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인권의 날에 생각하는 달리트의 인권 
 
인권은 인간이기 때문에 누구나 갖게 되는 보편적이며 절대적으로 보호 받고 누릴 수 있는 권리다. 쉽게 말해, 사람다운 대접을 받을 권리다. 그런데 우리 주변에는 아직도 너무 많은 이웃들이 기본적인 사람대접을 못 받고 있다. 필자는 오늘(12월 10일) ‘세계인권의 날’을 맞아 민주주의 국가로 자주 거론되는 우리 이웃 국가, 곧 유엔 상임이사국이 될 인도의 많은 이들, 특히 흔히 불가촉 천민(접촉만 해도 오염이 된다고 믿어 이들과는 접촉도 하지 말라는 천민들)이라고 불리는 달리트들을 기억하고 싶다.
 
1950년에 제정된 인도의 헌법에 의하면, 다른 모든 인도인들과 마찬가지로 달리트들은 평등한 권리를 누리도록 법과 제도로 보호받고 있다. 1955년에는 불가촉 천민제 범죄법을 제정, 공포함으로써 달리트에 대한 불가촉 접촉의 여러 사회적, 문화적 행태의 차별행위를 범죄화했다. 또 1989년에는 이 달리트들에 대한 차별과 인권침해, 만행 등을 예방, 금지시키는 법안을 제정해 시행하고, 달리트들에 대한 차별적 특별 혜택(교육, 직업, 정치 대표권 등에 대한 특별 비례 대표권을 부여하는 정책) 등도 인도 정부는 부여하고 있다.
 
그러나 현실은 다르다. ‘세계 달리트 인권연대 네트워크’의 보고서를 보면, 매일 3명의 달리트들이 살해당하고 4채의 가옥이 불에 타고 최소한 3명의 달리트 여성들이 강간을 당한다. 또 인도만이 아니라 남아시아의 모든 나라들에서 비슷한 만행의 희생자가 되고 있는 달리트의 수가 2억 6천만 명이나 된다. 해당 국가들의 헌법과 여러 입법, 행정 조치에도 불구하고 또 많은 국제 인권 조약들의 비준을 통한 범 국제적 보호 의무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이 달리트들이 사람 대접을 받지 못하는 현실이다.

불가촉천민, 달리트의 현실
              
인도에서 가장 억압받는 사람들인 달리트들이 살고 있는 인도의 시골 마을의 현실이 우리에겐 낯설고 멀기만 느껴질 수 있다. 도시 문화에 너무나 익숙해져 버린 우리에게 토지 소유를 금지당해 역사적으로 농노로, 무지한 소작농, 농촌의 한 농업 노동자들로 일생을 마감하는 많은 달리트들의 이야기가 한 사극 이야기처럼 들릴지도 모른다. 그들의 열악한 경제적 위치와 대대로 물려받은 극심한 빈곤 때문에 생계의 기본적 필요(결혼 비용, 교육비, 병원비)를 해결하지 못해 빚을 얻고, 그 빛과 산더미처럼 불어난 이자 때문에 대대로, 2, 3세대가 노예 상태의  노동자인 사람들의 이야기가 무슨 영화같이 들릴 수도 있다.
 
남아시아의 현실 가운데에서 계급, 신분과 성별, 계층의 가장 아래쪽에 위치한 달리트 여성들에 대한 ‘사람’ 대접은 더 소설 같은 이야기로 들릴지도 모른다. 달리트이기 때문에, 빈곤의 가장 소외된 바닥 계층이기 때문에, 여성이기 때문에, 폭력과 성폭행, 비인간적 대우(나체 차림으로 마을을 돌게 해 그 사회에서 달리트 여성의 종속적 지위를 상기시키게 하는 처벌), 굴욕의 삶을 살아야만 하는 많은 달리트 여성들의 하루 하루의 삶이 2, 3중 차별의 희생자로, 또 자신들의 권리를 주장하는 달리트들에게 보복하는 전체 달리트 공동체의 가장 쉬운 희생양이 되고 있는 많은 남아시아 달리트 여성들의 현실은 우리에게 소설보다도 더 먼 이야기처럼 들린다.

