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네시아 노동조합으로부터 온 편지
이명박 대통령 한인공장 방문 유감

지난 3월 6일부터 8일까지 이명박 대통령 부부가 인도네시아를 국빈방문한지 열흘이 지난 뒤에 인도네시아독립노조연합(GSBI: Gabungan Serikat Buruh Indonesia) 위원장 얀띠(Emelia Yanti MD. Siahaan)로부터 이메일 편지를 한 통 받았다. 그 내용은 대통령 일행의 한국인 소유 공장 방문에 대한 유감을 표명하는 것이었다.

이명박 대통령 부부는 3월 7일 오후에 한인투자 ‘최고의 기업들’ 중에 하나라며 보고르(Bogor)의 의류공장을 방문하였다. 한국인 소유의 이 공장은 2천여 명의 현지인 노동자들을 고용하고 주문자상표부착방식으로 Le Coq Sportif를 비롯한 유명회사의 스포츠의류를 제작하여 유럽시장에 수출하는 기업이다. 그 공장에서 대통령 일행은 약 한 시간 반 동안 사장을 만나고 생산품을 소개받고 작업장을 둘러보았다. 그런데 인도네시아 노동조합활동가 얀띠는 이 회사가 “결사의 자유 위반과 기진맥진한 작업조건에 있어서 최고의 기업”이라며 대통령의 방문에 유감을 표하는 성명서를 세계도처의 활동가들과 학자들에게 발송했다.

2003년에 이 회사는 노동조합이 결성되자 많은 수의 노동자들을 해고시켜서 국제소비자운동단체들로부터 항의서한을 받았던 기업이었다. 인도네시아 노사관계를 조사하고 있던 필자도 사건 발생 직후에 그 소식을 현지에서 소상하게 들은 바 있다. 당시에 필자가 만났던 해고자들의 진술에 따르면, 이 회사의 경영자는 노조가 결성되자 노조간부 4명에게 가택대기 처분을 내렸고 이에 항의하는 파업이 발생하자 168명을 집단 해고하였다. 노조원들은 사장과의 직접 협상, 해고자 원직복직, 인사과장 해고, 노동조합 인정 등 4개항을 요구하였으나, 공장장은 “사장과 만나자는 것은 대통령을 만나자는 것”이라는 고압적인 태도를 보였다. 그러자 해고자들은 지역노조의 도움을 받아 영문으로 항의성명서를 작성하여 해외각지로 발송했다. 이에 호응하여 깨끗한 옷 입기 캠페인(CCC; Clean Clothes Campaign), 노동권콘소시엄(Workers’ Rights Consortium) 등 유력한 국제소비자운동단체들이 홈페이지 전면에 이 기업 사례를 소개하고 항의서한을 보내는 운동을 전개하자 기업의 이미지 손상은 물론이고 한국인의 국제적 이미지까지 손상시킬 것이 우려되었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 지난 3월 인도네시아를 국빈방문중인 이명박 대통령은 한인 투자 의류업체를 방문했다. ⓒ뉴시스

그런데 이 회사의 상황은 “그 후 여러 해가 지났지만 나아진 것이 없다”고 얀띠는 주장하였다. 이 회사는 생산목표량을 채우지 못한 노동자는 그것을 완수할 때까지 잔업수당 없이 남아서 일해야 하는 시스템을 운영하고 있으며, 2007년에도 바이어들에게 작업조건에 관한 편지를 보냈다는 이유로 두 명의 노조간부를 해고한 바 있고, 회사에 존재하는 두 노조에 대한 편의제공을 달리하여 상대적으로 전투적인 노조를 차별하는 등의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얀띠는 다음과 같은 질문으로 편지를 끝냈다. 제품의 질이 향상되고 수출 물량이 증대하여 그 기업이 찬사를 받는다면 그 제품을 생산해낸 현지 노동자들이 마땅히 칭송받아야 되지 않겠는가? 만약 그 기업이 결사의 자유를 비롯한 노동권을 침해하는 기업이라는 점을 알았더라도 한국의 대통령은 이 한국인 기업가를 여전히 자랑스러워하고 칭송했을까?  

