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정부는 티베트 시위대 무력 진압을 중단하라!


국제민주연대, 민변 국제연대위원회, 경게를 넘어 및 참여연대등 36개 시민사회노동단체는 3월 18일(화) 낮 10시, 중국 대사관 앞에서 "중국의 티베트 시위 무력진압 규탄 한국 시민사회단체 공동기자회견"을 열었다. 이들 단체들은  중국정부가 티벳인들의 분리독립요구 시위를 무력으로 진압하면서 많은 인명이 사상된 것을 우려하였다. 이날 기자회견에서는 한국에 거주하는 티베트인들이 참여하였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사용자 삽입 이미지

중국대사관 앞


기자회견문

중국 정부에 맞선 티베트인들의 시위가 며칠째 계속되고 있다. 중국의 점령에 맞선 1959년 항쟁 49주년을 기념하는 평화 시위를 중국 정부가 무차별적 폭력으로 대응하면서 티베트 민중들이 학살당하고 있는 것이다.
티베트인들은 오랫동안 독립을 유지하며 고유의 문화를 유지하고 살아왔음에도 중국정부는 1951년부터 티베트를 무력 점령해 왔다.

중국이 티베트를 무력 점령한 지난 59년 동안, 티베트인들은 중국의 강압에 의해 각종 인권침해를 당해왔을 뿐만 아니라 중국은 개발이라는 미명하에 티베트의 자연을 파괴해왔다. 중국 정부가 불교 사원을 대량 파괴하고 한족을 대거 이주시키면서 티베트의 정신적 지도자인 달라이라마를 인정하지 않는 등의 강압통치를 해오자 티베트인들은 1959년, 1987년, 1989년에 대규모 항쟁을 계속해왔다. 외국 점령에 맞선 티베트인들의 저항은 정당한 것임에도 불구하고 중국은 이들의 항쟁을 폭력적으로 진압해왔고 결국 이번 시위 역시 최대 1백 명에 가까운 티베트인들이 학살당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또한 중국군은 집집마다 수색하면서 시위 참가자들을 잡아들이고 있다는 보도도 있다.

중국 정부는 여기 그치지 않고, 3월 17일 자정까지 모든 시위 참가자들이 투항하지 않으면 더 강력하게 대응하겠다고 협박하고 있다.

중국정부는 2008년 북경 올림픽을 앞두고 국제사회에 중국의 인권정책은 어떤 것인지를 책임 있게 내놓아야 한다. 지난해 버마 민주화 항쟁 당시에도 중국정부는 버마 군사독재정권의 편에 서서 버마 민중들의 민주화 요구를 무시하였다. 이번 티베트 시위역시 티베트인들의 정당한 요구를 폭력으로 진압하면서 중국은 국제적인 인권침해 국가로 비난받고 있다. 이미 인도, 오스트레일리아, 일본, 대만 등 많은 나라들에서 중국 정부의 무력 진압에 반대하는 집회가 열리고 있으며 올림픽을 앞두고 대대적인 반 중국 캠페인이 벌어질 예정이다.

오늘 기자회견에 참가한 한국 시민사회 진영과 민중운동 진영은 부당한 외세의 억압에 맞서 자신들의 권리를 주장하는 티베트인들의 시위를 적극 지지한다. 중국정부는 줄기차게 제기된 티베트문제를 감추는데 급급하지 말고 평화적인 대화를 통해 이 문제를 풀어야 할 것이다. 무력으로 티베트인들의 정당한 요구를 짓밟는 중국정부의 잘못된 행동은 즉각 중단되어야 하며 만일, 중국정부가 이러한 국제사회의 요구를 외면한다면 북경 올림픽이 화합의 축제로 개최되지 못할 점을 경고하는 바이다.

하나, 중국정부는 티베트 시위대에 대한 무력진압을 즉각 중단하라!

하나, 중국정부는 티베트인들의 정당한 요구에 귀 기울여라!

하나, 중국정부는 티베트인들의 민주주의와 인권을 보장하라!

2008년 3월 18일

경계를 넘어/광주인권운동센터/구속노동자후원회/국제민주연대/다산인권센터/다함께/동성애자인권연대/문화연대/민주노총 법률원/민주사회를위한 변호사모임 국제연대위원회/민주화실천가족운동협의회/버마액션/버마NLD 한국지부/부산인권센터/불교인권위원회/빈곤과차별에저항하는인권운동연대/삼성해고자복직투쟁위원회/서울경기인천이주노동자노동조합/성동건강복지센터/위례시민연대/인권실천시민연대/이주노동자인권연대/전쟁없는세상/제주참여환경연대/진보신당연대회의/참여연대/천주교인권위원회/카사마코/트랜스젠더인권활동단체 지렁이/티베트의 친구들/팔레스타인 평화연대/한국게이인권운동단체 친구사이/한국레즈비언상담소/한국성적소수자문화인권센터/한국성폭력상담소/한국티베트공동체센터(가나다 순, 전국 36개 단체)


티베트 사태 경과보고

1. 2008년 3월 10일, 1959년 3월 10일에 일어난 대규모 민중봉기를 기념하는 시위가 발생함. 1959년당시, 중국의 무력진압으로 인해 수만명의 티벳인들이 학살되고 달라이라마가 망명하게 됨.

2. 2008년 3월 14일 오후에 티베트의 수도 라싸에서 1989년 이후 최대규모의 시위가 발생하고, 중국 당국이 과잉진압에 나서자 시위가 격화됨. 14일 시위가 외신을 통해 알려지면서 국제사회가 주목하게 됨.

3. 3월 14일 시위를 계기로 3월 15일부터 라싸에 사실상의 계엄령이 선포되고 중국 군이 본격적으로 진압에 동원 됨. 15일에도 라싸를 비롯한 티벳 곳곳에서 시위가 발생함. 14, 15일 시위를 통해 수도 라싸에서만 10명에서(중국 당국 공식 발표) 100명(현지소식통)의 사망자가 발생한 것으로 알려짐. 3월 15일부터 호주를 시작으로 세계 곳곳에서 티베트 독립을 지지하는 시위가 개최됨. 중국정부는 티베트사태를 “달라이라마가 개입한 불순분자에 의한 폭동”으로 규정하고 ‘인민전쟁’을 선언함

4.  3월 16일 전세계 곳곳에서 티베트 독립을 지지하는 시위가 벌어지고, 중국정부는 3월 17일 자정까지 시위대가 투항할 것을 최후 통첩함. 티벳 인근지역인 깐수성과 쓰촨성에서도 티벳승려와 일반시민 1000명 이상이 시위에 나섬. 이 과정에서 쓰촨성에서 발생한 시위로 인해 34명이 사망한 것으로 알려짐. 최대 1000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다는 주장이 나오는 가운데, 인도에서 망명정부를 이끌고 있는 달라이라마는 국제사회의 무력진압에 대한 조사를 요구.

5. 3월 17일 중국은 공식기자회견을 통해 민간인 13명이 사망하고 10명이 중상을 입었다고 발표함. 아울러 수도인 라싸가 안정을 찾아가고 있으며 경찰 61명이 중경상을 입었다고 발표. 시위대에 대한 발포를 비롯한 살상용무기 사용을 공식 부인함. 17일 자정까지로 예정된 최후통첩을 앞두고 병력이 증강 배치됨. 한국외교부, 브리핑을 통해 “이번 사태가 더 이상의 인명피해 없이 원만히 수습되기를 희망한다”고 밝힘.




 


Posted by 영기홍
,
국제민주연대, 민변 국제연대위원회, 민주노총, 한국진보연대 및 참여연대등 시민사회노동단체는 2월 19일(화) 낮 11시, 포스코 본사 앞에서 " 포스코의 인도 제철소 건설과정에서 발생한 인권침해 규탄 시민사회단체기자회견"을 열었다. 이들 단체들은 포스코 제철소 건설 예정지인 인도 오릿사 주의 자가싱프르 구역에서 확산되고 있는 폭력사태에 포스코가 책임지고 대응할 것을 요구하였다. 기자회견이후, 이들 단체는 포스코에 "인도 제철소 건설과정에서 발생한 인권 침에 대한 공개 질의서"를 전달하였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포스코 본사 앞

  포스코 본사


[기자회견문] 포스코는 인도 오릿사주에서 일어나는 인권침해에 대하여 입장을 밝혀야 한다.

한국의 사회. 시민단체들은 포스코 제철소 건설 예정지인 인도 오릿사 주의 자가싱프르 구역에서 확산되고 있는 폭력사태 소식에 우려를 금할 수 없다. 이에 당사자인 포스코가 책임지고 대응할 것을 요구하기 위해서 이에 모였다.

심각한 폭력사태가 발생하고 있는 곳은 한국의 포스코가 아시아 최대의 제철소를 건설하려는 지역이다. 2005년 6월 22일, 인도의 오릿사 주 주정부와 한국의 포스코는 광산채굴과, 연간 1200만톤 규모의 제철소건설, 제철소를 운영하는데 필요한 항구 및 관련 시설건설에 합의하는 투자양해각서(MoU)를 체결하였다. 포스코의 이번 투자는 인도 역사상 단일규모로는 최대 규모의 해외직접투자이며, 한국에서도 유례없는 규모이다.  그러나 인도를 비롯한 국제환경단체와 인권단체 등은 제철소가 건설될 경우, 전통적 생활방식에 의해 살아온 2만명이상의 현지주민들의 생존권이 위협받고, 환경파괴가 이루어질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그런데 이러한 우려와 더불어 심각한 인권침해 사태가 발생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인도의 현지 사회단체와 국제 앰네스티에 따르면, 오릿사 주정부가 제철소 건설부지의 주민들을 강제 이주시키려하자 주민들이 이에 저항하면서 사태가 악화되고 있다. 2007년 2월, 4월, 9월, 11월에는 주정부와 주민들 간의 폭력사태가 계속 발생하였다. 특히 지난해 11월 29일, 24시간 동안 지역으로 이어지는 진입로 다리의 주요 검문소를 지키고 있던 지역 주민들이 100명의 무장괴한에 의해서 공격을 받았다. 이 무장괴한들은 사제폭탄을 시위 텐트를 향해서 던지고 항의하는 주민들을 구타했으며 대부분 여성으로 이뤄진 시위대를 성적으로 희롱했다 . 그리고 시위대의 소지품을 파손했으며 이 과정에서 약 50명의 주민들이 부상당하고, 그 중 15명이 중상을 입었다. 그런데 국제 인권단체를 경악하게 하는 상황은 5 킬로미터 떨어진 곳에 배치되었던 경찰이 공격이 진행되는 동안 방관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경찰들은 시위대가 분산되자마자 주민들이 설치한 바리케이드를 점거해버린 것이다. 인도 오릿사 주 경찰은  마을을 봉쇄하고 음식 공급마저 차단했을 뿐만 아니라 무장괴한들의 인권침해를 사실상 허용한 것이다. 경찰과 무장괴한에 의해 점령된 마을에서는 마을 주민들에 대한 사실상의 계엄 상태가 지속되고 있으며 주민들은 이러한 폭력이 더욱 심해질 것이라고 두려움에 떨고 있다.

