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를 생각하는 사람들 23차 문화나눔마당 시민과 함께 하는 좌담회]
티베트와 중국 그리고 2008  티베트 항쟁
 
일시      : 2008년 7월22일(화) 오후 7시30분
이야기    : 남카스님(한국티베트공동체센터 회장), 정웅기(티베트평화연대 대변인)
장소      : 인권연대 교육장 (지하철 : 4호선 한성대입구역 7번 출구 / 버스 : 한성대입구역)
참가비    : 무료
후원      : 티베트평화연대 (www.peacetibet.com)
문의      : 문화를생각하는사람들 (02-336-5642, www.artizen.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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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3월 발발한 티베트인들의 평화시위에 대하여 중국정부는 폭력적인 탄압을 자행, 250명 이상이 숨지고, 4천명 이상이 투옥되었다 한다. 중국정부는 소수의 티베트인들이 폭동을 일으켜 법에 의거해 진압하였다고 말하지만, 이미 시위 초기 군대를 투입, 발포하였음이 밝혀졌고, 평화로운 시위대를 향하여 탱크를 돌진했다는 보도등을 보았을 때 이는 거짓일 가능성이 높다. 티베트인의 평화시위를 총과 탱크를 앞세워 강경진압하면서, 시위대가 피신한 사원을 봉쇄하여 식량, 전기를 차단하는 등 반인권적 행위를 일삼고 있다.

서울에서의 베이징올림픽 성화봉송 때 일부 중국인 유학생 폭력시위로 인해 우리나라에서도 큰 관심을 집중시켰던 티베트 사건은 이후 벌어진 버마사이클론 피해, 중국쓰촨성 대지진, 미국산 쇠고기 광우병사태 등으로 사람들의 관심에서 멀어진 느낌이다.
쓰촨성 대지진 이후에 불고 있는 중국을 향한 전 세계의 동정여론은 그 이전까지 팽배하던 반중국 정서와 티베트에 평화를 외치는 목소리를 잠식시키며 아이러니하게도 올림픽을 앞두고 온갖 악재로 곤혹스러웠던 중국의 호재로 작용하고 있고, 더욱 강화된 중화민족주의는 티베트를 더욱 고립시킬 염려를 불러일으킨다.

문화를생각하는사람들은 한국티베트공동체센터의 남카스님과 티베트평화연대의 정웅기 대변인을 모시고 국제사회의 현안으로 떠오르며 올림픽을 목전에 둔 중국의 뜨거운 감자로 주목받고 있는 티베트 사태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을 준비했다.한국티베트공동체센터 회장인 게셰 텐진 남카스님은 티베트 사태의 궁극적인 원인에 대해 “‘중도정책(Middle-Way Policy)’을 중국정부가 귀 기울이지 않기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티베트 국민들은 중국 지배하의 현재 상황을 받아들일 수 없다. 그렇다고 티베트의 독립을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이 두 입장 사이의 중도를 걷고자 하는 것이 바로 중도정책이다. 중도정책은 티베트인들에게 문화·종교·민족정체성의 보호와 보전을, 중국에게 안보와 영토의 보존을 제공한다는 점에서 누구에게도 피해가 되지 않는 정책이다.” 티베트망명정부의 입장을 대변하며 티베트평화연대를 이끌고 있는 정웅기 대변인은 “이른바, 티베트독립론, 서방의 중국견제론 등 대다수의 언론이 중국 정부의 시각에서 티베트 사태를 바라보고 있으며 일부 진보진영에서 조차도 편향된 시각으로 이 문제에 접근하고 있다”고 강하게 비판하고 있다.

23차 문화나눔마당은 티베트 사태의 잘 알려지지 않은 내막과 더불어 치우치지 않고 균형된 시각으로 바라볼 수 있게 도와 줄 것이다. 참가비 무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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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기획] 아시아의 초국가적 문제와 시민사회의 아시아연대


[아시아 포럼]은 산적한 초국가적 문제들의 현주소를 검토하고 아시아와 한국의 시민사회가 이에 올바르게 접근하는 방법을 모색하기 위해 마련된 자리입니다.


아시아의 초국가적 환경 문제와 시민사회의 연대

환경문제는 진원지에 상관없이 그 영향력이 국경을 넘어서 퍼지는 대표적인 초국가적 문제입니다. 동아시아 지역은 최근 세계화로 빠르게 자원 개발이 이루어 지면서 환경 파괴 현상이 심각하게 나타나고 있습니다. 이에 따라 국가간의 마찰도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습니다.    


이번 포럼에서는 아시아의 대표적인 환경문제인 황사, 수자원 개발과 열대림 개발에 따른 글로벌 차원에서의 환경문제의 심각성을 검토해 보고 아시아 정부와 시민사회의 노력을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여러분의 많은 관심과 참여 부탁드립니다.


  • 발제: 동남아시아의 초국가적 환경문제: 메콩강 하류 유역을 중심으로
  • 조영희/ 한국동남아연구소 선임 연구원

  • 일시: 2008년 7월 25일(금) 오후 3시, 경희대 본관 2층 대회의실 
            
  • 문의: 참여연대 국제연대위원회 차은하 간사 02-723-5051, silverway@pspd.org

  • 오시는 길 : 지하철 1호선 회기역 1번 출구, 마을버스 이용/ 버스: 1215 273 1222 147 261


    차기 아시아 포럼 안내

    주제: 21세기 새롭게 떠오르는 광역질병문제 (허창덕 영남대학교 사회학과 교수)
    일시: 9월 5일(금), 오후 3시, 경희대학교 본관 2층 대회의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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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원의 저주가 비켜간 나라, 몽골 

그 곳에 사람이 살고 있었네
 
몽골-푸르다 못해 시린 하늘, "드넓은" 이란 말이 담아 내기에는 부족한, 카메라 렌즈 저 밖으로 한도 끝도 없이 펼쳐지는 초원의 나라, 그리고 한가로이 풀을 뜯어먹는 양떼들. 딱 이것이 몽골로 떠나는 비행기안에서 조차 내가 가지고 있던 몽골에 대한 이미지의 전부였다.
 
그곳에도 사람이 살고 있을까? 물론이다. (이 질문이 몽골 국민들의 기분을 상하게 했다면 용서를 바란다.) 몽골에서 온 수많은 이주노동자들이 있지 않은가. 하지만 칭기스칸 이래 역사에서 사라진 듯한 몽골이 이주노동자의 모습으로, 다문화가정의 모습으로, 혹은 유목주의를 외치며 울란바타르 시내를 휘젓는 한국인들을 상대로 다시 한국인들에게 나타났을 때, 이들의 사라진 역사, 사라진 삶의 모습이 머리 속에 도저히 그려지지 않았다. 게르와 흐미로 대표되는 여행사 가이드에 나오는 박제화된 몽골인의 모습이 아니라, 그야말로 살아 꿈틀대면서 삶의 고단함에, 역사의 질곡에 몸부림치는 몽골인의 모습이 그려지지 않았다. 그런데 사람이 살고 있었다. 울란바타르 공항에서 호텔로 가는 길에서, 그리고 다음 날부터 이어지는 일정 속에서 몽골은 NGO의 나라로, 빈곤과 부패, 여성문제와 민주주의로 끊임없이 싸우는 나라로 등장했다.
 
자원의 저주가 비켜간 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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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주영 





1990년 우리 식으로 따지자면 데모 몇 번하고 싱겁게(?) 체제 전환에 성공한 이 나라를 어떻게 봐야 할 것인가? 스탈린식 통치체제가 그렇게도 허약했단 말인가? 단순히 '허약한 국가-강한 시민사회' 식의 도식으로는 설명하기 힘든 측면이 있다. 1921년 혁명에 성공한 이래, 몽골의 스탈린으로 대표되는 초이발산과 몽골의 후르시쵸프, 안드로포프 등으로 인식되는 체덴발의 장기집권이 지속될 수 있었던 것은 "허약한" 국가로서는 도저히 설명이 안 된다. 게다가 체제 전환이전까지만 해도 몽골에서는 이렇다 할 시민사회라고 하는 것도 존재하지 않았다.
 
