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구르망명 지도자 레비야 카디르가 현재(7/30) 일본을 방문하고 있습니다. 그녀는 위구르인들의 독립운동의 대모이며 노벨평화상 후보로 거론되기도 했습니다. 카디르는 지난 7월 중국 신장 위구르 사태이후 1만여 명에 이르는 위구르인들이 행방불명됐다고 주장하고 일본을 포함해 국제사회의 관심을 요청했습니다. 반면 중국정부는 카디르의 방일을 허용한 일본 정부에 반발하면서 외교적 갈등을 빚고 있습니다.

중국정부가 이렇게 민감하게 반응하는 7월 위구르 소수민족의 유혈사태는 과연 무엇이었을까요? 중국으로부터 분리독립을 요구하는 소수민족 위구르인 유혈사태를 짧게 정리합니다.

중국 제2의 화약고- 중국 신장 위구르 자치구

7월 6일 중국 신장 위구르 자치구 우루무치에서 유혈 사태가 발생했다. 누얼 바이커리 신장 위구르 자치구 주석은 무슬림계 소수민족 1천여 명이 참석한 이번 사태로 인해 197명이 숨지고 1천 7백명이 부상했다고 전했다.(7월 18일 기준) 또한 버스 190대와 택시 10여대가 파손되는 등 많은 재산 피해가 난 것으로 알려졌다.
 
신장 위구르 지역에서 유혈 충돌이 일어난 것은 2008년 8월 경찰 17명이 사망한 카쉬가르 테러 공격 이후 처음 있는 일이다. 티베트와 함께 소수민족의 저항이 가장 강한 위구르 자치구에서 대규모 유혈 사태가 일어남에 따라 이 지역의 긴장감이 커지고 있다.

이번 유혈 사태의 도화선은 6월 26일 광둥성에서 벌어진 위구르족과 한족의 집단 패싸움이었다. 현지 공장의 한족 여종업원들이 위구르인들에게 성폭행 당했다는 소문이 퍼지면서 한족들이 위구르인을 공격하여 위구르인 2명이 숨지고 100여 명이 다쳤다. 이 때문에 성난 위구르 시위대는 한족 주민들과 심각하게 대치했다. 위구르의 이번 대규모 유혈시위는 중국 당국의 신속한 진압작전으로 표면상으로는 진정된 상태이지만 여전히 불안 요소가 남아있다.

분리독립을 요구하는 대규모 유혈시위가 발생한 중국 신장 위구르 자치구는 티베트에 이어 중국 제2의 화약고로 불린다. 지난 744년부터 100년 제국을 누려온 위구르족은 티베트인들과 마찬가지로 1949년 신중국 건국 이후 끊임없이 분리-독립을 요구하는 시위나 봉기를 일으켜왔다. 이에 맞서 중국은 지정학적으로 중요한 전략적 요충지일 뿐만 아니라 석유와 천연가스가 풍부한 신장 위구르 자치구에 한족을 계속 이주시키며 민족 동화정책을 펼치고 있다. 따라서 우루무치에 거주하는 한족 대부분은 중국 정부의 '변경 안정화' 정책에 따라 광활한 면적과 막대한 천연 자원이 묻힌 신장 위구르 지역을 관리하기 위해 대량으로 이주한 사람들이다.

위구르인들은 이슬람교를 믿고 유럽인에 가까운 코카서스 인종으로 중국 내 소수 민족들 중에서도 가장 이질적이다. 위구르인들은 분리-독립을 요구하며 한족과 끊임없이 대립해왔다. 여기에는 위구르 자치구의 막대한 개발 이익을 한족 이주민들이 독점하면서 하층민으로 대부분 살이가는 위구르인들의 불만이 갈등의 주요한 요인이다.  

위구르족은 10여개의 무장 독립운동 단체를 결성하고 분리-독립운동을 해왔다. 위구르족의 분리-독립운동은 중국화를 강요당한 지난 1956년부터 본격화됐다. 특히 1996년에는 중국 공안들이 위구르족 분리주의자 검거에 나서면서 위구르족 분리주의자 5만 7천여명이 구속되었고 이 중 1천 7백여명이 처형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1997년에는 위구르족과 한족의 유혈사태가 발생해 100여명이 사망했으며 우루무치와 베이징 시내에서 버스 폭탄 테러 사건이 발생하기도 했다. 위구르족의 분리독립주의자들의 궁극적인 목적은 이슬람교를 바탕으로 주변의 우즈베키스탄, 타지키스탄 등과 연대해 ‘투르크인의 땅’인 동투르키스탄공화국을 수립하는 것이다.

티베트와 달리 위구르족의 분리독립운동은 국제적으로 알려지지 않았다. 그러한 측면에서 위구르인들은 다른 지역의 분리독립운동에 비해 폭력적인 양상을 가지고 있다. 실제로 신화통신에 따르면 중국 공안들은 2007년 1월 5일 파미르고원 산악지대에서 동투르키스탄이슬람운동(ETIM) 테러훈련기지를 급습해 18명의 테러분자를 사살하고 17명을 체포했다고 밝혔다. 또한 2008 베이징올림픽 개막을 나흘 앞둔 지난해 8월4일 위구르족 테러분자들이 카스에서 중국 무장경찰을 향해 수류탄을 던져 16명이 사망하자 중국 전역에 비상이 걸리기도 했다고 한다.

중국 전문가들은 “위구르족의 폭력적인 분리독립운동에도 불구하고 중국이 신장지역을 순순히 양보할 가능성이 거의 없다. 따라서 신장지역의 분리독립은 낙관하기 어렵다”고 말한다. 이들은 “신장위구르자치구 분리독립을 허용하는 것은 연쇄 효과를 일으켜 티베트 등 다른 지역의 분리독립을 부추기며 중국의 분열이라는 엄청난 재앙을 초래할 것”이라고 전한다.

정리: 장우식 국제연대위원회 자원활동가


[참고] 티베트 문제를 통해 본 중국 민족주의와 인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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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년 버마의 민주화를 위한 항쟁: 잊지 않았고 포기는 더욱더 하지 않는다

참여연대는 8888 버마 항쟁 20주년을 맞아 국제연대활동을 진행하였습니다. 다음은 Burma Partnership 와 국제 공동 성명서의 내용(한글번역)입니다.  

88버마 항쟁이 있은 지 20년, 이전보다 도 강력한 의지로 우리는 버마의 민주주의와 인권을 위해 연대해 있다. 우리는 변화를 촉구하는 버마 국민들의 외침과 함께한다.
1988년 8월 8일, 버마 청년들은 군사 정권 타도를 위한 대규모의 전국적 투쟁을 전개시켰다. 그러나 버마군부의 대응은 신속하고 잔혹했다 그들은 주로 학생과 승려였던 3천명의 시민들을 사살하였고 수 천명을 감옥에 가두었다. 하지만 버마 국민들은 여전히 민주화를 위한 노력을 감옥과 망명, 군부 속에서도 용감히 이어왔고 민주화에 대한 이들의 의지는 작년 9월 항쟁에서도 건재함이 확인되었다.

민주 항쟁이 시작한지 이십 년이 지난 지금, 국제 사회는 무조건적 버마의 포용 정책들이 실패해왔음을 깨달아왔다. 아세안 (ASEAN)의 이른바 ‘건설적 포용책’ 조차 버마 민주화를 가져오지 못했음을 인지해야 한다. 이웃 국가들의 이러한 소극적 대처는 버마 군부의 직접적인 대화 우회와 지연 전술을 펼치게끔 상황을 부추긴 셈이다. 이에 우리는 국제 사회가 한 목소리로 버마 군부를 규탄하고 버마 국민들의 인권 탄압을 중단할 것을 요청한다.

나아진 군부 재정 상태와는 달리, 버마와 주변 지역들의 상황은 악화되었다. 버마 정부가 국내 석유.가스 자원으로 벌어들인 수익으로 러시아, 중국, 인도산 무기를 수백억 달러 치를 구입했기 때문이다. 군사 정권은 사들인 무기로 버마국민을 탄압하고, 군부의 폭정은 주거지 박탈과 실직, 마약 밀매 등의 사회 불안정 요소들을 촉발시켰다.

