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여연대는 5/19~5/20 동안 광주 518기념재단이 주관하는 아시아 포럼에서 국제워크숍 <아시아민주주의: 공고화인가 혹은 위기인가>를 100명의 국내외 활동가들을 모아 진행했습니다. 이번 후기는 5월 20일 있었던 워크숍의 내용을 정리한 것입니다.

[광주아시아포럼 주요 내용 요약]


아시아민주주의: 공고화인가 혹은 위기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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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션2의 발제자인 Ms.Joy Chavez, Mr.Henri Tiphagne, Mr.Sinapan Samydorai(왼쪽부터)


세션 2 지역과 국제 차원에서의 민주적 통제를 위한 아시아 시민사회의 활동
사회: Mr. Adilur Rahman Khan, Secretary, Odhikar 창립자

[발제]
아세안과 시민사회의 대응) 아세안과 인권 ASEAN and Human Rights
Mr. Sinapan Samydorai, SAPA WG on ASEAN
동남아시아의 인권문제와 이주노동자의 문제를 중심으로 살펴보았다. 아세안헌장으로 인권표준을 설정하고 아세안 정부간 인권위원회라는 인권기구를 통해 인권증진에 초점을 맞추어 활동하고 있음을 보여주었다.

남아시아 지역협력연합과 개발협력
Mr. Henri Tiphagne, Executive Director, People’s Watch 상임이사
네팔,방글라데시,인도네시아,파키스탄,스리랑카와 같은 국가들은 많은 부분에 있어 지역적 협력(regional cooperation)을 요구하고 있다. 특히 인도네사아로부터 독립한 동티모르에서는 개발과 민주화를 위해 지역 시민사회 수준에서 정치적 영향력을 미쳤었다.

지구적 경제위기가 아시아의 민주주의에 미친 영향
Ms. Joy Chavez, Senior Research Associate, Focus on the Global South, 조정관
97년 경제위기가 아시아지역에 있은 이후 국제기구를 통해 경제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고 있다. 그러나 민주주의의 실현은 국가적 차원에서 접근해야 하며 한 기구가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보지 않는다.
 
[토론]
• 지역기구에서의 시민사회의 역할
Mr. Yap Swee Seng, FORUM-ASIA 사무처장
남아시아에서는 시민사회 연대의 특별한 경험을 보여주고 있다. 특히 인도네시아로부터 독립한 동티모르의 경우, 국가의 영역을 넘어 전 시민사회 차원에서 도움을 주었다. 이러한 경험이 지역적 차원에서 스필오버(spill-over) 효과로 번저 나가길 기대한다. 광주와 타이완의 민주화 경험도 마찬가지로 번저나갈 수 있을 것이다.

• 글로벌 시대의 시민 사회의 도전
Mr. Kinhide Mushakoji, ARENA 멤버
민주주의를 이야기 할 때, 한 국가의 국민이나 시민들을 중심으로 한 국가적 제도주의를 넘어서는 글로벌 시대의 시민을 대상으로 한 '신제도주의'적인 접근이 필요하다. 이는 지구화된 시장경제와 최근의 지구적인 경제위기, 이민자들의 이동과 착취받는 이민자들을 생각할 때 더욱 그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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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션3 행정부 감시, 사법부 감시, 입법부 감시 발제 모습(왼쪽부터)


세션 3. 국내에서의 민주주의 신장을 위한 아시아 시민 사회의 노력 – 분과 토론

[행정부 감시]
국가 수준에서 민주주의를 신장시키는 아시아 시민사회의 경험: 방글라데시 사례 연구
Mr. Adilur Rahman Khan, Secretary, Odhikar
방글라데시는 1991년 이후로 민주적인 정부 형태와 문화를 유지하는데 거듭 실패해왔다. 그러나 식민해방 이후 방글라데시 국민들이 벌여온 투쟁을 감안할 때 정치는 이들 국민의식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 현재 행정부가 사법부에 가하는 정치 이용과 언론기관 장악은 민주주의를 신장시키기 위해 방글라데시가 극복해야 할 과제이다.

민주주의를 의미있게 하기: 행정부 통제-인도네시아에서 얻는 교훈
Mr. Danang Widoyoko, Coordinator, Indonesian Corruption Watch
인도네시아는 광범위한 부패가 큰 문제이다. 선거자금, 정부예산과 입찰, 카르텔화 된 정치구조등은 부패의 뿌리이자 원인이다. 특히 인도네시아 정당정치는 당원헌금과 같은 자금자족의 전통을 세우는데 실패했다. 이에 대해 시민사회는 부패.사기 사건에 대한 탐사보고와 공공서비스 분야에 대한 감시를 해왔다.


[사법부 감시]
참여연대 사법감시센터 '국민을 위한 사법개혁'이라는 노정
한상희교수, 참여연대 사법감시센터, 건국대 법대 
1994년 설립된 참여연대 사법감시센터는 '국민을 위한 사법개혁'이라는 방향을 설정하고 일상적인 권력감시활동으로서 모니터링을 하고, 사법제도개혁 논의기구에 참여하였다. 또한 검찰개혁운동과 부패 및 권력남용 법조인에 대한 고발운동을 진행해 왔다.


