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 아시아人]“한국의 아시아적 정체성이 친미세계관의 대안”
입력: 2008년 03월 23일 18:19:03
 
ㆍ경향신문·참여연대 아시아포럼 좌담

경향신문과 참여연대는 28일 아시아포럼 첫 강의를 앞두고 아시아에 관한 한국 사회의 담론을 진단하는 좌담회 ‘한국 사회의 아시아 담론’을 지난 19일 경향신문사 6층 회의실에서 가졌다. 아시아 연대의 현황을 살펴보고, 아시아 연대의 목표와 지향점, 장애 요인을 따져보고 아시아 연대를 위해 한국 사회가 나아갈 방향을 검토해 보았다. 박승우 영남대 사회학과 교수의 사회로 진행된 이 좌담회에는 백영서 연세대 사학과 교수, 이남주 성공회대 중문과 교수, 이재현 연세대 정외과 연구교수, 조희연 성공회대 사회학과 교수, 김기석 강원대 정외과 교수가 참석했다.
아시아포럼 출범에 앞서 지난 19일 전문가들이 좌담회를 하고 있다. 왼쪽부터 시계 방향으로 조희연·김기석·이재현·박승우·이남주·백영서 교수. |남호진기자

# 한국인에게 아시아란 무엇인가

박승우=아시아가 하나의 지역으로 변화하는 현상은 빠르게 진행 중입니다. 특히 외국인 노동자, 유학생들이 많이 들어오고 있습니다. 지난 10년간 정부 차원의 지역 통합 노력도 있었습니다. 환경, 자원 같은 초국가적 문제에도 당면하고 있습니다. 이런 점에서 아시아포럼이 아시아에 대해 생각해보는 중요한 계기가 될 듯합니다.

이재현=저는 한국에 외국인 노동자가 많이 들어오는 것을 보고 한국 시민사회가 다른 아시아 시민사회와 같이 할 수 있는 일이 없을까를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국가 주도로 이루어지는 동아시아 지역통합 교류에 시민사회가 개입해 할 수 있는 역할은 없을까하는 고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조희연=외국인 노동자가 늘어나는 등 한국 속에 아시아가 내면화되고 있는 점이 배경이 된 듯합니다. 한국 인문사회과학에서 그동안 아시아는 특수학이었습니다. 지금은 아시아가 지식 생산 속에 내부화하지 않으면 안되는 지점에 온 것이지요. 민족주의적, 국가주의적 관점에서 벗어나 지역적, 세계적 시각에서 보도록 만들고 있습니다.

이남주=아시아는 학문적 구조를 통해서가 아니라, 실천적으로 만들어진 개념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주민, 경제문화 교류 등이 증가하면서 다양한 지역적 차원의 실천 공간이 만들어지고 있습니다. 그런 공간을 중심으로 운동을 하는 방식으로 아시아 문제를 접근해야 합니다. 선언적으로 아시아 개념을 하나로 통합시키면 잘못된 결과가 나올 듯합니다.

백영서=처음 이런 얘기를 듣는 사람들은 ‘아시아의 범위가 어디까지냐’는 의문을 당연히 가집니다. ‘누가, 왜, 어디까지를 아시아로 얘기하려는가’에서 여러가지 관심과 의도가 충돌합니다.

김기석=우리 사회에 동아시아란 개념이 등장한 지는 얼마 안됐습니다. 이전엔 아시아·태평양이었지요. 강대국의 필요에 따라 만들어지고 받아들여진 것이지요. 또 한국에서 생각하는 동아시아 개념과 다른 나라의 동아시아 개념이 다릅니다. 우리나라 동아시아 개념은 동북아 중심인 데 비해, 일본의 동아시아 개념은 넓습니다. 미국·캐나다·호주·뉴질랜드와 동남아시아 두 지역을 일본이 매개한다는 것이 일본의 동아시아 개념입니다. 나라마다 아시아 개념이 다르다는 것을 인식할 필요가 있습니다.

# 친미로 아시아적 정체성 억압돼

박승우=2000년대가 시작되면서 우리가 나아갈 방향을 찾지 못하고 혼돈이 많았습니다. 이런 혼돈이 새로운 비전을 찾으려는 마음과 맞물려 아시아 연대에 관심을 두게 된 듯합니다.

조희연=아시아를 인식한다는 것은 친미적 세계관이 전환되는 성격이 있다고 봅니다. 우리 사회가 지난 50여년간 받아들이지 않았지만 우리는 원래 아시아였습니다. 아시아적 정체성이 억압됐죠. 인식이 이랬다면 아시아를 어떻게 구성할 것이냐에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현실적으로 국가 주도, 자본 주도의 아시아가 있지만 어떤 관점에서 어떤 목표로 아시아적 정체성을 만들어 갈 것이냐에 대해 생각해야 합니다.

이남주=우리가 아시아에 대해 관심을 가진다고 해서 다른 아시아인들에게 큰 영향을 준다고 생각하진 않습니다. 아시아를 통해 새로운 진보적 시각을 우리 사회 안에서 만들어 내는 것이 더 의미있지 않을까요. 경제적으로 보면 미국식 신자유주의 말고 아시아 차원의 새로운 모델을 발견할 수 있지 않을까, 이런 측면의 관심과 고민이 있어야 합니다. 성급하게 초국가적 아시아 담론을 만드는 것에 대해 저는 조심스러운 입장입니다.

조희연=지구화 충격에서 비롯된 지점이 있는 듯합니다. 초국가적 이슈가 등장했지만 세계적 거버넌스(협치)는 아직 출현하지 않았어요. 그 공백에서 지역 문제에 관심을 갖고 다양한 실험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1989년의 APEC, 1996년 ASEM, 1997년 ASEAN+3 등이 그렇습니다. 저는 이 과정이 근대화 변화 과정과 유사하다고 보고 있습니다. 근대화 과정을 보면 지방을 뛰어넘는 국민적 경제통합이 먼저 진행되고 난 뒤 정치통합 과정을 밟게 됩니다. 제 관심은 경제와 정치에 시민사회적 요구를 어떻게 각인할 것인가입니다.

# 시민차원의 초국가적 프로젝트 가능한가

백영서=지역통합은 정치안보·경제·사회문화 통합 등 세 층위로 이루어져 있지만, 이것이 불균등하게 진행되고 있습니다. 분야 별로 나누어 이야기를 진행해 나가면 어떨까요.

김기석=동아시아 통합논의 진행은 경제에서 빨리가고 정치에서도 진행되다가 실질적 문제로 넘가가면서 늦어지기 시작했습니다. 경제통합은 계속 진행될 것이고, 정치부문 지체는 시민사회 개입을 통해 돌파해 나갈 추동력을 만들 수 있지 않을까요.

이남주=아시아 협력에서 특징적인 것은 사회문화적 협력이 국가적 협력보다 떨어져 있다는 것입니다. 지식인 영역에서 보면 아시아를 자기 문제 해결의 주요 공간으로 보는지 의심스러운 상황입니다.

박승우=초국가적 문제를 지역 거버넌스 차원에서 다루면 정치공동체를 형성하는 데 학습 효과가 있지 않을까요. 최근 일본 정부가 아시아 경제환경 공동체 구상안을 발표했습니다. 동아시아 지역에서 일본이 주도적으로 환경문제를 바꿔보겠다는 의지가 보였습니다. 우리 정부가 그런 제안을 먼저 했으면 좋았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백영서=기능적 성과가 쌓이면 동아시아 공동체가 되는 걸까요. 기능별 접근에 의한 성과 축적은 현실적 요구에 따라 당연히 많아질 것입니다. 지역 공동체를 통해 이상사회를 바라는 것인지, 유럽연합(EU) 정도의 공동체를 목표로 하는 것인지에 대한 이야기가 있어야 합니다.