버마 정치의 부정의가 개선 되지 않았기에 군부에 대한 국제사회의 요구는 이제 행동과 동반되어야 한다. 무기 교역 금지, 금융제재, 벌금과 같은 구체적 압박을 가하지 않는 한, 군부는 협상과 개혁에 임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므로 국제사회는 버마에 새 바람이 불어 넣을 수 있도록 강력한 입장표명을 해야 한다. 우리는 다음과 같이 주장한다.

1. 아웅산 수치를 포함한 모든 정치범들을 조건 없이 석방해야 한다. 지난 몇 달간에도 정치수감자 수는 1150명에서 1900명으로 65퍼센트가 증가하였다. 이는 이미 군부가 지난 8월 시위에 대비한 처사로 보여진다.

2. 여러 민족 집단에 대한 탄압을 중지해야 한다. 동 버마는 군사 폭압의 심화로 2007년에만 7만6천명의 이재민이 발생하였다. 지난 한 해 동안 미얀마 군은 Karen 주에 85개의 신 접전 지를 발생시켰다. 이로써 버마는 세계에서 난민문제가 가장 심한 국가 중 하나가 되었고 여러 인종에 억압을 가하게 되었다.

3. 3부/3자 회담이 이루어져야 한다. 지난 연도에 버마 군사 정부는 허위로 헌법 국민투표를 꾸미고 2010년에 선거를 약속하면서 민주주의로의 진척을 주장하였다. 그러나 그러한 군부의 허식은 그사이 악화된 정치적, 경제적 상황에서도 볼 수 있듯이 버마 사태 해결에 부정적 영향만 끼쳤을 뿐이다. 이처럼 버마 사태의 근본이 정치적으로 엮여 있는 만큼 모든 정치 실세들의 대화가 장기적인 대책 마련의 시발점이다.


버마 독재정권의 가장 최근 반인륜적 범죄는 14만 명의 죽음을 야기시켰다. 태풍 나르기스(Nargis Cyclone)에 시민들을 대비시키지 않고 허위 국민투표를 발의한 것이다. 또한 나라 안팎에서 뻗은 지원의 손길을 거절하고 인근 자원 활동가들을 채포함으로써 사이클론 피해를 악화 시켰다. 버마군부는 재해를 틈타 환율을 조작하고 재해 지원금의 25퍼센트를 착취해 가는 등 스스로의 몫만 톡톡히 챙겼다.

2008년 8월 8일은 88항쟁 20주년뿐만 아니라 북경 올림픽의 시작을 신호한다. 중국은 버마 사태를 언급하고 민주화 개혁의 장을 마련할 적절한 시기적,정치적, 지리적 위치에 있다. 중국은 UN안보리에서의 버마 군부를 옹호하지 말아야 한다.


버마 국민들과 국제사회는 더 이상 이 지독한 정권을 용인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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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징올림픽, '안전'올림픽 되나

베이징올림픽은 녹색올림픽, 환경올림픽, 인문올림픽을 구호로 내세워 세계에 중국의 새로운 면모를 과시하고자 하였다. 그런데 최근 '안전올림픽'이 이번 올림픽의 가장 중요한 화두의 하나로 등장하고 있다. 과연 베이징올림픽이 큰 탈 없이 치러질 수 있을 것인가가 국제사회는 물론이고 중국정부에게도 가장 커다란 관심사로 되고 있다.
 
베이징올림픽이 안전 문제와 연관되기 시작한 것은 3월 티베트 지역에서 대규모시위가 발생한 이후의 일이다. 최근에는 신쟝지역에서 활동하는 독립운동조직이 테러 가능성을 위협하고 나서기도 하였다.
 
그러나 현재 중국 내에서 더욱 커다란 문제가 되고 있는 것은 연이어 발생하고 있는 민중들의 시위이다. 21세기에 들어서 집단행동은 폭발적으로 증가하여 2005년에만 7만 건이 넘게 발생한 바 있다. 지방정부의 개발을 위한 토지수용과 과도한 세부담에 대한 농민들의 저항, 노동분쟁 지속적인 증가 등이 중요한 원인이었다.
 
그런데 최근 한 달 사이에 주민들과 정부 사이의 대규모 충돌이 연이어 발생하며 올림픽을 앞둔 중국정부를 긴장에 몰아넣고 있다. 지난 6월 28일 궤이저우성의 웡안현에서 수만 명의 주민들이 지방정부청사를 공격하는 사태가 발생하였다. 7월 1일에는 상하이시에서 경찰과 시시비비를 다투던 한 시민이 경찰서를 공격하여 6명의 경찰이 사망하였다. 7월 17일 광동성 회이저우시 보뤄현에서도 대규모 시위가 경찰과의 충돌로 발전하였다. 그리고 7월 19일 위난성 멍렌현에서 수백명이 참가한 격렬한 시위에 경찰이 발포하여 2명이 사망하였고, 21일에는 위난성의 쿤밍시에서 테러로 추정되는 버스 폭발사고로 3명이 사망하였다.
 
이러한 사태가 발생한 이유는 모두 다르지만 많은 경우 이미 존재하고 있던 사회적 불만들이 경찰과 공권력의 부당한 처사를 계기로 촉발되었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7월 1일 사건의 경우 5명의 경찰이 사망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여론에서는 경찰의 불법적, 혹은 부당한 저치들에 대한 비판적 목소리도 매우 높다. 이러한 현상들은 중국에서 정부와 시민들 사이에 얼마나 큰 긴장관계가 존재하며 사회적 불만이 얼마나 넓게 확산되어 있는가를 잘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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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과연 베이징올림픽이 큰 탈 없이 치러질 수 있을 것인가가 국제사회는 물론이고 중국정부에게도 가장 커다란 관심사로 되고 있다. 전세계 누리꾼들은 티베트 사태 등과 관련해 올림픽을 치르는 중국 정부를 비판하는 글과 이미지를 제작해 공유하고 있다. ⓒ프레시안 

그런데 우리는 중국에서 이처럼 사회적 불만이 확산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중국이 정치적으로 매우 안정되어있는 역설적 현상을 목격할 수 있다. 즉 현재 중국에서는 민주화를 요구하는 지식인들의 운동과 중국공산당 사이의 갈등, 그리고 최고지도부 내의 권력갈등 등 정치적 안정을 직접적으로 위협하는 요인들이 찾아보기는 힘들다. 정치적 안정과 사회적 불안이 기묘하게 동거하고 있는 상황이다. 중국의 정치사회적 상황은 '거시적 안정, 미시적 불안'이라고 요약할 수 있다. 정치적·이념적 측면에서는 갈등이 억제되고 안정적 국면으로 유지하고 있으나 인민들의 생활과 직접적으로 관련이 있는 문제들을 둘러싼 사회적 갈등과 분쟁은 계속 증가하고 있다.
 
이러한 기묘한 공존은 어떻게 가능한 것인가? 사회적 불안, 특히 일반 민중들의 불만을 정치적 도전으로 발전하지 않도록 하는 중국공산당의 통치전략이 지금까지 주효하고 있다는 점을 가장 중요한 원인으로 지적할 수 있다. 중국의 지도부는 과도기적 발전단계에서 사회적 불안요인들을 단기간 내 없애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생각하고 있으며 당면한 상황에서 가장 역점을 두는 것은 미시적 불안 요인들에 대한 관리를 강화하며 이러한 불안요인이 거시적 차원의 불안과 혼란으로 이어지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이를 위한 핵심정책으로는 다음과 같은 것을 들 수 있다.
 
첫째, 안정적인 경제성장이다. 개혁개방 이후 중국공산당은 사회주의 이념의 통합력이 약화됨에 따라 통치정당성을 경제적 실적에 의존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 그런데 중국은 현 지도부가 출범한 2003년 이후 다시 고도성장 국면에 진입하면서 정치·사회적 문제를 다루는 데 비교적 유리한 경제적 환경을 확보할 수 있었다.
 
