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우리 사회의 경솔함을 보여주는 일들이 많았다. 미디어법 처리에 대한 헌재의 결정에 대한 태도가 그랬고, 루저소동이 그랬다. 판결문 어디에도 ‘유효’라고 적시도 하지 않았음에도, 제대로 확인도 하지 않은 채 헌재가 ‘유효결정’을 내렸다고 당리당략적으로 접근한 일부 언론과 정당들의 태도가 조금은 경솔했다. 미디어법 처리절차에 문제가 있다고 지적하면서도 무효 확인을 기각한 헌재의 태도를 삼권분립차원에서 해석하지 않고 자신의 생각과 다르다고 하여 ‘헌재놀이’를 시작한 네티즌들의 태도도 조금은 경솔했다. 처음부터 정치권이 헌재의 결정을 존중하고 미디어법을 재논의하기 위한 공론장을 시작했으면 좋았을 것이다. 특히, 정치권 자신이 스스로 풀어야 할 숙제를 사법부에 떠넘겨 사태를 더욱 악화시키는 ‘정치의 사법화’를 자제해야 한다는 자성을 시작했으면 더 좋았을 것이다.

진지한 대화와 성찰의 공론장
루저 소동도 마찬가지다. 이번 사건은 외모가 상품화되는 천박한 자본주의적 정신이 방송이라는 공공영역에 침투한 우리시대의 일그러진 자화상임에 틀림이 없다. 우선 방송사와 제작자가 자성할 일이다. 그리고 루저라고 말한 여대생을 비난하고 사생활까지 까발린 일부 네티즌들도 분노하는 마음은 이해하지만 조금은 경솔했다. 위에서 지적한 두 가지 사건들은 모두 나와 생각이 다른 타인들에 대한 존중과 숙의熟議가 부족하여 문제가 되었다는 점에서 이후 타인과 함께 살기 위한 진지한 대화와 성찰의 공론장을 필요로 한다.

다행스럽게도 우리사회에는 타인을 부정하는 경솔함도 있지만 그것에 대비되는 진지한 대화와 성찰 및 숙의의 시간도 함께 자라나고 있어 희망을 주고 있다. 단적인 예가 지난 2008년부터 경희대학교 인류사회재건연구원과 한국의 대표적인 시민단체인 참여연대 국제위원회가 공동으로 기획하고 개최해온 <아시아포럼>이다. 특히, 올해 11월 19일(목)에 열린 <2009연중기획 아시아포럼 : 종합토론>은 2008년과 마찬가지로 지난 1년 동안 <아시아포럼>에서 다뤄왔던 많은 주제와 토론 내용을 종합하고 정리하는 시공간으로 기획되었다. 이 포럼은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지난 2년 동안 <아시아포럼>에 꾸준히 참여하거나 관심을 갖고 사랑해주었던 많은 분들의 열정과 헌신이 있었기에 자라나고 유지될 수 있었다. 특히, 필자 역시도 지난 시간 동안 관객으로만 쭉 참여해 오다가 올해 9월에 열린 ‘에너지 위기와 시민사회의 과제’에 사회자를 맡는 영광을 얻게 되어 기뻤다.

1강(3월) _ 초국가적 인간안보 문제와 아시아
2강(4월) _ 해적과 해양 테러리즘
3강(5월) _ 태국 국경거주 버마 난민들의 적응양상과 과제
4강(6월) _ 탈북여성의 제3국 체류현황 및 과제
5강(7월) _ 이주아동의 인권현황과 시민사회의 과제
6강(9월) _ 에너지 위기와 시민사회의 과제
7강(10월) _ 아시아의 식량위기와 시민사회의 대응
8강(11월) _ 종합토론

갈수록 늘어나는 초국가적 문제들
 <아시아포럼>은 지난 2008년에 아시아지역에 살고 있는 시민들에게 생활과 생존의 문제로 다가오고 있는 초국가적인 문제인 인간안보, 황사와 쓰나미와 같은 자연재해 문제, 그리고 마약, 인신매매와 같은 초국가적인 범죄, 사스와 조류독감 등과 같은 광역질병, 이주노동을 이슈로 다뤄왔다. 그리고 올해는 <국경, 아시아, 시민사회>라는 대 주제를 가지고 인간안보, 해적과 해양 테러리즘, 버마 난민문제, 탈북여성의 문제, 이주아동문제, 에너지위기, 식량위기를 다루어 왔다. 아마도 <아시아포럼>이 추구했던 것은 아시아의 초국가적인 문제를 깊이 인식하는 가운데, 그 해법을 찾기 위한 시민사회의 역할과 연대의 모색이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지난 1년 동안 <아시아포럼>의 취지는 얼마나 채워졌을까? 우리가 느끼고 확인했던 사항들 그리고 지적되고 고민되어야 할 것은 무엇일까? 많은 것들이 있겠지만, 우선 첫째로 확인해야 할 것은 초국가적인 이슈와 문제에 대응하는 아시아 시민사회의 수준과 능력에 대한 객관적인 진단이다. 이 문제는 포럼 때마다 매번 고정적으로 나온 질문들이다. 많은 토론자들은 아세안국민회의(APA ASEAN People’s Assembly), 아시아시민사회연대회의(SAPA Solidarity for Asian People’s Advocacy) 등 아시아시민사회도 존재하지만 지속적으로 늘어나고 있는 아시아 지역에 대한 관심에 비해 초국가적 이슈나 문제에 대해 연대와 공동협력사업의 진전은 매우 더디다고 지적하고 있다. 특히 한국 시민사회는 ‘아시아 바로 알기’, ‘아시아 제대로 알기 수준의 착한여행(Asian Bridge)’이 주종이라고 그 한계를 지적한다.

연대의 발걸음 더딘 한국 시민사회
둘째로 한국 시민사회가 초국가적인 아시아 문제에 대해 더딘 대응을 보여주는 배경은 무엇일까? 여러 가지 지적이 있을 수 있겠지만, 많은 토론자들은 아시아 지역과 아시아 시민사회에 대한 충분한 정보접근과 인식 부족 그리고 한국이 곧 아시아 지역이라는 인식과 정체성이 부족하기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왜 아시아로 시각을 돌려야 하나? 왜 아시아인가? 이러한 지적은 그동안 <아시아포럼>에서도 많이 나온 이야기이다. 왜 국내 문제도 힘겨운데 아시아의 초국가 문제에 대해 관심을 가져야 하고 초국가적으로 연대해야 하는 지에 대한 근본적인 물음들이다. 아마도 이 근본적인 물음은 이후 <아시아포럼>이 지속적으로 채워야 할 또 다른 과제일 것이다.

필자는 이 같은 물음에 대해 한나 아렌트로부터 약간의 힌트를 얻었다. 미국의 정치학자 한나 아렌트는 자신의 저서 『인간의 조건』에서 고대 그리스 시민들이 살아갔던 공적인 삶의 공간이었던 폴리스에 대해서, 폴리스는 단순히 지리적이고 물리적인 도시공간이 아니라 다양한 사람들이 말과 행위를 통해 자신의 개성을 드러냄으로써 열리고 발생하는 사람들의 ‘조직화된 기억체’라고 하였다. 즉, 폴리스는 다양한 사람들 사이에 말과 행위를 통해 공감으로 열리는 인식의 공동체로서 일종의 공론장 또는 휴먼 네크워크의 공간이다. 따라서 페르시아 침공 문제에 아테네를 중심으로 하여 스파르타, 테베 등의 폴리스들이 거대한 연합체를 맺어 대처한 ‘델로스 동맹’은 오늘날로 보면 미국의 연방제보다도 더 느슨하고 자율적 수준의 자유로운 ‘도시공동체 네트워크’로 볼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아렌트의 폴리스에 대한 설명과 침공 문제에 대응하는 ‘델로스 동맹’의 예는 오늘날 아시아의 초국가 이슈와 문제에 대응하는 국가와 시민사회의 대응으로 확대하여 ‘아시아’, ‘아시아연대’, ‘아시아포럼’ 등으로 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 아마도 이러한 컨셉을 독도영유권ㆍ일본과거사ㆍ동북공정 등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한국의 시민단체들이 동북아역사재단과 함께 2007부터 2009년까지 지속하고 있는 ‘세계NGO역사포럼’에 적용해 설명해보면 더욱 풍부하게 그것이 나아갈 방향성을 상상할 수 있을 것이다.

채진원 /경희대 정치학 강사 ccw7370@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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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너지 위기와 시민사회의 과제


세계 에너지 위기가 날로 심각해지고 있다. 인류가 생존하고 경제활동을 지속하기 위해서는 자원이 필요하다. 그러나 인간의 물질적 수요에 비하여 그것을 충족시켜주는 물적 공급은 상대적으로 부족하기 때문에 우리는 이것을 '희소자원'이라 한다. 에너지 위기를 우려하는 가장 근본적 원인은 희소한 에너지 자원에 있고 그 중심에는 석유가 있다.

지구촌 곳곳에서 유가 폭등으로 인한 시름이 깊어지는 가운데, 일각에서는 종전에 경험하지 못한 에너지 위기가 나타날 것이라는 주장까지 나오고 있다. 세계는 이미 몇 차례의 이와 같은 위기를 경험한 바 있지만, 그 대안은 지극히 피동적이고 소극적이었다. 국내에서도 물가 상승이 가시화되면서 경제성장률의 '성장'이란 표현 자체를 사용하기 무색할 정도가 된지 오래다. 문제는 이러한 현상들이 앞으로 우리가 겪게 될 변화를 고려해볼 때 시작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골드만삭스의 전문가들과 워싱턴, 런던, 싱가포르의 국제정치 전문가들이 작성한 2006년 초의 보고서에 의하면, 자원 확보경쟁은 세계에서 가장 큰 위협이 될 것이라 전망하고 있다. 혹자는 국제적인 자원 확보경쟁은 이미 제 2의 냉전 체제에 돌입했다고 보는 견해도 있다.

물론 자원을 둘러싼 가채연수의 산정이 자원의 희소성에서도 불구하고 정확한 자료를 우리에게 제공하고 있지 못한 것도 문제다. 아마도 이러한 불확실성과 부정확성이 자원전쟁의 심각성을 가중시키는 것이 아닌가하는 생각도 들게 한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세계경제에 있어 자원이 부족하고, 대규모 에너지 제공 국가가 하나라도 사라지게 되면 이는 다른 국가들이 그 손실을 벌충할 수 없다는 사실이다.

2008년 초 유가가 배럴당 100달러를 처음 돌파했을 때만 해도 유가 급등이 계속될 것이라고 보는 이들은 많지 않았다. 투기적 수요나 달러 약세 등으로 인한 거품으로 판단한 것이다. 그러나 고유가가 지속되자 그 원인을 근본적인 수급의 문제에서 찾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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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제르바이잔의 수도 바쿠의 유전. ⓒ로이터=뉴시스

세계 원유 생산은 2005년을 정점으로 2년 연속 0.36%씩 감소했다. 또한 국제원유시장에서는 수요 증가를 포함한 여러 요인들로 인해 가격이 빠르게 상승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자원공급을 늘리는 것이 어려워지는 '공급제약' 상황을 맞고 있다. 이런 공급 둔화는 향후 자원부족현상이 장기화될 것이라는 신호로 받아들일 수 있다.

이미 석유수출국기구(OPEC)의 생산은 줄었고, 북해(北海)유전과 멕시코유전도 생산량이 감소했다. 자원 민족주의의 대두와 부존자원이 적은 국가들 간의 치열한 자원 확보 경쟁, 대형 유전의 노후화, 석유 탐사 및 개발 비용의 상승 등이 공급 증대를 제약하고 있다. 더욱 우려스러운 점은 금속광물과 농산품도 공급이 수요를 충족시키고 있지 못하다는 점이다.