[입법부 감시]
참여연대 의정감시운동 소개
이지현 팀장, 참여연대 의정감시센터
참여연대 의정감시센터는 국회운영 및 의원감시활동, 국회의원 총선거에서의 낙천낙선운동, 그리고 정치개혁입법을 위한 운동으로 정치자금법.국회법.공직선거법.정당법 등 정치제도 개혁운동, 선거 시기 유권자 운동을 진행해 왔다. 정치개혁을 위해 정치인들이 자신의 편의를 위해 만들어둔 낡은 정치제도를 개혁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였다.

증거에 기초한 사회적 감사(監査)의 강화
Charas Suwanwela 교수, 태국 출라롱콘 대학
최근 태국에서는 공공정책과 부패, 권력남용을 감시하는 사회단체와 시민단체가 늘어가고 있다. 특히 부패에 대한 사회적 감사가 성공적이었던 4가지 사례는 <모기박멸 약제 건, 끌롱 단 하수처리장 건, 의약품 및 의료장비 구매 건, 도로교통 뇌물 건>등이 있다. 앞으로 사회적 감사의 강화를 위해서 정치중립성을 지향하고, 자료공개에 대한 법적 보호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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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션 4에서의 분과보고 발표



세션 4 국내에서의 민주주의 신장을 위한 아시아 시민 사회의 노력
사회: 남부원,  광주 YMCA 사무총장

[각 분과보고]
최경희, 한국 동남아연구소 연구원
한 국가가 민주화를 이루기 위해서는 그 사회 내에서 민주주의를 지지하는 세력이 얼마나 존재하는가가 중요한 문제이다. 민주주의는 다층위로 진행되는 것이므로, 동남아 상층부는 얼마나 민주주의를 지지하고 있는가 하는 것이 중요한 부분이며 동시에 동남아는 대중적 민주주의를 집행하는데 취약하다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

Loh Kok Wah Francis, ARENA
아시아 민주주의에 있어서 시민중심의 정치, 지속가능한 민주주의의 발전, 헌법은 중요한 개념이다. 또한 정부에 대해 투명성, 책임성을 물을 수 있는 시민의 행동이 필요하며, 다면적 컨트롤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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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션5에서의 공동사회를 맡은 Mr. Yap Swee Seng과 이태호협동사무처장




세션 5 전략 및 향후 계획 논의

Mr. Yap Swee Seng, FORUM-ASIA
우리는 어떻게 아시아 지역의 민주주의를 위해 서로에게 지지자의 역할을 할 수 있는가? 아시아를 중심으로 한 네트워크를 형성하고 시민사회의 발판을 통해 민주주의의 공고화를 위해 협력해야 한다. 또한 동시에 지역사회 중심으로 움직여야 한다.

이태호,  참여연대 협동사무처장
때론 안보와 민주주의가 충돌하고, 삼권에 대해서는 책임성을 묻기 어려운 현실이다. 우리는 민주주의의 후퇴를 막고, 부패와 투명성 문제를 다룰 수 있는 제도와 의사소통이 필요하다.외부에서 도입된 제도가 우리의 공동체에 유효한 것인가를 물어야 한다. 제도들이 연관성을 가지고 조화롭게 발전하도록 하기 위한 고민이 필요하다.

 

Posted by 영기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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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시민사회단체는 지난 5월 19일 태국대사관 앞에서 태국 정부가 '붉은셔츠'시위대를 무력 진압하는 것을 반대하는 기자회견을 가졌습니다.

태국 정부는 유혈 진압을 중단하라

현재 태국에서는 군대가 시위대를 무자비하게 살해하고 있다. 한국 시민사회와 민중운동 진영은 30년 전 군부의 광주 민중 학살을 떠올리게 하는 태국군의 유혈 진압을 엄중하게 규탄한다.

지난 주말부터 태국 군대가 ‘붉은 셔츠’로 불리는 시위대를 무력으로 진압하면서 30명이 넘는 시위대가 사망하고 수백 명이 다쳤다. 끔찍한 참사가 발생했음에도 태국 정부는 군인들이 시위대에 섞여 있는 “테러리스트들”을 상대로 발포했다고 강변하고 있다.

그러나 정작 태국 군대의 비이성적인 진압으로 희생된 사람들은 비무장 시위 참가자, 의료진, 10세 소년, 캐나다 언론인과 지나가던 쇼핑객들이었다. 해외 언론들은 태국 군이 의도적으로 시위대를 상대로 정조준 사격을 했다고 보도하고 있고 시위 참가자들에 따르면 정부의 발포로 죽은 사람의 수는 50명이 넘고 있다.이러한 태국군의 붉은 셔츠 시위대에 대한 야만적인 진압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지난 4월에도 군대의 발포로 인해 30명이 사망했다.

붉은 셔츠로 불리는 시위대는 올해 3월부터 현 민주당 정부의 사퇴와 새로운 총선 실시를 요구하면서 수도 방콕에서 무기한 점거 시위를 시작했다. 현 태국 정부는 2006년 9월 쿠데타를 일으킨 군부의 후원을 받아 2008년 말 집권한 이후 반복해서 총선을 곧 실시하겠다고 약속해 왔다. 붉은 셔츠 측에서 총선실시를 요구하며 시위를 벌이는 것은 지극히 정당한 요구이다.

