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담회후기]

태국 민주주의 위기로부터 아시아는 무엇을 배울 것 인가?
-왜 태국에서는 시위와 쿠데타가 반복되는가?


 

5월 13일을 기점으로 태국 정부군이 시위대에 강경진압을 시작하면서 다시 국제 뉴스의 전면을 채우고 있다. 이 날 참여연대 3층에서는 태국간담회가 열렸다. 참여연대 국제연대위원회 실행위원인 성공회대 박은홍교수와 태국에 위치한 포럼아시아(Forum Asia)에서 일한 한국인권재단의 이성훈이사가 발제를 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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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은홍교수의 발제>

박은홍교수의 발제는 민주주의 정치원리에서 본 태국 시위 세력의 특성을 분석하는 것으로 이루어졌다.

현 태국시위는 크게 두 세력이 대립하고 있다. 한 쪽은 반탁신세력이자 왕정을 지지하고 윤리정치를 내세우는 ‘노란셔츠’, 즉 민주주의민중연대(People’s Alliance for Democracy:PAD)이다. 다른 한 쪽은 친탁신, 1997년 헌법수호, 선출된 권력의 정당성을 옹호하는 ‘붉은셔츠’, 즉 반독재민주연합전선(the United Front for Democracy Against Dictatorship:UDD)이다.
 
각 세력은 어떤 사람들로 구성되어 있을까? ‘노란셔츠’는 탁신의 부패와 독선을 혐오하고 국왕의 권위를 숭상한다. 내부 구성원들의 정치적 뿌리를 보면 왕정주의자들과, 군사정권 아래에서 반독재운동을 하던 사람들과 학생운동지도부가 포함된 레디컬(radical) 그룹이 포함되어 있는 좌우동거의 성격을 띄고 있다. 반면 ‘붉은셔츠’는 친탁신세력이자 쿠테타를 용납할 수 없다는 입장이 강하다. ‘붉은셔츠’내 특히 친탁신계에도 반독재.학생운동, 사회운동에 몸 담았던 사람들이 있다.
 
이들이 갖는 정치원리는 어떤 것인가? ‘노란셔츠’는 ‘좋은 쿠데타(good coup d’éㅇ호tat)라는 이름으로 선거나 민주주의로 정치적 문제가 해결이 안되면 쿠데타로 문제를 해결해도 좋다는 입장이다. 반면 ‘붉은셔츠’는 상대적으로 선거민주주의를 절대옹호하며 어떤 쿠데타도 정당화될 수 없다고 본다.
 
이러한 시민사회의 분열양상은 단순히 탁신이라는 정치지도자를 어떻게 볼 것인가를 넘어, 근본적으로 ‘태국의 시민사회가 민주주의를 어떻게 보고 있는가’라는 의문을 갖게 한다. 지금 태국인들은 ‘최소의 민주주의, 최대의 민주주의’에 대한 합의가 필요한 시기이다. 판단하기로는 절차 민주주의에 대한 합의로부터 민주주의를 키워나가야 한다고 본다.
 
덧붙여 시위대를 분리시키고 있는 주제 중의 하나는 ‘지구화(세계화)’이다. 지구화를 찬성하는 탁신정권은 FTA를 추진하고 자유무역을 권장하는 일종의 지구화에 적극적으로 대응한 측면이 있다. 반면 반탁신세력 중에는 물질만능주의를 경계하는 불교문화 옹호론자들이 있는데 이들은 탁신의 지구화 순응전략에 반대하는 입장을 갖고 있다.
 


<이성훈 이사의 발제>

인권위 이성훈 이사는 태국 사회의 4대 지배블록은 군부, 왕족, 자본가, 관료로 파악하였다. 이들 가운데서도 군부와 왕족변수가 현 상황을 가장 복잡하게 만드는 것으로 보았다. 또한 시민사회에서 드러나는 입장도 여러 갈래로 나뉘어져 있다고 보았다. 시위과정에서 나타나는 국가폭력을 비판하고 생명권 존중의 입장을 표명하는 집단, 시위대 양쪽 진영에 대해 뚜렷이 양비론적인 집단, 그리고 어느 한 쪽에 속한 집단으로 보았다. 그리고 모든 정치적 혼란은 쿠데타를 인정하면서부터 시작되었으며, 정치를 정치로 해결하지 못하고 사법부가 들어오는 상황은 좋지 않아 보인다는 지적을 하였다.
 