심지어 범죄자를 신고하러 간 경찰서에서까지 모욕과 폭행, 강간 등의 성폭행을 당하는 달리트 여성들에 대한 인권 침해는 가장 많이, 자주 방치되어온 대표적 인권 침해 사례들이다. 많은 경우에, 사법부는 달리트 여성을 보호하는 법률을 집행하는데 실패했고, 2006년 인도 국가범죄국의 보고서에 따르면, 달리트 여성의 학대 사건에 대한 공식적인 유죄 판결율은 단지 5.3%였다. 그 뿐만이 아니다. 매년 수천 명의 달리트 여성들이 데바다시 (Devadasi) 또는 조기니(Jogini) 라는 제도의 명목으로 매춘을 강요당하고 있다. 이 제도는 소위 카스트제도의 신성한, 종교적인 실천이란 이름으로 어린 달리트 여학생들을 강제로 착출, 힌두 사원에 소속된 공공 매춘부로 전락시켜 젊은 달리트 여성들의 체계적인 성적 학대와 착취를 강요하고 있다. 이는 달리트 여성들의 속박에 종교적으로 신성시하도록 강요된 매춘부 제도를 통해 달리트 여성들과 매춘을 묶어 자신의 사회적 지위와 경제적 우위를 시행하고자 하는 지배적인 카스트 계급에 의해 오랫동안 유지되어 온 진압의 수단이기도 하다.
 
달리트인들의 저항을 막는 보복 만행

그런데 무엇보다 시급한 달리트들의 인권 과제는 그들에 대한 보복 만행으로부터 그들을 보호하는 것이다. 그들의 권리를 행사하거나 학대와 착취 행위에 대해 저항하려고 할 때, 그들은 현 인도 사회의 계층 구조를 유지하고자 하는 높은 계급의 주민(high Caste)에 의해 매우 잔인하고 때로는 집단적이며 아주 적대적인 저항에 직면하고 있다. 따라서, 인도 곳곳에서 그들의 억압에 저항하는 달리트들이 늘어나면서, 달리트들에 대한 만행과 인권 침해도 같이 늘어가고 있다.

높은 계급의 주민(high Caste)들은 토지 이용, 시장 및 고용에 대한 기회 제공, 심지어는 식수에 대한 통제와 압력 등으로 달리트들이 사람대접 받기를 주장하지 못 하도록, 아니, 아예 꿈도 꾸지 못하도록 철저하게 보복하고 있다. 모든 기회로부터 달리트들을 잘라 완전한 사회 보이콧을 하려 할 뿐 아니라 좀 더 나은 사람 대접을 요구하는 달리트들의 주장에 대해 살인, 갱 강간, 약탈과 방화로 대응하고 있다. 이러한 이유로 2008∼2009년 6개월 사이에 봄베이를 수도로 둔 마하라스트라 주에서만 많은 달리트 인권 운동가들이 죽어 가야만 했다.

택시 운전사로 넉넉지는 않지만 온 가족의 생계를 걱정없이 꾸리던 사헤브라오 존다일(Sahebrao Jondhale)씨는 달리트에게 어울리지 않는 택시 운전을 한다는 ‘죄목’으로 2008년 7월 16일에 자기 차안에서 억울하게 차와 함께 화재의 잿더미가 되어야 했고, 학력은 낮지만 뛰어난 달리트 공동체의 젊은 리더로 활발하게 활동한 결과 1995년 이후 고향 마을 인 잠케드(Jamkhed) 마을의 지역 자치회 회장으로 선출돼 활동하던 바반 미샬(Baban Mishal)씨는 그 지역 유지인 높은 신분의 카일라시 자다브(Kailash Jadhav)씨의 부정 부패사건을 폭로한 대가로 32살이 되던 2008년 7월 5일에 잔인한 방법으로 살해당했다. 카드키 갓 (Khadki Ghat) 마을에서 마을 이장으로 알하던 판두랑 와그마레(Pandurang Wagmare)씨가 그 군에서 일어나는 행정의 실태에 대해 높은 계급 사람들의 무능을 비판하다 그의 집과 다른 달리트들이 살고 있는 온 마을이 보복 방화의 희생이 되었는가 하면 자기들보다 높은 상류 계급의 젊은이들의 음란 발언에 응답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18살 된 소녀와 그의 언니는 2009년 1월 19일 동네 한 복판에서 구타와 성폭행을 당했다. 한 달리트 청소년은 그보다 상위 계급의 여학생을 사랑한다는 이유로 그 해 2월 그보다 높은 계급 마을 사람들에게 무자비하게 살해당했다. 이런 사례들은 수없이 많다.
 
