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바라크 독재정권의 종식, 위대한 이집트 시민들의 승리

이집트 시민들은 위대했다. 2월 11일 이집트인들의 민주화에 대한 열망은 끝내 무바라크 대통령의 30년 독재를 종식시켰다. 참여연대는 이집트인들이 일구어낸 민주 혁명의 승리를 열렬히 환영하여, 독재정권의 폭력 앞에서 민주혁명을 평화적으로 이끌어 낸 이집트 시민들에게 강력한 지지와 연대의 메시지를 전한다.

역사가 증명하듯이 이번 이집트 민주혁명은 무자비한 폭력과 억압으로 권력을 독점한 정권은 끝내 시민의 저항으로 퇴진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무바라크 정권이 즉각적인 사임을 요구하는 시민들에게 폭력을 휘두르고, 인터넷과 언론을 통제했지만 그것은 오히려 시민들의 분노만 키울 뿐 시민들의 열망을 잠재우지는 못했다. 이집트 시민들은 국가폭력과 공포에 굴복하는 대신 종교와 이념을 초월하여 ‘이집트에 자유’를 요구했으며, 결국 세계사에 길이 남을 역사를 창조했다.

무바라크의 퇴진으로 이제 이집트 시민들은 민주국가를 이루기 위한 평화적인 정권 이양과 민주적 제도 마련이라는 도전과 과제를 안게 되었다. 한국의 민주화 경험을 비춰보더라도 이집트가 민주주의로 가는 길에는 많은 인내와 고통이 수반될 수 있다. 당장 핵심 동맹자였던 무바라크의 퇴진으로 이슬람 세력이 부상할 가능성을 차단하고자 하는 미국과 이스라엘의 반응도 중요한 변수가 될 수 있다. 많은 난관에도 불구하고 이집트의 민주화 과정이 순조롭게 이루어지도록 한국정부는 공적개발원조(ODA) 등 모든 가용 재원의 지원을 강구할 필요가 있다. 참여연대는 한국의 민주세력의 일원이자 국제사회의 일원으로서 이집트 시민들의 열망과 기대에 걸맞은 민주적 제도 개혁이 이루어지도록 지속적으로 지지와 응원을 보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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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 아세안 의장국 인도네시아에 거는 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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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네시아가 올해의 ASEAN(동남아국가연합) 의장국이 되었다. 지난 1월 12일에 작년 의장국 베트남으로부터 리더십을 인수받는 의례를 치렀고 바로 이어서 아세안외무장관회담도 성공적으로 마쳤다. 앞으로 정상회의를 포함하여 300회 이상의 다양한 정부 간 회의가 인도네시아에서 개최된다. 한국정부도 아세안대화상대국으로서 또한 아세안+3과 동아시아정상회의 회원국으로 수십 차례의 관련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인도네시아를 방문하게 될 것이다. 우리 언론이 논평은 고사하고 단신도 내주지 않았지만, 인도네시아의 아세안 의장국 수임은 동남아시아의 인권 신장과 민주 진전을 위한 중요한 계기가 될 수 있는 주목할 만한 사건이다.
                                                                                             - 아세안 심볼 -


아세안 의장국은 국명의 알파벳 머리글자 순서로 수임하므로 올해는 브루나이 차례이지만 일찍이 재작년 4월에 인도네시아가 2011년 의장국을 자원하고 나서서 먼저 하게 된 것이다. 아세안 전체의 절반이 넘는 인구와 광대한 군도에 펼쳐진 영토 덕분에 인도네시아는 아세안의 중심적 위상을 실질적으로 인정받아 왔는데, 공식적 의장국까지 브루나이와 캄보디아를 제치면서 먼저 수임하려 할 만큼 인도네시아의 상황인식은 급박했다. 2015년 ‘아세안공동체’의 역사적인 출범이 목전에 다가왔는데 숙제가 한 참 밀려있기 때문이다. 인도네시아 정부는 당면한 과제를 “People-Centered ASEAN”(국민 중심의 아세안) 형성으로 압축 표현하고 있다. 진정한 공동체를 실현하려면 ‘국가 연합’이 아니라 ‘국민 연합’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 인권 신장과 참여의 제도화가 필요하다는 시각을 수실로 밤방 유도요노 대통령이 일찌감치 분명히 하였고, 외무장관 마르띠 나딸레가와도 같은 노선에 입각하여 여러 가지 실행계획을 이번 외무장관회의에서 내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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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인도네시아 외무장관 마르띠(로이터) -


마르띠 외무장관은 인간의 기본적 권리들을 존중하는 풍토의 조성을 위하여 시급한 당면과제로서 아세안인권위원회(AICHR: ASEAN Intergovernmental Commission on Human Rights)의 내실화를 거론하였다. 2009년에 출범한 아세안인권위원회는 효과적으로 기능하지 못하고 있다는 비판을 받아왔지만, 아세안인권선언(ASEAN Human Rights Declaration)이 제정되면 합의된 기준을 갖고 체계적인 활동을 전개할 수 있을 것으로 내다보면서, 인도네시아정부는 아세안인권선언이 올해 통과되기를 희망하고 있다. 아세안재단(ASEAN Foundation)의 3년 임기 소장에 임명된 마까림 위비소노의 면모 역시 인도네시아의 기획에 부합한다. 위비소노는 유엔의 인권위원회 의장과 경제사회이사회 의장을 역임한 베테랑 외교관으로 국제기구의 인권관련업무 경험을 바탕으로 인도네시아의 아세안 청사진을 실현하는데 큰 도움을 줄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아울러 마르띠 장관은 인도네시아 정부가 이주노동자 권리보호 문제도 중요한 의제로 제기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인도네시아와 필리핀은 송출국의 입장에서 말레이시아와 싱가포르는 수입국의 입장에서 협의에 나서게 될 것이다. 미얀마 인권문제에 대해서도 미국, 캐나다, 유럽연합에게는 별반 효과가 없는 경제제재를 중지하도록 요구하고 미얀마(버마)정부에게는 아웅산 수찌를 포함한 모든 세력의 화해와 국민통합의 과정을 시작하도록 요구한다는 타협안을 제시하였다. 학계, 언론, 시민사회의 의견을 듣고 함께 논의하는 다양한 포럼을 결성함으로써 아세안을 더욱 개방시키자는 의견도 피력하였다.  

 
         


어느 때보다 열의가 높으니 그 귀추가 주목된다. 아세안인권선언은 올 해 제정될 수 있을지, 아세안인권위원회는 제 기능을 수행할 수 있을 정도의 물적 인적 지원을 받게 될 것인지, 합의한 인권기준을 위배한 회원국의 처벌까지 가능해 질 것인지, 국제적으로 지탄받는 미얀마 인권 침해문제가 완화될 수 있을 것인지, 이에 따라 아세안의 전통적 운영원리인 내정불간섭원칙은 어느 정도로 약화될 수 있을지, 일종의 ‘인권외교’ 덕분에 인도네시아의 인권수준도 따라서 향상될 수 있을 것인지, 궁금한 점이 아주 많다.


