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네시아 인권의 역사적 시험대,

무니르 독살 형사소송의 ‘마지막 비상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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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 전 인도네시아 국가정보원(BNI) 부원장 묵디 뿌르워쁘란조노(Muchdi Purwoprandjono)
오른쪽: 인권변호사 무니르 사이드 탈립(Munir Said Thalib)

지난 4월 5일에 자카르타의 대검찰청 앞에서 인도네시아 청년들이 구속도 두렵지 않다며 천막을 치고 철야시위를 벌였다. 검찰에 대한 그들의 요구사항은 인권변호사 무니르 사이드 탈립(Munir Said Thalib)의 독살 배후 용의자인 전 국가정보원(BIN) 부원장 묵디 뿌르워쁘란조노(Muchdi Purwoprandjono)에 대한 마지막 법적 행동을 조속히 취하라는 것이었다. ‘용맹’과 ‘총명’이라는 수식어가 늘 따라붙는 무니르는 노동운동, 국가폭력반대운동, 과거사청산운동, 안보기관개혁운동에 헌신함으로써 수하르토 독재의 몰락과 민주주의 진전에 기여하였고, 꼰뜨라스(Kontras)와 임빠르샬(Imparsial) 같은 선명한 주창형 운동단체를 조직적 유산으로 남겨 인도네시아 최고의 인권운동가로 평가받는 인물이다. 그런데 2004년에 9월 7일에 암스테르담행 인도네시아 국영항공기 안에서 사망하였고, 네덜란드당국의 부검결과 그 사인이 치사량을 훨씬 웃도는 독극물 섭취로 밝혀졌다.

서른아홉 해의 삶이 이렇게 마감된 뒤 6년이 넘도록 인도네시아 시민사회단체들은 국제적 관심과 지지를 받으며 살인자들을 찾아 처벌해줄 것을 줄기차게 요구해왔다. 진상규명활동과 추모활동을 전개하는 한편으로 법적 경로도 밟아왔는데, 만족스럽지는 않지만 성과도 있었다. 독극물을 음료에 투입했다는 조종사 뽈리까르뿌스 쁘리얀또(Pollycarpus Priyanto)가 우여곡절 끝에 대법원 재심의까지 거쳐 20년형을 언도받고 반둥 감옥에 수감되었다. 그를 보안요원으로 항공기에 탑승토록 허용하는 공문을 위조하여 발송한 세 명의 국영항공사 직원들도 실형을 선고받았다. 또한 올해 2월에는 국영항공사가 무니르 유족에게 우리 돈 4억원 이상을 보상해야 된다는 대법원 판결도 얻어냈다. 최고의 법률적 승부는 독살의 공범이자 배후에 대한 형사소송이었다. 심증이 가는 여러 권력자들 중에서 증거가 발견된 묵디 한 명만을 대상으로 삼은 소송이었지만, 역시 만만치 않았다.

검찰은 사건 전후에 묵디와 뽈리 간 41건의 휴대폰 통화기록을 핵심 증거로 제시하였지만, 2008년 12월 31일 남부자카르타지방법원은 증거불충분을 이유로 묵디에게 무죄를 선고하였고, 대법원도 2009년 6월에 묵디의 손을 들어주었다. 적지 않은 수의 증인들이 불출석한 파행 재판이었고, ‘애국자’ 묵디를 위한 ‘어깨들’의 위협적인 지지시위도 있었다. 판사들이 매수되었을 것이라는 이야기가 나돌고, 소송을 이끌었던 시나가(Cirus Sinaga) 검사는 광범한 부패사건의 연루자로 조사를 받는 처지가 되었다. 새로운 증거를 제시해야만 법률적으로 마지막 단계인 대법원 재심의를 요청할 수 있기에, 묵디의 법적 단죄는 무산되고 마는 것 같았다. 그런데 무니르의 유족과 동료들은 포기하지 않았다. 그리고 놀랍게도 경찰이 묵디의 혐의를 입증할 새로운 증거들을 확보하고 있으며, 가장 결정적인 증거가 뽈리와 묵디 사이의 통화 녹음테이프라는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그러나 대검찰청이 “학습하는 중”이라거나 “때를 기다리는 중”이라는 애매한 표현을 흘리며 ‘마지막 무기’의 사용을 주저하고 있어서, 대검찰청 앞에서 철야시위가 벌어지게 된 것이다.

묵디는 동티모르와 이리안자야(현 파푸아)처럼 악명 높고 험난한 ‘분쟁지역’의 야전에서 경력을 쌓았고 수하르토 체제 말기에 특전단(KOPASSUS) 사령관으로 복무한 전도유망의 장성 출신이다. 그러나 특전사령관 재임 시 민주화운동가들에 대한 조직적 납치를 지휘한 것으로 무니르에 의해 지목된 바 있고, 결국 ‘임무해제’ 명령을 받아 소장계급을 끝으로 퇴역해야만 했다. 이로 인해 무니르에 대한 묵디의 원한이 시작되었을 것이라고 사람들은 추정한다. 그러나 묵디는 국정원 부원장으로 영전되면서 민주화 이후에도 정치적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었고, 군 출신과 민간 출신 후보의 대결로 압축된 2004년 대통령 직접선거 때는 역설적이게도 군 출신 유도요노(Susilo Bambang Yudhoyono)와 맞붙은 민간 출신 메가와띠(Megawati)의 편에서 선거를 도왔으며, 바로 이 때 무니르 독살사건이 발생하였다. 그래서 음모가설은 안보기관을 넘어서 민간정치부문의 실력자들까지 포괄하는 중층적인 양상으로 퍼져나갔던 것이다. 묵디는 독살배후로 제소된 뒤에 오히려 더 적극적으로 정치에 가담하여 대인도네시아운동당(Gerindra)의 부총재를 역임하더니, 최근에는 말년을 이슬람정치에 헌신하겠다며 통일개발당(PPP)에 입당하여 언론의 주목을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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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하르토체제 말기에 납치된 13인의 민주화운동가


지난 4월 7일에 콘트라스와 국제이행기정의센터(ICTJ)는 수하르토 체제 종식이후 13년간 추구된 이행기 정의(transitional justice)의 역정을 평가하는 보고서를 발표했다. 민주화 초기에 여러 희망찬 시도들이 있었지만, 구세력과의 타협적 시기를 거쳐, 최근에는 아예 꽉 막힌 시기를 맞이하게 되는 허탈한 과정을 기록하였다. 그 동안 인권침해사건과 관련된 고위급 장성들이 단 한 명도 법적으로 처벌받지 않았으며, 민주화운동가납치사건의 지휘자인 묵디의 경우도 마찬가지였다. 오히려 민주화 이후에 정치적으로 더 활동적이다. 대표적으로 1999년 동티모르 철수 시 발생한 군부폭력의 책임자인 위란또(Wiranto) 장군, 1998년 5월 반화인 집단폭력의 책임자 쁘라보오(Prabowo) 장군이 정부통령선거에 후보로 출마한 바 있고, 차기 대선에도 출마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과거사가 정리되지 않은 탓에 2014년 인도네시아 대선의 전망도 따라서 회귀적이다. 이로써 진실은 무력하고 정의는 강자의 편이라는 국민적 학습이 지속된다.

이런 정황에서 무니르 사건 형사소송은 인도네시아 인권의 ‘역사적 시험대’로 부각된다. 과연 특전사령관과 국정원부원장을 역임한 국가폭력의 핵심인물을 감옥으로 보낼 수 있을 것인가? 인도네시아 인권운동은 역사상 단 한 번도 성공한 적이 없는 도전에 나섰고, 지금 그 장도의 막바지에 서 있다. 무니르는 과거사 청산운동의 중핵이었고 현재도 그러하다. 무니르는 수하르토 독재의 국가폭력에 과감하게 맞서면서 전국적 ‘스타’가 되었고, 과거에 갇힌 각종 국가폭력사건들을 되불러내고, 국가폭력의 ‘성채’인 안보기관의 개혁운동에 돌입하였다. 역사를 위해 투쟁하다 스스로 역사가 되었으며, 국가폭력의 피해자들을 옹호하다가 자신이 피해자가 되었다. 그래서 그는 반국가폭력의 화신이다. 고위급이 연루된 살인이라는 위키리크스(Wikileaks)의 폭로, 무니르를 거리명칭으로 삼겠다는 네덜란드정부의 발표, 거액의 민사배상에 대한 대법원의 최종판결, 심지어 묵디의 화려한 정치행보까지도 무니르에 대한 기억을 재생시키고 영웅적 서사를 재구성시킨다. 그러니 무니르가 아니라면 누가 할 수 있으랴? 아니 무니르라면 해낼 수 있을 것이다.

이번이 마지막 전투이다. 무니르는 생전에 묵디의 군복을 벗겼지만 감옥에 가두지는 못했고, 그래서 묵디의 복수가 가능했던 것이라고 동료들은 한탄한다. 무니르는 생전에 실패한 것을 사후에 성사시킬 수 있을까? 과연 ‘죽은 무니르’가 ‘산 묵디’를 결박시킬 수 있을 것인가? ‘시작은 있지만 결말이 없다’는 냉소로 얼룩진 인도네시아 인권침해의 역사와 법치의 비극이 이번 소송에서 단 한번이라도 깨끗이 마무리되는 선례를 남길 수 있을까? 이 ‘역사적 한 판’의 끝을 보려면 지금은 우선 대검찰청의 행동을 재촉해야만 한다. 대검찰청이 대법원에 재심의 요청서를 보냄으로써 반국가폭력의 화신 무니르가 유족과 동료들을 이끌고 마지막으로 ‘출전’할 수 있도록 ‘혈로’를 열어주어야 한다. 나는 인도네시아의 민주화에 열광했고 민주주의 진전을 축하해온 연구자로서 인도네시아 민주주의의 수치인 불처벌(impunity)의 악순환을 돌파하는 대역사를 진정 목도하고 싶다.  


