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광주인권상 받은 네팔의 수실 파큐렐을 만나다
“광주정신은 민주주의를 열망하는 모든 사람을 이어주는 끈”


5.18민주화운동 30주년을 맞이한 광주는 행사를 알리는 현수막을 빼고는 여느 때와 다를 바 없었다. 그날에 대한 기억은 상업용 광고와 나란히 걸린 현수막, 기념행사에만 남아있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잠시 스쳐갔다. 행사장에서 사진 한 장을 꺼내들고, 올해 광주인권상을 받은 네팔의 수실 파큐렐을 찾았다. 폭압과 분쟁으로 얼룩진 네팔의 치열한 근현대사를 몸 안에 고스란히 담고 있을 것으로 생각했던 그의 모습은 뜻밖이었다.

그는 밝은 미소와 다정한 눈빛으로 아들 부부와 손자와 함께 찍은 가족사진을 꺼내 보여주며 “살아오면서 가장 잘 한 일은 부인과 결혼한 것”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진짜 수상자는 바로 부인이라고 강조했다. 고등학교 교사였던 부인은 초등학교 교사였던 그를 만나 평생 동지가 됐다. 두 사람은 교사조직과  네팔의 첫 번째 인권단체인 ‘인권보호를 위한 포럼(Forum for Protection of Human Rights)’을 1984년 만들었다.
     
시골의 가난한 농가에서 태어난 그는 빈곤층을 돕겠다는 마음으로 교사가 됐다. 하지만  빈곤 문제에 관심을 쏟으면서 불평등 ․ 부정의한 세상을 보게 됐고, 부의 분배가 없는 민주주의는 허상에 지나지 않는다는 신념을 가졌다. 그는 지하 정치운동에 참여하게 됐고, 가난한 사람들의 인권과 민주주의를 요구하며 사회운동가로 변신했다. 우연히도 그때가 1980년이었다. 누가 왜 자신을 추천했는지는 모르지만, 이번에 광주인권상을 받게 됐다는 소식을 듣고 광주와 자신이 기묘한 인연으로 이어져 있다는 생각에 새삼 놀랐다고 한다. 1980년 5월 광주에서 민주화운동이 일어났을 때, 그는 정부의 탄압을 피해 숨어든 한 시골 농가에서 BBC 보도로 광주 소식을 접했다. 독재에 맞서 투쟁하고 민주주의를 외치는 사람들이 또 있다는 사실에 큰 용기를 얻었고 강한 연대감을 느꼈다. 이후 광주민주화운동은 그에게 영감의 원천이자 독재에 저항하는 힘이 됐다. 심지어 그는 광주정신으로 마오주의자들의 폭력적 저항을 비폭력저항으로 바꾸려고 시도하기도 했다. 그는 “광주정신은 민주주의를 바라는 우리 모두를 연결하는 끈이며 우리 모두의 창”이라고 거듭 강조했다.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가치를 만들어 실현하는 게 가장 중요”

민주주의의 의미를 묻자 그는 이렇게 답했다.

“전 학자도, 정치가도 아닌 운동가일 뿐이죠. 민주주의가 뭔지 잘 모르겠어요. 하지만 민주주의라면 모두를 평등하게 대우하고 각자의 가치를 충분히 존중해야겠죠. 특히 빈곤층이나 사회적 약자들에게 더 많은 기회를 제공하는 사회를 만들어야 합니다. 제가 하는 일이 인권이든 민주주의든,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가치를 만들어 그들과 나누고, 그 가치가 실현되도록 하는 것이죠.”

그래서 그는 정치적 권리가 크게 강조되던 80년대에 사회적 권리를 위한 범아시아 네트워크 포럼아시아(Forum-Asia)를 구상했다. 포럼아시아가 사회권적 가치를 토대로 출범했다는 사실에 놀라움을 나타내자, 그는 “1985~2000년 약 15년 간 몸담았던 ‘시민인권지원센터(INSEC)’도 그런 가치를 실현코자 만든 단체”라고 밝혔다. 그는 가난한 사람들이 스스로 세력화하도록 돕는 게 매우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가 국가인권위원장으로 일하던 2003년의 일이다. 국제아동기금과 함께 마오주의자들의 영향력 하에 있는 시골지역의 아이들을 대상으로 백신프로그램을 추진했다. 하지만 마오주의자들은 정부의 프로그램이라는 이유로 백신주사를 거부했다. 그는 토론회를 주민들과 수십 차례 갖고, 결국 아동의 권리에 대한 인식을 공유했다. 그 후 캐나다의 한 개발원조단체가 그 지역을 방문했는데, 지역주민들의 높은 인권의식에 당황해 했다. “원조 제공을 빌미로 뭔가 가르치려드는 단체에게 가난한 지역주민들이 오히려 한 수 가르쳐 준 셈”이라며 웃었다.  