에너지 자원과 관련한 정보를 종합해보면, 2000년대 초중반을 기점으로 자원의 안정적인 공급시대는 끝났다고 판단된다. 아울러 과거 1970년대 석유파동 당시의 석유위기가 지정학적 불안에 따른 '공급차질' 때문이었다면, 앞으로 진행될 자원위기는 '공급제약'에서 비롯될 것이라는 점이 다르다.

이처럼 에너지 자원의 가격 상승 원인이 수요뿐만 아니라 공급의 문제이기 때문에 약간의 수요 충격에도 가격이 급등락하고 수시로 투기적 수요를 불러일으킬 가능성이 있다. 적어도 통화팽창에 따른 세계 경제의 성장이 둔화되고 있다는 현실에서 볼 때, 자원전쟁(오일쇼크)은 이미 시작됐다고 볼 수 있다.

에너지 자원 공급의 제약은 여러 경로를 통해 세계경제에 상당한 영향을 미칠 것이다. 세계경제의 중요한 패턴 변화는 첫째, 에너지 자원 공급 제약이 세계경제의 성장을 제약하여 세계경제의 장기 평균성장률이 하락할 것이란 점, 둘째, 성장활력이 제조업 국가 중심에서 자원보유국으로 이동할 것이라는 점이다.

에너지 문제에 대한 한국의 현황과 대응

문제는 한국이 에너지 자원의 위기에 매우 취약한 구조를 가지고 있다는 점이다. 에너지 자원의 대부분을 수입에 의존하다 보니, 에너지 자원 가격이 오르는 만큼 우리의 실질적인 소득은 감소하게 된다. 또한 세계적인 경기 침체의 여파 속에 한국 경제가 비록 예상보다 높은 성장세를 보이고 있기는 하지만 GDP성장률과 실질소득은 그리 낙관적이지 않다.

더욱이 한국의 산업구조는 생산 활동에 있어 다른 나라보다 많은 자원을 투입해야하는 특징을 가지고 있기에 에너지 의존도의 비중이 높은 것이 사실이다. 수출 중심의 경제 구조를 가진 한국의 경제에서 가격 경쟁력은 중요한 요인이 아닐 수 없다. 또한 에너지 절감과 투입 자본 대비 부가가치의 창출 면에서도 한국은 선진국보다 열세를 보이고 있다. 뿐만 아니라, 한국은 소득수준에 비해 상대적으로 에너지를 많이 소비하고 있다. 한국의 1인당 국민소득 수준은 31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30위인데, 1인당 에너지소비량은 9위를 기록하고 있고 에너지 효율도 매우 낮다.

그러나 한국의 문제가 화학과 철강 같은 자원 다소비형 산업의 비중이 높다는 것 자체에 있다기보다는 자원 투입 대비 부가가치 창출이 낮다는 점을 지적할 수 있다. 자원 투입이 많은 소재 산업의 고부가가치화와 지식 기반의 서비스 산업 비중을 높여 나가는 산업 구조의 일대 전환 및 녹색성장을 위한 구체적인 대안 제시가 어느 때보다 필요하다. 에너지 자원의 효율성 측면에서도 선진국 수준으로 개선되지 않는다면, 한국 경제는 산업경쟁력 상실의 위기에 노출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현재와 같은 산업구조가 지속된다면 한국은 지금보다 더 심각한 넛크래커(nut-cracker)상황에 빠질 수도 있다.

이를 위해서는 무엇보다 정부가 자원 가격을 왜곡하지 말아야 한다. 저렴한 가격은 절약하려는 인센티브를 떨어뜨리기 마련이다. 과거엔 정부가 외부 충격을 흡수하여 국내 산업을 보호하는 것도 의미가 있었지만, 이제는 가격이라는 신호를 통해 민간이 효과적인 자원 활용에 더 민감해지도록 유도해야 할 것이다.

에너지 자원 전쟁의 성격은 국가와 사회 그리고 개인이 모두 참여하는 총체전(total war)의 성격을 띠고 있다. 자원의 희소성은 앞으로 더욱 심화될 것이다. 정부는 고통스럽지만 시급한 상황을 국민들에게 솔직히 알리고 변화를 주도해 나가는 또 다른 '소통'의 과제에 유의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사회와 기업, 개인 등 경제주체들은 에너지 자원의 희소성 심화라는 불가피한 현실 적응에 보다 능동적이고 적극적으로 대처할 필요가 있다. 특히 대체 에너지 개발에 지혜와 노력을 경주하지 않으면 안 된다.

끝으로 우리가 고려해야 할 것은 이러한 총체전이 국가 이익이나 기업의 영리, 혹은 개인의 사적 이익을 목표로 해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적어도 과정은 총체전의 모습을 보일지라도 궁극의 목표는 인류와 세계를 위한 노력으로 귀결되어야 한다.

인간이 소비하는 에너지, 식량, 주택 등을 만들기 위해 자원을 생산하고 폐기물을 처리하는 데, 드는 비용을 토지로 환산한 '생태 발자국 지수(Ecological Footprint)'란 것이 있다. 선진국은 이미 지구가 감당해 낼 수 있는 기준을 25% 가량 초과한 반면, 후진국에서는 극심한 빈곤과 식량난으로 인해 각종 생물의 멸종을 걱정하고 있다. 지금 지구는 선진국과 후진국 양쪽으로부터 동시에 위협을 받고 있다. 인류가 지구의 적이 되어버렸지만 지구의 해결책 또한 인간만이 할 수 있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전가림 (호서대학교 교양학부 교수)

아시아포럼 6강을 소개합니다

주제 : 에너지 위기와 시민사회의 과제
발제 : 전가림 호서대학교 교양학부 교수
일시 : 2009년 9월 17일(목) 오후 4시 장소: 서울 경희대학교 네오르네상스 104호
문의 : 참여연대 국제연대위원회 차은하 간사 02-723-5051, silverway@pspd.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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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월 미국인 예토(John William Yetaw)가 인야호수를 건너 아웅산수찌(Aung San Suu Kyi) 자택에 무단으로 침입한 사건이 발생한 후 별다른 이유 없이 3개월 이상 끌어오던 가택연금 위반에 관한 법정 평결이 종료됐다. 무단가택침입 사건이 발생한 후 군부는 내년으로 예정된 총선에서 아웅산수찌를 배제하기 위해 그녀에게 실형을 선고할 것이라는 전망이 절대적이었고, 그 전망은 적중했다. 결과론적인 입장에서 볼 때 아웅산수찌의 가택연금 연장은 군부가 의도한 전략의 종착지이며, 무단가택침입이 발생하지 않았더라도 군부는 어떠한 방법이라도 동원해서 그녀의 정치적 활동을 제한했을 것이다.

아웅산수찌의 판결을 보면서 두 가지 생각이 들었다. 하나는 가택연금기간이며, 또 다른 하나는 국민들의 태도이다. 당초 아웅산수찌의 실형기간을 5년 정도로 예상했으나 군 최고지도자 땅쉐(Than Shwe)의 특별 명령에 따라 징역 3년과 강제노동형을 유예하고 18개월 가택연금이 결정됐다. 다시 말해 18개월이 지나면 아웅산수찌는 자유의 몸이 될 수 있지만, 그 기간 동안 군부는 그들이 의도하는 대로 군부정권을 항구화할 수 있는 정권을 출범시키고 이에 따른 법과 제도를 정비할 수 있다는 것이다. 세부적으로 보면 내년 3-4월에 총선을 실시한다는 정보가 유력할 경우 정권이양과 출범은 내년 내에 완료될 것으로 보인다.

물론 군부가 판단하여 18개월 이내 만족스런 성과를 거두지 못했을 경우 아웅산수찌에 대한 가택연금을 연장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총선이 완료된 상황에서 아웅산수찌의 가택연금을 연장하는 결정은 더 이상의 당위성을 찾을 수 없고, 정권이양기간 내에 권력배분의 상대적 피해자에 의한 내분이 조장될 수도 있다. 무엇보다도 반쪽짜리 총선에 대한 국제사회의 비난이 쇄도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에 군부의 부담은 더욱 클 것이다. 결국 군부는 아웅산수찌가 가택연금에 처해져 있는 기간 동안 새 정부를 구성하고 정권을 완전히 이양해야할 것이다. 반세기 가까이 군 지도자 중심의 사유화된 정치권력을 향유해온 버마 군부가 18개월이라는 상대적인 단시일 내에 총선의 후유증을 해결할 사후대책을 마련하고, 군 인사의 원내 진출에 관한 지침 등 갖가지 시행착오를 돌파하며 제도화된 정권을 창출할 수 있을까?

아웅산수찌가 인세인(Insein) 감옥에 수형되었다는 소식이 알려지자 시민들은 삼삼오오 인세인 감옥 주변에 앉아 있는 모습을 접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 중 어느 누구도 그녀에 관한 화제를 입에 올리거나 구호를 외치는 행위는 하지 않았다. 구금 기간이 소위 ‘8888’항쟁 21주년 기념일과 겹쳐져 새로운 민중봉기가 일어날 가능성이 조심스럽게 점쳐졌지만 현실화되지는 않았다. 대신 해외에 거주하는 버마국민들은 아웅산수찌의 수감부터 평결이 완료된 현재까지 버마군부를 강력히 비난하며, 아웅산수찌와 정치범들의 조건 없는 석방을 요구하고 있다. 고국의 민주화를 바라는 이들의 소망과 그것을 위한 열의를 평가절하하는 의도는 추호도 없지만 지난 20년간 있었던 시위가 군부 노선의 변화에 어떠한 영향을 끼쳤는가?

필자가 만난 운동가들 중 일부는 정권의 도덕성을 국제사회에 고발하는 일은 지속적으로 계승해야하기 때문에 시위를 멈출 수 없으며, 단기적으로 군부는 변하지 않기 때문에 인내를 갖고 먼 미래를 내다봐야한다고 역설했다. 또 어떤 운동가는 작년 초 군부가 석방한 일부 정치인들은 그들의 요구에 부흥한 것이라며 시위의 성과가 있다고 주장했다. 이들이 고국으로 돌아가지 않는 이유와 국민들이 선뜻 반정부 시위를 일으키지 않는 이유는 극악무도한 형법체계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라고 한다. 예토의 경우에도 총 7년의 실형 중 1년의 강제노역이 부과되었는데, 일반적으로 강제노동은 탄광, 산림벌채, 보석채굴 등 강도 높은 육체노동이 수반되며 노동과정에서 어떠한 인권도 보장되지 않는다.

국외에서 군부정권의 만행을 고발하는 용기와 군 당국이 자행하는 가혹한 형법체계의 두려움에서 갈등하는 버마국민은 현 상황을 대변한다. 아웅산수찌는 그녀가 쓴 책에서 암흑의 시기를 살고 있는 “두려움”(Fear)을 이겨내는 것이 진정한 인간발전의 시작이라고 주장했다. 필자가 보기에 미얀마에는 아웅산수찌가 말한 군부에 대한 국민의 두려움과 국민에 대한 군부의 두려움이 상존하는데, 후자의 경우는 시간이 지날수록 그 수위가 더 높아지는 것 같다. 일례로 7월 30일자 미얀마의 빛(New Light of Myanmar)에는 국민들의 시위를 두려워하는 군부의 입장이 역설적 기법으로 게재되었다.

아웅산수찌가 국내외적으로 추앙받는 인물이 된 이유는 그녀의 민주화 운동 치적과 굴복하지 않는 저항정신일 것이다. 그러나 그녀가 다른 민주화 운동가와 차별화되는 이유 중 하나는 군부통치의 두려움을 이겨낸 버마국민 중의 한 사람이기 때문은 아니었을까? 그래서 군부도 그녀를 두려워하고 있지 않은가!

장준영(부산외대 미얀마어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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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on't say goodbye, say see you later.”