그러나 태국 정부는 시위대와 대화를 시도하기는커녕 “협박에 굴복할 수 없다”고 말하며 강제 진압을 시도하면서 많은 시위대들이 희생당하고 있는 것이다. 군대의 발포에도 불구하고 붉은 셔츠 시위대가 점거농성을 지속하자 태국 정부는 마지못해 협상에 응했다. 협상을 통해 양측은 9월 의회 해산과 11월 총선 실시, 유혈 진압 책임자 조사 및 처벌 등에 합의했다.

그러나 합의에도 불구하고 태국 정부는 유혈 진압 관련 책임자에 대한 조사의지가 없었으며 이에, 시위대가 책임자 조사를 요구하며 시위를 지속하자 정부는 11월 총선 실시 약속도 파기하겠다고 발표하였다. 지난 주말 직전 붉은 셔츠 지도부가 유혈 사태를 피하기 위해 협상을 재개하자고 요구했지만 오히려 태국 군대는 시위대를 포위하고 주변을 실탄 사격 지대로 설정했다. 현재 태국에서 발생하고 있는 비극적 상황의 책임은 전적으로 태국정부가 져야 할 것이다.

한국 시민사회와 민중운동 진영은 결코 태국 정부의 더 이상의 유혈진압을 묵과할 수 없으며 지금이라도 시위대와의 협상에 나설 것을 강력히 촉구한다. 아울러 이번 학살 책임자에 대한 철저한 조사와 처벌이 반드시 이뤄져야 할 것이다. 광주의 아픔을 기억하는 우리는 태국민중들과 연대하여 민주주의와 인권을 위해 중단 없이 전진할 것이다.

태국 정부는 학살을 즉각 중단하라!

2010년 5월 19일 기자회견 참가자 일동
국제민주연대, 다함께, 대학생나눔문화, 랑쩬, 사회당,
인권연대, 진보신당, 참여연대, 한국진보연대(가나다순)


기자회견문 영문(Statement to the press)

              Thai government must immediately stop the deadly crackdown on protestors

The Thai army is slaughtering Thai civilians. We in the Korean civil society and popular movements, who remember the massacre of Gwangju citizens by the Korean military junta three decades ago, strongly denounce the Thai army's use of deadly force against its own citizens.

Over 30 people have been killed, with hundreds injured, since last weekend when the Thai army began firing live ammunition at 'Red Shirt' protestors. The Thai government insists the soldiers were shooting at "terrorists" in the midst of protestors - "terrorists" who turned out to be unarmed protestors, medical staff, a ten-year-old boy, a Canadian journalist, and shoppers who happened to pass by the area.

International media sources report that Thai soldiers fired shots deliberately aimed at protestors, while protestors testify to more than 50 people dead since troops opened fire.
This isn't the first time the Thai army drew blood from protestors. Troops had already shot dead 30 people last April.

The Thai protest movement, also known as the 'Red Shirts', had begun an indefinite occupation of the streets of Bangkok since March this year, demanding  that the current government step down and new elections be held.

The current Thai government, since coming to power at the end of 2008 on the back of a military coup in September 2006, repeatedly promised to hold elections in due time. Therefore the Red Shirts are entirely justified to hold protests demanding elections.

But rather than engaging in dialogue with the protest movement, the Thai government is attempting to put down the movement through violence, resulting in the horrible bloodshed we are witnessing.

The government agreed to negotiate only after the Red Shirts held firm in the face of the army shootings. Through negotiations it was agreed that parliament would be dissolved in September, elections would be held in November, and those responsible for the shooting of civilians would be brought to justice.

Despite the agreement, the Thai government showed no commitment to investigate those responsible for the killings, prompting the Red Shirts to continue protesting. And as protests resumed, the government withdrew even its promise to hold elections in November. Shortly before last weekend, Red Shirt leaders demanded resumption of talks in order to avoid further bloodletting. The government answered by laying siege to the protestors and declaring the surrounding areas a "live fire zone." Responsibility for the ongoing tragedy in Thailand lies squarely with the Thai government.

We in the Korean civil society and popular movements can no longer tolerate the savage crimes being committed by the Thai government, and demand that it immediately resume negotiations with the Red Shirts. It is also critical that those responsible for the massacre be thoroughly investigated and punished for their deeds. We who remember the tragedy of Gwangju will keep marching for democracy and human rights in solidarity with the Thai people.

Stop the killing NOW!

May 19, 2010, participants of the press conference at the Thai embassy, Seoul


 

Posted by 영기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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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떠한 경우에도 유혈진압은 정당화 될 수 없다

3주가 넘도록 반정부 시위가 계속되어 온 태국에서 급기야 유혈 사태가 벌어지고 말았다.

4월 11일 시위대와 군경의 충돌로 최소 21명이 사망하고 870여 명이 부상당했다. 태국정부는 자신들이 발포한 것은 아니라고 부인하고 있지만 일촉즉발의 긴장된 상황이 지속되고 있었음에도 군대를 시위대 해산에 동원하여 유혈사태가 발생한 것은 명백히 태국정부의 책임이다.