그는 “무엇보다 표현의 자유가 중요하다”며 “정부와 마오주의자들 간의 무력분쟁이 한창일 때 많은 오해가 있었지만 내 신념을 굳건히 지킬 수 있었던 것은 민주주의와 인권을 향한 뜻을 굽히지 않는 운동가들이 아시아 곳곳에 존재하고 있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와 인터뷰한 뒤 5.18묘역을 찾았다. 전국 곳곳에서 온 어린 학생들을 만날 수 있었다.박제돼 행사장 안에 갇혀버렸다고 생각한 광주정신은 광주인권상 수상자 외에도, 아시아 민주주의 인권 운동가들 그리고 어린 학생들 가슴 속에 살아 움직이고 있었다.  

김신 푸르메재단 기획실장  


* 나눔과 시민사회(중앙일보 시민사회환경연구소) 6월 제4호에 실린 글입니다.

포럼 아시아 홈페이지 : forum-asia.org
시민인권지원센터(INSEC) 홈페이지 insec.org.np
김신 푸르메재단 기획실장 skim1971@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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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팔의 '민주주의 재건하기'
- 다시 생각하는 민주주의


이미 여러 갈등을 마주하고 있는 네팔에서는 정당들 사이에 또 하나의 힘겨운 싸움이 기다리고 있다. 그것은 새 헌법을 제정하는 데에 있어 따라이(Terai) 자치 문제와 바람직한 연방제 구조에 대한 것이다.

한편, 이는 다른 여러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기회로도 여겨져 왔다. 과거 중앙권력은 오랜 세월 많은 인종집단과 네팔의 카스트 계급을 지배했고, 때문에 연방제를 통해 중앙으로부터 이런 권력을 제거하고, 지역차원에서 삶의 질 향상과 공정한 분배를 이루어낼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연방제가 어떻게, 그리고 왜 이러한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는지에 대한 연구, 조사는 거의 발견할 수 없다. 나는 새 헌법이 시민 참여를 보장하고 권익을 보호하고 증진할 수 있는지 최소한의 확신도 할 수 없다. 왜냐하면 이를 위한 어떤 준비도 눈에 띄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주요 정당들이 계속해서 새로운 헌법을 통한 발전된 형태의 민주주의와 지속적인 평화구축을 이야기 하고 있다는 것이다. (나는 네팔공산당이 단일정당 독재로 가지 않고, 민주주의를 향해 나아가겠다고 한 그들의 약속을 지키리라 생각한다). 이 목표를 위해 첫째로 어떤 이유로 네팔에서 민주주의가 제대로 작동하지 못했고, 무엇이 잘못되었는지에 대한 세심한 조사와 분석, 평가가 필요할 것이다. 이미 존재했던 민주주의에 대한 객관적이고 철저한 평가 없이 앞으로 다가올 민주주의가 성공적일 것이라고 기대할 수는 없다.

1990년 서구 형태의 자유 민주주의를 채택한 이래 네팔은 현재 더 나은 민주주의로 나아가기 위한 역사적 순간에 서있다. 그러나 더 나은 민주주의를 위해 무엇을, 어떻게, 왜 해야 할 지에 대한 질문에 정당들은 답하지 못하고 있다.

사무엘 헌팅턴은 냉전의 종식은 '역사의 종말'을 위한 조건과 서구 형태 민주주의의 승리를 낳았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자유 민주주의 모델이 적절한 환경과 실행 속에서 번창할 것이라 믿었다. 그러나 많은 사회과학자들은 냉전 후 자유주의 관점에서 제기되었던 좁은 의미의 자유 민주주의를 강하게 비판했다. 그들은 자유 민주주의는 이상을 성취하지 못했고, 따라서 도전에 부딪쳤다고 주장한다. 그들은 또한 서양에서 이식된 민주주의가 세계 곳곳의 다른 문화와 사회에 적합한 것은 아니라고 주장한다. 그리고 이는 네팔에도 똑같이 적용된다고 나는 생각한다.

우리는 자유 민주주의를 네팔에 도입했을 때, 자본의 세계화 앞에서 신자유주의 시장 외에는 다른 대안이 없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 결과로 초래된 것(몇몇 긍정적인 면들을 제외하고)은 낮은 수준의 민주주의였고, 정치는 단순한 게임의 수준에 머물렀다. 자유민주주의에 대한 초기의 낙관론은 나라가 민주화에 접어들면서 시작된 정부와 네팔공산당의 갈등의 심화 속에서 사라져 갔다. 하지만 단순히 이 현상만이 과거의 민주주의 실패 또는 결점을 설명하는 것은 아니다.

정부는 가난한 사람들, 소외된 사람들, 원주민 그룹의 문제를 제기하는데 실패했고, 권력정치는 이를 방치하며 커져가고 있다. 그리고 공공정책을 형성하고 실행하는데 일반시민의 참여를 포함하는 전통적인 민주주의의 능력에 대한 의구심이 여전히 존재한다.

네팔의 선출된 대표들은 시민의 삶과 사회에 관련된 일들에 대해 폭넓은 대중의 참여 없이 모든 것을 자신들이 결정했다. 결과적으로 네팔은 평등, 정치적 자치권, 책임, 경제적 평등 등의 문제는 해결하지 못한 채 처음 그대로 남아 있게 되었다.

