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필리핀 피플파워 21주년에 즈음하여 -



최근 2007년 1월까지 필리핀 전 지역에서는 인권 활동가, 정당 활동가, 노동자, 농민, 학생, 종교인 등에 대해 무차별적 납치와 살해가 일어나고 있고, 그 사망자의 수는 820명이 넘어섰으며, 시간이 지날수록 실종자와 사망자의 수가 늘어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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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필리핀 정부는 국내, 국제 사회의 여론에 밀려, 2006년 8월, 납치와 살해사건을 조사하기 위한 멜로위원회를 구성, 조사활동을 벌였고, 2007년 1월, 위원회는 조사결과를 비공개로 대통령에게 보고 하였습니다. 이 보고서는 사건의 책임을 필리핀군에 있는 것으로 결론지었으나, 보고를 받은 아로요 대통령은 가해자에 대한 처벌에 대해 전혀 고려하지 않고 있으며, 정부의 책임을 회피하려는 태도를 보이고 있습니다.

2월 25일 필리핀 피플파워 21주년에 즈음해서, 경계를 넘어, 국제민주연대, 참여연대, 환경운동연합,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아시아의 친구들, 원불교 인권위원회, 한국여성의 전화연합 등 한국의 인권, 종교, 시민사회단체들은 2월 23일(금)에 정치적 살인에 대한 필리핀 정부의 태도를 규탄하고, 철저한 진상조사와 함께 살인과 폭력을 중단시킬 수 있는 대책을 요구하기 위해 필리핀 대사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었습니다.

공동 블로그도 만들었으니 많이 찾아주세요.

http://blog.naver.com/stopkillings

[공동성명]

필리핀 아로요 정권과 군부는 정치적 살인을 즉각 중단하라!

- 필리핀 피플파워 21주년에 즈음하여 -

오는 2월 25일은 부패하고 무능한 마르코스 독재정권을 필리핀 민중의 힘으로 무너뜨린 '피플 파워' 21주년이 되는 날이다. 그러나 오늘 우리는 이 역사적인 날을 필리핀 민중과 함께 기념하고 축하할 수 없는 현실을 매우 안타깝게 생각한다. 아로요 대통령의 집권 5년 동안 필리핀 민중 800여명이 살해당하고 200여명이 실종되는 등 필리핀의 민중들은 현재 마르코스 독재시절보다 더한 정치적 살인과 폭력이라는 끔찍한 인권 탄압 아래에 놓여있기 때문이다.

2001년 두 번째 피플파워를 통해 집권할 수 있었던 아로요 정권은 피플파워의 기폭제 역할을 한 노동자ㆍ농민ㆍ종교 지도자와 언론인, 지식인, 주민운동과 시민단체 활동가들에게 자행되고 있는 이러한 무자비한 정치적 살인과 폭력을 막지 않고 수수방관하는 태도를 취해왔다. 우리는 다양한 증거를 통해 이러한 무차별적이고 광범위한 정치적 살인의 배후에 필리핀 정부군과 준군사조직이 개입되어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그리고 이들이 초법적인 폭력을 자유롭게 행사할 수 있는 배경에는 911 이후 아로요 정권이 미국과 협력하여 진행하고 있는 테러와의 전쟁과 신자유주의의 확산이 자리 잡고 있다. 희생자들의 대부분은 바로 미국의 군사패권주의와 신자유주의에 반대하는 이들이며, 억울한 죽음 후에도 정부에 의해 공산주의자 또는 이슬람 무장단체로 낙인 찍혀 적법한 조사도 받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희생자들의 이념이 아니라 살인과 폭력이라는 방식으로 사회갈등을 해결하려고 하는 필리핀의 현재 모습이다.

이미 우리는 지난 해 9월 25일 정치적 살인 중단과 가해자들에 대한 조사를 필리핀 정부에 촉구하였다. 그러나 한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 곳곳에서 평화를 호소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필리핀의 정치적 살인과 폭력이 줄어들기는커녕 오히려 증가하고 있다. 지난 10월 3일에는 필리핀 노동자의 대부로 불리던 필리핀 독립교회의 라멘토(Ramento) 주교가 괴한에 의해 피살되어 큰 충격을 주었을 뿐만 아니라, 올해 2월 8일에는 농민 지도자인 달마시오(Dalamcio)씨가 자택에서 무장괴한에 의해 살해당했다.

상황이 이렇게 심각함에도 필리핀 정부는 그동안 정부의 진상조사위원회인 멜로위원회가 정치적 살인에 대한 조사를 진행하고 있으며 그 결과를 기다려 달라는 말만 되풀이 해왔다. 그러나 지난 1월 멜로위원회가 최종 보고서를 아로요 정부에 제출하면서 필리핀 정규군에 의한 살인이 있었음을 분명히 지적했음에도, 아로요 정부는 군에 대한 실질적인 조사를 진행하고 가해자에 대해 적법한 처벌을 내릴 의지를 보이지 않고 있다. 따라서 멜로위원회의 조사 여부와 관계없이 지속되고 있는 정치적 살인 소식을 접할 때, 우리는 멜로위원회가 단지 국내외의 압력을 회피하기 위한 도구였다고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지금 이 순간에도 살해와 폭력의 위협 속에서 살아가야만 하는 필리핀 민중과 진보적인 각계 지도자들을 생각하며 필리핀 정부에 대해 다음과 같이 강력히 요구한다.

하나, 필리핀 정부는 민중과 각계 지도자에 대한 살인과 폭력 등의 인권탄압을 즉각 중단하라!

하나, 필리핀 정부는 살인과 폭력 등의 인권탄압에 대해 철저하게 조사하고 진상을 규명하라!

하나, 필리핀 정부는 더 이상의 살인과 폭력을 중단시킬 수 있는 즉각적이고 실효성 있는 대책을 강구하라!

하나, 필리핀 정부는 필리핀 공산주의 계열 및 무슬림 운동단체들과 체결한 평화협정을 이행하라!


2007년 2월 23일


경계를 넘어,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고양 시민회, 광주인권운동센터, 광주환경운동연합, 국립공원을지키는시민의모임, 국제민주연대, 나와우리, 녹색연합, 다산인권센터, 다함께, 대구경북독립영화협회, 대구참여연대, 대전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 대전환경운동연합, 동성애자인권연대,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민주개혁을위한인천시민연대, 민주노동당 성소수자위원회, 부천외국인노동자의집, 분당환경시민의모임, (사)외국인노동자와 함께, (사)환경과생명, (사)환경교육센터서울외국인노동자센터, 서울외국인노동자센터, 서울환경운동연합, 성동건강복지센터, 수원여성회, 시민환경연구소, 시흥환경운동연합, 아시아의친구들, 아시아태평양노동자연대, 아시아NGO센터, 오산다솜교회, 오산이주노동자센터, 원불교 인권위원회, 원주 나눔의집, 위례시민연대, 인권운동사랑방, 인권실천시민연대, 자원순환사회연대, 전국목회자정의평화실천협의회,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전북평화와 인권연대, 제주참여환경연대, 제주환경운동연합, 주거복지연대, 진보넷, 참여불가재가연대, 참여연대, 천안아산환경운동연합, 초록정치연대, 충북참여자치시민연대, 한국기독교장로회 교회와 사회위원회, 한국기독교장로회 평화공동체운동본부, 한국노동네트웍크협의회, 한국레즈비언상담소, 한국성폭력상담소, 한국여성단체연합, 한국여성의전화연합, 한국청년연합회, 환경운동연합, 흥사단 (총 63개 단체, 가나다 순임)
국제연대위원회


Posted by 영기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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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호는 주요 원조 공여국 연재 두번째로, 지난 호 유럽연합에 이어 캐나다를 소개합니다.

캐나다는 지난 반세기 동안 인류의 최종 목표인 인간보호에 중점을 두는 이상적인 입장에서 대외원조에 접근해 온 나라이다. 개별국가로는 처음으로 인간안보를 주요 외교정책으로 설정하고, 이를 위해 국제 협력, 다자간 협력, 시민사회와의 협력을 수행하고 있다. 대인지뢰협약(Mine Ban Treaty)과 국제사법재판소(International Criminal Court)는 캐나다 정부의 주도에 의해서 이루어진 것으로, 이와 같은 캐나다의 국제사회에서의 역할처럼 캐나다 대외원조 정책의 접근방식 역시, 통상이익보다는 인류의 행복을 위해 앞서 나간다는 이상적인 캐나다의 대외 이미지 제고와 정체성 함양이라는 배경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캐나다 외무부장관인 로이드 액스월시(Lloyd Axworthy)는 1999년 캐나다 대외원조 정책의 최종 목표가 ‘전 세계를 인간의 기본적인 권리와 안전, 인간 생존이 가능한 환경으로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라고 선언했다. 이에 따라 캐나다의 대외원조는 백신예방사업이나 단기간에 많은 사람들을 구할 수 있는 인도주의 사업, 긴급지원이 필요한 곳에 대규모적인 보건 지원사업 등 인류의 건강과 생명권 보호에 중점을 두고 있다. 그러나 인간의 생명권 보호를 우선으로 하고 있는 캐나다 대외원조 정책은 20세기 후반에 이르러 큰 위기를 맞고 있다. 이상적인 대외원조의 목표가 흔들리고, 대외원조 예산이 삭감되고 있는 것이다.