헌법과 수많은 입법 조치가 달리트들의 권리를 보호하고 있다지만, 사실 이러한 법률의 구현에 대한 정치적 의지 부족과 나약한 법 집행 실천 노력 때문에 이러한 달리트들에 대한 보복적 인권 침해는 거의 처벌이 되지 않고 있다. 그런 추세를 보면 이런 보복적 만행은 더 끔찍한 형태로 더 무자비하게 앞으로도 계속 증가될 전망이다.

달리트 인권해방을 위한 우리의 연대 과제
 
이러한 현실에 대해 어떤 이들은 달리트들의 인권 침해를 가능하게 만든 인도의 카스트 제도가 인도 사회의 아주 오래된 문화적, 종교적 전통이며, 태어나면서부터 되물림하는 이 불평등으로부터 해방할 수 있는 기회 제공조차 허락하지 않는 제도 속에서, 그리고 그 해방을 위해 노력하는 마음의 자유조차 방지하도록 만든 인도의 힌두 종교 전통 때문에 당장은 실현가능하지 않는 인권 과제라고 일축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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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한국희망재단 제공

그렇게 우리 스스로 우리의 무관심과 무행동을 정당화 시키면서, 이 세상에서 가장 큰(?!) 민주국가인 인도가 유엔의 상임 이사국이 되는 것을 당연하다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왠지 인도는 가난한 개발 도상 국들의 이변을 대변해 줄, 그래서 그 국가들에서 살고 있는 가난한 많은 서민들에게 친근한 정부의 역할을 해 줄지도 모른다는 착각까지 하면서 말이다. 하지만 자기 나라에 살고 있는 5명 중의 한 명인 달리트의 사람으로의 기본권, 살 권리도 보장해주지 않는 정부가 과연 우리 인류의 평화와 정의, 민주주의를 수호할 자격이 있는가라고 묻고 싶다.
 
인도라는 대국이 가진 정치력, 잠재적 경제력, 시장의 가능성에 주눅들지 말고 우리 모두, 평등과 차별 금지의 보편적인 원칙에 따라 달리트들의 사람으로 살 권리 보호를 위한 기존 국제, 국내 모든 법적, 행정 조항의 이행을 보장하라고 목소리를 높일 때이다. 유엔 상임 이사국의 자격을 논하기 전에 1억 7천만 명(거기에 약 4천만 명으로 추산되는 기독교와 이슬람 종교로 전향한 달리트들까지 포함하면 약 2억 1천만 명)의 달리트들에 대한 조직적인 권리 침해와 범죄에 대한 근본적 해결 방안의 모색과 예방 및 정책 구현이 우선 되어야 한다. 그 정책 입안에는 역사적으로 체계적으로 부의 균등 분배에서 철저히 소외당하고 있는 달리트 공동체들의 개발 및 고용에 대한 정책과 그들에 대한 역사적인 불공평을 완화, 수정하도록 설계된 구체적 인권 보장 정책이 필요하다. 기존의 국제 인권 원칙과 의무를 기반으로 하되 인도 사회에 적합한 ‘사회문화적 토양과 역사적 경험’을 바탕으로 한 법과 제도, 그리고 그 사회 문화적 기초에 대한 인식을 기본으로 한 일반 및 특별 입법 보완 대책과 행정적 구현 및 정책 집행에 대한 구체적 실천대책이 중요하다.

한국 시민사회에서도 달리트 인권에 관심을 갖고 연대를 표하는 움직임들이 점차 늘고 있다. 지난 2010년 3월 제13회 지학순정의평화상 수상자로 자노다얌(Janodayam)이라는 인도 달리트인권운동 단체가 선정되었다. 인도 첸나이 지역 오물청소 달리트를 대변하며 달리트 공동체 인권과 개발을 위해 활동하고 있는 이 단체는 그간의 노력의 결과, 손으로 오물을 처리하는 것을 금지하는 법안을 통과시키는 데 핵심적 역할을 하며 달리트 아동교육에 힘을 쏟고 있다. 자노다얌의 사무총장인 예수마리안(Yesumarian)은 이날 상을 받으며 뜨거운 눈물을 흘렸다. 아마 그의 뇌리 속엔 그간 달리트 인권해방을 위해 힘 쏟았던 숱한 세월과 달리트공동체 사람들의 모습이 남아있었을 것이다. 그는 인도 사회조차 관심을 주지 않는 달리트 인권문제에 대해 한국인들의 따뜻한 관심과 격려에 감동했으며 감사하다는 말을 전했다. 이러한 국제적 연대와 지원 아래 자신과 같은 사람들이 더 힘을 얻고 인간으로서 누려야 할 기초적 권리를 다시 찾기 위해 살아갈 것이라고 미래를 얘기했다.