 
<토론>


현 사태의 분석을 넘어, 현실적인 연대와 선택의 문제에 대한 질문이 이어졌다. 사회자인 박진영 팀장은 태국에서 온 소식에 의하면 노동운동과 시민운동까지도 모두 이분화되어 연대를 할 수 없는 상황에 이르렀다고 하였다. 양쪽이 연대할 수 있는 중간 영역을 만들어 낼 수는 없을까 하는 의문을 제기하였다. 더불어 차은하 간사는 태국 상황에 대해서는 국가의 폭력이나 생명권과 같은 일차적인 문제만 다룰 수 있을 뿐, 실제 시민운동을 하는 사람들과는 어떻게 연대할 수 있는가 하는 것은 답을 얻기 어려운 것 같다고 하였다.
 
박은홍교수는 다수결의 원리를 따르는 민주주의의 양면성을 지적했다. 절차로서의 민주주의가 수의 게임에 따른 다수의 지배이기에 분명히 폭력성이 있지만 소수가 다수가 될 수 있는 가능성을 갖고 있기에 최적의 제도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바, '노란셔츠'의 선거 결과 불복종운동은 절차적 민주주의의 안착을 어렵게 하고 있다는 점을 지적했다. 시민사회가 민주주의를 어떻게 볼 것인가를 먼저 묻고 답을 얻어야 할 것이라는 말로 마무리하였다. 


Posted by 영기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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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시민사회단체는 지난 5월 19일 태국대사관 앞에서 태국 정부가 '붉은셔츠'시위대를 무력 진압하는 것을 반대하는 기자회견을 가졌습니다.

태국 정부는 유혈 진압을 중단하라

현재 태국에서는 군대가 시위대를 무자비하게 살해하고 있다. 한국 시민사회와 민중운동 진영은 30년 전 군부의 광주 민중 학살을 떠올리게 하는 태국군의 유혈 진압을 엄중하게 규탄한다.

지난 주말부터 태국 군대가 ‘붉은 셔츠’로 불리는 시위대를 무력으로 진압하면서 30명이 넘는 시위대가 사망하고 수백 명이 다쳤다. 끔찍한 참사가 발생했음에도 태국 정부는 군인들이 시위대에 섞여 있는 “테러리스트들”을 상대로 발포했다고 강변하고 있다.

그러나 정작 태국 군대의 비이성적인 진압으로 희생된 사람들은 비무장 시위 참가자, 의료진, 10세 소년, 캐나다 언론인과 지나가던 쇼핑객들이었다. 해외 언론들은 태국 군이 의도적으로 시위대를 상대로 정조준 사격을 했다고 보도하고 있고 시위 참가자들에 따르면 정부의 발포로 죽은 사람의 수는 50명이 넘고 있다.이러한 태국군의 붉은 셔츠 시위대에 대한 야만적인 진압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지난 4월에도 군대의 발포로 인해 30명이 사망했다.

붉은 셔츠로 불리는 시위대는 올해 3월부터 현 민주당 정부의 사퇴와 새로운 총선 실시를 요구하면서 수도 방콕에서 무기한 점거 시위를 시작했다. 현 태국 정부는 2006년 9월 쿠데타를 일으킨 군부의 후원을 받아 2008년 말 집권한 이후 반복해서 총선을 곧 실시하겠다고 약속해 왔다. 붉은 셔츠 측에서 총선실시를 요구하며 시위를 벌이는 것은 지극히 정당한 요구이다.

그러나 태국 정부는 시위대와 대화를 시도하기는커녕 “협박에 굴복할 수 없다”고 말하며 강제 진압을 시도하면서 많은 시위대들이 희생당하고 있는 것이다. 군대의 발포에도 불구하고 붉은 셔츠 시위대가 점거농성을 지속하자 태국 정부는 마지못해 협상에 응했다. 협상을 통해 양측은 9월 의회 해산과 11월 총선 실시, 유혈 진압 책임자 조사 및 처벌 등에 합의했다.