물론 행정·입법·사법의 분리, 자유공정 선거, 그리고 자유로운 정치 정당, 자유로운 기관들의 연합 등 시민사회의 성장과 함께하는 긍정적인 면들이 있다. 그러나 네팔과 같은 나라에서 민주주의에 대한 이해는 엘리트에 의한 권력정치가 아니라, 소외된 사람들의 이익, 소수그룹, 젠더 이슈 등을 위한 정치적 평등을 기본으로 하는 대중정치로 이해되어야 한다.

한편으로 우리는 과거에 수행되었던 기관 개혁과 정책 실행의 관점에서 민주주의를 평가해야하는 시점에 와있고, 다른 한편으로는 이미 존재하는 민주주의 자체가 나라를 위해 적합한지를 평가하고, 그렇지 않다면 어떠한 형태의 민주주의가 적합할지에 대해 고민해야 할 때이다. 이렇게 민주주의의 형태와 생각을 재언급하는 나라가 네팔뿐만이 아니라는 사실은 주목할 만하다. 이런 흐름은 세계 곳곳에서 '다시 생각하는 민주주의', 또는 '급진적 민주주의'라는 이름으로 발견된다.

네팔은 정책결정과정에서 더 넒은 시민참여가 이루어져야 하고, 공공이슈에 대한 시민의 역할 또한 확신되어야 한다. 그래야만 신중하고 지속가능한 민주주의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우리의 이전 관심은 엘리트 권력정치에, 그리고 민주주의를 위한 전제조건들의 확인과 실행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었다. 하지만 우리는 시민의 삶과 관련된 이슈에 최대한의 시민참여를 보장하는 데에는 거의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다. 그러므로 네팔의 민주주의, 개발, 평등 그리고 평화에 대한 근본적인 문제들 중 하나는 민주주의를 실천하는 문화에 달려 있다고 할 수 있다.

우리의 네팔 민주주의에 대한 이해는 대부분 개념적이고 규범적으로 한정되어 왔다. 이는 우리의 초점이 민주주의를 실천하는 문제와, 정확한 조건과 민주주의에 대한 다른 대안을 무시하는, 특수하고 제한된 형태의 민주주의를 위한 선행조건을 찾아내는데 맞추어졌기 때문이다. 참된 민주주의를 건설하기 위해서 우리의 정치적, 학문적 전문가들은 민주주의를 넓히고 굳건히 하는 대안적 장치들의 힘과 요소들을 발견해야 할 것이다.

그것의 복잡성에도 불구하고, 시민운동 세력(People's Movement II)에 의해 조직되고 창조된 행동중심은 네팔에서 민주주의를 사회화하는 데 유용할 수 있다. 정치세력들, 시민사회, 학계, 언론 그리고 다른 관계자들의 참여를 바탕으로 이 의제에 대한 담론은 네팔에 진정한 민주주의를 위한 기초를 건설하는데 필수적일 것이다.


 

지반 바니야 / 서강대 민주주의와 사회운동 연구소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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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ost-Election Report :선거후 결과 보고서 (4.26. 2008)

ANFREL은 선거일 이후 17개 구역에서 12명의 장기 감독관을 파견해 개표 과정과 심의, 해결 과정, 그리고 좀 더 전반적인 선거 후 지역 상황을 감독해왔다. 재투표는 4개 지역의 17개 투표소에서 실시되었다. 이 문서는 ANFREL이 선거 후 정황을 관찰한 첫 보고서이다.

1. 집행 결과 요약

ANFREL은 선거 후 상황이 전반적으로 평화로웠고 개표, 불만사항 심의절차, 재투표  과정이 모두 원만하게 진행되어 투표한 국민들과 정당 모두가 이번 선거 결과를 받아들이게 된 것에 고무되었다.

ANFREL이 방문한 거의 대부분의 선거구에서는 선거 관계자들이 만족할 수준으로 개표와 집계가 진행되었다. 개표는 투표소 직원들의 성실한 노력을 증명하기라도 하는 듯 처음 예상보다 빨리 끝났다. (선거) 결과는 투표자들이 어떻게 자신의 한 표를 행사했는지를 드러내는 좋은 척도가 될 수 있다. 지난 선거와 비교했을 때 늘어난 무효표수는 현 선거 체계의 복잡성과 좀더 강도 높은 투표자 교육의 필요성을 드러낸다. 일부 규제사항의 변경은 개표 절차를 보완하고 전 지역에 걸친 (투표 결과의) 일관성을 촉진시킬 수 있다.

선거일에 발생한 심각한 범법행위에 대한 대응은 투표 무효처리와 재투표의 신속한 공고 등을 통해 전반적으로 신속하게 이루어졌다. 재투표는 ANFREL이 감시한 투표소 대부분에서 만족스럽게 진행되었다. 재투표 중 드러난 문제점들은 선거 당일 일부 투표소에서 드러난 문제점들을 반영하고 있으며, (그 내용으로는) 미성년자 투표, 이중 투표, (입회를) 허가받지 않은 정당 대표들의 투표소 침입과 투표자와 투표소 직원들에 대한 협박 등이 있다.