그런데 아세안 인권체제 제도화를 위한 인도네시아 정부의 열정은 벌써 냉소적인 반응에 부닥치고 있다. 지역 차원에서나 국내 상황으로나 한계가 뚜렷해 보이기 때문이다. 아세안 회원국들의 정치체제는 다양하다. 미얀마는 군부독재, 베트남과 라오스는 일당지배체제, 브루나이는 술탄왕정체제이다. 캄보디아, 말레이시아, 싱가포르는 민주주의 형식을 갖추었지만 정치적 경쟁이 실질적으로 제한되고 있다. 필리핀 민주주의는 최근에 나아지고 있지만 태국의 민주주의는 퇴행하였다. 따라서 일부 회원국들은 아세안의 인권체계를 강화하려는 인도네시아의 노력에 적극적으로 호응하지 않을 수 있고 심지어 부당한 간섭으로 받아들일 수도 있다. 인도네시아가 동남아 최고의 민주주의 수준을 자랑한다 하더라도, 군인들이 파푸아 섬의 민간인들을 고문하여 국제적인 지탄을 받은 최근 사건에서 알 수 있듯이, 여전히 내부적으로 심각한 인권침해가 자행되고 가해자들이 엄벌에 처해지지 않고 있다. 따라서 인도네시아가 강도 높은 인권기준을 제시할 수 없고 회원국이 인권선언을 위배하더라도 처벌보다는 설득이라는 외교적 방식을 취할 것이라는 예상은 충분한 근거를 지닌다. 그러나 관찰자든 실천가든 공히 흥미진진한 점은 정부 정책과 관료적 언술이 만드는 기회구조에 관한 것이다. 필연적으로 발생하는 정치적 약속과 실제의 차이는 비판적 개입의 여지를 제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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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카르타의 아세안 사무국 -


동남아 민주주의의 기수 인도네시아가 역내 인권신장을 향한 깃발을 올렸다. 아세안의 지도적 중심국가로서 ‘아세안시민권’을 만들어보겠다는 창대한 기획과 책임 있는 자세에 대해 진심으로 지지와 박수를 보내주자. 그리고 어떻게 진행되는지 열심히 관찰하자. 무엇보다도 이런 호기를 이용하여 아세안 운영이나 회원국의 인권문제에 관한 요구와 해법을 적극적으로 제안하자. 동남아 이웃나라들의 인권과 민주주의를 염려하는 이들에게 약속과 실제의 차이를 기회로 활용하는 실천적 지혜가 각별히 필요하다 하겠다. 올 해는 아시아 민주연대의 진전에 있어서 중요한 해로 기억될 것이니까.

전제성 (전북대 정치외교학과 부교수)


 * 이 글은 서남포럼 뉴스레터(2011.02.10)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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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키노 대통령의 중고 외제차 구입 파문을 통해 본 필리핀 민주주의


최근 베니그노 노이노이 아키노 (Benigno Simeon Cojuangco Aquino III) 필리핀 대통령이 사비로 중고 고급 외제 자동차를 구입해 구설수에 올랐다. 아키노 대통령은 정치∙사회 개혁에 대한 필리핀 민중의 기대를 한 몸에 받고 당선되었기에 그의 이번 중고 고급 승용차 구입 파문은 필리핀 민중에게 적지 않은 실망을 안겨주었다. 지난 대선 당시 필리핀 민중이 아키노 대통령에 걸었던 기대를 고려할 때 그의 이번 처신이 부적절했음은 분명하지만 문제는 이번 사건이 단 한 번의 경솔한 실수에 불과한 것인지 아니면 필리핀 민중에 대한 배신의 본격적인 시작을 알리는 것 인지 이다.

민중의 지지를 기반으로 당선된 대통령들이 당선 이후 민중을 저버리는 행위는 필리핀 민주정치 역사에 있어 그리 드물지 않다. 필리핀은 1987년 민주화 이후 현재까지 총 4번의 대선을 치렀고, 전임 대통령인 아로요 대통령을 제외한 라모스와 에스트라다, 아키노 대통령 모두 민중의 커다란 지지를 기반으로 당선되었다. 하지만 라모스와 에스트라다 대통령은 당선 이후 대선 당시 약속했던 특권 계층에게 유리한 정치∙사회 구조를 개혁하는데 잇따라 실패함으로써 필리핀 민중을 좌절케 했고, 특히 역대 어느 대통령보다도 극빈층으로부터 압도적인 지지를 받은 배우 출신의 에스트라다의 경우 임기를 반도 채우지 못한 채 횡령 혐의로 중도 사퇴를 함으로써 민주주의에 대한 필리핀 민중의 무력감을 증폭시켰다.    

민주화 이후 25년이 흐른 현재까지도 필리핀의 민주주의는 엘리트주의적 성격을 강하게 갖는다. 하지만 필리핀을 포함한 현대 민주주의 국가의 거의 대부분이 간접 민주주의를 채택하고 있다는 점을 고려할 때 현대 민주주의가 어느 정도의 엘리트주의적 성격을 띠는 것은 불가피하다. 문제는 필리핀의 민주주의가 민중 중심이 아닌 전통 기득권 세력 중심으로 이루어져 왔다는데 있다. 필리핀 민중은 이에 대항하여 왜곡된 정치∙사회 구조 개혁을 약속한 신 엘리트 계층 대권 후보들을 잇따라 당선시킴으로써 민중이 주인이 되는 민주사회에 대한 그들의 열망을 지속적으로 표출하였다. 이번 아키노 대통령의 선출은 역대 필리핀 대통령들의 계속된 배신에도 불구하고 필리핀 민중들이 민주정치에 대한 희망을 여전히 잃지 않고 있음을 보여준다. 

하지만 필리핀의 역대 정치사를 고려할 때 혹시나 아키노 대통령 역시 결국에는 필리핀 민중을 저버리지는 않을까 하는 걱정을 지울 수 없다. 그러나 많은 필리핀 민중은 아키노 대통령만은 다르지 않을까 하는 조심스러운 기대를 갖고 있다. 그러한 기대의 저변에는 아키노 대통령이 역사적으로 필리핀의 민주주의를 위해 싸워온 가문 출신이라는 점이 크게 작용한다. 아키노 대통령의 아버지인 니노이 아키노는 마르코스 독재 정권 당시 유력한 민주화 야당 후보로써 필리핀 민주화를 위해 몸을 바친 대표적인 필리핀 민주화 인사였으며, 아키노 대통령의 어머니인 코라손 아키노 전 대통령 역시 필리핀 민주화 이후 초대 대통령을 지내면서 필리핀 민주주의의 제도적 기반을 닦은 필리핀 민주화의 상징적 인물로 여겨진다. 필리핀 민중은 필리핀 민주화에 이와 같이 커다란 공헌을 한 부모 밑에서 자란 아키노 대통령 역시 그의 아버지와 어머니를 따라 필리핀 민주주의의 실질적 발전을 위해 노력할 것이라 기대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기대에 부응하기라도 하듯이 아키노 대통령은 당선 직후 대통령 직속으로 사법개혁위원회를 발족시키는 등의 일련의 부정부패 척결을 위한 제도 개선을 실시함으로써 필리핀 민중에게 정치 개혁에 대한 분명한 의지를 천명하였다. 하지만 문제는 이러한 정치 개혁에 대한 의지가 남은 임기 5년 동안에도 계속 지속될 수 있는 지의 여부이다. 앞서 언급하였듯이 민중의 지지를 기반으로 당선된 역대 필리핀 대통령들 모두 정치∙사회 개혁에 대한 그들의 공약을 끝까지 완수하지 못하고 결국에는 기존의 특권 계층과 타협하는 모습을 보여줬기 때문이다.

아키노 대통령의 이번 중고 고급 외제 승용차 구입 파문이 필리핀 민중에게 적지 않은 실망감을 가져다 준 것은 사실이다. 그렇지만 이로 인해 아키노 대통령에 대한 기대와 열망을 버리기에는 아직 너무 이르다. 아키노 대통령은 필리핀의 민주주의를 위해 일생을 바친 부모님을 지켜보며 성장했다. 민중은 바로 이러한 점에서 아키노 대통령에게 정치 개혁에 대한 그리고 필리핀 민주주의 발전에 대한 큰 기대를 걸고 있다. 아키노 대통령이 필리핀 민중의 바람을 충족시키고 필리핀 민주주의를 한 단계 더 높이 끌어올릴 수 있을지 앞으로 남은 그의 임기 5년이 주목된다.

참여연대 7기 인턴 김동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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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31일, 한남동 이집트 대사관 앞 '무바라트 퇴진과 이집트의 자유를 요구하는 집회'

1월 31일, 한남동 이집트 대사관 앞 풍경입니다.

이 날 이집트 대사관 앞에서는 국내에 체류 중인 이집트인들과 한국시민사회단체들이 주최한 '무바라트 퇴진과 이집트의 자유를 요구하는 집회'가 열렸습니다. 이 집회에는 이집트의 민주화 시위를 지지하는 이집트인들을 주축으로 참여연대, 인권연대, 민주노총을 비롯해 시민사회단체 회원들 약 60~70명이 모였습니다. 특히 이집트인들의 '독재자 무바라크의 퇴진과 이집트의 민주화'를 위한 외침은 간절했습니다.
 