태국 정부는 조속히 유혈사태의 책임소재를 투명하고 객관적으로 책임자를 규정에 따라 처벌함으로써 유사 사태의 재발방지책을 강구해야 한다.

레드셔츠로 대변되는 친탁신 시위대와 옐로셔츠로 대비되는 반탁신 세력간의 충돌은 태국의 민주주의와 인권 발전에 큰 도전과 시련을 던져주고 있다.

우리는' 부패한 재벌 정치인의 포퓰리즘 정책에 선동된 일부시위대의 난동'이라는 기사의 이면에 숨겨져 있는 오랜 세월 소외되었던 태국 민중의 정치경제적 현실에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지금까지 태국 정치 역사에서 대다수 사회적 약자와 민중은 시혜와 동정의 대상이었고 기득권 세력 간의 다툼에서 동원되고 희생되어 왔다.

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사실은 어떠한 정치적 명분도 군부의 무력 개입을 정당화할 수 없다는 것이다. 무력은 또 다른 형태의 무력을 불러올 뿐이다.

민주주의와 인권의 가치와 원칙에 입각한 대화와 토론, 자유롭고 공정하고 선거, 그리고 권력 분산과 법치에 입각한 민주적 가버넌스가 더디더라도 문제해결의 올바른 접근임을 강조한다.무력에 의지한 권력 획득과 유지는 태국의 민주주의를 과거로 돌리는 처사이며 그동안 민주화 운동의 성과를 부정하는 조치이다.

올해로 광주 민주화항쟁 30주년을 맞이하는 한국시민사회는 이번 태국 사태를 바라보며 충격과 우려를 표명하지 않을 수 없다. 여전히 도시 한복판에서 무장한 군인들이 시위대를 향해 총을 겨누고 있는 모습은 그 이유가 무엇이든, 광주의 아픔이 3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세계 곳곳에서 되풀이 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태국 유혈사태를 통해 민주화는 아시아에서 과거가 아닌 현재진행형의 과정이며 아시아 시민사회 공동의 과제임을 다시 확인한다.

이를 계기로 한국시민사회단체와 시민은 아시아의 민주주의와 인권을 위하여 더욱 적극적으로 연대에 나설 것이며 아울러 태국정부에 다음과 같이 요구한다.

하나, 태국정부는 유혈사태의 진상을 규명하고 책임자를 처벌하라

하나, 태국정부는 시위진압에 군대 동원을 금지하고 군대의 정치개입을 금지하라

하나, 언론의 자유롭고 안전한 취재를 보장하고 인터넷 검열을 해제하라

하나, 민의가 제대로 전달되고 반영될 수 있도록 모든 조치를 취하라

2010년 4월 14일

군인권센터, 대구참여연대, 민주노동자연대, 민주화실천가족운동협의회, 서울경기인천 이주노동자노동조합, 인권과 평화를 위한 국제민주연대, 한국게이인권운동단체 친구사이, 참여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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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06년 9월 19일 타이에서 일어난 쿠테타는 타이가 이제 민주주의를 차근 차근 뿌리내리고 있다고 믿고 있던 국제사회를 경악시켰다. 당시 쿠테타의 주역들은 탁신의 부패와 그의 분열주의 정치, 헌법상 보장된 독립기관에 대한 침해, 군주제에 대한 위협 등을 들어 자신들의 반(反)헌정적 행위를 정당화하였다. 손티 분야랏글린 육군총사령관을 의장으로 하는 <입헌군주제하의 민주개혁평의회>는 한때 ‘국민헌법’으로까지 격찬을 받던 1997년 헌법을 폐기하였다. 그해 10월 1일에 임시헌법이 공포, 시행되고 전 육군총사령관 수라윳 출라논 추밀원 의원이 과도 수상으로 취임했다.

쿠테타는 1992년 시민항쟁으로 훼손된 군의 자존심과 이들의 정치 개입을 일거에 회복시켰다. 또한 쿠테타를 통해 보수주의자들과 존왕주의자들은 권력 게임의 규칙을 바꿀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군부에 의해 수상직에 임명된 수라윳 장군은 국왕이 제시한 ‘자족경제’ 개념이 정부 경제정책의 기조가 될 것임을 선언하였는데, 이것은 기업가 정신의 제고를 강조하는 탁신의 경제정책과 대조를 이루었다. 특히 수라윳 과도정부는 군부 엘리트와 존왕주의자들로 채워졌다. 그들 중 많은 수가 과거 1991년 쿠테타로 집권한 군사정부에 연루되었던 인물들이었다.
  
결국 탁신정부의 와해를 바랬던 중산층들은 자신들의 운명을 군부와 보수적 존왕주의자들에게 맡겼다. 그들은 탁신을 지지하고 또 그에게 표을 던진 빈민, 농민들이 아직 민주주의를 누릴만한 시민의식을 갖추지 못하고 있다고 보았다. 반탁신운동을 이끌었던 보수주의자들은 탁신퇴진운동을 남들이 낸 세금으로 혜택을 받고 그 대가로 탁신을 지지하고 있는 빈민들과의 계급전쟁으로 보았다. 이러한 반탁신운동을 통해 외견상 왕실은 전례없이 강력해졌고 군부와 관료들은 과거 그들이 누렸던 특권을 되찾게 되었다.
 
