게 메세지를 전달해주었다.
기차가 코끝을 스칠만큼이나 가까이, 사람들은 철로를 따라서 다닥다닥 붙어서 생활을 한다.
'아, 저런 생활을 이제 도와주는거구나'하고 생각을 할 장면이 개발원조의 결과라니...
이것참. 도움이 되기는 한거야? 하고 되물을만큼 사람들의 표정은 행복하지 못하다.

필리핀의 남부철도사업 때문에 주거지를 이동해야만 했으나, 이주지가 너무도 멀어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 거주지와 일자리를 모두 잃게 된 그들은 적절한 보상을 받지 못한채 생계를 유지하기 위한 노력을 하고 있었다.

생존권을 위협받고 있는 그들에게 공적개발원조는 어떤 의미로 받아들여지고 있는지.
과연 개발을 하는것이 진정 그들을 위한 것인가. 무엇을 원하는지를 파악해서 개선을 해주는 것이 더욱 바람직하지 않은가. 개발에 대한 원조 이전에 가난에 대한 연대가 먼저 필요할 거라던 이 영화의 메세지.

당연한 이야기이지만, 당연시되지 못하고 있는 부분을 보여주었다. 나 또한 도와준다고 행했던 일들이 어쩌면 상대방에게 폭력이 되어 행사가 되고 있진 않았는지 돌아보게 되던 영화. (여민정/NGO대학원 시민정치문화 전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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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데스(LOCOA 사무국장)와 남부철도 사업의 전개 과정에서 나타난
이주민들의 인권침해에 대해 이야기를 나눔.



셋째날:  청바지 제조 공장 소녀의 편지
차이나 블루 (미차 펠레드/캐나다/ 86분/다큐 Docu/ 2005년)

오늘은 아시아 다큐영상제에 관심을 가지는 人들이 많기를 바라며, 발걸음을 향했다.

기자재에 문제가 있었던 어제와는 달리 오늘은 셋팅까지 완벽하게, 고요한 음악과 함께 '차이나 블루'를 맞이했다.

그녀는 17살이라 했다. 고향을 떠나 청바지 공장에서 일하는 그녀는 처음에는 일을 한다는 기쁨에 행복해했지만, 기숙사 생활을 하는동안 공장의 실태와 혹독한 노동환경을 경험하며 한주 한주..힘겹게 살아간다. 다큐형식으로 사장과의 인터뷰, 그녀와 관계된 친구들의 생활을 그대로 보여주는 일기형식으로...화면은 채워져간다. 한시간 넘게 상영되는 이 영화를 보면서 '세계화'에 대한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리고 앞부분에 나오는 수출국 중국의 현실과 마지막 부분에 나오는 크고 뚱뚱한 사람들의 나라, 미국은 개발도상국이 싼 노동력을 바라는 선진국가들의 폐해를 간접적으로 잘 보여주고 있었다.

덩샤오핑의 개혁개방 정책에 따라 어떤 색깔의 고양이가 중요한게 아니라, 쥐를 잡는 고양이가 중요하다며, 중국 또한 개발, 성장에 역차를 가하고, 지금까지 놀라운 경제성장의 길을 걷고 있다. 그러나 그 이면에는 우리나라가 그러했듯이 많은 서민들이 고통받고 있는 것이다.

나는 두번째 영화에 이어 우리의 근본적인 문제, 빈곤과 가난의 문제를 심각하게 생각하게 되었다. 이 빈곤과 차별의 문제는 화폐가 생기면서, 자본주의가 낳은 기본적인 논리지만 '세계화'라는 명목으로 자연스레 남북문제가 생겨나게 되었고, 그 사회구조적인 문제가 인권, 환경, 차별 등의 문제로 뻗어간 것이다. 단순히 기본적인 환경개선만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근본적인 경제구조가 문제인 것이다. 그러나 쉽지 않다.

우리가 입고 있는 옷, 음식, 듣고 있는 음악, 보고 있는 책, 모든 것이 세계화의 영향이다. 세계화는 정치, 경제, 문화, 생활의 모든 영향에서 이렇게 우리에게 영향을 끼치고 있다. 중국의 어린 노동자들이 이렇게 고생하고 있다는 사실도 어쩌면 모두 세계화의 영향으로 알게 된 것이다...과연 오늘 아침 맛나는 커피 한잔에 힘겨워할 소수자들은 없을지 생각해보아야 하는 시점이다. 그리고 나 혼자만이 아닌, 이 시대를 살고 있는 이 땅의 젊은이들이 생각해보아야 할 문제이다.(김민아/경희대 NGO대학원 정책관리전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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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상회 참가자들과 한컷! 따끈한 후기 감사합니다.
영상회에 대한 다른 분들의 짧은 소감도 곧 소개하겠습니다.

Posted by 영기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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