캐나다의 대외원조의 역사는 콜롬보 프로젝트부터 시작한다. 2차 세계대전 이후 영연방이 해체되자, 영연방 신생 독립국들은 급속한 위기상황에 직면하였다. 이에 캐나다와 호주 등 영연방 소속 국가들이 신생독립국을 지원하기 위해 ‘콜롬보 프로젝트’를 실시, 1950년, 새로 독립한 인도, 파키스탄, 스리랑카에 2천5백만 캐나다 달러를 지원한다. 이를 시초로 시작된 캐나다의 대외원조는 캐나다의 국가적 위상이 높아지고 경제가 활성화되었던 1960년이 되자 외무성 산하에 ‘대외원조사무국’을 창설하고 본격적인 대외원조를 실시한다. 대외원조 규모가 증가됨에 따라 대외원조사무국은 1968년 ‘캐나다 국제개발청(Canadian International Development Agency: CIDA)’으로 확대 개편된다. 대외원조를 위한 독립된 청이 생김에 따라 대외원조 전문가들이 확보되었고, 영연방 국가에 중점이 되었던 대외원조는 아프리카, 중동, 미 대륙, 아시아 지역으로 확장되어 나갔다.

지난 55년의 전통을 가지고 있는 캐나다의 대외원조 정책은 인권향상, 아동권리 보호, 여성 보호 영역에서 가장 독보적인 프로그램을 제공하며 앞서 나가고 있다고 평가된다. 대외원조 프로그램 운영에 있어서도 수혜국에 가장 효과적인 원조정책을 지원하기 위해 다양한 전문가 그룹과 학계, 시민사회가 결합하여 원조가 필요한 적재적소에 필요한 프로그램을 제공하고 있다. 현재 캐나다는 스리랑카, 카메룬, 에콰도르 등에서 여성을 위한 소액대출(micro-credit)에 중점적으로 지원을 하고 있다.

2005년 CIDA는 캐나다의 대외원조를 향상시키기 위한 '국제정책제안(Canada’s International Policy Statement, IPS)'을 제시하였다. IPS에 따르면 CIDA는 '좋은 정부, 보건(HIV), 교육, 민간개발, 지속적인 환경‘ 다섯 가지 항목에 우선순위를 두고 사업을 실시한다는 목표를 세웠다.

이에 따라 2010년까지 캐나다는 25개 파트너 국가들에 대규모 개발원조와 인도주의 원조를 실시하게 된다. 핵심 지원 국가들은 부르키나 파소, 카메룬, 에티오피아, 가나, 케냐, 말라위, 말리, 캄보디아, 파키스탄, 스리랑카, 베트남, 우크라이나 등 25개국인데, 파트너 국가들 중 14개국이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 국가에 위치하고 있다. 파트너 국가들은 모두 기아와 분쟁, 자연재해로 인해 인도주의 긴급지원이 절실하게 필요한 국가들이다. 이를 통해 우리는 캐나다 대외원조가 캐나다 국가차원의 정치적ㆍ경제적 실익보다는 인도주의 지원과 생명권 보호에 우선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CIDA는 중앙정부로부터 예산의 80%를 지원받고 나머지 20%는 재경부, 외무성, 국제개발센터의 지원으로 충당하고 있다. 2004년-2005년 캐나다 정부는 370만($3.74 billion)을 대외원조에 배정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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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표에서도 확인할 수 있는 것처럼 CIDA의 대외원조 우선순위는 보건과 교육 부문이다. CIDA는 비타민 A정제를 개도국의 아이들에게 제공함으로써 150만 명의 어린이를 구해냈다는 평가를 받기도 하였으며, 2005년 소아마비 박멸에 기여한 기관으로서 UN으로부터 상을 수여받기도 하였다. CIDA는 유럽연합의 지속가능한 개발 프로그램 지원과 달리, 대규모 보건지원과 의료지원에 더욱 중점을 둘 것으로 예상된다.

캐나다의 대외원조는 적극적인 원조 프로그램 운영과 성공적인 성과로 국제사회로부터 이상적인 원조라고 평가를 받고 있지만, 캐나다 정부의 외교정책에서 ODA의 비중은 점점 줄어들고 있다. 일례로 1991년부터 2001년까지 캐나다의 ODA 예산은 평균 34%가 삭감되었다. 1990년대 초반 0.49%, 1998년 0.30%, 2001년 0.23%로 지속적으로 하락하고 있다. 현재 2000년대의 GNP대비 캐나다 ODA 비율은 1965년대 수준으로 후퇴한 것으로 보인다.

캐나다 ODA 예산이 대규모로 삭감된 이유로는 1990년대 초반 막대한 재정적자를 들 수 있다. 캐나다 정부가 재정적 어려움에 직면하자 ODA규모를 우선적으로 삭감해 버린 것이다. 그러나 1997년 이후 캐나다 경제는 안정을 찾고 캐나다 정부 예산은 흑자로 전환되어 G7국가 중 건강한 경제를 유지하고 있는 국가로 평가된다. 하지만 이미 삭감된 ODA 예산은 다시 원상 복구되지 못하고 못한 채, 2001년 GNP대비 ODA 지출 비율은 0.23%로, 전체 OECD 22개 국가 중 18위에 불과하다. 1995년 캐나다가 전체 OECD 국가에서 ODA 지출 규모가 6위였던 것과 상당히 대조적이다.

캐나다의 ODA 대외원조액 삭감에 대하여 캐나다 정부는 시민사회와 학계로부터 거센 비판을 받고 있다. 그러자 UN창설 이후 진보학자와 국제기구 지도자들에 의해 꾸준히 제기되었던 GNP 대비 0.7%의 ODA 예산 배분을 결의한 2002년 UN 몬테레이 회의에 참가한 장 크레티앵(Jean Chretien) 캐나다 총리는 매년 ODA 지출을 8%씩 늘려 UN의 권고안인 0.7%까지 늘린다는 것을 약속한다.

그러나 현 보수당 출신의 스티븐 하퍼(Stephen Harper) 캐나다 총리는 취임 이후 연방재정 10억 캐나다 달러(한화 8천억)를 삭감하고 연방정부의 행정개혁을 단행해, GNP대비 캐나다의 ODA 기여를 1985년대 수준으로 떨어뜨렸다. 2006~2007년 캐나다 정부의 ODA 비율은 0.33% 수준으로 동결될 전망이다. 이는 캐나다 정부가 약속한 UN의 목표인 GNP 대비 0.7%와 큰 차이가 나는 수치이다.

2005년 스위스 다보스에서 열린 세계경제포럼에서 시라크 대통령과 토니 블레어 수상은 ODA 목표를 UN이 권고한 GNI대비 ODA비율 0.7%에 도달하기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약속했다. 이에 따라 프랑스는 전 항공기에 아프리카 AIDS 환자를 돕기 위한 항공 세금을 부가하였다. 영국도 ODA 증액과 아프리카의 보건과 빈곤퇴치를 위한 더 많은 ODA를 제공하기로 약속하였다. 하지만 대외원조의 이상적인 모델로 인용되고 있는 캐나다는 이러한 국제적인 환경과 달리 ODA를 삭감하고 프로그램의 운영을 줄여가면서 그 이전의 명성을 잃어가고 있다. 이와 같은 배경의 시초에는 경제적인 이유가 있었지만, 경제가 회복된 지금에도 큰 변화를 보이고 있지 않다. 캐나다의 적극적인 이익과 상관없는 정책에는 지원하지 않는다는 보수적인 시각이 존재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구촌에서 캐나다는 G8국가로서 많은 역할을 하고 있다. 하지만 인간의 생명권 보호라는 이상적인 목표를 가지고 적극적으로 지원하던 ODA는 이제 캐나다의 자국의 상황에 따라 줄어들고 있다.

이상적인 목표와 효율적인 프로그램 운영으로 지구촌 어린이, 여성들의 열악한 보건 상태를 개선하고 교육의 기회를 확대하여 국제사회로부터 많은 지지를 받았던 캐나다가 90년대 들어 ODA규모를 절대적으로 축소하여 국제 무대에서 그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는 사례는 바로 한국의 상황을 연상시킨다. 왜냐하면 한국의 현실에서도 ODA규모를 확대하고 ODA집행상의 여러 가지 문제점을 개선하겠다는 정부의 공언과 달리 ODA는 정부의 다른 정책이나 예산의 우선순위에서 항상 밀리고 있기 때문이다. 만약 개도국에 대한 대외원조가 자국의 현실적인 경제, 정치 논리나 집권 세력의 성향에 의해서 움직인다면, 결과적으로 수혜국들의 고통만 가중될 것이다. ODA는 CIDA의 헌장에 명시된 것처럼, ‘빈곤타파와 안전하고 평등하고 번영된 세계를 위해 일한다’는 이상적인 목표에 의해 이루어져야 한다. 따라서 전 세계 경제를 주도적으로 이끌어 나가는 G8국가의 일원인 캐나다는 지구촌의 공공의 선을 실행하기 위하여 경제적인 상황과 이익에 상관없이 적극적으로 ODA 지원에 나서야 하며, 한국 역시 세계의 12위의 경제력에 걸맞는 모습을 보여야 할 것이다. 인도주의 위기와 열악한 생존환경으로 인하여 생명을 위협받고 있는 지구촌의 많은 곳에 적극적으로 지원하는 것이 책임있는 선진국들의 모습이다.

김여정(참여연대 국제연대위원회 ODA연구팀)


* 첨부화일: 뉴스레터 원본



Posted by 영기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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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여수 출입국관리사무소의 화재로 숨진 분들의 명복을 빌면서, 참담한 마음을 금할 길 없다. 화재의 원인이야 어찌되었든, 그런 위급한 순간에 수용자들을 제대로 탈출시키지 못한 출입국 관리소의 한심하기 짝이 없는 관리 상태와 구조 체계의 미비를 강력히 비난하며, 하루속히 적절한 대응책을 세울 것을 강력히 촉구하는 바이다.