특히 왕실과 군의 관계가 보다 돈독해졌다. 2006년 쿠테타 이후 군과 왕실에 연을 맺고 있던 보수주의자들이 공직에 임명되었다. 군부가 임명한 과도의회는 2007년도 군 예산을 50% 증액시켰다. 2007년 신헌법에 따라 민정이양이 이루어졌지만 군부의 정치적 영향력은 계속되었다.  2006년 9월 쿠데타를 국왕이 승인하자 인터넷 사이버 공간에 국왕을 비판하는 글이 오르기 시작했고, 정부당국은 이들에게 최고 15년형에 처해질 수 있는 왕실모독죄를 적용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왕실을 비난하는 인터넷 사이트가 증가하자 정부당국은 이들 사이트 폐쇄에 나섰다. 2008년에는 저명한 원로 사회운동가인 술락 시와락이 왕실모독죄로 입건되었다. 왕립 출라롱껀대 짜이 응빠껀 교수는 왕실을 비난한 저서를 발간했다는 이유로 입건되자 영국으로 피신하였다.

일찍이 타이에서 사회운동과 정당정치가 만개했던 초유의 시기는 1973년 10월 14일 민주혁명과 그 결과로서의 1974년 헌정체제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74년 헌정체제’는 군부를 비롯한 우익의 반발로 파국을 맞았다. 1992년 5월 시민항쟁을 계기로 ‘74년체제’의 개혁성을 발전시킨 새로운 개혁적 헌법을 구상하게 되었다. 이러한 배경에서 제정된 헌법이 1997년 헌법이고, 시민사회의 의사를 수렴한 가운데 제정되었다는 점에서 ‘국민헌법’으로까지 불렸다. 그리고 ‘97년체제’ 하에서 타이 최초의 정책정당이라고 할 수 있는 탁신의 타이애국당이 집권할 수 있었다.

급기야 다양한 친서민 정책을 편 탁신의 포퓰리즘은 타이애국당이 민주헌정 사상 최초로 연립없이 단독 집권을 가능하게 했고, 동시에 ‘다수의 횡포’가 절정에 이르렀다. 결국 ‘다수의 횡포’에 따른 배제의 정치가 국가폭력과 인권침해 사례의 증가로 이어지자 일부 시민사회진영은 존왕주의자들과 손을 잡고 탁신 퇴진운동에 나섰다. 친서민정책을 통해 농촌에 절대적 지지기반을 갖고 있던 탁신은 이에 대해 의회해산과 선거로 맞섰다. 결국 수의 게임에 자신이 없는 반탁신진영은 쿠테타까지 ‘초대’하였다.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현 집권세력인 민주당은 쿠테타를 암묵적으로 지지하였다.  
 
탁신 지지세력으로 분류되는 ‘붉은 셔츠’는 오늘날 정국혼란의 근본 원인을 2006년 9월 쿠테타로 본다. 이들은 현 아피싯 정부가 군부로부터 독립적이라고 보고 있지 않으며, 이러한 맥락에서 민주주의라는 이름으로 1997년 헌법의 복원을 주장하면서 수의 게임에 자신이 없는 현 아피싯 정부를 향해 의회해산과 총선실시를 압박하고 있다. 그러나 탁신을 부패한 독재자, 교활한 포퓰리스트로, 탁신을 지지하는 서민들을 포퓰리즘에 현혹된 집단으로 보는 지식인과 중산층 중심의 ‘노란 셔츠’의 저항 역시 만만치 않다.  

흔히 민주주의를 갈등의 제도화라고 표현한다. 타이 사례는 이러한 갈등의 제도화에 이르는 아시아 민주주의의 힘겨운 여정을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박은홍(성공회대 아시아NGO정보센터 소장)


 

Posted by 영기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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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카르타에서 관전한 대통령 선거


지난 7월 8일, 인도네시아에서 대통령 선거가 평화적으로 수행되었다. 독재자 수하르토가 1998년에 물러나면서 시작된 인도네시아의 민주화는 1999년의 자유총선과 2004년 사상 최초의 대통령 직접선거를 치르면서 벅찬 과제를 잘 풀어왔고 이번의 대통령 직접선거도 인도네시아의 선거민주주의를 한 층 더 확고한 기반 위에 올려놓는 역사적 전진으로 기록될 것이다.

세계에서 인도, 미국에 이어 세 번째로 큰 규모의 민주주의 체제를 운영하는 나라에서 정부통령을 직접 선출하는 선거인 만큼 각종 선거 관련 수치가 어마어마하다. 2억3200만 인구 중에서 등록된 유권자가 1억7600만 명 이상이고 33개 주 471개 시군에 설치된 45만여 개의 투표소(TPS)에서, 일부 악천후 지역을 제외하고, 아침 8시부터 오후 1시까지 일시에 추진되었으며, 투표율은 등록유권자의 72.5% 정도일 것으로 추산되었다. 정말 '거대한' 선택이라 부를 수 있다.