이명박 대통령은 인도네시아 현지에서 ‘신아시아 외교’를 천명하였다. 아직 그 내용이 명료하지는 않지만, 현지 한인기업 방문 사례를 통하여 새로운 아시아 외교의 편향성을 우려할만한 징표를 읽어낼 수 있다. ‘추한 한국인’ 이미지가 제기되던 1990년대 중반이래로 지난 10여 년간 한국의 시민사회운동단체들은 한국인의 해외투자기업에서 벌어지는 인권침해실태를 모니터하는 활동을 전개하였다. 덕분에 현지사회에 대하여 한국인 스스로 문제를 제기하고 개선하려는 의지를 보여주었고 국내적으로는 자원의 이용과 경제적 이익에만 골몰하지 말고 그곳에 사는 이웃들을 생각하자는 의식을 확산시켰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이런 노력은 한국외교 일선에 공유되지 않았었나 보다. ‘국가의 편에서’ 현지의 유감을 불러일으키지 않는 외교상의 간단한 기술을 제안하자면, 다음과 같은 질문을 잊지 말고 추가하라고 권하고 싶다. ‘기업의 편에서’ 방문 후보로 추천되는 그 현지 한인기업이 인권문제를 일으킨 적이 있는가? 이런 식의 질문이 ‘신아시아외교’를 구성하는 하나의 요소가 되기를 바란다.


전제성(열린전북 편집위원, 전북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이 글은 [열린전북 5월호]에 기재된 글입니다.
Posted by 영기홍
,
한국 사회운동권에 ‘아시아연대’가 새로운 키워드로 부각되고 있다. 그 아시아연대의 중심대상지는 ‘동아시아’(동북아+동남아)이다. 서남포럼의 추산에 따르면, 동아시아연대를 역점사업으로 추진하는 시민사회단체는 100개에 육박한다. 참여연대는 2004년 창립 10주년을 맞아 아시아연대활동의 활성화를 주요사업으로 상정했으며, 올해부터는 국제연대위원회의 아시아연대사업을 본격 가동하기 시작했다. 한국인권재단도 아시아연대를 주요 역점사업으로 삼고 동남아 인권문제에 대한 조사와 활동가교류프로그램을 지원할 계획이다. 이밖에 ‘함께하는 시민행동’ ‘버마행동’ ‘국제민주연대’ 등 20여개 단체가 버마(미얀마)의 인권침해를 규탄하고 관심을 촉구하는 캠페인을 전개하고 있으며, ‘바스피아’도 아시아 여성과 아동의 권리보호를 목적으로 활동을 개시했다.

인권운동단체뿐만 아니라 노동운동계의 아시아연대도 활발하다. 대표적으로 ‘아시아태평양노동자연대 한국위원회’는 아시아레이버넷 웹사이트를 만들어서 아시아의 노동정보와 동영상을 영어나 아시아 언어로 게시하는가 하면 한국과 동남아의 단위노조간 자매결연을 통한 풀뿌리연대활동을 진행하고 있다. 그 밖에 환경운동, 여성운동, 소수자운동, 평화운동, 문화운동, 학술운동 등의 분야에서도 많은 단체들이 동아시아연대활동에 적극적인 행보를 보이고 있는 실정이다. 홍콩, 필리핀, 태국, 말레이시아 등 동아시아 각지의 초국적 단체들에서 근무하는 한국인 활동가들도 한국의 동아시아연대운동에 중요한 일익을 담당하고 있다. 한국사회의 이러한 동아시아연대운동은 동아시아를 담론의 대상에서 실천의 영역으로 구체화하는 작용을 할 것으로 기대된다.

‘아리랑’의 김산처럼 한국 독립을 위해 중국혁명에 뛰어든 실천방식이나 안중근처럼 동양인의 정체성에 입각해 일본의 침략을 질타했던 논리에서 간파되듯이, 한국 사회 동아시아연대운동의 기원은 해방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러나 해방이후 한국전쟁과 냉전으로 동아시아의 지역적 연대 구상과 실천은 그다지 두드러지지 못했다. 아마도 한국사회의 동아시아연대 이니셔티브는 90년대 이후의 산물일 것이다. 90년대 이후는 한국인 자본의 동아시아 투자와 동아시아인의 한국 유입이 두드러진 시대이다.