전제성(전북대 정치외교학과 부교수)

* 이 글은 서남포럼 뉴스레터(2011.4.12)에 실린 글입니다.


Posted by 영기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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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운드테이블] 리비아 사태와 군사적 개입, 어떻게 볼 것인가


3월17일 유엔 안전보장이사회가 리비아 무장갈등에 군사적 개입을 승인하는 내용의 결의안을 채택한 후, 리비아 상공에 비행금지구역이 설정되고 다국적군의 군사적 개입이 시작되었습니다. 41년간의 독재를 종식시키고자 들고 일어선 시민들을 카다피 정권이 유혈진압하고 있는 상황에서 국제기구나 강대국이 군사적 개입에 나선 것에 대해 다양한 견해들이 제기되고 있습니다.

이에 참여연대는 리비아에 대한 군사개입 여부를 판단함에 있어 인도주의적 개입(humanitarian intervention)혹은 R2P(Responsibility to Protect) 등의 개념을 적용할 수 있는지, 이 개념을 둘러싼 논란은 없는지, 더불어 군사적 개입이 가장 실효성이 있는 방안인지 등을 토론하는 라운드테이블 「리비아 사태와 군사적 개입, 어떻게 볼 것인가」를 개최하였습니다. 참여연대 박정은 팀장의 사회로 진행된 이 자리에는 한국외대 유달승 교수, 이화여대 평화학연구소 서보혁 연구교수, 경계를 넘어 최재훈(까밀로) 활동가, 그리고 평화네트워크 정욱식 대표가 패널로 나와 의견을 개진하였습니다.

이번 라운드테이블에서는 ▷ 중동아프리카지역에 대한 이해를 기반으로 한 리비아에 대한 군사적 개입에 대한 평가, ▷ 중동아프리카, 서방국가들 각각의 내부정치와 석유라는 에너지원을 둘러싼 국제정치의 실상, ▷ 국제사회의 보호의 책임(R2P)을 어디까지 한정하고 이에 필요한 장치는 무엇인지, ▷ 이러한 국제사회 담론이 국제평화운동과 한반도 평화에 함의하는 바는 무엇인지 등에 관한 논의가 활발하게 이루어졌습니다. 각 패널의 주요 발제내용은 아래와 같습니다.



민간인 보호가 아닌 민간인 피해 초래하는 군사적 개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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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훈 활동가(경계를 넘어)는 과거 역사를 되돌아볼 때 군사력과 경제력을 가진 몇몇 패권국가들에 의해 선택적으로 취해진 군사개입이 애초 의도한 민간인 보호라는 목적과는 정반대의 결과를 낳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군사적 개입에 비판적 입장을 견지한다고 밝혔다. 최재훈 활동가는 몇 가지 논거를 다음과 같이 제시했다.

▷ 리비아 사태에 대한 성격을 내전 또는 민주화항쟁 가운데 어떻게 규정하는가에 따라 국제사회의 대응 방식이 달라짐. 리비아에서 정치적 폭압에 항거하고 민주주의를 요구하며 시작되었다는 것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음. 그러나 처음부터 일관되게 비상사태해제, 무바라크 퇴진, 개헌을 통한 민주주의로의 이행을 주장해온 이집트 민주화 항쟁과는 달리 반카다피 진영의 정치적 비전은 불명확함. 민주화를 요구하는 민중들의 항쟁을 정치적, 외교적 차원 등에서 지원하고 독재자에 압력을 가하는 것과 내전의 한 축을 지원함으로써 다른 한축을 몰아내는 것은 분명 다른 차원의 문제임.

▷ ‘비행금지의 준수를 강제하기 위해 필요한 모든 조처들을 취하도록 승인’한 유엔 안보리 결의안 1973호가 몇몇 회원국들에게 자의적 판단에 의한 포괄적 수단 동원의 길을 허용한 점에서 ‘정당하다’고 할 수 없음.

▷ 리비아뿐만 아니라 예멘, 바레인, 요르단, 모로코, 사우디아라비아 등등 중동아프리카 내에서 발생하고 있는 유사한 사태에 대한 군사적 개입에 대한 논의는 이뤄지지 않음. (레바논, 팔레스타인을 침공한 이스라엘, 2010년 한 해 동안 무인기를 동원해 929명의 파키스탄인들을 사망하게 한 미국 등에 대한 논의도 없다는 점에서) 형평성이 부족함.

▷ 민간인 보호를 내세웠던 비행금지구역 설정은 오히려 민간인 피해를 초래할 수밖에 없고 지상에서 쌍방간의 보복학살을 격화시켜 오히려 민간인 피해를 더 초래한다는 점에서 실효성도 도덕성도 부족함.


최재훈 활동가는 카다피의 해외자산 동결, 무기 금수, 국제형사재판소 회부, 아프리카 연맹이나 역내 국가의 중재 등 지금이라도 정치적 해결 방안을 모색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리비아 사태와 군사적 개입, 과연 ‘최선의, 최후의’ 수단이었나

서보혁 교수(이화여대 평화학연구소)는 R2P(Responsibility to Protect*)의 개념에서 이번 리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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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사태를 분석하였다. R2P는 국가가 국민보호의무를 실패할 때 국제사회가 시의적절한 집단행동을 취할 의무가 있다는 것을 주요골자로 한다며, 카다피정권에 대해 군사적 개입을 하지 않았다면 어떤 형태로든 폭력이 계속되거나 확대되었을 것으로 예상되었기 때문에 이를 중단시키기 위한 수단의 강구, 즉 광의의 인간안보의 관점에서 리비아 군사적 개입은 필요한 부분이었다고 말문을 열었다.

그러나 서보혁 교수는 비록 R2P를 명분으로 리비아 군사적 개입을 단행했으나 실제 R2P 목적이 제대로 수행되었는가는 별도의 평가가 필요한 부분이라고 주장했다. 인간안보관여(Human Security Engagement) 가 목표로 하는 개입의 6가지 전제조건은 다음과 같다 : right authority(정당한 권위), ▷just cause(정당한 명분), ▷right intention(정당한 의도), ▷last resort(최후의 수단), ▷proportional means(수단의 비례성), ▷reasonable prospects(합리적 전망).

유엔안보리에 대한 구조적 문제점은 이번 논의에서 차치하고 유엔 결의안은 정당한 권위, 명분, 의도의 조건은 충족하지만, 과연 군사적 개입이 다른 모든 가용할 수 있는 수단이 동원된 뒤에 최후의 수단으로 이뤄진 것인지(최후의 수단), 현 수준의 군사조치가 리비아 사태와 비례하는 것인지(수단의 비례성), 인간안보 관여가 중장기적으로 시민을 보호할 뿐만 아니라 결핍으로부터의 자유를 보장하기 위한 사후 재건 비전 등에 대한 구체적 계획(합리적 전망)을 동반해야 한다는 점에서 이번 리비아 군사적 개입에 대한 문제점과 한계점이 존재한다고 서교수는 지적했다. 즉 리비아에 대한 군사적 개입은 R2P를 명분으로 시작됐으나 실제 진행된 양상은 이를 충족시키기 어려운 상황으로 가고 있다는 것이다.

서보혁 교수는 유엔에서 R2P 개념을 내세워 이번 리비아 결의안을 통과시켰지만 합의절차와 행동절차 등이 제도화가 안된 상태에서 R2P 개념을 도입하여 결의와 개입이 이뤄진 것이 근본적인 문제라고 지적하며, 인간안보를 보호하기 위한 노력으로서 R2P를 공론화하고 제대로 달성하기 위한 장치를 고안하는 데 국제시민사회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리비아 사태와 서방 군사개입의 목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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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달승 교수(한국외대)는 리비아 사태는 민주화운동, 내전, 전쟁 등으로 이름을 달리 붙여야 할 만큼 그 양상이 계속 변화하고 있다고 하면서, 리비아 사태에 대해 미국과 유럽의 대응양식이 다르다는 것을 지적하였다. 리비아에서의 시위는 극단적 무장투쟁을 강조하는 이슬람 투쟁세력과 민족해방운동을 하는 소수 엘리트 장교, 그리고 아프간 내전에 참가했던 리비아 전사들이 조직했기 때문에 다른 국가들과는 달리 처음부터 급격한 총격전과 무장투쟁이 벌어졌다고 설명했다.

즉, 2011년 리비아 사태는 1995년에 있었던 유혈폭동과는 다른 다양한 세력이 결합되어 시위대를 구성하고 있다는 점과 다른 국가와는 달리 카다피에 반대하는 이슬람세력이 군부와 결합되어 있다는 점, 그리고 반카다피 세력으로 인해 군주제로 복귀하게 될 가능성이 있다는 점 등 리비아만의 특이한 양상을 보이고 있다는 것이다.

유교수는 왜 이 시점에서 리비아에 대한 서방의 군사적 개입이 이뤄졌는가라는 질문을 던졌다. 리비아 내전은 서방의 군사적 개입으로 전쟁으로 확대된 반면, 이들 국가들은 예멘과 바레인 등에서 벌어지고 있는 민주화 시위에 대한 학살은 침묵하고 있다. 미국이 발을 빼는 듯한 모습을 보이고 있는 것은 시민군에 알카에다가 개입했다는 카다피의 주장과 연관되어 있는 듯 보이며, 리비아의 원유 수출량은 세계12위에 불가하지만, 원유가 질적으로 좋으며 이 석유의 85%가 유럽에 수출된다는 점이 서방 국가들의 군사적 개입과 관련되어 있다는 점을 유교수는 환기시켰다.