조희연=한국 정부와 시민단체가 초국경적인 아시아 프로젝트를 제시하지 못하는 것은 제국주의 경험이 없기 때문에 나타나는 긍정적 유산이기도 합니다. 그것이 단점도 되지만요. 흥미로운 것은 이명박 정부 하에서 어떤 모습이 나타날 것인가입니다. 전 우파 국제주의 양상이 생길 수 있다고 봅니다. 일본 우파의 헌법 9조 개정 논의는, 국제 기여를 명분으로 평화헌법을 해체하려는 일본 보수 정권의 모습입니다. 시민사회가 이에 대한 적극적인 비전을 만들어내지 않으면 한국·미국·일본으로 이어지는 한·미·일 우파 국제주의 프로젝트가 확산될 수 있어요.

이남주=시민운동 차원에서 성급하게 초국가적 프로젝트를 하는 게 맞을까요. 대부분의 프로젝트는 정부 주도이고 이것은 당분간 변할 수 없는 현실이라고 봅니다. 거버넌스를 논의할 자본과 인력을 갖춘 곳은 정부밖에 없으니까요. 장기적으로 아시아 문제를 잘 다룰 수 있는 사회를 만드는 것이 1차 과제라고 봅니다. 풀뿌리 단위의 교류가 취약한 상태에서 시민사회단체의 국제 네트워크가 밑의 의견을 얼마나 대변하는지 의심스러울 때가 많습니다.

# 이 대통령, 동남아 대신 4강만 이야기

백영서=아시아에 대한 인식의 쌍방향성을 알아야 합니다. 내가 속한 사회에 어떤 영향을 미치느냐와 개별 사회의 변혁이 아시아 전체에 어떤 영향을 미치느냐를 같이 봐야 합니다. 바깥으로 나가기만 하면 국내 사회 변혁엔 관심없이 공항만을 오고가는 활동가가 되기 쉽습니다. 바로 세계 속으로 갈 수 있는데 왜 아시아라는 단위가 필요한가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어야 합니다. 아시아적 정체성이 친미에 대한 대안이 될 수 있다는, 즉 대안적 세계를 만들 수 있는 비전을 갖고 얘기해야 합니다.

이재현=제가 이해하는 시민사회의 아시아 프로젝트는 국가 차원에서 하는 일들에 대해 비판적 감시자가 돼야 한다는 것입니다. 시민사회가 집행자가 되는 것은 바람직하지도 않고, 가능하지도 않다고 봅니다.

조희연=전 민족주의를 넘어서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비실천적 탈민족주의론엔 반대합니다. 지구화 과정은 이질적이고 복합적입니다. 이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지역이란 층위가 이전과는 다르게 삶을 규정할 수밖에 없어요. 시민사회적 관심에선 우리 생활에 영향을 미치는 억압의 실체를 인간화하려고 노력합니다. 자연스럽게 세계화에 대해 응전하지만 자본과 국가가 주도하는 지역통합 질서에 시민사회가 여러 수준의 하나로 개입해야 합니다.

김기석=아시아에 대한 지리적 범위가 최근에 오히려 좁아졌습니다. 이명박 정부에 들어와서 동남아시아에 대한 이야기가 거의 없어졌어요. 4강만 이야기합니다. 강대국 사이에서 우리 역할이란 없는데도요. 우리가 왜 아시아를 봐야 하느냐에 대한 설득력 있는 설명이 필요합니다.

백영서=우리나라에서 동아시아 담론을 보면 1997년 이전에는 인문학자가 주도했습니다. 새로운 문명, 변혁론을 생각하는 것이었습니다. 1970~80년대 민족민중적인 방식이 실험되고 좌절되면서 다른 대안을 찾았고, 그것이 아시아로 관심을 돌리게 했습니다. 대안적 세상에 대한 관심입니다. 아시아 경제위기 이후 사회과학자가 이 논의에 뛰어 들면서 내용은 구체화됐지만 논의의 폭은 줄어들었습니다. 국가와 자본이 주도하는 상황에서 어떤 제도를 만들까에 관심이 있었어요. 노무현 정권 때 온갖 프로젝트가 난무했지요. 시민사회 영역으로 한정한다면 어떤 아시아를 원하는 것인가를 놓고 경쟁할 수밖에 없습니다. ‘왜 아시아냐’는 질문은 이미 넘어갔고 ‘어떤 아시아냐’를 놓고 경쟁이 벌어지는 상황이 아닐까요.

# 식민, 독재, 세계화 희생자 경험을 공유해야

조희연=아시아의 미래상을 그려본다면 경제통합은 상당히 진전될 듯합니다. 그러므로 이제는 어떤 아시아를 구성할 것인가가 중요합니다. 탈식민주의적, 반서구적, 자주적 지향을 급진적으로 점유하지 않으면 우파가 이런 이슈를 선점해 많은 좌파를 전향하게 할 것입니다. 일본의 대동아공영권이 많은 좌파를 전향시켰던 것은 그것이 갖는 탈식민주의적, 진보적 지향이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환경·인권 등 주제별 연대를 뛰어 넘는 시민사회적 아시아 담론이 필요합니다. 예를 들어 낮은 수준의 아시아 시민권을 상상해보면 어떨까요. 단일 국적성을 넘어선다는 측면에서 이중, 삼중 국적을 제도화할 가능성을 생각해 보자는 겁니다.

이남주=서양에서 찾을 수 없는 우월함이 아시아에 있다는 논리는 일반인에게는 매력적으로 먹히는 담론입니다. 저는 이것이 위험하다고 생각합니다. 아시아가 선험적으로 우월하다고 여기는 접근에서 벗어나, 그렇지 않더라도 왜 아시아여야 하나에 대한 풍부한 내용이 있어야 정책적 문제에 대해 설득력을 가질 수 있습니다. ‘시민권을 왜 아시아권에서만 해야 하나, 캐나다와도 할 수 있는데’하는 지점에 대한 문제 의식을 분명히 해줘야 합니다. 저는 아시아 국가들이 서구식 근대화 과정을 밟으며 유사한 문제들에 직면하고 있다고 봅니다. 이것이 공동 출발의 계기가 될 수 있습니다. 서구에서 생각지 못했던, 우리가 더 긴박하고 실질적으로 생각지 않으면 나아갈 수 없는 지점들에 대해 공감대를 만들어 나갈 때 구체적이고 정치적인 문제까지 도달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박승우=90년대 초부터 서구와 다른 대안체제를 모색하는 담론들이 이어져왔는데 아쉬운 것은 구체적인 모습이 담겨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그 점에서 2000년대 이후 참여한 사회과학자들이 역할을 했어야 했는데 그것도 미흡했습니다.

조희연=희망사항이기도 한데 서구에서 끌어낼 수 없는 아시아의 역사적, 문화적 자원을 끌어내야 할 듯합니다. 피억압의 역사 속에서의 식민주의 경험, 냉전 포로, 권위주의적 개발독재에 의한 희생, 다시 약탈적 세계화의 희생자가 되는 경험 등을 공유한 속에서 새로운 아시아 에토스를 어떻게 끌어낼 것인가를 고민해야 합니다.

백영서=역사 속에서 작동했던 것을 맥락에서 떼어내 적용시키는 것은 위험합니다. 제국주의 식민 경험, 미국에 이은 중국 패권 문제 등 근대 경험에서 공통점을 끌어내는 것이 시급합니다.

박승우=아시아에서 일어나는 엄청난 규모의 인적교류는 세계사적으로도 중요한 변화입니다. 제국주의 경험이 없다는 것도 중요하고요. 지금의 경제 위기는 경기 변동 차원이 아닌, 자본주의 체제의 취약성을 보여주는 것이 아닌가 하는 느낌이 듭니다. 환경·에너지·자원 문제 등 큰 위기와 변화가 있을 것입니다. 기존 체제를 유지해왔던 것이 근대 자본주의라는 틀이었는데 이런 골격을 서구가 아닌 아시아에서 다시 생각해야만 하는 역사적 국면에 와있지 않느냐는 생각입니다.