4월 1일부터 시작될 본격적인 건설에 앞서 현재 최후까지 저항하고 있는 마을에 대한 본격적인 폭력진압이 예고되고 있다. 한국에서도 철거에 저항하는 민중들에 대해 용역깡패와 경찰에 의해 저질러졌던 처참한 인권침해가 인도에서도 똑같이 자행되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생존권을 요구하는 주민들이 이러한 인권침해를 당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인도 정부와 오릿사 주정부가 주민들에 대하여 충분한 대화와 조치들을 취하고 있지 않은 것에 대해 심각하게 우려하고 있다. 인도 정부가 의욕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경제특별구역정책으로 인해 현재 인도 곳곳에서는 생존권을 지키려는 인도 민중들의 저항이 계속되면서 많은 인명의 희생당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일방적으로 기업, 특히 외국자본의 편의만을 위해 주민들의 생존권을 무시하고 있는 인도정부의 현 모습은 재고되어야 마땅하다.

그리고 이러한 인권침해의 한 당사자로서 포스코의 책임을 우리는 거론할 수밖에 없다. 막대한 규모의 투자를 통해 발생하게 될 인권 및 환경침해에 대하여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강조해왔던 포스코로서는 마땅히 이번사태에 대하여 책임 있는 모습을 보여야만 한다. 포스코는 폭력사태에 대하여 직접적인 책임이 없다고 강변하고 있지만, 사업의 조속한 시행을 위하여 인도정부를 압박한 것이 결국 마을주민들에 대한 폭력사태로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한국의 시민사회단체들은 포스코가 이미 한국에서 포항건설플랜트 노조에 가한 인권침해를 기억하고 있기에 더욱 이 사태가 주민들의 일방적인 희생으로 끝나지 않을까 우려하고 있다. 진정으로 존경받는 기업은 주민들의 피눈물과 환경파괴로 이뤄지는 것이 아니다. 지금이라도 포스코는 한국의 시민사회단체들에게 폭력사태 및 환경파괴에 대한 입장을 밝히고 해결책을 제시해야 할 것이다. 

더 큰 저항과 희생이 일어나기 전에 포스코는 현 사태의 심각성을 충분히 인지하고 현지주민들과의 대화에 나설 것을 강력히 촉구한다.


우리의 요구 ;

- 포스코는 이번 사태에 대하여 책임 있는 입장을 발표하라 !

- 포스코는 이번 사태에 대한 구체적 해결방안을 제시하라 !

- 포스코는 주민들의 요구를 충분히 반영할 수 있는 공개적, 민주적 과정을 즉각 시행하라!

2008년 2월 19일

경계를 넘어/인권과 평화를 위한 국제민주연대/나와우리/노숙인 복지와 인권을 실천하는 사람들/한국비정규노동센터/인권운동 사랑방/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 국제연대위원회/빈곤사회연대/주거권 실현을 위한 국민연합/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전국빈민연합/불교인권위원회/다함께/공익변호사그룹 공감/아시아태평양노동자한국위원회/한국진보연대(지역/부문 38개 단체)/환경운동연합/참여연대








 
Posted by 영기홍
,
 
사용자 삽입 이미지

 인도네시아 개발독재 이후의 정치민주화


인도네시아는 얼마전까지 수하르토 대통령이 32년간 독재정치를 해온 것으로 알려졌고, 그 직후 메가와티 여성대통령, 그리고 현재는 수실로 밤방 유도요노(SBY ) 대통령이 집권하고있다. 오랜 기간 독재정치 이후 통치자가 두 번이나 바뀌었으니 독재정치 시기와 많이 달라졌을 것이라는게 일반적인 기대일 것이다. 

몇일 전 부정부패와 인권유린으로 국제사회에서 비난을 받던 수하르토 대통령이 사망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이런 수하르토를 두고 '개발의 아버지'와 '개발 독재자'라는 대조적인 별칭이 불려진다고 한다. 과연 인도네시아에는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길래 그런 것일까.
 

인도네시아에서는 지금 무슨 일이…

 
수 하르토 정권이후, 인도네시아의 민주주의는 민주적 선거, 정당의 공정경쟁, 국회 및 지방의회의 정상운영, 언론의 자유 등으로 대변되고 있다. 지금 인도네시아는 대통령직에서부터 정당, 의회에 이르기까지 권력의 분산이 이루어졌고, 이해관계가 집중되어 이합집산으로 표현될 수 있는 정당이 부활하였고, 중앙 및 지방제도에 대한 접근과 통제를 위해 관직 사고파는 관행이 분산되고 해체되는 상황이 분명해지고 있으며, 정치적 중개인, 기업인, 공무원들의 역할이 재조정되고 있으며, 군부가 공식적인 정치역할에서 물러나고 있는 것이 최근의 모습이다. 한마디로 인도네시아는 중앙집권적인 권위주의 국가에서부터 분권화된 선거 민주주의로 변화되어가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수하르토 정권 이후 민주주의적 제도와 절차를 도입하고 개혁하려는 노력에도 불구하고 몇가지 고질적인 문제가 잔재해있었는데, 그 중 가장 큰 문제는 선거와 정당, 지방정부에까지 퍼진 '부정부패의 만연'이었다. 대통령직접선거가 처음으로 도입된 2004년 선거에서 승리한 SBY 대통령도 몇가지 차원에서 비판을 면치 못하고 있는데, 첫째, 만연한 부패를 근절시키지 못한 점, 둘째, 기득권 세력인 기업과 정치세력들에 대해 통제하지 못한 점, 셋째, 인도네시아의 악명 높은 부패한 사법제도를 개혁하지 못한 점, 넷째, 군부를 통제하지 못한 점 등이 그 원인이다.
 

포스트-수하르토 시대에 드리워진 구체제의 그늘
 
그 결과 인도네시아는 SBY 정권하에서 실시된 개혁을 전혀 느끼지 못하게 되었고, 오히려 수하르토 시절의 강력한 통치자에 대한 향수가 번지게 되었으며, 심지어 국민들은 잠재된 범죄가 드러나고 경제가 부진한 원인을 '민주주의'에 있다고까지 생각하게 되었다. 수하르토 정권은 풍부한 석유와 가스 개발산업의 수익을 바탕으로 연평균 7%의 경제성장률을 기록했던 것과 대조적으로, 수하르토가 물러난 시기는 아시아 경제위기와 맞물리면서, 그 이후 인도네시아 경제는 곤두박질했기 때문이다.
 
인도네시아의 개혁(reformasi)이 완전히 실행되지 못하고 있는 원인은, 민주적 제도라는 것들도 수하르토 시대동안 성장해온 것들이고 구성원들도 역시 그 시대부터 존재해온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또한 거대한 군부가 상당히 중요한 의미에서 정치적, 경제적으로 퇴각을 하였지만, 유사군부 및 조직들 같은 '비시민'(uncivil) 사회집단이 정치 폭력배로 자리를 잡았고 이들이 종종 정당이나 관련 언론조직과 연계되는 일이 비일비재하였다. 결국 구체제가 포스트(post) 수하르토 시대에도 다양한 영역에 뿌리깊게 잔존하고 있었던 것이다.

 
현재 한국 민주주의는 어디에 와 있나
 
이 같은 인도네시아의 정치상황은 우리나라의 군부독재시절 또는 자유당 정권이후 모습을 연상케한다. 박정희대통령에 대한 평가가 엇갈리는 현상과도 비슷하다. 그런 가운데 인도네시아와 현재 한국의 공통 키워드는 경제성장, 강력한 지도자이다. 인도네시아를 포함한 동남아시아 국가들의 역할모델은 한국이었다고 한다. 비슷한 기간의 군부독재를 거쳤고, 민주화를 경험하고 있으며, 경제성장까지 이루었으니 당연히 모범적 역할을 했다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이제 그 이후 한국의 방향은 어떠해야 하는가에 대해 생각해 볼 일이다. 그것이 좋던 나쁘던 한번 뿌리깊이 박힌 정체성, 관습 등은 지도자 한사람이 바뀌었다고 해서 쉽게 변하지 않는다. 30년간 인도네시아 국민들의 습관처럼 형성된 부정부패와 군부의 개발독재 같은 습성들이 민주화가 이루어진 이후의 국민들에게 노스텔지어가 된다는 것이 이를 입증 해주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한 국가의 정치지도자의 이념과 방향설정이 중요한 이유이다. 이 시점에서 우리는 우리에게 다시한번 질문을 해보게된다. 한국의 민주주의는 어느 지점에 와 있으며, 현재의 한국은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얼마나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느냐고 말이다.


김은경(한국여성정책연구원 연구기획팀장)
Posted by 영기홍
,





민주주의에 대한 도전은 일국적 차원이 아니라 지구적 차원에서 일어나고 있습니다. 시민참여 역시 빠른 속도로 지구적 차원에서 이루어 지고 있습니다. 특히 신자유주의 세계화가 본격화되고, 911 전후로 군사화도 빠르게 진행되면서 신자유주의 반대 운동과 반전평화운동이 대표적인 국제연대운동으로 성장하였습니다. 한국 시민사회도 이에 발맞추어 국내 사안에만 머무르지 않고 지역의 의제를 국제화하고 있으며, 노동, 환경(지속가능한 개발), 인권, 평화 등 각 분야별로 국제 네트워크를 구축하고 있습니다.