88년부터 한국인기업들은 ‘값싸고 온순한 노동자’를 찾아 인도네시아에 대거 진출하기 시작했다. 90년대에 이르러 베트남과 중국이 주요투자지로 추가되면서 자본의 동아시아 진출이 러시를 이루게 된다. 이런 가운데 현지 한인공장에서 현지노동자들의 인권침해 소식이 전해지고 이에 따른 현지 노동단체들의 반발과 지원요청이 답지하면서 해외 한국기업의 인권침해는 운동단체들로서는 좌시할 수 없는 시급한 문제로 제기되었다. 이에 따라 참여연대가 95년부터 한국해외진출기업문제 특별위원회를 결성하여 동남아와 중국에 투자된 한인기업의 인권침해 문제를 조사하는 사업을 전개하였다. 참여연대의 활동은 한국 주도 동아시아 사회운동연대의 선구적 사업 중에 하나였다.

또한 90년대 이후부터는 한국자본주의가 아시아의 외국인노동자들을 끌어들여야만 가동되는 단계로 접어들게 된다. 최근에는 동아시아 여성들이 국제결혼을 통해 한국에 거주하는 ‘동아시아적 인구재생산’ 시대를 맞이하게 됐다. 이러한 아시아 여성 및 노동자의 한국러시는 수백개에 달하는 외국인노동자 및 이주인권운동단체의 출현을 유발하였다. 요컨대 한국과 동아시아간 자본과 인구의 이동을 핵심으로 하는 사회경제적 변화는 결국 ‘동아시아 속의 한국’과 ‘한국 속의 동아시아’에 대한 성찰과 함께 공동실천을 자극하게 됐다.

한편 한국 경제의 위기상황도 동아시아 연대의 필요성을 제고시켰다. 97년에 태국, 인도네시아, 한국이 함께 경제위기를 맞이하는 상황은 동병상련의 공감대를 낳으며 각국의 시민사회가 공동으로 대응해야 한다는 인식을 고양시켰다. 특히 노동운동을 비롯한 민중운동 진영이 영향을 크게 받았는데, 이를테면 민주노총이 동남아지역의 노동운동에 대한 조사단을 파견하고 보고서를 발간한 것이나 아시아초국적기업감시네트워크(ATNC)에 관심을 갖고 참여한 것은 대표적인 사례다.

또한 동아시아연대운동은 정치외교적 계기를 통해 가속화되었다. 그것은 바로 ‘위로부터의’ 동아시아지역협력의 심화이다. 아세안(ASEAN)+3(한·중·일)을 추진축으로 하는 정부간 지역협력은 경제위기 이후 날로 강화되어가고 있는 실정이다.

정부간 동아시아지역 협력의 심화에도 불구하고 한국의 사회운동에 의한 ‘아래로부터의’ 참여와 영향력 행사는 좀처럼 실현되지 않고 있다. 한국의 사회운동은 아시아연대를 주장하면서도 주로 유엔 산하기구들을 협력의 대상으로 고려하고 아시아의 지역협력기관은 진공상태로 내버려두고 있다. 이 점에 있어서는 동남아의 사회운동이 우리보다 앞서 있다. 아세안을 상대로 압력과 교섭의 경험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방콕에 사무국을 둔 포럼아시아의 이성훈 실행소장의 말처럼 “한국에서 동아시아연대는 담론이고 동남아에서는 현실”인 셈이다.

한국시민사회의 동아시아연대운동은 역사가 짧고 인적·물적 자원이 부족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동아시아의 이웃 국가들로부터 연대활동에 대한 요구는 늘고 있다. 한국이 서구에 비해 지리적으로 가깝고 한국 사회운동의 목표와 과제가 자신들과 유사하다고 보고 있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인도네시아 사회운동가들은 2004년 총선시기에 한국의 낙천낙선운동을 ‘수입’하여 조직적인 캠페인을 전개한 바 있다. 그들은 양국 활동가의 교류방문이나 연수 기회 확대를 요청하고 있다.