한가지 의심할 수 있는 것은, 혁명이 외부로부터, 그리고 위에서 이식되었기 때문에 외부적 요인이 붕괴되면 한번의 가격에도 일순간에 붕괴될 수밖에 없지 않겠는가 하는 것이다. 이런 나의 의문을 스티븐 피시는 다음과 같이 정리하였다. 그는 먼저 구 소비에트 블록에서 민주주의로의 전환과정을 거쳤다가 다시 권위주의 내지 일인 독재로 나아가는 중앙 아시아 국가들과 몽골을 비교하면서 민주주의로의 성공적 전환을 막는 요인들이 무엇인지를 열거하고 이들 요인들의 부재로 인해 몽골 민주주의가 상대적으로 성공적인 안착을 하게 되었다고 보았다.
 
먼저, 우리의 상식과는 반대로 몽골은 다른 중앙 아시아 국가와 비교해 봤을 때, 상대적으로 자원빈국(?)속한다. 지금이야 국제원자재가격이 급등했기 때문에 몽골에 대한 관심이 이전보다 많이 늘어났지만, 몽골은 카자흐스탄처럼 미국, 러시아, 중국 등이 탐 낼 만큼 거대한 유전을 가지고 있지도 않고, 투르크메니스탄처럼 세계 제 3위의 천연가스 매장량을 기록하고 있지도 않다. 바로 이런 점이 몽골이 상대적으로 강대국의 개입에서 자유로울 수 있었던 요인이다. 게다가 지정학적 중요성도 그리 크지 않아서 미국이나 러시아가 무조건적으로 미는 독재자나 권위주의 정권이 부재하다는 점도 역설적으로 몽골의 민주화에 기여하였다고 본다.
 
결국, 빈곤에 허덕이는 몽골인들의 염원과는 반대로 이러한 상대적 자원빈곤이 몽골의 민주화와 민주주의로의 전환에 기여하였다고 볼 수 있다. 또한 카스트로와 같은 위상을 갖는 인물이 체제 전환시점에서 몽골에서는 부재하였다는 점 역시 몽골로서는 다행이라고 할 수 있다. 독립의 아버지, 민주화의 기수와 같은 위상을 갖는 인물이 계속 집권하고 있다면, 이는 여러 포스트 공산주의 국가에서 보듯이 권위주의로 회귀하는데 중심적인 행위자가 될 가능성이 농후하고, 민주주의를 제도화하는데 걸림돌로 작용할 가능성이 높다.
 
결국 몽골의 민주주의로의 전환은 "부재"로부터 가능했다고 하는 역설이 가능해진다. 카자흐스탄의 석유와 투르크메니스탄의 천연가스가 자원의 저주를 불러와 정치계급의 부패와 국가기구의 왜곡을 가져왔다면, 몽골은 이러한 자원의 상대적 부재로 그나마 체제전환에 성공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하지만, 최근의 국제원자재 가격의 급등과 캐나다 등 외국자본과의 합작으로 인한 유전개발 결과에 따라 몽골 민주화의 미래는 여전히 불안하다고 할 수 있다. 제발, 자원의 저주에 걸리지 않기를. 몽골인들이 바라는 자원이 발견되었다 하더라도 말이다.
 
동사무소와 선관위, 그리고 N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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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몽골의 투표소. ⓒ이주영




이번 몽골 프로그램에서 우리의 관심은 단연 선거였다. 선거 시기에 맞춰서 이 프로그램을 추진한 이유 중의 하나가 선거시기에 사회적, 정치적 갈등이 어떻게 표출되는지, 그리고 선거에서의 시민단체의 역할은 어떠한지를 보고자 하는 것이었다. 이번 선거에서 선거감시단을 구성한 6개의 시민단체 중 몇몇을 방문한 결과, 우리는 몇 가지 몽골 사회가 안고 있는 특성을 발견할 수 있었다. 오랜 사회주의 정권에도 불구하고, 민주주의의 제도화라는 측면에서 국가기구의 미비함은 시민단체가 국가의 역할을 대신하는 형태로 나타나고 있다.
 
예를 들면, 지방에서 이주한 사람들의 경우, 울란바타르 시 주민등록청에 등록을 해야 하는데, 여기에 대한 홍보와 안내 역할 및 주민등록청 직원에 대한 교육을 시민단체가 많이 하고 있었다. 이렇게 시민단체가 주민등록에 집중하는 이유는 바로 주민등록 문제가 한편으로는 시민의 선거권을 제약하고 선거를 왜곡하기 때문이다. 가난한 시골 이주민들이 몇 푼의 주민등록비를 내지 못해 선거권을 행사하지 못하거나, 매표 행위, 이중 유권자 등록 등으로 선거 부정의 빌미를 제공하였다.
 
더구나 한 선거구에서 무더기로 유령 선거인 명단이 나온 것은 그만큼 주민등록 문제와 선거인 명부 관리문제가 이번 선거의 투명성을 가르는 관건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국가의 역할이 있고 시민단체의 역할이 따로 있는데, 왜 시민단체가 국가의 역할을 하느냐라고 하는 우리 방문단의 의문은 몽골과 같은 체제 전환국가의 특수성을 이해하지 못한 오만한 모습으로 비쳐질 수 있었다. 도대체 한 줌의 선관위원이 뭘 할 수 있겠는가?
 
건설족과 광산족이 지배하는 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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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주영 






인민혁명당과 민주당은 태생부터 현격하게 차이가 난다. 인민혁명당이 구 공산당의 후신이라면, 1990년 몽골 민주화시기 민주화를 추동 했던 세력들이 이합집산하면서 만든 정당이 민주당이다. 물론 여기에는 민주연합이 중간에 매개되어 있긴 하지만, 민주연합의 정책 실패가 가져온 결과 인민혁명당이 재집권에 성공하면서 탄생한 것이 민주당이기 때문에 두 집단 사이에는 약간의 차이는 있겠지만, 큰 본질적인 차이는 없다고 하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민혁명당과 민주당의 공약을 들여다 보면 거의 큰 차이를 발견하기 힘들다. 우리 나라 건설족들이 아파트 건설로 국가 경제에 활력(?)을 불어 넣고 있는 것만큼이나, 몽골에서는 광산 개발에 대한 기대가 크다. 그래서 인민혁명당이나 민주당은 광산개발로 나온 이윤을 국민들에게 돌려준다는 공약을 내세웠다. 게다가 울란바타르 시내 외곽에 위치한 게르지역에 아파트를 짓겠다는 공약 역시 두 당이 별 차이가 없다. 한 마디로 인민혁명당과 민주당은 공약만을 놓고 본다면, 우리 나라 정당들이 장터에서 시장 상인들이 가격 흥정하듯이 경쟁적으로 지난 대선에서 목표 경제 성장률을 높여 부른 것처럼, 한 쪽이 100만 투그릭을 제시하면 다른 한 쪽에선 150만 투그릭을 주민들에게 돌려 주겠다고 하는 식으로 대동소이하다고 할 수 있다.
 
본질적으로 이들은 시장 개방과 신자유주의를 지향한다는 측면에선 같다고 할 수 있고, 단지 얼마나 속도를 내느냐 하는 점에서 차이가 난다고 할 수 있다. 시장 개방과 사유화에 더 열성적으로 밀어붙인다는 면에서 몽골 민주당은 우리가 생각하는 식의 진보적인 정당 내지 자유주의적인 정당의 모습과는 거리가 멀다. 게다가 부패에 관한 국민들의 인식 역시, 인민혁명당이나 민주당이나 별반 차이가 없다는 식으로 비록 제 2정당이긴 하지만 그리 고운 시선을 받지 못하고 있다.
 
문제는 우리가 그래왔고, 지금도 벗어나고 있지 못한 개발론적 사고에서 몽골 국가와 정치인들이 벗어나 있지 못하다는 점이다. 우리나라보다 몇 배나 척박한 환경에서 생태적인 측면을 무시하고 진행되는 밀어붙이기 식의 개발은 그 몇 배로 인간에게 돌아온다는 것을 감안할 때, 자연의 복수는 이미 시작된 셈이다. 점점 더 심해지는 황사와 수자원의 고갈은 이제 몽골인들만의 문제는 아닌 것이다. 지속 가능한 개발, 그것은 몽골에서는 단순히 이미 어느 정도 먹고 살만한 국가들이나 내세우는 배부른 소리가 아니라 많은 유목민들의 생존권이 걸린 문제인 것이다. 그리고 이 생존권은 바로 인권인 것이다.
 