그러나 일개 출입국관리소의 수용시설에 대한 개선과 몇몇 책임자에 대한 징계 등은 미봉책에 불과할 것이다. 출입국 관리소와 기타 불법외국인 노동자의 수용시설 전반에서 일상적으로 일어나고 있는 인권유린의 문제를 이번 기회에 근본적으로 짚고 넘어가야 한다. 외국인 노동자는 이미 우리 사회의 일부로 자리 잡았다. 그들이 자신들의 경제적 이익을 위해 한국에 들어왔지만, 이제 우리 경제는 그들의 노동력 없이 움직이지 못할 정도로 그들을 필요로 하고 있다. 그들이 우리 경제구조에서 차지하고 있는 부분을 내국인 노동력으로 대체할 가능성은 희박해 보인다. 국내에서 누구도 그 역할을 하려 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들이 국내에서 경제활동을 하고 있는 한, 노동자로서 누려야 하는 최소한의 권리를 국가는 보장해야 한다.

최근 외국인 노동자를 들여오는 방법이 산업연수생 제도에서 고용허가제로 바뀌었고 이는 이전보다 진일보한 정책이라는 것은 인정한다. 그러나 여전히 개선되고 있지 않은 부분은 바로 불법 이주노동자에 대한 우리 정부의 정책과 우리 사회의 싸늘한 시선이다. 그리고 이런 정책의 부재와 사회의 무관심이 이들에 대한 인권 유린이 계속 자행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한다.

많은 나라들이 불법 이주노동자의 입국과 체류를 용납하지 않는다. 불법체류자의 문제는 주권국가의 국경과 주권 보호와 연관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중요한 차이는 그런 불법 이주노동자들에 대한 단속과 수용이 얼마나 합법적으로 인권을 존중하면서 행해지는가라는 문제이다.

형법상 범죄자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폭력적이고 강압적인 단속과 검거가 행해지고, 수용기간 중에도 일상적으로 폭언, 폭력과 강압이 행사되며, 외부와 연락을 하거나 자신의 법적 권리에 대해서 적절한 조언을 구하지도 못하는 것이 불법 이주노동자 인권의 현주소이다. 그리고 이런 일상적인 인권유린이 자행되는 데는 불법 이주노동자들을 단속하고 수용하고 본국으로 송환하는 모든 과정과 절차에 대한 법적 규정들이 너무 모호하고 포괄적이라는 점도 크게 작용한다. 이런 법적 미비점으로 인해 불법 노동자들은 법률의 자의적 해석, 관리자 개인판단에 의한 임의적 처분 등의 인권 유린에 노출된다.

인권이란 가치에는 국경도 국적도 없다. 한국인이 외국의 감옥이나 수용시설에서 이런 비극적인 일을 당했다고 가정하면 온 나라가 떠들썩한 이슈가 될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그들이 우리나라 국민이 아니고, 이주노동자라는 이유로 지금 이 순간에도 어디선가 자행되고 있는 그들에 대한 인권유린에 대해서 입을 다물고 있지는 않았는지 되돌아볼 일이다. 정부의 재발방지 대책과 법적 보완은 물론이고 우리 시민 한사람 한사람의 각성이 요구된다.

국제연대위원회


Posted by 영기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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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해 뉴스레터를 통해 한국의 대외원조 실태와 제도적 미비점, 대외원조에 대한 우리 국민의 생각, 정부의 정책 의지 등 한국의 ODA 실태 전반에 대해 다각도로 살펴보았습니다.

이번 호부터는 주요 원조 공여국의 원조 역사, 원조 규모, 집행 체계, 정책 등을 살펴보며 한국 대외원조의 발전에 도움을 줄 시사점을 찾고자 합니다.

원조 공여국가 연재가 끝나면, 협력국가(수원국), 지역, 원조 영역별 등으로 확대하여 뉴스레터를 발행하려고 하니, 지속적으로 관심 가져주시기 바랍니다.


유럽연합의 대외원조는 전 세계의 원조국 중 원조 규모가 가장 크며, 가장 효과적으로 원조를 수행하고 있다고 평가받고 있다. 비난여론이 많은 다른 원조국과 달리, 유럽연합의 대외원조가 긍정적인 평가를 받는 배경에는 지속적인 원조 프로그램의 개발과 투명한 평가 과정, 원조 전문가 육성, 끊임없는 대외원조의 개혁을 통하여 효율적인 대외원조가 이루어졌기 때문일 것이다.

현재 전 세계 160개국이 유럽으로부터 양자 간 또는 다자간 형태의 지원을 받고 있다. 유럽연합 공동체와 유럽연합 소속 회원국들이 제공하는 국제원조의 규모는 매년 약 300억 유로로, 전 세계 원조 흐름의 55%에 해당한다. 유럽연합 공동체 차원의 단독 대외원조 규모는(소속 회원국들의 양자적 대외원조 규모를 제외한 규모) 전 세계 국제원조의 10%를 차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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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외원조의 역사

유럽의 대외원조는 지난 세기 유럽의 식민지 경영에서 시작하였다. 프랑스, 독일, 이태리, 스페인, 포르투칼, 영국 등과 같은 국가들은 식민지 경영으로 막대한 부를 창출하고 식민지에 학교, 병원과 같은 기반시설을 지원하였다. 위와 같은 경험으로 유럽은 다른 신생 원조공여국과 달리, 원조가 필요한 지원국에 대한 원조 프로그램 진행과 운영에 관한 정보를 많이 축적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유럽은 1957년 로마조약을 통하여 유럽의 식민지가 집중된 대륙에 집중 원조를 실시할 것을 천명한다. 이에 따라 유럽공동체는 초기에 아프리카, 환태평양과 카리비안 국가들을 중점적으로 지원하였다.

1960년대와 1970년대에 걸쳐 유럽대륙이 지배하고 있던 식민지 국가들이 독립함으로써 유럽의 원조 정책은 큰 혼란에 빠지게 된다. 그러나 1993년 유럽공동체가 공식적으로 발족하면서 유럽연합은 개발협력정책을 수행하는 데 필요한 법적 기반을 마련하게 된다. 1993년 발효된 마르트리히트 조약에 따르면 “개발협력정책의 목표는 개도국의 지속적인 경제적ㆍ사회적 개발을 촉진하고 세계 경제에 개도국을 점진적이고 조화롭게 통합하는 것이며 개도국의 빈곤문제를 해결하는 것이다”라고 명시되어 있다. 이에 따라 유럽연합의 원조는 세계 최대의 공여국으로 성장할 수 있는 법적인 기반을 마련하게 된다.

1990년대 유럽연합의 원조의 경향은 동부유럽과 유럽대륙 주변국으로 집중되었다. 유럽연합은 민주화로 새로운 길을 모색하는 동유럽 신생 회원국들의 경제, 사회 개발을 지원하기 위하여 막대한 원조를 제공한다.

1990년대 중반 이후 유럽연합의 원조는 발칸, 팔레스타인, 북한, 파키스탄 등의 분쟁지역으로 다양화되었다. 이는 과거 유럽연합의 개별 회원국들이 전 식민지 국가들에 대한 기득권 유지를 목표로 하여 지원했던 대외원조 특성에서 벗어나 유럽연합이 전 세계 분쟁의 조정자로서의 역할로 변화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대외원조의 개혁

유럽연합의 대외원조는 1990년대까지 회원국들의 정치적인 이해관계와 이익의 상충관계로 많은 혼란을 겪어왔다. 또한, 비효율적이고 방만한 운영으로 여론의 지탄을 받아왔다. 그래서 1990년대 후반에 이르러 대외원조의 개혁은 유럽연합 집행이사회의 가장 큰 이슈로 떠올랐다. 이에 따라 2000년 유럽연합은 대외원조 정책의 대대적인 개혁에 착수한다. 유럽 전역의 원조 전문가와 지역 전문가들이 모여 대외원조 개혁에 관한 워크샵을 1여년에 걸쳐 진행하여 개혁안을 만들었다.

2000년 개정된 유럽연합의 대외원조 개혁안은, 첫째, 효율적인 대외원조 정책의 시행을 위하여 유럽연합 집행위에 집중되어 있던 대외원조 관리의 권한을 63개 대표부로 분산하여 원조 수혜 지역의 원조 실행 과정을 현지 대표부가 관리하도록 했다.

둘째, 유럽연합은 더 많은 비연계 원조(untied aid)를 제공함으로써 원조 효율성을 높였다.

셋째, 2001년 1월 1일 새로운 전담 수행 기구인 유럽연합 원조협력청(Europe Aid)을 창설하여 프로젝트의 발굴, 확인, 시행과 평가 등 대외원조 사업의 관리업무를 총괄적으로 수행하게 된다.

넷째, 원조의 질적 향상을 위한 시도의 일환으로 수혜 국가별 전략보고서(Country Strategy Paper)를 도입하여 대외원조의 평가를 질적으로 향상시켰다.

대외원조의 진행 과정

유럽연합의 대외원조는 유럽연합 대외협력위원회(EU External Relations Committee)와 유럽연합 개발위원회(Development Committee)에서 55개 상주 유럽연합 대표부의 도움을 얻어 수혜국가에 대한 전략보고서와 원조실행 보고서를 작성하여 유럽연합 집행이사회(European Commission)에 제출하는 과정을 거친다.

수혜국가에 대한 전략보고서와 원조실행보고서는 유럽연합 집행이사회의 승인을 받고 유럽연합 원조협력청을 통하여 해당 수혜국가에 본격적인 지원을 실시한다. 수혜국가의 원조의 전달과정과 수행과정에 대한 평가는 수혜국가에 상주하고 있는 유럽연합 대표부가 주기적인 평가보고서를 통하여 관리된다.