규모가 큰 만큼 문제가 없을 수 없다. 2004년 선거 때 어느 선거관리위원의 말처럼 "문제가 없으면 인도네시아가 아니다". 그렇지만 2004년 선거 때보다 올 해 선거의 관리가 허술하였다는 비판은 피하기 어려울 것 같다. 선거 유세 막바지에 야당후보가 유권자 등록의 허술함을 강력하게 비판하면서 선거절차의 정당성에 관한 의구심과 함께 패배를 인정하지 않는 측의 폭동이 우려되기도 했다. 그렇지만 선거위원회(KPU)와 헌법재판소(MK)가 미등록유권자들도 투표소에서 신분증을 제시하면 선거에 참여할 수 있는 대안을 신속히 제시하자 문제를 삼던 후보자들도 이를 즉각 수용하였고, 경찰은 소요혐의자에 대하여 경고 사격 없이 직접 발포 할 수 있는 '1호경계령'을 발동하여, 결국 선거는 평온하게 완수될 수 있었다. 물론 앞으로 한 달 정도 거치면서 선거위원회(KPU)가 최종집계 결과를 발표하고 헌법재판소(MK)가 이를 인준할 때까지 선거관리에 관한 논란은 계속될 것이고 그 결과는 다음 선거의 관리체계 발전을 위한 귀중한 자료가 될 것이다.

'민주주의 축제'(pesta demokrasi)

인도네시아에서 선거는 '민주주의 축제'로 불린다. 폭동 우려와 경계령 발동에도 불구하고 자카르타 지역에서 선거는 평온하고 즐겁게 이루어졌다. 투표소는 활기가 넘치는 주민들의 회합공간이 된다. 투표소는 마을 주민들에 의해 마을 안에 세워지며 줄이나 휘장으로 안팎이 구분되는 열린 구조물이다. 이렇게 투명한 투표소에서 개표까지 진행된다. 수백명 정도의 유권자를 지닌 소규모 투표소들이기 때문에 이 기초 단위의 개표는 한 두 시간 정도면 완료된다. 마을의 투표관리원이 후보자들의 사진과 이름이 담긴 큰 투표용지를 하나씩 펼쳐 보이면서 선택된 후보의 번호를 외치면 또 다른 임원이 벽에 걸린 현황판에 매직펜으로 표시를 한다. 두 후보 이상을 체크하거나 한 후보에게 두 번 체크한 이상한 표가 나오면 관리위원들과 후보별 참관인들이 모여서 확인하고 무효표로 선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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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투표. ⓒ전제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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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표. ⓒ전제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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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록. ⓒ전제성

우리네 반장 선거 같은 개표과정을 지켜보는 것은 마을 사람들에게 큰 기쁨을 준다. 자신들이 지지하는 후보의 표가 나오면 환호하고 박수를 친다. 아이들도 어른들을 따라한다. 아이들은 각 번호의 후보들 이름을 맞추는 놀이를 하기도 한다. 이렇게 투표소는 정치와 민주주의에 관한 조기교육 현장이 된다. 외국인이 구경 오면 마을 사람들은 더욱 신이 난다. 자신들이 누구를 지지하고 왜 그런지에 관하여 열심히 설명하고 한국의 선거제도나 정치에 대해 묻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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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표를 즐기는 주민들. 지지후보의 표가 검표되자 환호하며 어른들이 박수를 친다. ⓒ전제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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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환호하는 아이들. ⓒ전제성

안정 속의 개혁을 지지

'민주주의 축제'를 통하여 인도네시아 유권자의 과반수 이상은 현 대통령의 재집권을 지지하였다. 인도네시아의 대통령은 5년 임기로 중임이 가능하며 부통령 후보와 함께 출마해야 한다. 2004년에 결선투표까지 거치며 대통령으로 선출되었던 수실로 밤방 유도요노(Susilo Bambang Yudhoyono)는 이번에는 경제각료 출신의 부디오노(Boediono)를 러닝메이트로 삼아 출마하였는데, 6개 기관의 투표소 샘플 조사(quick count)에 따르면 60% 정도의 지지를 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과반수 이상을 득표한 후보가 없을 경우 1위와 2위 후보팀이 결선을 치러야 하는 데, 오차가 있겠지만 유도요노 팀이 과반수를 무난히 넘길 것으로 예상되므로 결선투표 없이 재선이 확정될 듯하다. 따라서 3위에 처한 현부통령 유숩 깔라(Yusuf Kalla) 팀은 물론이고 2위에 오른 전 대통령 메가와티(Megawati Soekarnopurti) 팀에게도 결선 투표를 통한 역전의 기회가 주어지지 않을 것 같다.

현 대통령에 대한 압도적인 지지를 통하여 인도네시아 유권자의 다수는 안정 속의 전진을 선택하였다. 지난 5년간 다방면의 비판에도 불구하고 현 정부가 큰 허물없이 정치와 경제를 안정적으로 이끌었기 때문에 유권자들은 유도요노에게 5년의 기회를 더 주는 쪽으로 기울었다. 유도요노는 아체의 분리주의 세력과 평화협상을 체결하고, 부패한 전직고위관료들을 구속시키고, 세계적인 경제위기속에서도 경기회복국면을 유지했다는 대통령 재임 중 업적을 근거로 평화, 청렴, 안정의 지속을 호소할 수 있었다. 그리고 신중하고 정중한 인성이 잘 돋보이는 유세와 TV토론을 전개하였다.