그러나 합의에도 불구하고 태국 정부는 유혈 진압 관련 책임자에 대한 조사의지가 없었으며 이에, 시위대가 책임자 조사를 요구하며 시위를 지속하자 정부는 11월 총선 실시 약속도 파기하겠다고 발표하였다. 지난 주말 직전 붉은 셔츠 지도부가 유혈 사태를 피하기 위해 협상을 재개하자고 요구했지만 오히려 태국 군대는 시위대를 포위하고 주변을 실탄 사격 지대로 설정했다. 현재 태국에서 발생하고 있는 비극적 상황의 책임은 전적으로 태국정부가 져야 할 것이다.

한국 시민사회와 민중운동 진영은 결코 태국 정부의 더 이상의 유혈진압을 묵과할 수 없으며 지금이라도 시위대와의 협상에 나설 것을 강력히 촉구한다. 아울러 이번 학살 책임자에 대한 철저한 조사와 처벌이 반드시 이뤄져야 할 것이다. 광주의 아픔을 기억하는 우리는 태국민중들과 연대하여 민주주의와 인권을 위해 중단 없이 전진할 것이다.

태국 정부는 학살을 즉각 중단하라!

2010년 5월 19일 기자회견 참가자 일동
국제민주연대, 다함께, 대학생나눔문화, 랑쩬, 사회당,
인권연대, 진보신당, 참여연대, 한국진보연대(가나다순)


기자회견문 영문(Statement to the press)

              Thai government must immediately stop the deadly crackdown on protestors

The Thai army is slaughtering Thai civilians. We in the Korean civil society and popular movements, who remember the massacre of Gwangju citizens by the Korean military junta three decades ago, strongly denounce the Thai army's use of deadly force against its own citizens.

Over 30 people have been killed, with hundreds injured, since last weekend when the Thai army began firing live ammunition at 'Red Shirt' protestors. The Thai government insists the soldiers were shooting at "terrorists" in the midst of protestors - "terrorists" who turned out to be unarmed protestors, medical staff, a ten-year-old boy, a Canadian journalist, and shoppers who happened to pass by the area.

International media sources report that Thai soldiers fired shots deliberately aimed at protestors, while protestors testify to more than 50 people dead since troops opened fire.
This isn't the first time the Thai army drew blood from protestors. Troops had already shot dead 30 people last April.

The Thai protest movement, also known as the 'Red Shirts', had begun an indefinite occupation of the streets of Bangkok since March this year, demanding  that the current government step down and new elections be held.

The current Thai government, since coming to power at the end of 2008 on the back of a military coup in September 2006, repeatedly promised to hold elections in due time. Therefore the Red Shirts are entirely justified to hold protests demanding elections.

But rather than engaging in dialogue with the protest movement, the Thai government is attempting to put down the movement through violence, resulting in the horrible bloodshed we are witnessing.

The government agreed to negotiate only after the Red Shirts held firm in the face of the army shootings. Through negotiations it was agreed that parliament would be dissolved in September, elections would be held in November, and those responsible for the shooting of civilians would be brought to justice.

Despite the agreement, the Thai government showed no commitment to investigate those responsible for the killings, prompting the Red Shirts to continue protesting. And as protests resumed, the government withdrew even its promise to hold elections in November. Shortly before last weekend, Red Shirt leaders demanded resumption of talks in order to avoid further bloodletting. The government answered by laying siege to the protestors and declaring the surrounding areas a "live fire zone." Responsibility for the ongoing tragedy in Thailand lies squarely with the Thai government.

We in the Korean civil society and popular movements can no longer tolerate the savage crimes being committed by the Thai government, and demand that it immediately resume negotiations with the Red Shirts. It is also critical that those responsible for the massacre be thoroughly investigated and punished for their deeds. We who remember the tragedy of Gwangju will keep marching for democracy and human rights in solidarity with the Thai people.