둘째, 시장경제로의 전환과정에서 빈부격차의 증가와 사회적 갈등이라는 새로운 문제가 발생하고 있는데 현 지도부는 '인민본위(以人爲本)'과 '조화사회(和諧社會)를 새로운 정치이념으로 내세우며 중국공산당이 다수 인민의 이익을 대표한다는 것에 대한 신뢰를 확보하기 노력하였다. 물론 이러한 전환이 모든 경제, 사회정책에 전면적으로 반영될 수는 없었지만 상징성이 높은 몇 가지 사회정책을 통해 그 효과를 극대화시켰다. 2004년에 결정된 농업세의 점진적 축소 및 폐지 정책이 대표적 사례이다.
 
셋째, 통치방식의 변화이다. 중국공산당과 중앙정부의 신뢰를 제고하기 위해 지도부들의 국민들의 삶의 현장에 밀착하는 이미지를 강화하고, 국민적 관심이 모아진 주요 돌발사건에 대해 신속하고 직접적인 개입을 시도하였다. 후진타오, 원자바오는 최고지도부로 선출된 직후부터 빈곤지역에 대한 현지시찰을 활발하게 진행하였다. 이를 통해 중국의 최고지도부들은 여러 사회적 문제에 대응하는 과정에서 이러한 문제에 직접적인 책임이 있는 지방정부의 독직과 잘못된 정책결정으로부터 자신들의 권위와 위신을 보호하는 효과를 낳고 있다. 웡안현에서 대규모 시위가 발생한 이후에도 원앙현의 당서기 등이 파면시키는 것을 통해 지방주민들의 불만을 가라앉히고자 하였다.
 
그러면 이러한 정책들은 언제까지 효과를 발휘하고 정치적 안정을 유지할 수 있을 것인가? 베이징올림픽이 이러한 의문에 대해서 직접적인 답을 해주지는 못할 것이다. 광범위하게 존재하는 사회적 불만과 갈등은 구조적 문제와 연관된 것이고 그 해결에는 오랜 시간이 필요하다. 그러나 베이징올림픽이 중국정부가 기대하는 것처럼 중화민족의 단결과 국제사회에서 중국의 지위 향상을 과시하는 것만이 아니라 그 이면에 존재하는 그림자까지 잘 보여주는 계기가 되고 있는 것은 확실하다.
 
중국의 변화가 가지고 있는 이러한 양면적 측면은 당분간은 피하기 힘든 현실로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문제는 이러한 현실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미래로 나아가는가에 있다. 외부에서는 중국에 존재하는 그림자들을 쉽게 없앨 수 있다는 성급한 기대보다는 인내심을 가지고 중국의 변화를 지켜볼 필요가 있다. 그러나 중국정부도 자신이 직면하고 있는 사회적 현실에 대해 근본적인 대책이 필요하다는 것을 분명하게 인식하고 대응하고 있다는 점에 대해서 중국 내의 민중들과 국제사회의 신뢰를 얻기 위해 더욱 많은 노력을 기울일 필요가 있다.
 

이남주(성공회대 중국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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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베트와 중국 그리고 2008 티베트 항쟁기

참여연대는 지난 중국의 티베트 항쟁 활동을 지지하는 티베트평화연대와 함께해 왔습니다.지난 7월 22일 '문화를 생각하는 사람들'에서 주최한 좌담회<티베트와 중국 그리고 2008 티베트 항쟁기>는 티베트를 전체적으로 알 수 있는 좋은 기회로 참여연대에서 자원활동을 하고 있는 차진수 학생(김포외고 3학년)이 다녀왔습니다. 티베트에 대해 알 수 있는 좋은 내용을 여러 독자들과 나누기 위해 참가 후기를 공유합니다.<편집자 주>

 7월 22일에 열린 티베트 항쟁에 관한 이번 좌담회는 남카스님 한국티베트공동체센터 회장과 정웅기 티베트평화연대 대변인이 들려주는 티베트의 과거, 현재, 미래에 대한 이야기와 함께 시작되었다.

티베트의 과거, 현재, 미래
과거에 티베트는 1000여 년에 달하는 오래된 역사를 가지고 있는 온전한 독립국이었다. 그러나 1950년 중국의 침략을 당하면서 자치구로 전락하였고, 그 때 당시 중국은 중국의 종주권과 티베트의 자치권을 인정하는 평화협정(사실 상 강제조약)을 체결하면서 일국양체제를 도입하겠다는 조건을 내걸었으나 결국 지키지 않았고, 오히려 티베트의 정체성을 파괴하는 데에 주력했다. 1000여 년 동안 보존되어 왔던 티베트 고유의 문화유산들을 파괴하거나 착취해 갔고, 10여 개의 절을 제외한 모든 절들을 불살라 버리며 티베트인들의 출가를 500명까지만 허용하였다. 또한 중국이 티베트에 이주하는 중국인에게 적극적인 지원을 하면서 한족이 물밀듯이 들어와 현재 티베트 인구의 3분의 2 가량이 한족으로 구성되어 있고, 이러한 이유로 중국어를 써야만 물건을 사고 학교에서 교육을 받거나 취직을 하는 일상적인 생활이 가능하게 되었다. 남카스님은 이러한 중국의 행동이 문화, 종교, 언어 등 티베트의 정체성 보존을 불가능하게 하는 완전한 자유 탄압이라고 매우 심각한 문제라고 말했다.
 
사실, 티베트인들의 항쟁은 아주 오래전부터 진행되어 왔다. 티베트인들은 UN(United Nations)에게도 몇 번 씩 자신들의 상황에 대해 알리고 도움을 요청했으나 그 어떤 나라도 관심을 보여주지 않았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중국이 인권 보호라는 전제를 내걸고 베이징 올림픽을 개최하게 되면서 티베트인들의 시위가 관심을 받기 시작했고, 미국과 영국을 포함한 여러 나라가 달라이라마와 중국 정부의 회담을 촉구하며 베이징 올림픽에 대한 보이콧(boycott)까지 감행하겠다고 발표하였다.

그러나 중국 지진 사태가 발생하면서 다시 티베트 항쟁 사건은 관심 밖의 대상이 되어버렸고, 현재 달라이라마와 중국 정부 간의 회담도 거의 중지된 상태이다. 약 3차례 정도 있었던 회담에서도 중국 정부와 달라이라마는 끝끝내 서로의 입장을 좁히지 못하였다. 중국 정부는 달라이라마에게 티베트의 독립 요구 철회, 폭력 시위 금지의 조건만 지키면 티베트의 어떤 요구든 받아  들이겠다고 계속 주장해왔지만, 사실 이 주장은 터무니없는 억지와도 같다. 티베트는 1988년부터 티베트의 독립이 아닌 중도정책 채택과 함께 티베트인의 진정한 자치를 요구해왔고, 폭력 시위가 아닌 평화 시위로서만 항쟁해 왔다.

 티베트의 과거, 현재, 미래의 이야기를 모두 들은 후, 좌담회는 질문과 답변 형식으로 진행되기 시작하였다. 참가해주신 분들 모두가 티베트에 지대한 관심을 갖고 있어서 좌담회 분위기는 한 층 더 뜨거워졌다. 중도정책의 민주성에 관한 질문에서 남카스님은 중도정책은 몇 년에 걸쳐 의논되어 온 구체적인 방안이며 티베트인들의 투표로 결정되어진 정책이라고 답변하였다. 66%가 찬성하였고 25%가 중도정책이 아닌 독립을 주장하고 있다고 말하였다.

티베트를 둘러싼 국가들의 강경한 모습들
인도와 네팔의 상반된 입장에 관해서도 언급되었는데, 인도는 예전부터 달라이라마의 망명정부가 있는 나라로서 티베트인들을 간접적으로 지원한 반면, 네팔은 망명하는 티베트인들을 잡아 다시 중국으로 회귀시킨 후 보상으로 돈을 받는다고 하였다. 하지만 중국 정부의 압력으로 인해 이번 2008년도 티베트 항쟁에 관하여 인도 정부도 시위를 진압하는 등 강경적인 입장을 취했다고 한다.

이번 좌담회에서는 티베트에 관한 편견에 대해서도 많은 이야기가 오고 갔는데, 특히 무장 세력에 관하여 남카스님은 완강하게 부인하였고 오직 평화 시위만이 이루어져 왔으며 달라이라마도 만약 티베트인들이 폭력 시위를 한다면 티베트인의 지도자 자리에서 물러나겠다는 입장을 분명히 하였다고 언급했다.