〈 정리 | 임영주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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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에게 그곳은 어떤 의미인가" 
 
 히틀러가 꿈꿨던 낙원, 티베트

 
  1933년 미국의 소설가 제임스 힐튼이 쓴 소설 <잃어버린 지평선>이란 소설에 아름다운 자원을 묘사한 낙원이 소개된다. 샹그릴라(Shangrila)로 부른 그곳은 동양의 신비와 지혜를 찾는 서구인들을 자극하여 히틀러를 비롯한 수많은 사람들을 히말라야로 이끌었다. 오리엔탈리즘의 하나로 비판받기도 하지만 어쨌든, 티베트 문제가 유독 유명 헐리우드 스타들을 비롯하여 유럽의 지식인들에게서 지지를 받는 것도 티베트불교가 가진 그 신비로움에 대한 동경에서 비롯된다고 볼 수 있다.
 
  1989년 노벨평화상을 받은 이후 현재까지도 달라이라마는 종교를 뛰어넘어 세계적인 영적 지도자가 되었고 티베트 또한 고대의 지혜를 배우고 명상하려는 수많은 여행자들의 이상향으로 자리 잡았다. 불교와 명상에 별 관심이 없는 사람들에게도 여러 만화와 소설, 영화를 통해 티베트는 뭔가 신비로움을 간직한 평화의 땅으로 인식되었다. 적어도 최근 며칠 사이에 벌어진 일이 있기 전에는….
 
  한국 운동에는 낯선 티베트의 비극
 
  3월 14일을 전후하여 외신은 긴급하게 티베트에서 대규모 시위가 벌어졌고 중국정부의 무력진압으로 인해 많은 사상자가 발생하였다고 보도하기 시작하였다. 시위대의 요구가 무엇인지 정확히 몰랐지만 많은 인명이 희생당했다는 뉴스는 올림픽을 앞둔 중국의 상황과 맞물려 한국의 주요 언론에서도 비중 있게 다뤄졌다. 마침 티베트출신 이주노동자의 연대요청이 있었고 부랴부랴 한국 단체들도 중국대사관 앞 기자회견과 촛불집회를 준비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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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련의 과정에서 느낀 것은, 한국의 국제연대운동은, 아니 한국사회는 티베트에 대해서 아는 것이 너무 없다는 것이었다. 티베트 관련 집회를 준비한다는 이유로 언론사에 취재를 받으면서 외신 내용만을 답할 수밖에 없는 게 현실이었다. 또 지난 버마 민주화지지 촛불집회와 반전집회와 비교해보아도 많은 한국 단체들의 참여는 없었다.
 
  물론 급하게 조직한 기자회견에도 불구하고 36개 단체가 연명한 것은 고무적인 일이지만 분명, 티베트 시위를 바라보는 데 있어서 여러 이견들이 존재하는 것은 사실이다. 비슷한 인권사안이더라도 미국을 비롯한 서구가 지지하는 사안에는 신중한 한국운동의 특수성에 원인이 있는 것인지, 아니면 여전히 국제이슈에 대해서는 무관심해서인지 알 수는 없다. 티베트 문제뿐만 아니라 파룬궁을 비롯한 여러 중국내 인권문제에 대해서 보이고 있는 암묵적인 한국 운동의 거리두기는 북경 올림픽을 앞두고 변화가 필요한 시점이다.
 
  시민들의 자발적 티베트 지지 운동
 
  상대적으로 저조한 한국 단체들의 참여와 비교해보면 일반(?) 네티즌들의 자발적인 운동은 정말 인상적이다. 티베트를 다녀온 사람들이 만든 온라인 카페를 중심으로 이들은 스스로 계획을 짜고 서로를 북돋우며 티베트를 지지하는 한국사회의 흐름을 만들어가고 있다. 생전 처음 만난 사람들이 티베트에서 만난 친구들을 걱정하는 마음하나로 뭉쳐서 움직이는 모습은 소위 '운동권'인 내게 신선한 충격이었다. 왜냐하면 언제부턴가 보도자료 만들고, 단체연명 조직하고 대표자 발언 조직하는 것이 나의 운동의 중요한 부분이 되어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분들의 모습은 국제연대운동을 고민하던 내가 원했던 바로 그것이었다. 사람이 없고, 돈이 없고, 언론이 관심을 가져주지 않아서 국제연대운동 하기 힘들다고 투덜거리던 내게 단 며칠사이에 90만 원이 넘는 돈을 모금하고 자발적으로 역할을 분담하는 이들의 모습은 '티베트가 과연 이들에게 어떤 의미인가'를 궁금하게 만들 정도였다. 고집스럽게 비폭력평화노선을 견지하는 달라이라마와 이들의 열정은 어쩌면 닮아 있는 것도 같다.
 
  하늘나라의 일이 아니라 바로 우리의 일
 
  히말라야 산맥 위에 자리 잡은 티베트가 서구인들에게 동경의 대상이었다면 한족에게는 배척의 대상이었다. 각종 무협지만 보더라도 한족의 무림세력들은 티베트불교를 중원을 침공하는 변방의 사악한 종교집단으로 묘사하고 있다.(심지어는 이들을 막기 위해 같은 한족인 정파와 사파가 힘을 합치기도 한다) 중국정부가 '인민전쟁'이나 '생사를 건 투쟁'이라는 극한 표현을 동원하며 티베트를 탄압하는 것은 티베트가 가진 엄청난 자원 때문이지만 이러한 뿌리 깊은 중화사상에서 출발하고 있다.
 
  티베트인과 한족간의 역사적 배경까지 우리가 알 필요는 없겠지만 일제지배의 아픔과 광주의 비극을 경험한 우리에게 티베트인들의 현실은 머나먼 하늘나라에서 벌어지는 일만은 아닐 것이다. 설령 누군가에게는 봉건적 종교와 사회주의체제간의 다툼이거나, '인권'을 핑계로 내정간섭을 일삼는 서구제국주의의 음모일수도 있다. 그러나 불안정한 신분임에도 불구하고 마스크를 쓰고 거리로 나올 수밖에 없는 국내 거주 티베트 인들에겐 요 며칠의 일들은 비교할 수 없는 고통의 시간들일 것이다.
 
  달라이라마가 전 세계에서 유일하게 갈 수 없는 나라가 중국과 한국이라고 한다. 또한 최근 한 홍콩 언론의 보도에 의하면 한국인들이 중국의 무력진압에 가장 비판적인 것으로 조사되었다고 한다. 일반 국민들의 수준에 못 미치는 '저질외교'는 비판받아 마땅하지만 아시아에 대한 정보와 이해가 부족한 한국의 운동 수준 역시 끌어올려야 한다.
 
  촛불집회 때 어떤 분이 "경제도 어려운데 티베트가 웬 말이야?"라고 역정을 내셨다. 아무리 경제가 어려워도, 아무리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따야 하더라도 사람의 생명이 우선이다. 그래서 총칼을 동원하여 시위대를 학살하는 권력에 대한 비판은 다른 무엇보다 우선되어야 한다. 당장 지금 티베트에서 폭력은 멈춰져야 한다. 



나현필 / 국제민주연대 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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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급제안]오늘과 내일,(3월 20일-3월21일)도 중국 정부의 티베트 시위대에 대한 무력진압에 항의하는 촛불집회가 계속됩니다.

중국정부의 티베트 시위대 무력진압에 항의하는 촛불 문화제

일시 : 2008년 3월 20일 목요일-3월 20일 금요일 저녁 7시

장소 : 서울 광화문 교보문고 앞




○ 중국 정부가 제시한 투항 시한이 끝나면서 라싸 시내에 1만 여명의 군인들과 1000여명의 무장 경찰, 장갑차 등을 배치하고, 가택수색을 벌이고 있습니다. 언론이 통제되었지만 언론보도에 의하면 수천명이 검거되었다는 소식이 들리고 있습니다. 국제적 염려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중국정부는 ‘강경대응’을 말하고 있습니다.