이러한 문제들을 제기할 근본적인 제도와 절차는 (이번) 제헌의회 선거를 통해 확립되었으며 앞으로 2년 동안 강화되어야 한다. 한 예로 이번 선거에서 비중이 높아진 경찰의 역할은 - 아직 인력 보충과 훈련과정이 더 필요하기는 하지만 - 법질서의 준수와 안전한 선거 풍토의 유지를 위한 긍정적인 첫 걸음이라고 할 수 있다. 선거 전에 필요한 관련 법률의 제정은 공공질서를 유지하고 선거 절차의 신뢰도를 높힌다. 따라서 좀 더 폭넓은 선거법들의 이행을 독려한다. 

폭력 직후의 혼란한 상황에서도 제헌의회 선거를 이행한 것은 선거관리위원회의 모든 선거 관련자들과 투표자들의 용기와 헌신을 증명한 것이다. 이러한 선거들이 가르쳐줄 교훈은 네팔이 민주 공화국으로서 새로운 역할을 수행하기 위해 전진할수록 다가올 선거를 위한 유용한 지침이 될 것이다.  

2. 선거후 지역 상황
       
ANFREL이 방문한 대부분 지역들의 선거 후 상황은 평화로웠다. 대부분의 투표자들은 (이번) 선거가 민의(民意)의 강력한 반영이라고 믿고 있다. 정당 지도자들이 선거 결과를 받아들이자 선거 결과에 실망한 정당 당원들은 자신들의 불만을 과격하게 표현하기를 자제했다.

3. 개표 

개표와 득표집계는 ANFREL이 방문한 대부분의 선거구에서 선거 관계자들, 특히나 정당들이 만족할만한 수준으로 진행되었다. 24시간 동안 개표소에 상주한 투표소 직원들의 헌신적인 노력 덕분에 개표와 득표의 최종 집계에 걸린 시간은 몇몇 개표소의 부족한 직원수에도 불구하고 처음 예상보다 짧았다.

이번에 소개된 근무 교대제는 (예를 들면 하루 8시간 일하는 개표직원을 3교대 하는 방식) 직원들의 부담을 덜어주며 아주 높은 능률을 보장하였다. (다만) 개표가 진행되는 동안 - 특히나 투표함이 도착하기 시작한 초반에는 - 개표 과정을 돕는 인원의 숫자가 늘어났었던 점도 고려해야 한다.

선거 직원들은 일반인들에게 현재 진행 중인 득표 상황을 계속 알림으로써 개표 과정의 투명성을 높였다. 정당 직원들은 개표소로 입회가 허락되었고, 자신들의 득표집계 방식을 이용해 정확하고 균형있는 결과를 가져오는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감독관의 개표소 입회도 대부분 순조로웠으며 선거관리위원회 직원은 적극적으로 집계 용지와 관련 정보들을 감독관에게 나누어주었다. 

확실하게 보일 수 있도록 개표소 벽에 설치된 집계상황판은 모든 개표소로 대표를 보낼 수 없는 감독관들과 소규모 정당 관계자들이 진행상황을 좀 더 수월하게 지켜볼 수 있도록 도왔다. 허가받지 않은 이들은 개표소 입회가 금지되었으나 이는 개표 상황이 진행될수록 느슨해졌다.

선거관리위원회가 발간한 지침서의 개표 절차를 따르는 부분은 뒤섞인 결과를 낳았다. 투표용지의 분류․ 계산 방식과 개표 직원들 사이의 노동 분담 과정은 개표소마다 큰 차이가 있었다. 이러한 차이는 정당 대표들이 어떤 시스템이든 투명성, 효율성, 신뢰성을 담보한다면  큰 문제점 받아들이지 않았다.

투표용지는 계산되기 전에 다른 투표소에서 온 용지들과 합쳐졌다. 그러나 일부 개표소들에서는 이것이 지켜지지 않았다. 개표소 숫자가 적은 지역에 위치한 개표소들은 혼잡했고 선거관리 위원회의 절차를 고수하지 않았다. 투표용지와 투표 인원수간의 대조는 다델후라(Dadeldhura)지역을 제외한 모든 개표소에서 이루어졌다.

지난 선거와 비교해 많은 수의 무효표가 있었고 (대략 전체 투표용지 수에서 4퍼센트에서 6퍼센트를 차지) 이는 대부분 용지에 두 번 기표했거나 만(卍)자형 도장 대신 지문으로 표시해서 일어났다. 이는 투표 방법에 대한 좀 더 집중적인 유권자 교육이 필요함을 보여준다. 투표자의 의도가 분명한 이상 만(卍)자형도장 대신 다른 방법으로 기표된 투표용지(예를 들면 지문이 찍힌 용지)를 인정하는 방법도 고려할 수 있다.    
    