유교수는 어떤 사람들은 이번 아랍 지역의 민주화 혁명이 1989년에 있었던 동유럽에서의 도미노현상과 비슷하다고 하지만 몇 가지 점에서 차이가 있다고 지적했다. 유교수에 따르면 1989년 사건을 통해서는 동유럽의 사회주의 국가들이 무너지면서 미국 중심의 세계패권으로 이어졌지만, 이번에는 친미 국가와 반미국가 모두에서 혁명적 시위가 발생했기 때문이다. 특히 이집트는 미국의 가장 가까운 동맹국이라는 점에서 친미 아랍국가가 더 이상 미국에 의존할 수 없는 상황이며, 앞으로 중동 지역에서 탈이데올로기 실용주의가 주도하는 새로운 정치지형을 점쳐보게 한다고 말했다.


리비아 군사개입이 한반도 평화에 주는 함의

정욱식 대표(평화네트워크)는 평화운동의 입장에서 무력사용 자체는 원칙적으로 반대하나, 무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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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입을 해도 되느냐 안되느냐 하는 이분법적인 관점으로 보기 어려운 상황이라며 말문을 열었다. 정대표는 대량학살이 벌어지기 전에 무력 개입을 선택한 것은 정당하고 적절했다는 찬성론도 존재하지만 다음과 같은 측면에서 예상했던 것보다 못한 결과를 가져올 수도 있다고 보았다.

▷ 우선 국제사회가 리비아 사태 초기 국면에 갈등해결의 가장 중요한 수단인 중재노력을 거의 보이지 않았음.

▷ 리비아 사태를 통상적인 의미의 민주화 운동으로 볼 것인지, 반군 세력과 카다피 정권 사이의 무력충돌, 내전으로 볼 것인지 살펴봐야 하며, 서방의 군사적 개입은 실질적으로 반군을 지원하는 성격이 큼.

▷ 프랑스 사르코지 대통령 등 서방국가들이 내부정치용으로 리비아 사태 이용함.

▷ 리비아와는 달리 예멘, 바레인, 시리아, 요르단 등에는 개입하지 않는 국제사회의 모습에서 R2P의 허구성, 강대국의 이중잣대를 드러냄.

▷ 비행금지구역 설정을 넘어선 과도한 군사행동과 군사행동에 내재된 ‘자기증식성’의 문제점.

▷ 민간인 보호 목적의 무력 개입이 초래한 민간인 피해. 이를 소위 부수적 피해(collateral damage)라 할 수 있는지 문제.

▷ 리비아에 대한 군사적 개입이 민주화 운동세력에게 연대의 희망을 줄 것이라는 기대와는 달리 다른 독재국가들이 민주화 운동의 싹을 자르기 위한 무자비한 탄압에 나서는 현실.

마지막으로 정대표는 북한이 핵을 포기한 리비아의 현실을 보고 자신들의 선군정치와 핵보유 의지를 강화하고자 한다는 점을 볼 때, 이번 국제사회의 군사적 개입이 핵비확산체제의 확립에 기여하는가 하는 점에서 현재로서는 긍정적 평가를 내리기 어려운 면이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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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비아 군사개입을 둘러싼 국내정치와 국제정치

최재훈 활동가는 서구가 왜 리비아에 직접 군사개입을 했는지를 보면 석유이권이나 국내 정치상황등의 요인도 있지만, 더 크게 보면 미국이 중동 북아프리카에서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불확실성'이라는 점에서, 미국의 가장 큰 고민이 현 독재자들의 축출 후 어떤 정권이 들어설 것인가를 전혀 알 수 없는 상황이라는 점에서, 현 반카다피 측의 과도정부 인사들의 면면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미국이 직접 개입해서 포스트 카다피 시대의 판을 짜 보려는 것처럼 보인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서보혁 교수는 현재 아랍 민주화 바람에 대응하는 미국의 태도는 제국으로서의 미국이 약화되고 있는 현상을 아주 잘 보여주고 있다고 생각하며, 이번 사태를 미국 중심적으로 설명하는 것은 어렵다고 보았다.

유달승 교수는 튀니지와 이집트는 미국의 신자유주의 정책과 국제금융기구의 정책을 잘 따르던 국가에서 양극화, 실업 등의 문제를 갖고 일어난 사태들이므로 이후에는 근본적인 변화가 동반될 것이라고 보았다.

정욱식 대표는 이번 리비아 사태에 미국이 개입한 것에 대해서는 석유 등으로 단순히 설명하기 어려운 면이 있다고 보았다. 특히 미국 주류의 전쟁방식인 대규모 지상군 파견을 피하는 전쟁수행방식의 변화를 주목해 볼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현 리비아 사태는 한반도 문제에 여러 가지 함의를 갖고 있는데 특히 북의 핵신봉 시나리오가 강화되는 현 상황에서 대화가 더욱 중요하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말했다.

유달승 교수는 리비아 사태를 보도하는 미디어의 내용들을 보면 매우 신뢰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리비아사태에 대한 왜곡 보도가 심하며, 알자지라 방송도 리비아사태에서는 미국과 같은 입장을 취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서방이 군사개입을 한 이후 미디어에서 카다피 체제의 붕괴와 동서분할 가능성을 제기하는 것도 그런 측면에서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참고로 리비아 동부는 리비아 원유생산의 80%를 차지한다.




마치며

서보혁 교수는 인간안보의 개념으로 봤을 때는 사람만 교체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밑바탕이 되는 사회경제적 개혁, 빈곤으로부터의 자유와 같은 광의적 접근이 필요하다고 보았다. 이를 실행하기 위해서는 유엔 거버넌스를 개혁하여 기존의 안전보장이사회가 결정을 독점하는 구조에서 벗어나 인간안보이사회와 같은 새로운 논의 구조가 필요하며, 엔지오와 전문가집단과 수평적 네트워크를 갖도록 해야 하다고 주장했다.

R2P를 부실하게 선택적으로 적용하는 국제사회를 비판하면서 그 개념과 정신까지도 없앨 것인지 아니면 취지를 제대로 살려서 국제사회의 평화와 인권증진을 위한 개념으로 발전시킬 것인지를 시민사회가 판단해야 한다는 서보혁 교수의 발언처럼 이번 리비아 군사적 개입은 시민사회에 큰 과제를 남기고 있다.



* 정리 손연우(참여연대 국제연대위원회 간사) 김희순(참여연대 평화군축센터 간사)

* R2P(Responsibility to Protect) 흔히 '국민보호책임'으로 번역됨. 2005년 유엔세계정상회의 결과문서에서는 the responsibility to protect its populations 으로 표현되어 있음.


Posted by 영기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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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레이시아의 이슬람과 민주주의


말레이시아에서는 2009년 정부가 기독교인들이 성경에 ‘알라’라는 단어를 사용했다는 이유로 성경 1만권을 압수한 적이 있었다. 말레이시아 정부는 기독교인들의 ‘알라’ 사용에 격분한 강경 무슬림인 들을 달래기 위해 위와 같은 조치와 기독교인들의 ‘알라’ 사용을 금지하였다. 하지만 많은 기독교인들이 이에 대해 문제제기와 소송을 한 결과 2009년 말 쿠알라룸프 고등법원에서는 기독교인들의 ‘알라’의 단어 사용을 허용하는 판결을 내렸다. 사태는 진정 되는 듯하였으나 정부가 이 판결에 대해 항소하여 일단 판결 효력이 정지 된 상태이다. 또한 이 판결에 격분한 이슬람 신자들에 의해 일부 교회는 폭탄테러, 시설물 파괴와 같은 공격을 당하였다.

말레이시아는 다민족 다종교 사회이고 헌법에는 종교의 자유에 관련된 조항(헌법 11조)이 명시 되어있는데도 불구하고 정부가 직접 나서서 특정 종교를 옹호하고 타종교를 억압하는 행위를 한다는 사실은 내게 충격적 이었다. 과연 말레이시아에서 이슬람의 정치적 의미는 무엇인지 궁금해졌다.

우선 말레이시아는 종족과 종교 간의 밀접한 관련성이 있다. 특히 이슬람교와 말레이계와의 관계는 매우 밀접하다. 말레이계는 영국식민지가 되기 이전인 15세기부터 이슬람교를 믿어왔다. 또한 식민지배가 끝난 후 건국한 연방 말레이시아는 국교를 이슬람교로 정하였으며 헌법에는 말레이인 종족의 경우에는 태어날 때부터 이슬람교를 믿도록 제정하였다.(헌법 160조)

헌법에 종교의 자유가 명시되어있음에도 불구하고 이슬람교도인 경우에는 종교적인 부분은 민간법정이 아닌 이슬람 법정에 의해서 샤리아법(이슬람법률)에 의해 판단하게 되어 있어 이슬람교도라면 실질적으로 개종이 거의 불가능하다. 이슬람교에서는 개종하는 것을 중죄로 여기기 때문이다. 이는 민간법정에 기독교로 개종한 사실을 인정받으려했으나 결국 이슬람 법정에 의해 인정받지 못한 리나(Lina Joy)사건에서 잘 드러난다. 이러한 상황에서 대부분의 말레이인들은 곧 이슬람교도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말레이종족과 이슬람은 매우 밀접한 관계에 있다.