참여연대 국제연대위원회도 그동안 참여연대 활동과 긴밀한 연관이 있는 거버넌스(반부패-정치개혁), 빈곤과 세계화의 부작용, 반전 평화 등에 관심을 기울이고 연대 활동을 전개하였습니다. 2000년 이후 국제연대위원회는 아시아의 인권과 민주주의에 대한 연대 활동과 빈곤과 개발(Development)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1. 해외진출 한국기업의 인권침해 감시 (1995년 ~ 1996년, 당시 한국해외진출기업문제특별위원회) 인도네시아, 베트남, 중국 등을 현지조사하며 한국 해외진출기업의 문제를 쟁점화함. 총 12회에 걸쳐 「지구촌 인권통신」 발간

2. 인권교육 '지구촌 좋은 이웃되기' (1997년 ~ 1999년, 당시 국제인권센터) 다국적 기업 감시운동 차원의 해외진출기업감시 운동 계속. 반인권 다국적 기업 제품 불매운동. 아시아 인권여행(버마, 중국), 그 외 인권교육, 출판 홍보 활동

3. 아시아 선거 감시 (1999년 ~ 2008년, 현 국제연대위원회) 아시아 선거 전문 감시단체인 ANFREL(Asian Network for Free Election)에 가입하여 인도네시아(1999), 스리랑카(2001), 방글라데시(2001), 네팔(2002), 캄보디아(2002),네팔(2008)의 선거 감시 활동에 참여. 그 외 아시아 정치 감시 단체 초청, 선거와 민주주의 국제회의 개최(2002)

4. 영문계간지 ASQ 발간 (2000년 ~ 2003년) 성공회대 아시아엔지오정보센터와 공동으로 영문 계간지「Asia Solidarity Quarterly」를 3년 간 총 12호 발간. 참여연대 활동 뿐 아니라 한국 시민사회 주요 활동 소개. 국내 대사관과 해외 대학 아시아학과 도서관 등에 발송

5. 국제 반부패 민주주의 운동 (2001년 ~ 2002년) 부패방지법 제정을 위한 국제회의, 아시아 반부패와 거버넌스 국제회의, 국제반부패 워크샵 참가 등

6. 국제 반전평화운동 (2002년 ~ 2003년) 911이후 급증하는 반전평화 국제네트워크에 참여. 2002년 아시아평화연대(Asian Peace Alliance) 에 가입. 2003년 자카르타 평화협의 참가 등. 이후 참여연대 평화군축센터에서 국제 평화운동 연대 활동 전담

7. 빈곤과 지속가능한 개발에 관심 (2000년 ~ 2003년) 한국에서 열린 아셈민간포럼 조직위 활동(2000), 인도네시아 빈민실태 조사단 참가(2000), 베트남WB 주최 빈곤 국제회의 참가 (2000), 경제사회 국제네트워크 참가(2003)

8. 아시아의 인권과 민주주의 지원, 연대 (2004년 ~ 현재) 버마의 민주주의와 인권을 생각하는 공간 [버마와 우리] 웹사이트 운영, [e-버마와 우리] 뉴스레터 발행, 지구촌ODA정책감시 뉴스레터 [나눔을 국경너머로] 발행, 버마, 태국, 스리랑카등 아시아 국제 단체들과 민주주의와 인권에 관한 연대 성명 발표 및 공동행동  

9. 한국대외원조(ODA)정책 모니터링 (2004년 ~ 현재,ODA정책위원회) 한국의 원조정책이 빈곤국가 주민들의 인권과 공동체 발전에 기여할 수 있도록 정책 제안 및 감시활동. 정책보고서 ODA목적과 원조체계(2008),유상원조의 현황과 문제점 그리고 개선과제(2009) 발간, ODA리서치펠로우쉽 운영. 국제워크숍 개최 및 국제개발협력 기본법 의견서 제출

10. 출판 및 해외연수 지원(2002년 ~ 현재)
 주간 이메일 뉴스레터「지구촌 시민사회와 이슈」총 58회 발간(2002년 ~ 2003년),「세계분쟁과 평화운동」출판(2004, 아르케출판사), 「우리안의아시아,우리가 꿈꾸는 아시아」(2008,해피스토리),「양지를찾는사람들」(2008.도서출판아시아)참여연대 활동가 해외 연수, 해외 인턴 유치

11. 시민강좌 및 포럼(2008 ~ 현재) 아시아의 인권, 민주주의, 빈곤, 테러, 기후변화, 공정여행 등 의 주제로 아시아를 현장 연구한 연구자, 활동가들의 시각과 관련 내용을 성찰적으로 배우는 강좌 진행. 「아시아의 초국가적 문제와 아시아 시민사회의 연대」(2008) 「국경, 아시아,시민사회」(2009), 「우리안의 아시아,우리가 꿈꾸는 아시아」(2010)  

12. 유엔인권이사회 등 유엔활동(2004 ~ 현재) 참여연대는 경제사회이사회 협의 자격을 2004년에 취득하여 유엔인권이사회에 서면, 구두 성명서 제출. 유엔특별절차를 통해 한국의 인권 상황을 보고하고 특별보고관을 초청한 학술 심포지엄「동아시아지역의 실태와 과제: 사이버상 의사표현의 자유」 (2009) 개최

2010년 국제연대위원회
첫째, 포럼아시아(FORUM-ASIA)와 네트워크를 강화하며 아시아 연대전략을 모색하는 자리를 마련합니다.
둘째, 한국의 대외원조정책의 효과를 증진하기 위한 연대 활동과 국제개발협력기본법제정 관련 모니터링 활동을 펼칠 예정입니다.
셋째, 국제금융위기와 개발의제를 다루는 서울 G20 정상회의에 대한 시민사회 대응 활동을 펼칩니다.  

위원장 : 이성훈(상임이사, 한국인권재단)
 차은하,손연우
 02-723-5051
http://blog.peoplepower21.org/International

 
Posted by 영기홍
,
사용자 삽입 이미지
한국 진보, 국가주의·민족주의를 넘어라


민주화의 '제3의 물결'이 스쳐간 아시아의 많은 나라에서 민주주의로의 이행과 '공고화'를 둘러싼 갈등이 전개되고 있다. 태국에서는 군부쿠데타로 민주화의 과정이 '역전(逆轉)'되었던 반면에 2007년 12월 총선에서는 다시 쿠데타로 쫓겨난 탁신당이 '국민의 힘당'이라는 새로운 이름을 단 다수당으로 재부상하였다. 한국에서는 '신보수정권' 시대의 개막이라는 형태로 민주화에서 또다른 '역전'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그런데 사실 아시아 민주화의 최대의 문제는, 많은 아시아 나라들에서 민주주의 이행을 통하여 정치적 경쟁구조로서의 선거민주주의가 등장했지만 그것이 실질적인 권력분점이나 경제적・사회적 독점의 해체나 완화로 이어지지 못함으로써 민주주의가 새로운 독점적 질서의 변형태로 존재하는 경우가 많다는 점이다. 많은 경우 독재 하에서 사회경제적 하위주체들은 새로운 '민주주의적인 정치적 형식' 하에서 새롭게 정치적·경제적·사회적으로 배제되고 주변화되는 경우가 많다.

그 하나의 현상으로, 많은 아시아 나라들에서는 인종적・사회적 균열선이 그대로 유지되면서 때로 더 큰 정치적 폭력에 의해서 다양한 사회경제적 하위주체들과 소수자들이 배제되는 경우도 있다. 한국에서 경험하고 있듯이 민주화가 신자유주의적 지구화와 결합되면서 소득분배의 악화, 양극화의 심화, 계급적 불평등의 심화 등을 동반하는 민주주의의 왜곡현상이 나타나는 경우도 있다.

이는 민주주의의 새로운 위기와 위협을 의미하고 이런 점에서 '민주주의의 민주화' 혹은 필자의 표현으로는 '민주주의의 사회화(socialization of democracy)'를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고 생각된다. 이는 민주주의를 사회와 일체화시키는 방향으로 변화시키는 것, 즉 민주주의라는 정치적 형식 속에서 살아가는 사회적 구성원들의 요구(demands)와 권리(rights)를 더욱 폭넓게 충족시키는 방향으로 민주주의 자체를 변화시키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민주주의라는 정치적 형식 속에서 존재하는 정치적·경제적·사회적 권력의 독점을 사회적경제적 하위주체들에게 평등한 방향으로 탈독점화하고 평등화하는 것을 의미한다.


'자본의 아시아'에 대응하는 '민중적 아시아'에 대한 고민의 필요성

이러한 민주주의의 사회화는 한국사회가 직면하고 있는 현재 민주주의 발전의 병목지점을 돌파하고 진보하기 위해서도 필요한 과제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필자는 이러한 과제가 한국민주주의 자체를 분석하고 변화시키기 위해서도 필요하지만, 이러한 관점을 아시아 전체를 대상으로 하는 지평에 확대적용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민주주의의 사회화를 위한 실천이 일국적 차원 뿐만 아니라 아시아적 차원에서도 시도되어야 한다. 이런 점에서 필자는 '사회적 아시아(Social Asia)'의 논의를 제기하고 있다.

사회적 아시아는 개별 아시아 사회 내에 존재하는 시민사회 및 아래로부터의 민중적 힘에 기초하여 아시아 민중들의 사회적 요구를 실현하기 위하여 아래로부터의 연대에 기초하여 구성되는 새로운 초국경적 아시아의 성격과 지향을 의미한다고 할 수 있겠다. 이는 시장 자율보다는 시장에 대한 공적・정치적 규율, 국가안보가 아니라 인간안보, 경제정책에 의한 사회정책의 희생이 아니라 사회적 관심에 의한 경제정책의 조정, 생태적 지속가능성 등 시민사회적 가치와 지향을 실현하기 위한 초국경적 차원의 사회적 규율질서를 형성해가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개별 사회에서 다양한 사회적 소수자들이나 민중들의 요구를 시장논리에 의해서 배척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아시아적 질서를 그러한 요구를 실현하는 방향으로 재실현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를 위해 기존에 개발독재에 싸우면서 나타난 민주주의를 향한 투쟁의 정신이 일국적 차원이 아니라 새로운 아시아를 형성하기 위한 '정신적 에토스'로 표현되어야 한다. 현재 우리의 의사와는 관계 없이, 자본이 주도하는 아시아의 초국경적 통합이 진전되고 있다. 어떤 의미에서 '자본의 아시아'가 구체화되어가고 있다. ASEAN+3와 같은 형태의 신자유주의적 아시아통합도 진전되고 있다.

초국경화는 피할 수 없는 추세인 것이 분명하다. 단지 어떤 성격이 초국경화냐 하는 것이 문제일 뿐이다. 어떤 의미에서 '어떤 성격의 아시아'를 구성할 것인가하는 자본과 노동자계급, 자본과 시민사회, 자본과 민중의 투쟁이 전개되고 있을 뿐이다. 지구화 시대에 일국적 차원에서 전개된 민주주의투쟁은 이제 자본이 주도하는 '신자유주의적 아시아'가 아니라 민중이 주도하는 아시아를 형성하기 위한 초국경적 진보에너지로 확장되어야 한다.

현재 신자유주의적 지구화는 아시아의 많은 나라들에서 사회적 아시아가 아니라 신자유주의적 아시아를 촉진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워싱턴 컨센서스에 부응하는 일련의 신자유주의적 정책들(민영화, 작은 정부, 금리의 시장연동성 증대, 복지 축소, 생활기본재의 상품화 등)이 민중복지의 확대가 아니라 축소, 그리고 민중들의 삶의 더 많은 부분이 공적 서비스에 의해서가 아니라 시장기제에 의해서 충족되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이런 점에서 아시아적 차원에서 최소한의 인간다운 삶의 조건들이 공공재로서 확보되고 최소한의 노동권리가 사회적 권리로 확보되도록 하는 노력이 절실해진다.