도대체 한 선거구에서 세 명의 입후보자를 내는 정당이 있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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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몽골 총선의 투표 용지. ⓒ이주영





몽골 방문 며칠 째 계속 드는 의문중의 하나는 왜 한 선거구에서 인민혁명당이 세 명의 후보자를 내는가 하는 것이다. 지난 번까지 소선구제였다가 이번에 중선거구제로 바뀌면서 나타난 현상이었다고는 하지만, 상식적으로 생각해 볼 때 비용과 성과를 생각해 보면 납득이 되지 않았다. 예컨대, 인구수에 따라 두, 세 명의 입후보자를 뽑는다 하더라도 한 정당에서 여러 명의 후보자를 내면 그 후보자들끼리도 경쟁을 하게 되는 구조이고 그렇게 되면 정당에서 선거에 쏟아 부을 수 있는 자원이 분산되면서 다른 정당과의 경쟁에 불리해 질 수도 있는 것이다.
 
선거라는 게 될만한 사람 한 사람에게 모든 자원을 쏟아 부으면서 총력전을 펼쳐도 될락 말락한다는 게(물론 경합지역에서는) 내가 이때까지 갖고 있었던 상식이었다. 이런 상식에 위배되는 현실이 주는 퍼즐을 어떻게 풀어야 할지 끙끙거리면서, 한 정당(시민의 의지당) 선거사무실을 방문하게 되었다. 그리고 우리 팀이 방문한 지역의 선거홍보담당자가 분노에 차서 하는 말 한마디가 바로 나의 의구심을 일소해 버렸다.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올해부터 바뀐 선거구제 때문에 인민혁명당을 위시한 거대 정당들이 한 선거구에서 한 정당에서 나온 후보자들만 뽑아야지 그 투표가 유효하다고 선전해 대고 있다는 것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거대 정당들은 손쉽게 의석 수를 늘릴 수 있는 반면, 여러 명의 의원을 뽑는 거대 지역구에서는 이런 정당들의 악선전에 중소정당들은 맥을 못 출수 밖에 없는 현실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바보야, 문제는 경제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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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주영



1992년 아버지 부시의 정책 실패에 대해 민주당 세력을 결집하고자 클린튼이 들고 나온 캐치 프레이즈가 바로 "바보야, 문제는 경제야!"이다. 이 말은 15년의 세월을 돌고 돌아 작년 한국의 대선을 휘젓더니, 불과 몇 개월 뒤 몽골 사회를 그야말로 혼란에 빠뜨렸다.
 
7월 2일 인민혁명당사 앞에서 시작된 부정 선거 항의 시위는 밤이 되면서 폭동으로 발전하면서 그 성격이 바뀌었다. 때마침 각 정당과 시민단체와 함께 선거 평가 간담회를 열고 있던 우리는 참석하기로 했던 정당 관계자들이 부정 선거에 항의하면서 속속 불참을 통고해 와서 난감해 하던 중이었다. 간담회를 끝내자 마자 달려간 인민혁명당사 앞에는 이미 2,3천명의 시민들이 몰려와 시위를 벌이면서 돌을 투척하고 있었다. 그 때까지만 해도 시위는 정치적인 것이었고, 화염병 대신 페트병을 던지는 그들의 시위가 필자의 눈에는 너무나 평화적으로 보였다. 밤으로 접어들면서 공항(!) 텔레비전 화면에 비치는 시위의 모습은 시위가 더 이상 시위에 머물지 않음을 보여주었다. 스포츠 경기 중계하듯이 시위 장면을 계속 보여주면서 사태 진행을 중계하는 TV 화면(그 때까지만 해도 시위 장면에 대한 텔레비전 방영이 중단되진 않았다)에 펼쳐진 모습은 바로 몽골의 불안한 미래, 그것이었다.
 
토요타와 폐차 직전의 한국산 중고차가 공존하는 나라, 한국산 중고 학원 버스를 그대로 시내버스로 쓰면서 전국민의 40퍼센트가 빈곤선 이하에서 살고 있는 나라, 실업과 인플레이션에 허덕이는 나라가 바로 몽골의 또 다른 모습이다. 자유화 이후 하이퍼 인플레이션에 시달리던 몽골이 그나마 하이퍼 인플레이션에서는 벗어났지만, 여전히 유가와 세계 곡물가격에 취약한 경제구조하에서 올해의 유가 및 곡물가 직격탄은 그대로 경제에 고스란히 반영될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 충격은 바로 몽골 최대의 백화점 앞에 있던 홈리스 아이들의 손바닥에, 지나가던 차량에 돌을 던지던 시위대의 분노에 담겨있는 것이다.
 
3 H를 기억하며 몽골 여행을 마무리하다
 
우리의 사소한 말, 질문 하나하나에도 다른 아시아인들은 상처를 받을 수 있고, 무례하게 느낄 수 있기 때문에 조심해야 한다는 말이 오랜 동안 국제사업을 해온 분들의 말이다. 그렇기 때문에, 국제사업을 할 때에는 3가지 H를 명심해야 한다고 일깨워 준 분의 말이 생각난다. Humble(겸손하고), Humane(인간적이고), Humor(아무리 어렵고 화가 치밀어 오르는 상황에서도 유머 감각을 잃지 말라는 것)이 그것이다.

몽골의 각 단체와 정당 선거 사무소를 방문하면서, 한편으로는 나의 호기심에 찬 악의없는 질문이 그 곳의 특수성을 이해하지 못하고 오만하게 비쳐질 수도 있었겠다는 반성을 해본다. 국가의 역할이 따로 있고, 시민단체의 영역이 따로 있다고 굳게 믿고 있던 나에게 시민단체가 국가의 역할을 대신하고 그걸 스스로의 성과로 내세우는 모습은 의아하다 못해, 국가가 자신의 역할을 제대로 하도록 시민단체가 비판하고 강제하지 않고 시민단체의 정체성과 자기 위상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게 아닌 가 하는 식으로 까지 나아갔다. 그리고 그러한 나의 모습은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우리의 모습이기도 했던 것을 잠시 잊어버리고 무의식중에 오만한 생각을 가지지 않았나 반성해 본다. 여러 가지 힘든 측면도 있었지만, 나에게 겸손함을 일깨워진 값진 여행이었다
 
이번 여행은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가 공감여행-민주주의 교류협력프로그램의 일환으로 진행되었다. 올해 선거가 예정된 아시아 국가를 방문하여 그 사회를 이해하고 네트워킹을 구축함으로써 사회 교류의 장을 확대해 나가고자 하는 것이 이번 여행의 취지였다.  
   
 
 

  이주영(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국제사업단 전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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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여연대는 사이클론 ‘나르기스’가 버마를 휩쓸고 간 지난 5월부터 한국내 버마 활동가들과 버마의 사이클론 재난을 돕기 위한 성금 모금운동을 진행했습니다. 현재까지 버마 태풍지역 피해민에게 27,565,000원의 모금이 전달이 되었습니다. 저희가 모은 작은 손길이 버마인들에게 살고자 하는 희망의 버팀목이 되기를 소망해 봅니다.

그러나 여전히 버마군부는 자신들의 권력만을 유지하고자 국제사회의 지원을 제대로 수용하고 있지 않습니다. 버마군부가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고 있는 상황에서 이재민들은 부족한 식수와 창궐하는 질병으로 여전히 끔찍한 나날들을 보내고 있다고 전해집니다. 이것을 보면 아직도 이재민들에겐 삶의 희망이 멀게만 느껴집니다. 그래서 지구촌 어느곳보다 이웃들의 손길이 절실한 곳! 그곳이 버마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버마 의류지원 캠페인은 이재민들의 고통을 분담하고 현지인들에게 가장 시급하게 필요한 물품을 전달하고자 준비되었습니다. 이미 1차로 모아진 100상자의 의복과 생필품은 7월 16일경에 전달될 예정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여전히 많은 버마 이재민들의 요청이 있다고 합니다.  

참여연대는 회원분들과 함께 버마 피해 주민들에게 의복, 가정용텐트 및 생필품을 중심으로 필요한 물품들을 전달해 보고자 합니다. 많은 후원과 지원을 부탁드립니다. 

사이클론 피해 지원을 위한 <버마의류지원 캠페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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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원대상 : 미얀마 현지의 피해주민

 ○ 지원물품 : 피복류 (봄/여름/가을 옷, 비옷 등 - 겨울옷 제외)
              임시주택용 천막(행사용 천막(가정용텐트포함), 천막)
              기타 생필품 및 후원금 등

 ○ 캠페인 참여 :  버마 불교대책위원회로 개별발송/접수 
                (서울 종로구 경운동 74, 302호 미얀마불교대책위원회)

 ○ 접수 마감일 : 8월 22일까지

 ○ 버마 현지발송 : 8월 마지막주(29日, 토요일) 中

○ 후원계좌 : 국민은행 408-801-01-174075 장성원 (미얀마불교대책위)
○ 문    의 : 미얀마불교대책위원회 (장우진․이승복 간사)
              (budsi@naver.com / T: 02-733-7277 / F:02-733-7278)
 
○ 주    관 : 미얀마불교대책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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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성공회대 아시아NGO정보센터입니다.