그렇기 때문에 말레이시아에서 이슬람종교는 말레이계 선거 유권자들의 지지를 얻기 위한 정치적인 수단으로도 사용된다. 매번 총선 때마다 이슬람화가 주된 선거 쟁점으로 형성되어왔다. 말레이계 정당인 통일말레이국민조직(United Malay Nation Organization; UMNO, 이하 UMNO)과 야당 측 말레이계 정당인 범말레이시아이슬람당(Parti Islam Se-Malaysia, 이하 PAS)은 늘 이슬람화를 지지하는 무슬림들의 표를 얻기 위해 경쟁을 벌여왔다.

하지만 이런 이슬람화의 진행은 말레이시아의 소수민족들을 위협하고 있다. 사실 UMNO는 말레이인들의 이익을 대변해야 하는 동시에 오랫동안 정권을 잡아왔던 여당연합 국민전선(Barisan National, BN)의 구성원으로서 다른 종족 정당과도 공생해야 하기 때문에 극단적 이슬람화의 주장을 하지 않고 있었다. 하지만 정권에 대한 실망으로 말레이인들의 PAS에 대한 지지가 점점 늘어나자 이를 의식한 UMNO는 이슬람화를 내세우며 말레이계의 지지를 얻으려 하였다.

UMNO 전당대회는 말레이시아 정치에서 가장 중요한 의미를 가지는 회의로 실질적인 정책이 논의되는 장으로 그 중요성이 상당하다. 그런데 교육부장관이자 청년조직의 장인 히샤무딘 후세인은 2005년, 2006년, 2007년 세 차례 연속으로 말레이 전통 칼을 흔들며 “말레이계 헤게모니에 도전하는 소수종족들은 없애겠다."는 과격한 발언을 하였다. 이는 UMNO가 이슬람화 강화에 초점을 맞추겠다는 것을 공공연하게 드러낸 것이다.

야당인 PAS는 해외의 이슬람근본주의 세력과의 결탁 또는 유착하였다는 의심을 받을 정도로 이슬람 국가를 건설하는 것을 지상 최대의 정치적 목표로 표방하고 있고 이슬람 근본주의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다. 매번 선거 때마다 이슬람교도들에게 종교적인 위안에 호소하는 방법으로 지지를 얻으려 한다. 실제로 과거 말레이시아 한 주에서 집권에 성공했던 PAS의 부총재는 약속했던 강력한 이슬람화 정책을 추진하기위해 이슬람형법(hudud) 실시를 강력히 주장한 사례도 있다.

이렇듯 말레이계 정당들은 선거에서의 승리를 위해 이슬람을 정치적 수단으로 이용하고 있다. 정당들의 경쟁적인 이슬람화 강화 선거 전략이 계속 된다면 세속국가인 말레이시아 내의 소수민족들의 목소리는 점점 힘을 잃게 되어 갈 것이다. 말레이시아는 입헌 군주국으로서 실권은 국민이 선출한 의회와 총리가 쥐고 있는 민주주의 국가이다. 국민을 위한 정치를 하여야 하는 것이 민주주의라면 말레이시아에서도 비이슬람교의 소수민족을 위한 정치도 이루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말레이시아 내에는 약 30%의 비 이슬람교도들이 살고 있다. 정당들의 경쟁적인 이슬람화로 인해 이들이 외면 받는 정치적 상황을 만들어서는 안 된다. 정당들은 이슬람화의 주장을 자제하고 비 이슬람교도들도 배려하여 말레이시아의 모든 종교, 종족들이 차별받지 않는 민주주의국가가 될 수 있도록 노력하길 바란다.

참여연대 인턴 7기 최준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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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키노 대통령의 중고 외제차 구입 파문을 통해 본 필리핀 민주주의


최근 베니그노 노이노이 아키노 (Benigno Simeon Cojuangco Aquino III) 필리핀 대통령이 사비로 중고 고급 외제 자동차를 구입해 구설수에 올랐다. 아키노 대통령은 정치∙사회 개혁에 대한 필리핀 민중의 기대를 한 몸에 받고 당선되었기에 그의 이번 중고 고급 승용차 구입 파문은 필리핀 민중에게 적지 않은 실망을 안겨주었다. 지난 대선 당시 필리핀 민중이 아키노 대통령에 걸었던 기대를 고려할 때 그의 이번 처신이 부적절했음은 분명하지만 문제는 이번 사건이 단 한 번의 경솔한 실수에 불과한 것인지 아니면 필리핀 민중에 대한 배신의 본격적인 시작을 알리는 것 인지 이다.

민중의 지지를 기반으로 당선된 대통령들이 당선 이후 민중을 저버리는 행위는 필리핀 민주정치 역사에 있어 그리 드물지 않다. 필리핀은 1987년 민주화 이후 현재까지 총 4번의 대선을 치렀고, 전임 대통령인 아로요 대통령을 제외한 라모스와 에스트라다, 아키노 대통령 모두 민중의 커다란 지지를 기반으로 당선되었다. 하지만 라모스와 에스트라다 대통령은 당선 이후 대선 당시 약속했던 특권 계층에게 유리한 정치∙사회 구조를 개혁하는데 잇따라 실패함으로써 필리핀 민중을 좌절케 했고, 특히 역대 어느 대통령보다도 극빈층으로부터 압도적인 지지를 받은 배우 출신의 에스트라다의 경우 임기를 반도 채우지 못한 채 횡령 혐의로 중도 사퇴를 함으로써 민주주의에 대한 필리핀 민중의 무력감을 증폭시켰다.    

민주화 이후 25년이 흐른 현재까지도 필리핀의 민주주의는 엘리트주의적 성격을 강하게 갖는다. 하지만 필리핀을 포함한 현대 민주주의 국가의 거의 대부분이 간접 민주주의를 채택하고 있다는 점을 고려할 때 현대 민주주의가 어느 정도의 엘리트주의적 성격을 띠는 것은 불가피하다. 문제는 필리핀의 민주주의가 민중 중심이 아닌 전통 기득권 세력 중심으로 이루어져 왔다는데 있다. 필리핀 민중은 이에 대항하여 왜곡된 정치∙사회 구조 개혁을 약속한 신 엘리트 계층 대권 후보들을 잇따라 당선시킴으로써 민중이 주인이 되는 민주사회에 대한 그들의 열망을 지속적으로 표출하였다. 이번 아키노 대통령의 선출은 역대 필리핀 대통령들의 계속된 배신에도 불구하고 필리핀 민중들이 민주정치에 대한 희망을 여전히 잃지 않고 있음을 보여준다. 

하지만 필리핀의 역대 정치사를 고려할 때 혹시나 아키노 대통령 역시 결국에는 필리핀 민중을 저버리지는 않을까 하는 걱정을 지울 수 없다. 그러나 많은 필리핀 민중은 아키노 대통령만은 다르지 않을까 하는 조심스러운 기대를 갖고 있다. 그러한 기대의 저변에는 아키노 대통령이 역사적으로 필리핀의 민주주의를 위해 싸워온 가문 출신이라는 점이 크게 작용한다. 아키노 대통령의 아버지인 니노이 아키노는 마르코스 독재 정권 당시 유력한 민주화 야당 후보로써 필리핀 민주화를 위해 몸을 바친 대표적인 필리핀 민주화 인사였으며, 아키노 대통령의 어머니인 코라손 아키노 전 대통령 역시 필리핀 민주화 이후 초대 대통령을 지내면서 필리핀 민주주의의 제도적 기반을 닦은 필리핀 민주화의 상징적 인물로 여겨진다. 필리핀 민중은 필리핀 민주화에 이와 같이 커다란 공헌을 한 부모 밑에서 자란 아키노 대통령 역시 그의 아버지와 어머니를 따라 필리핀 민주주의의 실질적 발전을 위해 노력할 것이라 기대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기대에 부응하기라도 하듯이 아키노 대통령은 당선 직후 대통령 직속으로 사법개혁위원회를 발족시키는 등의 일련의 부정부패 척결을 위한 제도 개선을 실시함으로써 필리핀 민중에게 정치 개혁에 대한 분명한 의지를 천명하였다. 하지만 문제는 이러한 정치 개혁에 대한 의지가 남은 임기 5년 동안에도 계속 지속될 수 있는 지의 여부이다. 앞서 언급하였듯이 민중의 지지를 기반으로 당선된 역대 필리핀 대통령들 모두 정치∙사회 개혁에 대한 그들의 공약을 끝까지 완수하지 못하고 결국에는 기존의 특권 계층과 타협하는 모습을 보여줬기 때문이다.

아키노 대통령의 이번 중고 고급 외제 승용차 구입 파문이 필리핀 민중에게 적지 않은 실망감을 가져다 준 것은 사실이다. 그렇지만 이로 인해 아키노 대통령에 대한 기대와 열망을 버리기에는 아직 너무 이르다. 아키노 대통령은 필리핀의 민주주의를 위해 일생을 바친 부모님을 지켜보며 성장했다. 민중은 바로 이러한 점에서 아키노 대통령에게 정치 개혁에 대한 그리고 필리핀 민주주의 발전에 대한 큰 기대를 걸고 있다. 아키노 대통령이 필리핀 민중의 바람을 충족시키고 필리핀 민주주의를 한 단계 더 높이 끌어올릴 수 있을지 앞으로 남은 그의 임기 5년이 주목된다.

참여연대 7기 인턴 김동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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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웅산 수치가 직면한 두 가지 과제

미얀마 총선이 예상대로 군부 쪽 정당의 압도적인 승리로 끝났고, 아웅산 수치가 해금되었다. 지난 총선은 2008년 신헌법에 토대를 두고 있다. 민족민주동맹과 국제사회는 이미 2008년 신헌법 처리를 무효라고 주장했기에, 이 신헌법에 근거한 총선을 거부한 것은 일관된 정치노선이었다.
문제는 2008년 신헌법에 한정된 것이 아니다. 미얀마 군부는 민족민주동맹의 압승으로 끝난 1990년 5월 선거를 무시했다. 이 때문에 민족민주동맹은 줄곧 1990년 5월 선거 결과에 대한 인정을 요구했다. 미얀마 군부는 모르쇠 전략으로 한치의 양보도 없이, 아웅산 수치를 비롯한 미얀마 민주인사들을 지속적으로 박해했다. 특히 2007년에는 거리에 나선 승려들과 시민들에게 총격을 가했다. 민주주의의 외침을 군홧발로 짓밟은 1988년의 비극이 반복된 것이다.