이러한 사회적 아시아를 위한 노력을 예를 통해서 드러내보자. 한국의 노동운동은 세계적으로 역동적인 노동운동의 나라이다. 그러나 한국의 노동운동은 주로 일국적 이슈에 집중되어 있고 글로벌 이슈를 대면하는 경우에도 일국적 노동기준의 약화의 문제와 관련될 때이다. 그러나 이제 한국의 노동운동, 나아가 많은 아시아의 노동운동은 일국적 노동문제만이 아니라 범아시아적 차원의 노동규범과 사회규약을 위한 초국경적인 실천 속에서 만나야 한다.

나아가 아시아 차원에서 사회적 최저선(minimum)을 형성・실체화하려는 노력을 행할 수 있다. 아시아 차원에서의 최소한 사회적 규약(social charter)를 실현하려는 노력도 행할 수 있다. 또한 투기적 금융자본의 60% 이상이 동아시아 몰려있는 상황에서, 아시아 시민사회가 이러한 투기자본에 대한 국제적 규제장치를 만들려는 노력을 공동으로 행할 수 있다. 물론 이러한 노력들은 '실체없는' 초국경적 권력을 향해서가 아니라 결국 국민국가에 대항하여 초국경적 규범과 규칙을 강제하는 노력으로 나타나겠지만, 국민국가적 이슈 그 자체에 집중하는 운동과는 구별될 수 있다.


아시아 민주주의의 최소규범을 실현하기 위한 노력과 한국의 과제

이러한 아시아적 차원에서의 '민주주의의 사회화'는 민주주의를 사회경제적 차원에서 실현하고자하는 것이라고 한다면, 이것은 아시아 민주주의의 최소규범을 실현하기 위한 노력 위에서, 그리고 그것과 병행하면서 추구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아시아 민주주의의 최소규범의 형성노력은 아시아적 차원의 인권레짐, 더 낮은 수준에서는 인권헌장 등과 같은 형태로 나타날 수 있을 것이다. 아시아적 차원의 민주주의와 인권 규범을 구속력있는 것으로 만들기 위한 노력이 바로 그것이다. 이런 점에서 한국의 내부적 인권발전을 넘어서서, 아시아적인 인권규범을 만들려는 노력을 국가적・시민사회적 차원에서 진행하고 이를 구속력있는 것으로 만들려는 노력도 진행할 수 있다.

예컨대 2002년 7월 1일자로 발효된 로마규정을 기초로 설립된 ICC(국제형사재판소)의 경우, 그것이 관할권을 갖는 '반인도주의적 범죄(anti-humanitarian crimes)'는 국민국가의 사법적 관할권을 일정하게 제약하고 그것을 초국경적인 사법적 정의기구에 종속시키는 의미를 담고 있다. 물론 대단히 불완전하고 미국 등 강대국들은 이를 무시하고 있지만, 이는 초국경적인 민주주의라는 점에서 대단히 의미있는 진전이라고 할 수 있다.

마찬가지로 아시아에서도 반인도주의적 범죄에 해당하는 '정치학살'같은 경우 아시아 공동의 민주주의적 의제로 만들 수도 있다. 현재로 민주화 이행 이후에도 필리핀에서는 수백명의 정치학살이 이루어지고 있다. 이러한 학살은 심지어 사회운동가들에게까지 행해지고 있다. 이런 점에서 아시아의 정치학살에 대응하는 아시아 의원단 네트워크 같은 경우를 만들 수도 있을 것이며, 아시아의 여러 나라에 산재하는 인권 및 민주주의 관련단체들이 최소한 이러한 정치학살, 그것이 어렵다고 한다면 운동가들에 대한 정치학살(인도네시아의 무니르 사건 처럼)에 공동으로 대응하는 초국경적인 공동기구를 만들 수도 있을 것이다.

그동안 아시아의 인권규약을 만들려는 노력이 여러 군데서 이루어져 왔다. 1998년 광주에서는 아시아 인권워크숍이 열려서 아시아의 인권단체들이 아시아 인권헌장을 합의하기도 했다. 아시아 인권단체들을 중심으로 이러한 노력이 진전되어져 왔다. 문제는 이러한 노력을 어떻게 아시아의 국가적 차원의 구속력있는 합의사항으로 만들어갈 것인가하는 점이다. 이것은 사실 시민사회 캠페인이 강력하게 전개됨으로써 비로서 가능할 것이다. 그러나 시민사회적 인권헌장이 개별 국민국가의 국회를 통과하려는 범아시아적 차원에서의 노력이 필요하다. 아시아 민주주의의 최소규범을 형성하기 위해서는, 시민사회의 행위자들이 국가 행위자들에 대해서 효과적인 압력을 조직하는 중장기적인 노력을 공동의 의제로 할 때 가능할 것이다. 이를 위해서 국가에 대한 시민사회의 압력과 영향력의 정도가 강한 나라에서부터 선도적인 모범을 보일 수 있을 것이다.

아시아의 많은 민주화 이행국가들은 불안정한 이행과정을 겪고 있다. 민주정부들은 구세력들의 저항에 포위되기도 한다. 남유럽의 경우 신생민주주의국가들이 보다 적극적으로 초국가적인 지역(region)의 수준에서의 인권레짐에 대해서 적극적이었으며 그것은 역으로 신생(新生)민주주의를 안정화시키는 효과를 낳았던 전례도 있다. 어떤 의미에서 초국경적인 혹은 범아시아적 차원에서의 인권레짐 혹은 민주주의 레짐의 형성노력은 개별국가에서의 민주주의의 안정화에 기여할 수 있을 것이다.

이를 위한 한국의 역할을 고민해보게 되면, 위와 같이 아시아 차원의 인권레짐과 아시아 민주주의의 최소규범을 만들기 위한 노력에 앞장서야 할 것이며, 동시에 개별 나라의 민주주의와 인권발전을 위한 연대적 지원노력을 적극화해야 한다. 상대적으로 정치적 민주주의가 선진화되어 있는 한국의 시민사회운동은 국내적 이슈에 지나치게 집중되어 있어, 이러한 아시아적 차원의 새로운 노력을 고민하지 못하고 있다. 일부 아시아 단체들을 중심으로 이러한 노력들이 선구적으로 일어나고 있다. 미얀마의 민주화를 위한 최근 한국단체들, 태국의 쿠데타를 비판하기 위한 시위 등도 하나의 예가 될 수 있다. 그러나 전반적으로 이러한 노력은 미약하다.

만일 한국의 시민사회가 아시아의 민주주의와 인권발전에 대해서 적극적인 연대의지를 갖게 되면, 아시아의 많은 후발 민주화의 국가들의 반민주주의적・반인권적 주제들을 우리의 문제들로 수용하면서 협력하고 지원하는 초국경적 연대노력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은 다층적인 차원에서 아시아의 많은 신생민주국가들에 대하여 민주주의와 인권발전을 위한 기술적・경제적・정치적 지원의 형태로 나타날 수 있다.

민주주의 지원에는 민주주의를 회복하도록 하기 위한 지원, 민주주의의 운영을 위한 기술적 지원에서부터 최근에는 '민주적 가버넌스(democratic governance)' 지원이나 인권 지원(Human Rights Aid), 투명성을 제고하기 위한 지원, 시민사회 활성화를 위한 지원 등을 포함하여 다양한 차원을 포함할 수 있다. 각 영역에서 핵심적으로 아시아의 민주주의와 인권을 진전시키기 위해서 아시아 시민사회 활동가들과 인권활동가들의 성장을 촉진하기 위한 인적 지원도 포함될 것이다. 다양한 수준에서 아시아의 민주주의와 인권 발전이 가능한 아래로부터의 민중적 힘이 강화되기 위한 다양한 협력과 연대노력들이 가능할 것이다.


탈민족주의・탈국가주의적인 인식을 위하여

이러한 초국경적인 아시아적 실천과 연대적 지원이 대중적 기반을 가지려면, 또한 실효성을 가지려면, 탈국가주의적・탈민족주의적 인식이 활동가 수준에서 나아가 일반 대중 수준에서 확산되어야 한다. 신자유주의 지구화와 아시아 민주화라고 하는 새로운 상황은 우리가 일국적 차원에서 가지고 있던 저항성을 어떻게 탈국가주의적 저항성으로 변화시킬 것인가하는 과제를 제기하고 있다. 이러한 탈국가주의의 과제는 아시아의 모든 나라 및 개별 사회의 민주진보세력에게도 적용된다.

아시아의 시민사회 세력 내부에도 사실 여전히 민족주의와 국가주의적 사고가 내재해있다. 동북아시아의 경우만 보더라도, 일본, 한국, 중국의 시민사회가 국가주의와 편협한 민족주의 를 어떻게 성찰할 것이며 동아시아의 민중연대와 시민사회 연대가 넘어설 것인가하는 것이 심각하게 고민되어야 한다. 특히 중국과 일본은 과거와 현재도 아시아의 지역에서 패권국가 혹은 준(準)패권국가로부상해가고 있는 점, 한국도 이제 경제적 패권국가로 전환되어가고 있다는 점 때문에도, 특별히 이러한 탈국가주의적・탈민족주의적 인식의 지평은 대단히 중요하다.

아시아에는 다양한 성격의 아시아주의가 존재한다. 중국의 중화(中華)주의와 일본의 대동아공영권의 상기할 수 있다. 이러한 것들은 '패권적' 아시아주의라고 할 수 있다. 이제 아래로부터의 '민주적 아시아''사회적 아시아'를 지향하는 새로운 아시아주의가 필요할 수 있다. 한국 및 아시아의 민주진보세력이 지향해야 하는 아시아주의가 있다면, 그것은 아시아를 민주적 공동체와 사회적 공동체로 사고하는 것이어야 한다.

특히 한국의 경우에 새로운 아시아의 경제적 착취자가 되어가는 상황에 놓여 있다. 경우에 따라서는 과거의 피억압자가 새로운 경제적 억압자로 전화되어 갈 수 있고 실제 그렇게 되어가고 있다. 지구화의 흐름은 한국의 시민사회와 민중진영에 대해서 과거의 피억압자가 어떻게 억압자로의 경로를 피할 수 있는 것하는 새로운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과거의 피억압민족이 준(準)제국주의적 민족으로 되어가고 있는 상황에서, 한국이 '세계무역 12대 대국'이 되고 한국의 '다국적' 대자본이 글로벌 경영이 전면화하고 있는 상황에서 과연 우리가 과거 피억압민족의 경험을 성찰적으로 파악하고한국이 과거의 제국주의적 민족의 경로와 다른 경로를 밟을 수 있도록 한국의 진보주의가 전환점을 만들 수 있는가 하는 문제를 한국시민사회와 민중진영은 심각하게 고민해야 한다.