이 말은 저와 16명의 친구들이 태국에 있는 버마 난민캠프 중 하나인 멜라우 캠프에 며칠간 머물다 떠나던 날, 한 버마 친구가 저희에게 해 준 말입니다. 군부독재 때문에 고향에서 쫓겨나 난민촌에서 살고 있으면서도 이 친구는 오히려 희망을 잃지 않았고, 아무 생각 없이 영영 헤어질 것처럼 goodbye를 말하던 저희를 부끄럽게 했습니다. 그제야 see you later를 말하면서 다짐했습니다. 꼭 다시 만나자고.  그리고 그 때까지 절대 잊지 않고 힘닿는 대로 버마의 민주화를 위해 노력하겠다고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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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우학교에는 고 1 학생들이  일본, 베트남, 필리핀, 태국 등 아시아의 문제를 주제로 여행을 가는 해외통합기행이라는 프로그램이 있습니다. 저는 버마의 민주화를 주제로 올해 1월 버마와 태국의 국경도시인 메솟에 다녀왔습니다

8월 8일이 무슨 날인지 알고 계신가요? 버마 사람들에게 8월 8일은 5월18일이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갖는 의미와 비슷합니다. 1988년 8월 8일 버마에서는 대대적인 민중항쟁이 일어났습니다. 몇 십만, 몇 백만의 사람들이 거리로 쏟아져 나왔지만 무자비한 군부의 총칼 앞에 쓰러져 갔습니다. 우리나라는 불완전하나마 민주주의를 이루었지만 버마에서는 아직도 군부독재가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 멜라우 캠프의 아이들
 
 
메솟에 다녀온 뒤로 버마의 민주화를 위해 뭔가 해야겠다는 막연한 마음만 갖고 있었을 뿐, 정작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고민 중이던 친구들이 모여 얘기를 해보던 차에, 마웅저 선생님께서 8월 8일을 위한 기념행사를 여는 게 어떻겠냐는 제안을 하셨습니다. 그때부터 버마를 다녀왔던 저희는 바쁘게 준비를 시작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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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위대를 제압하는 군인  

저희가 기획했던 행사는 크게 버마 아이들이 그린 그림, 특히 버마 아이들의 꿈을 그린 그림들을 전시하는 것, 방문했던 학교 중 사정이 어려웠던 사무터(Hsa Mu Htaw) 학교를 위한 모금, 버마의 상황과 8888민중항쟁에 대해 알리는 피켓과 사진 전시, 그리고 아직도 줄어들지 않고 있는 버마 내 정치범 석방을 위한 서명운동이었습니다. 서명운동은 특히 학교 내에 있는 엠네스티 동아리 친구들이 준비해주었습니다.

8월 8일 아침, 행사 전에 버마 대사관 앞에서 열렸던 기자회견에 참가했습니다. 조금 떨어진 곳에서부터 피켓을 들고 올라가면서 행진을 시작했습니다. 기자회견 중에 여러 사람들이 발언을 이어갔습니다. 한 가지 당황스러웠던 것은 기자회견이 시작되기도 전에 버마 대사관이 있는 골목에 경찰버스가 저지선을 쳐놓고 있었습니다. 저희는 대사관 앞으로 갈 수 없었습니다. 다행히 큰 충돌없이 기자회견은 끝났지만 분명 긴장감이 감도는 순간들이었습니다. 우리나라와 직접적으로 관련이 없는 버마문제인데 경찰이 이정도로 막을 필요가 있을지 답답한 심정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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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회견이 끝나고 나서

기자회견이 끝나고 저희는 준비한 행사를 하기 위해 명동 예술극장 앞으로 이동했습니다. 마침 그 날 극장 앞에서 다른 행사가 있을 예정이었습니다. 그래서 공간 사용문제를 놓고 잠시 실랑이가 벌어졌습니다. 하지만 곧 천막을 치고 준비해온 그림, 사진, 피켓 등을 전시했습니다.
 
마웅저 선생님은 이 행사와 관련해서 저희를 가장 많이 도와주신 분입니다. 이분 초청으로 온 버마 이주민들, 한국 시민단체에서 오신 활동가들, 몇몇 기자들까지 합세해 도움을 주었습니다. 저희와 버마분들이 준비해 온 피켓과 사진들로 볼거리가 많은 전시회였습니다. 전시를 해 놓고 막상 사람들에게 홍보를 하기 위해 마이크를 쥐었을 때는 제대로 말도 못하고 우물거려 창피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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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성된 부스 풍경 / 서명하는 시민들

이를 만회하기 위해서 다른 친구들과 함께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열심히 서명용지를 들이대며 “안녕하세요, 버마에 대해 들어 보셨어요?”를 반복했습니다. 눈조차 마주치려 하지 않고 지나가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좋은 일 하시네요.’ 하면서 기꺼이 서명해주고 가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사실 열번 거절에 하나의 서명을 받는 정도였지만 회의감이 들지는 않았습니다. 이렇게라도 사람들이 버마라는 이름을 한 번이라도 듣게 되고, 개중 몇 명은 버마의 상황까지도 알게 된다면 그 자체로 의미가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다 보니 어느덧 시간이 훌쩍 지나 정리할 때가 되었습니다. 부산하게 천막을 걷고 그림들을 떼어내며 도와주신 분들께 감사 인사를 했습니다. 날은 찌는 듯이 더웠지만 그 와중에도 서로 눈을 마주칠 때마다 웃었던 사람들, 서명을 받던 도중에도 눈에 들어오던 버마 아이들의 그림, 행사를 진행하던 도중에 천막 앞에서 굳이 찬송가를 불러야겠다던 ‘예수천국불신지옥‘ 분들과의 실랑이까지도 잊지 못할 일들 입니다.

적자를 예상하고 시작한 행사였지만 의외로 꽤 많은 돈이 모금되었습니다. 180여명의 분들이 버마 정치범들의 석방을 위해 서명해주었습니다. 2시간 동안의 짧다면 짧은 행사였지만 이제 see you later를 말하던 버마친구를 생각할 때마다 느꼈던 마음의 짐을 조금은 덜 수 있을거 같습니다. 

성지윤 (이우고등학교 2학년)


 

[기자회견문] 버마 8888 민주 항쟁21주년 공동 성명
오늘은1988년 8월 8일 발생한 버마의8888민주 항쟁 21주년이 되는 날입니다.
이 민주항쟁으로26년 간 지속되던 버마의 억압적 전체주의 체제는 완전히 무너졌습니다. 동시에 이를 계기로 버마 민주주의 지도자인 아웅 산 수지 여사와 제1 정당인 NLD, 그리고 여러 정당과 국민회의 대표 위원회, 88세대 학생지도자와 특히 역사에서 결코 지울 수 없는 1990년의 총선 결과가 탄생되었습니다. 그러나 연방국가 설립에 대한 국민들의 여망은 아직도 실현되지 않고 있습니다.

현 군부체제는 지금도 버마 역사상 전례 없는 인권 남용 뿐 아니라 소수민족에 대한 대량 살육을 자행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아웅 산 수지 여사를 비롯하여 학생 지도자들, 우 쿤 툰 우 소수민족 지도자 등 2100명이 넘는 정치 수감자들을 불법적으로 구금하고 장기형판결을 내렸습니다. 또 정치문제를 평화적으로 해결하고 1990년 5월에 거행된 총선 결과를 자유롭고 공정하게 처리하기 위한 진정한 대화 권고를 아예 묵살해 버렸습니다. 게다가 자신들의 영구 집권을 위해 국민들의 의지에 반하는 일방적인 초안 헌법을 강제적으로 승인시켰습니다. 더욱이 군부는 이제 2010년 또 다른 총선을 실시하려고 준비하고 있습니다.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이 7월3일과 4일 버마를 방문하여 군부지도자를 만나 아웅 산 수지 여사를 비롯 모든 정치 수감자들의 즉각적 석방과 국민화합을 위한 정치적 대화 실시를 요구했으나 탄 쉐 군부대표는 어떤 명시적 약속도 하지 않았으며 아웅 산 수지여사와의 접촉도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반기문 총장은 실망하여 “나는 버마 정부가 버마 정치에서 새로운 장을 열겠다는 약속을 증명할 유일한 기회를 잃어버렸다고 생각한다 ” 고 발표 했습니다. 사실 군부의 이 같은 대응은 국제사회에 대해서도 오만하고 무례한 모욕을 가한것 입니다.

아웅 산 수지 여사는 2003년 5월 30일 디페인 대학살 사건으로 감금 된 지 6년이 되는 올해 5월 말에는 무조건적으로 석방되어야 합니다. 그러나 군부는 아웅 산 수지 여사를 석방하기는커녕 그녀의 집을 침입한 외국인 때문에 가택연금법을 어겼다는 죄목으로 그녀를 체포했습니다. 노벨 평화상 수상자인 아웅 산 수지 여사는 버마의 국가 화해를 위한 정치 대화를 요구해왔습니다. 버마 국민들에게 여사는 단지 국민지도자만이 아니라 민주주의의 희망이자 빛입니다. 그래서 여사에 대한 불법 구금과 투옥은 민주주의 운동에 대한 사형 선고나 같고, 국제사회에 대한 뻔뻔스러운 도전이나 다름없습니다. 아웅 산 수지 여사는 “이번 체포 사건이 버마의 법 존재 여부의 판정 사례가 될 것이다”고 언급했습니다. 판결은 8월 11일 내려질 예정인데, 만일 군부가 사법적 권한을 오용하여 아웅 산 수지 여사에 대해 불법적 투옥을 선고한다면 단연코 이득 대신 더 가혹한 결과를 얻을 것입니다. 또 국민들의 힘이 총구의 위협 아래 그들 뜻대로 따르고 있는 것보다 훨씬 더 강하다는 것을 곧 이해할 것입니다.

만일 우리가 버마 국민들의 이익과 존엄성에 기반을 두어 진정한 평화적 대화를 한다면 어떤 것이든 해결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한국에서 버마 민주주의를 위해 투쟁하는 우리는 지속적으로 버마 민주주의를 지지하는 한국의 시민사회와 함께 버마 군부에 대해 다음과 같이 강력하게 요구합니다.
하나, 불법 재판을 앞두고 있는 아웅 산 수지여사와 모든 양심수들을 즉각 석방하라.
하나, 국민 화합을 위해 NLD, 소수민족 지도자들과 진정한 대화를 실시하고 가능한 한 정해진 시한 안에 민주주의 전환 과정을 이행하라.  

2009년 8월 8일 토요일
송영길 (최고 위원,민주당), 윤병국(부천시의원),신철영(전 국민고충처리위원회위원장), 김규환, 서헌성, 정용인Weekly 경향기자,국 제 민주연대, 군산참여자치 군산시민연대, 나와 우리, 경계를 넘어, 대학생 나눔 문화, Kuki Students Democratic Front (Korea Branch),민족 민주동맹(자유지역) 한국지부, 민주화 실천 가족 운동협의회, 버마 민주화를 지원하는 모임, 버마민주화와난민교육지원을위한부천시민모임, 버마를 사랑하는 작가들 모임, 부천시민연합, 새 사회연대, 서울외국인노동자센터, 부천외국인노동자의집, 아시아의친구들, 5.18 기념 재단, 외국인 이주 노동자 인권을 위한 모임, 인권실천시민연대, 제주평화인권센터, 참여예산부천시민네트워크, Chin National Community (Korea), Karen Youth Organization (Korea Branch), 평화행동 한걸음더(광주), 풀뿌리 부천자치연대, 피난처, 함께하는 시민행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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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27일 한국이주여성인권센터에서 (가)성·인종 차별 대책위원회 결성 기자회견이 열렸다. 미디어법이 직권상정되어 처리된 이후 정신없는 정국에서 인종차별 문제가 매우 생뚱맞아 보여 사회적으로 여론화 될 수 있을지 조금 걱정이 되던 차였다. 이러한 기우는 2시간동안 여러 기자 및 관계자들의 열띤 질의, 응답 속에 잊혀 갔다.