4. 재투표

허가받지 않은 단체가 투표함을 옮기는 행위에 대한 대응과 선거관리위원회의 선거일에 발생한 위법행위에 대응은 전반적으로 신속했다. 위법행위가 적발되었을 경우 투표는 일시적으로 중단되거나 지연되었고, 선거관리위원회는 재투표가 필요한 투표소와 투표시기를 신속하게 공표하였다. 그러나 선거 당일에 투표자가 기표소로 들어가는 것을 방해하거나 협박하는 행위가 일어났던 몇몇 지역에는 적절한 조치가 취해지지 않았다.

전반적으로 재투표 진행 전까지는 조용한 분위기가 유지되었다. 그러나 일부는 재투표 전과 재투표 당일에도 선거유세를 진행하였다. 재투표를 위한 안전한 분위기와 평화적인 환경은 ANFREL이 감시한 대부분의 투표소에서 만족스럽게 조성되었고 투표 절차 역시 ANFREL이 방문한 대부분의 투표소에서 지켜졌다.

선거일에 발생했던 것과 비슷한 문제들이 재투표 시에는 더 집중적으로 발생했다. 투표소 밖에 머물던 정당 대표들이 투표자를 확인하는 절차에 도움을 제공하면서 투표자들에게 과도한 영향력을 행사한 것으로 드러났다. 정당들은 부재자의 이름을 기록한 후 자기 정당의 지지자와 그들의 아이들을 부재자로 둔갑시켰다. 이들의 본명은 투표자 명단에 등록되어 있지도 않을 뿐 아니라 이중 투표를 촉발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런 행위를 통한 정당 지지자들의 투표가 가능했다.

투표소 입회를 허락받지 않은 개인이 투표소 안으로 들어오면서 정당들의 방해는 심해졌다. 예를 들면 많은 지역구에서 다른 (지역의 정당 대표와 후보자들을 볼 수 있었고, 그들 중 일부는 투표자와 감독관, 투표소 직원들에게까지 영향력을 행사하고자 했다. 투표 매매 행위와 정당들이 후보자의 사진을 넣어 만든 투표 초대장도 목격되었다. 투표자, 감독관, 경쟁 정당들을 향한 청년공산당연맹(Young Communist League)의 협박 사례도 산발적으로 접수되었다. 일부 투표소 직원들은 지역 감독관들이 자유롭게 일하지 못하고 정당 관계자들이 재투표 감시를 소홀히 한 이유로 ‘협박’을 들었다.

5. 불만사항

선거관리위원회는 불만사항을 심의하여 판결하는 일의 중요성을 인지하고 있으며 이는 앞으로도 장려되어야 한다. 선거관리인력의 충원을 통해 불만사항을 신속하게 해결하고  불만사항의 판결 사례들을 선거 관련 당사자들과 공유하도록 하애 한다.

재투표가 필요할 경우, 선거관리위원회는 투표소에서 일을 끝내고 돌아오는 직원들이 적절한 대응을 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 ANFREL은 정당들이 선거 관련 폭력을 행사할 경우, 투표소 직원들이 매우 겁을 먹는다는 점을 포착했다. 불만사항을 지역구 차원에서 해결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투표소 직원들이 지역 주민들을 잘 아는 상황에서는 선거동안 그들이 받게 될 압박감이 크므로 자신들의 지역구가 아닌 다른 지역구에 이들을 배치하는 방안을 고려해야 한다. 이러한 조처는 직원들이 받을 협박과 두려움의 부담을 덜어주고 불만사항을 다루는 시스템에 대한 신뢰도도 높여줄 것이다.

폭력 사례가 일어날 경우, 공식적인 불만사항이 접수되지 않은 경우가 종종 있었다. 이는 유권자의 불만이 전해지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에서 비롯된 회의와 공포, 혹은 불만사항이 접수된다 한들 선거결과를 되돌리지는 못할 것이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따라서 독립적인 감시조직들의 역량을 확대하기 위해 선거관리위원회에 더 많은 지원이 있어야 겠다.

선거관리위원회는 재투표가 실시되는 투표소와 재투표 시기에 관한 정보를 적극적으로 공유함으로써 선거 과정의 투명성과 공적인 신뢰도를 확보했다. 의사결정과정을 보여주는 이러한 정보의 배포는 선거에 대한 관련자들의 이해를 돕고 선거관리위원회의 신뢰도를 높여줄 것이다.   

정당들은 지역 차원에서 선거 전에 일어난 선거관련사범들을 엄정히 심판할 것을 강력하게 요구하고 있다. 현재 많은 사건들이 경찰 조사 중이며 이러한 사건들이 공정하고 적절한 시기와 절차에 따라 해결되기를 기대한다.


6. 권고사항
   
○ 개표
1. 개표소 안과 밖에 큰 크기의 집계 상황판을 설치해 개표과정의 감시를 강화하라.
2. 개표 직원의 역할과 임무를 명확하게 정의하고, 더 많은 훈련과정을 제공하며, 개표소 관리를 보다 강력하게 실시하라.
3. 지문이나 다른 방식으로 기표된 투표용지를 투표자의 의도를 드러내는 유효표로 인정하는 것을 고려하라.