Stop the killing NOW!

May 19, 2010, participants of the press conference at the Thai embassy, Seoul


 

Posted by 영기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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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국 사태에서 나타난 시민사회의 갈등

얼마 전 친 탁신 세력 "붉은 셔츠"의 시위로 방콕 일대에 비상사태가 선포되고 군 진압작전 중 유혈사태가 발생했다. 공식 발표에 따르면 2명이 사망하고 100명이 훨씬 넘는 인명이 부상 당했다.

이 과정에서 한 가지 궁금한 것은 태국 시민사회의 입장이다. 지금까지 태국에서 군과 민간인이 충돌하는 수 차례의 유혈 사태가 발생할 때마다 시민사회는 한목소리로 군과 정부에 책임을 추궁했다. 하지만, 이번 경우는 달랐다. 그 주된 이유는 시민사회의 중요 세력들이 이미 "붉은 셔츠"로 불리는 독재저항 민주주의 연합전선(UDD)과 "노란 셔츠" 부대 국민민주주의연대(PAD)로 나뉘어져 각각 제편들기 정치활동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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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얼마 전 친 탁신 세력 "붉은 셔츠"의 시위로 방콕 일대에 비상사태가 선포되고 군 진압작전 중 유혈사태가 발생했다. ⓒAP=뉴시스

PAD는 2005년 초 언론재벌 쏜티 림텅꾼이 중심이 되어 만든 반 탁신 연합세력이다. PAD의 1, 2기 지도부에는 다양한 시민사회 운동가들이 참여하고 있다. 대표적인 인물이 전국공기업노동조합 사무총장 쏨싹 꼬싸이쑥, 민주주의진흥위원회 위원장 피폽 통차이, 빈민회의 고문 쏨끼얏 퐁파이분, 태국전력공사 노조위원장 씨리차이 마이응암, 태국철도공사 노조 임원인 싸윗 깨우완, 여성과 헌법 대표 말리랏 깨우까 등이다. 또 1992년 5월 민주화운동에 참여했던 싸란유 웡끄라짱 같은 인물도 있다. 이외에도 전국노동조합연맹, 불교단체 싼띠아쏙, 변호사, 연예인, 청소년그룹 등이 PAD에 참여하고 있다.

UDD는 2006년 9월 쿠데타 발생 후 이에 반대해서 생겨난 친 탁신 지지 세력이다. UDD에도 시민사회 운동가들이 다수 참여하고 있다. 대표적인 인물은 1992년 5월 민주화운동을 이끌었던 학생 대표 짜뚜펀 프롬판, 1976년 쿠데타 후 끝까지 투쟁한 '카오빠 (산에 들어가서 끝까지 투쟁했던 시위대 그룹)' 중 일인인 웽 또찌라깐, '독재가 싫은 토요일의 사람들(끌룸콘완싸오 마이아오파뎃깐)' 창설자이자 대변인 위푸탈랭 팟타나푸미타이등이 있다. 북부와 동북부의 농민단체, 방콕의 노동자·택시기사단체 등도 주요세력으로 참여하고 있다.

PAD를 지지하는 시민사회운동세력들은 탁신 정권을 농촌 유권자들의 무지를 악용한 부패한 포퓰리즘 정권으로 규정한다. 그래서 포퓰리즘 정책에 매수당한 농민과 빈자들은 민주주의를 올바로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에 투표권을 제한해야 하며, 의회의 70%는 임명직으로 하고 30%만 선출직으로 구성할 것을 주장한다.

이들은 탁신의 부정부패와 마약과의 전쟁이나 남부 무슬림 분리주의 운동을 무력진압 함으로써 발생한 인권유린 사태를 강력하게 비난했지만, 2006년 9월 쿠데타를 지지했고 2007년 개악된 헌법을 만드는 데도 앞장섰다. 그 주요 내용은 임명상원제도의 일부 부활, 정당정치와 의회의 권한을 약화시키고 관료체제와 사법부의 권한을 강화시키는 등 민주주의를 후퇴시킨 것들이다. 개악된 헌법으로 치러진 2008년 선거 후 탁신이 지지한 팔랑쁘라차촌 당(PPP)이 압승을 거둔 후에는 막무가내식으로 정부청사와 수완나품 국제공항을 점거한 채, 군부와 사법부 지지를 받아 두 명의 총리를 쫓아내기도 했다.