지난 1월 25일부터 이집트 전역에서는 이집트 정부의 민주적인 개혁을 요구하는 민중 시위가 계속 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집트 무바라크 정부는 이러한 민주화 요구를 받아들이기 보다는 시위대를 진압하기 위해 군대까지 동원하였고, 이미 백여명의 시민들이 사망했다는 소식도 전해지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인터넷 사용을 금하는 것은 물론 시위에 관한 해외 보도를 막기위해 언론까지 통제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습니다.

이에 한국 시민사회단체들도 이집트 시민들의 민주화 시위를 지지하며, 이집트 정부가 시민들의 평화적인 집회를 열 권리, 이동의 자유 및 표현의 자유를 전면적으로 존중할 것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또한 우리는 이집트 정부가 독재정권 유지를 위해 악용해 왔던 '긴급조치법'을 철폐하고 이집트 시민들이 요구하고 있는 자유롭고 공정한 선거를 조속히 실시할 것을 촉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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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이집트 민중 시위는 지난 1월 15일 23년이나 유지되어 왔던 독재정권을 종식시킨 튀지니의 시민혁명이 하나의 중요한 계기가 되었습니다. 현 이집트 대통령인 호스니 무바라크(Muhammad Hosni Mubarak, 83세)는 1981년 이래 30년 간 철권통치를 한 것도 모자라 올해 9월 임기가 만료된 이후에 다시 집권할 계획을 갖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것이 현재 수만명의 이집트 시민들이 거리로 뛰쳐 나와 무바라크 대통령의 퇴진을 요구하는 이유입니다. 이에 무바라크 대통령이 내무장관 교체 등을 통해 새로운 내각을 구성했으나, 이집트 국민들은 현 정부의 종식을 주장하며 시위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아마도 향후 이집트의 민주화 운동은 이집트 내 최대 야당인 무슬림형제단, 군부의 선택, 사실상 독재자 무바라크를 지원해 온 미국의 입장 변화, 엘바라데이 전 국제원자력기구 사무총장의 거취 등이 주요한 변수가 될 것으로 보입니다.

한국을 포함한 세계시민사회는 이집트에서 진행되고 있는 이러한 변화의 움직임에 많은 관심과 지지를 보내는 한편, 이집트 정부의 시위대에 대한 유혈진압과 외부세계와의 연락 차단과 같은 비민주적 조처들을 강하게 비판함으로써 이집트 민주화 운동을 응원하고 있습니다.

1월 31일, 한남동 이집트 대사관 앞 '무바라트 퇴진과 이집트의 자유를 요구하는 집회'

1월 31일, 한남동 이집트 대사관 앞 '무바라트 퇴진과 이집트의 자유를 요구하는 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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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코 사업승인을 앞둔 인도 환경부 자이람 라메쉬 장관에 보내는
한국시민사회의 공개서한


오늘(1월 28일), 한국의 10개 시민단체는 자이람 라메쉬(Shri. Jairam Ramesh)인도 환경부장관에게 포스코 인도 프로젝트의 승인 결정에 대한 공개서한을 발송하였습니다.

포스코 인도 프로젝트는 지난 2010년 8월 5일, 인도 환경부가 포스코 프로젝트가 삼림주민보호법을 위반했다는 Saxena 위원회 보고서를 토대로 토지매입중단 결정을 내렸으며 포스코 프로젝트의 환경관련 허가 전반 여부를 재검토하는  Meena Gupta위원회를 구성하여 조사를 벌였습니다.

2010년 10월 18일, 총 4명으로 구성된 Meena Gupta위원회 위원중 3인이 제출한 다수보고서(Majority Report) 역시 오리사 주정부가 공문서 조작 등을 통해 사업승인을 허가 받았음을 지적하면서 사업허가를 철회할 것을 환경부에 요청하였습니다.

당초 Meena Gupta위원회의 보고서를 토대로 포스코 사업승인 여부를 10월 말에 결정하려던 인도 환경부는 최종 결론을 계속 연기하면서 인도 환경부의 3개 자문위원회- 삼림 자문위원회(the Forest Advisory Committee),전문자문위 산업소위(the Industry subcommittee of the Expert Appraisal Committee), 인프라 및 연안지역 소위(the Infrastructure and Coastal Zone  subcommittee of the Expert Appraisal Committee)-를 통해 Meena Gupta위원회에서 제출된 두 보고서(다수보고서와 미나굽타 위원장 단독 보고서)를 검토해왔습니다.

1월 6일자 한국언론에 환경부 자문위원회가 포스코 사업을 승인했다는 보도는 위에 언급한 3개 자문위원회 중, 전문자문위 산업소위(the Industry subcommittee of the Expert Appraisal Committee)에서 제출한 의견이며 다른 2개 자문위원회는 포스코 사업에 대해 문제점을 지적하고 부정적 의견을 제출 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따라서 환경부 자문위원회가 포스코 사업을 승인했다는 보도는 사실관계를 충분히 보도하지 않은 보도로 판단됩니다.

한국시민사회는 1월말로 예정된 자이람 라메쉬 환경부장관에 포스코 사업승인에 대한 최종결정이 사실에 근거하지 않고 정치적으로 결정되는 것에 우려하며 공개서한을 보내기로 결정하고 오늘 발송하였습니다.


 

< 공 개 서 한>

수신: 친애하는 자이람 라메쉬 인도환경부 장관께
발신: 한국시민사회단체
 

한국에서 평화의 인사를 드립니다.

먼저, 포스코의 인도 오리사주 프로젝트 관련하여 한국의 시민사회단체들은 지속적으로 관심을 가져왔습니다. 우리는 2008년과 2010년에 인도 오리사주를 방문하여 현지조사를 벌였으며 작년 9월에는 미나굽타위원회에 공개서한을 발송한바 있습니다. 우리는 포스코 프로젝트에 대하여 지난 8월 5일, 인도 환경부가 내린 토지매입 중단 결정 과정에 대해 충분히 이해하고 있으며 1월 말로 예정된 장관님의 최종결정을 관심 있게 기다리고 있습니다.

한국의 시민사회는 인도 환경부가 환경 및 선주민의 인권을 보호하고자 기울이는 노력에 대해 경의를 표합니다. 삼림주민권리보호법은 개발과 선주민의 권리사이에서 갈등하는 지구촌 공동체에 올바른 방향을 제시해주었고 베단타에 내린 결정은 매우 용기 있는 것이었습니다. 한국기업을 포함하여 인도에 투자하려는 모든 기업들은 인도 환경부가 제기하는 메시지를 존중하고 따라야 할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인류가 지속가능한 발전을 가능케 하는 길이라 믿습니다.

우리는 2차례의 현지조사를 통해 Saxena위원회의 보고서와 미나굽타 위원회의 다수보고서에서 지적하고 있는 것처럼 포스코 프로젝트가 삼림주민권리보호법을 위반하였음을 확인하였습니다. 정당한 과정을 밟지 않고 진행되는 개발 프로젝트는 반드시 큰 비용을 지불할 수밖에 없습니다. 삼림주민보호법 위반여부와 상관없이 포스코와 오리사주정부는 프로젝트에 반대하는 주민들을 5년이 지난 지금까지 설득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프로젝트에 반대하는 주민들은 아무리 많은 보상을 포스코가 제시하더라도 이주하지 않겠다는 점을 분명히 하고 있습니다.

만약, 포스코 프로젝트의 문제점을 지적한 보고서들이 존재하고 있음에도 장관님께서 포스코 프로젝트를 승인한다면 장관님의 결정은 지지받지 못할 것입니다. 무엇보다 5년이란 시간동안 고통 받고 있는 반대주민들을 매우 실망시키게 될 것입니다. 한국시민사회 역시, 포스코가 지지받지 못하는 결정을 통해 사업을 진행시키는 것을 결코 원하지 않습니다. 정당성을 잃은 사업집행은 더 큰 저항에 직면할 것이며 그 과정에서 포스코가 심각한 인권침해에 연루되는 것은 포스코와 한국시민사회 모두에게 상처를 주게 될 것입니다.