유도요노-부디오노 팀은 유권자들의 최대 관심사인 경제 문제에서 큰 강점을 보였다. 유도요노는 장군출신이지만 야전사령관이 아니라 주로 행정 정보 업무를 책임졌던 '가방끈이 긴' 장군이었고 보고르농대에서 농경제학 박사학위까지 받았다. 더구나 유도요노는 재무부장관과 중앙은행총재 등 경제 관련 요직을 두루 거친 경제학박사 부디오노를 부통령으로 지명함으로써 경제 정책에 관한 유세에서 우위를 점할 수 있었다. 특히 고등학교까지 무상교육을 확대하겠다는 공약은 유권자들이 유도요노 지지표가 검표될 때마다 "무상교육"이라고 외칠 정도로 매력적인 약속으로 제시되었다.

유도요노는 자신의 정당 민주당(PD)의 후보였지만 부디오노는 특정 정당에 소속되어 있지 않다. 정당 배경이 없는 부통령 지명은 인도네시아 선거정치의 맥락에서 볼 때 특이한 선택이었다. 민주화 이후의 정부들은 서로 다른 정당 출신의 대통령과 부통령의 정당간 연합형식의 정부수반을 구성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부디오노를 부통령으로 삼은 것은 유도요노의 적실한 승부수였던 것으로 드러났다. 정당간 연합형식의 정부수반은 대통령과 부통령의 갈등을 표출하곤 했는데 지금의 정부도 마찬가지였다. 부통령 유숩 깔라는 골까르당(Golkar) 의장으로서 빈번한 독자행보를 취했고 종국에는 대선에 따로 출마하고 말았다. 따라서 정당배경이 없는 부디오노의 부통령선임은 전문적 경제공약의 우위선점에 유리했을 뿐만 아니라 행정전반에 대한 유도요노 리더십의 일관된 관철 가능성을 시사하는 것이어서 다른 팀보다 '강한 정부'에 대한 희구를 충족시킬 수 있고 유도요노의 인기가 굴절 없이 그대로 득표로 연결될 수 있게 하는 비결이었다.

특전사령관의 '민중주의'도, 토착자본가의 '쾌속열정'도 거부

반면에 전 대통령 메가와띠는 2004년 대선에 출마했다가 유도요노에게 패배한 바 있어 신선한 후보가 아니었지만 민주투쟁당(PDIP)은 그녀를 대선 후보로 다시 옹립하였고, 신생 대인도네시아운동당(Gerindra)의 쁘라보오 수비안또(Prabowo Subianto)와 연대함으로써 '새로운 피'를 수혈하였다. 그러나 민주화의 상징인 메가와띠가 수하르토의 사위였으며 민주화에 적대적이었던 특전단 사령관을 지낸 바 있는 쁘라보오와 연대한 것은 너무 지나친 정당연합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대다수의 정당들이 유도요노를 지지하는 상황에서 연대할 상대가 적었기 때문이라지만, 정치학자 도디(Dodi Ambardi)의 말처럼, 다음 대선에서 쁘라보오가 메가와띠의 지지를 받아 민주투쟁당의 대통령 후보로 출마하게 될 것이라는 소문은 민주투쟁당의 선명성을 갉아먹었을 것이다. 메가와띠-쁘라보오 팀은 유세연단을 볏짚으로 장식할 정도로 농업을 강조하고 외세가 장악한 천연자원 개발권을 되찾아오자며 강력한 민족주의와 민중 지향 경제 정책을 전면에 내세우는 선동적인 야성을 막판까지 불태웠지만 결국 패하고 말았다.

한편 현 부통령이자 거대정당 골까르(Golkar) 의장 유숩 깔라는 군총사령관 출신의 하누라당(Hanura) 의장 위란또(Wiranto)를 부통령으로 지명하고, 자본가 출신답게 "빠를수록 좋다"(lebih cepat, lebih baik)는 슬로건으로 정력적인 캠페인을 펼쳤으나 가장 낮은 지지를 받았다. 깔라는 현 정권의 업적을 계승하면서도 그 한계를 적절히 비판하였고 유세기간중의 TV토론에서도 반짝이는 아이디어와 사업가적 열정을 보여주었기 때문에, 크게 약진할 것으로 기대되었지만 결과는 전혀 아니었다. 깔라가 술라웨시 태생으로 주도 자바 출신이 아니라서 적은 지지를 받은 탓도 있겠지만, 내가 만난 사람들은 그가 기업인 출신이라는 점을 더욱 우려하였다. 여러 계급계층과 지역의 다원적 이해관계를 복합적으로 고려하지 못하고 성급하게 밀어붙이는 식으로 정책을 구사할 것을 우려했고, '토착기업인'을 육성하겠다고 외치지만 실제로는 가족과 측근 기업들의 이익을 챙기는데 권력을 사용할 것이라고 걱정하였다. 심지어 "그가 대통령이 되면 그 집의 가정부마저도 기업을 갖게 될 것"이라고 말하는 이도 있었다.

인권 운동도 작은 승리를?