저희 아시아NGO정보센터(소장:박은홍)는 성공회대 동아시아연구소(소장:백원

담)와 함께 동남아 역사.문화 기획강좌를 아래와 같이 진행할 예정입니다.  동남

아의 사상, 문화, 역사를 접할 수 있는 알찬 교양 강좌가 될 수 있을 것입니다.

많은 분들의 관심과 참여 부탁드립니다.

[공개강좌]  알기쉬운 동남아의 역사와 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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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좌Ⅰ 동남아와 이슬람

         강사: 김형준 (강원대 인류학과 교수)

  제1강 : 동남아 이슬람의 전통과 역사

 일시: 2008년 7월 15일(화) 오후2~5시

 장소: 성공회대 새천년관 7417호

 제2강 : 동남아 이슬람의 분화와 다양성

 일시: 2008년 7월 22일(화) 오후2~5시

 장소: 성공회대 (추후 공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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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좌 ∏  동남아의 역사

          강사: 조흥국 (부산대 국제대학원 교수)

제1강 : 동남아의 역사(1)- 동남아 역사 개관

제2강 : 동남아의 역사(2)- 동남아와 한국의 교류사

일시: 2008년 7월 25일(금) 오전10~12:30, 오후2~5시

장소: 성공회대 새천년관 7417호

주최: 성공회대 아시아NGO정보센터, 동아시아 연구소

문의: 변숙진 011-426-2343 intruthsj@empa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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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제의 책] <우리 안의 아시아, 우리가 꿈꾸는 아시아>  

아시아. 지리적으로 가장 가까운 지역이지만 우리 나라에서는 정서적으로는 '남미' 못지않게 먼 곳으로 여겨지곤 하는 곳이다. 또 엄연한 지역의 일원인데도 동질감을 은연 중 부담스러워 하는 이들이 여전히 많다. 최근 언론에서도 국내·외 문제를 '아시아'와 연관시켜 다루는 시도가 늘어나고 있지만, 여전히 사람들의 관심은 낮기만 하다.
 
그러나 작지만 꾸준히, 국내에서도 아시아에 대한 관심과 고민이 넓어지고 있다. 투자와 노동시장, 관광의 대상으로만 여겨지던 아시아 지역을 놓고,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전반에 관심을 갖자는 움직임이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활발하게 전개되고 있다. 특히 시민운동 영역에서 아시아 지역과의 '연대'를 모색하는 일이 눈에 띠게 늘어났다.
 
최근 참여연대 국제연대위원회가 발행한 <우리 안의 아시아, 우리가 꿈꾸는 아시아>(해피스토리 펴냄)는 아시아 지역 문제에 눈을 돌리는 이들이라면 한 번쯤 읽어봐야 할 필독서라 할 수 있을 듯하다. 이 책은 지난 해부터 참여연대 국제연대위원회 홈페이지와 <프레시안>에 연재됐던 '아시아 생각' 칼럼을 책으로 엮은 것이다. 아시아를 연구하는 학자, 활동가 등 25명의 필자가 참여했다.
 
전통적인 이분법, 그리고 근대화론을 넘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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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안의 아시아, 우리가 꿈꾸는 아시아>(참여연대 국제연대위원회 엮음, 해피스토리 펴냄) ⓒ프레시안 



"아시아를 한국 시민사회운동의 새로운 활동거소로 주목해야 한다는 주장이 점차 세를 얻어가고 있다. 그런데 이런 주장들에서 한 가지 공통적으로 발견되는 관점은 안과 밖, 국내와 국제, 우리와 세계를 가르는 전통적인 이분법이다."
 
 조효제 성공회대 교수는 책머리에서 아시아에 대한 국내의 시각이 변하고 있다고 지적하면서도 '여전히' 변치 않는 관점을 지적한다. 그는 "한국에 이미 들어와 있는 이주노동자가 100만 명을 헤아리고, 공장과 공사판과 식당과 지하철에 '우리'와 구분되지 않는 얼굴의 '외국인'들이 넘쳐 나는 현실, 한국 기업들의 역내 해외투자가 이미 국내 투자를 훨씬 상회하는 현실 속에서 과연 '이분법'이 가능한 관점일까?"라고 묻는다.
 
 전제성 전북대 정치외교학과 교수의 비판은 더욱 적나라하다.
 
 
 "Pride of Asia(아시아의 자랑)! 이 구호는 2002년 월드컵 당시 광주경기장에서 한국과 스페인이 8강전을 벌일 때 붉은악마 응원단이 심혈을 기울여 준비했던 카드섹션의 구호였다. (…) 그런데 월드컵 이외의 분야에서 우리나라가 아시아의 이익과 명예를 대표하고 아시아 나라들에 대해 관심과 애정을 갖고 있는지는 심히 의심스럽다. 아시아를 대표한다는 의미보다는 서양의 열강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싶은 욕망이 더 강한 것은 아닌지 돌이켜 볼 만하다."
 
 전제성 교수는 이 같은 의식이 한국 시민사회운동의 '아시아연대' 담론에서도 이어지고 있는 것은 아닌지 성찰해봐야 한다고 주문한다. 그는 "일반인들이 한국의 축구나 골프가 세계무대에 나선 것을 자랑하듯 한국 사회운동가들도 한국의 민주화와 개혁에 대한 자부심을 갖고 있다"며 "그러나 아시아 각국의 사회운동에 대해 공부하고 배우려는 태도를 겸비하지 못한다면 아시아 연대 담론은 근대화론의 한국판 변종을 낳을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이분법에 대한 성찰은 좀 더 적극적인 질문으로 이어진다. 박진영 전 아시아여성위원회 프로그램 간사는 "한국의 운동은 아시아의 이웃들과 나눌 준비가 되어 있는가"라고 자문하며 아시아 연대에서 한류를 만들어간다면 어떤 방식이 되어야 할지 구체적 사례로 제시한다.
 
 "인도 현대자동차 노동자들의 투쟁을 지원하기 위해 한국 현대자동차 노동자들이 파업을 하는 그날을 우리는 볼 수 있을까?"
 
  '사회적 아시아', 우리가 지향해야 할 '아시아주의'
 
 
 '아시아를 향한 성찰', '오늘의 아시아', '아시아 연대를 위하여' 등 세 부로 나뉘어 있는 책에는 각각 이처럼 우리 자신에 대한 성찰뿐만 아니라 아시아 지역 사회의 현실을 보여주는 글도 실려 있다. 필자들은 중국, 베트남, 동티모르, 필리핀, 인도네시아, 네팔, 버마(미얀마) 등 우리가 흔히 여행지, 혹은 투자지로만 인식하고 있는 지역의 생생한 정치, 경제, 사회적 상황을 연구와 답사를 통해 알려준다.
 
 끝으로 조희연 성공회대 민주주의와 사회운동 연구소 소장은 책 말미에 '사회적 아시아'를 만들어나가기 위한 다양한 방법을 제안한다. 그가 제시한 단어 '사회적 아시아'는 곧 이 책에 참여한 필자들이 말하려는 바를 집약해 나타낸 말이기도 하다.
 
 "한국 및 아시아의 민주진보세력이 지향해야 하는 아시아주의가 있다면, 그것은 아시아를 민주적 공동체와 사회적 공동체로 사고하는 것이어야 한다. (…) 한국의 민주진보운동이 국가주의와 민족주의를 넘어서는 성찰적 운동을 전개하는 것은 우파의 국가주의와 편협한 민족주의를 넘어서는 것인 동시에 자신을 국가주의와 편협한 민족주의를 넘는 운동으로 재구성할 수 있느냐 하는 문제라고 본다."  
   

 강이현/프레시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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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기획 아시아 포럼<아시아의 초국가적 문제와 시민사회의 아시아 연대>은  산적한 초국가적 문제들의 현주소를 검토하고 아시아와 한국의 시민사회가 이에 올바르게 접근하는 방법을 모색하기 위해 마련된 자리입니다. 3월부터 12월까지 10회간 진행됩니다. <편집자주> 


6월 27일 참여연대에서 박번순(삼성경제연구소)연구전문위원과 아시아 포럼 네 번째 시간을 가졌다.