평가보고서는 매년 정기적인 감사를 통하여 투명성 여부를 확인하고 다음해 사업에 반영된다. 또한 작성된 평가보고서와 감사보고서는 독립된 민간기업을 통하여 다시 재분석되어 유럽연합 원조협력청에 전달된다. 평가보고서, 감사보고서, 분석보고서는 원조 전문가와 학계 등에 전달되어 공유하게 된다.

분쟁이나 자연재해로 인해 긴급한 구호가 요구되는 지역에 대한 인도적 지원은 유럽연합 인도지원사무국(ECHO)이 주관한다. 쓰나미, 룡천폭발사고, 파키스탄 지진 등 긴급지원이 필요로 요구되는 곳은 유럽연합 인도지원사무국(ECHO)이 비축된 긴급 지원물품을 최단시간 안에 지원한다. 인도주의 지원이 필요한 해당지역에 대해서는 긴급 보고서를 작성하여 유럽회원국에 긴급호소절차를 통하여 더 많은 지원을 요청한다.

대외원조의 특성

유럽연합의 대외원조는 장기간에 걸친 원조의 경험을 바탕으로 하여 수혜국가에 가장 필요한 원조를 제공하는 것으로 명성이 높다. 대규모적인 물량 지원과 건설사업 등과 같은 선심 사업보다는 현지 지역에 맞는 다양한 프로그램을 맞춤형으로 제공한다.

프로그램 지원은 국제기구와 유럽연합 회원국 소속 NGO등과 결합하여 농촌개발 사업, 교육, 의료 등에 중점 지원하고 있다. 특정 프로그램에 전문적인 경험과 지식을 비축한 NGO가 유럽연합의 대외원조를 지원받아 수혜국가 중 가장 필요한 지역에서 활동을 펼치고 있다. 예를 들면, 독일 NGO의 평안북도 농자재 지원 사업, 프랑스 NGO의 아체지역의 병원운영 사업 등이 있다. 현재 유럽연합의 대북지원활동을 살펴보면 교육프로그램, 의료, 취로 사업 등에 집중하고 평양지역보다는 가장 수혜가 필요한 평안남북도 지역에 집중하여 진행하고 있다.

대외원조의 비율

세계 대외원조 공여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개발원조위원회(DAC)의 주요 회원 국가들의 총 대외원조 규모가 1990년대 이후 줄어들고 있는 추세와 달리, 유럽연합 회원국과 유럽연합은 최근 대외원조 정책을 더욱 늘려가고 있다.

유럽연합 회원국들은 2002년 3월 바르셀로나에서 열린 각료이사회에서 2006년까지 GNP 대비 ODA의 비율을 최소 0.39%까지 증액하기로 합의함으로써 유럽연합의 공적원조 규모는 계속 증가하고 있다.

또한 유럽연합은 2015년까지 몬테레이 유엔 개발재원국제회의(International Conference on Financing for Development)에서 확인된 바 있는 선진국들의 향후 도달 목표인 GNP 대비 0.7%로 ODA를 증가시키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유럽연합은 단계적으로 2006년까지 ODA를 0.33%까지 증가시켰고 2010년에는 0.51%까지 증가시킬 예정이다.

그러나 아직까지도 원조를 받고 있는 유럽연합의 신생회원국인 체코, 슬로바키아, 폴란드, 에스토이나, 헝가리, 라트비아, 리투아니아, 몰타, 슬로베이나, 싸이프러스 등이 원조 공여국이 되기 위해서는 많은 시간이 걸릴 것이다. 일례로 유럽의 신생회원국인 에스토니아의 ODA비율은 0.01%에 그치고 있다. 이에 따라 유럽공동체의 평균 규모액을 유지하기 위하여 서유럽국가들은 대외원조 비율을 더욱 높이고 있다.

매년 유럽연합 소속 회원국의 개발 장관들과 유럽연합 대외협력위원회는 함께 모여 유럽연합의 대외원조 진행과정에 대하여 평가한다. 최근 회의는 2006년 4월 10일~11일까지 룩상부르그에서 열렸다. 이 회의에서 유럽연합은 빈곤퇴치와 개발을 위한 글로벌 파트너쉽을 추구하고 2015년까지 유엔이 제시한 0.7%로 ODA를 늘리는 것에 대해 결의했다.

김여정(참여연대 국제연대위원회 ODA연구팀)


※ 편집자주: 오랜 원조 역사의 경험으로 성공적인 대외원조를 시행하고 있다고 평가받는 유럽연합의 사례는 공여국으로서 짧은 역사를 가지고 있는 한국과는 다르다. 그러나, 협력국가(수여국)의 요구와 긴밀한 관계 속에서 가장 효과적인 대외원조를 실시해야 한다는 요구를 받고 있는 현재 한국 ODA의 현실에서 경청할 점들이 있다. 비록, 유럽연합의 대외원조가 인도주의적 차원보다는 유럽대륙의 식민지 이익 창출을 위해 시작했다고 평가받지만, 식민지 경험을 통해 확보된, 현지에 가장 필요하고 적절한 원조를 수행하고 있는 대외원조 집행 과정에 대해서 좀더 연구해봐야 할 것이다. 다음 편에서는 유럽연합과는 반대로 인도주의적인 기원으로 대외원조를 시작한 캐나다와 비교하면서 우리나라 대외원조의 나아갈 길을 모색하고자 한다.

* 첨부화일: 뉴스레터 원본
국제연대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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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1월 15일 오전 10시경, 번화가에서 멀리 떨어져 있어, 늘 조용하고 한적하던 태국 주재 한국 대사관 앞이 갑자기 소란스러워졌다. 50여명의 시위대가 민주노총의 깃발을 앞세우고, 태국어와 영어로 된 피켓을 들고 구호를 소리 높여 외치고 있었다.

외국에서 사업을 하고 있는 한국계 기업의 횡포와 부당노동행위에 맞서 노동자들이 해외 주재 한국 대사관 앞에서 시위를 하는 것은 아주 낯선 풍경은 아니다. 그런데, 웬 민주노총 깃발? 사정인즉, 이들은 자신들의 사안이 아니라, 국제연대, 구체적으로는 2006년 11월 15일로 예정된 민주노총의 총파업 투쟁을 지지하고, 한국 정부의 노동 운동 탄압에 항의하는 시위를 조직한 태국 노동자들이었다.

“노조 탄압 중지하라, ILO 권고를 즉각 이행하라,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권리를 인정하라, 수감된 노동운동가들을 석방하라”

대사관에서 나온 담당자는 회의 참석 차 방콕에 갔다가, 그 집회에 참석할 수 있었던 민주노총 산하 모 연맹 부위원장과 멱살잡이 비슷한 몸싸움을 하고, 상대의 명함은 요구하지만, 자신의 성명조차 밝히기를 거부했다.

집회는 한국의 대통령의 사진을 태우는 것으로 절정에 달했다. 화장(火葬)이 일반적인 장례 문화인 태국에서 사진을 불에 태운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 지 그 대사관 관계자가 이해했는지는 모르겠으나, 그에 대해 매우 불쾌해 했다. 도저히 이해 못하겠다는 표정을 지으면서 쓸데없는 내정 간섭이라는 단어가 들리기도 한 듯하고. 이날의 집회는 노무현 대통령에게 항의서한을 전달하는 것으로 마무리 지어졌다.

월차 휴가는 없고, 대부분 일당으로 임금이 지급되는 태국의 노동 관행을 고려할 때, 이들 노동자들은 한국 노동자들의 파업 투쟁을 지지하기 위해, 자신들의 반나절, 혹은 하루치의 임금을 기꺼이 포기하고 그 자리에 모인 것이다. 무엇이 이들로 하여금 대사관 앞으로 모여들게 만든 것일까? 집회를 준비했던 “민주 노조 연대 (Alliance of Democratic Trade Unions)”의 의장 소묫 프룩사카셈석(Somyot Pruksakasemsuk)은 간단하게 정리한다. “우리의 힘은 작고 약하지만, 한국의 노동 운동에 조금이라도 도움을 주고 싶었다. 한국의 노동 운동이 잘 싸워서 좋은 사례를 만들어 주어야 한다. 그렇게 만들어진 예들은 우리한테도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노동자들의 의식에 그리고 대정부 교섭에서....”

위의 이야기는 태국의 노동 운동 속에 한국의 모습이 어떻게 나타나고 있는가를 잘 보여주고 있다. 필자의 경험으로는 이는 다른 나라에서도 별반 다르지 않다. 한국의 운동은 특히 노동운동은 강력한 조직력을 바탕으로 전투적인 운동을 펼치고 있다는 것이 공통된 인식이다. 이에 따라, 한국의 운동 세력에 대한 기대 역시도 크게 나타나고 있다. 실제, 태국의 한 활동가는 “한국의 노동운동이 아시아 노동 운동을 전략이든, 실천이든, 재정이든, 도덕이든 모든 면에서 리드해야 하고, 그럴 능력이 있다고 생각한다”라고 까지 말한다. 많은 부분 논쟁의 여지가 있기는 하지만, 한국의 운동에 대한 기대를 보여주는 발언이라고 생각한다. 한국의 운동은 아시아의 이웃들과 나눌 준비가 되어 있는가?