기자회견은 최근 인도인 보노짓 후세인 씨(성공회대 민주주의연구소 연구원·아시아대안교류회 ARENA 간사)와 한국 여성이 당한 인종 차별적 사건을 계기로 한국사회에서 빈번하게 발생하는 인종차별적 사례를 공론화하는 자리였다.

7월 10일 보노짓과 옛 동료인 한국여성은 버스 안에서 대화를 하고 있었다. 버스를 함께 타고 있던 한국 남성은 “더러워 너, 이 XXX야.”, “너 어디서 왔어, you Arab!” 하며 보노짓에게 심한 모욕을 줬다. 이를 저지하려던 한국 여성에게도  “새까만 OO와 사귀니 좋으냐” “조선O 맞느냐?”는 등의 인종차별적이고 모욕적인 말을 계속했다. 보노짓과 한국여성은 그를 경찰서에 신고를 했다. 그러나 그의 행패는 경찰서에 가서도 이어졌다. 이 사건을 맡았던 경찰도 이를 저지하거나 적극적인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현재 보노짓씨는 한국남자를 고소한 상태이며 국가인권위원회도 사건 조사를 요청하기 위해 진정절차를  밟고 있다.

보노짓씨는 자신의 사건을 한국 동료들과 이야기 하다보면 거의 대부분 동정적인 시각에서 운이 나빴던 사건으로 본다는 것이다. 이주민들에게 일상에서 은근하게 이루어지는 언어적, 신체적 인종차별을 보면 본인이 겪은 사건은 조금 심했을 뿐 특별한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앞으로 한국 사회에 이주민들의 규모가 커질 수밖에 없는 현실에서 사회적인 인종차별 구조는 이주민보다는 한국이 풀어야할 숙제라는 것이다.  

이날 기자회견에 참석한 콩고인 토나 이욤비씨(한국 난민 지위 획득)도 한국에서 체류하면서 가족이 겪는 인종적 차별 실태를 고발했다. 한국정부의 난민 지위를 획득했다는 것은 한국인과 거의 비슷한 수준의 사회적 권리를 인정받았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그는 본인 명의로 휴대폰을 구매할 수 없다. 한국 학교에 다니는 자식들은 아이들에게 “몽키(원숭이)”라며 왕따를 당하고 있다고 한다. 한국은 선진국 수준의 경제 규모에 비해 사회적 인식과 구조는 낮아 보인다는 것이다. 그는 한국이 난민협약을 통해 피부색과 국경에 상관없이 이주민을 동등한 시민으로 인정하겠다고 국제사회에 약속을 했다면 한국사회는 진정으로 인간에 대한 존중과 돌봄을 사회 구조적으로 갖추기 위해 노력해야 하다고 말했다.

이번 보노짓씨 사건을 통해 한국 내 인종차별 문제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형성되었다. 더 이상 국내 이주민들이 겪는 차별이 개별적이고 우발적인 사건이 아니라는 공동의 함의가 있었기 때문이다. 특히 인종차별문제는 한국 시민사회조차 적극적으로 제기한 적이 없다는 점에서 시민사회가 먼저 성찰하고 공동의 실천을 모색해야 할 때이다.

(가칭) 성·인종 차별 대책위 기자회견문
- 입장과 활동계획 -

1. 한국 사회의 성·인종차별

동남아시아 및 아프리카 출신 이주자들에 대한 인종차별적 행동 및 공격이 한국에서 상당히 많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대다수 이주자들은 취약한 한국 내 지위 때문에 이러한 인종차별의 문제를 일상적으로 받아들이거나 아니면 개인의 삶 속에서 작은 방식으로 저항할 수밖에 없습니다. 모든 이주자들 같은 경험을 하는 것은 아니며 출신국의 경제적 상황, 출신국에 대한 한국 사회의 편견, 피부색, 한국 사회에서 차지하는 지위와 직업에 따라 매우 다르게 나타나고 있습니다. 차별받는 이주자들의 수많은 이야기들은, 신분과 계급, 백인-서구 숭배 등 세계를 우열관계로 보는 다양한 차별의식이 인종주의와 결합될 때 얼마나 배타적이고 공격적으로 드러나는 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러한 인종주의적 공격은 한국에 유학 온 학생이나 연구자에게도 빈번히 일어나고 있는데, 최근에 부천의 한 버스에서 한 한국인이 인도인 보노짓 후세인과 같이 동행한 한국인 여성에게 인종차별적이고 성차별적인 욕설을 퍼부었던 사례에서도 드러납니다. 더욱 큰 문제는 경찰서에서 역시 이들이 성차별적이고 인종차별적인 대우를 받았다는 것입니다 (자세한 내용은 사실관계 진술자료 참조, 첨부).

이는 가장 반인권적이고 혐오스러운 차별이념의 하나인 인종주의가 한국 사회의 큰 문제로 자리 잡았고 그 피해의 정도와 심각성이 큰 반면, 이에 대한 각성이나 공론화, 경찰 등 인권관련 기관의 의식이나 대책이 매우 미흡하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또 이 사건에서처럼 인종주의는 성차별, 가부장적 가치와 결합해 더욱 공격적으로 나타나는데 이에 대한 관심과 대책 역시 심각하게 부족합니다. 더구나 최근 인권기준과 인권보호제도가 크게 후퇴하고 있는 상황에서 인종주의와 성차별이 결합된 차별과 공격의 피해가 더욱 우려됩니다.

이러한 공격은 소위 ‘백인’으로 간주되는 사람들과 소위 ‘백인’과 함께 있는 한국인들에게는 거의 일어나지 않는다는 면에서, 그리고 소위 ‘노동자’로 간주되는 사람들에게 더 공격적으로 나타난다는 면에서, 외국인혐오를 넘어서서 한국 사회의 근저에 자리잡고 있는 다양한 차별이 인종주의와 적극적으로 결합하는 양상을 보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더욱 심각한 문제라고 할 수 있습니다.
 
현재 한국 사회 내에서 다양한 차원에서 이주자에 대한 인종 차별이 광범위하게 이루어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에 관한 문제가 제대로 가시화, 공론화되지 못한 것에 대해 한국 시민사회는 반성적 성찰을 하고 경종을 울려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보노짓 후세인씨와 동행한 사람이 겪은 사건은 숨겨져 있는 커다란 빙산의 일각에 불과합니다. 쉽게 도움이나 관심을 촉구하지조차 못하는 사람들이 훨씬 많습니다. 때문에 이주자 사회와 제한된 사람들에게만 알려진 이러한 성·인종차별 사례와 상황을 체계적으로 조사하고 알릴 필요가 있으며, 아울러 조속히 피해자에 대한 지원과 정책적 대안을 포함하는 대책활동을 시작해야 합니다.

좀 뒤늦은 느낌이 있지만 이러한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한국에서 인종차별의 문제가 시민사회 내에서 중요한 의제로 설정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며 특히 한국 사회의 특성상 긴밀한 관련을 갖고 있는 성차별과 인종차별을 동시에 제기하는 공동 대책과 실천이 필요합니다.


2. (가칭) 성·인종차별 대책위원회의 결성과 활동
 
이러한 성차별적, 인종주의적 차별과 공격에 대응하기 위하여, 2009년 7월 27일 인권, 이주, 난민, 민주주의, 아시아연대와 관련하여 활동을 전개하는 시민·사회단체와 이번 사건 당사자가 소속된 성공회대학과 아레나(아시아대안교류회)는, 동의하는 단체와 개인들과 함께 성·인종차별에 대항하는 공동대책기구를 결성합니다.

(가칭) 성·인종차별 대책위원회는 다음과 같은 활동목표를 세우고 뜻을 같이 하는 단체와 개인들을 계속 초청하여 함께함으로서 목표 맞는 다양한 활동을 시작하고자 합니다.

대책위의 활동 목표와 계획

1. 가시화되지 않은 인종차별 피해자의 목소리와 피해를 가시화하고, 연대와 지원을 제공하며, 인종차별에 관한 정보와 자료를 축적하고 공유한다.

2. 토론회, 직접행동, 언론기고, 기자회견 및 다양한 활동을 인종차별 문제를 대중화하는 캠페인을 전개한다.

3. 인종주의와 계급차별 그리고 가부장제가 서로 연결되어 작동하고 있음을 부각시킨다.

4. 성·인종차별 상황을 종합 정리하여 유엔인권이사회 정례보고서 등 한국 인권상황 보고서에 포함시킨다.

5. 외국인과 이주자를 고용·초청·상대하는 모든 기관에 성·인종차별에 대한 대책과 절차를 세우고, 이를 기관 내에 교육 등을 통해 공론화, 제도화할 것을 요구한다.

6. 시민·사회단체, 학교, 교육기관 등의 프로그램에 인종차별문제가 중요하게 포함되도록 공론화하고 협의한다.

7. 인종차별 문제를 다른 형태의 차별과 연결시켜 대응함으로써 향후 차별 방지와 관련된 법제정의 기초가 되도록 한다.

대책위원회는 또한 보노짓 후세인과 동행한 한국인에 대한 가해사건에 대해서는, 가해자의 사법처리와 경찰 행위의 적절성에 관한 국가인권위원회 조사를 동시에 요구할 것이며, 조사에 따라 성·인종차별 해당 경찰관 징계 조치와 관할 경찰 책임자의 사과를 요구할 것입니다. 또 다른 유사한 침해사실을 조사할 것이며, 이를 위하여 알려진 사건을 언론 기고와 여러 방법으로 적극적으로 공론화할 것입니다.

○ 참가단체 및 개인 (가나다순) (* 개인 참가자는 계속 확인중입니다)
강서양천이주여성의집, 공익변호사그룹 공감, 국제민주연대, 다문화가족문화협회, 마하이주민지원단체협의회, 민주주의연구소, 보노짓 후세인(성공회대 연구원), 부산여성회, 서울외국인노동자센터, 성공회대학교, 수원여성의전화, 아레나(아시아대안교류회), 아시아의 친구들, 언니네트워크, 외국인이주·노동운동협의회, 이주노동자노동조합, 이주노동자의 방송(MWTV), 인천여성의전화, 조희연 (성공회대 통합대학원장), 조효제(성공회대학 사회학), KASAMMA KO(필리핀이주공동체), The HanFil Association(한-필 결혼이주자협회), 토나 이욤비(콩고, 난민), 한국이주여성인권센터 (대구이주여성인권센터, 부산이주여성인권센터, 전남이주여성인권센터, 전북이주여성인권센터, 충북이주여성인권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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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구르망명 지도자 레비야 카디르가 현재(7/30) 일본을 방문하고 있습니다. 그녀는 위구르인들의 독립운동의 대모이며 노벨평화상 후보로 거론되기도 했습니다. 카디르는 지난 7월 중국 신장 위구르 사태이후 1만여 명에 이르는 위구르인들이 행방불명됐다고 주장하고 일본을 포함해 국제사회의 관심을 요청했습니다. 반면 중국정부는 카디르의 방일을 허용한 일본 정부에 반발하면서 외교적 갈등을 빚고 있습니다.

중국정부가 이렇게 민감하게 반응하는 7월 위구르 소수민족의 유혈사태는 과연 무엇이었을까요? 중국으로부터 분리독립을 요구하는 소수민족 위구르인 유혈사태를 짧게 정리합니다.

중국 제2의 화약고- 중국 신장 위구르 자치구

7월 6일 중국 신장 위구르 자치구 우루무치에서 유혈 사태가 발생했다. 누얼 바이커리 신장 위구르 자치구 주석은 무슬림계 소수민족 1천여 명이 참석한 이번 사태로 인해 197명이 숨지고 1천 7백명이 부상했다고 전했다.(7월 18일 기준) 또한 버스 190대와 택시 10여대가 파손되는 등 많은 재산 피해가 난 것으로 알려졌다.
 