대의민주주의 원리를 부정하고 법치를 무시하는 "탱크 리버럴"이라고 비난받기도 하는 이들은 주로 군부, 관료, 방콕을 중심으로 한 중산층, 왕정지지 기득권세력들과 이해를 같이한다.

UDD를 지지하는 시민사회운동세력들은 포퓰리즘 정책을 통해서 농민과 빈자를 보호하고 엘리트 민주주의, 낡은 관료주의 세력을 청산하고 일부 특권층이 아닌 모든 국민이 주인이 되는 진정한 민주주의를 실현할 것을 주장한다. 이들은 국왕을 정치적으로 선점해 버린 PAD에 의해 공화정 추진세력으로 몰리고 있다.

표방하는 가치만으로 보면 UDD를 지지하는 시민사회운동세력들이 더 민주적으로 보일 수도 있지만 이들은 탁신이 포퓰리즘 정책을 추진하면서 저지른 인권유린과 사회운동탄압 사례에 대해서는 입을 다물고 있다. 부정부패에 대해서도 그것은 태국정치에 항상 있었던 것이고, 모든 정치인에게 해당하는 것으로 탁신만 비난받아서는 안 된다는 옹색한 입장을 보인다. 이들은 북부와 동북부 농민과 도시 빈민들의 입장을 대변하고 있다.

정치적으로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는 PAD와 UDD에 속해 있는 각각의 시민사회운동세력들은 이번 유혈사태뿐 아니라 이후 부각되고 있는 중요한 정치적 이슈들에 대해서도 상이한 입장을 보인다. 이들은 정치개혁, 헌법개정, 새로운 총선 실시 문제 등에 대해 정파적 이해관계에 묶여 설득력 있는 독자적 대안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결국, 시민사회운동세력의 분열과 정치화는 태국 민주주의의 발전의 한계성을 노출시키고 있다고 하겠다.

김홍구 부산외대 태국어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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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가 보는 한국 민주주의 위기

아시아가 한국 민주주의의 퇴보를 우려하고 있다. 한때 한국 민주주의는 아시아 민주주의의 선두 대열에 서있다는 평을 받았지만 이제는 그런 호평을 기대하기 어렵다. 현 정부가 출범한 작년부터 주로 인권 후진국을 상대로 활동을 하던 국제앰네스티나 '포럼 아시아'와 같은 국제인권기구가 한국을 방문하여 한국의 인권지수 악화를 경고하는 '사태'가 벌어졌으니 말이다.

물론 필자가 이전에도 강조했지만 '결손 민주주의', '선거 권위주의', '경제 헌정주의' 등으로 표현되는 민주화 이후 민주주의의 위기는 한국만의 현상은 아니다. 특히 이명박 정부와 한나라당의 행보는 한때 한 나라를 기업화하려고 시도하였다가 파국을 맞고, 마침내 자국의 정치를 악순환의 굴레로 다시 밀어넣은 태국의 탁신 전 수상과 그가 이끈 타이락타이당을 연상케 한다.

태국의 경우 1990년대는 새로운 시민사회가 출현한 중요한 시기였다. 정치적 공간이 확장되고 '저항정치'가 발전하였다. 언론의 자유도 확대되고 토론문화가 확산되었다. 새로운 단체들이 우후죽순 처럼 생겨나고, 보다 다양한 요구가 정치영역에 반영되었다. 더 많은 대중들이 더 많은 자유, 더 많은 참여에 대한 욕구를 갖게 되었다.