오랜 시간 포스코 프로젝트에 대하여 환경부의 전문가들이 조사활동을 벌였고 이에 대한 신중한 검토과정이 있었습니다. 삼림자문위원회(the Forest Advisory Committee)와 인프라 및 연안지역 소위(the Infrastructure and Coastal Zone  subcommittee of the Expert Appraisal Committee)역시 포스코 프로젝트에 대한 문제점을 지적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한국의 시민사회는 인도 환경부의 결정이 포스코 프로젝트를 둘러싼 갈등을 종식시키고 한국과 인도사회에 개발과 환경, 선주민의 인권문제를 더욱 고민하고 대안을 찾아가는 계기가 되기를 희망합니다. 포스코 역시 환경부의 올바른 결정을 통해 한 단계 더 성숙해지는 기회가 될 것입니다. 모두가 동의하고 존중하는 결정은 사실에 근거한 결정입니다. 우리는 장관님께서 사실과 상식에 기초하여 합리적인 판단을 할 것으로 확신합니다.  
 

2011년 1월 28일

국제민주연대/국제엠네스티 한국지부/다산인권센터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인권운동 사랑방/좋은기업센터
지구지역행동네트워크/참여연대/천주교인권위원회/환경정의

*보도자료 (국문)



공개서한 (영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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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2월 12일과 13일 방글라데시에 있는 한국기업 영원무역을 중심으로 임금인상을 요구하는 방글라데시 노동자들의 대규모 시위가 있었습니다. 이에 대한 방글라데시 당국의 과잉진압으로 4명이 사망하고 수백명이 부상당한 사건은 한국언론에서도 많이 보도된 바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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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글라데시 여성 노동운동지도자인 미수(Moshrefa Mishu)씨는 지난 12월 14일 방글라데시 당국에 의해 영장도 없이 연행되어 지금까지 구금되어 있습니다. 미수 씨는 기관지 천식까지 앓고 있는데 방글라데시 당국이 치료를 거부하고 있어 생명까지 위협받고 있습니다. 특히 미수씨가 12일과 13일에 있었던 대규모 시위를  배후조종했다는 혐의를 방글라데시 당국이 조작했다는 의문이 제기되고 있습니다. 이러한 미수씨에 대한 방글라데시 정부의 탄압은 방글라데시 의류산업 노동자들의 열악한 현실을 대변하고 있습니다.

미수씨의 변호인측이 신청한 보석결정이 1월 27일에 있을 예정입니다. 국제엠네스티와 아시아인권위원회를 비롯한 국제사회가 미수씨의 석방을 촉구하고 나섰습니다. 미수씨가 겪고 있는 고통을 알리기 위해 한국시민사회단체들은 미수씨의 석방을 요구하는 긴급 기자회견을 방글라데시 대사관 앞에서 개최하였습니다.


일시: 2011년 1월 26일 수요일 오전 11시
장소: 방글라데시 대사관
사회: 국제민주연대 나현필 사무차장
순서: 1)경과보고: 국제민주연대 나현필 사무차장
        2)연대사: 아시아태평양노동자연대 한국위원회 장창원 목사, 다함께 이정원 활동가
        3)기자회견문 낭독: 민주노총 황수영 통일위원장
        4)방글라데시 대사관에 영문 기자회견문 전달   

출처: http://www.srilankaguardian.org/2011/01/bangladesh-military-intelligence-behind.html)

 
                          

< 기자회견문>                      

방글라데시 정부는 미수씨를 즉각 석방하라!


2010년 12월 14일 새벽 1시경, 방글라데시 의류산업 노동자단결포럼(Garment Workers Unity Forum)의장인 미수(Moshrefa Mishu)씨가 방글라데시 당국에 의해 연행되었다. 미수씨의 증언에 따르면, 방글라데시 당국은 군정보기관이 중심이 되어 사찰활동을 해왔으며 체포 영장 없이 미수씨를 불법 연행하였다. 또한  천식을 앓고 있는 미수씨에게 필요한 의약품 및 의료기기 제공을 거부하여 미수씨의 건강이 심각하게 위협받고 있으며 적절한 치료도 제공하지 않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더욱이 방글라데시 당국은 20년 이상 방글라데시 섬유산업 노동자 조직 활동을 해온 미수씨의 활동을 추궁하면서 정부에 협조할 것을 회유하고 협조하지 않는다면 살해당할 수도 있다는 협박을 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는 명백한 방글라데시의 당국의 자의적 구금이자 미수씨의 생명을 위협하는 고문행위이며 방글라데시 노동운동에 대한 비이성적 탄압이다.
 
우리가 미수씨의 인권침해에 주목하는 것은 지난 12월 12일과 13일에 방글라데시 최대 의류업체인 한국의 영원무역을 중심으로 발생했던 대규모 시위사태와 미수씨의 인권침해가 무관하지 않기 때문이다. 한국 언론에도 보도된 것처럼 방글라데시 수도 다카와 영원무역 공장이 소재한 치타공의 수출자유지대를 중심으로 수천명의 시위대가 최저임금 인상 및 노동조건 개선을 요구하는 시위대를 향해 방글라데시 경찰은 고무탄과 최루탄을 동원한 과잉진압을 벌였고 이 과정에서 4명이 사망하고 200명 이상이 부상당했다. 의류수출산업이 방글라데시 전체 수출액의 80%를 차지하고 그 의류산업의 중심에 영원무역을 비롯한 한국기업들이 차지하고 있다는 점에서 한국사회에서 이 사태에 대한 한국 업체들의 책임을 묻는 목소리가 높아졌으며 방글라데시 노동자들의 처참한 현실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는 계기가 된 바 있다.

우리는 방글라데시 당국에 엄중히 경고한다. 방글라데시 정부가 미수씨를 불법으로 구금하고 적절한 치료제공을 거부한 것은 매우 수치스럽고 부끄러운 행동이며 국제인권조약위반행위로 마땅히 비난받아야 하는 행위이다. 또한 노동자들의 비참한 현실을 개선하기 위한 노력을 하기보다 노동운동 지도자와 노동자들을 구금하고 탄압하는 구시대적 작태 역시 즉각 중단되어야 한다. 결국 방글라데시 정부의 이러한 탄압은 자국 노동자들에게 저임금과 열악한 노동조건을 강요하여 해외자본의 진출을 용이하게 하겠다는 발상에서 비롯된 것이며 그 과정에서 국제사회의 비난과 자국 노동자의 인권은 무시하겠다는 것으로 밖에 볼 수 없다. 방글라데시를 비롯하여 한국을 비롯한 전 세계 곳곳에서 경제자유구역 혹은 수출자유지대로 대변되는 이러한 반인권적 자본유치 경쟁은 노동자•민중의 삶을 더욱 도탄에 빠져들게 하고 있다는 점에서 우리는 미수씨가 겪고 있는 고통이 결코 우리와 동떨어진 것이 아니며 함께 연대해나갈 것이다.
 
특히, 우리는 한국정부와 기업에 미수씨의 인권침해에 대한 책임을 물을 수밖에 없다. 저임금과 정부의 반노동정책을 이유로 방글라데시에 대거 진출한 한국기업들은 방글라데시 노동자들의 열악한 현실을 조성하고 있는 직접적인 당사자들이다. 영원무역은 자사 공장에서부터 발생한 대규모 시위사태에 대해 외부세력의 개입이라 주장하며 자신들의 책임을 부정하고 있지만 영원무역이 치타공 수출자유지대에서 공장을 운영하고 있는 이유를 살펴보면 영원무역이 왜 책임을 져야하는 지 명확해진다. 수출자유지대 노동자들은 단체행동권을 행사할 수 없으며 수출자유지대 당국이 임금협상과 채용 및 해고에 관한 권한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득을 얻고 있는 한국기업들이 그 이득으로 인해 피해를 받고 있는 노동자들에 대해 책임을 지지 않는 다면 누가 책임을 져야 한단 말인가? 한국기업들이 방글라데시 정부의 인권침해를 통해 이득을 보고 있다는 점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며 따라서 미수씨의 불법구금 및 고문에 한국기업들도 책임을 져야함은 분명하다.