이런 점에서 한국에서 편협한 국가주의와 민족주의를 넘어서려는 운동은 한편에서는 '자폐적 민족주의'를 담지하는 우파에 대한 투쟁임과 동시에, 다른 한편에서는 진보운동 그 자체의 혁신운동의 성격을 지니고 있다. 한국의 민주진보운동이 국가주의적・ 민족주의적 운동이 아니라 국가주의와 민족주의를 넘어서는 성찰적 운동으로 전개하는 것은 우파의 국가주의와 편협한 민족주의를 넘어서는 것이기도 하면서, 동시에 자신을 국가주의와 편협한 민족주의를 넘는 운동으로 재구성할 수 있느냐 하는 문제라고 생각된다. 이런 점에서 한국의 진보가 민족주의적・국가주의적 진보에서 세계주의적 진보로 전환하기 위한 노력을 새롭게 강화해야 한다.


조희연(성공회대 민주주의와 사회운동연구소 소장)
Posted by 영기홍
,

아시아의 부패정치, 한국 민주주의의 선택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한국 민주주의의 앞날에 대한 전망이 엇갈리고 있다. 한쪽에서는 집권-반대세력간의 권력교체가 한국 민주주의를 한층 진보시킬 것이라고 진단한다. 현재의 추세에 따른 새로운 집권세력의 등장이 한국 민주주의를 오히려 후퇴시킬 것이라고 우려하는 목소리도 만만치 않다.

집권의 위기, 경제보다 부패와 연관

물론 집권-반대세력간의 권력교환은 민주주의의 핵심 원리 중의 하나이다. 어느 저명한 정치학자는 이를 '시계추 효과'로 표현하였다. 그리고 서구 선진국의 예를 볼 때 이 '시계추 효과'의 관건은 집권세력의 경제실정에 대한 유권자의 심판이다. 다시 말해 시계추 효과는 '집권연속의 위기'와 불가분의 관련을 갖는다.

그러나 민주화 이후 민주주의 국면에 있는 대부분의 아시아 국가들의 경우 집권 연속의 위기가 경제정책의 실패보다는 부패와 연관되어 있음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설혹 경제의 실패와 연관되어 있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부패구조와 분리된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그리고 새로운 집권세력 역시 부패문제로 급격하게 정당성을 상실하면서 시민사회의 도전에 직면한다.

대안 조직에 실패한 진보, 공권력으로 집권 지키려는 부패한 보수

예컨대 피플 파워에 성공하여 우리 보다 앞서 민주화의 문턱을 넘어섰던, 그래서 한국을 비롯한 다른 아시아국가들을 향해 민주주의의 전도사 역할을 했던 필리핀의 민주주의는 1986년 이후 지속적인 우경화 속에서 지금은 진보적 지식인들과 활동가들을 겨냥한 살해가 빈번이 일어나고 있는 최악의 상황하에 놓여있다. 이런 우경화의 중심에는 오랜 기간 동안 사회 저변에 뿌리를 내리고 있는 기득권세력들의 부패구조가 있다.

그러나 보다 근본적인 문제는 우경화와 지속적인 부패정치를 청산해내지 못한 진보세력의 분열과 연대의 실패이다. 1986년 피플파워로 등장한 아키노가 사실상 무늬만 '진보'이지 기득권세력의 한 분파임을 모르는 것도 아니었는데 진보세력내의 불신은 민주주의의 보수화를 넘어설 수 있는 대안의 조직화에 실패했다. 그 결과가 구 기득권세력과 거리가 먼 의적 역을 맡아 대중적 인기를 모았던 영화배우 출신 에스트라다의 부상이었다.

그러나 집권 초기 서민의 대변자로까지 칭송되었던 에스트라다는 구 기득권세력에 못지 않은 부패혐의로 도중하차하고 말았다. 대통령직을 이용해 불법 도박활동으로 돈을 끌어모았다는 혐의를 받았던 것이다. 결국 에스트라다는 기득권세력과 시민사회가 연대한 거리투쟁, 이름하여 두 번째 피플파워로 무너졌다. 하지만 곧바로 빈곤층은 에스트라다의 복권을 꾀하는 거리투쟁으로 맞섰다. 이들에게 에스트라다는 여전히 반 기득권세력의 상징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른바 세 번째 피플파워는 실패로 끝났다. 반면 구 기득권세력은 이러한 시민사회의 분열 앞에 보다 확고히 단합하였다.

에스트라다의 뒤를 이어 대통령에 오른 아로요는 구 기득권세력의 지지를 받으며 '강한 공화국'이라는 정치적 수사를 통해 국민들의 지지를 조직해냈다. 이때 강한 공화국 비젼의 핵심은 강한 경제였다. 물론 그녀의 정치적 지지도는 에스트라다에게 개혁을 기대했던 계층의 '반란'의 덕도 있었다. 그러나 아로요 역시 2004년 대통령 선거 때 부정선거 연루 의혹과 불법 도박관련 스캔들에 휘말렸다. 필리핀 시민사회는 또다른 탄핵을 준비해야 했다. 그러나 아로요는 이에 공권력으로 맞서고 있다.

'경제 아는 수상'의 부패행각 문제삼지 않은 태국

필리핀과 함께 아시아 민주주의의 선두그룹에 속했던 태국도 필리핀 못지 않게 최악의 상황에 직면해 있다. 1997년 경제위기 이후 침체일로의 태국경제의 회생을 책임지겠다던 '탁시노믹스', 그 주역인 탁신이 법망의 허점을 이용하여 세금을 한 푼도 안 내고 19억 달러에 이르는 주식을 싱가포르 국영투자회사에 매각한 것이 드러나면서부터 방콕 시민의 '반란'은 탁신을 위기로 몰아넣었다.

태국사랑당을 창당한 태국 최고의 통신재벌 탁신은 애국주의와 포퓰리즘을 수단으로 하여 당을 출범시킨 지 3년도 채 안되어 집권에 성공하였다. 출범 당시 태국의 재계는 "이제 우리도 경제전쟁 시대에 경제를 아는 수상이 필요하다"라고 하면서 탁신을 적극적으로 지지하고 나섰다. 국민들은 탁신의 엄청난 재력을 그의 걸출한 능력으로 받아들였다. 연줄을 동원해 정부로부터 특혜를 받으며 부를 일군 그의 부정 축재의 전력은 더 이상 문제가 안되었다. 대중들에게 탁신은 똑똑하면서도 따뜻한 재계 엘리트 출신의 정치지도자일 뿐이었다. 그러기에 집권초기 문제가 되었던 부패행각도 흐지부지되었다.

침체에 빠진 태국을 일거에 회복시키겠다는 그의 경제정책, 이른바 '탁시노믹스'는 아시아 지역내에서는 물론 국제적으로도 주목을 받았다. 실제 탁시노믹스는 태국경제의 회생을 일구어내기 시작했다. 그는 명실상부한 '백마탄 기사'였다. 2005년 총선에서 탁신의 태국사랑당은 2001년 선거 때보다 더 많은 표를 얻어냈다.

노골적인 독선과 오만…민주주의의 파국

그러나 이때부터 탁신의 독선과 오만은 더욱 노골화되었다. 헌법재판소, 부패방지위원회, 선거관리위원회 등 1997년 신헌법의 산물인 독립기구에 다양한 방식으로 개입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언론을 주식 매입과 광고를 통해 길들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때로는 언론사 인사에 직접 관여하였다. 남부 무슬림에 대한 홀대에서 비롯된 남부지역 폭력사태에 대해서도 사실상 강경 일변도로 나간 결과 군과 경찰의 무고한 민간인 학살을 허용했다.

이제 더 이상 탁신은 똑똑하고 따스한 지도자가 아니었다. 마침내 탁신은 자신의 지지세력이었던 재계 일부로부터도 신뢰를 잃기 시작했다. 한때 동지였던 언론재벌 손티의 '반란'이 바로 그것이었다. 여기에다가 자신의 친코포레이션의 주식을 세금 한 푼 안내고 해외에 매각한 그의 '매국적' 행각은 반탁신 시민사회 진영의 불만에 기름을 붓는 꼴이 되었다.

하지만 그의 포퓰리즘 정책의 최대 수혜지역인 농촌에서의 탁신 지지도는 계속되었다. 그러기에 위기 해결책으로 의회를 해산하고 새로이 총선을 실시한 탁신에 대다수 야당과 시민사회는 보이콧으로 대응하였지만 농촌은 또다시 절대적 지지를 보냈다. 이렇듯 상황이 악화일로를 치닫게 되던 시점에서 안정과 질서 회복을 기치로 내건 군부쿠테타가 발발하였다. 결국 한때 태국 국민의 자부심이던 CEO 수상의 지도력은 태국 민주주의를 파국으로 이끈 채 종언을 거두었다. 그리고 태국 시민사회 역시 친탁신=반쿠데타, 반탁신=친쿠데타로 분열하였다.

경제까지 퇴보시킨 '경제회생 포퓰리즘'…이대로 멈출 것인가

이렇듯 나름대로 아시아 민주주의 그룹에 선두에 속하고 있다고 자부하던 필리핀과 태국의 민주주의는 지도자의 부패행각으로 소용돌이에 휩싸이게 되고, 마침내 최대 위기에 직면했다. 물론 이러한 '부패의 외부효과'는 민주화 이후 민주주의 국면에 있거나 민주화로 나아가고 있는 아시아 모든 국가들 공통의 문제이다. 그러기에 '반부패'라는 최소한의 합의를 토대로 반부패연대의 극대화를 꾀하는 변형된 형태의 최대최소(maximin) 전략이 아시아에 요청되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동안 한국 민주주의는 권력의 투명성을 높이면서 아시아 시민사회로부터 부러움을 샀다. 그러나 현재의 추세로 볼 때 대선 이후 한국 민주주의의 앞날을 낙관하기란 쉽지 않다. 부패사슬과 연결된 '경제회생 포퓰리즘'이 민주주의는 물론이고 얼마 있지 않아 경제까지 심각하게 퇴보시킨 다른 아시아국가들의 예가 이러한 우려를 갖게 하기 때문이다.

한국 민주주의의 미래를 어떻게 할 것인가. 이는 한국 시민사회가 반부패연대의 극대화를 통해 "부패는 안된다"라는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낼 수 있을 때만이 미래를 낙관할 수 있을 것이다.

