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이라크 전쟁
특별한 사건이 일어나지 않는 한 미국의 이라크 전쟁 도발은 많은 관측자들이 예측하고 최근 미 국방부 차관이 서울에서 확인해 주었듯이 "시기만 남았다". 사실 시기만 남았다는 표현은 더 깊은 진실을 은폐한다. 이라크 전쟁은 이미 시작되었으며 영국 한국 등의 전쟁참가 약속과 흔들리는 미국 여론을 전쟁지지로 확정지을 수 있는 정치 공작만 남은 것이다. 한국의 여론은 물론, 거대한 아랍권의 여론이나 다른 어떤 지역의 여론도 고려대상이 되지 못한다. 그런 면에서 이라크 전쟁은 시기만 남은 문제이며, 동맹국 확보와 차기 대통령 선거를 염두에 둔 미국 여론의 향배만 문제로 남은 것이다.
현재 미국은 영국과 함께 주기적으로 이라크의 군사시설을 폭격(9월 7일)하고 있는 중이며, 이미 이라크 영토내에 상당 규모의 특수부대를 투입, 군사작전을 수행 중에 있다. 미군은 현재 북부 이라크 쿠르드족 지역에서 대형 수송기를 처리할 수 있는 군비행장이 세 곳을 정비하고 있으며, 이에 따라 이곳에서 활동중인 미 특수부대와 이라크군 사이의 긴장도도 높아지고 있다. 최근 영국과 미국의 군용기 50여대가 동원된 대규모의 이라크 공습은 전쟁이 아니라고 말하는 사람들에게만 전쟁이 아닌, 사실상의 전쟁행위였다. 부시 대통령이 자랑하는 자신의 "신중함"은 중국과 러시아, 독일과 프랑스 및 일본 심지어 쿠웨이트 등의 반대를 완전히 무시하며 사실상의 군사작전을 진행하는 '호전성'을 잘못 발음한 것인 듯하다.
이라크가 미국이나 다른 나라에 직접적인 위협을 가하고 있다는 증거가 없는 현재 상태에서 미국의 이라크 전쟁은 불법이다. 이라크는 현재 대량살상무기 개발 의혹과 관련 유엔사찰을 거부하는 것 이외에는 문제를 야기하고 있지 않다. 핵무기 및 생화학 무기 개발의혹이 있으나 이 문제는 의혹수준에서 벗어나지 않고 있다. 이런 무기를 개발한 이후에 운반수단을 확보할 수 있는 가도 의문이다. 운반수단이 있어도 실행에 옮길 의지가 있는지는 검토되지도 않는다. 이라크가 야기하는 문제의 수준은 이미 불법으로 핵무기를 보유하고 운반수단을 확보하고 있으며 이를 바탕으로 전쟁하겠다고 엄포를 놓고 있는 인도와 파키스탄에 비하면 위협이 안되는 수준이다. 유엔 안보리의 대 이라크 결의안은 무기개발 사찰과 관련된 군사행동을 명시하고 있지 않으며, 유엔 헌장은 일국의 일방적인 군사행동을 금지시키고 있다. 이라크에 대한 합법적인 전쟁은 오직 안보리의 새로운 결의를 통해서만 가능하다.
그러나 안보리의 전쟁 결의가 불가능하기 때문에 미국은 단독행동을 추진하고 있다. 안보리의 대 이라크 전쟁 결의가 불가능한 이유는 국제적으로 반대여론이 매우 강하며, 유엔 사무총장 및 중동과 유럽의 미 동맹국조차 강력 반대하고 있으며, 미국이 제시하는 전쟁의 명분 (이라크의 대량살상무기 개발 및 알카에다 지원)을 입증할 길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실 이라크 침공 논란에서 국제법과 국제적 합의 또는 다른 어떤 합리적인 근거로 미국의 전쟁도발을 비판하려는 시도는 부질없다. 부시 행정부가 국제기구와 국제법을 존중할 의사가 없을뿐더러, 모든 부작용과 후유증을 인지하면서도 일체의 협의 없이 독자적으로 "후세인 정권 전복"이라는 초강경 목표를 세웠기 때문이다. 이 목표를 취소하는 것은 부시 행정부의 정치적 생명이 걸려 있는 문제이므로 이라크인들이 미리 정권을 전복시키는 불가능한 일이 있기 전까지는 불가능하다. 미국의 중동정치는 오로지 유전을 통해서만 이해 가능하고 이는 미국사회의 어마어마한 소비수준이라는 비합리적인 현실을 통해서만 이해가 가능하다. 더구나 부시 행정부는 공동의 이념과 가치로 세계를 설득하려는 시도에 조소를 보내고 있는 형편이다 (지구정상회의 불참의 예를 보라).(이런 면에서 이라크전을 다루는 기사마다 끝마무리에 달려나오는 "...반대 여론이 커지고 있는 상황에서 부시 행정부가 어떤 결단을 내릴지 전세계는 주목하고 있다"는 이성적인 결론은 독자들을 우롱하는 코미디에 가깝다).