그러나 대자본에 이러한 흐름은 위협적이었다. 과거 침묵하고 있던 농민들이 국가가 자의적으로 도시 성장을 위해 천연자원을 투입하는 것에 반발하고 나섰다. 자유주의적 운동과 공동체주의적 운동은 중앙집권적 국가의 종식과 다양한 사회적 요구에 민감한 정부를 희구하고 나섰다. 이러한 시민사회운동은 1997년 신헌법, 교육 및 보건개혁, 분권화와 같은 의제에 반영되었다.

그러나 탁신은 집권 초기에는 시민사회진영의 개혁 의제에 공감하는 태도를 보였으나 시간이 흐르면서 적대감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일각에서는 이러한 적대감이 그의 정치이념과 무관한 것이 아니나 그를 둘러싼 대자본의 우려를 반영한 것으로 보기도 했다. 그럼에도 탁신은 예전보다는 좀 더 균등하게 성장의 결실을 나눠야만 대중적 지지를 살 수 있음을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 방식을 시민사회 주도가 아닌 국가 주도적인 것으로 고착시키려고 했다.

그러기에 탁신은 1990년대 내내 성장해온 자유주의운동, 공동체주의 운동과 부닥칠 수 밖에 없었다. 결국 탁신정권은 의회내 절대의석을 기반으로 그동안 확장되어온 정치적 공간을 통제하기 시작했다. 일부 비판적 지식인들은 '1976년 민중학살' 직후 시기를 제외하고 가장 강력한 언론통제가 이루어지고 있다고 느끼까지 했다. 반대자들을 협박하고 길들이기 위해 군이 정치적으로 다시 활용됐다. '마약과의 전쟁'에 따른 대량 살상은 군사독재 시절 처럼 국가가 폭력을 독점하고 있으면서 이를 언제든지 악용할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저항적 행동'은 여지없이 채찍을 맞았다. 무슬림이 많이 사는 남부지역에서는 촌락 지도자들이 살해되거나 실종되었다. 심지어 인권 변호사까지 실종되었다. 시민단체 활동가들은 공공연하게 모욕을 당하거나 말단 공무원들로부터 협박을 받았다. 비판적 지식인들은 침묵을 강요당했다. 탁신에게 민주주의는 성장의 도구일 뿐이라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었다. 그는 법치를 '경영'의 종속변수로 보았다. 주로 법안을 통해서 혹은 과거 '안보국가'가 행했던 낡은 수법인 은밀한 방식으로 저항정치를 압박하였다. 또 규칙과 돈과 공권력을 수단으로 언론매체를 통제하였다. 특히 뉴스 내용에 대한 치밀한 관리를 통해 반대 목소리를 차단했다.

한마디로 탁신은 나라를 '기업'으로, 통치를 '경영'이라고 사고하였기에 국민들을 권리, 자유, 열망을 갖고 있는 시민이 아닌 소비자, 주주, 생산요소로만 간주하는 것으로 비추어졌다. 그러기에 탁신은 시민사회로부터 아시아 민주주의의 선두대열에 있던 태국 민주주의를 반세기 전으로 되돌려, 또다른 일당국가체제를 만들려고 한다는 비판을 받았다.

이를테면 2003년에 인권 문제에 관련한 유엔의 비판이 있자 탁신은 "우리는 독립국가이고, 어느 누구한테도 머리를 숙이지 않을 것이다. 태국 국민은 단결해야 한다"는 식으로 맞대응했다. 그렇지만 시민단체들은 탁신정부가 "빈곤과의 전쟁"이 아닌 "빈민과의 전쟁"을 벌이고 있다고 비난하였다. 2002년 초에는 22명의 시민단체 활동가들과 44명의 외국인 활동가들이 조직범죄를 다루는 '돈세탁방지청'의 수사를 받고 있음이 드러났다.

탁신은 거듭해서 반정부성향의 시민단체들을 부당한 수법으로 해외 후원금을 챙기는 말썽꾼으로 묘사했다. 그는 자신들의 정책에 동조하는 시민단체들과는 협력하겠지만 그렇지 않은 시민단체들은 존재해서는 안된다는 식의 발언을 해댔다. 같은 해 초 정부는 시위 단속을 위한 보다 강력한 법적 장치를 모색하였다. 구체적으로 사전에 허락받지 않은 시위를 범죄시하는 법안을 만들려다가 여론에 밀려 포기하였다. 이미 폐지된 반공법과 유사한 보안법을 입안하려 하다가 이 역시 여론에 밀려 중단되었다. 그럼에도 탁신정권은 반테러법을 통과시켰다.