우리 모두 무관심한 이웃이 아니라, 또 세계 인권의 날 하루 동안 보여주는 반짝 관심이 아닌, 강하게 남아프리카 아파르트헤이트 인종차별 투쟁 때 그랬던 것처럼 인도의 카스트 계급 차별 글로벌 투쟁에 참여하기 위해 함께 국제 사회를 촉구하며 지속적인 연대를 결의할 때다.
 

곽은경(이크미카 팍스 로마나 사무총장, Pax Romana ICMICA/MIIC)

* 인도 달리트인들을 위한 작은 실천하기(인도 달리트 어린이들이 차별없이 공부할 수 있도록 힘을 보태주세요.)


 

Posted by 영기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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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27일 한국이주여성인권센터에서 (가)성·인종 차별 대책위원회 결성 기자회견이 열렸다. 미디어법이 직권상정되어 처리된 이후 정신없는 정국에서 인종차별 문제가 매우 생뚱맞아 보여 사회적으로 여론화 될 수 있을지 조금 걱정이 되던 차였다. 이러한 기우는 2시간동안 여러 기자 및 관계자들의 열띤 질의, 응답 속에 잊혀 갔다.

기자회견은 최근 인도인 보노짓 후세인 씨(성공회대 민주주의연구소 연구원·아시아대안교류회 ARENA 간사)와 한국 여성이 당한 인종 차별적 사건을 계기로 한국사회에서 빈번하게 발생하는 인종차별적 사례를 공론화하는 자리였다.

7월 10일 보노짓과 옛 동료인 한국여성은 버스 안에서 대화를 하고 있었다. 버스를 함께 타고 있던 한국 남성은 “더러워 너, 이 XXX야.”, “너 어디서 왔어, you Arab!” 하며 보노짓에게 심한 모욕을 줬다. 이를 저지하려던 한국 여성에게도  “새까만 OO와 사귀니 좋으냐” “조선O 맞느냐?”는 등의 인종차별적이고 모욕적인 말을 계속했다. 보노짓과 한국여성은 그를 경찰서에 신고를 했다. 그러나 그의 행패는 경찰서에 가서도 이어졌다. 이 사건을 맡았던 경찰도 이를 저지하거나 적극적인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현재 보노짓씨는 한국남자를 고소한 상태이며 국가인권위원회도 사건 조사를 요청하기 위해 진정절차를  밟고 있다.

보노짓씨는 자신의 사건을 한국 동료들과 이야기 하다보면 거의 대부분 동정적인 시각에서 운이 나빴던 사건으로 본다는 것이다. 이주민들에게 일상에서 은근하게 이루어지는 언어적, 신체적 인종차별을 보면 본인이 겪은 사건은 조금 심했을 뿐 특별한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앞으로 한국 사회에 이주민들의 규모가 커질 수밖에 없는 현실에서 사회적인 인종차별 구조는 이주민보다는 한국이 풀어야할 숙제라는 것이다.  

이날 기자회견에 참석한 콩고인 토나 이욤비씨(한국 난민 지위 획득)도 한국에서 체류하면서 가족이 겪는 인종적 차별 실태를 고발했다. 한국정부의 난민 지위를 획득했다는 것은 한국인과 거의 비슷한 수준의 사회적 권리를 인정받았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그는 본인 명의로 휴대폰을 구매할 수 없다. 한국 학교에 다니는 자식들은 아이들에게 “몽키(원숭이)”라며 왕따를 당하고 있다고 한다. 한국은 선진국 수준의 경제 규모에 비해 사회적 인식과 구조는 낮아 보인다는 것이다. 그는 한국이 난민협약을 통해 피부색과 국경에 상관없이 이주민을 동등한 시민으로 인정하겠다고 국제사회에 약속을 했다면 한국사회는 진정으로 인간에 대한 존중과 돌봄을 사회 구조적으로 갖추기 위해 노력해야 하다고 말했다.

이번 보노짓씨 사건을 통해 한국 내 인종차별 문제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형성되었다. 더 이상 국내 이주민들이 겪는 차별이 개별적이고 우발적인 사건이 아니라는 공동의 함의가 있었기 때문이다. 특히 인종차별문제는 한국 시민사회조차 적극적으로 제기한 적이 없다는 점에서 시민사회가 먼저 성찰하고 공동의 실천을 모색해야 할 때이다.