객관적인 조건은 형성되어 있다고 생각된다. 예를 들어 한류가 그것이다. 한류의 열풍이 거세다는 것은 이미 잘 알려져 있다. 동아시아든, 동남아시아든 한국에서 왔다고 소개하면, 보통 나오는 이야기는 한국의 영화, 드라마 혹은 연예인 이야기이고, 이는 남아시아까지 서서히 번져가고 있다. 자본에 의해 주도되고 있는 이러한 한류에서 자본주의의, 더 나아가 제국주의의 냄새를 맡기란 어렵지 않다. 한국 드라마 혹은 영화가 얼마에 팔렸네, 한국 드라마의 유행 이후 해당 국가에서 한국 상품이 얼마 더 팔렸네 주판알 튕기는 소리가 들리는 한편에서는, 뛰어난 한국의 문화 상품들이 아시아 각국의 안방을 점령하고 있다는 문구가 버젓이 받아들여지고 있으니 말이다. 자본주의 국가에서 다른 나라와 경쟁하고 상품 수출하는데 모든 수단과 방법을 동원한다는데 무슨 말이 많으냐고 한다면, 정치관, 경제관, 세계관의 차이로 받아들이고 더 이상 논쟁할 생각은 없다.

그러나 아이러니 한 것은 이러한 성격의 한류에 대해 한국의 소위 진보적인 세대들도 자부심을 느끼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는 것이다. 기존의 흐름에 대응하는 카운터의 흐름을 만들지 않는다면, 한국의 진보적 세력들 역시도 기존의 한류가 생산해 내고 있는 한국과 이웃 나라에 대한 편협한 인식에서 벗어날 수 없을 것이다. 즉, 우월한 지위를 차지하며, 그 속에서 이윤을 얻는 생산자로서의 한국과 단순 수용자, 소비자로서의 이웃 나라라는 이분법적인 도식을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일 여지가 있다는 것이다. 이는 아시아 연대의 문제일 뿐만 아니라, 한국이, 특히 한국의 진보 세력이 아시아 이웃들과의 관계를 어떻게 형성할 것인가에 있어 중요한 문제일 수 있다.

아시아 연대에서 한류를 만들어 간다면 그 내용은 달라질 수밖에 없다. 우선, 비정규직 노동자, 이주 노동자, 여성 등 한국의 주변화된 집단의 목소리로부터 연대가 시작되어야 한다. 그 목소리가, 이웃의 주변화된 목소리와 만날 때, 그것은 큰 울림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한편으로 생산자와 소비자의 이분법에서 탈피하여, 연대하고자 하는 상대가 필요한 것들을 주는 방식으로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한국과 아시아의 이웃은 생산자와 소비자가 아닌, 연대의 쌍방이며, 서로 가르치고 배우며 나누는 관계일 것이다.

멍석은 깔렸다. 그 위에서 어떻게 노느냐 하는 것은 아시아 연대를 고민하는 자들의 몫이다.

*사족

최저임금에 준하는 임금을 받으면서, 얼굴도 모르는 먼 나라 노동자들의 파업 투쟁을 지지하기 위해 하루치의 임금을 기꺼이 포기한 태국 노동자들의 연대의 마음을 우리는 언제 배우고 실천할 수 있을까? 인도 현대자동차 노동자들의 투쟁을 지원하기 위해 한국 현대 자동차 노동자들이 파업을 하는 그 날을 우리는 볼 수 있을까?
박진영(전 아시아여성위원회 프로그램 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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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프리드리히 에베르트 재단(뉴욕사무소)과 미국 랄프 번치 국제문제 연구소 공동 연구회의 보고서.

2006년 가을, 독일 프리드리히 에베르트 재단과 미국 CUNY 대학원의 랄프 번치 국제문제 연구소는 전 지구적 문제를 반추하고 차기 사무총장이 수행해야 할 의제들을 정립하고자 4차례에 걸쳐 공동연구회의를 진행했다. 유엔 사무국과 외교 사절, 비정부기구, 학계의 전문가들이 참여한 이 회의에서 환경, 인권, 인도주의적 활동, 국제 평화와 안보, 유엔 사무국과 운영을 주제로 ‘유엔 새 사무총장의 우선 과제’라는 30쪽 분량의 보고서가 정리되었다.

첨부화일: 영문 전문과 한글 요약본.

한글 요약본은 참여연대 간행물 2007년 2월호 [참여사회]에서도 보실 수 있습니다.
국제연대위원회


Posted by 영기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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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의 노동시장은 도이머이(혁신) 정책을 시행한 이래 가장 큰 변화를 맞고 있다. 그 동안 베트남은 값싸고 말 잘 듣는 노동력이 풍부한 곳으로 인식되어 왔다. 불과 3-4년전 만 하더라도 다국적 기업의 공장에서 일을 하기위해 연줄을 동원하고 소개비까지 지불하려는 인력을 쉽게 찾을 수 있었다. 하지만 최근 호치민과 같은 대도시나 인근에 위치한 일부 노동집약적 공장에서 인력 부족현상이 나타나기 시작했고 이직률도 증가하고 있다.

동시에 대도시 공장노동자의 불만은 개방정책 이래 최고조에 달해 있다. 베트남 노동조합은 다가오는 음력설에 역사상 가장 많은 파업이 일어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베트남은 이제 값싸지만 말 잘 안 듣는 노동력마저 부족한 곳으로 변화하기 시작한 지도 모른다.

이러한 변화에는 몇 가지 복합적 원인이 있다. 베트남은 고공비행을 거듭하고 있는 경제성장률과 국제무역기구(WTO) 가입 덕택에 외국자본이 앞 다투어 들어오고 있다. 외국자본이 붕따우-바지아나 메콩델타와 같은 농어촌지역에 공장을 건설하면서 대도시에 집중되었던 노동력이 분산되고 있다. 공장에서 일하기 위해 대도시로 이주하던 농촌의 노동력이 고향에서 일자리를 찾을 수 있게 되었다. 같은 맥락에서 대도시에서 비싼 생활비를 지불하며 생활하던 노동자가 귀향하는 현상도 벌어지고 있다.

급속히 팽창하고 있는 서비스-유통 부문의 임금상승도 공장노동의 매력을 감소시키고 있다. 전문 인력이 필요한 금융부문은 물론이고 우후죽순처럼 늘어가는 점포들이 공장노동에 상응하는 임금을 지불하는 일자리를 제공하고 있다. 한국인 주재원들은 이전과 달리 웃돈을 주어도 능력 있는 운전기사와 가정부를 찾기가 쉽지 않다고 불평을 늘어놓는다.

베트남 대도시 공장에서 인력난이 시작되고 있는 것은 궁극적으로 더딘 임금상승 때문이다. 비약적인 경제성장과 세계시장에의 급속한 편입에도 불구하고 베트남 대도시 공장노동자의 임금은 7-8년 전에 비해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실질임금은 계속 하락하고 있다. 더딘 임금상승은 노동력 부족은 물론이고 파업의 결정적 원인이 되고 있다.

요즘 한국에서 장기간 이주노동자로 일하다 귀국한 베트남인을 면담하고 있다. 이주노동자에 대한 한국인 업주의 부당노동행위에 익숙한 필자를 당혹시키는 것은 이들이 한국에 다시 가고 싶어 한다는 사실이다. 물론 이들이 진정으로 그리워하는 것은 상대적으로 높은 임금이다. 임금이 한국의 십분의 일 정도 밖에 되지 않는 베트남에서 일자리를 찾지 못하고 방황하는 많은 이주노동자를 보면서 베트남 사회주의의 현 주소를 묻게 된다. ‘노동자의 국가’를 자처하는 베트남이 언제까지 저임금을 유지할 수 있으며 이것이 정당한 것인가에 대해 물음을 던져 볼 시점이 왔다.

베트남을 들락거린 지 10년이 넘었지만 하루가 다르게 변모해가는 호치민의 거리를 걷고 있노라면 상념에 빠지곤 한다. 수많은 주검 위에 세워진 베트남 사회주의는 이미 정체성을 잃어버린 것이 아닐까? 그렇다면 이들은 무엇을 위해 지난한 전쟁을 벌인 것일까? 베트남의 일상은 이미 시효가 지나버린 이런 질문을 되씹어보게 한다.

채수홍(전북대 고고문화인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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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연대활동에서 ‘언어의 장벽’은 빈번히 지적되어 왔다. 시민운동단체의 회의석상에서 어떤 노장 활동가가 아시아연대를 하려면 아시아언어를 구사할 수 있는 활동가가 육성되어야 한다고 주장한 바 있다. 그렇지만 연대와 언어에 관한 이러한 도전적 주장을 접할 때 활동가들의 가장 흔한 반응은 아마도 “영어도 못하는데...”라는 회의론일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반응은 영어부터 하고 아시아언어를 배워야 한다는 잘못된 단계론에 입각해 있으며 아시아인들끼리 만나 영어로 소통할 때 나타나는 소외와 우스꽝스러움과 엘리트중심성에 대한 무의식에다가 모든 좋은 것은 영어권으로부터 온다는 사대주의적 경향까지 깔고 있을지도 모르는 그런 반응이다. 최근 한국 사회운동에 새로운 키워드로 부상하는 ‘아시아연대’가 지정학적인 요인만으로도 한 때 유행으로 그치지 않을 장기슬로건이고 앞으로도 오랫동안 수행되는 활동이라는 생각에 이르면 아시아언어의 학습은 그다지 황당한 주장이 아니라는 판단도 가능하다. 언어는 단지 기술적인 수단이 아니라 생활과 문화를 이해하는 통로가 된다는 점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그렇다면 바로 “어떻게 가능하냐”는 질문이 뒤따를 것이다. 아시아언어에 관심을 가졌던 사람이라면 중국어와 일본어 이외의 아시아언어를 가르치는 곳은 일부 외국어대학교밖에 없다는 비관적 여건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건국 이래 대한민국이 요즘처럼 아시아언어를 배우기 좋은 인구적 환경을 갖춘 적이 없었다는 낙관적 여건도 지적해야 한다. 약간만 노력한다면 외국인노동자나 국제결혼이주여성들로부터 일부 대학에서만 가르치는 아시아언어를 배울 수 있다. 활동가들과 단체회원들이 아시아언어를 이주민들로부터 배운다면 이주민들의 사회적 역할과 사회자본이 증대하는 또 다른 좋은 효과가 잇따를 것이다. 적지 않은 사회운동단체에서 아시아의 활동가를 초청하는 인턴십이나 교육프로그램을 추진하고 있는데 그들로부터 아시아의 언어를 배울 수도 있다. 그렇게 된다면 초빙된 외국인활동가가 우리사회에 무언가 기여한다는 자부심도 갖게 될 것이다.