○ 중국정부의 티베트인들에 대한 체포, 감금, 고문 등 야만적인 폭력행사에 항의하며 티베트의 평화를 기원하는 마음으로 이틀째 저녁 7시 광화문에서 촛불문화제를 개최하였습니다. 촛불문화제에는 한국에 거주하는 티베트 인들과 다함께, 국제민주연대 등의 시민사회단체, 티베트 여행자들의 온라인 동호회인 “티베트의 친구들”, "씽크티벳ThinkTibet" 여러분들과 길바닥평화행동, 참여불교재가연대, 한국성적소수자문화인권센터, 천주교인권위원회, 버마행동, 버마NLD 한국지부 등이 참여했으며, 영화감독 임순례 님도 티베트의 친구들과 함께 참여하셨습니다.

○ 촛불문화제 참가자들은 중국 정부의 검거가 시작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오늘(19일) 다시 촛불문화제를 열기로 하였습니다.

 ○ 참가자들은 21일 금요일까지 촛불문화제를 계속하기로 의견을 모았으며 오늘 20일과 21일 촛불문화제는 “티베트의 친구들”과 참여불교재가연대 등이 적극적으로 함께 준비하기로 했습니다.

○ 이에 제 시민사회단체 여러분께 긴급 촛불집회에 함께 해 주실 것을 호소합니다.

○ 현장에서 참가하신 분들의 의견과 자유발언을 들으며 진행하려고 합니다.

○ 촛불집회에 대한 다양한 조언과 의견을 주시면 적극 반영하도록 하겠습니다.

○ 참여하는 단체별로 다양하게 팻말 등을 제작하여 참여하면 더욱 좋겠습니다.

 

문의) 다함께(02-2271-2395, 조지영 010-2290-42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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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의 초국가적 문제와 시민사회의 아시아 연대

'연중기획 아시아포럼'은 산적한 초국가적 문제들의 현주소를 검토하고 아시아와 한국의 시민사회가 이에 올바르게 접근하는 방법을 모색하려 합니다.
여러분의 많은 관심과 참여 부탁드립니다.

  • 첫 번째 강좌 : 인간안보의 관점에서 바라본 아시아연대 
    발제: 라미경/ 순천향대학교 사회과학연구소 교수
    일시: 2008년 3월 28일(금) 오후 3시~5시, 경희대학교 본관 2층 대회의실

  • 두 번째 강좌 :  마약밀매를 통해 본 아시아 민중의 삶
    발제: 조성권/ 한성대학교 국제마약학과 교수
    일시: 2008년 5월 2일(금) 오후 3시~5시, 연세대학교

  • 세 번째 강좌 :  동남아의 인신매매
    발제: 조윤미/ 서울대학교 비교문화연구소 연구원
    일시: 2008년 5월 30일(금) 오후 3시~5시, 경희대학교 본관 2층 대회의실

  • 네 번째 강좌 : 아시아의 빈곤 문제
    발제: 박번순/ 삼성경제연구소 연구전문위원
    일시: 2008년 6월 27일(금) 오후 7시~9시, 참여연대 지하 느티나무홀 

  • 다섯 번째 강좌 :  아시아의 초국가적 환경 문제
    발제: 조영희/ 한국동남아연구소 선임 연구원
    일시: 2008년 7월 25일(금) 오후 3시~5시, 연세대

  • 여섯 번째 강좌 : 21세기 새롭게 떠오르는 광역질병문제
    발제: 허창덕/ 영남대학교 사회학과 교수
    일시: 2008년 9월 5일(금) 오후 3시~5시, 경희대학교 본관 2층 대회의실

  • 일곱 번째 강좌 : 아시아 국가의 강압적 테러 대응책과 시민사회의 역할
    발제: 이동윤 신라대학교 국제관계학과 교수
    일시: 2008년 9월26일(금) 오후 7시~9시, 참여연대 지하 느티나무홀

  •  여덟 번째 강좌 : 이주의 시대를 살아가는 아시아 사람들
    발제: 김이선/ 한국여성정책연구원 연구위원
    일시: 2008년 10월 24일(금) 오후 7시~9시, 참여연대 지하 느티나무홀

  • 아홉 번째 강좌 : 인터넷과 아시아연대
    발제: 윤민재/ 서울대학교 사회발전연구소 객원 연구원
    일시: 2008년 11월 21일(금) 오후 3시~5시, 연세대

  • 종합좌담 : 초국가적 문제와 아시아연대
    일시: 2008년 12월19일(금) 오후 3시~5시, 참여연대 지하 느티나무홀


문의: 참여연대 국제연대위원회,02-723-5051, silverway@pspd.org
주최: 경향신문, 경희대학교 인류사회재건연구원, 연세대학교 정치외교학과 BK21사업단, 참여연대 국제연대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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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국은 티베트인에 대한 야만적 학살을 중단하라!

티베트인들의 평화적 시위를 중국공안과 군인들이 폭력적으로 탄압하여 유혈참극으로 비화되었다는 언론보도를 접하면서 우리는 안타까움과 우려의 마음을 금할 수 없다.

티베트 스님들의 비폭력 시위로 촉발된 이번 사태는 몽둥이와 최루탄 진압이 발단이 되었고, 총과 장갑차를 앞세운 중국의 탄압으로 벌써 1백명 이상의 티베트인들이 희생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런데도 중국은 모든 정보를 통제하면서 티베트인들의 일부 방화장면 등만을 내보내며 자신들의 정당성을 강변하고 있다. 이러한 중국의 태도를 보면서, 역으로 얼마나 많은 티베트인들이 중국의 총칼에 핍박을 받고 있을지 짐작키 어렵지 않다.

중국은 지난 50년대 티베트를 강제점령하면서 120만명의 티베트인들을 학살하였고, 또한 1989년에는 판첸 라마의 살해 의혹을 항의하는 티베트 수도 라사의 시민들에게 화염방사기를 난사하는 반 인권적 행위를 서슴지 않은 바가 있다. 이제라도 중국은 더 이상 시대착오적이고 반인륜적 탄압을 중단하고 티베트인의 평화적 시위를 보장해야 할 것이다.

주지하다시피 이번 시위는 중국정부의 일관되지 못한 처신에 대한 티베트인의 반감에서 비롯되었다. 중국은 베이징 올림픽 유치를 위해 국제사회의 비난을 의식하여 티베트에 대한 유화적 조치를 취하다, 올림픽 유치를 성사시킨 후 태도를 돌변하였고, 최근에는 티베트망명정부와의 대화 자체를 거부하고 있다. 티베트의 지도자 달라이 라마가 “나라 운영은 모두 중국이 맡아라. 대신 티베트인들이 종교와 문화쪽만 자치할 수 있게 해달라”고 거듭 양보의 뜻을 천명했음에도 중국은 이마저도 거절했다. 자치를 허용하고 있다면서, 부분 자치마저 허용할 수 없다는 중국의 태도를 어떤 상식 있는 이가 이해할 수 있겠는가? 이런 중국의 이중적인 태도에 대하여 티베트인들이 ‘달라이 라마의 귀국을 허용하라’고 시위를 벌인 것은 너무도 정당한 것이라는 것이 우리의 판단이다.

중국은 ‘하나의 중국’ 정책을 마치 전가의 보도처럼 휘두르고 있지만, 우리는 중국이 이러한 주장을 할 만한 실질적이고 내용적인 조치들을 지난 수 십년간 취하지 않고 있다고 판단한다. 지구촌 모든 이들의 보편적 가치인 평화와 인권에 대하여 개선된 점 하나를 제대로 보여주지 못하면서, 하나의 중국만을 강조한다면 이야말로 힘으로 약소국을 정벌하겠다는 패권주의와 무엇이 다르겠는가?

UN은 속히 진상조사단을 티베트에 파견하라! 반기문 유엔사무총장은 유엔총회와 안보리를 소집하여 티베트에서 자행된 학살의 진상에 대해 철저히 조사하고, 응당한 조치를 취하는데 적극 나서야 한다. 선량한 국제사회의 여론을 환기시키고, 인류애호의 보편적 가치를 UN이 나서 지킬 수 있도록 그 책무를 다해야 한다.