중국에서는 티베트를 시짱자치구[西藏自治區]라고 부른다. 하지만 시짱은 티베트의 일부에 불과하며 사실 티베트는 더 넓은 영토를 가지고 있다고 한다. 중국은 그리하여 티베트 인구를 350만 명으로 발표하고 있으나, 티베트인은 실제 600만 명에 이른다고 하였다. 또한 티베트는 중국의 서쪽 끝에 있으며, 인도·네팔·부탄·미얀마 등의 국가와 맞닿아 있어 개방 확대와 및 변경무역에 유리한 지리적 조건을 갖추고 있어 중국이 절대적으로 티베트의 독립을 거부하고 있다는 사실도 새롭게 알게 되었다.

교육을 통한 티베트의 희망 이어가기
마지막 질문은, 티베트인의 교육에 관한 것이었다. 티베트가 이제 중국의 문화말살정책으로 인하여 거의 중국인의 땅이 되어버렸고, 이런 상황에서 티베트의 젊은이들의 정체성이 제대로 지켜지고 있는 지에 대한 문제였는데 생각보다 상황은 심각했다. 티베트어를 필수과목으로 지정하고 티베트인들을 위한 학교를 늘리려 많은 노력을 기울였지만, 티베트인의 중국에서의 고립이 점점 더 심화되고 티베트인들을 탄압하는 사례가 늘자 학교는 물론 절에도 티베트인들을 찾아보기가 힘들다고 한다. 하지만 정웅기 대변인은 14만 명의 티베트인들이 80개국에 망명하여 교육을 받으며 티베트의 자치권 쟁취 운동을 펼치고 있고 그 중 3만 명의 티베트인들은 출가하여 스님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이번 티베트 사태의 주축도 청년층이었던 것을 고려할 때 나라의 정체성은 쉽게 사라지지 않음을 발견할 수 있었다고 한다. 그리고 그 속에서 티베트 사태 해결에 대한 희망을 보았다고 말하였다.
 
 끝으로 정웅기 대변인과 남카스님은 달라이라마가 한국을 형제의 나라라고 생각하며 기회가 주어지면 꼭 방문하고 싶다고 말씀했다며 그간 한국 정부가 달라이라마의 방문에 대하여 취했던 입장에 대해 이야기 했다. 아직은 보수적인 한국 정부는 결정적인 순간에 달라이라마의 방문을 계속 거부해 왔고 이런 점을 미루어 보아, 한국에서 어떠한 의식의 변화가 이루어지지 않는 이상 달라이라마의 방문은 계속해서 힘들어질 것이라고 했다. 또한 이번 촛불시위를 보면서 시민의 힘이 정부에게 압력을 가할 만큼 커진 것을 보면 그 변화의 시기가 그리 멀지 않았다고 생각한다고 전했다.

세계의 각 언론들은 이번 티베트 사태에 관하여 대부분 중국의 입장에 초점을 맞춰 논한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이번 좌담회를 통하여 균형 잡힌 시각, 특히 티베트인의 입장에서 이번 항쟁을 논할 수 있었고, 특히 필자는 예전 일제강점기 때의 우리나라와 티베트에서 많은 공통점을 발견할 수 있었다. 남카스님은 국제사회와 대한민국에게 티베트 사태를 좀 더 적극적으로 알리게 되면 “자비로운 사람들께서 꼭 티베트를 도와줄 것”이라 믿는다고 하였다.

 티베트인들은 중국인에게 탄압 당하면서도 중국 지진 사태 때에 중국인 피해자들을 위하여 모든 시위를 멈추고 기도에 매진하였다고 한다. 우리는 이러한 인도적인 티베트인들을 위하여, 동양문화의 정수라 불리는 티베트의 문화 보존을 위하여, 평화로운 세계를 위하여, 다시 한 번 그들의 문제에 귀 기울여 보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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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를 생각하는 사람들 23차 문화나눔마당 시민과 함께 하는 좌담회]
티베트와 중국 그리고 2008  티베트 항쟁
 
일시      : 2008년 7월22일(화) 오후 7시30분
이야기    : 남카스님(한국티베트공동체센터 회장), 정웅기(티베트평화연대 대변인)
장소      : 인권연대 교육장 (지하철 : 4호선 한성대입구역 7번 출구 / 버스 : 한성대입구역)
참가비    : 무료
후원      : 티베트평화연대 (www.peacetibet.com)
문의      : 문화를생각하는사람들 (02-336-5642, www.artizen.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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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3월 발발한 티베트인들의 평화시위에 대하여 중국정부는 폭력적인 탄압을 자행, 250명 이상이 숨지고, 4천명 이상이 투옥되었다 한다. 중국정부는 소수의 티베트인들이 폭동을 일으켜 법에 의거해 진압하였다고 말하지만, 이미 시위 초기 군대를 투입, 발포하였음이 밝혀졌고, 평화로운 시위대를 향하여 탱크를 돌진했다는 보도등을 보았을 때 이는 거짓일 가능성이 높다. 티베트인의 평화시위를 총과 탱크를 앞세워 강경진압하면서, 시위대가 피신한 사원을 봉쇄하여 식량, 전기를 차단하는 등 반인권적 행위를 일삼고 있다.

서울에서의 베이징올림픽 성화봉송 때 일부 중국인 유학생 폭력시위로 인해 우리나라에서도 큰 관심을 집중시켰던 티베트 사건은 이후 벌어진 버마사이클론 피해, 중국쓰촨성 대지진, 미국산 쇠고기 광우병사태 등으로 사람들의 관심에서 멀어진 느낌이다.
쓰촨성 대지진 이후에 불고 있는 중국을 향한 전 세계의 동정여론은 그 이전까지 팽배하던 반중국 정서와 티베트에 평화를 외치는 목소리를 잠식시키며 아이러니하게도 올림픽을 앞두고 온갖 악재로 곤혹스러웠던 중국의 호재로 작용하고 있고, 더욱 강화된 중화민족주의는 티베트를 더욱 고립시킬 염려를 불러일으킨다.

문화를생각하는사람들은 한국티베트공동체센터의 남카스님과 티베트평화연대의 정웅기 대변인을 모시고 국제사회의 현안으로 떠오르며 올림픽을 목전에 둔 중국의 뜨거운 감자로 주목받고 있는 티베트 사태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을 준비했다.한국티베트공동체센터 회장인 게셰 텐진 남카스님은 티베트 사태의 궁극적인 원인에 대해 “‘중도정책(Middle-Way Policy)’을 중국정부가 귀 기울이지 않기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티베트 국민들은 중국 지배하의 현재 상황을 받아들일 수 없다. 그렇다고 티베트의 독립을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이 두 입장 사이의 중도를 걷고자 하는 것이 바로 중도정책이다. 중도정책은 티베트인들에게 문화·종교·민족정체성의 보호와 보전을, 중국에게 안보와 영토의 보존을 제공한다는 점에서 누구에게도 피해가 되지 않는 정책이다.” 티베트망명정부의 입장을 대변하며 티베트평화연대를 이끌고 있는 정웅기 대변인은 “이른바, 티베트독립론, 서방의 중국견제론 등 대다수의 언론이 중국 정부의 시각에서 티베트 사태를 바라보고 있으며 일부 진보진영에서 조차도 편향된 시각으로 이 문제에 접근하고 있다”고 강하게 비판하고 있다.

23차 문화나눔마당은 티베트 사태의 잘 알려지지 않은 내막과 더불어 치우치지 않고 균형된 시각으로 바라볼 수 있게 도와 줄 것이다. 참가비 무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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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영기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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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진 기억의 도시가 되려는가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설레임처럼 새로운 지역을 간다는 것은 미지에 대한 호기심으로 마음의 밑바닥에서 전해져오는 떨림이 있다. 특히나 평소에 가보고 싶던 곳이라면 더욱 그렇다. 지난 가을에 갔던 타이베이에서 한 시간 정도 거리에 위치한 지우펀(九份)은 금광이 있던 곳으로 일제 강점기 일본인의 감시 하에 굴욕을 당하던 채광 노동자들이 거주하던 곳이었다. 사금 한 조각이라도 몰래 빼낼까 감시하던 광산주들은 야간작업을 마치고 귀가하는 그들의 몸수색을 위해 은밀한 부분까지 거울을 비춰가며 모욕을 주었다.
 