(가칭) 성·인종 차별 대책위 기자회견문
- 입장과 활동계획 -

1. 한국 사회의 성·인종차별

동남아시아 및 아프리카 출신 이주자들에 대한 인종차별적 행동 및 공격이 한국에서 상당히 많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대다수 이주자들은 취약한 한국 내 지위 때문에 이러한 인종차별의 문제를 일상적으로 받아들이거나 아니면 개인의 삶 속에서 작은 방식으로 저항할 수밖에 없습니다. 모든 이주자들 같은 경험을 하는 것은 아니며 출신국의 경제적 상황, 출신국에 대한 한국 사회의 편견, 피부색, 한국 사회에서 차지하는 지위와 직업에 따라 매우 다르게 나타나고 있습니다. 차별받는 이주자들의 수많은 이야기들은, 신분과 계급, 백인-서구 숭배 등 세계를 우열관계로 보는 다양한 차별의식이 인종주의와 결합될 때 얼마나 배타적이고 공격적으로 드러나는 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러한 인종주의적 공격은 한국에 유학 온 학생이나 연구자에게도 빈번히 일어나고 있는데, 최근에 부천의 한 버스에서 한 한국인이 인도인 보노짓 후세인과 같이 동행한 한국인 여성에게 인종차별적이고 성차별적인 욕설을 퍼부었던 사례에서도 드러납니다. 더욱 큰 문제는 경찰서에서 역시 이들이 성차별적이고 인종차별적인 대우를 받았다는 것입니다 (자세한 내용은 사실관계 진술자료 참조, 첨부).

이는 가장 반인권적이고 혐오스러운 차별이념의 하나인 인종주의가 한국 사회의 큰 문제로 자리 잡았고 그 피해의 정도와 심각성이 큰 반면, 이에 대한 각성이나 공론화, 경찰 등 인권관련 기관의 의식이나 대책이 매우 미흡하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또 이 사건에서처럼 인종주의는 성차별, 가부장적 가치와 결합해 더욱 공격적으로 나타나는데 이에 대한 관심과 대책 역시 심각하게 부족합니다. 더구나 최근 인권기준과 인권보호제도가 크게 후퇴하고 있는 상황에서 인종주의와 성차별이 결합된 차별과 공격의 피해가 더욱 우려됩니다.

이러한 공격은 소위 ‘백인’으로 간주되는 사람들과 소위 ‘백인’과 함께 있는 한국인들에게는 거의 일어나지 않는다는 면에서, 그리고 소위 ‘노동자’로 간주되는 사람들에게 더 공격적으로 나타난다는 면에서, 외국인혐오를 넘어서서 한국 사회의 근저에 자리잡고 있는 다양한 차별이 인종주의와 적극적으로 결합하는 양상을 보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더욱 심각한 문제라고 할 수 있습니다.
 
현재 한국 사회 내에서 다양한 차원에서 이주자에 대한 인종 차별이 광범위하게 이루어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에 관한 문제가 제대로 가시화, 공론화되지 못한 것에 대해 한국 시민사회는 반성적 성찰을 하고 경종을 울려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보노짓 후세인씨와 동행한 사람이 겪은 사건은 숨겨져 있는 커다란 빙산의 일각에 불과합니다. 쉽게 도움이나 관심을 촉구하지조차 못하는 사람들이 훨씬 많습니다. 때문에 이주자 사회와 제한된 사람들에게만 알려진 이러한 성·인종차별 사례와 상황을 체계적으로 조사하고 알릴 필요가 있으며, 아울러 조속히 피해자에 대한 지원과 정책적 대안을 포함하는 대책활동을 시작해야 합니다.

좀 뒤늦은 느낌이 있지만 이러한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한국에서 인종차별의 문제가 시민사회 내에서 중요한 의제로 설정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며 특히 한국 사회의 특성상 긴밀한 관련을 갖고 있는 성차별과 인종차별을 동시에 제기하는 공동 대책과 실천이 필요합니다.


2. (가칭) 성·인종차별 대책위원회의 결성과 활동
 
이러한 성차별적, 인종주의적 차별과 공격에 대응하기 위하여, 2009년 7월 27일 인권, 이주, 난민, 민주주의, 아시아연대와 관련하여 활동을 전개하는 시민·사회단체와 이번 사건 당사자가 소속된 성공회대학과 아레나(아시아대안교류회)는, 동의하는 단체와 개인들과 함께 성·인종차별에 대항하는 공동대책기구를 결성합니다.