우리는 한국 정부와 국민에게도 호소한다. 우리가 일제 치하 36년 암흑 같은 세월을 견딜 수 있었던 데는 국제사회의 따뜻한 관심과 지원이 큰 힘이 되었음을 상기하여야 한다. 아무리 강대국이라 하여도 제국주의적 침략을 일삼거나 인권유린 세력을 지원하는 그런 나라에는 제대로 된 충언을 할 수 있어야 좋은 이웃이라 할 수 있다. 이야말로 대한민국을 한 단계 더 성장시킬 기본중의 기본이 될 것이다.

중국정부에 진심으로 충언한다. 이미 세계는 촘촘한 그물망으로 연결되어 서로 깊은 영향을 주고 받고 있다. 과거처럼 다시 한번 반인륜적 잔인한 학살을 티베트에서 저지른다면, 그 진실이 감춰질 수도 없을 뿐 아니라 국제사회의 거센 비난에 직면할 것이다. 중국은 지금이라도 티베트인들에 겨눈 총칼을 거두고, 과거의 야만을 사죄하라. 그조차 모르는 나라는 올림픽을 개최할 자격도 없음을 각성하라!

2008.3.20

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


 

Posted by 영기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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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정부는 티베트 시위대 무력 진압을 중단하라!


국제민주연대, 민변 국제연대위원회, 경게를 넘어 및 참여연대등 36개 시민사회노동단체는 3월 18일(화) 낮 10시, 중국 대사관 앞에서 "중국의 티베트 시위 무력진압 규탄 한국 시민사회단체 공동기자회견"을 열었다. 이들 단체들은  중국정부가 티벳인들의 분리독립요구 시위를 무력으로 진압하면서 많은 인명이 사상된 것을 우려하였다. 이날 기자회견에서는 한국에 거주하는 티베트인들이 참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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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대사관 앞


기자회견문

중국 정부에 맞선 티베트인들의 시위가 며칠째 계속되고 있다. 중국의 점령에 맞선 1959년 항쟁 49주년을 기념하는 평화 시위를 중국 정부가 무차별적 폭력으로 대응하면서 티베트 민중들이 학살당하고 있는 것이다.
티베트인들은 오랫동안 독립을 유지하며 고유의 문화를 유지하고 살아왔음에도 중국정부는 1951년부터 티베트를 무력 점령해 왔다.

중국이 티베트를 무력 점령한 지난 59년 동안, 티베트인들은 중국의 강압에 의해 각종 인권침해를 당해왔을 뿐만 아니라 중국은 개발이라는 미명하에 티베트의 자연을 파괴해왔다. 중국 정부가 불교 사원을 대량 파괴하고 한족을 대거 이주시키면서 티베트의 정신적 지도자인 달라이라마를 인정하지 않는 등의 강압통치를 해오자 티베트인들은 1959년, 1987년, 1989년에 대규모 항쟁을 계속해왔다. 외국 점령에 맞선 티베트인들의 저항은 정당한 것임에도 불구하고 중국은 이들의 항쟁을 폭력적으로 진압해왔고 결국 이번 시위 역시 최대 1백 명에 가까운 티베트인들이 학살당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또한 중국군은 집집마다 수색하면서 시위 참가자들을 잡아들이고 있다는 보도도 있다.

중국 정부는 여기 그치지 않고, 3월 17일 자정까지 모든 시위 참가자들이 투항하지 않으면 더 강력하게 대응하겠다고 협박하고 있다.

중국정부는 2008년 북경 올림픽을 앞두고 국제사회에 중국의 인권정책은 어떤 것인지를 책임 있게 내놓아야 한다. 지난해 버마 민주화 항쟁 당시에도 중국정부는 버마 군사독재정권의 편에 서서 버마 민중들의 민주화 요구를 무시하였다. 이번 티베트 시위역시 티베트인들의 정당한 요구를 폭력으로 진압하면서 중국은 국제적인 인권침해 국가로 비난받고 있다. 이미 인도, 오스트레일리아, 일본, 대만 등 많은 나라들에서 중국 정부의 무력 진압에 반대하는 집회가 열리고 있으며 올림픽을 앞두고 대대적인 반 중국 캠페인이 벌어질 예정이다.

오늘 기자회견에 참가한 한국 시민사회 진영과 민중운동 진영은 부당한 외세의 억압에 맞서 자신들의 권리를 주장하는 티베트인들의 시위를 적극 지지한다. 중국정부는 줄기차게 제기된 티베트문제를 감추는데 급급하지 말고 평화적인 대화를 통해 이 문제를 풀어야 할 것이다. 무력으로 티베트인들의 정당한 요구를 짓밟는 중국정부의 잘못된 행동은 즉각 중단되어야 하며 만일, 중국정부가 이러한 국제사회의 요구를 외면한다면 북경 올림픽이 화합의 축제로 개최되지 못할 점을 경고하는 바이다.

하나, 중국정부는 티베트 시위대에 대한 무력진압을 즉각 중단하라!

하나, 중국정부는 티베트인들의 정당한 요구에 귀 기울여라!

하나, 중국정부는 티베트인들의 민주주의와 인권을 보장하라!

2008년 3월 18일

경계를 넘어/광주인권운동센터/구속노동자후원회/국제민주연대/다산인권센터/다함께/동성애자인권연대/문화연대/민주노총 법률원/민주사회를위한 변호사모임 국제연대위원회/민주화실천가족운동협의회/버마액션/버마NLD 한국지부/부산인권센터/불교인권위원회/빈곤과차별에저항하는인권운동연대/삼성해고자복직투쟁위원회/서울경기인천이주노동자노동조합/성동건강복지센터/위례시민연대/인권실천시민연대/이주노동자인권연대/전쟁없는세상/제주참여환경연대/진보신당연대회의/참여연대/천주교인권위원회/카사마코/트랜스젠더인권활동단체 지렁이/티베트의 친구들/팔레스타인 평화연대/한국게이인권운동단체 친구사이/한국레즈비언상담소/한국성적소수자문화인권센터/한국성폭력상담소/한국티베트공동체센터(가나다 순, 전국 36개 단체)


티베트 사태 경과보고

1. 2008년 3월 10일, 1959년 3월 10일에 일어난 대규모 민중봉기를 기념하는 시위가 발생함. 1959년당시, 중국의 무력진압으로 인해 수만명의 티벳인들이 학살되고 달라이라마가 망명하게 됨.

2. 2008년 3월 14일 오후에 티베트의 수도 라싸에서 1989년 이후 최대규모의 시위가 발생하고, 중국 당국이 과잉진압에 나서자 시위가 격화됨. 14일 시위가 외신을 통해 알려지면서 국제사회가 주목하게 됨.

3. 3월 14일 시위를 계기로 3월 15일부터 라싸에 사실상의 계엄령이 선포되고 중국 군이 본격적으로 진압에 동원 됨. 15일에도 라싸를 비롯한 티벳 곳곳에서 시위가 발생함. 14, 15일 시위를 통해 수도 라싸에서만 10명에서(중국 당국 공식 발표) 100명(현지소식통)의 사망자가 발생한 것으로 알려짐. 3월 15일부터 호주를 시작으로 세계 곳곳에서 티베트 독립을 지지하는 시위가 개최됨. 중국정부는 티베트사태를 “달라이라마가 개입한 불순분자에 의한 폭동”으로 규정하고 ‘인민전쟁’을 선언함

4.  3월 16일 전세계 곳곳에서 티베트 독립을 지지하는 시위가 벌어지고, 중국정부는 3월 17일 자정까지 시위대가 투항할 것을 최후 통첩함. 티벳 인근지역인 깐수성과 쓰촨성에서도 티벳승려와 일반시민 1000명 이상이 시위에 나섬. 이 과정에서 쓰촨성에서 발생한 시위로 인해 34명이 사망한 것으로 알려짐. 최대 1000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다는 주장이 나오는 가운데, 인도에서 망명정부를 이끌고 있는 달라이라마는 국제사회의 무력진압에 대한 조사를 요구.