가난 구제는 나라도 못한다

박 전문위원은 빈곤의 문제는 더 이상 국가 차원에서 해결하기 어렵다는 말로 발제를 시작했다. 특히, 동아시아는 개방을 통해서 경제성장을 하고 있기 때문에 빈곤 문제 또한 국제적으로 연결되어 있으며 이를 구제 위해서는 ‘국제적 공조’가 무엇보다 필요하다는 것이다. 

<표 1> 동아시아의 1인당 GDP(2000년 불변가격 기준)


1970

1980

1985

1990

1995

2000

2006

중국

122

186

290

392

658

949

1,598

캄보디아





225

286

445

인도네시아

235

397

475

612

827

800

983

라오스



218

231

274

332

439

말레이시아

1,103

1,848

2,081

2,511

3,471

3,881

4,535

필리핀

733

989

821

918

913

996

1,155

싱가포르

4,531

9,043

10,866

14,658

19,359

23,019

27,125

태국

516

796

956

1,462

2,086

2,023

2,601

베트남



202

227

305

402

576

 <표 2>는 1인당 하루 1달러 소비를 기준으로, 동아시아의 빈곤지수가 1990년 29.6%에서 2007년 6.4%로 감소했고 이 기간 빈곤인구는 약 4.6억 명에서 1.2억 명으로 감소했다는 것을 보여준다. 2달러를 기준으로 할 때 빈곤율은 1990년 68.8%에서 2007년 26.5%로, 전체 10.6억 명에서 4.9억 명으로 감소했다고 한다. 이것은 이 기간동안 실로 빠른 속도로 동아시아의 빈곤문제가 해소되어 갔다고 해석될 수 있다.

국가별로 빈곤문제가 빠르게 개선되어 간다해도 동아시아의 절대 빈곤 인구는 상당히 높은 편이다. 태국에는 여전히 전체 인구의 21.4%인 1,410만 명이 빈곤 상황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으며 인도네시아에서도 45.2%의 인구 즉 1억 명 이상이 빈곤에 허덕이고 있다. 필리핀 44.9%, 베트남 32.9%, 캄보디아 50.5%, 그리고 라오스 62.3%의 인구가 빈곤상태라고 할 수 있다고 박 전문위원은 전했다.

동아시아의 빈곤의 격차는 50배이상으로 크게 존재한다

절대빈곤은 동아시아신흥공업국(한국, 대만, 홍콩, 싱가포르) 등은 모두 해소됐고 동남아의 경우도 말레이시아, 태국은 거의 해결했다고 한다. 그러나 국가간 빈곤 문제의 해소 수준은 동아시아 국가들이 과연 같은 동아시아에 속하고 있는가 의심스러울 정도로 상당한 차이가 존재하고 있다고 한다. 또한 국가 내에서도 상대적 빈곤 문제가 악화되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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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곤 퇴치를 위해서는 만난 적도 없는 사람간의 협력이 필요하다

박 전문위원은 빈곤문제가 세계화와 관련이 있다는 점에서 빈곤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단일국가 차원이 아닌 지역적 혹은 세계적 차원의 접근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현재 아세안이 농촌개발과 빈곤추방을 위한 액션 플랜을 설정하고 선진국들의 ODA(공적 개발원조) 지원, 아시아개발은행의 빈곤축소 전략을 통한 다양한 접근등을 소개했다. 그러나 이러한 노력들은 아직까지 빈곤타파를 위해서는 역부족이라 단언했다. 동아시아의 시민사회 역시 동아시아간의 공동체 의식 부족과 민족주의적인 성격 탓에 그 역할이 미미하다고 지적했다. 따라서 시민사회가 아시아 국가의 정치적 사회적 거버넌스의 질을 개선할 수 있도록 활동해야 하며 지역의 빈곤 프로그램을 실행할 수 있을 정도의 역량을 키워야 한다는 것이다.

한국은 동아시아와는 다른 경제적 지위를 가지고 있는 만큼 저개발국에 대한 심도있는 이해와 교류를 진행해야 한다는 것은 재언할 필요가 없는거 같다.

(발제문은 포럼이 종료되면 단행본으로 출간될 예정입니다.) 

다섯 번째 포럼 "아시아의 초국가적 환경문제"
는 7월 25일(금) 오후 3시 경희대학교 본관 2층 대회의실에서 개최합니다.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Posted by 영기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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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시위 사수, 인도네시아에서는? 

이명박 정부와 촛불집회의 팽팽한 대결이 장기간 지속되는 가운데 폭력에 관한 논란이 제기되고 있다. 그렇지만 내가 학습대상으로 삼는 인도네시아의 실상에 비추어보면 한국의 시위대는 놀라울 정도로 평화를 지켜내는 강력한 힘을 지니고 있다. 인도네시아에서는 사람들이 대규모로 결집한 곳에서 폭력행동이 발생하는 경우가 빈번하다. 시위현장 뿐만 아니라 경기장에서도 마찬가지이다. 그래서 인도네시아 친구들은 한국에서 대규모 집회나 축구 응원이 평화적으로 전개되는데 대하여 놀라움을 표하곤 한다.
 
인도네시아에서는 외환위기로 물가가 폭등하자 이에 항의하는 집단행동이 곳곳에서 발생했는데 그 규모가 커지자 약탈, 방화, 강간이나 살인이 수반하는 극단적 폭력사태로 번져나갔다. 민주정부가 들어선 뒤에는 각지에서 종족간의 균열이 인명과 재산을 앗아가는 수평적인 집단폭력이 발화했다. 마을 사람들이 도둑을 잡아 집단적으로 뭇매를 때리거나 불태워 죽이는 일도 허다하게 발생하였다. 임금인상을 요구하는 노동자들이 건물과 승용차를 파괴하는 경우도 많았다. 그래서 인도네시아에서는 군중과 폭력이 근친의 관계로 간주되고, 상류층은 물론이고 중산층까지도 대체로 군중동원에 대한 공포를 지니고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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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도네시아의 실상에 비추어보면 한국의 시위대는 놀라울 정도로 평화를 지켜내는 강력한 힘을 지니고 있다. ⓒ프레시안 




인도네시아에서 발생하는 대중폭력은 여러 가지로 설명된다. 우선 가장 오래된 설명은 말레이계의 종족적 특성이 원래 그렇다는 것이다. 현지어 "아묵"(amuk)이라는 말은 정신을 잃을 정도의 발작상태를 가리키는 말인데 유럽식민주의자들이 이 단어를 영어사전에 올리면서 국제어가 되었다. 현지인들이 아묵 상태에서 행하는 폭력행동을 유럽인들이 열대의 이국적인 현상으로 받아들였음을 짐작하게 해준다. 현지인들의 아묵은 평소의 인내심과 아주 대조적이었기 때문에 더욱 인상적으로 보였던 것 같다. 6백여 년 전에 인도네시아 자바의 스마랑(Semarang)에 원정을 왔던 명나라 쩡허(鄭和)의 사관도 현지인들의 높은 인내심과 강한 폭력성을 모순적 현상으로 특이하게 보아 각별히 기록해두었다고 한다. 높은 인내심과 강한 폭력성은 모순처럼 보이지만 평소에 너무 참기 때문에 폭발적으로 의사표현을 한다는 식으로 인내와 폭력을 연결시켜 해석하는 이들도 있다. 다른 한편에 군중폭력을 체제 탓으로 돌리는 해석들도 있다. 돌발적인 폭력을 통해 요구를 표출하는 행동은 장기간 지속된 폭압적인 체제에서 온건한 의사표출의 자유도 주어지지 않았고, 폭력적인 해법을 일삼는 체제로부터 폭력적인 해법만 전수받았기 때문에 발생한다는 것이다.
 