동남아국가연합(아세안) 회원국들은 불간섭주의와 포용을 통한 변화라는 명분을 내걸고 미얀마와 손을 잡았다. 서방은 이를 ‘독재자 클럽’이라는 구태에서 온전히 벗어나지 못하는 동남아 국가들의 인권의식의 한계로 받아들였다. 1962년 군부 쿠데타를 계기로 시작된 ‘버마식 사회주의’ 노선을 두고 논란도 있다. 그러나 이것 역시 1960년대에 주목받던 아프리카 사회주의처럼 식민지 역사로부터 얻은 정신적 외상과 무관하지 않은 비자본주의 실험이었음을 부정하기 어렵다. 그리고 아프리카 사회주의 실험이 그러했듯이 ‘버마식 사회주의’의 고립노선은 정치·경제적으로 파국을 맞았다.

현재 미얀마 군부는 과거 두 개의 악몽으로부터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하나는 미얀마를 오랫동안 분할지배해 종족간 반감을 증폭시켰던 제국주의의 교활함이다. 다른 하나는 독립 직후 종족간 내전에 따른 ‘실패 국가’의 경험이다. 물론 이런 해석은 미얀마 군부에 지나치게 관대한 것일 수 있다. 미얀마 군부야말로 사회주의의 이름으로, 또 국가통합이란 이름으로 과거 제국주의 못지않은 잔인한 짓들을 반복해왔기 때문이다.

그동안 국제사회는 미얀마 군부에 압박을 가했고, 아웅산 수치를 비롯한 미얀마 민주인사들도 헌신적 투쟁을 했다. 그러나 미얀마 군부는 어떠한 균열 조짐도 없이 요지부동의 모습을 보였다. 그렇기에 서방 일각에서는 미얀마에 대한 제재 일변도의 대응이 갖는 효력에 의문을 제기했다. 워낙 고립된 상황에 있던 미얀마라 경제제재의 효과가 미미할뿐더러 오히려 군부의 단합만을 고취했다는 것이다.

7년 만에 해금된 아웅산 수치는 요지부동의 군부를 움직여야 하는 중차대한 과제를 안고 있다. 해금과 동시에 아웅산 수치는 군부와의 대화를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대화 제의는 그동안 누차 있었던 것이라 새로운 정치전략으로 보는 것은 속단이다. 하자가 많은 집권 군부세력으로서는 아웅산 수치의 행동거지 하나하나에 예민할 수밖에 없다. 극단적으로 그의 자유를 다시 박탈할 수 있다. 그렇기에 아웅산 수치는 미얀마 사회가 활력을 되찾도록 하기 위해서도 자신의 자유를 소중히 지킬 수 있어야 한다.

이와 관련해 그동안 제기됐던 정치인 아웅산 수치에 대한 다음과 같은 건설적 비판에 귀기울일 필요가 있다. 하나는 군부를 강온파로 분열시키기 위해서도 형식적 대화 제의가 아닌 실질적 대화를 시도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이를테면 아웅산 수치의 외국기업들에 대한 ‘투자 유예 요청’은 대화노선과 상충하는 대결노선이었다. 다른 하나는 미국을 비롯한 서방국가들보다 오히려 미얀마의 변화를 유도해낼 수 있는 지렛대를 더 많이 갖게 된 중국, 아세안 회원국들에 좀더 진지하게 다가갈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민주주의란 이름으로 포장된 서방 강대국들의 일방주의와, 불간섭주의란 이름으로 포장된 식민주의 경험국들의 국가주의를 넘어설 수 있는 새로운 인권 패러다임을 아웅산 수치에게 기대해본다.


박은홍 성공회대 사회과학부 교수

자료제공: 한겨레 2010.1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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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기념재단은 2000년에 광주인권상 시상을 시작으로 본격적인 국제연대를 추진한지 10년 만에 국내에서 가장 포괄적인 국제연대 프로그램을 갖춘 단체가 되었다. 해마다 아시아 인권운동단체의 대표에게 상금과 함께 수여하는 광주인권상 뿐만 아니라, 아시아 인권단체들에게 운영자금을 지원하고, 국제인턴활동가를 장기간 받아들이고 또한 보내는가 하면, 아시아 활동가들을 초청하여 인권문제에 관한 단기연수의 기회를 제공하고 있고, 5.18 피해자가족들을 모시고 아시아 인권단체들을 방문하고, 아시아와 국내의 인권운동가들과 학자들이 함께 만들어가는 대규모 토론회인 광주아시아포럼을 5월에 개최하는 등 프로그램의 다양성과 규모의 측면에서 단연 국내 최고의 위상을 갖추게 되었다. 물론 그 적실성에 대해서는 의문이 제기될 수 있다. 필자는 그간의 국제연대가 양적인 성장과 실험의 과정이었고 이제 그렇게 10년이 흘렀으니 그 적실성을 따질 때가 되었다고 본다.
 
 
5.18의 국제적 의미는 무엇인가?

재단의 국제연대활동은 최근 한국 시민사회운동단체들이 그러하듯이 아시아연대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덕분에 상당수 아시아인권운동가들에게 5.18이란 시간과 광주라는 공간이 친숙해 질 수 있었다. 그렇다면 이들이 공감하는 5.18과 광주는 무엇인가? 그것은 국가폭력에 맞선 광주시민들의 용감한 저항과 시민정신, 그리고 아주 특별한 것으로 그 역사의식이다. 국가폭력의 잔혹성은 아시아의 도처에 서려있다. 폭력에 맞서는 결사항전도 각지에서 전개된 바 있다. 그리고 적지 않은 곳에서 그러한 용감한 저항은 민주화로 귀결되었다. 그러나 국가폭력을 과거에 묻어두지 않고 진상을 조사하고 가해자들의 책임을 묻고 피해자들을 보상하고 나아가 기념하고 교육하는 ‘기억의 정치’를 지속시켜온 경우는 드물다.

광주를 찾은 아시아의 활동가들은 아르헨티나나 남아공까지 멀리가지 않아도 가까운 한국에서 5.18기념재단 사업과 같은 선례를 발견할 수 있다는 사실에 놀라움과 기쁨을 숨기지 않는다. 그리고 국가폭력과 반폭력 항쟁의 역사를 공유하고 있으면서도 광주처럼 진실을 찾고 정의를 구현하고 그것을 기억하고 교육할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하지 못했다는 사실에 안타까움을 표하곤 했다. 바로 그것이 5.18이라는 시간과 광주라는 공간이 이웃나라에서 인권과 민주주의를 위해 분투하는 활동가들에게 매력적인 이유이다.

몇 년 전 5월에 광주를 찾을 때 톨게이트에 “민주주의와 인권의 도시, 광주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는 글귀를 본 적이 있다. ‘민주주의’와 ‘인권’이란 용어가 5.18정신과 배치되는 것은 아니지만 왠지 맥이 빠진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민주주의와 인권이라는 일반개념으로 넓혀가면서 5.18의 선명하고 구체적인 내포가 흐려져서는 안 될 것이다. ‘5.18 다운 것’은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국가폭력에 대한 항쟁, 폭력피해자들에 대한 연대, 그리고 (인도네시아 인권운동단체들의 구호로 표현하자면) “망각에 대한 저항”이라고 필자는 생각한다. 국제연대도 5.18의 이러한 핵심을 잃지 않고 오히려 그 특수성이 더욱 빛을 발하는 방향의 연대로 추진되어야 할 것이다. 아시아의 인권운동가들이 한국 사회운동에 바라는 바는 각양각색이고 종종 추상적이기도 하다. 그렇지만 5.18과 관련된 희망사항은 하나의 구체적인 요구로 집약된다. 진상규명, 책임자처벌, 피해자보상, 기념사업으로 이어지는 국가폭력에 대한 진실과 정의의 추구 바로 그것이다.

따라서 필자는 5.18기념재단의 국제연대는 아시아 각지의 역사 속에 가해진 국가폭력의 진상을 조사하고, 반폭력 시민저항행동의 역사를 발굴하며, 책임자처벌과 기념사업 추진의 방안을 공동 모색하는 연대활동을 핵심으로 삼자고 제안한다. 그것은 5.18의 근본성격에 기반을 두는 활동이어서 뿌리가 튼실한 동시에 아시아의 가장 치명적인 문제들에 도전하는 옹골찬 기획이기도 하다. 아시아의 역사는 국가폭력에 의한 ‘학살의 역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묻어두고 앞으로 나아갈 것만을 재촉하는 ‘불처벌의 역사’를 노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치부를 끈질기게 들추고 따지는 전위로서 5.18기념재단이 우뚝 서기를 바라며 그것이 아시아의 민주주의와 인권 신장에 광주가 기여할 수 있는 길이라고 믿는다.

국제연대를 통하여 우리는 무엇을 얻을 것인가?

오늘날 우리는 복잡한 이웃효과 속에서 살고 있다. 캄보디아의 국가폭력은 광주에 대한 국가폭력을 자극했을 것이고 필리핀의 민주화는 한국의 민주화가 임박했다는 희망을 안겨주었다. 따라서 우리는 우리의 민주주의를 지키고 발전시키기 위해 이웃한 아시아의 민주옹호세력들과 연대해야 한다. 그런데 민주주의를 위한 국제연대를 기획하고 추진할 때 우리는 자칫 자민족중심주의에 빠질 우려가 있고 결과적으로 비현실적이고 비효과적인 국제연대활동을 낳을 수 있다.