(가칭) 성·인종차별 대책위원회는 다음과 같은 활동목표를 세우고 뜻을 같이 하는 단체와 개인들을 계속 초청하여 함께함으로서 목표 맞는 다양한 활동을 시작하고자 합니다.

대책위의 활동 목표와 계획

1. 가시화되지 않은 인종차별 피해자의 목소리와 피해를 가시화하고, 연대와 지원을 제공하며, 인종차별에 관한 정보와 자료를 축적하고 공유한다.

2. 토론회, 직접행동, 언론기고, 기자회견 및 다양한 활동을 인종차별 문제를 대중화하는 캠페인을 전개한다.

3. 인종주의와 계급차별 그리고 가부장제가 서로 연결되어 작동하고 있음을 부각시킨다.

4. 성·인종차별 상황을 종합 정리하여 유엔인권이사회 정례보고서 등 한국 인권상황 보고서에 포함시킨다.

5. 외국인과 이주자를 고용·초청·상대하는 모든 기관에 성·인종차별에 대한 대책과 절차를 세우고, 이를 기관 내에 교육 등을 통해 공론화, 제도화할 것을 요구한다.

6. 시민·사회단체, 학교, 교육기관 등의 프로그램에 인종차별문제가 중요하게 포함되도록 공론화하고 협의한다.

7. 인종차별 문제를 다른 형태의 차별과 연결시켜 대응함으로써 향후 차별 방지와 관련된 법제정의 기초가 되도록 한다.

대책위원회는 또한 보노짓 후세인과 동행한 한국인에 대한 가해사건에 대해서는, 가해자의 사법처리와 경찰 행위의 적절성에 관한 국가인권위원회 조사를 동시에 요구할 것이며, 조사에 따라 성·인종차별 해당 경찰관 징계 조치와 관할 경찰 책임자의 사과를 요구할 것입니다. 또 다른 유사한 침해사실을 조사할 것이며, 이를 위하여 알려진 사건을 언론 기고와 여러 방법으로 적극적으로 공론화할 것입니다.

○ 참가단체 및 개인 (가나다순) (* 개인 참가자는 계속 확인중입니다)
강서양천이주여성의집, 공익변호사그룹 공감, 국제민주연대, 다문화가족문화협회, 마하이주민지원단체협의회, 민주주의연구소, 보노짓 후세인(성공회대 연구원), 부산여성회, 서울외국인노동자센터, 성공회대학교, 수원여성의전화, 아레나(아시아대안교류회), 아시아의 친구들, 언니네트워크, 외국인이주·노동운동협의회, 이주노동자노동조합, 이주노동자의 방송(MWTV), 인천여성의전화, 조희연 (성공회대 통합대학원장), 조효제(성공회대학 사회학), KASAMMA KO(필리핀이주공동체), The HanFil Association(한-필 결혼이주자협회), 토나 이욤비(콩고, 난민), 한국이주여성인권센터 (대구이주여성인권센터, 부산이주여성인권센터, 전남이주여성인권센터, 전북이주여성인권센터, 충북이주여성인권센터)


Posted by 영기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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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에서의 인종주의와 헤게모니

6월 24일 아시아대안교류회(ARENA), 민주화운동 기념사업회등이 주최한 국제워크샵 <아시아에서 인종과 헤게모니의 연계>가 국가인권위원회에서 열렸습니다. 식민지시대를 거치면서 인종이라는 개념이 헤게모니로서 아시아와 서구사회에 어떻게 작용하고 있는지, 한 국가 내에서도 어떤 비극을 만들었는지 접해봅니다. 국제연대위원회 인턴의 후기를 소개합니다. <편집자 주)

해게모니로서 작용하는 인종주의

첫 번째 세션은 지난 1차 워크숍 내용에 대한 간략한 설명으로 시작되었다. 인종의 문제를 헤게모니(위계적, 패권적 권력)와 연관짓는 이야기였다. 권력관계에서의 인종문제, 비서구 사회인 아시아에서 인종문제를 적용할 수 있는지 그리고 이 문제를 어떻게 풀어나갈 것인지에 대한 문제 제기가 이어졌다.