이라크 정부는 사찰 재개 가능성을 열어두면서, 대이라크 경제제재 해제, 비행금지구역에 대한 미국, 영국의 공격 중단, 미국의 대이라크 공격 위협 중단 등을 조건으로 내걸고 있는데, 사실 이는 부시 행정부의 '우리편 아니면 적'이라는 독트린만 없었다면 대다수의 국가에서 동의할 수 있는 온건한 협상안이다. 강대국의 경우 협상의 결과에 따라 무력응징이라는 카드를 다시 들고나올 여지도 있는 융통성이 있는 제안인 것이다. 협상이 진행되는 1-2년 사이에 이라크가 혹시 개발할 수도 있는 대량살상무기가 미국의 안보를 위협할 것이라는 미국의 주장은 3류 공포소설 수준이다. 사담 후세인이 위협하는 것은 미국의 안보가 아니라 중동에 대한 미국의 일방적인 통치를 위협하고 있는 것이기 때문에 친미정권이 들어서기 전까지 협상은 협상 이외의 목적에만 봉사할 뿐이다.
현재 주목할 것은 있지도 않은 부시 행정부의 신중함도 아니고 첫 출정과 함께 성조기를 휘날리며 열광할 미국 여론의 향배도 아니다. 오히려 더 진지하게 주목해야 할 것은 21세기 세계사를 바꿀 미국의 오만한 군사행동이 어떤 비극적인 결과를 가져올 지이다. 앞으로 여러 관측자들이 여러 관측을 내놓고 미 국무부에서는 '반미정서 대책회의'를 계속하겠지만, 가치와 협력을 포기하고 우월한 군사력으로만 세계를 관리하겠다는 세계경영방식이 가져올 위험은 쉽게 예측하기도 또 폭발할 경우 통제하기도 힘들 것이다. 이점이 가장 우려되는 점이다.
한때 김영삼 전대통령과 김대중 대통령이 자신들의 동급으로 여겼던 넬슨 만델라 전 남아공 대통령은 "이라크를 공격하겠다는 미국의 위협에 놀랐다”며 “국제 문제에서 혼란을 불러일으키려 하고 있는 미국을 강력히 비난한다”면 국제 반전 여론을 선도하고 있으나, 평소에 만델라를 존경한다던 정치인들은 런던에서나 워싱턴에서나 서울에서나 한결같이 조용하다.
조용한 서울에서 때맞춰 한국 국방부 고위당국자들을 만나 "훌륭한 협의"를 마친 미 국방부 돕 자카임 차관은 "한국 정부가 미 이라크전에 각종 지원을 제공할 것을 확신"한다고 말하면서 "이것이 파트너십이고 우정"이라는 훈계를 잊지 않았다. 공교롭게도 거의 같은 시각에 독일 슈뢰더 총리는 독-미 관계를 설명하면서 "우정이란 복종과 다르다"며 독일은 결코 부당한 전쟁에 참여하지 않을 것이라고 색다른 우정관을 유권자들에게 설명하고 있었다. 북아일랜드의 평화협상을 성사시킨 영국의 전 장관 모 모울럼은 "이라크는 위협이 못된다. (이번 전쟁의) 진짜 목적은 사우디의 유전이다"라고 밝히면서 "푸들강아지"와 비슷한 우정관을 갖고 있다는 블레어 수상의 입장을 곤란하게 만들었다. 한국 정치권의 사대주의가 파트너십과 충견 사이를 어떻게 구분하는지 궁금하다.
이대훈(영국 브래드포드대 평화학 박사과정)
* 편집자 주
현재 부시대통령은 9.11 테러 1주기 대국민 연설과 12일 유엔총회 연설을 통하여 '문명'을 위협하는 '폭군'(이라크)이나 테러분자들에 대해서 협상은 없으며 다만 힘의 정치만 있을 뿐이라는 점을 다시 한번 선언하였습니다. 부시 대통령은 12일 유엔 연설을 통해 후세인 대통령의 이라크 정부를 ‘무법정권’으로 비난하면서 1991년 걸프전 이후 합의된 유엔의 결의들을 이라크가 어기고 대량살상무기 사찰을 거부해왔다고 지적하고, 유엔이 결의안 이행을 관철시키지 못하면 대량살상무기 개발을 중단시키기 위한 독자행동도 불사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9월 17일 이라크가 유엔 사찰단의 핵사찰에 대하여 무조건 수용의사를 밝혔음에도 불구하고, 백악관은 즉각 거부의사를 표명함으로서, 미국의 목표가 '사찰'이 아닌 '후세인정권 전복'이라는 점을, 중동 석유 생산 2위국인 이라크의 석유에 관심이 있음을 다시 한번 확인시켜주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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