○ 재투표 
4. 정당 대표들이 투표소 밖에서 투표자 확인절차를 돕는 것을 금지하고 투표자의 신원 확인은 투표소 직원들에게 일임하라.
5. 투표소에서 일하고 돌아오는 직원들이 선거법 위반자들을 대면하고 고발하는 데에 받는 압박감을 줄이기 위해 그들이 자신들의 거주구역 밖에 위치한 투표소에서 일하는 방안을 고려하라.
6. 선거의 투명성을 저해하는 행위는 후보자들이 직접 연루된 증거가 있는 의혹을 포함해 엄정하게 처결하라.
7. 선거 관련자들의 협박에 대한 두려움을 경감시킬 수 있도록 개표당일과 개표 전 며칠 동안은 주변 환경을 좀 더 포괄적으로 감시․ 감독하라. 

○ 불만사항 접수체계
8. 불만사항들의 조사, 관리, 해결을 위해 중앙부처와 지역구차원에서 선거관리위원회의 인력을 확충하라.
9.  재투표와 선거법 위반에 대한 판결사항을 자세하게 공개하여 불만사항의 심의․ 해결 과정에 대한 이해와 신뢰도를 높여라.
10. 선거관련 범죄들을 지속적으로 조사하며 사건을 공정하고 적절한 시기와 절차에 따라 해결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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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의 지붕, 네팔에도 봄이 오기를

4월10일은 네팔에 의미있는 날이었다. 239년에 걸친 네팔의 왕정을 끝내고 공화정을 출범시키기 위한 네팔의 첫 제헌의회 선거가 있는 날이었기 때문이다. 그 의미만큼이나 국제 사회로부터 네팔의 제헌의회 선거는 뜨거운 주목을 받았다. UN 반기문 사무총장은 네팔의 제헌의회 선거가 공정하고 민주적으로 치러지기를 요청하고 미국의 전 대통령 지미 카터는 총선을 참관하기 위해 네팔을 방문했다. 28개 국제기구와 비정부기구(NGO)는 네팔 총선에 약 900명의 선거 감시단을 파견했고 네팔 시민사회에서도 선거 자원활동가와 민간 부정선거 감시요원을 조직해 네팔이 선거를 통해 거듭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고 있었다.
 
필자는 아시아 지역에 선거감시단을 파견하는 네트워크 조직 ANFREL(Asian Network for Free Elections)을 통해 국제 선거감시단으로 약 열흘간 활동을 하고 돌아왔다. ANFREL은 1997년에 설립한 이후 지난 10년간 스리랑카, 태국, 말레이시아, 캄보디아, 파키스탄 등 많은 아시아 국가의 민주주의를 강화하고자 노력해왔다. 국제 선거감시단을 파견하는 것뿐 아니라 시민교육, 선거 개혁을 위해 활동하는 시민 단체들의 역량을 강화하는 노력도 함께 하고 있다. 이번 네팔선거에는 약 25 나라의 아시아 국가를 비롯해 남아프리카공화국, 호주, 캐나다의 시민단체가 참여하였고 약 20명의 장기 선거감시단과 80명의 단기 선거감시단으로 나누어 100명이라는 큰 규모로 조직되었다.
 
ANFREL은 감시단을 파견하기 전 선거 감시단의 역할과 주의점들을 교육시켰다. 당시 네팔 의회당과 마오공산당 간의 갈등이 첨예하여 종종 폭력사태로 나타나고 있어서 파견 전 긴장감이 꽤 높았다.
 
  민주화의 첫걸음을 내딛는 네팔
 
현재 네팔은 74개의 정당이 난립해 있다. 그러나 네팔국민회의당(NC)과 마르크스 레닌 주의자 연대인 네팔공산당(UML), 마오 반군이 만든 네팔공산당(Maoist)가 주요 3대 정당으로 꼽힌다. 이번 총선에서는 국민회의당과 공산당간의 대결구도로 예상되었다. 절대왕정 국가였던 네팔은 1990년 입헌군주제가 도입되면서 정치상황이 급변하였다. 그러나 1996년 마오공산당의 무장봉기로 내전에 빠지게 된다. 네팔정부는 마오공산당과 10년의 내전을 치루면서 갈등이 증폭되고 많은 서민들의 삶도 피폐해졌다. 다행히도 2006년 11월 네팔정부와 마오공산당은 공동 임시정부를 구성해 제헌의회 구성을 위한 총선에 합의하게 된다. 그러나 유혈사태는 아직도 진행되고 있었다. 따라서 총선시기에 정국의 주도권을 잡고자 하는 당간의 갈등은 증폭될 수 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내가 파견된 지역은 안나푸르나의 출발지로 유명한 포하라(Pakhara)와 근접한 타나후(Tanahu)라는 지역이었다. 이 지역은 3개의 선거구역으로 나누어져 있었다. 한 선거구에선 국민회의당과 마오공산당의 각 후보가 개인적 영향력도 비등하게 높았고 각 정당에서 이 지역을 장악하려는 의도가 높아 당원 간의 마찰이 자주 있었다. 선거일을 앞두고 선거관리위원회는 여러 준비로 분주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산간지역이 많고 도로가 제대로 갖추어지지 않은 이곳에선 선거물품을 옮기는 것에도 엄청난 시간과 노력이 필요했다. 선거관리인단을 만나 면담을 하자 그는 네팔의 선거 준비로 겪는 애로 사항을 들려주었다. 네팔은 자동차로 이동이 어려울 정도로 험한 오지들이 많아서 나귀를 이용해 선거물품을 이동시키기도 한다고 했다. 특히 이곳의 문제는 외지인들의 접근이 어려워 당, 특히 마오공산당에 의해 장악된 지역이 많다고 했다. 이것은 그만큼 공정한 선거를 치루기 어렵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형사 콜롬보가 되어라. 국제 선거감시단으로 지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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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네팔 국민들이 투표절차를 밟고 있다.  