신장 위구르 지역에서 유혈 충돌이 일어난 것은 2008년 8월 경찰 17명이 사망한 카쉬가르 테러 공격 이후 처음 있는 일이다. 티베트와 함께 소수민족의 저항이 가장 강한 위구르 자치구에서 대규모 유혈 사태가 일어남에 따라 이 지역의 긴장감이 커지고 있다.

이번 유혈 사태의 도화선은 6월 26일 광둥성에서 벌어진 위구르족과 한족의 집단 패싸움이었다. 현지 공장의 한족 여종업원들이 위구르인들에게 성폭행 당했다는 소문이 퍼지면서 한족들이 위구르인을 공격하여 위구르인 2명이 숨지고 100여 명이 다쳤다. 이 때문에 성난 위구르 시위대는 한족 주민들과 심각하게 대치했다. 위구르의 이번 대규모 유혈시위는 중국 당국의 신속한 진압작전으로 표면상으로는 진정된 상태이지만 여전히 불안 요소가 남아있다.

분리독립을 요구하는 대규모 유혈시위가 발생한 중국 신장 위구르 자치구는 티베트에 이어 중국 제2의 화약고로 불린다. 지난 744년부터 100년 제국을 누려온 위구르족은 티베트인들과 마찬가지로 1949년 신중국 건국 이후 끊임없이 분리-독립을 요구하는 시위나 봉기를 일으켜왔다. 이에 맞서 중국은 지정학적으로 중요한 전략적 요충지일 뿐만 아니라 석유와 천연가스가 풍부한 신장 위구르 자치구에 한족을 계속 이주시키며 민족 동화정책을 펼치고 있다. 따라서 우루무치에 거주하는 한족 대부분은 중국 정부의 '변경 안정화' 정책에 따라 광활한 면적과 막대한 천연 자원이 묻힌 신장 위구르 지역을 관리하기 위해 대량으로 이주한 사람들이다.

위구르인들은 이슬람교를 믿고 유럽인에 가까운 코카서스 인종으로 중국 내 소수 민족들 중에서도 가장 이질적이다. 위구르인들은 분리-독립을 요구하며 한족과 끊임없이 대립해왔다. 여기에는 위구르 자치구의 막대한 개발 이익을 한족 이주민들이 독점하면서 하층민으로 대부분 살이가는 위구르인들의 불만이 갈등의 주요한 요인이다.  

위구르족은 10여개의 무장 독립운동 단체를 결성하고 분리-독립운동을 해왔다. 위구르족의 분리-독립운동은 중국화를 강요당한 지난 1956년부터 본격화됐다. 특히 1996년에는 중국 공안들이 위구르족 분리주의자 검거에 나서면서 위구르족 분리주의자 5만 7천여명이 구속되었고 이 중 1천 7백여명이 처형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1997년에는 위구르족과 한족의 유혈사태가 발생해 100여명이 사망했으며 우루무치와 베이징 시내에서 버스 폭탄 테러 사건이 발생하기도 했다. 위구르족의 분리독립주의자들의 궁극적인 목적은 이슬람교를 바탕으로 주변의 우즈베키스탄, 타지키스탄 등과 연대해 ‘투르크인의 땅’인 동투르키스탄공화국을 수립하는 것이다.

티베트와 달리 위구르족의 분리독립운동은 국제적으로 알려지지 않았다. 그러한 측면에서 위구르인들은 다른 지역의 분리독립운동에 비해 폭력적인 양상을 가지고 있다. 실제로 신화통신에 따르면 중국 공안들은 2007년 1월 5일 파미르고원 산악지대에서 동투르키스탄이슬람운동(ETIM) 테러훈련기지를 급습해 18명의 테러분자를 사살하고 17명을 체포했다고 밝혔다. 또한 2008 베이징올림픽 개막을 나흘 앞둔 지난해 8월4일 위구르족 테러분자들이 카스에서 중국 무장경찰을 향해 수류탄을 던져 16명이 사망하자 중국 전역에 비상이 걸리기도 했다고 한다.

중국 전문가들은 “위구르족의 폭력적인 분리독립운동에도 불구하고 중국이 신장지역을 순순히 양보할 가능성이 거의 없다. 따라서 신장지역의 분리독립은 낙관하기 어렵다”고 말한다. 이들은 “신장위구르자치구 분리독립을 허용하는 것은 연쇄 효과를 일으켜 티베트 등 다른 지역의 분리독립을 부추기며 중국의 분열이라는 엄청난 재앙을 초래할 것”이라고 전한다.

정리: 장우식 국제연대위원회 자원활동가


[참고] 티베트 문제를 통해 본 중국 민족주의와 인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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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아동의 인권현황과 시민사회의 과제> 참가 후기

평소 이주노동자와 다문화 정책에 대해선 비교적 많은 관심이 있었던 나이지만, 이주아동 문제는 상당히 생소한 주제였고 일반 대중들도 다를 바가 없을 것 같다는 것이 나의 짧은 소견이다. 이번에 참여연대와 경희 대학교 인류사회재건연구소에서 공동 주최한 포럼은 그런 의미에서 특별히 다가왔다.

왜 이주노동자들에겐 2세들이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미처 못했을까?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인데도 이렇게 3만 명이 넘는 미등록 이주아동이 방치된 채 우리땅에 존재한다는 사실을 수치로 접하고 나서야 실감이 났다.

김성천 중앙대 아동복지학과 교수는 자신이 직접 진행한 연구에 대해서 발표하시는 방식으로 이주아동의 실태에 대해서 알려주었는데 참으로 충격적이었다. 우리나라는 엄연히 이주노동자들의 자녀인 아동들을 보호할 의무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간과하고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있는 게 현실이다.

유엔아동권리협약에 의하면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한국에서 살게 된 미등록 이주아동들은 “불법자로 분류될 수 없으며 부모의 신분에 상관없이 아동의 체류권, 보호권 등을 보장받아야 하는 신분” 이라고 한다. 따라서 미국이나 일본 등 다른 많은 유엔가입국가들은 이를 수행하고 있는 데에 비해 우리나라에선 이 협약은 현실적으로 실현되기 어렵다는 것이 정치권이나 일반 시민의 시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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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우리나라 사람들도 먹고 살기 힘들고 우리 아동들도 제대로 교육받고 보호받지 못하는 것이 현실이다. 하지만 요즘 같은 세계화 시대에 우리 나라는 점점 다문화 국가로의 변화를 자의든 타의든 맞고 있으며 따라서 이주아동들도 국제결혼을 통해 태어난 ‘코시안’ 아동들처럼 숙명적으로 우리에게 안겨진 숙제인 것이다. 그들을 ‘우리’로 껴안아 당장은 힘들어도 같이 갈 것인가, 그래서 가까운 미래에 그들을 우리 사회 속에서 건강하게 기능하는 구성원으로 키워낼 것인가, 아니면 지금처럼 비참하게 방치해 둘 것인가 하는 것은 우리의 선택에 달려있다.

김성찬 교수는 이들을 방치해둘 경우 자아정체성에 악영향을 끼쳐 우리가 무시하고 싶어도 무시할 수 없는 일이 벌어질지도 모른다고 경고하였다. (예, 폭동) 또한 신분증을 발급해 사회구성원으로써 기여하고 활동할 수 있게 책임과 의무를 동시에 부여하는 것이 사회전체를 보아도 바람직한 일임에 틀림없다.

뒤를 이어 실제로 성동외국인근로자센터 다문화 팀에서 활동하고 있는 신혜영 선생님의 경험담은 이주 아동들이 얼마나 힘들게 한국생활을 하고 있는지 생생히 전해주었다. 일단 그 아이들은 우리로써는 상상할 수 없는 다양한 문제에 시달리고 있었다. 부모의 신분과는 상관없이 취학아동에게 교육을 제공하는 미국과는 달리 우리나라에서 이들은 배움의 권리조차 제대로 누리고 있지 못했다.

법으로는 된다 하면서 학교장 개인의 권리에 맡겨두니 인자한 교장을 만날 경우엔 운 좋게 입학하지만 그렇지 않을 경우엔 입학조차 못하고 집에서 방치된다고 한다. 또한 설사 어렵사리 학교에 입학한다고 해도 한국어를 구사하는 집안 어른이 없어 온갖 가정 대소사에 동원되니 학업에 집중할 수가 없고, 학교에서 수업을 받는 시간 동안엔 소외, 차별, 문화적 충격에 시달린다. 모친, 부친이 차례로 강제추방 당할 경우 우려되는 정신적 충격과 트라우마에 노출되어 있었으며 특히 한국에서 태어난 아동일 경우엔 부모의 나라에도, 한국에도 속하지 못한다는 정체성 혼란마저 가중되어서 큰 문제라고 한다.

신혜영 선생님이 전하는 바에 의하면 이주아동들은 많은 것을 바라는 것이 아니라 자기 개발과 직업 전선에 뛰어들 수 있는 교육 프로그램을 간절히 원하고 있다고 한다. 다른 나라에서 ESL반등을 개설해 현지 언어를 습득케하고 설사 부모가 불법체류자라 해도 부모의 법적인 신분과는 별개로 미성년자인 아동들을 보호하고 배움의 기회를 제공하고 있는다는 사실만 봐도 이런 처우가 낭만적인 온정에서 우러난 인도주의적인 정책만은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할 것이다. 조금만 장기적으로 봐도 전체 사회의 안정, 치안, 발전을 위해서 이들을 껴안고 가는 것은 결국 우리가 가야 할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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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이곳에는 고등학생, 대학생, 사회교사님들 등 이주아동 문제에 대해 관심을 갖고 있는 다양한 사람들이 참석했는데, 그 사실만으로도 아직 우리 사회엔 희망이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관심 하나 하나가 모여서 언젠간 우리나라도 다른 국가들처럼 이주아동들이 꿈을 펼칠 수 있는 희망과 건강하게 성장할만한 환경을 제공할 수 있을 것이다.

최신우 (국제연대위원회 자원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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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카르타에서 관전한 대통령 선거


지난 7월 8일, 인도네시아에서 대통령 선거가 평화적으로 수행되었다. 독재자 수하르토가 1998년에 물러나면서 시작된 인도네시아의 민주화는 1999년의 자유총선과 2004년 사상 최초의 대통령 직접선거를 치르면서 벅찬 과제를 잘 풀어왔고 이번의 대통령 직접선거도 인도네시아의 선거민주주의를 한 층 더 확고한 기반 위에 올려놓는 역사적 전진으로 기록될 것이다.

세계에서 인도, 미국에 이어 세 번째로 큰 규모의 민주주의 체제를 운영하는 나라에서 정부통령을 직접 선출하는 선거인 만큼 각종 선거 관련 수치가 어마어마하다. 2억3200만 인구 중에서 등록된 유권자가 1억7600만 명 이상이고 33개 주 471개 시군에 설치된 45만여 개의 투표소(TPS)에서, 일부 악천후 지역을 제외하고, 아침 8시부터 오후 1시까지 일시에 추진되었으며, 투표율은 등록유권자의 72.5% 정도일 것으로 추산되었다. 정말 '거대한' 선택이라 부를 수 있다.