그러나 보다 큰 불만은 방송, 신문분야로부터 나왔다. 대표적인 예가 아이티비(iTV)의 예이다. 아이티비(iTV)는 1996년에 정부로부터 독립적인 방송매체로 출범하여 세간의 주목을 받았다. 그러나 1997년 금융위기 직전에 자금압박에 시달리면서 결국 탁신 가문 소유의 회사에 넘어가게 되었다. 2001년 총선 직전에 아이티비(iTV) 방송사 기자들이 탁신의 선거 보도 간섭에 불만을 터뜨렸다. 그러자 즉시 20여명이 해고됐다. 2003년 9월에도 정치적 간섭에 반발하였다는 이유로 또다른 아이티비(iTV) 직원들이 해고됐다. 방송의 성격은 점점 오락 프로그램 중심으로 바뀌었다.

탁신의 언론매체 간섭은 여기에 그치지 않았다. 그는 TV 방송사들이 기업인들의 사기를 북돋는 차원에서 부정적 뉴스는 줄이고 좀 더 긍정적 뉴스를 보도할 것을 주문하였다. 마침내 보도범위를 정부사업에 맞추고 정부에 부정적인 보도는 뺄 것을 요구하는 메모가 모든 라디오, TV 방송사에 보내졌다. 하나의 예로 메모 중에는 "민영화 반대는 방송되어서는 안된다"는 문구도 있었다. 자연히 모든 방송사들이 뉴스 프로그램을 줄이고 대신 정부행정, 범죄, 인물 등을 다루는 프로그램을 늘렸다. 당연히 저항정치나 비제도권 정치가 보도될 수 있는 여지가 좁아졌다. 반면 오락 프로그램, 특히 게임 쇼 프로그램이 늘어났다.

그러나 이렇듯 의회내 절대의석을 갖고 오만과 독선의 정치를 펴던 탁신정권도 '애국'을 기치로 내걸었으면서 자신은 세금 한 푼 안내고 어마어마한 액수의 주식을 외국기업에 판 '배신' 행각이 발각되자 방콕시민들의 거센 저항에 봉착했다. 그리고 마침내 군부 쿠테타로 붕괴하였다. 이때 절대의석을 기반으로 독선을 일삼았던 탁신과 타이락타이당은 지식인과 대중들에게 절차적 민주주의, 선거민주주의에 대한 불신을 깊게 남겼다. '좋은 쿠테타'도 있을 수 있다는 지극히 위험한 발상까지 횡행하게 됐다.

현재 태국 사회는 친탁신 진영과 반탁신 진영으로 두 동강 나 있다. 왕실과 군부의 위상이 다시금 현저히 높아진 상황 속에서 '민주주의'에 대한 사회적 합의는 실종됐다. 주목할 것은 적지 않은 이들이 이렇듯 '태국 민주주의'가 직면한 재앙의 기원을 "국가가 회사이고, 회사가 국가이기에 경영방식도 같다"는 최고경영자(CEO) 발상으로 독선과 전횡을 일삼던 탁신정권의 과오에서 찾고 있다는 점이다.

민주화 이후의 민주주의가 후퇴하고 있는 아시아 국가들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다. 그리고 그 우려의 대상에서 한국 민주주의도 예외가 아니다. 현 정부와 집권 여당은 정치적 소수자의 목소리를 외면하고 시민사회에 대한 통제를 능사로 여기는 식의 '기업가적 발상'으로 국가를 경영하였다가 전면적인 대중적 저항에 직면하면서, 결국 자국 민주주의의 시계를 거꾸로 되돌려버리고, 스스로도 파국을 맞고 만 태국의 탁신 전 수상과 타이락타이당의 대과(大過)를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할 것이다.

박은홍/성공회대 사회과학부 교수
Posted by 영기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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