근자에 유력한 가설은 아묵 현상을 유발하려는 음모와 책동이 있다는 설이다. 시위현장에서 시위대의 일원처럼 행세하면서 폭력을 남보다 앞서 행사하는 외부인이 존재한다는 것인데 그들은 주로 "선동가"를 뜻하는 외래어를 차용한 "쁘로보까또르"(provokator)라는 용어로 지칭된다. 이를테면 1998년 5월에 벌어진 일련의 폭력사태들은 머리카락이 짧고 건장한 체격의 낯선 사람들이 시위대 속에서 먼저 폭력을 행사하면서 집단폭력이 시작되었다는 증언들이 나오고 이들이 특전대 소속이었을 것이라는 구체적인 음모설이 제기된 바 있다. 지방에서 벌어진 종족분쟁들도 작은 시비와 다툼에서 시작되었는데 그 역시 외부인의 소행이고 신생민주정부의 개혁을 방해하려는 구체제 지지자들이 배후에 있다는 음모론이 나돌았다. 노동자들의 가두시위에서도 마찬가지 음모설이 작동하는데, 지방정부나 지방의회에 찾아가서 최저임금을 올려달라고 대규모로 시위를 벌이면 작업복을 입은 낯선 이들이 나타나 폭력행동을 선동하면서 기물을 앞서서 파괴하곤 한다고 노동조합 간부들이 주장하였고, 지방관구사령부가 관할 지역의 주요 회사들의 작업복을 골고루 보관하고 있다는 구체적인 주장도 들어본 바 있다.
 
어떠한 이유에서건 시위가 심각한 폭력을 동반하면 경찰이 폭력적으로 진압하고 언론은 '폭동'이라고 보도하고 시위지도부를 구속하는 '3박자' 대응이 이어지게 된다. 더 심각한 것은 규모가 큰 군중결집을 두려워하고 보통 사람들의 집단적 의사표현을 신뢰하지 않는 수평적인 공포와 불신을 일반인들이 갖게 되고 국민들이 직접행동을 통해 스스로 문제를 제기하는 것보다 강력한 국가와 군부가 질서를 잡아줄 것을 기대하는 공권력 의존성이 사람들의 뇌리에 자리 잡는다는 것이다.
 
따라서 군중폭력은 인도네시아에서 사회운동을 전개하는 이들에게는 각별한 고민꺼리일 수밖에 없다. 사정이 이러하니 인도네시아의 사회단체들은 꼭 필요한 경우가 아니라면 대규모 시위를 기획하지 않는다. 참 안타까운 현실이다. 그러나 대규모 시위가 불가피하다면 자율검색을 시행하거나 안전요원을 배치하는 해법을 취한다. 자율검색의 대표적인 예가 1998년 5월에 수하르토를 끌어내린 국회의사당 시위로서 대학생들이 의회정문에서 수상한 이들의 진입을 막은 경우였다. 그런데 노동자와 빈민들의 진입을 막은 경우를 들어 자율검색이 대학생들의 우월감과 군중공포를 드러낸 비연대적 행동으로 비판받기도 했다. 반면에 시위대 중에 일부가 안전을 관리하는 임무를 띠는 자율적 안전관리는 바람직한 것으로 여겨져 일반적으로 수행되고 있다. 또 하나의 지혜는 즐겁게 시위하는 것이다. 특이한 분장, 보디페인팅, 퍼포먼스가 시위의 중요한 구성요소가 되고 사진기자들의 집중조명을 받곤 한다. 국제노동절시위도 지방 단위에서 공연, 경연, 집단놀이 등을 통해 카니발 형식으로 전개되곤 한다. 자율적인 안전관리나 집단놀이형 시위는 우리보다 인도네시아가 '선배'일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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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또 하나의 지혜는 즐겁게 시위하는 것이다. 특이한 분장, 보디페인팅, 퍼포먼스가 시위의 중요한 구성요소가 되고 사진기자들의 집중조명을 받곤 한다." ⓒ프레시안 



인도네시아에서 집단의사의 평화적 표현을 위한 노력은 운동권만의 일은 아니었다. 1999년 6월에 44년만의 자유총선거를 앞두고 인도네시아의 한 일간지는 동부 자바의 수라바야(Surabaya)시가 폭동이 가장 강력하게 발생할 만한 화약고로 지목하였다. 그런데 의외로 사소한 시비만 있었을 뿐 폭동이 발생하지 않았다. 그 이유는 새로운 사회에 대한 희망과 자긍심이 가득한 시민들 덕분이었던 것으로 해석된다. 당시 인도네시아의 민주화를 기억하는 이들이라면 민주사회에 대한 기대로 집단폭력이 자제되었을 것이라는 해석을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고, 자긍심에 대해서는 약간의 부연이 필요할 것이다. 수라바야는 2차대전 종전이후 승전국으로 복귀하는 서양식민주의 세력을 목숨을 걸고 격퇴한 역사적인 도시라서 '영웅의 도시'로 불리어왔으며 시민들도 직선적이지만 자존심이 강한 특성을 지니고 있다고 알려져 있다. 그래서 이 자긍심 강한 시민들이 집단폭력으로 도시가 상처받는 일을 막아냈을 것이라는 해석이 가능하다.
 
1998년 5월로 다시 돌아간다면, 평화적인 대중시위의 선명한 사례를 찾아볼 수 있다. 전국이 폭동으로 얼룩질 때, 족자카르타(Yogyakarta)시에서도 역사상 최대의 시민이 참여하는 시위가 벌어졌지만 군중폭력은 발생하지 않았다. 수하르토의 하야를 요구하는 시민들 앞에 족자카르타의 술탄이 나타나서 시민의 뜻을 대통령에게 전달하겠다고 약속하고 시위대와 함께 행진을 하였다. 전통적 종교적 권위를 지닌 술탄이 책임을 지고 사태를 해결하겠다고 약속하였기 때문에 시민들은 평화적으로 시위를 전개했던 것이다. 그리고 다음날 수하르토가 물러났다.
 
지금까지의 이야기는 촛불시위를 보면서 연상된 인도네시아의 집단시위 풍경이었다. 이런 이야기가 팽팽한 대결 국면 속에서 지친 우리 시민들에게 잠시 호흡을 가다듬는 기회가 되었기를 바란다. 한국에 대한 함의 따위는 함부로 이야기하지 않고 독자들의 몫으로 남긴다. 다만 인도네시아의 대중시위 현장에서는 전투성을 증대시키는 능력보다 평화를 지켜내는 능력이 더 결정적인 관건이고 평화시위를 사수하기 위한 다양한 노력이 더 많은 시민들이 참여하는 대규모 시위를 성사시키는데 기여할 것이라는 소견으로 글을 마치고자 한다.  
   
 

   전제성(전북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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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여기, 아시아에서 우리, 아시아를 꿈꾸다
이식된 오리엔탈리즘과 패권적 민족주의를 넘어 한국 시민사회의 아시아
연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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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여연대 국제연대위원회 엮음/ 해피스토리
정가 12,000원 [바로 구입하기]


국내에 거주하는 아시아계 이주민이 1백만 명에 달하고 해외여행을 떠나는 한국인의 85%가 아시아로 향하고 있다. 최근 들어 아시아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지만 아직까지 한국인들의 생각 속에 ‘아시아’는 미국이나 유럽보다 더 멀리 떨어져 있고, 생김새와 피부색이 비슷한 ‘아시아인’들은 서구인들보다 더 낯선 이방인으로 머물러 있을 뿐이다.

한 예로 우리는 아시아의 향신료 산지를 장악하기 위해 세계일주를 한 마젤란에 대해서는 잘 알고 있지만 마젤란을 죽여 필리핀에서 영웅으로 추앙받고 있는 아시아인 라푸라푸에 대해서는 들은 바가 거의 없다. 또한 서구로부터 이식된 오리엔탈리즘으로 인해 우리가 아시아에 대해 갖고 있는 관점은 정실주의, 부패, 빈곤, 독재, 미개발, 덜 문명화된 지역 등 부정적인 것이 대부분이다.

아시아계 결혼이주 여성이 늘어나면서 생겨난 신조어 ‘코시안’에서 볼 수 있듯이 우리는 ‘우리’와 ‘아시아’를 애써 구분짓고 외국인 배우자의 국적에 따라 아이를 특정화, 대상화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기껏해야 우리는 ‘아시아 최초’나 ‘아시아 최고’라는 수식어에서나 ‘아시아 속 한국’을 인식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참여연대 국제연대위원회가 펴낸 『우리 안의 아시아 우리가 꿈꾸는 아시아』는 먼저 한국과 아시아를 나누는 이분법적 사고에서 벗어날 것을 요구한다. 이미 우리 안에 들어와 있는 우리 안의 아시아를 재인식하고 그것을 진정한 ‘우리’로 받아들이는 인식의 전환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참여연대 홈페이지에 2006년 6월부터 연재된 ‘아시아 생각’ 칼럼을 모은 이 책은 이식된 오리엔탈리즘, 패권적 민족주의에서 벗어나 민주주의와 인권이 고르게 보장되는 ‘사회적 아시아’를 향한 연대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이 책은 아시아에 대한 우리의 편협한 사고를 꼬집는 1부 ‘아시아를 향한 성찰’, 현재 아시아 각국이 처해있는 현실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키는 2부 ‘오늘의 아시아’, 시민사회의 아시아 연대를 모색하는 3부 ‘아시아 연대를 위하여’로 구성돼 있다. 필진으로는 조희연 성공회대 민주주의와 사회운동 연구소 소장, 조효제 성공회대 NGO대학원 교수를 비롯해 국내 아시아 지역 연구자, 활동가, 아시아 출신 유학생 등 25명이 참여했다.