규모가 큰 만큼 문제가 없을 수 없다. 2004년 선거 때 어느 선거관리위원의 말처럼 "문제가 없으면 인도네시아가 아니다". 그렇지만 2004년 선거 때보다 올 해 선거의 관리가 허술하였다는 비판은 피하기 어려울 것 같다. 선거 유세 막바지에 야당후보가 유권자 등록의 허술함을 강력하게 비판하면서 선거절차의 정당성에 관한 의구심과 함께 패배를 인정하지 않는 측의 폭동이 우려되기도 했다. 그렇지만 선거위원회(KPU)와 헌법재판소(MK)가 미등록유권자들도 투표소에서 신분증을 제시하면 선거에 참여할 수 있는 대안을 신속히 제시하자 문제를 삼던 후보자들도 이를 즉각 수용하였고, 경찰은 소요혐의자에 대하여 경고 사격 없이 직접 발포 할 수 있는 '1호경계령'을 발동하여, 결국 선거는 평온하게 완수될 수 있었다. 물론 앞으로 한 달 정도 거치면서 선거위원회(KPU)가 최종집계 결과를 발표하고 헌법재판소(MK)가 이를 인준할 때까지 선거관리에 관한 논란은 계속될 것이고 그 결과는 다음 선거의 관리체계 발전을 위한 귀중한 자료가 될 것이다.

'민주주의 축제'(pesta demokrasi)

인도네시아에서 선거는 '민주주의 축제'로 불린다. 폭동 우려와 경계령 발동에도 불구하고 자카르타 지역에서 선거는 평온하고 즐겁게 이루어졌다. 투표소는 활기가 넘치는 주민들의 회합공간이 된다. 투표소는 마을 주민들에 의해 마을 안에 세워지며 줄이나 휘장으로 안팎이 구분되는 열린 구조물이다. 이렇게 투명한 투표소에서 개표까지 진행된다. 수백명 정도의 유권자를 지닌 소규모 투표소들이기 때문에 이 기초 단위의 개표는 한 두 시간 정도면 완료된다. 마을의 투표관리원이 후보자들의 사진과 이름이 담긴 큰 투표용지를 하나씩 펼쳐 보이면서 선택된 후보의 번호를 외치면 또 다른 임원이 벽에 걸린 현황판에 매직펜으로 표시를 한다. 두 후보 이상을 체크하거나 한 후보에게 두 번 체크한 이상한 표가 나오면 관리위원들과 후보별 참관인들이 모여서 확인하고 무효표로 선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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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투표. ⓒ전제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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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표. ⓒ전제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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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록. ⓒ전제성

우리네 반장 선거 같은 개표과정을 지켜보는 것은 마을 사람들에게 큰 기쁨을 준다. 자신들이 지지하는 후보의 표가 나오면 환호하고 박수를 친다. 아이들도 어른들을 따라한다. 아이들은 각 번호의 후보들 이름을 맞추는 놀이를 하기도 한다. 이렇게 투표소는 정치와 민주주의에 관한 조기교육 현장이 된다. 외국인이 구경 오면 마을 사람들은 더욱 신이 난다. 자신들이 누구를 지지하고 왜 그런지에 관하여 열심히 설명하고 한국의 선거제도나 정치에 대해 묻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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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표를 즐기는 주민들. 지지후보의 표가 검표되자 환호하며 어른들이 박수를 친다. ⓒ전제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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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환호하는 아이들. ⓒ전제성

안정 속의 개혁을 지지

'민주주의 축제'를 통하여 인도네시아 유권자의 과반수 이상은 현 대통령의 재집권을 지지하였다. 인도네시아의 대통령은 5년 임기로 중임이 가능하며 부통령 후보와 함께 출마해야 한다. 2004년에 결선투표까지 거치며 대통령으로 선출되었던 수실로 밤방 유도요노(Susilo Bambang Yudhoyono)는 이번에는 경제각료 출신의 부디오노(Boediono)를 러닝메이트로 삼아 출마하였는데, 6개 기관의 투표소 샘플 조사(quick count)에 따르면 60% 정도의 지지를 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과반수 이상을 득표한 후보가 없을 경우 1위와 2위 후보팀이 결선을 치러야 하는 데, 오차가 있겠지만 유도요노 팀이 과반수를 무난히 넘길 것으로 예상되므로 결선투표 없이 재선이 확정될 듯하다. 따라서 3위에 처한 현부통령 유숩 깔라(Yusuf Kalla) 팀은 물론이고 2위에 오른 전 대통령 메가와티(Megawati Soekarnopurti) 팀에게도 결선 투표를 통한 역전의 기회가 주어지지 않을 것 같다.

현 대통령에 대한 압도적인 지지를 통하여 인도네시아 유권자의 다수는 안정 속의 전진을 선택하였다. 지난 5년간 다방면의 비판에도 불구하고 현 정부가 큰 허물없이 정치와 경제를 안정적으로 이끌었기 때문에 유권자들은 유도요노에게 5년의 기회를 더 주는 쪽으로 기울었다. 유도요노는 아체의 분리주의 세력과 평화협상을 체결하고, 부패한 전직고위관료들을 구속시키고, 세계적인 경제위기속에서도 경기회복국면을 유지했다는 대통령 재임 중 업적을 근거로 평화, 청렴, 안정의 지속을 호소할 수 있었다. 그리고 신중하고 정중한 인성이 잘 돋보이는 유세와 TV토론을 전개하였다.

유도요노-부디오노 팀은 유권자들의 최대 관심사인 경제 문제에서 큰 강점을 보였다. 유도요노는 장군출신이지만 야전사령관이 아니라 주로 행정 정보 업무를 책임졌던 '가방끈이 긴' 장군이었고 보고르농대에서 농경제학 박사학위까지 받았다. 더구나 유도요노는 재무부장관과 중앙은행총재 등 경제 관련 요직을 두루 거친 경제학박사 부디오노를 부통령으로 지명함으로써 경제 정책에 관한 유세에서 우위를 점할 수 있었다. 특히 고등학교까지 무상교육을 확대하겠다는 공약은 유권자들이 유도요노 지지표가 검표될 때마다 "무상교육"이라고 외칠 정도로 매력적인 약속으로 제시되었다.

유도요노는 자신의 정당 민주당(PD)의 후보였지만 부디오노는 특정 정당에 소속되어 있지 않다. 정당 배경이 없는 부통령 지명은 인도네시아 선거정치의 맥락에서 볼 때 특이한 선택이었다. 민주화 이후의 정부들은 서로 다른 정당 출신의 대통령과 부통령의 정당간 연합형식의 정부수반을 구성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부디오노를 부통령으로 삼은 것은 유도요노의 적실한 승부수였던 것으로 드러났다. 정당간 연합형식의 정부수반은 대통령과 부통령의 갈등을 표출하곤 했는데 지금의 정부도 마찬가지였다. 부통령 유숩 깔라는 골까르당(Golkar) 의장으로서 빈번한 독자행보를 취했고 종국에는 대선에 따로 출마하고 말았다. 따라서 정당배경이 없는 부디오노의 부통령선임은 전문적 경제공약의 우위선점에 유리했을 뿐만 아니라 행정전반에 대한 유도요노 리더십의 일관된 관철 가능성을 시사하는 것이어서 다른 팀보다 '강한 정부'에 대한 희구를 충족시킬 수 있고 유도요노의 인기가 굴절 없이 그대로 득표로 연결될 수 있게 하는 비결이었다.

특전사령관의 '민중주의'도, 토착자본가의 '쾌속열정'도 거부

반면에 전 대통령 메가와띠는 2004년 대선에 출마했다가 유도요노에게 패배한 바 있어 신선한 후보가 아니었지만 민주투쟁당(PDIP)은 그녀를 대선 후보로 다시 옹립하였고, 신생 대인도네시아운동당(Gerindra)의 쁘라보오 수비안또(Prabowo Subianto)와 연대함으로써 '새로운 피'를 수혈하였다. 그러나 민주화의 상징인 메가와띠가 수하르토의 사위였으며 민주화에 적대적이었던 특전단 사령관을 지낸 바 있는 쁘라보오와 연대한 것은 너무 지나친 정당연합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대다수의 정당들이 유도요노를 지지하는 상황에서 연대할 상대가 적었기 때문이라지만, 정치학자 도디(Dodi Ambardi)의 말처럼, 다음 대선에서 쁘라보오가 메가와띠의 지지를 받아 민주투쟁당의 대통령 후보로 출마하게 될 것이라는 소문은 민주투쟁당의 선명성을 갉아먹었을 것이다. 메가와띠-쁘라보오 팀은 유세연단을 볏짚으로 장식할 정도로 농업을 강조하고 외세가 장악한 천연자원 개발권을 되찾아오자며 강력한 민족주의와 민중 지향 경제 정책을 전면에 내세우는 선동적인 야성을 막판까지 불태웠지만 결국 패하고 말았다.

한편 현 부통령이자 거대정당 골까르(Golkar) 의장 유숩 깔라는 군총사령관 출신의 하누라당(Hanura) 의장 위란또(Wiranto)를 부통령으로 지명하고, 자본가 출신답게 "빠를수록 좋다"(lebih cepat, lebih baik)는 슬로건으로 정력적인 캠페인을 펼쳤으나 가장 낮은 지지를 받았다. 깔라는 현 정권의 업적을 계승하면서도 그 한계를 적절히 비판하였고 유세기간중의 TV토론에서도 반짝이는 아이디어와 사업가적 열정을 보여주었기 때문에, 크게 약진할 것으로 기대되었지만 결과는 전혀 아니었다. 깔라가 술라웨시 태생으로 주도 자바 출신이 아니라서 적은 지지를 받은 탓도 있겠지만, 내가 만난 사람들은 그가 기업인 출신이라는 점을 더욱 우려하였다. 여러 계급계층과 지역의 다원적 이해관계를 복합적으로 고려하지 못하고 성급하게 밀어붙이는 식으로 정책을 구사할 것을 우려했고, '토착기업인'을 육성하겠다고 외치지만 실제로는 가족과 측근 기업들의 이익을 챙기는데 권력을 사용할 것이라고 걱정하였다. 심지어 "그가 대통령이 되면 그 집의 가정부마저도 기업을 갖게 될 것"이라고 말하는 이도 있었다.

인권 운동도 작은 승리를?

이번 선거는 인권 운동 진영에도 작은 승리를 안겨주었다고 평가할 수 있다. 인도네시아의 인권운동은 소규모의 비정부기구들(NGO)이 이끌어왔고 전선형태의 대규모 사회운동체를 결성하거나 그들을 대표할만한 정치가를 배출하지 못했다. 이번 대선에 출마한 세 팀이 모두 장군들을 후보로 포함하고 있다는 점을 보면 민주화 11년간 인권 운동의 노력이 무슨 업적이 달성했는지 의구심이 생길만도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권 운동 단체들은 온건한 형태의 '낙선 운동'을 전개하였다. 실종자및폭력피해자대책위원회(KontraS)의 조사국장 빠빵(Papang)은 "인권침해범을 뽑지 말자"는 슬로건을 내걸었다면서, 최선은 아니지만 차선이었다고 자평했다.

메가와띠는 대통령 재임기에 아체지역의 여성과 아동의 생명권을 위협하는 계엄령을 선포하였고, 쁘라보오는 수하르토 말기에 특전단 사령관으로서 당시 자행된 반정부활동가 납치실종사건과 1998년 5월 반화인 집단폭력의 배후로 지목된 바 있고, 위란또는 분리독립을 결정한 동티모르 주민선거 직후에 친인도네시아 민병대가 자행한 폭력행위에 책임이 있다고 지목받고 있다. 인권 운동 단체들은 이러한 사실들을 기억하자는 "망각에 대한 저항" 전시회와 토론회를 개최함으로써 선거 국면에 관여하는 실천 활동을 전개하였다. 심각한 인권침해 혐의를 받는 전직 장성들이 이번 선거에서 뽑히지 않았으니 인권운동가들의 바람도 결국 실현되었다고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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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망각에 대한 저항 전시회. ⓒ전제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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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시회를 관람하는 필자. ⓒ전제성

패자의 길?