한국의 민주화는 한국의 특수한 맥락 속에서 이루어졌듯이 타국의 민주화는 그 나름의 맥락 속에서 추진되고 있다. 그런데 한국의 활동가들은 일반적으로 이웃에 대한 지식이 부족하다. 지식이 부족하면 독특한 맥락을 이해하지 못하고 그리되면 적절한 연대의 매개를 찾을 수 없게 된다. 자민족중심주의는 역사적 단계에 맞지 않는 제안으로 연결될 수 있다. 민주화에 막 돌입한 나라에서 과제로 떠오르는 것은 어떻게 정당을 결성하고 선거를 치르고 의회를 구성하며 그 의회의 견제를 받는 새로운 민주국가를 여하히 건설할 것인가 인데, 그런 나라의 활동가들에게 의정감시를 어떻게 함께 할 것인가를 논제로 꺼내면 황당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특히 한국 활동가들은 근원적 갈등에 대한 감각이 결여되어 있다. 아시아의 많은 나라들이 종교간, 종족간 갈등으로 수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곤 하는 상황에 처해있지만 우리는 이에 대한 첨예한 인식을 결여하고 있다. 우리가 경험하지 않은 상황이기 때문이다.

이런 자민족중심주의에 빠지지 않는 국제연대를 모색할 방법은 무엇인가? 그 출발은 진지한 경청과 세련된 대화이다. 아시아로부터 인턴들이 파견되고 단기연수생이 방문하고 발표자들이 온다. 그들에게 듣고 배워야 한다. 우리가 방문했을 때도 마찬가지이다. 그리고 우리의 경험을 일반화하는 방식으로 함부로 단순화해서는 안 된다. 그러한 일반화는 과거 서양의 근대화 이론가들이나 작금의 신자유주의자들이 취하는 위험한 태도이다. ‘우리나라의 60-70년대랑 비슷하다’는 식의 생각과 발언도 금해야 한다. 그들은 우리의 길을 그대로 따를 것이고 우리는 그들의 미래에 관한 답을 갖고 있다는 착오적이고 오만한 태도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우리는 세련된 대화를 해야 한다. 세련된 대화란 겸손하고 느긋하게 예의를 지켜가며 이야기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함으로써 우리는 곤경에 처한 지역에 대하여 배우고  열심히 길을 찾는 친구들을 얻고 국경을 초월하여 함께 맞서야 하는 과제를 간파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적지 않은 비용을 들여 국제연대활동을 추진하는데 배움이 없다면 효과도 적고 아깝다는 생각도 들게 될 것이다.

5.18을 근본정신으로 삼는 국제연대가 자선사업처럼 간주되어서는 안 된다. 아시아 각국의 인권운동은 대체로 우리보다 국제연대의 역사가 길고 국제화도 앞서 있다. 그래서 세계 각지로부터 지원의 손길이 닿고 있다. 우리도 그들처럼 원조를 제공하는 것으로 족한가? 그러기에는 우리의 지원은 규모가 조촐하고 반면에 우리의 열망은 더 깊다. 그러므로 우리는 약간의 금품으로 큰 시혜를 준 것처럼 행동하거나 할 바를 다 한 것처럼 자족해서도 안 된다. 우리는 국가폭력의 피해와 그에 맞선 줄기찬 저항의 경험을 그들과 공유하고 있다는 점을 발견해야 한다. 그것이 우리의 힘이고, 그것이 우리가 그들과 연대하는 이유라는 점을 인지해야 한다. 폭력피해자들, 그 가족들, 그들을 옹호하며 진실과 평화를 추구하는 아시아의 활동가들과 진정한 친구로 살아가는 것, 그것이 우리가 국제연대로부터 얻고자 하는 보상이어야 한다.
 

전제성 (전북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참여연대 국제연대위원회 실행위원)

*이 글은 5.18재단에서 발행하는 잡지인 <주먹밥> 29호(2010년 가을호)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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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여연대는 5/19~5/20 동안 광주 518기념재단이 주관하는 아시아 포럼에서 국제워크숍 <아시아민주주의: 공고화인가 혹은 위기인가>를 100명의 국내외 활동가들을 모아 진행했습니다. 이번 후기는 5월 20일 있었던 워크숍의 내용을 정리한 것입니다.

[광주아시아포럼 주요 내용 요약]


아시아민주주의: 공고화인가 혹은 위기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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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션2의 발제자인 Ms.Joy Chavez, Mr.Henri Tiphagne, Mr.Sinapan Samydorai(왼쪽부터)


세션 2 지역과 국제 차원에서의 민주적 통제를 위한 아시아 시민사회의 활동
사회: Mr. Adilur Rahman Khan, Secretary, Odhikar 창립자

[발제]
아세안과 시민사회의 대응) 아세안과 인권 ASEAN and Human Rights
Mr. Sinapan Samydorai, SAPA WG on ASEAN
동남아시아의 인권문제와 이주노동자의 문제를 중심으로 살펴보았다. 아세안헌장으로 인권표준을 설정하고 아세안 정부간 인권위원회라는 인권기구를 통해 인권증진에 초점을 맞추어 활동하고 있음을 보여주었다.

남아시아 지역협력연합과 개발협력
Mr. Henri Tiphagne, Executive Director, People’s Watch 상임이사
네팔,방글라데시,인도네시아,파키스탄,스리랑카와 같은 국가들은 많은 부분에 있어 지역적 협력(regional cooperation)을 요구하고 있다. 특히 인도네사아로부터 독립한 동티모르에서는 개발과 민주화를 위해 지역 시민사회 수준에서 정치적 영향력을 미쳤었다.

지구적 경제위기가 아시아의 민주주의에 미친 영향
Ms. Joy Chavez, Senior Research Associate, Focus on the Global South, 조정관
97년 경제위기가 아시아지역에 있은 이후 국제기구를 통해 경제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고 있다. 그러나 민주주의의 실현은 국가적 차원에서 접근해야 하며 한 기구가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보지 않는다.
 
[토론]
• 지역기구에서의 시민사회의 역할
Mr. Yap Swee Seng, FORUM-ASIA 사무처장
남아시아에서는 시민사회 연대의 특별한 경험을 보여주고 있다. 특히 인도네시아로부터 독립한 동티모르의 경우, 국가의 영역을 넘어 전 시민사회 차원에서 도움을 주었다. 이러한 경험이 지역적 차원에서 스필오버(spill-over) 효과로 번저 나가길 기대한다. 광주와 타이완의 민주화 경험도 마찬가지로 번저나갈 수 있을 것이다.

• 글로벌 시대의 시민 사회의 도전
Mr. Kinhide Mushakoji, ARENA 멤버
민주주의를 이야기 할 때, 한 국가의 국민이나 시민들을 중심으로 한 국가적 제도주의를 넘어서는 글로벌 시대의 시민을 대상으로 한 '신제도주의'적인 접근이 필요하다. 이는 지구화된 시장경제와 최근의 지구적인 경제위기, 이민자들의 이동과 착취받는 이민자들을 생각할 때 더욱 그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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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션3 행정부 감시, 사법부 감시, 입법부 감시 발제 모습(왼쪽부터)


세션 3. 국내에서의 민주주의 신장을 위한 아시아 시민 사회의 노력 – 분과 토론

[행정부 감시]
국가 수준에서 민주주의를 신장시키는 아시아 시민사회의 경험: 방글라데시 사례 연구
Mr. Adilur Rahman Khan, Secretary, Odhikar
방글라데시는 1991년 이후로 민주적인 정부 형태와 문화를 유지하는데 거듭 실패해왔다. 그러나 식민해방 이후 방글라데시 국민들이 벌여온 투쟁을 감안할 때 정치는 이들 국민의식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 현재 행정부가 사법부에 가하는 정치 이용과 언론기관 장악은 민주주의를 신장시키기 위해 방글라데시가 극복해야 할 과제이다.

민주주의를 의미있게 하기: 행정부 통제-인도네시아에서 얻는 교훈
Mr. Danang Widoyoko, Coordinator, Indonesian Corruption Watch
인도네시아는 광범위한 부패가 큰 문제이다. 선거자금, 정부예산과 입찰, 카르텔화 된 정치구조등은 부패의 뿌리이자 원인이다. 특히 인도네시아 정당정치는 당원헌금과 같은 자금자족의 전통을 세우는데 실패했다. 이에 대해 시민사회는 부패.사기 사건에 대한 탐사보고와 공공서비스 분야에 대한 감시를 해왔다.


[사법부 감시]
참여연대 사법감시센터 '국민을 위한 사법개혁'이라는 노정
한상희교수, 참여연대 사법감시센터, 건국대 법대 
1994년 설립된 참여연대 사법감시센터는 '국민을 위한 사법개혁'이라는 방향을 설정하고 일상적인 권력감시활동으로서 모니터링을 하고, 사법제도개혁 논의기구에 참여하였다. 또한 검찰개혁운동과 부패 및 권력남용 법조인에 대한 고발운동을 진행해 왔다.


[입법부 감시]
참여연대 의정감시운동 소개
이지현 팀장, 참여연대 의정감시센터
참여연대 의정감시센터는 국회운영 및 의원감시활동, 국회의원 총선거에서의 낙천낙선운동, 그리고 정치개혁입법을 위한 운동으로 정치자금법.국회법.공직선거법.정당법 등 정치제도 개혁운동, 선거 시기 유권자 운동을 진행해 왔다. 정치개혁을 위해 정치인들이 자신의 편의를 위해 만들어둔 낡은 정치제도를 개혁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였다.