지금의 위기는 우리 민주주의를 한층 성숙시킬 수 있는 또다른 기회일 수 있다. 그러나 위기를 기회로 만들기 위해서는 현재로서 차이를 뛰어넘는 반부패연대가 관건이다. 이는 인권옹호와 빈곤해방, 나아가 신자유주의와 투쟁하고 있는 아시아 대중들의 기대에 대한 책임이기도 하다.

박은홍 (성공회대 사회과학부 교수)
Posted by 영기홍
,

데모크라시 예더보! 어우야미, 어우야미! (민주주의는 가장 중요한 것! 승리한다, 승리한다!)



최근 버마 민중의 비폭력 민주화 요구를 군부가 무자비하게 진압하고 있어 전세계에 큰 충격과 분노를 주고 있다. 이에 국제 시민운동 단체들은 긴급하게 버마 민주화를 위한 국제공동행동을 조직했고 한국을 비롯해 호주, 미국, 영국, 뉴질랜드 등 35개국에서 10월 6일, 7일 버마를 위한 국제공동행동을 벌였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국제민주연대, 다함께, 새사회연대,인권실천시민연대, 참여연대, 버마 민주화를 지원하는 모임, 외국인이주노동자 인권을 위한 모임, 나와우리 등 그간 버마 민주화를 지원하는 캠페인을 벌여왔던 시민단체들이 한국의 시민단체들에게 호소해 시민사회단체네트워크인 ‘버마 민중학살 규탄과 민주화지지 긴급행동(이하 버마긴급행동)’을 꾸렸다. 시민, 인권단체는 물론 전국공무원노동조합 등 노조를 포함해서 현재(10월 6일)까지 118개 단체가 ‘버마긴급행동’에 함께 하고 있다.

이번 ‘버마 민중학살 규탄과 민주화지지 국제공동행동’은 버마긴급행동이 주최하여 10월 7일 2시 명동 아바타 앞에서 열렸다. 국제공동행동에는 국제 엠네스티 한국지부도 함께 참여하며, 희생자들을 추모하는 묘비를 세우고 더이상 피를 흘리게 해서는 안된다며 퍼포먼스를 벌였다. 집회에서는 버마에서 학살된 버마민중을 위한 추모식과 국제연대 발언, 각계단체발언, 문화행사, 상징 의식을 진행하고, 명동에서 집회를 마치고 조계사 근처 종로타워 앞까지 행진하였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 조국을 떠나 낯선 한국 땅에서 십여년.. 이제 한국말이 능숙한 버마 사람들은 난민으로, 이주노동자로 우리 곁에 머물며 조국의 민주화를 위해 한국인들이 나설 것을 호소하고 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 "타는 목마름으로, 타는 목마름으로 민주주의여 만세~~", "군부독재 몰아내고 민주주의 앞당기자" 이날 집회장에선 80년대 우리가 그토록 부르고 외쳤던 노래와 구호가 다시 울려 퍼졌다. 우리에겐 지나간 향수로 다가오는 노래와 구호가 또다른 이들에겐 가슴뭉클한 현재 진행형이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 집회 참가자들이 버마 민주화 운동에 대한 지지의 뜻으로 버마 승려들의 승복과 비슷한 붉은 천을 들고 목탁을 두드리며 거리 행진을 하고 있다. 행진 중에 희생자들을 추모하며 청계광장 다리에 붉은 천을 묶고 있다.




버마 민중학살 규탄과 버마 민주화 지지 국제공동행동 결의문


지금 버마군사정부의 야만적인 탄압과 통제로 민주화를 염원하는 버마 국민들이 참혹한 고통을 겪고 있다. 버마군부는 평화적인 민주화 집회를 열고 있는 시위대를 향해 무차별 총격을 가해 목숨을 빼앗고, 시위를 주도한 승려들을 고문하고 구타하며 사체는 유기하는 만행을 저질렀다. 또, 시위에 참여했던 수많은 시민들은 물론, 심지어 시위대를 향해 박수를 쳤다는 이유로 시민들을 마구 잡아들여 강제구금하고 있다.

군사정부가 거리 곳곳에 군대를 배치하고, 인터넷과 휴대 전화까지 끊어버리면서 탄압에 혈안이 되어 있는 것은 스스로 국민 다수의 지지를 받지 못하는 반민주적인 정부임을 자인하는 것에 다름이 아니다. 버마 군부는 이미 1988년에도 민주화를 요구하는 국민들을 향해 총칼을 휘둘러 3천명을 살해하였으며, 아웅산 수치에 대한 가택 연금과 수많은 정치범 양산 등 폭압 통치를 자행해 왔다.

따라서 피의 오물을 뒤집어 쓴 채 총칼을 휘두르고 있는 군사 정부에 맞서 투쟁하고 있는 버마 민중들의 민주주의에 대한 염원은 너무도 정당하고 고귀하다. 이 때문에 세계 도처에서 버마 군사정부에 대한 비난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버마 군사정부의 만행에 경악하며, 버마의 민주화에 대한 염원을 모아 세계 곳곳에서 국제 공동 행동이 벌어지고 있다. 한국에서도 많은 시민사회 단체들과 각계 인사들, 국회의원 등이 버마 군부를 규탄하고 민주화를 지지하는 입장을 발표하고, 항의 행동에 동참하여 왔다.

한편, 국내외에서 버마 민중들을 지지하고 연대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한국 정부는 버마 군사정부에 대한 모호한 입장만을 내놓고 있다. 노무현 정부가 버마 민주화 시위를 외면하는 것은 그동안 스스로를 ‘87년 6월항쟁의 계승자’라고 자처해왔던 것이 거짓임을 고백하는 것이다. 한국 기업들이 버마에서 벌어들이는 ‘피묻은 돈’ 때문에 버마 민중들의 고귀한 투쟁을 외면하는 한국 정부의 이러한 태도는 비난받아 마땅하다.

우리는 국제 공동 행동의 날을 맞이하여 세계 곳곳에서 평화와 민주주의를 염원하며 거리로 나선 모든 사람들과 하나가 되어 이 자리에서 버마의 민주화를 소리높여 외친다. 그리고 군사 정부의 폭압 속에서도 민주화를 위해 투쟁하는 버마 민중들을 지지하고 연대하는 활동에 함께 할 것을 결의한다.

하나, 버마 군부는 학살을 즉각 중단하라

하나, 버마 군부는 모든 연행자와 정치수를 즉각 석방하라

하나, 한국 정부는 버마 군부의 학살에 대한 강력한 규탄의 입장을 즉각 발표하라.

Free Free Burma Burma

삐두싼다, 삐와바지! (국민의 뜻대로 하라!)

2007년 10월 7일

버마 민중 학살 규탄과 민주화 지지 국제공동행동 참가자 일동
버마 민중학살 규탄과 민주화 지지 긴급행동


Posted by 영기홍
,

아시아의 민주주의와 인권을 위한 연대사업은 우리 사회의 민주주의를 완성시켜가는 또 다른 길



한국 민주주의 발전의 결정적 전환점이자 정점이었던 5.18 민중항쟁의 정신을 계승, 발전시켜 민족의 통일과 인류의 평화를 실현하는데 헌신하고자 설립된 5.18기념재단은 뜻을 같이하는 일반국민과 광주시민의 기금을 포함해 5.18 피해자들이 정부로부터 받은 보상금 일부 출연으로 1994년 8월 30일 설립한 비영리 재단법인이다. 초기 출범 당시에는 재정여건 상 5.18기념행사를 중심으로 기념사업을 전개하였으나, 1998년 광주광역시에서 보관하던 국민성금이 출연되고, 20주년이 되던 해인 2000년도부터 사업비의 일부를 국가로부터 지원받으면서 관련 기념사업이 성장해 왔다.

5.18기념재단의 여러 사업 중 국제연대사업은 2000년부터 본격적으로 진행됐는데, 아시아 지역의 인권관련 희생자와 가족, 관련 활동가를 초청하여 연대와 경험을 나누는 시간을 갖던 ‘아시아민주희생자 광주네트워크’ 행사로 시작된 된 국제사업은 스리랑카 실종자 행사를 지원하면서 그 규모가 더해져, 2004년에는 광주국제평화포럼(구 광주국제평화캠프)행사가 처음 조직되었으며, 2007년 올해에는 약 100명의 아시아지역 시민사회단체 활동가와 50여명의 국내단체 국제연대 활동가가 모여 성황리에 개최되었다.

5.18항쟁 직후 외롭고 힘겨운 진실규명 투쟁 뒤에는 언제나 세계도처에서 오월광주를 지지하는 성원과 후원이 더욱 큰 용기를 얻게 되었으며, 명예를 온전히 회복한 지금의 시점에서 이를 다시 되돌려 줄 수 있는 길을 5.18기념재단은 아시아에서 찾았다. 특히 금년 광주국제평화포럼 행사를 통해 5.18기념재단은 가칭‘아시아민주화운동 네트워크 출범을 위한 추진위원회’사무국이 되어 그동안 광주가 아시아 민주주의와 인권운동의 네트워크를 위한 공간을 제공하던 역할을 넘어 광주를 중심으로 아시아의 상시적이고 구체적인 형태의 협력과 연대활동을 연결하는 역할로 성장하기 위해 준비 중이며, 이를 계기로 재단의 국제협력사업도 새로운 변화와 발전을 모색하고 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물론 이와 같은 준비모임을 추진해오기까지 5.18기념재단은 그 단계와 과정을 한 걸음 한 걸음 거쳐 왔다. 특히 아시아지역의 인권과 민주주의를 위한 관련 사업들은 2004년부터 전국적인 단위의 추진위원회를 구성하여 토론과 심의에 의해 진행되었고, 재단 역시 추진위원회의 결과를 전폭적으로 수용하였다. 그러나 5.18에 대한 자료제공과 국제적인 활동가를 위한 네트워크 공간 제공이라는 것에서부터 시작한 국제사업의 형식은 참여하는 활동가들에 의해 보다 구체적이고 더 높은 수준의 연대 활동과 지원을 요구받게 되었으며, 2007년 행사를 기점으로 변화를 꾀하게 되었다.