 타이완이 해방되고 광산이 폐광된 이후 지우펀은 잊혀 졌지만 허우샤오셴이 이곳을 배경으로 <비정성시(非情城市)>를 찍으면서 다시 사람들의 기억으로 돌아왔다. <비정성시>는 일본의 지배에서 벗어났지만 또 다시 국민당의 통치하에서 한 가족이 당할 수밖에 없었던 비극을 느린 선율로 보여주었던 영화다. 여기서 귀머거리이며 벙어리였던 문청역의 양조위가 뿜어내는 눈빛은 이 이야기의 배경이 되었던 지우펀에 가보고 싶은 욕망을 일으켰다.
 
 그러나 직접 가본 지우펀은 내가 상상하던 곳이 이미 아니었다. 이제는 폐쇄된 지난 시절의 극장 간판만이 이곳이 <비정성시>를 잉태한 지역이었음을 암시하고 있을 뿐 계단으로 이어진 주택들은 이제는 물건을 파는 상점으로 변해 조잡한 상술이 거리 곳곳을 술렁대고 있었다. 카페에 앉아 항구를 바라보며 차를 마시는 수많은 젊은 연인들에게 이곳은 더 이상 타이완의 비극을 가진 역사의 장소가 아니었다. 너무나 보고 싶던 사람을 직접 만나고 나서 '차라리 만나지 말 것을…' 하고 후회하듯이 현실 속에 생생한 지우펀은 내가 기대했던 그곳이 아니었다. 이럴 때 난 내 기억에 배반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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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망각의 동물이라고 하던가. 지난 4월 중간고사 기간을 이용해 윈난(雲南)성을 가기 전, 나는 또 다시 얼마나 가고 싶었던가를 생각하며 베이징에서 비행기에 오를 때부터 약간의 긴장을 하기 시작했다. 그동안 비행기를 많이 타봤지만 윈난으로 가는 남방항공은 유달리 비틀거리며 요동을 치며 아슬아슬하게 고도 1840미터의 성도(省都)를 향해 날아갔다.
 
사계가 모두 봄(四季如春)과 같다는 쿤밍, 구름으로 둘러싸인 곳, 수많은 소수민족이 살아가는 곳, 이상향 샹그릴라가 있는 곳…. 윈난을 수식하는 미사여구는 다양하게 있었다. 그중에서도 나의 관심은 옥룡설산의 눈 녹은 물이 흐르는, 한옥건물이 즐비한 고성 마을로 불리는 리장(麗江)에 있었다. 리장에 가고 싶었던 건, 이곳이 강진으로 세상에 알려져서도, 유네스코 세계문화 유산으로 등록되었기 때문도 아니었다. 윈난에 살고 있는 60여만 명의 20여개 소수민족 중에서 모계사회를 유지하고 있는 티벳족의 혈통을 가진 머쒀(摩梭)족, 자신들의 문화와 문자(東巴文)를 유지하면서 검은 것이 아름답다는 것을 보여주는 나시(納西)족의 삶을 보고 싶어서였다.
 
2400m높이에 펼쳐진 산과 들판은 이렇게 높은 곳에 이렇게 평화로운 정경이 존재한 다는 것이 신기하게 느껴지게 했다. 그러나 높이나 해발, 이것은 과연 누구를 중심으로 한 것일까. 여기서 태어나 자란 사람들에게 리장은 바로 평지가 아닐까. 머쒀족이 사는 루구(瀘沽)호는 기회가 없어서 못 갔지만, 리장 곳곳에서 나시족의 흔적을 볼 수 있었다. 그들의 터전에서 나시족 몇몇은 집에서 만든 물건을 내다 팔며, 몇몇은 공원에서 사람들에게 볼거리를 제공해주면서 살고 있었다. 리장 중심에 위치한 극장에서는 여수금사(麗水金沙)라는 제목으로 리장을 찾는 사람들을 위한 소수민족 공연을 하고 있었고, 화려하게 치장한 무용수들이 나시족이 유지하고 있는 전통 혼례관습을 무대에서 보여 주었다. 쏟아지는 박수소리를 들으며 그들의 일상이 다른 사람들에게는 구경거리로 노출될 수밖에 없는 것을 나시족 스스로는 어떻게 생각할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리장이 여행 오는 사람들로 넘쳐나면서 그들이 거주하던 한옥은 거의 모두 상점으로 변해버렸다. 이제 리장은 아름다운 물이 굽이굽이 마을을 돌던 검은 얼굴빛을 가진 민족의 터전이 아니라 지우펀과 마찬가지로 수많은 상점과 물건을 흥정하는 군상들, 밤이면 떠들썩한 음악과 비트에 몸을 맡기고 흥청거리는 젊은이들의 도시가 되었다. 자본의 세상에 살고 있으면서도 자본의 힘에 흔들거리는 옛 기억의 장소들을 볼 때마다 불편한 마음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다. 현실의 리장은 지우펀과 마찬가지로 내가 기대했던 그곳이 아니었다. 하나 둘씩 실망을 안기는 기대의 장소들처럼 지우펀과 리장도 이제 사라진 기억의 도시가 되어버릴 것 같다.

김도희(한신대학교 중국지역학과 교수)


 


Posted by 영기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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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월 9일, 참여연대에서 중국의 민족주의와 소수민족정책, 인권을 조명해보는 좌담회가 열렸다. 2008년 3월 티베트 시위대에 대한 중국정부의 유혈진압 이후 베이징 올림픽 개막식 보이콧 등 중국정부의 인권탄압에 항의하는 국제사회의 대응, 4월 27일 서울에서 올림픽성화봉송 행사에서 벌어진 일부 중국유학생의 폭력사태로 드러난 중국인들의 과도한 애국주의 표출 등 티베트 사태로 불거진 중국의 민족주의와 인권의 문제를 한국시민사회가 어떻게 볼 것인지 그 답을 찾기 위해 마련된 자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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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를 맡은 이재현 참여연대 국제연대위원회 실행위원은 최근 중국의 부상으로 중국 패권에 대한 우려, 동북아시아 통합의 문제 등 어느 때보다 중국에 대한 관심이 높은 상황에서 벌어진 티베트사태는 한국 시민사회가 중국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지 진지한 물음을 던지고 있다며 중국의 민족주의나 인권의 문제를 중심으로 자유롭게 의견을 모아보자고 토론을 제안했다.

티베트에 대한 시각차는 서로 다른 인식의 출발

첫 번째로 ‘티베트 사태와 중국의 소수민족정책’에 대해 발제에 나선 박장배 박사(한국산업기술대학교 강사)는 “티베트에 대한 한국인의 시각은 식민지 경험 및 경제개발 경험과 연결되는 동시에 티베트를 바라보는 서구인의 시각이 반영된 측면이 많고, 티베트를 바라보는 중국의 주류적 시각은 ‘하나의 중국’ 정책이라는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다”고 언급하고 2008년 3월 14일 티베트 사태를 두고 “달라이라마 집단이 사주해 티베트를 중국에서 분리시키려는 폭력 활동이라고 규정하는 중국정부와 티베트가 독립국가였다는 티베트 망명세력간에 역사적 관점의 차이가 있다”며 티베트를 바라보는 시각차가 동일 상황에 대한 다른 인식의 출발점이 되고 있다는 것을 염두에 두고 논의를 시작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이어 박장배 박사는 “티베트 사태는 1720년 이래 청 제국의 티베트 분할 지배, 중화민국 시기의 티베트 일부 장악, 1951년 중국인민공화국의 티베트 해방, 중국식 개조에 대한 저항인 1959년 3월 봉기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고 그 배경을 설명하고, 이번 티베트 시위의 특징 몇 가지를 지적했다. “먼저 중국정부의 무력진압 양상이 1989년 티베트 봉기 때에 비해 상대적으로 심하지 않았고 티베트 청년세대가 비폭력노선을 버리고 무장투쟁노선으로 전환했다는 증거가 발견되지 않는다는 점, 산발적이던 승려들의 시위가 격해진 데는 시민들의 참여가 결정적이었다는 점, 1989년과 비교해 국제적인 지원이 매우 부족했다는 점, 즉 시민단체 등의 목소리는 컸으나 정작 힘을 가진 행정부가 티베트 문제에 행동을 취한 경우는 찾을 수 없었다.”고 언급했다.