한국정부 역시 저임금 및 열악한 노동조건을 이유로 방글라데시에 대해 투자할 것을 한국 업체들에 홍보하고 있다. 한국정부가 국제노동기준에 무지할 뿐만 아니라 국제사회의 의무이행에 별관심이 없다는 것은 익히 알고 있는 사실이지만 대규모 시위사태가 발생했다면 그 원인과 이유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해보고 한국기업들이 방글라데시 노동자들에 대한 인권침해에 연루되지 않도록 노력하는 것도 한국정부에 요구되는 역할이다. 특히 미수씨의 즉각적인 석방을 방글라데시 정부에 촉구하는 것이야 말로 이명박 정부의 국정지표인 “성숙한 세계국가”인 한국정부가 인권의 보호와 증진을 위해 반드시 해야 할 일일 것이다.
우리 한국의 시민사회와 노동운동은 미수씨의 즉각적인 석방을 강력히 요구하며 미수씨의 석방뿐 아니라 방글라데시 노동자들이 정부의 탄압에 맞서 노동3권을 쟁취하고 인간다운 삶을 영위할 수 있도록 함께 연대해 나갈 것이다. 노동자는 하나이며 그 누구의 인권도 침해당해서는 안 된다.    

               
2010년 1월 26일

         
구속노동자후원회/국제민주연대/공익변호사그룹공감/다함께/로넬차크마나니(줌마난민)
민주노동자연대/사회진보연대/서울경기인천이주노동자노동조합/인권연구소 창
아시아태평양노동자연대 한국위원회/오산이주노동자센터/오산다솜교회
이주인권연대(경산이주노동자센터, 구미가톨릭근로자문화센터, 대전외국인노동자와함께하는모임, 부산외국인근로자선교회, (사)이주민과함께, 아시아의창, 아시아의친구들, 안산이주민센터, 양산외국인노동자의집, 외국인노동자인권복지회, 천안모이세, 대전모이세, 천주교의정부교구 사회사목국이주센터 EXODUS(경기동부), 한국이주노동자인권센터)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지구지역행동네트워크/참여연대/한국노동네트웍크협의회


 * 방글라데시 의류산업 노동운동 지도자 석방 관련 기자회견 자료
(영문)




(국문)

Posted by 영기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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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담회 후기] 조기원 기자로부터 들어보는 버마의 현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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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 박은홍 교수 (성공회대 아시아 NGO 정보센터 소장)
발표 : 조기원 기자 (한겨레신문 국제부)
일시 : 2011년 1월 13일(목) 오후4시~6시
장소 : 김대중 도서관 3층 회의실
주최 : 국제민주연대, 성공회대 아시아NGO 정보센터
후원 : (사)행동하는 양심

작년 12월 16일 한겨레 신문 국제부 조기원 기자는 가택연금이 해제된 아웅산 수지를 한국 언론 가운데 최초로 인터뷰 하였다. 이를 계기로 국제민주연대와 성공회대 아시아NGO 정보센터는 조기원 기자에게 취재후기를 듣고 버마의 현재 상황이 어떠한지 알아보기 위하여 간담회를 열었다.

간담회는 조기원 기자가 직접 이번 취재에 대한 후기를 발표 하고 다른 참석인들이 질문하고 토론하는 방식으로 진행되었다. 조기원 기자의 취재 후기의 내용은 취재과정에서의 어려움과 아웅산 수지의 인터뷰에 관련된 내용 그리고 이번 버마총선 이후 현지의 상황과 조기원 기자의 버마문제에 관련된 의견으로 이루어졌다.  
 
취재과정에서의 어려움

조기원 기자는 여러 어려움들이 있었으나 취재 과정에서의 가장 큰 어려움은 잠재적 두려움이라고 하였다. 잠재적 두려움이란 즉, 버마는 현재 군사정권이기에 자신에게 앞으로 어떤 일이 발생할지 예측하기가 어렵다는 점을 말한다. 예를 들어 조기원 기자는 아웅산 수지와의 인터뷰 준비를 위해 통역사를 구하려 대사관에 연락을 취하였으나 취재할 내용을 듣고는 군사정권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아무도 승낙하지 않았다고 했다. 또한 자신의 담당 운전사가 버마민족민주동맹(NLD) 당사를 방문 한 후에 비밀경찰에게 방문이유에 관해 추궁을 당하자 두 번째 방문은 거절한 사례를 들었다. 이외에도 취재 비자가 아니라 관광비자를 통해 입국하였기 때문에 기자임이 발각될 경우 군사정권에 의해 언제라도 추방당할 위험이 있었다. 그래서 기자임을 알릴 수 있는 모든 표식을 지우고 숨기기 위해 고생하였으며 카메라도 작은 것만 몰래 가지고 다닐 수 있었다고 하였다.

아웅산 수지와의 인터뷰

조기원 기자는 아웅산 수지와의 인터뷰 중 가장 핵심적인 내용은 ‘대화’와 ‘비무장 투쟁’이라고 짚었다. 아웅산 수지가 대화를 제시한 이유는 버마가 다민족 국가이기 때문이며 효과적인 투쟁을 위해서는 민족들 간에 대화를 통한 화합이 필요하다고 하였다. 또한 아웅산 수지여사는 앞으로도 계속 비무장 투쟁의 태도를 유지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것은 3년 전의 태도와 동일한 것이다.

지난 오랜 기간의 가택연금이 어떠하였는지에 대해 물어보자 아웅산 수지는 전혀 고통스럽지 않았다고 하였다. 아웅산 수지가 그렇게 말한 이유는 아마도 다른 정치수용범들에 비해 자신이 훨씬 나은 환경에 있었기 때문이지 실상은 어려움이 분명 많았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끝으로 아웅산 수지는 한국의 국민들에게 버마의 현재 상황에 대해 많은 관심을 가져달라고 하였다.

버마총선 이후 현지의 상황

대표적 야당인 아웅산 수지의 NLD는 이번 버마 총선을 보이콧하여 정당등록도 하지 않았고 투표에도 참여하지 않았다. NLD는 이번 총선은 1990년 NLD가 압승했던 총선의 결과를 무시함을 전제로 하기 때문에 무효이고 그렇기 때문에 참여할 수 없다고 하였다. 하지만 모든 야당이 총선을 거부한 것이 아니고 참여한 정당도 있었다.

조기원 기자는 야당이면서 투표에 참여한 버마민족민주세력(NDF-아웅산 수지여사가 이끄는 NLD에서 나온 버마 최대 야당)에 대해 이번 총선에 대한 견해와 총선 참여 이유를 물어볼 기회가 있었다고 했다. 그 쪽 관계자는 우선 총선 자체에 부정행위가 매우 심각하다고 진술했다. 부정행위의 방식은 다음과 같다. 한사람 이름으로 두 번 투표하는 이중투표, 비공개 개표, 야당이 선거에 참여하기 어렵게 만든 제도상의 문제, 죽은 사람이 투표자가 되는 유령투표 문제가 있었다고 했다. 극단적인 예로 투표를 하러 갔는데 이미 자신의 이름으로 투표가 되어 있어 그냥 다시 돌아온 사례도 있었다고 한다.


이러한 상황에서도 버마민족민주세력(NDF)은 총선에 참여했다. 그들은 2007년 민중시위 때도 수많은 무고한 희생이 있었지만 결국 국제기구는 단순한 성명서 외에는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고 했다. 그 결과 상황을 바꿀 수 있는 것은 결국 자신들 뿐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렇기 때문에 총선이 아무리 군사정권 연장을 위한 형식적인 것일 지라도 이런 민주적인 단계를 밟아 나간다는 것 자체가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총선에 참여하게 되었고 이렇듯 조금씩 정치가 민주적인 방식으로 나아간다면 언젠가는 그들의 날이 올 것이라고 했다.