아시아언어 중에서 우리나라에서 상당한 능력자가 존재하는 중국어와 일본어 영역을 논외로 하고 관심을 갖고 배울 필요가 있는 중요한 언어로 말레이인도네시아어를 추천한다. 동아시아의 4개국(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싱가포르, 부르나이)에서 사용되는데다가 편리한 언어이기 때문이다. 동남아전문가인 신윤환 교수는 동아시아지역협력의 발전도상에서 공용어가 선정될 필요성을 지적하면서 말레이인도네시아어가 가장 강력한 후보언어임을 주장하며 말레이어의 위력과 미덕을 논리적으로 제시한 바 있다. ‘동아시아공동체’라는 국가주도 지역통합체를 염두에 두고 제기한 주장이지만 사회운동의 아시아연대에 적용해도 될 만한 내용이므로 아래의 글을 읽도록 권하고자 한다. 공동체의 상상과 실질적인 형성에 있어서 언어는 근본적인 중요성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말레이인도네시아어를 ‘동아시아공동체’의 공식 언어로>

- 국제학술대회 “동아시아공동체 정체성함양 워크숍” 발표문(2005년 1월 30일)

- 신윤환(서강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교수)

권고하는 바

1. 아세안+3 또는 동아시아 정상회담은 적절한 시기에 말레이인도네시아어(앞으로는 '말레이어'라 칭함)를 동아시아공동체의 공용어로 선포해야 한다.

2. 동아시아공동체가 실현될 때 말레이어를 공용어로 사용하기 위한 준비로서, 아세안+3의 학술 공동체가 말레이어를 지역의 언어로 만들기 위해 연구하고 촉진하는 적극적인 역할을 맡아야 한다.

3. 동남아시아의 국가들, 특히 말레이어가 쓰이는 세 국가(싱가포르를 포함하면 네 국가)는 말레이어의 지역별, 지방별 차이점에 대한 심층적인 연구를 수행하고 표준적인 말레이어를 만드는 데 주도적으로 나서야 한다.

4. 동북아시아 국가들은 이 계획의 성공이 동북아인들의 전폭적인 지지에 달려 있다는 점을 인식하고 동북아 사회에서 말레이어를 대중화시키기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한다.

영어는 왜 동아시아 공동체의 공식 언어가 될 수 없는가

5. 영어는 대부분의 동아시아인들에게 외국어로서, 동아시아의 문화를 표현할 수도 없고 동아시아의 통합성과 정체성을 상징적으로 드러낼 수도 없다. 만일 동아시아공동체가 영어를 유일한 공식 언어로 채택하거나 그냥 그렇게 되도록 놔둔다면 그것은 자기 부정이나 다를 바 없는 일이다. 어떠한 동아시아의 언어도 공식 언어로서의 역할을 영어보다는 더 낫게 수행할 수 있다. 그 언어는 적어도 일부분의 동아시아 문화를 담고 있을 것이며, 다른 동아시아 언어들에 연관되어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6. 영어는 말레이어를 포함하여 두 개, 혹은 그 이상의 공식 언어 중 하나가 될 수는 있겠지만 '유일한' 공식 언어가 되어서는 안 된다. 아세안+3 또는 동아시아공동체의 공식 언어들은 단 하나가 될 수도 있고 여러 가지가 될 수도 있다. 유럽연합의 사례와 같이, 동아시아공동체의 회원국 언어 모두를 공식 언어로 지정하는 것도 가능할 것이다. 이런 다언어 정책은 동아시아의 통합을 위한 상징적인 의미는 지니겠지만, 강한 동아시아 정체성과 응집력을 만들고 증진시키는 데에는 그다지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다. 중국어도 공식 언어의 후보에는 오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공식 언어가 실제로 쓰이려면, 말레이어와 영어만이 그 역할을 제대로 해낼 수 있다.

7. 동아시아공동체의 건설은 시민사회와 평범한 사람들로부터 기반을 쌓아야 한다. 단지 국가끼리 혹은 엘리트끼리의 공동체로는 부족하다. 그런데 동아시아에서는 지도자들의 의사 소통도 영어에 의존해서는 힘든 것이 현실이다. 우리가 계속 영어만을 공통 언佇?사용한다면, 평범한 동아시아 사람들끼리 서로 의사소통이 가능해지는 것은 거의 불가능할 뿐만 아니라 실현되더라도 어마어마한 시간이 들 것이다.

8. 동아시아의 문명과 서구의 문명, 특히 영미 문명은 거의 관련이 없기 때문에 동아시아 사람들이 영어를 배우는 것은 무척이나 머리 아프고 비용이 많이 드는 일이다. 지금까지 이 절망적인 외국어를 배우기 위해 동아시아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 돈과 에너지를 소비해 왔는지, 얼마나 많은 시간을 낭비해 왔는지 생각해 보라.

9. 영어는 어떤 기준으로 보아도 배우기가 무척 힘든 언어이다. 문법은 복잡하고, 스펠링은 불규칙적이며, 용법은 천차만별이다. 이 언어는 프랑스어나 독일어, 스페인어 같은 다른 국제화된 유럽의 언어들과 비교하더라도 배우기가 훨씬 힘들다.

10. 국제어로서 영어를 대체하기 위해 만들어진 에스페란토와 같은 인위적인 언어들도 역시 우리의 고려에서 제외되어야 한다. 이런 언어들도 서구적인 가치와 관념, 문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것이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에스페란토 단어의 70% 이상이 그 뿌리를 서구의 언어에 두고 있다.

11. 우리는 2004년 7월 6일-8일에 아프리카연합이 스와힐리어를 조직의 공식 언어로 채택하기로 한 역사적인 결정을 지지하고 그 결정에서 배워야 한다. 스와힐리어 사용 인구의 숫자와 비율은 말레이어보다 더 적다는 사실을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

말레이어의 장점

12. 오늘날 아시아에서 쓰이는 수천 가지의 언어와 수십 가지의 국어 중, 말레이어는 배우기 쉬우며, 어휘가 풍부하고, 화자들끼리의 평등함을 보장해 준다는 점에서 두드러진다. 또한 말레이어는 동남아시아에서 가장 많은 인구가 사용하고 있고, 동아시아 전체로 보아도 중국어 다음 가는 사용 인구를 보유하고 있다.

13. 말레이어는 오늘날 세계에서 사용되는 중요한 언어들 중에서('가장' 배우기 쉽다고 단언할 수는 없지만) 외국인이 배우기에 상당히 쉬운 편에 속한다. 몇 달만 학습하면 외국인도 말레이어가 모국어인 사람들과 섞여 생활할 수 있다. 중국인, 일본인, 한국인들이 상대방과 대화할 때 그 상대방이 말레이어를 할 줄 안다는 사실을 눈치 채면 곧바로 영어 사용을 중단하고 말레이어로 바꾸는 것을 많이 지켜보아 왔다.

14. 말레이어는 그 역사를 통해 모든 주요 문명으로부터 지식과 지혜, 미적 가치가 담긴 새로운 단어와 표현들을 풍부하게 받아들여 왔다. 현대 말레이어와 인도네시아어에는 인도어, 중국어, 아랍어, 포르투갈어, 네덜란드어, 영어에서 빌려온 단어들이 넘친다. 말레이어는 과학기술의 발달에도 계속 적응해 나갈 것이다.

15. 말레이어는 평등한 언어이다. 자바어나 일본어, 한국어와 달리 말레이어에는 계급, 정치적 지위, 나이, 성별을 불문하고 존댓말이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는다. 어조도 남녀 가릴 것 없이 같다.

16. 영어나 다른 서구의 언어들과는 달리, 말레이어는 전쟁과 분쟁이 아닌 평화와 화합의 언어로, 제국주의와 착취가 아닌 교류와 협력의 언어로, 지배와 헤게모니가 아닌 다문화적인 공존의 언어로 발달해 온 역사를 갖고 있다.

17. 말레이어가 아세안+3나 동아시아공동체의 공식 언어로 제안된다면 반대에 부딪칠 가능성이 가장 적으며 동아시아 국가들로부터 만장일치의 합의를 이끌어낼 수도 있다. 그러나 아세안 내에서라면, 말레이어와 인도네시아어의 사용자가 워낙 절대 다수를 차지하고 있기 때문에 그러한 제안에 다른 국가들이 찬성 입장을 표하기를 꺼려할 것이다. 아세안이 동북아시아를 끌어안으며 확장세를 보이고 있는 이 때, 말레이어를 공식 언어로 채택하는 것은 동북아시아와 중국에 대해 어느 정도 균형을 잡는 역할을 할 수 있다.