2007 광주국제평화포럼의 의미

1999년 재단은 5.18기념행사 주간에 ‘아시아민주희생자 광주네트워크’라는 명칭으로 아시아의 인권관련 희생자 가족과 활동가를 꾸준하게 초청하여 그들의 경험을 듣고 5.18민주화운동을 소개하는 프로그램을 진행했다.아시아인권위원회(상임대표 : 바실페르난도, 2001년 광주인권상 수상자)의 추천을 받아 소규모 초청행사에서 시작된 이 네트워크 모임은 2004년에 ‘광주국제평화캠프’라는 명칭으로 바뀌게 되었고, 행사의 규모도 국제적인 관련 활동가들의 네트워크 공간으로 발전하였다. 2004년부터 개최된‘광주국제평화캠프’행사는 행사추진을 위한 추진위원회를 전국 관련 단체에서 구성하여 준비하였으며, 그동안 ‘아시아인권과정, 한국전쟁전후 민간인 학살문제, 전쟁, 국가폭력, 개발과 인권, 아시아의 분쟁과 NGO의 평화만들기’라는 주제들을 다루었다.

2007년에는 국제협력팀의 올해 사업목표를 반영하기 위해 행사명칭을 ‘캠프’에서 ‘포럼’으로 변경하여 지난 5월 15일부터 18일까지 개최하였다. 아시아지역 인권시민사회단체 활동가 90여명과 국내참가자 40여명등 130여명의 참가자가 참여한 이번 행사는 특히 태국에 위치한 포럼아시아(사무총장 이성훈)의 ‘동아시아인권포럼’ 행사와 함께 공동으로 개최되어 명실공히 5월기념행사 기간에 개최되는 대표적인 국제행사로 치러졌다.

한편, 국내시민사회단체 국제사업 활동가를 위한 프로그램이 그동안 행사 기간 중에 편성되어 있었으나, 형식적인 편성에 그쳐 구체적인 이슈나 사안을 가지고 논의와 협의가 없었다는 지적이 있었다. 그래서 올해 평화포럼 행사에는 별도의 국내단체 활동가 워크숍을 진행하게 되었다. 비록 참가자와 단체의 숫자는 많지 않았으나, 한국인권재단의 양영미 상임이사의 진행으로 워크숍에 참여한 각 단체의 국제 사업내용들이 비교적 상세하게 소개되었고, 각 단체에서 사전에 보내온 활동내용을 담은 자료집이 배포되었으며, 이 모임을 통해서 앞으로 국내 단체 간의 네트워크를 활성화 시킬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하였다.

아시아 민주화운동 네트워크

그동안 평화캠프 등 우리재단에서 개최했던 크고 작은 국제 행사에 참여한 아시아지역 시민사회활동가와 전문가들은 광주가 아시아의 민주주의와 인권을 위해 더 많은 역할과 지원을 해줄 것을 요구해 왔다. 최근에 들어 한국에서 개최하는 여러 국제행사들의 후속조치가 미비한 것과 마찬가지로 우리 재단의 행사 역시 이러한 문제점을 가지고 있었으나, 이것은 사실 아시아의 대표적인 인권도시라는 거창한 명제에 사로잡혀 자칫 또 다른 오해를 불러 올 수 있다는 데 대한 조심스러운 접근의 결과이기도 하였다. 그러나 해가 지날수록 아시아 시민사회단체 활동가들을 위한 네트워크 공간을 제공하는 역할을 넘어서는 수준의 요구를 받기에 이르렀고, 사업을 담당하고 있는 관련 부서 역시 재단 내부에서 국제협력사업의 내용이 한층 발전할 수 있도록 하는 위해서는 이와 같은 요구에 대응하기 위한 별도의 내부적인 근거 수립이 매우 절실했다. 이에 지난해 10월과 금년 2월에 우리재단의 사업과 연관된 아시아 지역 시민사회단체 활동가들과 준비모임을 가졌고, 2007 광주국제평화포럼 행사를 통해 민주화운동 네트워크와 관련된 논의를 공식적으로 진행하기에 이르렀다.

2007 광주국제평화포럼이 남긴 것

2007 광주국제평화포럼 중 아시아 민주화운동 네트워크에 참여한 40여명의 국내외 인권시민단체 관계자와 활동가들은 토론을 통해 발전적이고 상호간의 시너지 효과를 모색하며, 행동으로 실천하고 이슈나 사안에 대해 즉각적인 조치를 할 수 있는 협의체 기구를 구성하는데 의견을 모으고, 10여개 지역단체와 네트워크 단체가 참가하는 추진위원회를 구성하고, 1차 회의를 개최하여 명칭과 기구의 성격, 활동내용 등에 대해 결정하기로 하였다. 이 추진위원회 회의는 5.18기념재단의 지원하에 2007년 하반기에 아시아국가(태국의 방콕, 필리핀의 마닐라 또는 인도네시아의 자카르타)에서 지역적 협의회를 개최하기로 하였으며, 5.18기념재단은 추진위원회의 간사역할과 함께 필요한 재정적 지원을 하기로 하였다.

한편, 평화포럼 행사를 통해 네트워크 추진위원회에서 다루어질 의제로는 첫째, 총체적인 인권침해와 필리핀에서의 법외살인에 대한 면책과 같은‘민주주의에 대한 위협’에 대한 직접적인 행동, 둘째, 민주주의 투쟁 또는 인권침해 관련 희생자들에 대한 지원, 셋째, 능력개발과 경험이 적은 법률가 또는 인권 활동가들에 대한 훈련과 교육, 민주화투쟁에 대한 기억들을 세대 간의 소통을 위하여 그리고 젊은 세대들에게 또는 다가올 세대들에게 기억을 전달하기 위하여 문서화와 보존 사업 실시 등이 그것이며, 여기에 덧붙여 필리핀과 스리랑카의 강제실종, 인권변호사와 관련 활동가들에 대한 정치적 암살, 버마의 군부 독재하에서 자행되고 있는 모든 형태의 탄압과 인권침해의 사례들을 우선적인 대상으로 하여 국제적인 연대활동과 캠페인을 전개하는 것에 대해 의견을 나눌 예정이다.

아직도 많은 사람들은 국내 민주화를 완성하지 못한 처지에서 해외 인권과 민주주의에 대해 연대 사업을 진행하는 것에 대해 마뜩찮게 생각하기도 한다. 그러나 5.18기념재단이 추진해온 아시아 지역의 민주주의와 인권과 관련한 연대사업과 지원은 우리 사회의 민주주의를 완성시켜가는 또 다른 길이기도 하다. 우리 이웃의 인권과 민주주의 발전 없이 우리의 인권과 민주주의가 성장할 것이라고 믿는 사람은 아무도 없기 때문이다. 광주라는 지리적 불리함과 여러 가지 어려운 한계를 극복하고 추진해온 5.18기념재단의 작지만 소중한 국제연대활동은 아시아의 민주주의와 인권을 증진시키는 또 하나의 경계에 서있다고 볼 수 있다.

김찬호 (5.18기념재단 국제협력팀장)
Posted by 영기홍
,

"주어진 민주주의를 내것으로"



최근 '시민사회론의 르네상스'라 일컬어질 만큼 세계적으로 시민사회가 새롭게 주목받고 있는 가운데, 일본에서는 일본의 초기 시민사회, 시민운동론이 재조명을 받고 있다.

일본에서 '시민운동'이라는 개념이 처음 등장한 것은 1960년 안보투쟁을 계기로 해서다. 시민운동은 기존의 사회운동에 대한 대안적인 운동형태로서 제시됐다. 그것은 "진보적 운동 속의 관료주의적 교조주의적 편향"에 대한 비판과 더불어 경제성장과 급속한 도시화에 따라 파편화된 사생활 중심의 대중사회화가 진전되는 데 대한 문제의식을 내포하고 있었다.

'민주주의 수호 투쟁'으로 확대된 안보투쟁

패전 후 일본에서는 전후 민주화의 흐름 속에서 수많은 자발적 결사체들이 조직됐다. 치안유지법이 폐지되고, 공산당, 사회당 등 좌파 정당이 합법적으로 존재하게 됐으며, 직장 단위의 노조 조직률이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농민의 조직화도 진전됐고, 학생운동도 부활하여 각 대학, 그리고 대학 간의 연대 조직이 결성됐다. 1960년대까지 사회운동을 주도한 것은 전후에 분출한 이들 진보적 민주단체들이었고, 사회운동의 주류는 이러한 조직 기반을 가진 노동운동, 학생운동이었다.

1950년대 냉전체제가 확립되면서 정치권은 '보수-혁신' 대립 구도로 재편되고, 다양한 자발적 결사체들도 각 정당 아래 계열화되는 경향을 보였다. 노조, 학생조직 등 진보적 단체들은 좌파 정당 아래 계열화되어 그 대중적인 기반이 됐으며 사회운동은 좌파 정당을 정점으로 그 하부에 수직적으로 계열화된 운동 조직들에 의해 이루어진 '혁신세력'에 의해 주도됐다.

이런 상황에서 당시 일본의 진보적 사회운동이 지닌 문제점을 지적하고, 이를 극복하기 위한 새로운 운동의 논리를 전개한 것이 '시민운동'을 주창한 지식인들이다. 안보투쟁은 기시 정권이 추진하던 일미안전보장조약 개정을 저지하기 위해 다양한 세력들이 연대하여 전개한 대투쟁으로, 1960년 5월19일 집권 자민당이 경찰대를 국회 내에 배치시킨 가운데 단독으로 신안보조약 승인을 강행함으로써 안보조약 개정 반대운동은 집권여당의 비민주적인 폭거에 항의하는 민주주의 수호 운동으로 의미가 확대됐다.

조직화되지 않은 일반 시민 중심으로 탄생한 '시민운동론'

그 이후 한달 가까이 매일 10만 명 이상, 많을 때는 30만 명 가까운 군중이 국회를 둘러싸고 시위를 했다. 안보투쟁도 실질적으로 노조, 학생단체 등이 주도하여 시위 참가자들은 조직을 통해 동원된 경우가 많았으나, 그동안 정치에 무관심했던 사람들, 조직에 속하지 않은 자발적 시위 참가자들도 많았으며, 이들은 직업 정치가들과 직업 혁명가들의 지도자의식이나 행동을 냉소적으로 바라보는 경향을 보였다.

특히 안보투쟁이 민주주의 수호 투쟁으로 신국면을 맞게 된 이후 조직화되지 않은 일반 시민 참가자들이 증대했다. 기존의 운동 방식에 대해 비판적인 문제의식을 가졌던 지식인들 가운데 이러한 새로운 경향에 주목하여, 일본사회의 현실에 맞고 형해화된 민주주의를 실질화하기 위한 새로운 운동의 논리를 모색했다. 즉 안보투쟁을 통해 대두한 새로운 운동 형태의 특징을 포착하여 이를 바탕으로 향후 대안적인 운동을 창출하기 위한 실천적 이론으로서 시민운동론이 나오게 된 것이다.