마지막으로 조기원 기자는 버마 문제에 대해 매우 복잡하고 어려운 사안이라고 밝혔다. 아웅산 수지가 주장하는 비폭력주의가 효과적이지 않다는 의견도 충분히 수용가능하다고 했다. 하지만 길게 본다면 실천하기 어렵겠지만 그녀가 주장한 내용들이 정답인 것 같다고 했다.


질문과 토론

조기원 기자의 취재후기가 끝난 후 다양한 질문과 토론 그리고 조기원 기자에게 바라는 말들 이 오고 갔다. 우선 국내에서도 아웅산 수지여사를 초청하고 싶어 하는 기관이 많은데 과연 아웅산 수지가 국외로 나올 가능성이 있는지에 대한 질문이 있었다. 그에 대해서는 출국을 하게 되면 다시 입국을 못할 수 있기 때문에 현재까지는 아웅산 수지가 버마 밖으로 나올 가능성은 없다고 하였다.

또한 매년 버마에 들어가 시민운동을 위해 활동하고 있는 한 활동가분의 이야기를 들어 볼 기회가 있었다. 그 분은 2009년 방문했을 때의 상황과 2010년 총선 이후의 여러 가지 상황들을 비교해가며 과거와는 달리 버마에서 민주주의에 대한 희망이 엿보인다고 하였다.

버마에 대한 경제적 제재에 대해서도 많은 이야기가 오고 갔다. 제재를 유지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어느 것이 진정 버마의 민주주의 발전에 도움이 될 것인지에 대해 의견을 나누었다. NLD는 제재를 유지하자는 입장이고 NDF는 반대하는 입장이라고 한다. NDF는 제재는 지배층에 피해가 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민중이 고통을 겪게 된다고 주장하며 민주화를 위해서는 제재가 없어야 한다고 했다.  

마지막으로 조기원 기자에게 아웅산 수지라는 한 인물에만 집중된 기사가 아닌 대중들의 삶이 드러나는 기사를 써달라는 요청이 있었다. 버마 내부에는 2200명의 정치 수감자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아웅산 수지라는 인물에 편향된 기사가 많이 나오는 것이 사실이다. 버마의 민주화를 위해 노력하고 있는 민중들의 삶을 언론에서 다룬다면 우리나라 사람들도 일반 버마 사람들의 민주화에 대한 열망에 대해 알게되고 공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버마를 바라보는 시각 또한 더욱 넓어질 것이다.

이렇게 조기원 기자의 취재후기와 그에 대한 토론과 질문을 마지막으로 간담회는 끝이 났다. 사실 버마에 대한 상황은 간담회에 가보기 전에는 국제연대위원회에서 일주일에 한번 씩 하는 아시아 기사 모니터링을 통해서만 접했었다. 기사를 통해서 본 버마의 인권상황은 암울했다. 수감자를 지뢰탐지기로 사용한다든지 법원에서 변호인이 피고인을 변론할 기회를 차단하는 등 그 곳에서는 믿기 어려운 일들이 벌어지고 있었다. 이러한 심각한 사태들에 대해 동정은 갔으나 마음에 깊이 와 닿지는 않았다. 버마에 대한 관심도 기사모니터링을 준비하고 발표할 때 잠깐 있었을 뿐이었다.

그러나 간담회를 직접 참여하고 나니 전보다 버마에 대한 관심이 더욱 커졌다. 이전처럼 글을 통해서만 그곳의 상황을 보는 것이 아니라 현지에 방문했던 분들의 이야기, 버마출신 활동가 분들에게 직접 버마의 상황을 생생히 전해 듣고 나니 마음에 더욱더 와 닿았다. 사무실에서 기사를 읽고 토론 할 때와는 사뭇 다른 느낌이었다.

한편으로는 이번 간담회는 내가 버마 사람들을 위해 관심을 가지는 일 말고 구체적으로 어떤 일을 할 수 있는지 생각해 볼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지금 당장은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그다지 많지는 않다. 그렇지만 지금 버마에서 일어나고 있는 현실에 대해 내가 아는 사람들에게라도 전해서 관심을 갖게 하는 것 정도는 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나를 통해 다른 여러 사람이 버마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되고 또 그 사람들이 다른 사람들에게 이야기를 전달하면 점점 버마의 현실을 아는 사람들이 많아질 것이다. 수많은 사람들의 관심은 버마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사람들에게 도움이 될 것이다.


 참여연대 7기 인턴 : 최준홍
Posted by 영기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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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네시아 노동운동가 파우지 압둘라(Fauzi Abdullah)를 추모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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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우지 압둘라(Fauzi Abdullah)


인도네시아의 독보적인 노동운동가 파우지 압둘라(Fauzi Abdullah)가 영면한 지 1년이 지났다. 2009년 11월 27일 밤, 파우지는 생산직노동자출신의 아직 젊은 부인 드위 뿌리완띠(Dwi Priwanti)와 아홉 살 난 아들을 남겨놓고 예순의 나이에 눈을 감았다. 노동인권신장에 생애의 절반을 바친 그의 업적을 기려 인도네시아 최고의 인권상 얍티암힌(Yap Thiam Hien) 상이 수여되기 한 달 전이었다. 일찍이 당뇨를 앓았고 2005년 초에는 몸의 왼쪽이 마비되었지만 세상을 등지기 1주일 전까지 활동을 멈추지 않았다고 한다. 필자는 그를 인도네시아의 현대노동운동가 중에서 단연 최고의 인물로 꼽는데 주저하지 않는다.

파우지는 1949년에 아랍계이주민 사업가의 후손으로 태어났다. 형제들이 모두 사업에 뛰어들었지만 파우지만이 ‘빨갱이’로 취급당할 위험을 무릅쓰고 노동운동에 투신하였다. 국립인도네시아대학교(Universitas Indonesia) 영문과에 재학할 때 파울로 프레이리(Paulo Freire)의 『페다고지』(Pedagogy of the Oppressed)를 읽고 감명을 받은 것이 투신의 계기였다고 후배들은 증언한다. 파우지의 노동운동경력은 1978년에 당시 인도네시아 최대의 인권옹호민간단체인 자카르타 법률구조재단(LBH: Lembaga Bantuan Hukum)에 인턴활동가로 참여하면서부터 시작되었고, 1980년부터는 재단의 정식 활동가로서 10년간 활약하면서 독보적 능력과 접근법을 선보이게 된다.

재단은 특성상 변호사들이 주력이었고 당연히 무료법률자문이 활동의 중심이었다. 그런데 파우지는 법적 전문성 없이 재단에서 근무했다는 점에서 독특했다. 흥미롭게도 파우지의 약점은 강점이 되었다. 파우지는 노동자의 미래가 법적인 자문이 아니라 조직화에 달려있다고 믿었고, 조직화의 전략은 현장의 노동자들로부터 나온다고 보았다. 그래서 파우지는 법률지식을 설파하는 대신에 노동자들로부터 이야기를 들었다. 책상너머로 노동자들을 대하는 변호사들과 달리 파우지는 노동자들과 같은 높이로 앉아서 커피와 담배를 즐기며 토론의 꽃을 피우곤 했다고 한다. 파우지는 노동자들과의 대화가 정말 즐거웠고 그들로부터 현장의 사정,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 조직화의 지혜를 배웠다고 회고하였다. 노동자들로부터 배우고자 했던 점, 이것이 바로 파우지의 위대한 점이었다. 필자는 지금까지도 인도네시아에서 파우지 외에 이런 태도를 지닌 노동운동가를 만난 적이 없다.

파우지는 노동자들이 변호사나 지식인들의 슬하를 떠나 스스로 조직할 수 있는 날을 바랐고 그런 날을 앞당기고자 했다. 그래서 수하르토 체제·하에서 해고자 출신들이 비정부단체(NGO)를 조직하도록 후원했고, 민주화 과정에서는 수도권지역노동조합(Serikat Buruh Jabotabek)을 결성할 수 있도록 지원했다. 민주화 직후 노동귀족들이나 노동운동가들에 의한 '하향식' 노조연맹들이 우후죽순처럼 설립되어 노동운동이 사분오열될 때, 파우지는 현장노동자들이 주도권을 갖는 '상향식' 노조연맹의 건설이 필요하다고 역설하였다. 아울러 노동운동이 공장의 담을 넘어서 다른 부문의 사회운동과 광범하게 연대해야 한다고 믿었고, 스스로도 그 일익을 담당하여 1997년에 인도네시아사회변혁협회(INSIST) 창설에 가담하였고, 사망할 때까지 실종및폭력피해자위원회(KONTRAS)의 연대회의 의장직을 수행하였다.