목차

[들어가며] 아시아에 주목해야 할 이유 -조효제
1부 아시아를 향한 성찰

○ 아시아의 자존심? -전제성
○ 우리에게 보이는 아시아는 정말 아시아인가? -이재현
○ 한국에서 친구 사귀기 -유완또
○ 국경과 국적에 갇힌 인권 -이재현
○ 인공의 도시, 차이나타운 -백지운
○ 국제사회에서 한국의 노블리스 오블리제 -이재현
○ ‘메이드 인 코리아’ 낙인의 진짜 이유는… -이재현
○ 신부 사오는 사회 -박이은실
○ 지자체의 국제결혼지원사업을 반대하는 이유 -이재현
2부 오늘의 아시아
○ 아세안, 공동체 버리고 FTA 택하려나 -이성훈
○ 가야 할 길 먼 동티모르의 ‘독립’ -최재훈
○ 징기스칸의 아시아, 몽골의 민주주의 -김은경
○ ‘금권민주주의’가 불러온 태국의 쿠데타 -박은홍
○ 베트남 사회주의와 노동력 부족 현상 -채수홍
○ 필리핀의 공공연한 정치적 살해 -정법모
○ 내가 만난 인도네시아 여성운동가 -정은숙
○ 중국, 그 배반의 이름으로 -김도희
○ ‘조직’ 대신 ‘시민’ 만든 일본 시민사회 -한영혜
○ ‘야만의 시대’에 갇힌 버마, 가스 개발에 눈먼 한국 -박은홍
○ 새로운 네팔을 향한 기회와 도전 -지번 바니야
○ 네팔 총선 국제 선거감시단 활동기 -차은하
○ 필리핀 남부 통근철도사업 이주지역 이야기 -정법모
○ 너무 깊게 드리워진 수하르토의 그림자 -김은경
○ 경제회생 포퓰리즘…한국도 태국,필리핀 전철 밟나 -박은홍

Posted by 영기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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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체가 나를 부끄럽게 했다

비행기에 탑승하고서야 자카르타까지 7시간이나 걸리는 걸 확인하였다. 목적지가 어디든 몇 시간이 걸리든 별로 상관할 바가 아니었다. 뭔지 모르게 피곤하기만 한 한국에서의 일상을 벗어나는 것이 중요했다. 이렇게 허둥지둥 시작한 인도네시아 방문은 일주일이 예정되어 있었는데, 7시간의 지루할 수 있는 비행시간은 오히려 안락한 휴식이 되어 주었다.
 
한밤중에 자카르타에 도착해 짐을 찾아 세관을 나가려고 하는데, 경찰인지 세관원인지 알 수 없는 사람이 박스로 싼 짐을 질질 끌어 내며 뭔가를 요구한다. 어쩌란 말인가 싶어 귀를 기울였더니 결국은 돈을 내라는 애기다. 언젠가 남의 애기를 인용해서 인도네시아의 부패문제를 민주주의와 인권의 걸림돌로 지적한 적이 있었는데, 그 사실을 생생하게 눈 앞에 두고도 그냥 무기력하게 공항을 빠져 나왔다. 뭔가 했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자괴감이 한 순간 스치고 지나갔다. 마중 나오기로 한 차는 한참이 지났는데도 오질 않는다. 몇 대의 담배를 피우고 한국에서는 한 가닥씩 하는 일행들의 눈치를 조심스레 살펴 보았다. 모두가 이 상황을 얼마큼은 받아 들이고 있는 듯 하였다. 달리 방도가 없으니 받아 들일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얼마를 더 기다린 후에 차가 도착하고 일행은 공항 근처 호텔에서 하루 밤을 묵게 되었다. 로비에서부터 아늑하게 뻗어 있는 긴 복도를 좌우로 몇 번 돌아서야 겨우 방에 도착할 수 있었는데, 가라오케인지 나이트클럽인지 모를 시설이 방과 한 층에 있었다. 클럽 앞에는 한 가지로 유니폼을 입고 어려 보이는 여성 종업원들이 줄지어 서 있었다. 공항에서와 마찬가지로 여성 종업원들의 미소를 외면한 채 무기력하게 지나쳤다. 일행 중에 과격한 페미니스트가 있었다면 그렇게 무기력하지는 않았을까? 인도네시아에서의 첫날밤은 우리 일행의 정체성과 한계를 분명하게 설명해 주었다. 지금의 생각이지만 뭔가 하지 않는 것이 이유야 어찌되었든 잘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싶다. 내가 보편적이라 믿었던 것들이 어떤 사람에게는 이상한 것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여행하는 동안 여러 차례 느껴졌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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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쓰나미로 인해 마을 한 가운데까지 7㎞를 밀려와 정박한 산만한 화물선박. ⓒ김신

 잠을 자는 둥 마는 둥하고 제법 차가운 열대의 새벽 공기를 쐬면서 다시 공항으로 가서 수마트라 섬 최 북부의 아체주로 향하였다. 공식일정이 시작된 것이다. 4시간이 걸려 도착한 아체주 공항은 시골 간이역을 연상시켰다. 공항 화장실에 들어갔다 그냥 나왔다. 쓰나미때 이곳 공항까지 바닷물이 넘쳐 그나마도 공항이 제 기능을 못해 구호에 어려움을 겪었다고 한다. 아직 아침인데도 5월의 뜨거운 열기는 피부를 찔러대며 파고들었다. 자카르타와는 다르게 공기는 신선하고 바다에서 불어오는 바람도 상쾌하다. 무엇보다 담배 파는 가게직원이 없어 안달하는 일행에게 피우던 담배를 갑 채로 가지라고 권하는 공항직원들의 여유로움과 친근함이 자카르타와는 사뭇 다르다. 또 택시 호객과 전화카드를 팔려고 젊은 상인들이 진을 치고 있던 자카르타 공항과는 달리 이곳 공항입구는 망고를 팔러 나온 농부 몇 사람과 택시기사 한둘이 전부다. 망고를 팔겠다는 건지 말겠다는 건지 자기네끼리 깎아 먹고 노닥거리고 있다. 일행은 마중 나오기로 한 차를 기다리다 망고 한 바구니를 샀다. 노란 속살을 나누어 먹으면서 노닥거리는 사이 차가 도착했다. 역시 두 시간을 기다렸다. 아체의 첫인상은 마중 나오기로 한 차를 두 시간 기다린 것을 빼고는 사람도 공기도 그리고 일행들의 분위기도 모든 것이 자카르타와는 완전히 다른 풍경이다.
 