5. 3월 17일 중국은 공식기자회견을 통해 민간인 13명이 사망하고 10명이 중상을 입었다고 발표함. 아울러 수도인 라싸가 안정을 찾아가고 있으며 경찰 61명이 중경상을 입었다고 발표. 시위대에 대한 발포를 비롯한 살상용무기 사용을 공식 부인함. 17일 자정까지로 예정된 최후통첩을 앞두고 병력이 증강 배치됨. 한국외교부, 브리핑을 통해 “이번 사태가 더 이상의 인명피해 없이 원만히 수습되기를 희망한다”고 밝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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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근본 취지 훼손, 수원국에도 환영받지 못할 수 있어

이명박 대통령이 취임사에서 외교 정책의 주요 방향으로 ‘글로벌 외교’와 함께 ODA(공적개발원조)를 활용한 ‘기여외교’, ‘자원외교’를 제시한 후, 최근 관련 정부 부처에서 잇따라 구체 방안이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언론 보도에 따르면, 외교통상부는 미국과 ODA정책대화를 갖고 공동으로 ODA를 실시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며, ODA를 중동과 아프리카 등의 자원부국에 집중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또한 지난 11일엔 대통령 업무 보고에서는 국제사회에서 한국의 영향력을 제고하기 위해 ODA를 2008년 0.1%로 증대하는 내용을 보고하였다. 기획재정부도 10일 ODA 규모를 지속적으로 확대하여 한국 기업의 ODA 시장 진출을 장려하겠다고 밝혔다.

그동안 경제 규모에 맞지 않게 양적, 질적으로 미흡했던 한국의 ODA 정책을 두고 이명박 정부가 이렇듯 활발하게 논의 하는 것은 무척 고무적인 일이다. 그러나 정부가 검토 중인 방안들을 보면, 자칫 국익을 앞세워 ODA의 근본 취지가 훼손되는 것은 아닌가 우려된다.

미국은 수십 년 전부터 ODA를 개도국과의 국제관계에 전략적으로 이용하는 정책을 채택해왔다. 특히 9.11 이후 ‘테러와의 전쟁’을 선포하면서 미국의 세계 전략에 안보 중심의 원조 정책을 활용하고 있다. 이런 미국의 정책은 애초 ODA의 취지와 어긋나므로 우리가 지향해야 할 원조 정책과 거리가 멀다.

따라서 한국이 이런 미국의 원조 정책과 협의하고 공동 사업을 추진한다는 것은 적절치 못하며, 미국의 군사 전략에 예속되고 한미 동맹 강화를 위한 수단으로 이용될 가능성이 높다. 이러한 정치적 외교 전략에 ODA를 들러리로 이용하려 한다면 수원국의 시민사회에서도 환영받지 못할 것이며, ODA 정책은 실패로 귀결될 수 있다.

또한 자원부국에 ODA를 집중한다는 방안도 분명 국제사회가 규정한 ODA 목적에서 크게 어긋난다. 일본이 대표적인 사례이다. 그래서 일본은 철저히 일본 기업의 시장 확대로서 ODA 정책을 이용한 나라다. 그래서 일본은 OECD DAC(개발원조위원회)로부터 ODA 정책 방향에 대해 냉혹한 비판을 받고 있으며 수원국 시민사회로부터도 많은 원성을 사고 있다. 한국의 ‘자원외교’ 정책이 이러한 일본의 ODA 정책과 매우 흡사한 형태로 진행된다면 일본이 현재 국제사회에서 겪고 있는 어려움을 그대로 답습하게 될 것이다.

또한 ODA정책을 자원부국 중심으로 지원한다는 것은 현실성이 떨어지는 발상이다. 현재 중국 등 몇몇 선진국들은 에너지 확보등 자국에 도움이 될 만한 저개발 국가들을 중심으로 엄청난 수준의 물량을 투자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한국이 이제 겨우 GNI 대비 0.06% 수준인 ODA로 자원 부국의 마음을 사로잡겠다는 것은 현실과 동떨어진다.

한국은 ODA 수원국에서 공여국으로 전환된 몇 안되는 나라 중 하나다. 수원국의 경험을 가지고 있는 만큼 공여국의 ODA 정책 기조가 수원국에 미치는 영향이 얼마나 큰지 잘 알고 있다. ODA정책의 근본 목적은 개발도상국의 빈곤 퇴치와 복지 증진이다. 정부는 국익을 앞세운 근시안적인 ODA 정책 기조를 진지하게 재검토하여 자국의 이익도 챙기지 못하고 수원국에 환영받지도 못하는 ODA정책이 되지 않도록 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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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체적 시민으로 성장하기


디스 이즈 아프리카(T. I. A)

하늘이 땅을 덮었다. 턱까지 차오르게 하는 무더운 열기는 땀을 내게 하지 않아 왠지 견딜만하다. 거리에 넘쳐나는 폭스바겐, 벤츠와 아우디의 차량은 이젠 식상하다. 길가 새까맣게 한두 명 혹은 무리 지어 걷는 흑인들의 뒷모습만이 눈길을 끈다. 버스라고 찾아볼 수 없는 거리에 가끔 지나가는 폐차위기의 봉고는 쌩쌩히 달린다. 흑인들을 잔뜩 싣고. 저것이 바로 자가용이 없는 흑인들을 위한 택시라고 하는 것이리라.

나는 이곳에서 자전거를 배웠다. 첫 나들이의 설렘과 달리 두려움이 먼저 엄습하는 것을 보면 이젠 제법 이곳의 실상이 독해가 되고 있는 듯하다. 허리를 깊이 숙여 간단한 숄더백을 크로스로 메고 자전거를 타고 제법 속도를 내보는데 흠칫 본능적으로 내 등골을 오싹하게 하는 것이 있어 돌아봤더니 총에 맞은 시체다. 흥건한 아스팔트 위의 적색의 그것은 저녁 땅거미가 지는 어스름께에도 치워지지 않고 있었다. T. I. A , This is Africa.


평등한 희망을 꿈꾸며

아프리카, 겨울이 없을 거라는 예상을 깨고 겨울은 혹독하다 못해 잔인하다. 오늘도 운동화도 없이 맨발로 온 아이들, 한겨울에도 얇디얇은 옷에 구멍이 숭숭 난 옷을 입고 거리를 활보하는 아이들은 꿈, 그 희망이라는 것조차 사치처럼 보였다. 인종차별이 가장 심한 나라, 남아공의 현실을 목도한 나에겐 차라리 잔인했다. 백인과 흑인들의 뼛속깊이 자리한 분리와 차별은 소리 없는 전쟁이다. 총성만 없었지 그들 사이에서는 언제나 희생이 따르고 승자와 패자가 있었으며 상처로 인한 보복의 역사가 대를 이어오고 있기 때문이다. 희망은 값없이 갖는 거라 생각했지만 희망조차 공평하게 갖지 못하고 극과 극을 달리는 흑인들의 삶을 보면서 난 내가 가진 것을 환원 아니 나누고 싶었다.

한국에 돌아와서 평화 공부를 시작했다. 평화라 함은 전쟁의 부재가 아니라 누구나 소박한 희망하나 공평하게 꾸는 것 아닐까. 희망조차 거세되어지는 상황이 갈등이고 전쟁이리라. 아프리카의 경험은 생각의 부유함, 평등한 희망을 꿈꾸게 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 우리가 할 수 있는 일

아프리카의 잔상이 늘 나의 뇌에 맺혀있었기에 나눔과 평화의 공존에 기여할 수 있는 공부를 하고 싶었다. ODA(Official Development Assistance, 공적개발원조)는 정부 및 지방정부를 포함한 공공기관이 개발도상국의 경제발전과 복지증진을 주목적으로 하여 개도국 또는 국제기구에 공여하는 증여와 차관을 의미한다. 마침 작년 여름 ODA유럽기관의 해외탐방에 오르게 되었다. 경희대 르네상스문명원에서 장학금을 받아 영국, 노르웨이, 스웨덴에서 ODA의 실상을 경험했다. 하지만 현실은 내가 생각한 ‘나눔’이라는 순수함에 기초하지 않았다. 대부분 해외원조는 역사적으로 식민지관계에 놓은 나라와의 현대판 연결고리요 명분이었고, 해외에 묻힌 천연자원이라는 파이를 나눠먹기 위한 보이지 않은 도움이라고 하는 탈의 각축이었다.