티베트 사태는 개발정책으로 인한 민족간 격차, 문화적 박탈감, 정치적 독립욕구의 분출

이어서 “중국의 소수민족 통합정책 기저에는 ‘하나의 중국’이라는 코드가 존재하고 그것은 하나의 국가를 강조하는 ‘다민족통일국가’ 개념과 하나의 민족이라는 ‘중화민족’ 개념으로 구성된다. 특히 1980년대 이후 법적이고 정치적인 개념이던 다민족통일국가 개념이 역사적 개념으로 확장되면서 애국주의 교육 및 ‘중화민족’의 일체성이 소수민족에게 강조된 점이 이번 티베트 사태의 근저에 깔려 있다." 고 설명했다. 이번 티베트 사태에 대해서는 “2008년 3월 티베트 봉기는 1959년 3월 10일 봉기와 1989년의 라싸 시위와 역사적으로 연결되며, 직접적으론 티베트 개발정책이 야기한 민족간 격차와 현지인들의 경제적 소외, 문화적 박탈감과 정치적 독립욕구를 바탕으로 진행된 사건으로 볼 수 있으며 동시에 막대한 물량을 동원한 중국의 개발정책이 개별 민족의 민족의식 강화로 작용한 점도 티베트의 민족적, 종교적 저항을 불러온 측면이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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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발제자로 나선 이남주 성공회대 교수는 중국의 국가구조의 변화의 측면에서 민족문제가 어떻게 처리되어 왔는지 살펴보고, 이 속에서 티베트나 중국 민족주의 문제를 어떻게 이해할 것인지 함께 생각해 보자고 제안했다.

이남주 교수는 “근대 시기 중국의 민족주의 및 민족정책의 변화는 청조가 무너진 이후 통일국가를 건설하는 과정에서 등장한 중화민족의 개념과 그 핵심인 동화주의가 아래로부터의 합의나 동의가 결여된 채 위로부터의 통합으로 이뤄졌다는 점과 사회주의 시기, 문화대혁명 등 사회주의 개조과정에서 중앙정부와 소수민족간의 관계를 악화하는 역사적 경험들이 누적되어 현재의 관계를 규정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중국 민족주의, 패권의 열망보다는 상처받은 민족주의의 표출
 
이 교수는 “1980년대 개혁개방 이후 문화대혁명에 대한 반성과 계몽적 과제, 인도주의에 대한 관심의 증가로 등장한 서화론(중국문명을 낮추고 서구문명을 받아들이자는 논리)이 서구질서에 대항하는 담론의 등장과 1989년 천안문사태 이후 중국과 서방세계의 갈등과 마찰 등으로 퇴조하는 과정에서 민족주의가 재등장하게 되었다”며 그 형태는 주요하게 “애국주의 교육 강화 등으로 표출되는 ‘국가주도의 민족주의’와 일련의 민족주의적 경향의 시리즈 출판물이나 일본 교과서 왜곡에 대한 대중적 시위, 이번 티베트 사태에서 표출된 애국주의 등 대중들의 자발적인 민족주의 흐름인 ‘대중적 민족주의’로 구분된다.”고 언급하고 이 두 민족주의가 서로  이용하고 갈등하는 길항관계로 나갈 것이라고 언급했다.

또한 중국 민족주의의 성격과 관련해 “중국민족주의를 국가에 의해 동원되는 민족주의로 보는 것은 무리가 있으며 국력의 성장에 따른 패권의 열망이라는 일부의 지적도 있지만 오히려 좌절감이나 패배로 인한 상처받은 민족주의로 이해하는 것이 맞지 않겠냐”고 의견을 피력하고, 이번 티베트 사태와 관련해서는  “티베트 내의 계층분화 과정이 새로운 갈등구조를 만드는 것은 아닌가 하는 문제의식이 있고, 또한 중국정부가 이번 사태에서 달라이라마를 연관시키며 협상의 여지를 주지 않은 면이나 교묘하게 한족과 티베트민족간의 내부갈등을 부추킨 것 등은 문제가 있다고 본다. 또한 국제사회의 티베트문제 대응은 금새 봉합되어가는 현재의 추세가 앞으로도 크게 변하지는 않을 것으로 보여 결국 티베트의 인권과 민족자결권의 문제는 결국 제 3의 길을 찾는냐에 달려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중국의 민족주의에 대한 대응과 관련해 “중국의 민족주의가 국제적 갈등을 유발하는 것을 막는 것이 중요하며, 감정적 충돌보다는 민족주의의 위험성과 부작용에 대한 인식을 제고하도록 하는 대응이 필요하며, 중국의 민주화에 관련해서는 인권문제에 대한 관심과 정치화 사이의 구분을 일관된 입장에서 견지하는 자세로 제재보다는 도덕적 힘에 기초한 설득이 효과적이라고 본다.”고 의견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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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론에 참여한 홍성태 상지대 교수는 “중국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중국을 구성하는 민족적 실체를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며, 55개의 소수민족으로 구성되는 중국에서 한족의 비율은 93% 영토는 50%로, 한족이 한족화 정책을 바탕으로 끊임없이 한족의 영향력과 영토를 확장하려는 한족 민족주의가 현재의 중국과 소수민족 갈등의 핵심적인 측면”이라고 지적하고 “한족의 민족주의는 티베트 지배나 동북공정에서 보여지는 것과 같이 제국주의의 속성을 드러내고 있어, 이번 티베트 문제 역시 한족 제국주의의 측면에서 이해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정웅기 참여불교재가연대 협동처장은 “중국이 강력한 식민지 동화정책에 입각한 불공정한 정보를 보도하는 것이 티베트 문제를 왜곡하고 있다”며 국제사회가 이것을 그대로 받아들여서는 안된다고 지적했다. 3.14 티베트 시위의 배경에 대해서는 “2007년 9월, 중국이 3-4년간 지속해오던 달라이라마 측과의 대화를 갑자기 중단해 본토귀향의 기대가 꺽이면서 내재되었던 분노의 표출이자 달라이라마의 비방이나 사진을 밟고 지나가게 하는 등의 애국주의 훈련에 대한 반발이 작용했다”고 언급하고 “이번 티베트 사태는 올림픽을 앞두고 중국정부가 과도하게 진압한 기획성 강한 사건이라고 생각한다”며 중국의 문제는 민족주의가 아니라 패권주의자 국가주의라고 지적했다.

조희연 성공회대 교수는 티베트 사태를 바라보는 관점과 관련해서 “한국사회는 중국견제론이나 반중국적 입장에서 문제를 제기하는 서방이나 미국의 접근방법과는 거리를 두고 티베트 사태를 논의하는게 적절하다고 본다”고 밝히고, 티베트의 자결이나 독립문제는 “민족자결주의의 연장선상에서 티베트민중의 자결적인 판단에 맡겨야 하고 티베트 내에서 자결의 정치적 방향을 둘러싼 티베트 민중들의 아래로부터의 저항들이 각축하고 있을 것이며 티베트 민중의 정치적 지향을 현 단계에서 절대할 필요는 없으며 여유를 두고 지켜보자”고 제안했다. 또한 지구화가 기존의 민족국가가 갖는 정체성 독점을 약화시키고 소수민족의 문화적 정체성을 강화하는 측면이 있다는 지적과 함께, “한국의 과잉민족주의와 중국의 과잉민족주의가 상승작용하면서 갈등하는 양상은 동북아 평화구도에서도 적절하지 않는다”며 우려를 표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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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달 27일 올림픽 성화봉송을 놓고 일부 젊은 중국인들과 다양한 한국인 그룹 사이에 충돌이 있었고 폭력사태가 발생했다. 한국에 체류하던 젊은 중국인들이 한국에서는 처음으로 집단적 애국주의 광기를 표현했고 그 반발로 반중국 여론이 일고 있다. 중국 대사관이 조직적으로 개입한 것이 확인되었고 한국 검찰까지 나섰다. 차이나타운에 발길이 줄고 중국인에 대한 배타적 태도가 훨씬 많이 눈에 띠었다. 수면 밑에서 티베트에 관한 논쟁이 번져나가고 있다. 며칠 지났으니 몇 가지 주제를 짚어보고 깊이 생각할 거리를 찾아보았으면 한다.
 