민중주의나 경제민족주의 슬로건을 내걸었던 후보들이 패배함으로써 앞으로 인도네시아의 경제정책 기조는 크게 달라지지 않을 것이다. 한국인들을 비롯한 외국인 투자자들에게는 희소식일 것이다. 인도네시아의 한인사회는 유도요노의 장인이 한국 초대대사를 지냈다는 인연으로 오래 전부터 유도요노에 대한 호감을 지녀왔다. 그러나 메가와띠 진영에서 계약직 및 외주노동에 대한 규제를 강하게 요구했고 유도요노의 개방적인 경제정책이 '신자유주의적'이라는 비판을 제기하였고, 깔라 측에서 경제성장을 위해 자본친화적인 정책의 신속한 실현이 필요하다는 비판을 제기한 바 있어서 이런 좌우의 비판을 어떻게 경제정책에 반영할 수 있을지는 의문으로 남아있다.

한 편 정당정치와 정부-의회 관계에서는 약간의 변화가 발생할 수도 있다. 특히 패주한 골까르당이 야당의 길을 갈 것인지 여부가 관심을 끈다. 민주투쟁당은 이미 유도요노 정권 하에서 야당의 길을 일찍이 선언했지만, 수하르토 시대부터 여당 노릇을 해 온 골까르당은 현 정권에도 연립으로 참여했었기 때문이다. 인도네시아의 정당정치는 '카르텔'이라고 불릴 만큼 선거 이후에 대다수의 정당이 여당이 되는 일종의 '대연정'의 정치를 펼쳐왔다. 패배한 정당은 자동적으로 야당이 되는 것이 아니라 향배를 정하기 위한 고뇌의 과정을 거친다. 30여년의 역사와 광대한 조직을 자랑하는 골까르가 민주투쟁당처럼 야당의 길을 택한다면 의회의 정부견제력은 지금보다 훨씬 막강해질 것이다. 상대적으로 유도요노 팀은 5년 동안 급성장한 신흥 민주당과 다양한 군소정당들의 지지를 받는 일종의 '무지개연립' 상태이다. 물론 패자들의 일부 분파들이 집권세력의 편으로 넘어갈 가능성도 무시할 수 없다. 따라서 대선 패배 이후 골까르의 위상설정은 인도네시아의 정당정치의 향배와 정부-의회 관계를 재편하는 중요한 변수로서 흥미롭게 지켜볼 만한 사안이다.

따져봐야 할 것이 많고, 미흡하고 아쉬운 점도 많지만, 이번 선거가 인도네시아 국민들을 행복하게 만들었다는 점을 언급할 만하다. 원심력이 강한 세계최대의 군도국가에서 적도하의 자연적 장애들도 극복하고 거대한 규모의 선거를 큰 분쟁과 사고 없이 치러냈다는 사실은 인도네시아 국민들의 민주주의 체제와 제도에 대한 자긍심과 신뢰성을 높이는데 기여하였을 것이다. 나아가 인도네시아의 선거는 초국적인 의미를 지닌다. 이번 선거의 성공을 통하여 지난 5년이 그랬듯이 앞으로도 인도네시아는 아세안(ASEAN) 역내 인권신장과 인간안보의 증진을 지속적으로 요구하는 동남아 민주주의의 기수로서 역할을 한 층 강화할 것이며, 이슬람과 민주주의 접합의 세계적인 모범으로서 계속 회자될 것이다.

전제성 (전북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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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등록 이주아동의 인권사각지대 KOREA


이주노동자의 역사가 20년이 넘어가면서, 한국에서 출생하였거나 부모와 같이 살기위해 본국에서 관광비자 등으로 입국하여 살고 있는 이주아동들은 ‘불법?’ 또는 ‘미등록’의 신분이라는 이유로 기본적 아동권리를 누리지 못하고 힘겹게 살고 있다. 미등록 이주아동의 정확한 수의 추계는 어렵지만 출입국외국인정책본부 통계에 의하면 2008년 3월 기준으로 약 2-3만 여명의 이주 아동이 한국에 살고 있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여기에는 한국에서 태어나 출입국 통계에 잡히지 않는 이주아동의 수가 제외 되어 있다(관련 전문가들은 적어도 1만명 이상의 국내 출생 이주아동이 살고 있을 것으로 추정함). 이주노동자가족의 아동들은 대부분 미등록의 신분으로, 온전히 학교에 다니지 못하거나 병원에서 제대로 된 치료를 받지 못하는 아동인권의 사각지대에서 생활하고 있다.

그런데, 1991년에 한국이 비준하여 국내법과 동일한 효력을 갖는 국제법인 ‘유엔아동권리협약’에 의하면,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한국에서 살게 된 미등록 이주아동들은 불법체류자로 분류될 수 없으며, 부모의 신분에 상관없이 이주아동의 체류권, 교육권, 보호권 등은 보장받아야 하는 권리로 규정되어 있다.1) 아동은 성인과 달리 불법체류의 신분이라 할지라도 불법행위의 주체로 인정되지 않기 때문에, 한국에 체류하고 있는 이주아동의 법적 신분은 불법이 아니라 합법적으로 인정되어야 한다. ‘유엔아동권리협약’에 비준한 대부분의 외국에서는 이주아동이 미등록의 신분이라도 기본적인 교육권, 의료, 보호권 등의 권리를 보장하고 있다. 미국, 호주, 일본, 독일 등 국가의 이민정책은 자국의 상황에 따라 다양하게 전개되어 왔으나 이주아동의 정책은 그들의 체류신분과 상관없이 아동의 권리를 보장하고 있다.

그러나 한국에서 미등록 이주아동은 기본적인 생계보장, 학업, 의료 및 보건, 문화 및 여가, 사회관계 형성 등의 권리와 혜택을 거의 누리지 못하는 매우 안타까운 실정에서 생활하고 있다. 특히 미등록 이주아동 중 상당수는 한국에서 태어났거나 어려서부터 한국에 장기 체류한 아동으로, 이들이 본국으로 송환되었을 때 전혀 적응할 수 없는 상황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비교육이나 적응 프로그램도 없이 무책임하게 귀국시키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이들 이주 아동·이 한국에서 겪는 발달 단계별 생활상의 어려움은 다음과 같다.

1.  태내기부터 영유아기의 권리문제와 욕구
의료혜택으로부터 전혀 보호받지 못하는 모성의 문제로 산전관리, 예방접종 등의 의료서비스 지원이 부족하여 발생하는 초기 영유아기 의료ㆍ건강상의 문제와 함께 어린 아동이 살기에 열악하고 비위생적인 주거문제 등이 심각하다.

2. 학령기의 권리문제와 욕구
학령기 아동의 경우, 법적으로 보장받지 못하는 교육권과 다문화이해부족으로 인한 차별과 소외의문제가 크다. 미등록 이주아동을 위해 한국정부가 유일하게 배려하고 있는 것이 초ㆍ중등교육법의 시행령(법이 아닌)에 규정된 초·중·고등학교에 진학할 수 있는 기회를 준 것이다. 그러나 학교장 재량에 맡겨진 전ㆍ입학처리문제와 상급학교 진학의 어려움이 크고, 설사 학교에 다니더라도 이들을 위한 배려는 없고 차별이 심하여 학교 입학부터 학교생활 적응, 진로결정 등에 이르기까지 미등록 이주아동이 학교생활에 적응하기는 매우 어려운 실정이다. 가난한 나라에서 왔다고 무시 받고 놀림당하거나, 한국어 미숙으로 수업생활의 어려움을 갖고,  학습부진과 열등감으로 좋지 못한 친구들과 어울리기 쉬우며, 학교에서 미등록의 신분이 보호받지 못해서 단속의 대상이 되는 등(오토바이 사고 등으로 신분이 노출되는 경우에 출국 대상이 된다)의 문제를 지니고 있다. 또한 이러한 악조건을 뚫고 졸업을 하여도 그 졸업이 무의미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어 고등학생의 경우에는 자포자기의 심정으로 자퇴하고 노동으로 투신하는 경우가 많다. 이러한 문제로 인하여 학령기 대상 아동 중 실제로 교육을 받는 아동은 5-10%정도 밖에 되지 않는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둘째, 미등록 이주아동은 부모와 함께 살 권리가 보장되지 않아 불안한 나날을 보내고 있었으며, 일부 아동의 경우 부모가 강제출국 후에도 한국에 남아 생활하게 되는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 그리고 학교에 가는 것이 부모의 단속에 빌미를 제공하게 될 수 있다는 불안이 있어서 아예 아동을 학교에 다니지 않게 하는 경우도 많다(미국의 학교에서는 교사들의 자발적인 운동을 통해 이주아동에 대한 비밀이 보장되기 시작하였다). 또한 입국 시부터 질병관리가 되지 않아 전염병 등의 감염의 문제도 심각하고, 학교와 지역사회 내 다문화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여 미등록 이주아동의 대부분은 교사나 또래들로부터 무시당하거나 차별을 당하는 경우도 빈번하게 나타나는 문제점이다.

3. 청소년기의 권리문제와 욕구
이주청소년들은 불안정한 현실 속에서 방황하고 있다. 이주청소년은 학교 및 지역사회에서 기본적인 신분보장이 되지 않아 의료보험 불가, 인터넷 가입과 휴대폰 가입을 할 수 없고, 예금통장 개설 불가, 교통카드 발급 불가 등의 다양한 사회적 장애를 지닌 채 한국 생활을 하고 있다. 체류권이 없기 때문에 대학진학이 불가능하고, 학교를 중도 탈락한 청소년들은 대부분 부모처럼 3D 업종에서 일을 하고 노동환경에서 보호받지 못하고 있고 자포자기의 심정으로 일탈의 가능성이 높다. 이주아동의 많은 경우에는 본국 문화와 언어도 잊고, 한국인으로 동화되어 본국에 귀국을 하더라도 본국에서 적응이 어렵다. 또한 한국에서도 장래에 어떤 희망을 갖고 살 수 있는 공식적인 생활이 없기에 안주할 수 없는 불안정한 현실에 놓이게 된다.

이러한 이주아동의 참담한 현실에 대해 현 정부의 관심은 거의 없고, 국내법 상으로 불법이라는 이유로 소극적인 대처를 하고 있고, 규제의 대상으로 보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5년 마다 유엔아동권리위원회에 협약 이행보고서를 제출해야하는 의무를 지니고 있는 한국, 선진국을 지향하고 대외적으로 국가의 브랜드를 중시하는 한국정부에서 이주아동의 권리를 보장하지 않는 것은 국내외적으로 큰 수치이자 오히려 국익을 훼손하고 있다는 비판을 받지 않을 수 없다.

이러한 상황을 타개하고자 2006년을 기점으로 민간차원에서 이주아동의 권리문제를 쟁점화하고 개선하기위한 노력이 경주되고 있으나2) 2006년에 시도되었던 아직 그 반향은 미미하고 구체적인 결실도 맺지 못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그러나 수조원을 투입하여도 증가하지지 않고 오히려 감소하고 있는 출산율은 정부에서도 다문화정책과 이민정책의 근본적인 재검토를 요망하는 시점에 와 있다. 그리고 삼성경제연구소의 보고서에 따르면 증가하는 외국인 노동자들이 경제성장에 도움이 됨으로써(3D업종에 취업하고자 하는 한국인은 거의 없음) 우리가 알고 있는 것과는 달리 오히려 한국인의 취업률 제고에 기여하는 선순환구조임을 밝히고 있다. 또한 2-3개국어를 잘 구사할 수 있고 다문화의 역량을 지니고 있는 이주아동을 잘 양육하는 것은 세계화에 부합하는 인력을 양성하는 것이고 장기적으로는 한국과 서남아시아와의 외교사절 또는 홍보대사를 자연스럽게 양성하는 효과를 얻을 수 있다.