국제 선거감시단의 역할은 어느 정도 정형화 되어 있다. 총선 전에 얼마나 선거단이 준비를 잘 하고 있는지, 투표자들이 자유 의사에 의해 선거에 참여하고 정치적 발언을 자유롭게 할 수 있는지, 공정 선거를 위한 외압 및 폭력 사태는 없는지 등 정보를 직접 마을마다 돌아다니면서 수집하는 것이다. 선거감시단은 이를 꾸준히 언론이나 국제사회에 알려서 네팔정부가 좀 더 공정한 선거 환경에서 선거를 준비하고 각 정당들이 공정하게 경쟁할 수 있도록 안정적 선거 환경을 유지하도록 지원하는 것이다. 따라서 감시단으로서 정치적 개입은 절대 금지 되어 있다. 절대적으로 선거 준비 인원이 부족한 나라에서 국제 선거감시단은 안정적 선거 환경을 제공하고 정치적 불안을 최소화하는데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되었다.

필자는 방글라데시에서 선거 감시활동을 했던 FEMA(Free Election of Monitoring Alliance) 멤버와 선거감시활동을 시작했다. 필자가 방문했던 대부분의 지역은 우리에게 호의적이었고 이들이 이번 선거를 통해 사회 변화를 얼마나 이루고 싶어하는지 설명해 주었다. 근 9 년 만에 이루어지는 선거로서 많은 네팔인들은 이번 선거를 통해 지금의 불안정한 네팔 정세가 나아지기를 고대하고 있었다. 특히 가난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기대가 묻어났다. 네팔은 오랜 정치적 갈등과 무능으로 사회 발전이 많이 이루어지지 못했다. 사회기반시설이 아직도 매우 취약하여 우리가 머물렀던 타나후에서도 전기나 물이 끊어지기가 일수였다. 거리를 다녀보아도 가로등이라고는 찾아보기 힘들며 도로 역시 매우 낙후되어 있었다. 그래서 지형이 험해 접근이 어려운 일부 지역은 특정 정당의 정치적 통제를 받기 쉽다고 한다. 실제로도 산악지역의 마을에 들어가 보면 사람들이 외국인으로서 우리들을 경계하고 그들의 정치적 발언도 거의 하지 않았다. 이러한 점에서는 국제 선거감시단으로 선거 감시활동이 매우 필요한 지역에 들어간다는 것이 쉽지 않음을 여실히 느낄 수 있는 경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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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국제선거감시단이 현지 선거 감시 단체들과 면담하는 모습

둘말리(Dumali)는 타나후에서 중심 도시였다. 이 곳을 방문했을 때 오전임에도 마을의 몇몇 남성들이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 이들에게 다가가 '라마스떼(네팔어 인사)' 인사를 건네며 선거에 대한 기대 등을 물어보았다. 이들은 매우 유쾌하게 선거날을 기다리고 있다고 말하며 이 마을에서는 별 문제 없이 잘 지낸다고 전했다. 또한 이번에 첫 선거를 하기위해 카투만두에서 온 마을 청년의 수줍은 미소가 기억에 남는다. 소수 정당의 후보자도 만날 수 있었는데 자신의 당의 자부심을 여과없이 마을 사람들에게 이야기하기도 했다. 그 자리에는 여성들도 있었는데 가족간이나 여성들끼리 선거에 대한 이야기는 많이 나누지 않아 남성들 보다 상대적으로 적은 관심을 보였다. 그러나 흥미롭게도 실제로 선거일 이른 아침에는 남성보다 많은 여성들이 투표를 위해 나와 있었고 많은 여성들이 자원활동가로 선거 준비며 부정선거 감시 활동을 하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시장에 가보면 특정 정당을 상징하는 깃발을 흔들며 다니는 사람들을 만나게 된다. 사람들이 모인 곳에는 특정 정당을 지지하는 발언이 있으면 다른 정당을 지지하는 사람들이 이에 맞서서 "NC, NC(네팔국민회의당)"하고 구호를 외치기도 했다. 필자가 접한 사건 중에는 국민회의당을 지지하는 군중 버스가 지나가자 거리에서 돌멩이가 날아와서 차에 타고 있는 당원이 다치는 사고가 있었다. 군중 속에서 발생한 사건인 만큼 경찰도 범인을 찾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그러나 다음날 같은 장소에서 국민회의당 지지자들은 점심 식사를 하고 있는 마오공산당 지지당원을 보복 폭행하는 사고가 있었다. 이렇듯 정치적 의사표현의 자유가 보장된 나라에서야 별 문제 되지 않는 광경들이 이곳에서는 자칫 긴장을 유발할 수 있는 사건으로 번질 수 있어 사소한 것 하나 그냥 지나칠 수가 없었다.
 