'올림픽과 티베트 문제를 연계시킨 것은 정치적이고 잘못된 일인가?'
 
한국 사회에서는 티베트에서의 심각한 인권침해에 대해 이제야 관심을 갖기 시작했으니 오히려 뒤늦은 감이 있고, 이 상황을 베이징 올림픽과 연계시키기로 한 것은 피해 당사자인 티베트 망명 그룹과 독립운동 그룹의 결정이므로 존중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1988년 서울 올림픽 때 도시빈민 철거문제와 노태우 정권의 문제점을 외국에서 상당히 문제제기했지만 이것이 올림픽을 공격한 것으로 간주되지 않았다. 한 나라 정부가 올림픽을 이용해서 독재나 인권침해를 가리고자 한다면 그것이 오히려 더 정치적 음모에 가깝다고 할 것이고 중국 정부가 이러한 비난에서 그리 자유롭다고는 볼 수 없다. 이는 인권단체들만 고민해야 할 문제가 아니라 올림픽에 참여하는 운동선수들도 주최국 정부의 정당성과 인권 수준에 대해서 관심을 가져야 한다. 그런 것이 오히려 올림픽의 정치화를 막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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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베이징 올림픽 성화가 도착한 지난 달 27일 오전 서울 올림픽 공원에서 한국내 거주하는 중국인들이 올림픽을 축하하는 집회를 갖고 있다. ⓒ뉴시스 

'현재 국제정치 역학을 고려해서 중국 정부를 좀 배려해주고 외세에 대한 피해의식을 고려해 주어야 하지 않는가? 또 대국인 중국을 지나치게 자극하면 원하는 결과의 반대를 얻는 역효과를 내는 것 아닌가?'
 
결국 조심해라라는 경고인데, 역효과를 얻을 것이라고 확증할 만한 근거가 별로 없는 우려일 뿐이다. 그 만큼 중국 사회의 애국주의 광풍이 무섭다는 반증일 것이다. 히틀러가 등장할 때 어려운 상황의 독일을 좀 더 배려해 주었어야 했는지, 서구 열강과 경쟁해서 아시아의 자부심을 얻고자 했던 일본제국을 좀 더 배려해야 했는지는 의문이다. 이스라엘의 만행도 배려하고 조심해서 비판한다? 식민지 피해 경험 때문에 그렇다는 것은 피해의식이 특정한 광기와 결합되면 더 공격적인 태도로 변한다는 점에서 중국 변호의 근거가 되지 못한다. 피해의식은 파시스트들도 잘 쓰는 상품이다. 소수 집단의 인권과 자결권을 보장하라는 외부의 관심에 대해서 중국 사회에서 어떤 역효과가 난다면 그 역효과는 중국의 정치와 권력구조 그리고 대중문화의 산물일 것이다.
 
'중국 점령 이래 생활 조건이 더 좋아졌고 중국 정부가 끝까지 불허할 텐데 티베트가 꼭 독립할 필요가 있나? 독립한다고 티베트인들의 생활과 민주주의, 인권 이런 문제가 해결될까? 중국에 남아서 협상하는 것이 더 낫지 않나?'
 
이건 강자의 어법이다. 제국주의자들의 어법이다. 한국도 일본 강점 덕분에 근대화되었고 잘 살게 되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의 어법이다. 한국 사회에서는 인권이나 민주주의 기준보다 친중국 정서를 더 중시하는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일단 티베트인들에게 말할 자유, 결사할 자유, 행동할 자유부터 주고 나서 그 다음에 이 질문을 하던지 말던지 하면 된다. 앞뒤가 바뀌었다. 그만 죽이고 그만 고문하고 그만 투옥하고 물어야 한다. 티베트 독립이나 더 높은 자치는 절대 안된다는 중국 정부의 체계적인 선동과 세뇌를 중단한 다음에 물어야 한다. 티베트인들은 원래 야만적("봉건적")이었으니 중국이 해방시켜주었다는 선동을 중단한 다음 물어도 된다. 고문하고 학살한 것에 대해서 사과도 하고 반성도 한 다음 물어도 늦지 않다. 그리고 나서도 티베트 사람들이 대부분 중국에 남겠다고 하면 별 문제 없지 않겠는가. 그럴 리 없으니 탄압하는 것이겠지만.
 
'미국과 친미반중국 세력이 티베트 인권 문제를 중국때리기에 악용하는 것은 어찌해야 하나?'
 
이것은 중요한 문제다. 일부 중국 시위대의 폭력 보다 훨씬 더 중요한 문제다. 한국 사회에 티베트 인권운동 그룹들이 이 문제에 잘 대처해야 한다. 일단 미국 정부와 친미반중국 세력의 정치음모적 접근은 잘못되었다고 시민사회 내부에서 강한 질타가 있어야 한다. 세계적으로 인권문제에 미국 정부가 개입하면 골치아파진다. 조폭이 자선사업을 하는 꼴이랄까. 이럴 때 인권 단체들은 이중의 비판을 제기할 필요가 있다. 즉 미국 정부의 접근과 일부 기독교세력을 포함한 반중국 세력의 접근에 대해서 호된 비판을 가하는 동시에 티베트 문제를 제기함으로서 이 문제에 정면 대응할 필요가 있다고 보인다. 중국때리기 방식의 접근을 비판하지 않으면서 티베트 문제를 제기하는 것은 위험하다. 인권문제를 제기할 윤리적 자격이 중요하다. 중국 시위자에 대해서 엄벌을 요구하며 일종의 보복을 설파하는 것도 매섭게 비판해야 한다. 한국에서 반중국 민족주의 선동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패권국가적 접근, 정치적 이해관계에 따른 당파적 접근, 민족주의적 접근에 대해 항상 비판을 유지하면서 모든 인권 문제를 불편부당하게 대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구더기 무서워 장 안 담글 수는 없으니. 서구가 한 짓은 더 한데 뭘 그러냐고 하는 사람이 많겠지만 인권의 영역에서는 답변할 가치가 없다.
 
어떻게 해야 하나?


27일 종각에서 광화문으로 행진한 비교적 합리적인 티베트 인권 행진에서도 문제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일부 사람들이 동북공정과 티베트 점령이 같은 것이라며 한국도 언젠가 티베트 처럼 당할 것처럼 선동한 것이나, 어떻게 한국의 수도 한복판에서 저런 난동을 펴는지 분개하는 모습은 이해가 가는 면도 있지만 분명 잘못된 것이다. 그러한 정서의 연장선상에서 지금 국내 체류 중국인들에 대한 반감이 다양하게 표시되고 있는데 이건 큰 문제다. 이것인 중국 정부가 외세에 대한 피해의식을 앞세워 탄압과 인권침해를 정당화하는 것과 같은 논법이다. 한국의 민족주의를 동원해서 중국을 비판하겠다는 것인데 이 길로 가면 모두 망한다. 인권과 평화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이런 집단적 피해의식을 그만 동원해야 한다. 모든 형태의 민족주의에 경계령을 내려야 한다. 집단의 피해를 앞세우는 순간 독재자, 파시스트, 민족주의자, 군부 보통 이런 사람들이 미소를 짓기 때문이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하나? 민족을 생각하게 하는 집단 호칭을 국어에서 싹 빼고 생각하고 말하자. '중국인들'이라고 하지 말고 '일부 폭력행위자'라고 말하자. '감히 남의 나라 수도에서 이런 일이..' 하면서 분개하는 대신 '평화적 시위에 폭력을 행사하다니'라고 할 수 있다. '중국이 한국을 얕보니까'라고 말하지 말자. 그런 중국과 한국은 인격체로 존재하지 않는다. '중국인들은...'이라는 주어를 가급적 피하자. 애국주의 광기와 관련되어서 주 책임은 중국 정부이므로 '애국주의 교육에 피해자인 중국인들', '정부의 세뇌공작으로 편견을 갖게 된 중국 청년들은' 하면서 이해할 수 있다. 중국 뿐만 아니라 다른 나라에 대해서도 이렇게 국민이나 민족을 하나의 인격체로 보는 걸 피하면 더 많은 진실을 드러낼 수 있을 것이다. 한국도 마찬가지 - '강부자' 내각과 한나라당에게 하나의 나라가 없듯이 원래 하나의 나라에 한 나라는 없다.