숙소가 분명히 호텔인데 한참을 달려도 호텔은 고사하고 여인숙도 나올 것 같지 않았다. 쓰나미가 다 휩쓸어 버린 것인가라고 의아해하고 있는데, 눈앞에 3층의 꽤 괜찮은 호텔이 갑자기 나타났다. 주변 어디를 둘러봐도 이곳에 호텔이 있다는 게 신기할 따름이다. 현지에서 우리 일행의 이동과 프로그램에 대해서 간사역할을 해준 단체는 SIRA(Central Information Referendum of Aceh)인데, 아체주 부지사가 된 나자르(37세)를 대표로 해서 중앙정부와의 분쟁 당시 자치획득을 위해서 주민투표를 추진해왔고, 지금은 정당으로서 변형과정을 거치고 있는 반정당적 성격을 띄고 있었다. 누구와도 영어가 통하지 않은 관계로 SIRA에 대한 많은 애기는 들을 수 없었다. 다만 한국의 경험에 비추어 정치를 하기에는 너무나 순박한 사람들이고 20~30대의 젊은 청년들로 리더십을 구성하고 있으며 어떤 이데올로기에 기반한 것이 아니라 주민들의 빈곤과 복지가 주요 관심사라는 점이다. 그리고 당원 중에 여성과 노인 심지어 중년의 남성은 단 한 명도 볼 수 없었다. 이러한 현상은 SIRA뿐 만 아니라 몇 개의 현지 NGO를 방문했을 때도 거리에서도 시장에서도 마찬가지였다. 30년 넘는 분쟁으로 수 많은 인명이 살상되고 그나마도 쓰나미가 휩쓸어 버린 아체의 현실이다. 굳이 쓰나미 피해 현장을 찾아 다닐 필요가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여성들을 찾아 볼 수 없는 것은 이슬람법을 주법으로 삼고 있는 아체의 문화적 요인도 있었겠지만, 전쟁과 재해의 피해자는 언제나 사회적 약자그룹에게 더 가혹한 것이니 남성보다는 여성이 젊은이 보다는 노인의 피해가 심각했으리라. 이러한 사실은 예정에 없던 노동절행사에 동원되었을 때 더욱 더 실감이 났다. 겨우 50여명이 노동절행사를 갖고 있었다. 쓰나미가 파괴한 것은 단순히 자연환경과 삶의 터전뿐만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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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체의 노동절 행사 ⓒ김신 

쓰나미 피해를 복구하기 위해 들어온 국제기구, NGO들이 저마다 내건 영문단체 이름 외에는 아무것도 이해할 수 없는 거의 문맹의 상태에서 우리 일행은 스스로의 자치권을 포기한 채 SIRA의 안내에 따라 먼저 나자르 부주지사와 간담회를 가졌다. 부주지사는 과거의 아픈 기억을 자치권 속에서 풀어내는 것을 과제로 안고 있었다. 지난 30여 년 간의 투쟁의 역사를 민주주의의 역사로 정착하고 과거 분리독립세력을 평화의 세력으로 사회화하여 과거의 상처가 민주적 자치권 속에서 인권과 평화의 문화로 거듭나는 아체인의 삶을 구상하고 있었다. 그리고 우리 일행에게 아체인들은 투쟁에 집중한 나머지 한번도 민주적 삶을 살아 보지 못해 민주주의를 피상적으로 알 뿐이라며 한국과의 민주주의 교육 교류를 제안하였다. 순간 부끄러워졌다. 민주주의가 제도만을 애기하는 것이라면 그럴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일상의 삶 속의 민주주의 애기라면 오히려 아체의 상황이 좋아 보였다. 가부장적이고 이기적인 권위주의가 가정, 직장, 여타 사회 활동을 지배하고 있는 한국에서의 일상에 익숙한 나에게 직원이 있는데도 단체대표가 길거리 상인과 사소한 흥정을 하고 운전기사와 수행직원이 있는데도 고위공무원이 시장에서 산 점심을 담은 비닐봉투를 흔들고 다니고 상인들 간의 사소한 시시비비에 끼어드는 모습은 뭔가 역할이 잘못된 것 아닌가 싶을 정도로 새로웠다. 직업이나 사회적 지위, 학력, 무엇보다 나이와 상관없이 자유롭게 주제를 공유하고 뭔가를 토론하는 모습은 여행 내내 자주 볼 수 있었다. 아체인은 태생문화적으로 민주적일 수 밖에 없다는 어느 동남아학자의 말이 생각난다. 그 태생적 문화가 무엇인지는 아직까지 분명하지 않지만….
 
쓰나미 피해 재건현장과 30년 넘게 지속된 오랜 분쟁의 희생자들이 거주하고 있는 지역사회를 방문하기도 하였다. 쓰나미가 파괴한 아체주의 자연환경과 삶의 터전은 국제사회의 원조로 상당부분 복구되고 있거나 본래의 모습을 되찾아가고 있었다. 다만 마을 한 가운데까지 7㎞를 밀려와 제 멋대로 정박한 산만한 화물선박이 당시의 상황을 짐작하게 할 뿐이었다. 안내자는 성룡이 기금을 내서 중국정부가 재건했다는 성룡마을로 우리 일행을 데리고 갔다. 중국식 건축물로 마을 정문을 세우고 거기에 중국어로 "중국과 인도네시아의 우의촌" 이라는 간판을 내걸고 옆으로는 홍보용 비석을 세워 뭐라 장황하게 새겨놓고 있었다. 정문에 들어서자 우뚝하게 세워진 이슬람사원이 눈에 띄었다. 저 멀리 인도양의 수평선에서도 알아 볼 수 있을 것 같았다. 고지대에 재건된 마을은 5000여 가구는 되어 보였다. 아체의 전형적인 가옥구조 양식을 띄어 빨간색 지붕과 아이보리색 벽으로 지워진 보기 좋게 일률적인 크기와 모양의 가옥들이 장관이었다. 마을 앞으로는 인도양이 내려다 보이고 주변으로는 녹색의 열대 자연이 펼쳐져 있고 마을 끝까지 시멘트로 포장된 잘 정돈된 차도가 지그재그로 엎어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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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룡이 기금을 내서 중국정부가 재건했다는 성룡마을. ⓒ김신 

마을은 차도를 따라 형성되었는데, 언뜻 어느 휴양지에 온 기분이었다. 마을까지 차로 오면서도 급경사가 힘들었는데 입구에서 내려 마을에 들어서자 얼마 못 가 주저 앉게 되었다. 어찌 된 일인지 마을 어디에도 사람이 없었다. 마을 입구에서 몇 가지 생필품을 파는 가게 주인과 아이들 서너 명을 본 게 사람의 전부다. 가게 주인에 의하면 교통수단은 없는데 생계를 꾸릴 수단은 멀리 있어서 주민들이 새벽에 나가 저녁 늦게 집에 들어오기도 하고 아예 일터가 가까운 곳에 간이 숙소를 마련하고 산다고 한다. 걸어서 갈 수 있는 거리에 학교도 없고, 시장도 없고, 병원도 없어서 이주된 주민들이 다시 원래 살던 곳으로 많이들 빠져나가고 없다고 한다. 그렇다고 갈 곳이 마땅한 건 아닌데, 이 마을에선 아무것도 할 수 없어서 떠날 수 밖에 없다고 한다. 굳이 주거권에 대한 개념을 들이대지 않더라도 잘못된 이주정책의 전형적 모습이다. 이주하게 될 주민들의 의견은 들어나 봤을까? 이렇게 만들어진 마을과 사회시설이 아체에 몇 개나 될까? 가게주인도 곧 마땅한 생계거리를 찾아 이곳을 떠나야겠다고 막막하게 허공을 주시하며 눈시울만 붉혔다. 그 시선을 따라 가보니 하늘은 구름이 한 점 없이 파랗기만 했다.
 
우리 일행도 이제 아체를 떠날 채비를 해야 했다. 도착하자 마자 일그러지기 시작한 일정에 따라 원래의 일정표 상의 순서와 시간은 오간 데 없어지고 그냥 모든 걸 SIRA에 맡긴 채 진행한 이틀간의 아체 여행을 마무리하고 공항으로 향하였다. 자카르타로 가는 비행기가 두 시간 늦게 출발한다고 한다. 왜 모든 게 두 시간인지 모르겠다. 이쯤 되자, 우리 일행 누구도 이것을 문제라고 느끼거나 이에 대해 불만을 표시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 두 시간이 오히려 반가웠다. 아체에서의 이틀 동안 비록 좋아하지 않는 생선을 주식으로 강요당하고, 가끔은 코코넛으로 배를 채워야 했고, 자치정부 수립 이후의 사회 상황을 현지인의 설명 없이 스스로 알아서 살펴 봐야 했지만, 가끔씩 먹여주는 아체 커피의 향긋함에 느긋해 지고, 아무런 경고 없이 데려다 준 해변가, 파도와 바람이 아니면 누구도 침범해보지 못했을 것 같은 백사장에서 누리던 잠깐의 휴식을 생각하면 나의 선택권과 자치권은 싸 그리 무시되었지만 모든 것이 다 그걸로 그만이다.
 
비행기 창 밖으로 보이는 아체의 산과 바다 강줄기를 사진을 찍듯 눈 속에 담았다. 언제일지 모르지만 다음에 다시 오게 된다면 지금과는 다른 모습을 보게 될지도 모른다. 유럽의 시티플래너들이 아체에서 그 플랜리란 것을 시작했다고 한다. 그것이 진실로 바른 길이길 간절히 바랄 뿐이다.
   
 

  김신/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국제사업단 전문위원
Posted by 영기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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