지역 선거 단체 및 언론, 경찰관은 주요한 사건 정보를 기민하게 얻을 수 있는 창고였다. 산악지역이 많은 반면 열악한 도로 사정으로 접근이 어려운 지역이 많았는데 이러한 경우 현지 단체를 통해 매우 빠르게 정보를 얻을 수 있었고 필자가 담당한 지역의 정치구도나 상황도 좀 더 정확하게 들을 수 있었다. 또한 네팔에 평화 프로세스를 정착하기 위해 들어와 있는 UN 및 여러 나라에서 파견한 국제 감시단과의 협조는 효율적으로 감시활동을 할 수 있는 발판이 되었다. 당원간의 폭력 사태가 있었다는 보고를 받았을 경우 직접 그곳을 방문해 정황을 파악해 보기도 했고 보복 폭력이 일어날지도 모르는 상황이면 그곳에 대한 일정을 여러 국제 감시단과 공조하며 주시하기도 했다.
 
  긴장된 하루, 그러나 평화로운 선거 D-d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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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많은 여성들이 선거 활동에 참여했다.


타나후 지역은 선거 당일 평화롭게 진행이 되었다. 오히려 이른 아침부터 기다란 줄을 서서 들뜬 마음으로 투표용지를 받고 기다리는 사람들의 모습은 활기찼다. 우리나라와 같이 효율적인 시스템이 아닌 상황이어서 사람이 일일이 복잡한 선거 명단을 찾아보고 안내하고 혹시나 모를 무력 충돌을 막기 위해 파견된 경찰들이 나와 있었다. 네팔의 선거 시스템은 CA시스템으로 지지 후보와 지지 당을 따로 투표하게 되어 있다. 그래서 많은 노인들이 이 시스템을 이해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였으나 대부분 젊은이들은 라디오나 TV를 통해 이 시스템을 어느 정도 파악하고 있었다.
 
  네팔은 선거 부정을 막기 위해 선거 당일 모든 차량이 통제된다. 자동차가 있으면 당원을 각 선거구로 파견시켜 부정 투표를 일으킬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도로 길을 따라 선거구로 가는 진풍경을 나았다. 인상적인 것은 여성의 참여가 매우 높았다는 것이다. 필자가 다닌 지역은 약 55~60%의 투표율이 나타났는데 여성의 참여가 조금 높거나 비등하게 나타났다.
 
  5시 선거가 끝나고 정리하는 시간은 이날 가장 중요하게 감시해야할 부분이었다. 모든 사람이 보는 앞에서 투표함을 보자기로 꽁꽁 싸는 것은 물론 비 선거 용지 수와 투표자 수가 총 선거자 수와 같은지 맞춰보는 작업이 복잡하게 진행되었다. 투표함을 정리하는 와중에 감시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으면 투표 용지를 일부러 훼손하거나 허용되지 않은 선거 용지가 투표함에 포함돼 부정행위가 일어 날 수 있기 때문에 선거가 끝났다고 모든 선거 감시 활동이 마무리 되는 것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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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선거감시단이 네팔 여성들과 선거 참여에 대한 주제로 인터뷰를 하고 있다.

선거가 끝난 직후 각 마을은 술렁거렸다. 특히, 국민회의당과 마오 공산당 당원의 대립이 있는 지역은 저녁 늦게까지 개표소에 사람들이 무리지어 남아 있어서 혹시나 무력충돌은 없을까 긴장되는 시간이었다. 선거다음날 크고 작은 사고는 있었으나 네팔 정부는 거의 모든 지역에서 평화적으로 선거가 이루어졌다고 선언하였고 국제사회도 이를 환영했다. 필자가 귀국한 후 4월 21일 외신에 따르면, 240개 선거구 중 237곳의 개표가 마무리된 현재, 마오주의공산당(CPN-M)이 전체 의석의 절반인 120석을 확보하고 네팔국민회의당(NC)과 마르크스레닌주의를 내건 네팔공산당(UML)은 각각 37석, 32석을 얻어 마오공산당이 압승하고 있다고 한다. 마오공산당의 앞날이 여러 정세 속에서 쉽지는 않겠지만 네팔의 진정한 변화와 안정을 가져오길 기대해 본다.

 (차은하/참여연대 국제연대위원회 간사)
Posted by 영기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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