내가 현실에서 목도한 야누스 같은 모습은 줄이고 서로 공존을 목적으로 하는 나눔은 불가능할까? 희망은 있었다. 참여연대 ODA펠로우십 모집. 국가의 정책적 차원도 중요하지만 시민의 높은 사회참여인식과 의지,

이것을 표현할 통로가 있다면 ODA의 본의인 나눔의 실현은 가능하리라. 그런 의미에서 한국시민운동의 모체인 참여연대는 작은 희망이었다. 민주화 운동은 ‘문민정부’를 배태했지만, 집권 초기의 개혁적 시도가 과거 기득권층의 반발로 유야무야되던 시기에 참여연대 창립회원들은 구체적이고 일상적인 권력 감시운동이 삶의 모든 영역에서 생활 곳곳에서 일어나야 한다는 것을 가장 먼저 인식한 선구자가 아니던가. 국민의 참여의식을 자극하고 시민의 정치사회적 감성을 자극하기에 충분한 실천하는 단체라는 신뢰가 있었기 때문에 희망이라고 느껴졌다.


주체적?창조적 시민으로 성장하는 과정

참여연대 ODA펠로우십에 참여하는 8명은 한 달 동안 1주일에 1번씩 국내 전문가들을 통해 ODA 교육을 받았다. 그동안 받은 교육처럼 단순한 강의가 아니었다. 강의 중간과 마무리 시점에는 쏟아지는 질문과 토론으로 ODA를 해부해나갔다. 정의, 현실 점검, 이후 방향을 고민하는 한 달이 지나고 참여자들은 2주에 1번씩 과제를 수행한다. 우리가 관심 있는 분야를 선정해서 각자 발표를 하고 토론을 통해 질문을 주고받으며 의견을 수렴한다. 이런 과정을 통해 마치 철이 철을 날카롭게 하듯 사람은 사람을 통해서 배운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무엇보다 ODA라는 급속한 국제적 관심의 흐름에 뛰어든 한국의 원조 현황에 참여연대는 뒤에서 창조적이고 주체적인 생각을 가지고 안전밸브 역할을 할 수 있는 시민들을 매주 수요일마다 교육하고 있었다.

부여된 과제가 때로는 대학원의 과제만큼 부담스럽다. 교육 초기에는 수동적으로 배우기만 하겠다는 생각과는 달리 언제나 한 사람 한 사람을 중심에 놓는 참여연대의 방식은 무언의 책임감과 성실성을 요구하기에 근 두 달이 되었는데도 참 쉽지 않은 과정이다. 하지만 난 시민으로서도, 공부하는 학생으로서도 성숙해져갔다. 언제나 모범생이라는 소리를 듣고, 질문하는 것 의문을 다는 것이 때로는 선생님께 죄송한 일이라고 생각해오던 나는 이젠 손을 들어 이렇게 말한다. “제 생각에는……”

우리의 모임은 언제나 저녁 10시를 넘긴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참여연대 건물을 바라보며, ‘잘 자라라 희망아’하고 인사를 한다. 언제나 쉽지 않은 이 모임은 대중에 묻혀있지만 주체적인 생각을 가진 시민으로 살아가는 ‘희망’을 갖게 했다.

이글은 참여사회 2월호에 실린 글입니다.


김정임 (참여연대 펠로우십, 경희대 평화복지대학원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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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세안 헌장과 시민사회


아세안(동남아국가연합·ASEAN) 국가들이 아세안 헌장 비준 문제로 고민 중이다. 1967년에 출범한 아세안은 작년 11월 20일 싱가포르에서 개최된 제13차 정상회의에서 ASEAN헌장(Charter)을 채택하였다. 헌장은 헌법과 같은 것으로, 일단 발효되면 아세안은 유럽연합(EU) 처럼 국제법적 지위를 가지게 된다. 헌장 채택은 아세안이 40년간의 '동거'생활을 마치고 '결혼'하기로 했다는 것을 대외적으로 알리는 '약혼식'으로 비유할 수 있다. 그러나 이에 필요한 10개국의 비준이 결코 쉬워보이지 않는다.
 
ASEAN 헌장 제정은, 2005년 12월 제 11차 쿠알라룸푸르 정상회의에서 헌장 제정에 합의한 지 2년만에 '초고속'으로 진행되었다. 먼저 전직 대통령, 수상 또는 장관으로 구성된 저명인사그룹 (Eminent Persons Group·EPG)은 약 1년간을 광범위한 의견 수렴과 자체 토론을 통해 헌장의 목적과 원칙 그리고 다루어야 할 주요 내용 등 밑그림 작업을 한 후 2007년 1월 세부에서 열린 제 12차 아세안 정상회의에 권고안을 제출하였다.
 
아세안 정상은 이를 토대로 고위급초안작성위원회 (High-level Task Force·HLTF) 를 구성하여 헌장 초안 작성에 *착수하기로 결정하였다. 아세안 각국 정부를 대표하는 직업 외교관으로 구성된 초안작성위원회는 불과 10개월 만에 초안을 만들어 싱가포르에서 열린 정상회의에 제출하였다. '상호 내정불간섭과 합의제' 원칙으로 인해 의사결정과정이 비효율적이라는 비판을 받아온 아세안으로서는 매우 이례적인 사건이었다. 이렇게 급조된 헌장은 현재 절차 뿐 만 아니라 내용에서도 정당성과 실효성에 많은 결함과 문제를 드러내고 있다.
 
이전에 시민사회는 아세안을 '이빨 빠진 호랑이(toothless tiger)', 또는 현실과 유리된 '엘리트 클럽' 으로 간주하여 별로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이러한 변화에 대응하여 시민사회단체는 신속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2007년 초 출범한 아시아시민사회연대회의(Solidarity for Asian People's Advocacy·SAPA) 산하 아세안 실무그룹(Working Group on ASEAN) 은 저명인사그룹의 간담회에 참석하여 인권, 경제, 발전, 환경, 노동 등에 관한 시민사회단체의 의견을 제출하였고 초안작성위원회가 주관한 간담회에도 참석하였다. 그러나 시민사회 뿐만 아니라 언론의 거듭되는 요청에도 불구하고 헌장 초안 작성은 비공개로 진행되었으며 정상들이 서명을 한 후에야 헌장의 내용이 비로소 공개되었다. 따라서 시민사회는 물론 각국의 의회 또한 헌장의 내용을 알 수 없었고 실질적인 기여를 할 기회가 없었다.
 
싱가포르 정상회의 2주 전에 열린 제3차 아세안시민사회회의 (ASEAN Civil Society Conference III)에 참가한 약 150명의 시민사회 대표자들은 아세안헌장의 채택을 연기할 것을 요구하기로 결의하였다. 주된 이유는 시민사회의 의견 수렴 미비와 작년 발생한 버마의 대규모 인권 침해와 민주화 운동 탄압에 대한 의미있는 대책 부재였다. 한편 참가자들은 시민사회의 비전과 열망을 담은 민중헌장 (ASEAN People's Charter)을 제정하기로 결의하였다.
 
정상회의 약 10일 전 태국 인터넷 언론사는 태국의 국회의원을 통해 자체적으로 입수한 아세안 헌장 초안을 공개하였다. 초안 원문을 접한 시민사회단체의 반응은 대체로 매우 비판적이었다. 인권, 민주주의에 대한 언급이 있었으나 형식적이었고 '국가주의와 신자유주의 시장경제'의 언어과 관점이 지배적이다는 것이 중론이었는데 구체적으로 아세안 헌장은 '유럽연합과 미국 등과의 자유무역협정(FTA)을 통해 세계 자본주의경제에의 편입을 가속하기 위한 국제법적 기반을 만들기 위한 법적 수단에 불과하다'는 지적이 많은 공감을 받았다. 한마디로 헌장의 내용이 아세안의 비전인 "나눔과 돌봄의 공동체(Sharing and caring community)"와 부합하지 못한다는 것이었다.
 