‘인종’이란 식민지 시대 서구에서 고안해낸 개념이다. 식민지시대는 끝났어도 비(非)노동 계급으로 대변되는 백인이 존재한다. 이들의 우월적 사고와 육체노동 계급으로 인식되는 유색인종에 대한 멸시의 시선은 식민지시대의 유산이다. 이러한 대비는 우리의 머릿속에 각인되어 있다. 인종이 헤게모니, 즉 권력관계 하에 놓여 있다는 말은 이러한 역사적 배경을 가지고 있다. 서구 열강은 비서구인들을 차별하기 위해 인종이라는 개념을 도입했다. 인종이 헤게모니의 지배하에 있다는 현대적 근거는 인종이 외부인들을 이해하는 기제로서 작동하는데 있다. 예를 들면 저개발 국가를 이해할 때 우리는 그 나라의 낮은 경제발전 수준을 두고 ‘흑인들은 원래 게으르기 때문’이라고 섣불리 판단한다는 것이다. 이는 서구적인 관점이다.
 
다음으로 말레이시아 인권운동가 Francis Loh의 기조연설이 있었다. Loh는 글로벌 사회에서 다민족(Multi-Ethnic)국가는 점점 보편적인 현상이 되어가는 추세라고 했다. 그러한 만큼 인종문제를 직시하고 고정관념을 타파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식민지 시대에는 인종주의적 이데올로기를 이용해서 다수종족을 ‘분할지배’했다. 분할지배는 소수 열강이 다수 종족을 지배하기 위해 만든 일종의 정당화 전략이다. 소수 열강은 인종에 따라 다수 종족을 나누기만 한 것이 아니라 그에 따른 고정관념을 무의식적으로 주입시켰다. Loh는 자국에서 활동할 당시 ‘말레이시아인은 게으르다’는 편견을 깨뜨리고 ‘그렇지 않다. 말레이시아인은 근면하며 국가에 충성할 수 있다’는 새로운 인식을 외국인에게 심어주는 것이 너무나 힘들었다고 고백했다.

이민사회에서 답습되는 인종차별

두 번째 세션에서는 ‘서유럽의 이민과 인종주의의 경험: 아시아에서의 실천적 함의’라는 주제로 독일의 교육전문가 Silke Baer의 발표가 있었다. 그녀는 먼저 유럽에서의 이민 사회의 동향을 간략히 소개하고 이민자들에 대한 부정적인 고정관념에는 어떤 것이 있는지 소개했다. 언론에서조차 백인이 아닌 사람은 찾아보기 어렵다고 한다. 즉, 유럽에서는 이민자를 배제하는 분위기가 강해 정부에서도 이 문제를 쉽게 접근하지 못하고 있다고 한다. 더욱 심각한 것은 청소년들조차 부모의 선입견을 그대로 답습해 왜곡된 사고방식을 갖게 된다는 것이다. 독일 청소년들은 우파 극단주의, 백인 우월주의 등의 왜곡된 Culture-Code에 노출되어있다.

교육전문가들은 ‘청소년 문화는 인종적 구분 없이 모든 국적의 청소년들이 향유할 수 있다’는 문화적 특성을 이용해 그들에게 다가갔다. 청소년들의 주 관심사인 힙합, 그래피티, 스케이트 보드 등을 이용해 인식 제고 교육을 하는 것이다. 독일 청소년들은 문화적 의식교육을 통해 반(反)인종 차별주의를 자연스럽게 배우게 된다. 차별이 아닌 연대의식을 배우며 서로를 존중하는 법을 배우는 것이다.

정체성을 버리는 이민자 가족들

Francis Loh와 Silke Baer 두 분의 전문가에게 궁금한 것을 묻는 시간이 이어졌다. 먼저 Loh에게는 ‘말레이시아에서는 인종차별과 관련하여 이민자 문제의 실태가 어떠한지’를 묻는 질문이 있었다. Loh는 관리감독이 어려운 사각지대의 불법 이민자문제가 심각하다고 했다. 현지인을 밀어낼 정도로 상당수의 이민자들이 넘어오는데도 정부가 이 문제에 대해 전혀 해결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고 답했다. 또 다른 참가자는 Silke Baer에게 이민자들이 자아 존중감, 정체성 형성에 어려움을 겪지는 않는지에 대해 질문했다. Silke Baer는 이민자들의 정체성 문제는 꽤 복잡한 양상을 보이는데 다수 이민자들은 자국의 정체성을 버리고 독일의 헤게모니를 스스로 택하려 한다고 답했다. 예를 들어 독일에 온 쿠르드족의 경우, 부모들이 자녀를 아랍학교보다는 독일학교에 보내고 싶어하며 자녀가 유럽사회에 동화되기를 선호한다는 것이다.