증거에 기초한 사회적 감사(監査)의 강화
Charas Suwanwela 교수, 태국 출라롱콘 대학
최근 태국에서는 공공정책과 부패, 권력남용을 감시하는 사회단체와 시민단체가 늘어가고 있다. 특히 부패에 대한 사회적 감사가 성공적이었던 4가지 사례는 <모기박멸 약제 건, 끌롱 단 하수처리장 건, 의약품 및 의료장비 구매 건, 도로교통 뇌물 건>등이 있다. 앞으로 사회적 감사의 강화를 위해서 정치중립성을 지향하고, 자료공개에 대한 법적 보호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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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션 4에서의 분과보고 발표



세션 4 국내에서의 민주주의 신장을 위한 아시아 시민 사회의 노력
사회: 남부원,  광주 YMCA 사무총장

[각 분과보고]
최경희, 한국 동남아연구소 연구원
한 국가가 민주화를 이루기 위해서는 그 사회 내에서 민주주의를 지지하는 세력이 얼마나 존재하는가가 중요한 문제이다. 민주주의는 다층위로 진행되는 것이므로, 동남아 상층부는 얼마나 민주주의를 지지하고 있는가 하는 것이 중요한 부분이며 동시에 동남아는 대중적 민주주의를 집행하는데 취약하다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

Loh Kok Wah Francis, ARENA
아시아 민주주의에 있어서 시민중심의 정치, 지속가능한 민주주의의 발전, 헌법은 중요한 개념이다. 또한 정부에 대해 투명성, 책임성을 물을 수 있는 시민의 행동이 필요하며, 다면적 컨트롤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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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션5에서의 공동사회를 맡은 Mr. Yap Swee Seng과 이태호협동사무처장




세션 5 전략 및 향후 계획 논의

Mr. Yap Swee Seng, FORUM-ASIA
우리는 어떻게 아시아 지역의 민주주의를 위해 서로에게 지지자의 역할을 할 수 있는가? 아시아를 중심으로 한 네트워크를 형성하고 시민사회의 발판을 통해 민주주의의 공고화를 위해 협력해야 한다. 또한 동시에 지역사회 중심으로 움직여야 한다.

이태호,  참여연대 협동사무처장
때론 안보와 민주주의가 충돌하고, 삼권에 대해서는 책임성을 묻기 어려운 현실이다. 우리는 민주주의의 후퇴를 막고, 부패와 투명성 문제를 다룰 수 있는 제도와 의사소통이 필요하다.외부에서 도입된 제도가 우리의 공동체에 유효한 것인가를 물어야 한다. 제도들이 연관성을 가지고 조화롭게 발전하도록 하기 위한 고민이 필요하다.

 

Posted by 영기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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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마(미얀마) 속담에 "방금 판 우물에서는 깨끗한 물을 기대할 수 없다"는 표현이 있다. 첫 술에 배가 부를 수 없기 때문에 모든 일은 정해진 순서와 원리원칙이 따른다는 교훈이다. 버마 군부는 작년 국군의 날(3.27)을 맞아 이 속담을 언급하며 군부가 지향하는 "규율민주주의"도 정해진 중간단계가 성숙될 때 다음 단계로 나아갈 수 있다고 국민에게 훈시했다. 우물의 '수질'이 마실 수 있을 정도로 정화되었다고 판단했는지 모르겠지만 군정 최고지도자는 금년 독립기념일(1.4)을 기해 금년 내 총선을 실시할 것이라고 천명했고, 마침내 지난 8일부터 5일에 걸쳐 선거와 관련된 5개의 법령을 국영언론을 통해 공표했다. 연방선거위원회법(Union Election Commission Law), 정당등록법(Political Parties Registration Law), 상원선거법(Amyotha Hluttaw Election Law), 하원선거법(Pyithu Hluttaw Election Law), 지방의회선거법(Region Hluttaw or State Hluttaw Election Law) 등이 그것인데, 이로서 구두로만 서약한 총선실시는 구체화의 수순을 밟는 첫 단계에 진입했다.

4월부터 군부는 군 수장의 처조카인 뮌스웨(Myint Swe) 제 5특별작전국장을 수장으로 하는 과도정부(caretaker)를 구성하여 본격적인 선거체제에 돌입할 것이라는 소문도 나돌기 시작했다. 출마지역까지 확정 받은 중앙부처 고위 관료는 해당직위 만료일을 6월로 통보받았고, 아웅산수찌(Aung San Suu Kyi)의 가택연금 해제 예상일이 11월이라는 정부 인사의 언급을 배경으로 했을 때 총선은 9월 말에서 10월경에 치러질 가능성이 높다. 숫자 11을 맹신하는 군정 지도자가 어떻게 점성술사의 점괘를 받드느냐에 따라 선거일은 결정될 것이다.

국내외 정당, 민주화운동집단과 이해관계를 가진 국제사회는 곧 선거법에 대한 평가와 비판이 쏟아냈다. 그 중 가장 이목을 끄는 대목은 아웅산수찌의 총선 입후보 여부, 선거위원회 구성의 적절성 등 주로 참여와 경쟁에 바탕을 둔 민주성의 원칙으로 예상을 빗나가지 않았다. 복역 중인 자는 상하원 선거법 각 제 4장 7조 2항, 제 5장 10조 1항에 따라 총선에 입후보를 할 수 없고, 선거권도 없으며, 정당등록법 제 2장 10조 5항에 따라 정당원으로도 등록될 수 없다. 1989년 공표된 선거법과 달리 금번 선거법에서는 외국인에게만 국한되었던 입후보 및 선거권 제한기준이 직계 자손까지 확대되어 군부의 외국인혐오증(xenophobia)은 더욱 확대되었다. 독소조항은 외국인과 결혼한 버마 민주화의 상징인 아웅산수찌를 겨냥한 것이 틀림없지만 약 2,200명에 달하는 정치범도 총선 입후보에서 배제될 전망이어서 반군부세력의 공백이 한 층 더 커질 것으로 보인다. 또한 이번 총선을 통해 1990년 총선 결과는 유효하지 않을 전망이기 때문에 국민민주주의연합(NLD)이 국제사회에서 누렸던 정통성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질 것이다. 전 대법원 부원장이자 군법무관을 지낸 우 떼잉쏘(U Thein Soe)를 위원장으로 하는 17인의 선거위원회는 퇴역 장교, 재판관, 교수, 대사 등 친정부 인사로만 구성되어 선거관리의 중립은 훼손될 가능성이 높다.

현재 NLD는 선거에 참가하기 위해 정당등록을 할 것인지를 논의 중에 있는데, 3월 27일 공식 입장을 밝힐 것으로 알려졌다. NLD도 내부적으로 아웅산수찌 파벌과 띤우(Tin U)를 중심으로 하는 퇴역군인 파벌로 양분되어 있는데, 전자는 총선 참여를 적극적으로 반대하고 있다. 오는 5월 7일이 총선을 위한 정당등록 만료일인데, NLD가 정당등록을 하더라도 군부의 정치탄압은 그 수위가 높아질 것으로 보인다. NLD의 내부결정은 존중되어야 마땅하지만 과거처럼 강경노선만을 고집할 경우 정치권에서 완전히 배제될 수도 있을 것이다. 한편, 의회민주주의시기(1948-1958, 1960-1962) 총리와 부총리를 역임했던 우 누(U Nu)와 우 쪼응에잉(U Kyaw Nyein)의 여식(女息)들이 창당한 민주당(Democratic Party)의 행보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태국 내 망명정치가들의 지지를 받고 있는 민주당은 군부가 조직한 정당의 정권창출을 기정사실로 수용하지만 원내에 진입한 후 협상을 통해 연정을 수립할 것이라는 계획을 밝혔다. 군부도 USDA를 단일정당으로 창당하지 않고, 공무원을 중심으로 한 전문가 집단, 기업인, 변호사, 의사 등 신흥엘리트 집단, 소장파 군 인사로 구성된 군부 집단 등으로 세분화하여 총선 이후 합당이나 연정의 단계를 거칠 것으로 보인다. 단일정당으로 총선에 참가하여 대패한 1990년 총선의 교훈이자 다당제에 입각하여 공정한 선거가 치러졌다는 평가를 위한 전략적 획책이기도 하다.

정치개혁이라는 우물을 파서 민주주의라는 정수(淨水)를 국민에게 공급하려한다면 양질의 식수를 제공할 입지를 선정하고 토양을 훼손시키지 않는 도구를 사용해야 할 것이다. 만약 용수가 넉넉하지 않은 땅이면 다른 장소를 물색해야 할 것이며, 식수가 나오지 않으면 그 이유를 역으로 조사하여 식수가 솟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러나 지금의 군부가 우물을 파기 위해 선정한 터와 도구는 이미 오염되었고, 거기서 샘솟는 우물은 군부의 건강을 책임지지 못할 것이다. 몇 번에 걸친 정화를 하더라도 우물의 질은 더 나아지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국민은 자신의 건강을 해치울 샘물을 강압적으로라도 마셔야하는가? 아니면 우물이 정화될 도구나 기술, 새로운 터를 선정할 수 있도록 제안하여야 할 것인가? 썩은 물을 파는 현실에 수수방관하는 것이 더 서글프지 않은가.