그런데 성급해서는 안될 것이다. 자신을 한국 노동운동 ‘팬클럽 회원’이라고 표현하는 태국 여성노동운동가 렉(Lek)은 “팬클럽 회원들이 한국을 무척 좋아하면서도 한국에 대해서는 잘 모른다”고 말한다. 우리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동아시아연대운동을 전개하면서도 동아시아에 대해 잘 모른다. ‘전태일평전’을 번역하고 있다는 렉은 한국 활동가들이 ‘형제’보다는 ‘큰형’처럼 행세하려 하거나 자기들끼리만 어울리며 타문화에 대해 다소 폐쇄적인 태도를 보이는 것은 문제라고 꼬집는다. 한국 노동운동의 ‘아시아 리더십’을 기대한다는 태국의 중견활동가 솜욧(Somyot)도 한국 노동운동이 아시아전체의 이슈가 아니라 국내적 관심사를 밖으로 들고 나오는 한계가 있다고 비판한다.

동아시아연대운동은 우리 것을 알리고 고수하는 것을 넘어서 우리가 배워나가고 변할 것을 요구받는, 쉽지 않은 작업이다. 우리가 동아시아를 이미 알고 있다는 식의 생각이나 그들도 우리가 지나온 길을 그대로 따라올 것이라는 생각은 서구의 근대화론을 답습하는 오류를 범하는 것이다. 서로 배우려 하지 않으면 연대운동은 발전하기 어렵다.

태국서 ‘임을 위한 행진곡’ 울려퍼지다

방콕에는 태국노동자박물관(Thai Labour Museum)이라는 아주 흥미로운 장소가 있다. 비록 태국가이드북에는 빠져있으나 화려한 왕궁과 흥청대는 술집에 가려진 태국의 이면을 발견할 수 있는 곳이다. 이 박물관은 노동사의 측면에서 고대, 근대, 현대의 태국사를 사진과 동영상으로 재현하고 있다. 이곳의 관리는 태국사회운동가들에게 널리 알려진 노동자밴드 파라돈(Paradon)이 맡고 있다. 이 때문에 박물관을 방문하면 덤으로 민중가수들을 만나고 그들의 음반을 구입하며 사인을 받을 수 있는 특별한 기회도 가질 수 있다.

태국노동자박물관의 6개 방 중에서 하나는 태국노동가요사에 관한 기록영화를 보여주는 곳이다. 이 영화에는 노동가요 4곡이 소개되는데 마지막 곡이 바로 ‘임을 위한 행진곡’에 태국어로 가사를 붙인 ‘솔리대러티’(Solidarity:연대)이다. 광주민주화운동을 배경으로 하는 운동가요 ‘임을 위한 행진곡’의 가사를 영어로 소개한 뒤에 한국 노동자들의 시위장면과 함께 원곡이 흘러 나온다. 곧바로 대만판·홍콩판에 이어 태국어로 된 노래가 연주된다. 처음 이곳을 찾는 한국인 관람객들에게는 깜짝 놀랄 만한 일이다.

한류의 시초가 4·19혁명이었다는 이야기가 있다. 1960~70년대에 서구와 제3세계에서 들불처럼 번진 학생시위의 원조가 바로 4·19혁명이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노래에 있어서 한류의 원조는 ‘임을 위한 행진곡’이 아닐까 하는 추측을 해본다.

그런데 태국의 노동자밴드가 부르는 ‘임을 위한 행진곡’의 가사에는 아시아 연대에 대한 희구가 담겨있다. 1990년대에 한국을 찾은 태국노동정보센터소장 솜욧은 한국의 어느 대학교에서 처음 이 노래를 듣게 되었다고 한다. 그는 이 노래 테이프를 태국으로 가져가 계층의 연대를 통해 좋은 세상을 만들자는 내용으로 가사를 바꿔 부르기 시작했고, 마침내 노동자밴드 파라돈의 공식음반에 수록됐다.

그 뒤 이 노래는 각종 집회와 기념식에서 많은 사람들에게 애창되면서 널리 유행했다. ‘임을 위한 행진곡’은 태국으로 건너가 노래의 운율이 비장한 원본을 탈피하고 경쾌하게 변형됐다.