이제  “구더기 무서워 장 못담그는 격”과 같이 이주아동의 인권을 보호하는 것이 일부 이주노동자에게 악용되고 국익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소극적인 네거티브 관점에서 이주노동자와 이주아동의 존재가 자국민과 국익에도 도움이 된다는 강점관점에 입각한 포지티브 관점을 정부가 채택할 것을 주장한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이주아동의 권리보장의 문제가 이제는 ‘체류자격’이라는 낡은 기준에서 탈피하고  세계 보편적인 “아동권리의 보장”이라는 기준을 채택하여 국제법 위반이라는 오명도 벗고, 이주아동은 물론과 한국국익에도 도움이 되는 이주아동정책이 이행될 것을 기대한다.

1) 제2조: “자국의 관할 내에 있는 모든 어린이”가 어떠한 이유로든 차별을 받지 않도록 보장해야 한다. 제7조: 모든 아동은 이름과 국적을 가질 권리를 지니며, 부모가 누군지 알고, 부모로부터 양육 받을 권리를 지닌다.
2) 2006년에 시도되었던 “이주아동권리보장법(안)”」의 입법추진 활동, 2009년에 다시 시동된 이“이주 아동·청소년 권리보장을 위한 시민행동” 등의 활동을 들 수 있음

김성천 중앙대학교 아동복지학과 교수


 

아시아포럼-5강을 소개합니다

주제: 이주아동의 인권현황과 시민사회의 과제
발제: 김성천 중앙대학교 아동복지학과 교수
토론: 신혜영 (성동외국인 근로자센터 활동가)

일시 2009년 7월 9일(목) 오후 4시 장소 서울 경희대학교 본관 2층 대회의실
문의 : 참여연대 국제연대위원회 차은하 간사 02-723-5051, silverway@pspd.org



 

Posted by 영기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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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에서의 인종주의와 헤게모니

6월 24일 아시아대안교류회(ARENA), 민주화운동 기념사업회등이 주최한 국제워크샵 <아시아에서 인종과 헤게모니의 연계>가 국가인권위원회에서 열렸습니다. 식민지시대를 거치면서 인종이라는 개념이 헤게모니로서 아시아와 서구사회에 어떻게 작용하고 있는지, 한 국가 내에서도 어떤 비극을 만들었는지 접해봅니다. 국제연대위원회 인턴의 후기를 소개합니다. <편집자 주)

해게모니로서 작용하는 인종주의

첫 번째 세션은 지난 1차 워크숍 내용에 대한 간략한 설명으로 시작되었다. 인종의 문제를 헤게모니(위계적, 패권적 권력)와 연관짓는 이야기였다. 권력관계에서의 인종문제, 비서구 사회인 아시아에서 인종문제를 적용할 수 있는지 그리고 이 문제를 어떻게 풀어나갈 것인지에 대한 문제 제기가 이어졌다.

‘인종’이란 식민지 시대 서구에서 고안해낸 개념이다. 식민지시대는 끝났어도 비(非)노동 계급으로 대변되는 백인이 존재한다. 이들의 우월적 사고와 육체노동 계급으로 인식되는 유색인종에 대한 멸시의 시선은 식민지시대의 유산이다. 이러한 대비는 우리의 머릿속에 각인되어 있다. 인종이 헤게모니, 즉 권력관계 하에 놓여 있다는 말은 이러한 역사적 배경을 가지고 있다. 서구 열강은 비서구인들을 차별하기 위해 인종이라는 개념을 도입했다. 인종이 헤게모니의 지배하에 있다는 현대적 근거는 인종이 외부인들을 이해하는 기제로서 작동하는데 있다. 예를 들면 저개발 국가를 이해할 때 우리는 그 나라의 낮은 경제발전 수준을 두고 ‘흑인들은 원래 게으르기 때문’이라고 섣불리 판단한다는 것이다. 이는 서구적인 관점이다.
 
다음으로 말레이시아 인권운동가 Francis Loh의 기조연설이 있었다. Loh는 글로벌 사회에서 다민족(Multi-Ethnic)국가는 점점 보편적인 현상이 되어가는 추세라고 했다. 그러한 만큼 인종문제를 직시하고 고정관념을 타파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식민지 시대에는 인종주의적 이데올로기를 이용해서 다수종족을 ‘분할지배’했다. 분할지배는 소수 열강이 다수 종족을 지배하기 위해 만든 일종의 정당화 전략이다. 소수 열강은 인종에 따라 다수 종족을 나누기만 한 것이 아니라 그에 따른 고정관념을 무의식적으로 주입시켰다. Loh는 자국에서 활동할 당시 ‘말레이시아인은 게으르다’는 편견을 깨뜨리고 ‘그렇지 않다. 말레이시아인은 근면하며 국가에 충성할 수 있다’는 새로운 인식을 외국인에게 심어주는 것이 너무나 힘들었다고 고백했다.

이민사회에서 답습되는 인종차별

두 번째 세션에서는 ‘서유럽의 이민과 인종주의의 경험: 아시아에서의 실천적 함의’라는 주제로 독일의 교육전문가 Silke Baer의 발표가 있었다. 그녀는 먼저 유럽에서의 이민 사회의 동향을 간략히 소개하고 이민자들에 대한 부정적인 고정관념에는 어떤 것이 있는지 소개했다. 언론에서조차 백인이 아닌 사람은 찾아보기 어렵다고 한다. 즉, 유럽에서는 이민자를 배제하는 분위기가 강해 정부에서도 이 문제를 쉽게 접근하지 못하고 있다고 한다. 더욱 심각한 것은 청소년들조차 부모의 선입견을 그대로 답습해 왜곡된 사고방식을 갖게 된다는 것이다. 독일 청소년들은 우파 극단주의, 백인 우월주의 등의 왜곡된 Culture-Code에 노출되어있다.

교육전문가들은 ‘청소년 문화는 인종적 구분 없이 모든 국적의 청소년들이 향유할 수 있다’는 문화적 특성을 이용해 그들에게 다가갔다. 청소년들의 주 관심사인 힙합, 그래피티, 스케이트 보드 등을 이용해 인식 제고 교육을 하는 것이다. 독일 청소년들은 문화적 의식교육을 통해 반(反)인종 차별주의를 자연스럽게 배우게 된다. 차별이 아닌 연대의식을 배우며 서로를 존중하는 법을 배우는 것이다.

정체성을 버리는 이민자 가족들

Francis Loh와 Silke Baer 두 분의 전문가에게 궁금한 것을 묻는 시간이 이어졌다. 먼저 Loh에게는 ‘말레이시아에서는 인종차별과 관련하여 이민자 문제의 실태가 어떠한지’를 묻는 질문이 있었다. Loh는 관리감독이 어려운 사각지대의 불법 이민자문제가 심각하다고 했다. 현지인을 밀어낼 정도로 상당수의 이민자들이 넘어오는데도 정부가 이 문제에 대해 전혀 해결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고 답했다. 또 다른 참가자는 Silke Baer에게 이민자들이 자아 존중감, 정체성 형성에 어려움을 겪지는 않는지에 대해 질문했다. Silke Baer는 이민자들의 정체성 문제는 꽤 복잡한 양상을 보이는데 다수 이민자들은 자국의 정체성을 버리고 독일의 헤게모니를 스스로 택하려 한다고 답했다. 예를 들어 독일에 온 쿠르드족의 경우, 부모들이 자녀를 아랍학교보다는 독일학교에 보내고 싶어하며 자녀가 유럽사회에 동화되기를 선호한다는 것이다.

다음으로 유럽 청소년들 사이에서 인종차별이 지배적인 현상으로 나타나게 된 근본적인 이유가 무엇인지에 관한 질문이 있었다. 유럽 청소년들은 힙합, DJ 등을 통해 기존 어른세대로부터 오는 억압을 해소하기도 한다. 반면 억압의 잘못된 해소방법으로 내면에 무의식적인 외국인 혐오증을 싹틔우기도 한다고 Silke Baer는 지적했다. 유럽, 특히 독일에서는 세대 간 갈등이 심해서 젊은이들이 사회적으로 통합되기 어렵다고 한다. 독일 젊은이들은 본인이 소외되고 환영받지 못하는 존재라고 생각한다. 그러한 열등감의 탈출구로서 ‘극단적 백인 우월주의’에 빠지게 되는 것이다. 그들로 하여금 백인 극단주의가 잘못된 사상이라고 인식하게 하는 것 자체가 어렵다. 그러므로 젊은이들에게는 ‘학교’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 반인종주의 교육, 문화교류 경험, 다른 인종의 아이들과 한 팀을 이루게 하는 학습과정이 필요하다. 이를 통해 인종적 사회통합이 이루어질 수 있다. 마지막으로 Silke Baer는 ‘사람들은 각자 자신이 높은 위치를 차지하려고만 하고 서로 연대(Solidarity)를 이루려하지는 않는 것 같아 애석하다고 답변을 마쳤다.

종족갈등에 따른 스리랑카의 비극

세 번째 세션에서는 싱가폴 인류학자 Darini Rajasingham을 모시고 ‘스리랑카에서의 인종과 갈등’이라는 주제로 토론이 열렸다. 타밀인과 스밀인 간 종족 갈등의 근본원인은 그들의 종족적 정체성과 식민주의의 차별적 사고에 있다는 것이다. 두 집단은 생물학적 차이는 없으나 언어적 차이로 인해 문화-종교적으로 심하게 차이가 벌어졌다. 이 격차는 식민지 시대가 끝난 이후에도 좁혀지지 않았다. 배타적 정체성은 스리랑카가 근대국가로서 자리잡아가는 과정에서도 나타났다. 서로간의 다른 역사적 배경을 이해하지 못하고 크고 작은 무력 충돌이 끊임없이 발발해온 것이다. 사실 타밀 반군에 대한 타격은 문제해결의 극히 일부일 뿐이다. 소수민족 문제를 해결하려면 그들을 이해하고 포용하려는 노력은 물론이고 권력의 분권화와 자치, 식민주의적 유산에서 탈피하려는 노력 등이 필요하다고 Darini Rajasingham은 힘주어 말했다.  

 ‘인종과 헤게모니’라는 다소 무거운 주제였지만 각 분야 전문가들의 의견, 토론을 들으며 인종에 대한 시각을 새롭게 하게 된 시간이었다. 너무나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인종이라는 개념, 그리고 그 기저에 깔린 패권주의적 의도를 정확히 파악할 수 있었다. 이제 우리에게 남은 과제는 오늘날에도 남아있는 식민지 시대의 유산, 그 인종주의적 고정관념을 깨뜨리고 다문화시대에 발맞추어 인종을 새롭게 정의하고 서로 연대하고 포용하는 일이다.

박서현 국제연대위원회 인턴

[참고] 국제워크샵<아시아에서 인종과 헤게모니의 연계>프로그램 내용
일시: 2009년 6월 24일 오전 9.30 - 오후 6.30
장소: 국가인권위원회 배움터
공동주최 : 아시아대안교류회(아레나), 에버트 재단(FES), 민주화운동 기념사업회

Session I 
지구적, 지역적 맥락에서 “인종”을 정의하기 / 이대훈
(기조 발표) 인종이 아시아에서의 사회정의를 위한 투쟁에 적당한 개념인가?  / Francis Loh
 
Session II 
서유럽의 이민과 인종주의의 경험: 아시아에서의 실천적 함의/ Silke Baer
토론: Francis Loh, 엄정민
 
Session III.
스리랑카에서의 인종과 갈등/ Darini Rajasingham
토론: Neng Magno, 허오영숙
 
Session IV.
서구 식민주의 및 경제 발전과 아시아의 인종주의 / Banajit Hussain
토론: Mohiuddin Ahmad, 마웅저
 
Special Session
인종주의 폭력: 대응방식과 실천적 훈련 프로그램 / Harald Weilnboeck



 

Posted by 영기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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