이대훈(참여연대 평화군축센터 실행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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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화봉성에서 보인 중국인 폭력행위에 대한 기자회견

4월 27일 베이징 성화 봉성이 서울에서 있었습니다. 한편 거리에는 티베트 평화와 인권을 위한 거리 시위가 평화적으로 있었습니다. 그러나 서울시청 주변에서 일부 중국인들이 시민들에게 폭력을 가하는 사태가 벌어졌습니다. 이에 중국 정부에 폭력사태에 책임을 지도록 요구하는 기자회견이 있습니다.


시민들의 많은 참여와 관심 부탁드립니다.


*성화봉성에서 보여진 중국인 폭력행위에 대한 기자회견*

- 일시: 4월 29일 화요일 오후 2시

- 장소: 중국대사관앞 (경복궁 2번출구, 직진 500M)
- 주최: 티베트평화연대

Posted by 영기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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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에게 그곳은 어떤 의미인가" 
 
 히틀러가 꿈꿨던 낙원, 티베트

 
  1933년 미국의 소설가 제임스 힐튼이 쓴 소설 <잃어버린 지평선>이란 소설에 아름다운 자원을 묘사한 낙원이 소개된다. 샹그릴라(Shangrila)로 부른 그곳은 동양의 신비와 지혜를 찾는 서구인들을 자극하여 히틀러를 비롯한 수많은 사람들을 히말라야로 이끌었다. 오리엔탈리즘의 하나로 비판받기도 하지만 어쨌든, 티베트 문제가 유독 유명 헐리우드 스타들을 비롯하여 유럽의 지식인들에게서 지지를 받는 것도 티베트불교가 가진 그 신비로움에 대한 동경에서 비롯된다고 볼 수 있다.
 
  1989년 노벨평화상을 받은 이후 현재까지도 달라이라마는 종교를 뛰어넘어 세계적인 영적 지도자가 되었고 티베트 또한 고대의 지혜를 배우고 명상하려는 수많은 여행자들의 이상향으로 자리 잡았다. 불교와 명상에 별 관심이 없는 사람들에게도 여러 만화와 소설, 영화를 통해 티베트는 뭔가 신비로움을 간직한 평화의 땅으로 인식되었다. 적어도 최근 며칠 사이에 벌어진 일이 있기 전에는….
 
  한국 운동에는 낯선 티베트의 비극
 
  3월 14일을 전후하여 외신은 긴급하게 티베트에서 대규모 시위가 벌어졌고 중국정부의 무력진압으로 인해 많은 사상자가 발생하였다고 보도하기 시작하였다. 시위대의 요구가 무엇인지 정확히 몰랐지만 많은 인명이 희생당했다는 뉴스는 올림픽을 앞둔 중국의 상황과 맞물려 한국의 주요 언론에서도 비중 있게 다뤄졌다. 마침 티베트출신 이주노동자의 연대요청이 있었고 부랴부랴 한국 단체들도 중국대사관 앞 기자회견과 촛불집회를 준비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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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련의 과정에서 느낀 것은, 한국의 국제연대운동은, 아니 한국사회는 티베트에 대해서 아는 것이 너무 없다는 것이었다. 티베트 관련 집회를 준비한다는 이유로 언론사에 취재를 받으면서 외신 내용만을 답할 수밖에 없는 게 현실이었다. 또 지난 버마 민주화지지 촛불집회와 반전집회와 비교해보아도 많은 한국 단체들의 참여는 없었다.
 
  물론 급하게 조직한 기자회견에도 불구하고 36개 단체가 연명한 것은 고무적인 일이지만 분명, 티베트 시위를 바라보는 데 있어서 여러 이견들이 존재하는 것은 사실이다. 비슷한 인권사안이더라도 미국을 비롯한 서구가 지지하는 사안에는 신중한 한국운동의 특수성에 원인이 있는 것인지, 아니면 여전히 국제이슈에 대해서는 무관심해서인지 알 수는 없다. 티베트 문제뿐만 아니라 파룬궁을 비롯한 여러 중국내 인권문제에 대해서 보이고 있는 암묵적인 한국 운동의 거리두기는 북경 올림픽을 앞두고 변화가 필요한 시점이다.
 
  시민들의 자발적 티베트 지지 운동
 
  상대적으로 저조한 한국 단체들의 참여와 비교해보면 일반(?) 네티즌들의 자발적인 운동은 정말 인상적이다. 티베트를 다녀온 사람들이 만든 온라인 카페를 중심으로 이들은 스스로 계획을 짜고 서로를 북돋우며 티베트를 지지하는 한국사회의 흐름을 만들어가고 있다. 생전 처음 만난 사람들이 티베트에서 만난 친구들을 걱정하는 마음하나로 뭉쳐서 움직이는 모습은 소위 '운동권'인 내게 신선한 충격이었다. 왜냐하면 언제부턴가 보도자료 만들고, 단체연명 조직하고 대표자 발언 조직하는 것이 나의 운동의 중요한 부분이 되어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분들의 모습은 국제연대운동을 고민하던 내가 원했던 바로 그것이었다. 사람이 없고, 돈이 없고, 언론이 관심을 가져주지 않아서 국제연대운동 하기 힘들다고 투덜거리던 내게 단 며칠사이에 90만 원이 넘는 돈을 모금하고 자발적으로 역할을 분담하는 이들의 모습은 '티베트가 과연 이들에게 어떤 의미인가'를 궁금하게 만들 정도였다. 고집스럽게 비폭력평화노선을 견지하는 달라이라마와 이들의 열정은 어쩌면 닮아 있는 것도 같다.
 
  하늘나라의 일이 아니라 바로 우리의 일
 
  히말라야 산맥 위에 자리 잡은 티베트가 서구인들에게 동경의 대상이었다면 한족에게는 배척의 대상이었다. 각종 무협지만 보더라도 한족의 무림세력들은 티베트불교를 중원을 침공하는 변방의 사악한 종교집단으로 묘사하고 있다.(심지어는 이들을 막기 위해 같은 한족인 정파와 사파가 힘을 합치기도 한다) 중국정부가 '인민전쟁'이나 '생사를 건 투쟁'이라는 극한 표현을 동원하며 티베트를 탄압하는 것은 티베트가 가진 엄청난 자원 때문이지만 이러한 뿌리 깊은 중화사상에서 출발하고 있다.
 
  티베트인과 한족간의 역사적 배경까지 우리가 알 필요는 없겠지만 일제지배의 아픔과 광주의 비극을 경험한 우리에게 티베트인들의 현실은 머나먼 하늘나라에서 벌어지는 일만은 아닐 것이다. 설령 누군가에게는 봉건적 종교와 사회주의체제간의 다툼이거나, '인권'을 핑계로 내정간섭을 일삼는 서구제국주의의 음모일수도 있다. 그러나 불안정한 신분임에도 불구하고 마스크를 쓰고 거리로 나올 수밖에 없는 국내 거주 티베트 인들에겐 요 며칠의 일들은 비교할 수 없는 고통의 시간들일 것이다.
 
  달라이라마가 전 세계에서 유일하게 갈 수 없는 나라가 중국과 한국이라고 한다. 또한 최근 한 홍콩 언론의 보도에 의하면 한국인들이 중국의 무력진압에 가장 비판적인 것으로 조사되었다고 한다. 일반 국민들의 수준에 못 미치는 '저질외교'는 비판받아 마땅하지만 아시아에 대한 정보와 이해가 부족한 한국의 운동 수준 역시 끌어올려야 한다.
 
  촛불집회 때 어떤 분이 "경제도 어려운데 티베트가 웬 말이야?"라고 역정을 내셨다. 아무리 경제가 어려워도, 아무리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따야 하더라도 사람의 생명이 우선이다. 그래서 총칼을 동원하여 시위대를 학살하는 권력에 대한 비판은 다른 무엇보다 우선되어야 한다. 당장 지금 티베트에서 폭력은 멈춰져야 한다. 



나현필 / 국제민주연대 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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