다른 한편으로 파우지는 노동운동이 기록되기를 바랐다. 그래서 결성한 것이 스다네노동정보센터(LIPS: Lembaga Informasi Perburuhan Sedane)였다. 스다네는 센터가 위치한 동네의 명칭이다. 이 센터를 통하여 도처에 흩어진 노동관련 자료를 조사하고 수집하고 인도네시아 유일의 노동운동 전문잡지를 발간하기 시작했다. 파우지는 오래전부터 노동자교육센터의 설립을 꿈꿨다. 단순한 교육 공간이 아니라 노동자들끼리 모여서 경험과 지혜를 교류할 수 있고 멀리서 온 노동자들이 쉬어갈 수 있는 숙소까지 겸하는 그런 공간을 마련하고 싶다고 했다. 땅까지 사 두었지만 건축비를 구하지 못해서 그의 마지막 꿈은 불발로 그치고 말았다.  

파우지는 한국 시민사회와 일찍이 연관되었다. 1990년대 중반에 한국의 NGO들이 한인투자기업 노동인권침해 문제를 모니터링하면서 부터였다. 1996년에 파우지를 발표자로 서울에 초청한 당시 참여연대 국제연대위원회 위원장 신윤환 교수는 파우지가 전국노동자대회를 참관하면서 눈물을 흘리는 것을 보았다고 한다. 각지에서 노동조합의 깃발을 가져온 수만 명의 노동자들이 일사분란하게 율동을 섞어가며 노동운동가요를 부르는 모습을 보면서 “우리 인도네시아 노동자들은 언제 저렇게 될 수 있을까” 라더니 눈물을 쏟았다고 한다. 당시 인도네시아는 수하르또 독재 치하에서 국가의 지도감독을 받는 어용노조만이 활개 칠 때였다.  

필자는 파우지를 1998년 8월에 처음 만났다. 한인투자기업의 노동인권침해 문제를 조사하러 자카르타를 방문했을 때였고, 인도네시아 노동문제를 이해하려면 파우지부터 만나야 한다는 주변의 조언에 따른 것이었다. 만나보니 파우지는 명성과 달리 수수한 복장에 친절하고 겸손하고 나이나 성별에 따른 차별이 없는 일관된 사람으로 보였고 열심히 듣고 진지하게 답하는 사람이었다. 그 후 계속된 만남과 토론에서도 파우지는 한결같았다. 마지막으로 그를 직접 대한 것은 2001년 5월에 노동운동에 관한 1년 반의 현지조사를 마치고 귀국인사를 위해 보고르(Bogor)의 자택을 찾았을 때였다. 당시 파우지는 늦장가에다 아들 라이한(Raihan)까지 얻어서 행복한 한 때를 누릴 때였다. 그 후 파우지를 다시 만날 수 없었지만 그가 설립한 단체 활동가들과의 접촉과 토론이 계속되었고 그 때마다 파우지는 안부인사를 전하는 것을 잊지 않았다.

파우지의 영면은 인도네시아 현대노동운동사에 대한 기억과 현장노동자들이 그에게 들려준 지혜의 손실이기도 하다. 만날 때마다 파우지는 조사여행을 통해 노동자들로부터 새로 배운 바를 들려주곤 했다. 마지막 만남 때의 이야기는 술라웨시섬 넝마주이들의 조직화 방법에 관한 것이었다. 노동자들의 지혜를 사랑한 파우지는 그렇게 해서 얻게 된 자신의 지혜와 전략에 대해서는 정작 책 한 권 남기지 못했다. 필자는 파우지에게 인도네시아 노동운동의 역사, 혼탁 그 자체인 작금의 노동운동, 후배들에게 들려줄 전략과 권고에 관하여 글을 쓸 것을 강권한 바 있다. 그 때 파우지는 정말 진심으로 글을 쓰고 싶다고 했다. 그러나 동시에 자신이 만든 단체에 딸린 네 명의 활동가들이 월급을 받을 수 있도록 자신이 해야 하는 일이 만만치 않은 현실의 고충에 대해 토로했다. 그렇게 파우지는 떠나갔다. 만약 그가 책을 썼다면 인도네시아의 노동운동과 인권운동에 관한 역사적 이해는 물론이고 미래의 전진을 위한 귀중한 토착적 안내서가 되었을 텐데 정말 안타깝다.

이렇게 ‘아시아의 지혜’가 사라지고 있다. 한국의 시민사회에서 ‘아시아연대운동’이 활발한데, 우리의 경험과 지혜를 알리는 것을 넘어서, 작은 자금이나마 보태서 아시아 시민사회의 경험과 지혜도 기록될 수 있도록 독려하고 후원할 수 있으면 참 좋겠다. 그렇게 만들어진 한 권의 책으로 인도네시아의 젊은 세대들이 배우고 우리도 따라서 배우는 기회를 갖게 된다면 얼마나 멋진 일일까? 파우지 사망 1주기를 넘긴 자카르타에서 그와 나눈 추억과 그가 없는 오늘의 상실감을 적어보았다.     

전제성 (전북대 정치외교학과 부교수)


* 이 글은 서남포럼 뉴스레터(2011.01.10)에 실린 글입니다.

Posted by 영기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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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웅산 수치가 직면한 두 가지 과제

미얀마 총선이 예상대로 군부 쪽 정당의 압도적인 승리로 끝났고, 아웅산 수치가 해금되었다. 지난 총선은 2008년 신헌법에 토대를 두고 있다. 민족민주동맹과 국제사회는 이미 2008년 신헌법 처리를 무효라고 주장했기에, 이 신헌법에 근거한 총선을 거부한 것은 일관된 정치노선이었다.
문제는 2008년 신헌법에 한정된 것이 아니다. 미얀마 군부는 민족민주동맹의 압승으로 끝난 1990년 5월 선거를 무시했다. 이 때문에 민족민주동맹은 줄곧 1990년 5월 선거 결과에 대한 인정을 요구했다. 미얀마 군부는 모르쇠 전략으로 한치의 양보도 없이, 아웅산 수치를 비롯한 미얀마 민주인사들을 지속적으로 박해했다. 특히 2007년에는 거리에 나선 승려들과 시민들에게 총격을 가했다. 민주주의의 외침을 군홧발로 짓밟은 1988년의 비극이 반복된 것이다.

동남아국가연합(아세안) 회원국들은 불간섭주의와 포용을 통한 변화라는 명분을 내걸고 미얀마와 손을 잡았다. 서방은 이를 ‘독재자 클럽’이라는 구태에서 온전히 벗어나지 못하는 동남아 국가들의 인권의식의 한계로 받아들였다. 1962년 군부 쿠데타를 계기로 시작된 ‘버마식 사회주의’ 노선을 두고 논란도 있다. 그러나 이것 역시 1960년대에 주목받던 아프리카 사회주의처럼 식민지 역사로부터 얻은 정신적 외상과 무관하지 않은 비자본주의 실험이었음을 부정하기 어렵다. 그리고 아프리카 사회주의 실험이 그러했듯이 ‘버마식 사회주의’의 고립노선은 정치·경제적으로 파국을 맞았다.

현재 미얀마 군부는 과거 두 개의 악몽으로부터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하나는 미얀마를 오랫동안 분할지배해 종족간 반감을 증폭시켰던 제국주의의 교활함이다. 다른 하나는 독립 직후 종족간 내전에 따른 ‘실패 국가’의 경험이다. 물론 이런 해석은 미얀마 군부에 지나치게 관대한 것일 수 있다. 미얀마 군부야말로 사회주의의 이름으로, 또 국가통합이란 이름으로 과거 제국주의 못지않은 잔인한 짓들을 반복해왔기 때문이다.