새로운 운동 논리의 핵심은 주체와 조직에 관한 것이다. 사회학자이자 대표적인 시민운동론자인 히다카 로쿠로는 시민운동 주체인 '시민'의 특징으로서 다음과 같은 다섯 가지를 들었다: 첫째, 무당무파일 것, 둘째, 정치적 야심을 갖지 않을 것, 셋째, 24시간 활동가가 아니라 직업을 가진 생활인으로서 '파트타이머'적인 참가자일 것, 넷째, 조직의 지령에 의해 동원되는 것이 아니라 자발적으로 참가할 것, 다섯째, 필요 경비는 자신이 부담할 것. 이같은 '시민' 개념은 '조직인'에 대비되는 것으로서, 조직에 매몰되지 않은 자율적인 개인을 강조한다.

"좌·우 양쪽 중앙집권주의 모두에 저항하는 운동"

이러한 시민운동의 주체 개념은 조직론과 밀접하게 연계돼 있다. 기존의 사회운동은 지도부와 이데올로기적인 지도 이념이 있어, 운동의 방침과 구체적인 행동강령은 상층의 핵심 간부들에 의해 결정되어 하부로 전달되고, 조직에 속한 대중은 지도부의 방침에 따라 통일적인 행동을 취하는 구조로 되어 있었다(정치학자 이시다 다케시는 이런 정책 결정 방식을 '관료주의적 지령주의'라고 표현했다). 목표 달성을 우선시하여 효율적인 운동을 수행하기 위해 조직과 조직력을 중시했기 때문이다.

연합조직과 각 단위 조직들의 관계는 '전면 포섭'의 관계로서, 모든 점에서 단일한 지도 방침에 따라 획일적으로 움직이는 것이다. 이런 관계는 필연적으로 조직을 단순한 '세(勢) 집합'으로 만든다. 이런 구조 하에서 같은 운동에 동참하는 주체들은 이데올로기적으로 동일한 계열에 속하는 것을 당연한 전제로 하고 있었다. 그 계열에서 자신이 정통적 전위임을 주장하는 사람은 같은 이데올로기에 대한 신념이 약한 자를 "뒤떨어져 있다"고 생각하며, 자신과 같은 계열에 전면 포섭되지 않은 조직에 대해서는 '전면 부정'의 태도를 취하는 경향이 있었다. 그리고 이는 "정의를 독점하는 '양심'주의"를 낳는다. '정의로운' 목표 달성을 위해 운동의 효율적인 조직과 세불리기가 중시되는 가운데 운동에 참가하는 풀뿌리 대중 개개인은 자율적인 판단에 의해 움직이기보다는 조직의 논리, 지도부의 방침과 지도 이념에 따라 동원되는 양상을 보였다.

시민운동론자들은 기존의 사회운동의 이같은 조직 구조를 집단주의, 권위주의, 정치주의적인 점에서 보수, 체제측과 공유하는 '일본적 특성'이라고 봤다. 조직 논리가 지배하는 집단주의적, 목표지향적인 운동은 풀뿌리 대중의 주체화를 억제한다. 히다카가 '시민운동'을 "좌로부터의 중앙집권주의에도, 우로부터의 중앙집권주의에도 저항하는 운동"이라고 한 것은 이런 의미를 내포한다. 시민운동론자들이 제시한 '시민' 개념은 하나의 이념형으로서, 개인이 내면에 일관된 의식이나 논리를 형성하고 그에 의거해서 자율적으로 행동하는, 그런 의미에서 '시민성'을 확보한 인간 유형이라 할 수 있다. 한편에는 조직 내지 집단에 매몰된 대중이, 다른 한편에서는 파편화된 사생활에 매몰된 대중이 존재하는 가운데, 어떻게 대중을 주체화하여 정치, 사회에 대해 적극적인 발언과 참가를 하도록 할 것인가- 시민운동론자들은 이를 일본에 민주주의를 뿌리 내리기 위한 과제로 봤다.

조직이 물신화되지 않도록 이슈 중심으로 뭉친다

철학자 쓰루미 슌스케(鶴見俊輔)는 서구에서 시민혁명을 통해 이룬 제도를 들여왔을 뿐인 일본 같은 나라는 '주어진 민주주의'를 자신의 것으로 만들기 위해 "새로운 시민혁명"을 거칠 필요가 있다면서, 안보투쟁의 전개과정 특히 1960년 5월19일 이후의 흐름에서 그런 시민혁명적인 성격을 발견한다. 그것은 "일본의 공적 정책이 일본인의 사상의 사적(私的)인 뿌리로부터 새롭게 배태"되는 것으로서 "뿌리로부터의 민주주의(radical democracy)(根本からの民主主義)"이다. 즉 1960년에 등장한 일본의 '시민운동' 담론은 서구와 같은 근대화를 이루지 못한 일본에서 형해화된 근대 민주주의의 실질을 이루기 위한 '근대성'의 문제를 제기한 것이다.

앞에서 히다카의 운동 주체로서의 '시민' 개념을 소개했는데, 이는 기본적으로 '개인주의'적인 개념이다. 그러나 '시민'은 '다른 사람과 단절되어 자신의 생활에 매몰되는 존재'가 아니라 연대를 추구한다. 단 그것은 집단 활동이 개성의 상실을 가져오지 않는, 즉 자율적 개인으로서의 연대다. 일본의 기존의 조직 구조는 보수, 진보를 막론하고, 개인이 어떤 조직에 속하게 되면 모든 사안에 대해 동조하고 통일 행동을 취할 것을 전제로 하고, 개별 사안에 대해 다른 행동을 취하는 것은 이단시하는 경향이 있는데, 조직에 속한 모든 개인이 모든 사안에 대해 같은 생각을 가질 수는 없다.

따라서 시민운동은 조직이 물신화되지 않도록 상설 조직을 갖지 않고, 이슈 중심으로 입장을 같이 하는 사람들이 함께 조직하고, 이슈가 해결되면 운동조직은 해체하는 방식을 추구했다. 지도부와 이데올로기적인 지도 이념이 없이 운동 참가자는 동등한 자격으로 횡적인 유대를 맺으며, 이데올로기나 정치주의적인 관점이 아니라 개인에 내면화된 윤리나 생활의 관점에서 발언하고 행동하는 것, 참가자 개개인이 납득하면서 행동하기 위해 목표 달성 이상으로 논의의 과정을 중시하는 것, 이런 원칙들은 사회운동 자체의 민주성을 확보하는 것이 곧 진정한 민주주의를 확립하는 길이라는 인식에 바탕을 둔 것이라 하겠다.

이상과 같은 일본의 초기 시민운동론은 일본의 역사 속에서 배태된 것이므로, 한국의 시민운동론과 차이를 보이는 것은 당연하다. 지면의 제약 상 한국과 비교하며그 의미를 짚어볼 여유는 없으나, 이 시기 일본의 시민운동론자들이 제시한 문제의식과 비전은 눈부신 성장을 이룬 가운데 시민운동 내부의 문제를 비판적으로 성찰할 시점에 있는 오늘날의 한국 시민운동에 시사하는 점이 있다고 생각한다.
한영혜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
Posted by 영기홍
,
지난 9월 19일 태국에서 일어난 쿠테타는 안정 궤도에 들어섰다고 평가되던 태국 민주주의 파국을 의미한다. 그런데도 현재 태국에서 ‘좋은 쿠테타’라는 말이 나오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태국은 1992년 민주화 이전까지 17번의 쿠테타가 있을 정도로 ‘쿠테타의 나라’로 불리웠다. 많은 사람들은 쿠데타로부터 쿠데타로 이어지는 ‘태국식 민주주의’의 악순환이 1992년 민주항쟁으로 군사정권이 무너지면서 종결된 것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태국 민주주의의 위기는 1997년 경제위기로부터 시작된다. 당시 태국 정부는 국제통화기금(IMF)의 요구에 따라 긴축정책을 폈다. 그 결과 기업파산과 실업자가 급증하였다. 이 와중에 일각에서 외세의 간섭에 대한 불만이 터져나오기 시작하였다. 이러한 사회적 분위기를 영리하게 읽어내고 ‘타이사랑당’이라는 이름으로 지지층을 조직화낸 정치가가 다름 아닌 억만장자 탁신이다. 타이사랑당은 강력한 정당의 출현을 제도적으로 보장한 1997년 신헌법하에서 처음 치루어진 2001년 선거에서 압도적 의석을 차지하였다. 이로써 탁신은 유례없이 막강한 정치적 지지를 등에 업은 민간 수상이 되었다.

그러나 탁신은 절대적 지지 속에서 독재자의 모습을 보이기 시작했다. 언론통제, 강경진압으로 일관한 ‘마약과의 전쟁’, 남부 무슬림지역에 대한 홀대와 무슬림 민간인 학살 등은 현지 남부 무슬림인들은 물론이고 비판적 지식인층과 시민사회의 분노를 샀다. 태국 사회에서 지존의 존재인 국왕도 탁신의 권위주의적 통치 행태에 우회적으로 불만을 표시하였다.

하지만 탁신의 독선은 오히려 더 심해졌다. 그런데 올해 1월 탁신 일가가 19억달러에 이르는 자신들의 주식을 해외에 매각하는 과정에서 세금을 한 푼도 내지 않은 ‘반애국적’ 행각이 발각되었다. 이에 방콕 시민이 분노하고 연일 거리로 나왔다. 탁신은 수상직 사임 의사를 밝혔으나 이후 이를 번복하는 태도를 보였다. 오는 11월에 재선거가 예정되었으나 탁신의 농촌진흥정책의 수혜자라고 여기는 대다수의 농촌지역은 여전히 탁신의 표밭이었다. 야권은 난국해결을 위해 국왕이 새로운 수상을 임명해줄 것을 요청하고 나섰다.

이러한 와중에 국왕에 대한 충성과 탁신의 비리 척결을 명분으로 한 군부 쿠테타가 일어났다.

한마디로 이번 쿠테타는 금권민주주의의 독단적 행태, 부정부패가 불러온 반민주적 정변이다. 15년전에도 군부는 민선정부의 부정부패를 이유로 쿠테타를 일으킨 바 있다. 쿠테타 초기 국민들은 쿠테타를 일으킨 군부에 대해 지금처럼 큰 반감이 없었다. 그러나 군부가 더 이상 정치개입을 않겠다는 애초의 약속을 어기자 엄청난 규모의 반군부 민주화 시위가 일어났다. 이번에도 쿠테타를 주도한 세력은 쿠테타 직후 조기 민정이양을 약속했다. 역사가 또다시 반복될 것인지, 향후 태국군부의 행태와 시민사회의 대응이 주목된다.



* 이 글은 <대학주보>에 실린 글입니다.
박은홍(성공회대 사회과학부 교수, 국제연대위원회 실행위원)
Posted by 영기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