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 포럼은 2008년부터 아시아인의 생존과 삶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초국가적 문제를 한국시민사회에 소개해 왔습니다. 이웃 아시아의 문제에 한국시민사회도 자유롭지 못한 만큼 아시아의 문제에 대한 이해를 높이고 지구촌 시민사회의 일원으로 실천의 방향을 모색해 보는 자리입니다.
1 강: 초국가적 인간 안보 문제와 아시아
발제: 이재현/ 참여연대 국제연대위원회 실행위원
일시: 2009년 3월 26일(목) 오후 4시 30분, 경희대학교 본관 2층 대회의실
초국가적 인간 안보 문제와 아시아
이재현 참여연대 국제연대위원회 실행위원
인간안보 또는 비전통적인 안보 문제라 불리는 것들은 안전 혹은 안전의 궁극적인 대상인 인간의 생명과 인간다운 삶의 보장에 관심을 둔다. 탈 냉전이후 국가안보 혹은 왜곡된 형태의 정권안보라는 개념을 벗어나 인간의 안전과 생명에 보다 관심을 두는 관점들이 강해지고 있다. 현실적으로도 일차적 생존의 문제를 해결한 국가들이 많아지면서 인간다운 삶에 무게를 두고 있고 인간안보는 더욱 중요해지고 있다. 물론 빈곤선을 벗어나지 못한 국가들은 여전히 경제성장과 삶의 질이라는 이중의 도전에 직면해있다. 인간안보 문제의 상당 부분은 몇 개의 국가에 걸쳐 원인을 두고 있으며, 영향력 역시 여러 나라에 동시에 미치는 초국가적인 성격을 띤다. 따라서 한 국가의 힘만으로는 해결하기 어려운 과제이다.
아시아의 지도를 펴 놓고 우리가 아는 이슈들을 지도 위에 동그라미로 표시하다보면 어느새 아시아 지도는 무수한 동그라미로 가득 찰 것이다. 그만큼 아시아 지역에는 초국가적 인간 안보의 문제로 넘쳐 난다. 동남아 열대 우림의 파괴, 건강을 위협하는 연무(Haze) 현상, 확대되는 중앙아시아의 사막, 동북아의 황사, 그리고 많은 아시아 국가들의 빈민지대로 모여드는 생활폐기물에 의한 거주 공간의 오염 등의 환경문제가 중앙아시아에서 동북아시아까지 아시아 전체를 뒤덮고 있다. 최근 몇 년간 한국을 비롯하여 많은 아시아 국가들을 괴롭히고 있는 광역 질병 혹은 전염병의 문제도 심각하다. 언제 어디서 어떻게 발병할지 모르는 조류독감, 아시아 국가의 관광산업과 사람들의 생명에 큰 영향을 미쳤던 사스(SARS), 그리고 인간의 생명을 오랫동안 위협해 왔고, 앞으로도 그럴 후천성면역결핍증(HIV/AIDS) 등이 아시아 곳곳에 산재하고 있다.
인간안보를 이야기할 때 초국가적 범죄로 망라되는 이슈도 제외할 수 없다. 초국가적 범죄에는 마약밀매, 인신매매, 무기밀매, 해적 그리고 테러가 포함된다. 전통적으로 마약이 재배되던 동남아의 골든트라이앵글 지역과 아프가니스탄 지역 주민들의 빈곤에 대해서 언급하지 않고는 마약의 문제가 제대로 이해될 수 없다. 마찬가지로 이동경로에 대한 이해도 단순히 범죄라는 시각을 넘어서 왜 그들이 여기에 연관될 수밖에 없는가에 대한 이해를 필요로 한다. 인신매매 역시 그에 연관된 사람들의 범죄사실 뿐만 아니라 그런 선택을 할 수 밖에 없었던 구조적 원인 예를 들면 빈곤이나 여성 인권에 관한 문제를 포괄적으로 이해해야 한다. 동남아의 말라카 해협과 인도네시아 연안의 해적 문제 역시 무엇이 그들로 하여금 이런 일을 하게 만들었는가에 대한 이해를 수반해야만 문제의 올바른 이해와 해결책을 모색할 수 있다. 더불어 문화적, 종교적 상대성과 관용의 시각, 그리고 그 사람들의 삶에 대한 이해가 결여된 테러에 대한 관점은 중동, 동남아에서 일어나는 종교를 명분으로 한 테러를 인간의 생명을 위협하는 범죄로 낙인찍는 오류를 만들어 내기 쉽다.