다음으로 유럽 청소년들 사이에서 인종차별이 지배적인 현상으로 나타나게 된 근본적인 이유가 무엇인지에 관한 질문이 있었다. 유럽 청소년들은 힙합, DJ 등을 통해 기존 어른세대로부터 오는 억압을 해소하기도 한다. 반면 억압의 잘못된 해소방법으로 내면에 무의식적인 외국인 혐오증을 싹틔우기도 한다고 Silke Baer는 지적했다. 유럽, 특히 독일에서는 세대 간 갈등이 심해서 젊은이들이 사회적으로 통합되기 어렵다고 한다. 독일 젊은이들은 본인이 소외되고 환영받지 못하는 존재라고 생각한다. 그러한 열등감의 탈출구로서 ‘극단적 백인 우월주의’에 빠지게 되는 것이다. 그들로 하여금 백인 극단주의가 잘못된 사상이라고 인식하게 하는 것 자체가 어렵다. 그러므로 젊은이들에게는 ‘학교’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 반인종주의 교육, 문화교류 경험, 다른 인종의 아이들과 한 팀을 이루게 하는 학습과정이 필요하다. 이를 통해 인종적 사회통합이 이루어질 수 있다. 마지막으로 Silke Baer는 ‘사람들은 각자 자신이 높은 위치를 차지하려고만 하고 서로 연대(Solidarity)를 이루려하지는 않는 것 같아 애석하다고 답변을 마쳤다.

종족갈등에 따른 스리랑카의 비극

세 번째 세션에서는 싱가폴 인류학자 Darini Rajasingham을 모시고 ‘스리랑카에서의 인종과 갈등’이라는 주제로 토론이 열렸다. 타밀인과 스밀인 간 종족 갈등의 근본원인은 그들의 종족적 정체성과 식민주의의 차별적 사고에 있다는 것이다. 두 집단은 생물학적 차이는 없으나 언어적 차이로 인해 문화-종교적으로 심하게 차이가 벌어졌다. 이 격차는 식민지 시대가 끝난 이후에도 좁혀지지 않았다. 배타적 정체성은 스리랑카가 근대국가로서 자리잡아가는 과정에서도 나타났다. 서로간의 다른 역사적 배경을 이해하지 못하고 크고 작은 무력 충돌이 끊임없이 발발해온 것이다. 사실 타밀 반군에 대한 타격은 문제해결의 극히 일부일 뿐이다. 소수민족 문제를 해결하려면 그들을 이해하고 포용하려는 노력은 물론이고 권력의 분권화와 자치, 식민주의적 유산에서 탈피하려는 노력 등이 필요하다고 Darini Rajasingham은 힘주어 말했다.  

 ‘인종과 헤게모니’라는 다소 무거운 주제였지만 각 분야 전문가들의 의견, 토론을 들으며 인종에 대한 시각을 새롭게 하게 된 시간이었다. 너무나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인종이라는 개념, 그리고 그 기저에 깔린 패권주의적 의도를 정확히 파악할 수 있었다. 이제 우리에게 남은 과제는 오늘날에도 남아있는 식민지 시대의 유산, 그 인종주의적 고정관념을 깨뜨리고 다문화시대에 발맞추어 인종을 새롭게 정의하고 서로 연대하고 포용하는 일이다.

박서현 국제연대위원회 인턴

[참고] 국제워크샵<아시아에서 인종과 헤게모니의 연계>프로그램 내용
일시: 2009년 6월 24일 오전 9.30 - 오후 6.30
장소: 국가인권위원회 배움터
공동주최 : 아시아대안교류회(아레나), 에버트 재단(FES), 민주화운동 기념사업회

Session I 
지구적, 지역적 맥락에서 “인종”을 정의하기 / 이대훈
(기조 발표) 인종이 아시아에서의 사회정의를 위한 투쟁에 적당한 개념인가?  / Francis Loh
 
Session II 
서유럽의 이민과 인종주의의 경험: 아시아에서의 실천적 함의/ Silke Baer
토론: Francis Loh, 엄정민
 
Session III.
스리랑카에서의 인종과 갈등/ Darini Rajasingham
토론: Neng Magno, 허오영숙
 
Session IV.
서구 식민주의 및 경제 발전과 아시아의 인종주의 / Banajit Hussain
토론: Mohiuddin Ahmad, 마웅저
 
Special Session
인종주의 폭력: 대응방식과 실천적 훈련 프로그램 / Harald Weilnboeck



 

Posted by 영기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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