그래서 태국의 노동자들은 이 노래를 들을 때 활기찬 율동을 섞곤 한다. 솜욧은 “이 노래를 활동가교육 때 즐겨 불렀다”면서 “그것은 한국의 광주항쟁과 노동운동의 역사를 되새기며 국제연대의식을 고양시키려 했기 때문”이라고 회고한 바 있다. 숌욧의 이야기는 동아시아 연대에서 한국 사회운동의 책임성과 중요성을 일깨워준다.



* 이 칼럼은 경향신문에 실린 글입니다.
전제성(전북대 정치사회학부 교수, 국제연대위원회 실행위원)
Posted by 영기홍
,
회원들이 궁금해할 것 같다. 참여연대에서 국제연대도 하나?

95년부터 99년 9월까지 참여연대에는 국제인권센터라는 부서가 있었다.

국제인권센터는 "지구촌 좋은 이웃되기 거리캠페인"을 지속적으로 벌이며 다국적 기업감시운동, 해외투자 한국기업들이 현지인의 인권을 침해하는 것에 대한 지속적인 조사로 몇몇 회사의 조건이 개선되는 개가도 올리기도 했다. 그리고 99년 9월 참여연대 창립 5주년을 계기로 분리·독립 가능한 부서는 점차로 독립시켜 독자적 사업전개를 가능케 한다는 취지에서 국제인권센터를 독립시켰다. 독립한 단체는 심화되고 집중되는 독자영역을 확보하고 참여연대는 가벼운 몸으로 날쌘 전투기 같은 활동을 벌인다는 목적이다.

일반적으로 국제연대가 발전된 부문은 인권이나 환경, 평화, 소비자운동부분이다. 국제사면위원회(amnesty international), 그린피스, 국경 없는 의사회, common cause 등등

그런데 시민운동이 상대적으로 자리가 잡힌 서구에는 더 많은 종류의 분화된 운동도 있고 이 것들이 국제적으로 네트워크를 가지고 있기도 하다. 대표적인 것이 반부패 운동의 국제네트워크 (Transparency International : TI) 같은 것인데 유럽, 미주 아시아의 여러 나라에 지부를 가지고 있다. 참여연대의 "맑은사회만들기운동본부"는 반부패 국제연대의 국제회의에 참가하여 우리 나라의 부패 방지법 제정운동에 대해 소개하기도 하고 선행법률들을 분석해 우리 실정에 맞는 법안을 만드는데 참고로 하기도 한다.

다른 한편으로는 외환위기를 맞아 급작스레 늘어난 소위 신빈곤층에 대한 정부의 정책과 구제제도에 대해서도 선진국의 사회복지 사례를 살펴보기도 하지만, 우리처럼 외환위기를 맞은 태국이나 인도네시아 같은 아시아의 나라들과 빈곤극복방법을 "아시아적"으로 고민도 해본다.

참여연대가 인권에 대해 일을 하지 않는다고?

이런 비난(?)을 더러 듣는다. 사실 참여연대가 하는 일은 크게 보아 모두가 인권에 관련되는 일이다. 요즘 들어 사회권이니 자유권이니 하는 단어들이 자주 지면에 오르내린다. 이런 개념구별은 유엔의 인권선언이래 A규약과 B규약으로 표현되는 경제적·사회적·문화적 권리에 관한 조약 (International covenant on economic, social and cultural rights)과 시민적·정치적 권리에 대한 조약 ( International covenant on civil and political rights)인데 굳이 구분하자면 참여연대는 사회권의 인권에 해당되는 일들에 비중을 두고 있다.

변명처럼 마지막에 한마디

참여연대는 국제연대사업을 이제 막 시작했다. 위에 말한 것처럼 부서 독립이후 영문매거진, 영문홈페이지 만드는 것도 벅차게 꾸려오고 있다. 자원활동가가 많이 모인다면 더 잘 할 수도 있다. 올 10월에 서울서 열리는 아시아유럽민중포럼 ( Asia Europe People's Forum)을 준비하는데도 힘을 기울이고 있다.

아셈(ASEM - Asia Europe Meeting)이 뭐냐고?

지면사정으로 다음 기회에 ^^;;
양영미
Posted by 영기홍
,

보호되어 있는 글입니다.
내용을 보시려면 비밀번호를 입력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