일단 싱가포르는 약혼식 주최국 답게 올해 1월 초 가장 먼저 비준동의서를 자카르타에 있는 아세안 사무국에 제출하였다. 아세안의 인구 대국인 인도네시아 의회는2월 초 처음으로 비준 문제에 대한 논의를 하였지만 찬반 양론으로 나누어져 결론을 맺지 못하였다. 필리핀은 아웅산 수치 여사가 가택연금에서 풀리기 전에는 비준할 수 없다는 입장을 이미 천명한 바 있다. 말레이시아 내각은 헌장을 비준하기로 결의하였다. 태국은 2006년 9월 군사 쿠데타에 의해 해산된 상원이 2월 말 현재 아직 상원이 구성되지 않아 비준 논의를 못하고 있다. 아세안을 창립했던, 비교적 정치적으로 민주화되었다는 5개국의 상황이 이렇다보니 마지못해 헌장에 서명했던 나머지 나라들도 다른 나라들의 눈치를 보면서 시간끌기 작전을 구사하고 있다. 이렇듯 김이 빠진 듯한 분위기하에서 싱가포르 정상회의에서 약속했듯이 올해 말 태국에서 열리는 제 14차 아세안 정상회의에서 아세안 헌장 비준안이 통과될 지 불확실하게 되었다.
 
이런 딜레마에 처한 이유는 여러가지가 있지만 무엇보다도 아세안이 작년 설립 40주년을 맞이하여 불혹의 나이를 넘기지 말아야 한다는 심리적 강박관념으로 너무 서둘렀기 때문이다. 아세안은 형식으로는 정부간 기구(inter-governmental)이지만 내용으로는 시민사회의 제도적 참여를 의미하는 공치(共治·governance)여야 함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엘리트적 성격과 관료적 관행을 지속해왔다. 참여 민주주의의 기본 원칙은 과정이 다소 더디고, 시끄럽지만 결과의 정당성과 실효성을 보장하는 필요조건이다. 국제적 차원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아세안은 이제 불혹의 나이에 접어들었다. 앞으로 아세안이 구시대적 '관료독재'의 유혹으로부터 벗어나지 못하면 아세안 헌장도 유럽연합의 헌법처럼 한동안 우여곡절을 겪을 것으로 보인다.

이성훈(아시아인권발전포럼 사무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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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방에서 사회 변화를 본다
 

올해 초 보름가량 하노이와 호찌민시에 머물렀다. 매년 가는 베트남이지만 이번만큼은 더 많은 변화가 보인다. 베트남이 앞으로 발전가능성이 큰 나라라는 데는 대부분 동의한다. 베트남이 1980년대 말부터 급성장하여 이제는 아시아에서 작은 용으로 등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어떤 이는 성장잠재력이 큰 국가들인 BRICs의 브라질 대신에 베트남을 넣은 VRICs를 언급한다. 베트남은 2006년 11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회의를 성공적으로 개최하였고, 세계무역기구(WTO)에 가입하고 미국으로부터 항구적 정상교역관계국(PNTR) 지위를 부여받아 세계에서의 위상을 더욱 높였다. 2005년 말부터는 베트남 증권시장의 활황 속에서 한국의 투자가들도 베트남펀드에 투자하느라 야단들이었다. 이제는 베트남 정부도 과열된 증권시장을 진정시키려고 노력하고 있고, 세계 증시의 하향세로 좀 진정되는 분위기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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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한우


이런 속에서 땅값과 아파트값 상승 또한 한국 못지 않았다. 시내 중심의 땅 값은 10년 새 열 배 이상 올랐고, 아파트도 4, 5년 새 두 배나 뛰어 졸부들이 여럿 등장하였다. 2007년에는 여섯 달만에 두 배로 값이 뛴 아파트도 있다고 한다. 한 친구의 아파트를 방문하였는데, 그 옆집 주인은 증권시장에 상장하기 전 민영화하는 국영기업의 주식을 산 후 상장한 이후에 팔아 100배 가까운 수익을 얻어 그 아파트를 샀다고 한다. 이런 경제적 변화는 하노이 시 전체를 건설현장으로 만들어 놓았다. 남부 호찌민시에는 이미 고층 건물들이 많이 들어섰는데, 하노이 또한 호찌민시와 경쟁이라도 하듯이 건설 붐으로 시 전체가 먼지로 뒤덮여 있다.
 
 
이렇게 베트남 경제가 활황인데, 정치체제는 여전히 사회주의를 고수하고 있어 별다른 변화를 보이지 않는 듯하다. 공산당이 1당 지배를 계속하며 다당제를 거부하고 있고, 국민들의 대표인 국회의원을 뽑는 선거에서는 공산당 지도하의 베트남조국전선이 후보자 선발과정을 여전히 독점하고 있다. 표면적으로만 보면 정치적으로 별 변화가 없는 것 같다.

 
그러나 근래 책방 풍경을 보면 사뭇 다른 생각을 갖게 된다. 우선 대학 근처나 시내 중심에 책방이 우후죽순으로 많아졌다. 내가 하노이를 방문할 때마다 짱띠엔 거리 책방에 들르는데, 서, 너 해 전부터 바로 그 뒷골목 딘레 거리에 할인서점들이 여러 개 생겨 손님들로 가득하다. 물론 할인서점들은 규모가 작은 사영 서점들이라, 국영 대형서점의 잘 갖춰진 서가에서 본 책을 찾을 수 없는 경우가 많으나 그래도 제법 갖추어 놓았다. 나도 짱띠엔 거리의 국영 서점에서 책을 탐색하고 그 뒷골목 할인서점으로 가는데, 20%나 깎아 사는 재미가 쏠쏠하다. 또 하나 현상은 학교 주변에도 헌책방들이 많이 생겼다는 것이다. 내가 묵던 공과대학 대학촌에도 많은 책방이 생겼는데, 가본 곳만도 대, 여섯 군데나 된다. 호찌민시의 경우도 다르지 않다. 응웬후에나 수언투 같은 시내 중심의 큰 국영서점뿐 아니라 응웬티민카이의 헌책방 거리에도 할인서점들이 여러 개 들어섰다. 모두 소규모 사영기업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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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프레시안


작년 초 하노이에서 이런 저런 책들을 보다 눈에 번쩍 띄는 것이 있었다. 그것은 존 로크의 <통치론>, 존 스튜어트 밀의 <자유론> 및 토크빌의 <미국의 민주주의> 베트남어 번역본이었다. 그것을 하노이 뒷골목 할인서점에서 먼저 보았는데, 이후 짱띠엔의 국영서점 서가에도 등장하였다. 특히 앞의 두 권은 초기 자유주의 사상의 대표적인 저작들이 아닌가! 게다가, 사회주의체제로부터 시장경제체제로의 이행을 주제로 한 야노스 코르나이의 책도 번역되어 나와 팔리고 있었다. 아는 친구에게 물으니 지식인들은 동요하지는 않지만 이러한 변화가 베트남에도 왔다고 반기는 눈치다.
 
이 저작들의 출판은 이제 베트남에서도 자유주의가 논의되려는 시점임을 보여주는 징표다. 현재도 사회주의 정치체제를 견지하고 있는 베트남에서 자유주의가 공개적으로 논의된다는 것은 다원화에 대한 사회의 요구가 표출되고 있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공식적으로야 마르크스-레닌주의와 호찌민사상을 사상의 기초로 삼고 있는 사회지만, 장기적으로는 국민들의 다양한 요구가 이러한 단일 이데올로기를 견지하지 못하게 할 것임을 예견케 한다.
 
베트남에서는 이렇게 정치사회적 변화가 진행되고 있었다. 아무쪼록 사회주의와 자유주의의 좋은 점만을 취하여 조화로운 사회로 만들기를 기대해본다.

이한우(서강대 공공정책대학원 대우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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