장준영(부산외대 미얀마어과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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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표현의 자유에 관한 유엔특별보고관 초청 국제심포지엄
“사이버상 표현의 자유: 동아시아지역의 실태와 과제” 참가 후기

70년대 말, 프랑스의 학자 로베르 포리송은 나치의 유대인 학살과 가스실의 존재를 부정하는 발언을 했다. 이로 인해 교수직을 박탈당하고 법적인 처벌까지 받게 된 그는 표현의 자유에 대한 침해라며 여러 지식인들로부터 탄원서를 받았다. 이때, 노암 촘스키가 유죄를 내린 프랑스 법원을 비판하며 석방을 탄원했는데, 이를 두고 프랑스 언론은 촘스키를 나치주의자로 몰아붙이기 바빴다. 사실 촘스키는 홀로코스트에 대해 포리송과는 정반대의 견해를 가지고 있었지만 누구든지 말할 자유는 있다는 것이 그의 신념이었기 때문에 비난을 무릅쓰고 탄원을 했던 것이다.

재갈 물린 표현의 자유, 위기의 민주주의

유엔 ‘시민적·정치적 자유에 관한 국제협약’ 제20조에 따르면 홀로코스트를 부정하는 로베르 포리송의 발언은 폭력을 선동하는 민족적 증오를 부추겼으므로 형사처벌의 여지가 있다. 하지만 촘스키는 이마저도 표현의 자유에 대한 중대한 침해라 생각했다. 사회적으로 크게 비난 받을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생각을 글이나 말로 할 수 없다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도 비판할 수도 없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표현의 자유에 관한 유엔 특별보고관(이하 특별보고관)’ 프랭크 라뤼에 의하면 표현의 자유는 민주주의의 핵심이다. 표현의 자유가 사회전반에 대한 비판과 평가를 보장하여 민주주의를 제대로 작동하게끔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표현의 자유를 온전하게 보장하는 사회는 민주주의를 제대로 실현한 사회라 할 수 있다.

라뤼 특별보고관은 기조연설에서 국가나 왕실, 정부기관, 공직자 등이 명예훼손의 대상이 될 수 없다고 역설했다. “국가는 국민의 것이기에 지도자와 공직자는 그저 국민에 대한 의무를 다할 뿐이다. 이들은 훼손될 명예가 없다. 이 때문에 항상 주권자의 비판에 열려있어야 한다. 특히, 형사적인 처벌을 가하는 것은 권위주의적 발상이다.” 라뤼 특별보고관은 유엔 특별보고가 아니라 학술적인 목적으로 한국을 방문한 것이기 때문에 특정 국가에 대한 직접적인 언급은 할 수 없었다. 하지만 그가 지적하는 표현의 자유에 관한 원칙과 그것의 침해사례가 신기하게도 지금 한국 상황에 들어맞는 경우가 많았다. “나라마다 상황이 모두 다를 것이다. 하지만 여러 나라에서 표현의 자유를 침해당하고 있는 이유는 권위주의 정권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이 시민의 비판이고 이에 가장 먼저 타격을 가하기 때문이다.”

그의 기조연설을 들으며 당장에 생각난 사람이 박원순 변호사다. 박 변호사는 ‘대한민국’이라는 낯선 사람으로부터 명예훼손 소송을 당했다. 정보기관의 민간인 사찰의혹을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제기했다는 것이 그의 혐의이다. 라뤼 특별보고관의 말을 듣고 나니, 한국사회는 지금 제대로 된 민주주의를 실현하고 있는지 의문이다.

미네르바, 한국에만 있는게 아냐

타이/말레이시아/싱가포르/한국, 이렇게 네 나라의 독립 언론인 또는 인권활동가가 각 나라의 상황에 대한 발제를 했다. 이 나라들의 상황은 한국과 크게 다르지 않다. 두 가지 큰 공통점이 있다. 하나는 인터넷상의 의사소통을 규제하는 법이 별도로 있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한국을 제외하고는 언론이 국가나 여당의 소유 또는 영향력아래 있다는 것이다. 언론이 사회적 역할을 다하지 못해 시민들이 인터넷을 통해 정부를 비판하고 정부는 새로운 법을 만들어 이를 규제하는 모양새를 띠고 있었다.

타이에도 ‘미네르바’가 있었다. 정유공장의 엔지니어인 수위차 타콜 씨는 인터넷 게시판에 왕실 비판하는 게시물을 올렸다는 이유로 구속 기소되었다. 이후 법원에서 금고 10년을 선고 받고 복역 중이라 한다. 말레이시아의 인터넷 독립 언론 말레이시아키니(Malaysiakini)는 특정 종교에 대한 증오를 표출하는 시위대를 찍은 동영상을 게시했다가 삭제권고를 받았다. 이에 불응하자 압수수색을 당하고 기소 당할 위기에 놓여 있다. 싱가포르의 상황은 다소 충격적이다. 평소 도덕수준이 높은 부국이라 알고 있었기에 처음에는 다큐멘터리감독 마틴 씨가 알려준 상황을 이해하기 힘들었다. 그는 “어떤 부자라도 싱가포르에서 가질 수 없는 두 가지가 ‘껌과 언론사’.”라는 말을 남겼다. 이 때문에 싱가포르에는 비판이 실종된 상태라 한다. 싱가포르 정부는 ‘경제적으로 발달했기 때문에 시민의 권리는 어느 정도 제약할 수 있다’는 논리를 펴고 있다. 만약 한국이 경제적으로 더욱 성장하게 되면 이러한 주장에 매몰되지 않을까.

표현의 자유에 대한 국가의 통제와 검열 방식을 싱가포르의 발제자가 3단계로 명쾌하게 정리해 주었다. 1단계는 법을 입법·개정하는 것으로 우리 국회가 도입하려는 사이버 모욕죄가 그 예다. 2단계는 정부기관을 통한 행정심의다. 현재 방송통신심의위원회가 이러한 일을 하고 있다. 그리고 마지막 단계는 바로 자기검열이다. 앞선 단계의 시행으로 사회전반의 표현기능이 위축돼서 비판능력이 떨어지는 것을 의미한다. 검찰이 미네르바가 무죄임을 알면서도 긴급체포 후 기소한 것이 바로 이 때문이다. 네이버에 미네르바를 검색하면 연관검색어에 경제이야기, 구속, 본명, 박대성 등이 올라온다. 무죄로 석방됐지만 그는 이미 3개월의 옥고를 겪었고 세상에 그의 존재가 여과 없이 드러났으며, 풀려난 것보다는 구속된 것으로 더 각인돼서 누리꾼의 활동을 위축시키기 충분했다. 지금은 누리꾼뿐만 아니라 큰 언론사에서조차 위축된 분위기가 드러나고 있다. YTN 돌발영상PD가 중징계를 받고 물러나자 새롭게 교체된 제작진은 예전의 날카로운 시선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는 것이 단적인 예이다.

이와 같이 표현의 자유에 관한 문제에서 가장 심각한 부분이 바로 자기검열이다. 영향을 미친 범위가 어디까지인지 가늠할 수 없고, 시민이 스스로 표현하는 것을 포기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자기검열의 분위기가 만연한 상태에서는 어떠한 각성이나 저항도 기대할 수 없을 것이다.

우리가 표현의 자유를 지켜야 하는 이유를 라뤼 특별보고관의 말 속에서 찾아보자.

“인권은 그 중요성을 인식하고 함께 싸우는 과정에서 자라났습니다. 나라마다 문화적인 기반이 다르고 시민들이 싸워온 과정이 다르기에 시민들이 원하는 바도 다릅니다. 특별보고관으로서의 활동이 이들의 요구를 잘 충족시키지 못하고 있지만, 외부의 압력이라는 것은 어디까지나 한 나라 내부의 목소리와 연대할 때 비로소 그 힘을 발휘하는 것입니다.”

어떤 사회든 내부의 요구 없이 외부의 압력만으로 인권을 키워나가면 그것은 또 다른 방식으로 그 사회의 자유를 제약하는 것이다. 언제 어디서든 우리가 원하는 방식으로 항상 저항하고 있어야 비로소 우리가 원하는 만큼의 자유를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석민수/고려대학교 대학생, 참여연대 자원활동가

아시아포럼 "국경,아시아,시민사회" 종합토론 

아시아 포럼은 2008년부터 아시아인의 생존과 삶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초국가적 문제를 한국시민사회에 소개해 왔습니다. 이웃 아시아의 문제에 한국시민사회도 자유롭지 못한 만큼 아시아의 문제에 대한 이해를 높이고 지구촌 시민사회의 일원으로 실천의 방향을 모색해 보는 자리입니다. 이번 포럼은 그동안 진행했던 <아시아포럼>을 총정리하는 시간으로 마련했습니다.

종합토론 _ 아시아 국경지대에서 발생하는 문제와 한국시민사회의 연대
일정 _ 2009년 11월 19일(목), 오후 4시 30분
장소 _ 경희대학교 네오르네상스관 105호
문의 _ 차은하 참여연대 국제연대위원회 간사 silverway@pspd.org, 02-723-5051

 


 

Posted by 영기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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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 국제앰네스티 연례보고서(Amnesty International Report)는 157개국을 대상으로 2008년 1월부터 12월까지 1년 동안 전세계 인권상황을 조사한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대한민국 보고서 부분에는 미국산 쇠고기 수입에 반대하는 집회에 참여한 시위자를 진압경찰이 과도한 무력을 사용해 강제해산한 내용, 비정규 이주노동자들이 강제출국되고 체포 과정에서 비인도적이거나 굴욕적인 대우를 받은 사례를 다루었습니다. 또한 급속하게 악화되고 있는 집회참가자, 노동조합원 그리고 언론인의 표현의 자유와 집회, 결사의 자유에 대해서도 우려를 표했습니다. 마지막으로 보고서는 지난 3월 사형제도폐지특별법안이 폐기된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Posted by 영기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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