18. 동아시아 인구의 3분의 2가 사용하고 있으며 엄청나게 많은 표의 문자(한자)를 보유하고 있는 중국어도 공식 언어로 고려될 만하다. 그러나 정치적인 가능성에 대해 생각한다면, 중국어를 공식 언어로 채택하는 것은 말레이어를 채택한 다음에나 가능할 것이다. 중국어가 동아시아 공동체의 유일 언어가 되기 위해서는 적어도 두 가지 장벽을 극복해야만 한다. 첫째는 배우기가 어렵다는 것이고 둘째는 중국의 지배력에 대한 두려움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말레이어와 중국어가 같이 공식 언어로 채택되더라도, 중국어에 비해 말레이어가 훨씬 배우기 쉽기 때문에 말레이어만이 실제 쓰이는 언어로 기능할 수 있을 것이다.

문법과 용법, 말씨의 단순함

19. 말레이어는 문법이 단순하고 발음하는 데 큰 힘이 들지 않으므로 배우기가 쉽다. 에스페란토는 일반적인 언어보다 "네 배"나 배우기가 쉽다는 주장이 있다. 그러나 말레이어는 에스페란토보다도 몇 배나 배우기가 쉽다.

20. 영어와 달리, 말레이어의 단어들은 스펠링대로 읽고 읽히는 대로 쓰면 된다.

21. 대륙부 동남아의 언어들(베트남어, 태국어 등)이나 중국어와는 달리, 말레이어에는 성조가 없다. 영어와 달리 음절에 대한 강세는 그다지 두드러지지 않거나 중요하지 않다.

22. 대부분의 다른 언어들과는 달리, 말레이어의 동사에는 시제나 주격에 따른 어미의 변화가 없다. 자동사와 타동사의 변화는 있지만 간단하고 규칙적이다.

23. 말레이어의 명사는 복수로 변할 때 불규칙 형태를 띠지 않는다. 어느 명사나 복수로 만들고 싶으면 그 명사를 두 번 연속 말하면 된다. 그렇게 동사와 형용사, 부사를 복수형으로 만드는 것은 원래의 단어에 시적이고 다채로우며 때로 어느 한 부분을 강조하는 의미를 더해 준다.

24. 말레이어의 어순은 고정되어 있다기보다는 유동적인 편이다. 주어와 술어의 위치가 바뀌어도 되고 구(phrase)는 어느 자리에나 들어갈 수 있다. 보통 문장의 앞부분에 중요한 단어나 구가 온다. 그러나 형식적인 문어체에는 엄격한 규칙과 문법이 있어 의사소통이 혼란될 염려가 없다.

25. 구어에서는 완전한 문장을 갖추어 말하는 경우가 오히려 드문 편이다.

말레이어의 역사와 언어 지도

26. 말레이어는 한 지역의 언어로 오랫동안 사용되어 왔으며, 근세로부터 동남아 전역에서 모여든 무역상들의 의사소통에 쓰였다. Anthony Reid에 의하면, "마젤란의 수마트라인 노예가 1521년 중부 필리핀 사람들에게 말을 걸었을 때 필리핀 사람들이 곧바로 그 말을 이해했을 가능성이 크고, 또한 거의 200년 후에, 민다나오에서 말레이어를 배운 Dampier의 영국인들이 그것을 베트남 최남부에 있는 Puolo Condore에서 써먹었을 수도 있다."*

27. 신생국의 공식 언어로서의 말레이어의 경쟁력은 말레이어의 한 부류가 국어로 인가된 아세안의 네 국가, 즉 인도네시아와 말레이시아, 싱가포르, 브루나이와 인도네시아어를 사용 언어로 인정한 동티모르에서 이미 충분히 입증되었다. 인도네시아와 싱가포르, 동티모르에서는 인구의 소수만이 말레이어를 모어로 사용한다는 점을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 인도네시아에서는 자바어, 싱가포르에서는 중국어, 동티모르에서는 테툼어가 더 널리 쓰인다.

28. 인도네시아의 성공 사례는 특히 본받을 만하다. 인도네시아가 독립 이후 말레이어를 국어인 '바하사 인도네시아'로 채택한 이후 60년이 채 되지 않는 시간 동안 말레이어 사용 인구는 몇 백만에서 2억 이상으로 늘었다. 그 전에 인도네시아에서 말레이어는 리아우(Riau) 지역과 해안가에 뿌리를 둔 소수 언어에 불과했다. 단지 정부의 정책만으로 '바하사 인도네시아'는 급속히 전국적으로 퍼질 수 있었다. 쉬운 언어라는 타고난 장점이 이만큼의 성공을 이끌어 낸 중요한 요인이었다. 비교해 볼 때, 필리핀에서의 영어나, 그보다는 낫지만 싱가포르에서의 영어가 인도네시아에서의 '바하사 인도네시아'만큼 성공했는지는 의문이다.

29. 2차대전이 막 끝났을 무렵, 말레이어 사용 인구는 다 합쳐 봤자 천만 명 정도였다. 그러나 지금은 거의 3억 명이 사용하고 있다. 말레이어는 2차대전 이후 세계에서 가장 빨리 퍼진 언어 중 하나이다. 지금 말레이어 사용 인구는 중국어, 영어, 힌디/우르두어에 이어 세계에서 네 번째로 많다.

30. 태국, 필리핀, 캄보디아, 베트남 등 다른 언어를 사용하는 동남아시아 국가들에도 말레이어에 가까운 언어를 사용하는 몇몇 소수민족들이 있다. 몬-크메르어와 베트남어도 말레이어가 속한 오스트로네시안 언어군에 속해 있기 때문에 어느 정도 관련되어 있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언어 체계는 동남아 국가들에서 짧은 시간 내에 말레이어를 대중적인 외국어로 만드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31. 만 명이 넘는 중국계 인구가 말레이어를 사용하는 국가에 뿌리박고 살거나 거주하고 있다. 이들은 "Chinese Malay" 혹은 "Baba Malay"라 불리는 그들끼리의 말레이어를 발전시켜 왔다. 지금은 일본인, 한국인 체류자들도 만 명이 넘는다. 이러한 동아시아인들은 말레이어를 동북아에 옮기고 퍼뜨리는 가교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다.

32. 말레이시아와 인도네시아에는 많은 수의 아랍인과 인도인의 자손, 이민자들, 사업가들이 자주 방문하거나 거주하고 있다. 이 두 나라의 무슬림 인구는 서아시아(중동)보다 더 많다. 말레이시아와 인도네시아의 문화는 인도, 아랍 세계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았다. 이러한 접촉과 전통은 말레이어가 동아시아의 경계를 넘어 진정한 아시아의 언어로서 아시아 전체에 퍼져 나가고, 미래에는 지구촌의 언어로 발돋움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전망

33. 하나 이상의 동아시아 공용어를 갖는 것은 강한 동아시아 정체성을 만들어내고 증진하며, 언젠가는 동아시아공동체를 건설하는 데 크게 기여할 수 있을 것이다.

34. 말레이어를 공용어로 인정하는 것은 동북아시아와 동남아시아의 통합에 놓인 정치적, 경제적, 문화적 차이를 좁히고 메우는 데 기여할 것이다.

* 번역: 서지원 (오하이오 주립대 박사과정)

전제성(전북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참여연대 국제연대위원회 실행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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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12월 6일 대우인터내셔널 버마에 불법무기 수출혐의 적발'

'2006년 12월 15일 반기문 신임 UN총장 취임 선서'


불과 열흘도 되지 않는 시간에 일어난 이 두 가지 일이 현재 국제사회의 한 구성원으로 한국이 가지고 있는 두 얼굴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인류전체의 평화와 안녕을 담당하는 UN의 최고위직에 당당하게 한국의 반기문 전 장관이 당선되고 이를 축하하는 각계의 목소리가 높은 와중에 다른 한편으로는 대우인터내셔널은 세계적으로 악명 높은 군사독재 국가이며 동시에 인권탄압 국가인 버마에 불법으로 포탄 제조공장과 설비, 기술까지 수출을 하다가 적발되었다. 이뿐만이 아니다. 대우인터내셔널은 이미 버마 가스전 개발 사업에 참여하고 있으며 그로부터 파생될 수 있는 인권유린 문제로 인해 국내외의 비난을 사고 있다. 이 아이러니한 두 상황을 보면서 한국의 국제사회에 대한 노블리스 오블리제에 대해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노블리스 오블리제의 원뜻에 대해서 다르게 해석하는 사람도 있지만, 어쨌든 현재 한국에서 통용되는 의미로는 대강 높은 사회적 신분과 부를 지닌 사람의 도덕적 의무를 뜻하는 정도로 쓰이고 있다. UN헌장이 언급하고 있듯이 평화, 인권 그리고 자유의 수호자인 UN 사무총장을 배출하는 것에만 기뻐할 일이 아니라, 우리나라가 그에 걸맞은 국제사회의 노블리스 오블리제를 행하고 있는지 먼저 반성해야 하지 않을까?

혹자는 일개 사기업이 그깟 무기 좀 다른 나라에 팔았다고 해서 한국의 국제사회에서의 위상이라는 문제까지 확대해석할 일이 뭐가 있냐고 할 수도 있을 것 같다. 또 어떤 사람들은 한국기업이 해외에 나가서 돈을 벌어오는데, 또 대우라는 기업이 직접 인권탄압에 개입한 것도 아닌데, 무슨 큰 잘못이 있는가라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아니면, 포탄제조는 버마라는 나라의 국방력 향상을 위한 것이지, 그 포탄이 국민들을 탄압하는데 쓰이는 것은 아니지 않는가라는 의문을 제기할 수 있을 것 같다. 이런 반론들은 현재 버마의 상황과 버마의 인권, 민주화를 위해서 국제사회가 기울이고 있는 노력에 대해서 무지한 탓에 나오는 말들이다.