그동안 국제사회는 미얀마 군부에 압박을 가했고, 아웅산 수치를 비롯한 미얀마 민주인사들도 헌신적 투쟁을 했다. 그러나 미얀마 군부는 어떠한 균열 조짐도 없이 요지부동의 모습을 보였다. 그렇기에 서방 일각에서는 미얀마에 대한 제재 일변도의 대응이 갖는 효력에 의문을 제기했다. 워낙 고립된 상황에 있던 미얀마라 경제제재의 효과가 미미할뿐더러 오히려 군부의 단합만을 고취했다는 것이다.

7년 만에 해금된 아웅산 수치는 요지부동의 군부를 움직여야 하는 중차대한 과제를 안고 있다. 해금과 동시에 아웅산 수치는 군부와의 대화를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대화 제의는 그동안 누차 있었던 것이라 새로운 정치전략으로 보는 것은 속단이다. 하자가 많은 집권 군부세력으로서는 아웅산 수치의 행동거지 하나하나에 예민할 수밖에 없다. 극단적으로 그의 자유를 다시 박탈할 수 있다. 그렇기에 아웅산 수치는 미얀마 사회가 활력을 되찾도록 하기 위해서도 자신의 자유를 소중히 지킬 수 있어야 한다.

이와 관련해 그동안 제기됐던 정치인 아웅산 수치에 대한 다음과 같은 건설적 비판에 귀기울일 필요가 있다. 하나는 군부를 강온파로 분열시키기 위해서도 형식적 대화 제의가 아닌 실질적 대화를 시도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이를테면 아웅산 수치의 외국기업들에 대한 ‘투자 유예 요청’은 대화노선과 상충하는 대결노선이었다. 다른 하나는 미국을 비롯한 서방국가들보다 오히려 미얀마의 변화를 유도해낼 수 있는 지렛대를 더 많이 갖게 된 중국, 아세안 회원국들에 좀더 진지하게 다가갈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민주주의란 이름으로 포장된 서방 강대국들의 일방주의와, 불간섭주의란 이름으로 포장된 식민주의 경험국들의 국가주의를 넘어설 수 있는 새로운 인권 패러다임을 아웅산 수치에게 기대해본다.


박은홍 성공회대 사회과학부 교수

자료제공: 한겨레 2010.12.10
Posted by 영기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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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NGO 긴급구호 자금 효율적인 운영이 필요해

한국해외원조단체협의회(이하 해원협)가 주최한 아이티 긴급구호 포럼이 12월 13일 사회복지공동모금회 강당에서 열렸다. 많은 NGO회원들이 모인 가운데 진행된 포럼은 1년 동안의 아이티 긴급구호에 대해 평가하고 앞으로의 활동 방향을 논의하기 위한 자리가 됐다.

이번 아이티 긴급구호는 역사상 의미가 크다. 정부의 긴급구호금액인 1200만 달러보다 민간단체의 긴급구호금액이 3200만 달러로 훨씬 컸던 첫 번째 사례이기 때문이다. 민간단체에서 뜨거운 관심을 가진 사안인 만큼 효율적, 효과적으로 기금을 운영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래서 이 포럼은 ‘준비 없이 현장에 뛰어들었던 지난 실수를 반성하고 철저한 준비를 하기 위해 마련된 자리’라는 것이 관계자의 말이다.

해원협의 이경신 팀장은 한국 NGO의 과제에 대해 “모금을 많이 하는 NGO일수록 사업에 전문성이 있어야 한다. 왜냐하면 선한의도가 꼭 선한 결과를 낳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고 말했다. 즉 각 단체의 선한의도 +전문성을 겸비해야 한다는 것이다.

정지선 월드비전 과장도 비슷하게 지적했다. “준비되지 않은 인력들이 많이 들어와서 어려움이 컸다. 구호활동에 전혀 경험없는 의사나 구호단체 직원이 자기들의 경험쌓기로 이용했다. ”고 인력배치에서 힘들었던 점을 토로했다.

그러나 이미 효율적인 아이티 재건사업 추진을 위해서 새로운 길을 모색하는 단체도 있다. 한마음운동본부이다. 이 단체는 로마카토릭 단체인 카리타스와 협력한다. 월드비전처럼 세계적으로 조직을 갖추고 있어 재해가 발생하면 그 국가에 원조를 하게 된다는 것이다. 김대민 차장은 이렇게 하는 이유에 대해 “작은단체와 큰 단체의 역할이 다르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자기 단체 깃발을 아이티에 꽂는 것보다 후원하는 것 자체가 중요하다고 본다. 우리는 주로 학교재건사업에 모금액을 쓸 예정이다.”고 말했다.

김 차장의 얘기는 모든 돈이 효율적으로 쓰이기 위해서는 자기 단체의 위치와 규모를 알고 협력해야 한다는 것이다. 동시에 ‘돈을 어떻게 모으는가보다 어떻게 쓸 것인가가 중요하다’며 학교, 집, 끼니해결 중에 선택해서 전문화하는 것을 강조했다.

한편으로 외교통상부와 협력하여 교회재건 사업을 한 한국교회희망봉사단의 김종성 목사는 민과 관이 협력하는 것에 초점을 두었다. 사립학교를 둔 교회를 우선 재건하여 학교도 동시에 살리는 길을 택했다.

이 밖에 서울역 노숙자에게 식사를 제공하는 ‘소중한 사람들’의 유정옥 시설장은 “단체마다 돈은 잔뜩 쌓여 있는데 어떻게 몰라 쩔쩔매는 것을 보면 안타깝다.”며 뼈아픈 지적을 했다.  “아이티에는 먹을 물 없고 팬티 안 입은 아이들이 많은데 물건을 쌓아놓고 못 나눠주고 있으니 전문적으로 나눠주는 사람이 필요하다”며 많은 사람이 현장에 뛰어들길 제안했다.

토론을 맡은 연세대학교 이명근 교수는 한국 NGO가 효율적이지 않은 이유에 대해서 진단의 부재로 설명했다. “재난 지역은 일단 진단을 먼저 해야 한다. 그들의 필요가 뭔가를 뚜렷이 알아야 하는데 그러려면 그 방면의 전문가나 대학교수와 같이 활동하는 것이 옳다.”고 산학협동같이 NGO와 대학교수와의 연계를 제안했다. 예를 들어, 집을 지으려면 건축전공한 기업의 직원이나 건축학 교수와 함께 아이티로 가서 자문을 구하라는 것이다. 그럼으로써 한국 NGO가 전문성을 높일 수 있다는 것이 그의 의견이다. 동시에 ‘목표와 목적을 분명히 정하라’는 조언도 했다. 교육, 집, 밥 중에서 어떤 것을 목표로 할 것이고 목표성취를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를 스스로 기준을 정하라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질의와 응답 시간에는 효율적인 자금 운영이 안 되는 이유는 NGO간의 경쟁강화로 인해서 자금을 중복되게 사용했기 때문이라는 지적이 있었다. 여기에 대해 월드비전 관계자는 “돈은 협의체를 통해 공동으로 모금하고 각각의 NGO로 배분하는 방법을 생각해 볼 수 있다. 그리고 효율적 배분의 기준은 수혜자의 만족도를 기준으로 측정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이 포럼은 국내의 유명한 해외원조단체가 한자리에 모인 뜻 깊은 자리가 됐다. 그러나 각 단체가 하는 일이 두루뭉술하고 비슷해서 특화된 자기분야가 없었다. 이런 맥락으로 보면 여러 단체의 지원이 중복되는 것은 당연한 결과일 것이다. 좀 더 자기 색깔이 분명한 조직이 됐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원조단체는 모금+전달의 역할이 핵심인데 모금에만 열을 올린 반면 전달이 제대로 됐는지 확인조차 하지 않은 것이 아쉬웠다. 포럼 내용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수혜자가 기금의 혜택을 받은 후 얼마나 달라졌는지’인데 그것이 빠져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앞으로 이런 자리가 많아질수록 단점이 점차 보완될 수 있는 기회도 많아 질것이라 생각한다.

글: 장유진 국제연대위원회 인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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