이번 선거는 인권 운동 진영에도 작은 승리를 안겨주었다고 평가할 수 있다. 인도네시아의 인권운동은 소규모의 비정부기구들(NGO)이 이끌어왔고 전선형태의 대규모 사회운동체를 결성하거나 그들을 대표할만한 정치가를 배출하지 못했다. 이번 대선에 출마한 세 팀이 모두 장군들을 후보로 포함하고 있다는 점을 보면 민주화 11년간 인권 운동의 노력이 무슨 업적이 달성했는지 의구심이 생길만도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권 운동 단체들은 온건한 형태의 '낙선 운동'을 전개하였다. 실종자및폭력피해자대책위원회(KontraS)의 조사국장 빠빵(Papang)은 "인권침해범을 뽑지 말자"는 슬로건을 내걸었다면서, 최선은 아니지만 차선이었다고 자평했다.

메가와띠는 대통령 재임기에 아체지역의 여성과 아동의 생명권을 위협하는 계엄령을 선포하였고, 쁘라보오는 수하르토 말기에 특전단 사령관으로서 당시 자행된 반정부활동가 납치실종사건과 1998년 5월 반화인 집단폭력의 배후로 지목된 바 있고, 위란또는 분리독립을 결정한 동티모르 주민선거 직후에 친인도네시아 민병대가 자행한 폭력행위에 책임이 있다고 지목받고 있다. 인권 운동 단체들은 이러한 사실들을 기억하자는 "망각에 대한 저항" 전시회와 토론회를 개최함으로써 선거 국면에 관여하는 실천 활동을 전개하였다. 심각한 인권침해 혐의를 받는 전직 장성들이 이번 선거에서 뽑히지 않았으니 인권운동가들의 바람도 결국 실현되었다고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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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망각에 대한 저항 전시회. ⓒ전제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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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시회를 관람하는 필자. ⓒ전제성

패자의 길?

민중주의나 경제민족주의 슬로건을 내걸었던 후보들이 패배함으로써 앞으로 인도네시아의 경제정책 기조는 크게 달라지지 않을 것이다. 한국인들을 비롯한 외국인 투자자들에게는 희소식일 것이다. 인도네시아의 한인사회는 유도요노의 장인이 한국 초대대사를 지냈다는 인연으로 오래 전부터 유도요노에 대한 호감을 지녀왔다. 그러나 메가와띠 진영에서 계약직 및 외주노동에 대한 규제를 강하게 요구했고 유도요노의 개방적인 경제정책이 '신자유주의적'이라는 비판을 제기하였고, 깔라 측에서 경제성장을 위해 자본친화적인 정책의 신속한 실현이 필요하다는 비판을 제기한 바 있어서 이런 좌우의 비판을 어떻게 경제정책에 반영할 수 있을지는 의문으로 남아있다.

한 편 정당정치와 정부-의회 관계에서는 약간의 변화가 발생할 수도 있다. 특히 패주한 골까르당이 야당의 길을 갈 것인지 여부가 관심을 끈다. 민주투쟁당은 이미 유도요노 정권 하에서 야당의 길을 일찍이 선언했지만, 수하르토 시대부터 여당 노릇을 해 온 골까르당은 현 정권에도 연립으로 참여했었기 때문이다. 인도네시아의 정당정치는 '카르텔'이라고 불릴 만큼 선거 이후에 대다수의 정당이 여당이 되는 일종의 '대연정'의 정치를 펼쳐왔다. 패배한 정당은 자동적으로 야당이 되는 것이 아니라 향배를 정하기 위한 고뇌의 과정을 거친다. 30여년의 역사와 광대한 조직을 자랑하는 골까르가 민주투쟁당처럼 야당의 길을 택한다면 의회의 정부견제력은 지금보다 훨씬 막강해질 것이다. 상대적으로 유도요노 팀은 5년 동안 급성장한 신흥 민주당과 다양한 군소정당들의 지지를 받는 일종의 '무지개연립' 상태이다. 물론 패자들의 일부 분파들이 집권세력의 편으로 넘어갈 가능성도 무시할 수 없다. 따라서 대선 패배 이후 골까르의 위상설정은 인도네시아의 정당정치의 향배와 정부-의회 관계를 재편하는 중요한 변수로서 흥미롭게 지켜볼 만한 사안이다.

따져봐야 할 것이 많고, 미흡하고 아쉬운 점도 많지만, 이번 선거가 인도네시아 국민들을 행복하게 만들었다는 점을 언급할 만하다. 원심력이 강한 세계최대의 군도국가에서 적도하의 자연적 장애들도 극복하고 거대한 규모의 선거를 큰 분쟁과 사고 없이 치러냈다는 사실은 인도네시아 국민들의 민주주의 체제와 제도에 대한 자긍심과 신뢰성을 높이는데 기여하였을 것이다. 나아가 인도네시아의 선거는 초국적인 의미를 지닌다. 이번 선거의 성공을 통하여 지난 5년이 그랬듯이 앞으로도 인도네시아는 아세안(ASEAN) 역내 인권신장과 인간안보의 증진을 지속적으로 요구하는 동남아 민주주의의 기수로서 역할을 한 층 강화할 것이며, 이슬람과 민주주의 접합의 세계적인 모범으로서 계속 회자될 것이다.

전제성 (전북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Posted by 영기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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