현재 버마의 군사정부는 1990년 민주적 선거 결과에 승복하지 않고 불법적으로 권력을 장악하고 있다. 권력을 찬탈한 소수의 군 고위자들의 배를 불리기 위해 한해에 몇 십만 명이 강제노동에 동원되고 있으며, 강제이주가 수시로 자행되고 있다. 5만여 명에 달하는 18세 미만의 소년병이 강제징집당해 복무하고 있고, 공공보건 수준은 세계최악으로 5세 이하 사망률은 상황이 열악하다는 북한의 두 배에 달한다. 한해에 1주에서만 해도 수백 건의 군인에 의한 강간사건이 보고되고 있으며, 인신매매도 광범위하게 행해진다. 군사정부에 저항하는 정치세력에 대한 무자비한 탄압도 빠지지 않는다. 이 모든 인권유린이 군사정부의 직접 개입 또는 묵인 하에, 군 고위층의 이익을 위해서 자행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외국기업의 버마 투자에 따른 과실은 오직 버마 군 고위층에게만 돌아가고, 버마 민중에게 돌아가는 것은 외국기업의 투자를 유치하기 위한 사회간접자본 건설 현장의 강제노역, 강제이주뿐이다. 버마에서 가스전 개발로 인해 얻어지는 이익이 버마인들의 복지와 버마의 개발을 위해 쓰일 거라는 순진한 생각은 위험하다. 여기서 얻어지는 이익은 군사정부의 권력자 개인의 주머니로 들어간다. 버마에 대우가 포탄공장을 짓고 기술을 수출하는 과정에서 버마 군부 고위층은 상당한 뇌물을 챙겼을 것이다. 반면에 포탄을 생산하는 공장은 일인당 국민소득 172달러인 버마인들의 삶에 어떤 도움도 주지 못한다. 그리고 이런 사업들에서 대우를 비롯한 외국기업이 얻는 막대한 이익들은 고스란히 외국기업의 몫이다. 가스전 개발사업의 이익, 포탄공장 건설과 기술의 밀수출에 관련되어 버마 군부가 받는 뇌물, 그리고 이런 사업들에서 얻어지는 대우를 포함한 외국기업의 이익들은 모두 버마 사람들의 피와 고통을 먹고 자란 독버섯이다.

버마의 인권 상황을 인지하고 있는 국제사회는 다양한 방법을 통해서 버마 군사정부에 압박을 가하고 있다. 유럽의 대부분 국가들은 정부차원에서 뿐만 아니라 민간 차원에서도 사실상 버마와 경제관계를 끊었다. 또 유럽연합 차원에서 버마에 대한 공동입장을 정리하고 이를 회원국들이 준수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미국도 GSP(일반특혜관세제도) 공여를 중단하고, 버마에 투자를 금지하는 등의 경제제재를 비롯하여 버마 군부인사의 미국입국을 불허하는 조치도 취하고 있다. 태국과 호주도 버마와의 관계를 재검토하고 투자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했다. 뿐만 아니라 각국의 노동조합도 자국정부에 버마와 관계를 재고할 것을 촉구하고 있으며, UN, ILO(국제노동기구), UNHCR(유엔난민고등판무관) 등 많은 국제기구들이 버마 상황에 대한 다각도의 조사를 벌이고 인권문제 해결을 촉구하는 권고안, 결의안을 채택하여 버마 군사정부를 압박하고 있다.

이런 개별국가, 시민사회, 국제기구의 노력에 한국, 특히 정부의 공식적인 참여와 적극적 활동은 거의 찾아보기 힘들다. 국제사회에서 '노블리스'를 추구하고 어느 정도 이루었지만, 그에 따르는 '오블리제'는 등한시하고 있는 한국의 슬픈 현실이다. 우리 국민의 세금으로 조성된 엄청난 공적자금이 투여된 대우라는 기업이 버마의 끔찍한 군사독재 정부와 밀착하여 버마인들을 고통으로 몰아넣으며 돈을 버는 이런 현실을 더 이상 좌시하거나 방관해서는 안된다. 차제에 정부는 버마에 투자한 한국기업들에 대한 모니터링을 더욱 철저히 해야 하며 나아가 눈앞의 경제적 이익에만 매몰되지 말고 적극적 인권외교라는 방향의 정책적 선회가 필요하다. 그것만이 한국의 국력과 국제적 위상에 맞는 책임을 다하는 것이며 인도적 차원에서도 절대적으로 옳은 일이다.
이재현 (한국동남아연구소 선임 연구원, 국제연대위원회 실행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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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의혹으로만 제기되던 대우의 버마(미얀마)에 대한 무기수출이 검찰에 의하여 사실로 밝혀져 우리는 놀라움과 충격을 금할 수 없으며 버마군사정부의 인권탄압을 지원하며 이윤을 챙기는 대우의 부도덕하고 추악한 기업활동을 강력히 규탄한다.

언론보도에 따르면, 지난 12월 6일 서울중앙지검 첨단범죄수사부는 버마(미얀마) 군사정권에 불법으로 포탄제조공장과 설비, 기술까지 수출하여 대외무역법 및 기술개발 촉진법 위반, 대외무역법 위반 등의 혐의로 대우인터내셔널 사장 등 컨소시엄 업체 16명을 적발하여 그중 14명을 기소하고 2명을 지명수배한 것으로 밝혀졌다. 버마는 한국정부가 지정한 ‘방산물자 수출 요주의 국가’로, 포탄 및 그 부품의 제조 설비 및 기술은 그 수출이 엄격하게 통제되고 있는 전략 물자 및 전략기술에 해당된다. 대우인터내셔널 등은 버마군사정부로부터 1억 3,380만 달러(계약당시 환율기준 한화 약1,600억 원)를 대가로 받기로 하고 지난 2002년부터 최근 10월까지 무기제조장비와 기술수출 활동을 계속한 것으로 드러났다.

버마는 군사독재정권이 올해로 44년째 계속되고 있는 나라로 버마민중들은 군인들의 총칼 앞에 강제노동, 살해 등으로 고통 받는 삶을 살고 있는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따라서 버마는 세계에서 가장 열악한 인권상황에 놓인 나라 중 하나로 유엔을 비롯한 국제사회에서 그 심각성을 논의하고 있다.

이러한 비민주적이고 반인권적인 군사독재정권국가에, 소위 ‘민주주의국가’이고 유엔 사무총장을 배출한 나라라며 아시아를 비롯한 국제사회에서 자랑스러워하는 한국이 불법무기수출을 하며 군사독재정권을 지원하는 일이 어떻게 있을 수 있단 말인가? 대우의 불법무기수출은 민주화를 염원하며 한국의 지원을 기다리는 버마인들의 바램을 짓밟는 일로 버마인들에게 부끄럽고 죄송한 마음을 금할 수가 없다.

우리는 현재 대우인터내셔널이 주도하고 한국가스공사가 참여하고 있는 버마가스개발과 한국기업의 무기수출이 긴밀히 연결되어 있다고 본다. 자원개발이라는 명목으로 수천만 달러를 버마군부는 이윤을 얻게 될 것이고 이는 곧 버마에 군사독재연장과 인권침해를 가져올 것이다.

한국정부 역시, 한국기업의 반인권적이고 부도덕한 행위에 대하여 그 책임을 면치 못할 것이다. 부도가 났었던 대우의 회생에는 수많은 공적자금이 투입되었으며 버마가스개발사업을 위하여 한국정부는 대우인터내셔널이 현재까지 투자한 7천만 달러 중 60%를 융자해주었다.

우리 국민의 세금이 이렇게 추악한 기업의 이윤활동 지원에 사용된다는 것은 결코 용납할 수 없으며 버마군사정권을 지원하는 한국정부에 대한 국제사회의 비난도 더욱 거세어질 것이다. 비민주적이고 반인권적인 버마군사정부를 지원·방조하는 한국이 어떻게 국제사회의 책임 있는 일원이 될 수 있으며, 유엔 인권이사국과 사무총장의 역할을 할 수 있단 말인가? 이번 사건은 아시아와 지구촌에 민주주의 정착과 인권향상을 위해 노력해온 국제사회의 노력에 역행하는 것으로 한국은 국제사회로부터 쏟아지는 비난을 면치 못할 것이다.

우리는 반인권·비도덕적인 기업의 이윤활동과 이에 대한 한국정부의 지원을 결코 받아들일 수 없으며 다음을 강력히 촉구한다.



-대우인터내셔널은 이번 전략무기수출행위를 버마국민들에게 사죄하고, 버마군사정권을 지원하는 행위를 즉각 중단하라

-한국정부는 한국기업의 해외에서 반인권적인 행위를 규제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를 조속히 마련하라

-한국정부는 버마군사정권과의 외교적 관계를 전면 재검토하여 인권외교의 입장에서 버마의 민주화운동을 적극 지원하라


2006년 12월 11일


경계를넘어/경기DPI(경기장애인연맹)/국제앰네스티 한국지부/기업책임을위한 시민연대/나와우리/녹색연합/다산인권센터/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국제연대위원회/버마민족민주동맹(자유지역)한국지부/버마행동/부천시민연합/부천외국인노동자의집/새사회연대/안산노동인권센터/외국인이주노동자인권을위한모임/인권과평화를위한국제민주연대/인권실천시민연대/인권운동사랑방/전쟁없는세상/참여연대/천주교인권위원회/초록정치연대/한국노총/환경운동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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