글로벌 시대에 전 세계를 누리는 자유를 부여 받은 자본, 그리고 이 자본을 소유한 사람들과 달리 아직도 많은 사람들은 국가의 틀 안에서만 이동할 수 있다. 이런 모순과 불평등 속에 이주노동의 문제와 난민의 문제가 들어 있다. 아시아 지역 이주노동의 규모는 엄청나다. 단편적인 예로 필리핀 GDP의 20%는 이주노동자의 송금에 의해 채워진다. 중동에서 일하는 수많은 서남아시아, 동남아시아 출신의 노동자들, 동북아와 일부 동남아의 부유한 국가에서 일하는 많은 동남아 노동자들의 노동의 자유와 인권에 대해서 생각해 보아야 한다. 이주노동은 이주노동으로 끝나지 않는다. 거기에서 배태되는 다양한 이슈들이 존재한다. (불법) 이주노동자의 2세들은 많은 경우 정규적인 교육에서 완전히 배제되며, 이들에게는 국적조차 허용되지 않는다. 가장 기본적인 인권의 문제를 넘어서 이주노동자와 그들의 2세들이 일하고 있는 국가의 다문화적 포용성 내지는 관용성의 문제도 함께 고민을 해보아야 한다. 멀리 갈 것도 없이 한국 사회는 얼마나 다문화적 포용성과 관용성을 갖추었는가 고민해 보아야 할 것이다. 정치적, 경제적, 종교적 이유 등 다양한 이유로 발생하는 아시아 지역의 난민은 300만명을 훨씬 넘는다. 미얀마, 북한 등에서 정치-경제적 이유로 발생되는 난민, 스리랑카, 아프가니스탄, 이라크 등 분쟁으로 발생하는 난민, 곳곳에서 종교적 갈등으로 발생하는 난민이 아시아 지역에 산재해 있으며, 이 난민들은 그들을 받아들이는 국가들에게도 큰 이슈가 되고 있다. 그러나 아직 아시아 지역에서 이런 난민들의 수용과 그들의 인권문제에 대한 관심은 지극히 제한적이라고 생각된다. 난민의 발생국, 난민 당사자들, 그리고 난민의 수용국가의 입장을 이해하고 난민의 인권을 최대한 보호하는 어떤 합의가 시급히 필요하다.
아시아 지역에서 식량 위기 역시 인간의 삶을 위협하고 있다. 주로 경제적 수준이 낮은 국가를 중심으로 해서 식량의 부족으로 큰 고통을 겪고 있는 사이에 대자본들은 식량을 생존의 수단이 아닌 이윤 창출의 도구로 인식하여 투기적 거래를 하고 있다. 전체적으로 식량은 충분한데도 어떤 사람들은 그 식량을 구하지 못하는 상황이 연출되고 있다. 아시아 지역의 영유권, 국경 분쟁 역시 인간의 삶을 직-간접으로 위협하고 있다. 남지나해(South China Sea)를 두고 중국과 동남아 국가들이 벌이는 영유권 분쟁이 자원의 효과적 공동이용을 방해하고 있고, 인도와 파키스탄 사이 카시미르를 둘러싼 해묵은 분쟁은 오랫동안 이 지역 사람들의 생명을 위협하는 동시에 이들을 피폐하게 만들었다.
마지막으로 빈곤은 앞서 언급한 모든 문제의 근본적인 원인이자 가장 오래된 인간안보의 문제이다. 수많은 가난한 나라들, 빈곤선 이하의 사람들이 존재하는 아시아에서 초국가적 인간안보의 문제가 산재된 현실은 당연한 일인지 모른다. 그러나 인간안보의 근저에 빈곤이 도사리고 있다는 것을 인식해도 그 해결이 쉽지 않은 것 또한 현실이다.
아시아는 하나의 지역단위로서 앞서 말한 초국가적 인간안보 문제의 원인을 제공하는 국가와 그로 인해 영향을 받는 국가들 모두를 포함한다. 대부분의 이런 문제는 국경을 벗어나 가까운 이웃에 영향을 주며 바로 옆의 지역단위에 영향을 준다. 따라서 아시아의 초국가적인 문제는 남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의 문제이다. 아쉽지만, 아시아는 이렇게 초국가적 인간안보의 문제를 공유함으로써 하나의 단위로 묶이게 된다. 다른 한편으로 아시아 지역에는 보다 초국가적 문제에 취약한 국가들과 비교적 자유로운 국가들이 모두 포함되어 있다. 빈곤의 문제를 해결하고 보다 높은 생활수준을 영위하는 국가들과 그렇지 않은 국가들이 모두 있는 상황에서 초국가적인 인간안보 문제의 심각성을 지역차원에서 이해하는 것은 지역 내에서 상호 연대와 이해를 통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단초를 제공하기도 한다. 이렇게 아시아는 문제의 제공과 해결의 실마리를 함께 가지고 있는 지역이다. 따라서 아시아 지역의 초국가적 안보문제를 개별 국가가 아닌 아시아 지역이 함께 풀어가야 할 과제로 인식하는 것에서부터 아시아 연대는 시작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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